참사랑의 첫 선물
이 종 선
우리는 참부모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고 맡은 소명을 받들어 나는 야목교회에서 내 님은 청파동 참부모님 댁에서 사명과 책임과 본분을 다하기 위해 정성과 노력을 다 하고 있었다.
나는 내 사랑하는 님이기에 영원한 증표가 될 선물을 주고 싶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목회생활을 하다 보니 언제나 환경과 사정은 여유가 없고 열악하여 맘은 원이로되 뜻대로 안 될 때가 많다. 나는 뜻 길을 출발하면서 나 나름대로 깊이 생각하고 출발하였다. 뜻 길에서 아주 어려운 위기(사고, 병 등)에 처하게 될 때 어찌하겠는가! 아플 때 약이 있어야 하고, 급히 가야 할 곳에 차비가 있어야 하고, 생활에 비상약이 필요하듯 내가 정말 위기에 처했을 때 비상금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오래전부터 일만 원짜리 한 장을 항상 준비하여 몸에 지니고 다녔다.
몇 백 리 길을 걸으면서도 안 썼고, 며칠을 굶으면서도 안 썼고, 비상금으로 갖고 수년을 다녔다. 그런데 지금 나한테는 비상금인 그 돈밖에 없다. 그 돈으로라도 내 님한테 사랑을 표시하고 싶은 심정인데 왠지 갈등이 생긴다. 지금의 사정을 생각해서일까. 그러나 내심(內心)으로 선물을 꼭 해주고 싶다.
날씨가 화창한 어느 날, 나는 내 사랑하는 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서울에 올라갈 테니 좀 만나자고…. 설레는 마음 들뜬 기분으로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면서 선물로 무엇을 사줄까, 사주면 얼마나 좋아할까, 만상만감(萬想萬感)에 젖어 시간가는 줄도 모른다. 나 혼자서 옆에 신부가 있는 것처럼 사랑에 취해 행복에 빠져 버스 안에서 살며시 콧노래를 부르며 흔들흔들 거리면서 올라갔다.
그런데 순간순간 맘이 헷갈린다. 상대방을 생각 못 하고 내 기준에서 생각이 자꾸 오간다. 그것은 내 사정 때문일 것이다. 예쁜 옥색 고무신을 사드릴까. 깨끗한 버선 한 켤레를 사 드릴까. 화려하게 수놓아진 손수건 한 장 사 드릴까. 이도 저도 아니면 무엇을 사 드리면 좋아할까. 화사한 님의 모습을 그리며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본다.
내 님은 뭐든지 다 좋아할 거야. 내 사랑, 내 정성, 내 마음을 아실 테니까. 이렇게 저렇게 내 맘대로 생각하며 가다 보니 어느새 종착점에 다 닿았다. 빨리 보고 싶은 마음,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전화를 거니, “예, 참부모님께 말씀드리고 곧 나가겠습니다.”한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노라니, 저쪽에서 아주 멋있고, 맵씨 있고, 늘씬한 모습의 내 님이 웃음을 머금고 다가오는데 내리쬐는 햇살에 더 화사하게 보인다.
“많이 기다리셨지요.”
“아니오.”
우리는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어디로 가면 좋겠습니까?” 물으니 “같이 가시지요.” 한다.
함께 택시에 몸을 싣고 가면서도 남대문으로 가려나, 동대문으로 가려나 궁금하지만 지금은 가자는 데로 갈 수밖에 없다. 얼마를 갔을까. 택시는 멈추고 우리는 차 안에서 내려 앞을 바라보니, 종로에 있는 화신백화점 앞이었다. 그 당시 화신백화점 하면 대한민국을 대표할 정도의 백화점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호텔이나 백화점에 드나든 적이 없다. 그곳들은 뭐든지 고급이요 고가(高價)라는 말만 듣고 지내왔다. 그런데 내 님은 그런 곳을 오늘 구경시켜 주려는 듯 같이 들어가잔다. 아니 벌써 앞장서서 들어가고 있다. 나는 뒤따라 들어갔다.
나는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돈이 얼마 없는데, 얼마 없는데, 속으로만 태우고 있는데 이게 웬일일까. 엄지손가락 한마디만한 번쩍번쩍 빛나는 누런 반지 하나를 들었다 놨다 하며 또 저쪽으로 가서는 눈이 부시도록 화려하고 예쁜 것을 또 들었다 놨다 한다. 꽤나 갖고 싶은 모양이다. 그럴 때마다 내 가슴은 철렁철렁 쿵당쿵당 한다. 내 간이 콩알만 하게 조여드는 것도 모르고 태연하게 왔다갔다 한다. 내가 불안하고 불편한 것도 모르고!
나는 내 자신이 이렇게 부족한가, 이렇게 작은가 실감하게 된다. 그렇다고 어찌하랴. 참아야지. 나는 나 스스로 마음을 다잡으며 말해 본다. 나는 남아대장부다. 나는 멋쟁이 신랑이다. 나는 삼수갑산엘 가도 내 님의 남편이다. 나를 굳게 다잡으며 같이 쇼핑을 하는데, 과연 내 님은 내 님이시다. 내 님은 다른 신부들하고는 다르다. 뜻적으로 심정적으로 사정이 통하는지 조그마한 반 돈짜리 반지 하나를 들어 보이며, “이거 어때요? 예쁘지요?”한다.
“영원한 사랑의 증표로 갖고 싶습니다.”
그 반지는 칠보반지란다. 나는 그제야 걱정이 덜어지듯 긴장에서 풀린다. 내게 큰 부담이 안 되는 것을 택했나 보다. 얼마나 심성이 곱고 사리가 깊은 사람인가.
내가 기분 좋게 사서 예쁜 왼손 약지에 끼워 주니 내 님이 더 예쁘게 보인다. 우리는 손에 손을 잡고 행복하게 백화점을 나왔는데, 아내가 나를 흘깃 쳐다보며“저 참부모님께 어렵게 말씀을 올리고 허락받아 나왔는데요.”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머뭇거린다. 나는,
“아, 예. 무엇을 진상하면 좋겠습니까?”
“예, 잡수실 것을 샀으면….”
우리는 백화점에서 거리가 얼마 안 되는, 서울에서 제일 명과점인 독일 몽브랑 제과점으로 가서 참부모님 잡수실 모찌떡을 사서 정성스레 포장을 했다.
“그리고요. 최원복 선생님 잡수실 것도 조금만 샀으면 좋겠어요. 저를 많이 사랑해 주시는 큰 어른이세요.”
“그래요.”
조금 더 사가지고 따로따로 예쁘게 포장을 하여 기분 좋게 계산을 하고서 제과점을 나왔다. 내 생전 처음으로 참부모님께 또 신부에게 선물을 했다 생각하니 기쁘고 뿌듯한 마음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항상 건강 조심하시고요. 수고 많이 하세요.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내 손을 한번 꼭 잡아주고는 청파동행 버스에 올라탄다.
나는 손을 높이 들어 버스가 안 보일 때까지 흔들어 줬는데, 아직도 님의 손의 사랑의 온기가 온 몸을 감싸며 배어든다. 사랑하는 님을 보내놓고도 어른어른하는 모습을 가슴에 담고 머리에 그리며 발길을 옮기려니 자꾸만 뒤돌아보게 된다. 그 사랑의 증표인 칠보반지가 우리 부부의 끈을 더 튼튼하게 매어 주고, 사랑의 둥지를 더 포근하게 해 주고, 우리의 사랑을 더 불타게 해 주었다 생각하니 그 사랑의 첫 선물의 행복에 나는 감사했다.
나는 좋다. 나는 아름답다. 세월이 한참을 지나 축복임지생활을 모두 마치고 돌아와서 알았지만, 우리의 사랑의 증표까지도 아낌없이 뜻 앞에 바쳐서 헌신, 봉사, 희생하며 의롭게, 정성스레, 영원을 불태우며 충효의 도리를 다하고 돌아왔다는 말씀을 듣고는 내 님은 나보다 더 훌륭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아내를 세상 만방에 자랑하고 싶다. 하늘의 효자요, 세상의 의인이요, 우리 가정의 예인이요, 내 참사랑이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싶다. 그리고 따뜻하게 포옹하며 속삭이고 싶다. 우리의 참사랑을….
~2편~
맛있는 생활
이 종 선
하늘의 축복! 세상의 축복!
우리는 축복을 한 몸에 가득 받고 나는 내 임지인 야목교회에서 목회생활을 하고, 내 님은 청파동 참부모님 저택에서 모심의 생활을 했다. 그래서 서로가 현대판 견우와 직녀가 되어 낮에는 하늘을 쳐다보며 님 계신 곳을 생각하고, 밤에는 님의 모습이 그리워 그림으로 그려 보고 시(詩)도 써 읊어 보기도 하면서 밤새 뒤척이며 잠 들 때가 많다.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내 님이기에 님의 사랑에 취할 수밖에 없었나 보다. 그렇게 얼마동안 생활이 진행되는데, 어떤 어려움이나 외로움도 요즘의 내 생활에선 보이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하루 24시간이 활기차며 화기애애하다. 아무리 사정이 어려워도 걱정이 안 된다. 축복받기 전하고 이렇게 다를 수가 없다. 참으로 신기하다. 환경은 예나 이제나 하나도 다를 바 없는데도 말이다. 아마도 축복의 힘, 참사랑의 힘, 우리 부부의 힘이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나님, 참부모님, 내 님한테 더 감사하다.
요즈음은 내 생애에서 찾아보기 힘든 행복한 생활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하루가 행복이요 모든 것이 천국생활이다. 그런 어느 날, 따르릉따르릉 전화벨이 조용한 적막을 흔들어 깬다. 안부를 먼저 묻고는 “참부모님께서 축복 전도임지로 출발하라는 말씀이 계tu 출발하려는데 낭군님께서 천명을 받들어 목회를 하시는 야목교회에 다녀가고 싶은데 괜찮으십니까?”하고 묻는다.
“아, 예. 괜찮고말고요. 다녀가세요.”
나는 얼마나 기쁘고 좋은지 하늘을 날고 싶고 땅 위에서 펄쩍펄쩍 뛰고 싶다. 나는 전화 수화기를 힘있게 잡고 “내가 내일 서울로 올라갈 테니 기다리세요.”하고 전화를 끊었다.
너무너무 좋다 보니 일손이 안 잡힌다. 사랑하는 신부, 내 님을 맞이해야 되는데, 집안 청소도 깨끗이 해야 하고, 식사준비도 맛있게 해야 하고, 옷도 깨끗한 것으로 입고 가야 하고, 참으로 마음이 복잡해지고 바빠진다. 그래도 내일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그러나 신부 맞이 준비를 하나하나 하다 보니 모두가 신기루 같다. 그러나 부엌에 들어가 봐도 그렇고, 집안 밖을 둘러봐도 그렇고, 힘이 빠진다. 이 환경, 이 사정, 이 모습을 보여준다 생각하니 한숨이 길게 나온다. 그러나 무엇보다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게 움직이며 꽉 차 오른다. 그리고 시간은 게으름뱅이가 아닌가 보다. 아니 벌써 나를 기쁨의 한 순간으로 인도하여 서울행 버스에 태웠다.
님에 취해, 사랑에 취해 잠깐인 것 같았는데 어느덧 님이 계신 청파동에 도착되어 우리는 서로 만나 뜨거운 악수와 짜릿한 포옹으로 상봉하였다. 전도 임지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간단히 꾸린 조그마한 가방 두어 개를 하나씩 나누어 들고 우리는 서울에 올라온 길을 되짚어 야목교회로 내려온다. 이제 우리의 모든 것이, 우리의 역사가 된다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해서 우리는 이 행복감을 더욱 오래 가지고 싶어 버스를 타지 않고 수원행 기차를 타고 수원역으로 갔다가 수원에서 수인선 협객열차를 갈아타고 야목교회로 향하였다. 조그마한 협객열차였기에 뒤뚱거리며 기적소리와 함께 낭만을 뿌리면서 달린다. 이 열차에 우리가 전세 내어 탄 양, 나는 내님 밖에 보이지 않고 세상을 다 잃어버린 양 푹 빠져서 손을 꼭 잡은 채 눈을 지그시 감고 오는데, 어느새 야목역에 다 닿았다.
‘야, 이 열차야. 너는 마라톤 선수냐? 왜 이리 빨리 왔어. 우리가 사랑에 빠져 행복에 취해 낭만을 맘껏 즐기게 좀 천천히 오지 않고.’
그래도 소용이 없다. 이미 왔으니까. 어느새 해는 저물어 서산에 걸터앉았다. 나는 아내가 어찌 생각하나 하고 말을 건넸다.
“저, 교회에 가면 먹을 것이 없을 텐데 라면이라도 사 가지고 가야겠는데요.”
내 님은 “예. 그래요.”하며 구멍가게로 먼저 들어가 라면 두 개를 사서 나온다. 아주 순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교회에 도착하여 교회 성전에서 간절히 기도를 한 후에 사택으로 갔다. 목사님께서 사모님을 모시고 오신다고 식구님들 몇 분이 오시어 저녁밥상을 차려놓고 반갑게 맞이하여 주신다. 우리 모두는 한참을 재미있게 이야기하며 웃으며 지냈다. 식구님들은 밤늦게 돌아가고 이렇게 하루를 마치고 다음날을 맞이하는데, 나는 천국에 들어온 것처럼 하늘도 땅도 새롭게 보이고,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느껴보지 못한, 바라보지 못한 새 세상을 맞이하는 것 같다.
식구님들은 나를 보고 “목사님, 그렇게 좋으세요? 그렇게 싱글벙글 하시니!”하고 묻는다. 별안간 온몸이 달아올라 용광로가 되고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어찌할 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좋은데 어찌하랴. 요즈음은 내가 대왕마마가 된 것 같다.
하루하루 생활이 그렇게 재미날 수가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도 개어주고, 방청소도 해주고, 대야에 세숫물도 떠다주고, 칫솔에 치약도 묻혀다 주고, 수건도 들고 있다가 세수를 다 하고 나면 내 손에 건네주고, 밥상도 소찬이지만 맛있게 차려와 같이 먹는다. 이 세상에 이런 대접을 받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런 사람 있으면 내 앞에 나와 보라고 크게 외쳐보고 싶다.
이렇게 감사하고 고맙고 사랑스럽고 좋은 내 아내다. 이런 아내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별로 없다. 나는 이 생각 저 생각 끝에“여보! 우리 참아버님께서 정성들이시며 고기잡이 하시던 바닷가에 가 보십시다.”하니 눈을 크게 뜨며 “어디인데요?”하며 좋아서 재촉을 한다. 나는 아내를 제일 사랑하지만 선물할 것이 없으니 마음은 늘 공허하다. 그래서 내 진실한 마음과 봉사의 모습으로 본(本) 그대로 보여주면서 보답코자 했다.
우리는 손에 손을 맞잡고 약 1.5km나 되는 바닷가로 나가 참아버님께서 정성껏 고기들을 잡으시며 구도(救道)의 준비를 하셨던 발자취를 더듬으며 ‘우리도 당신의 뒤를 따라 뜻길을 가오리다. 뜻을 위해 열심을 다 하겠습니다.’하고 마음을 다짐했다. ‘하나님, 참부모님! 우리 가정을, 우리 부부를 지켜보십시오. 효자 효부의 도리를 다 하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심정을 갖고 뜨거운 포옹으로 우리의 사랑을 하나님, 참부모님, 세상에 보여드렸다.
우리 주위를 맴도는 살랑바람도, 하늘에 뜬 구름도, 출렁이는 파도도, 흔들거리며 춤추는 풀잎들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화동의 중심가정이 되겠노라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본(本)을 보여주며 자손만대에 많은 교훈을 줄 수 있는 가정을 만들겠노라고 꿈과 각오를 다짐하면서 교회로 돌아왔다. 그리고 시간이 가는지 세월이 가는지 모르게 우리는 일심일체가 되어 교회를 쓸고 닦고 새로 고치고 만들면서 생기가 넘치는 일과를 보냈다.
우리는 언제나 서로 마주 쳐다만 봐도 좋고, 손만 마주 잡아 봐도 짜릿하고, 생각만 해도 사랑에 취해 내가 내가 아니고 내 생활이 내 생활이 아니었다. 이렇게 삼일간의 잊을 수 없는 우리만의 사랑과 행복의 시간을 보냈다. 서로 서로 위하는 생활, 화동하는 생활, 맛있는 생활을 이어 갔다.
이렇게 나라는 존재는 없이 님의 말씨, 님의 글씨, 님의 솜씨에 빠져 행복했던 그날들이 나의 삶의 뿌리가 되어 앞날에 더 큰 참사랑과 행복, 더 큰 희망이 되게 하기 위해 우리는 잠시 떨어져 공적노정을 가야 했다. 완전한 축복가정을 준비하기 위해 사랑하는, 아니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내님을 천리(千里) 밖에 있는 임지인 울진으로 떠나보내야 한다.
이 심정, 이 사정! 세상에 그 누가 알리오. 오, 그래도 하늘만은 아시겠지요. 보호하고 인도하시겠지요.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내 마음을 추스르면서 대구 교구본부로 떠나가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손을 꼭 잡고 대구교회까지 기차를 함께 타고 바라다 주고 돌아왔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3일간의 짜릿한 사랑의 생활이었기에 그 추억을 내 글 속에 담아 영원히 보고 싶어 써 본다. (2005. 5. 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