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브 신부님 강의
하느님께서는 신부님의 마음과 영혼에 사랑의 영을 심어 주셨습니다.
신부님은 항상 우리에게 일상을 넘어서, 세상적인 것을 넘어서
자아의 한계를 넘어서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적인 삶이 평범함을 초월하지만 그것은 오직 일상 에서만 찾을 수 있슴
또한 끊임없이 기도와 사랑을 응원을 주시는 한국과 미국의 거내영 식구들에게도 감사 드립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받은 가족입니까?
거룩함으로 인도하시는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항상 우리 각자에게 밤중의 의사처럼 다가 오십니다.
당신은 정말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가 될 거에요.
사람들의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 구절은 사제가 되고자 하는 남자를 맞이하는 인사말로도 자주 쓰입니다.
손주를 원하던 저희 할머니께서도 하신 말씀이셨습니다.
저는 신학교에 입학하면서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결혼과 부모가 되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또한 경제적 안정감을 줄 직업, 독립적이고 마음 가는 대로 결정할 수 있는 직업을 거부했습니다.
사람들은 제게 왜 사제가 되었는지 자주 묻습니다.
어떻게 그리고 왜 하느님께 약속하게 되었는지도요.
아마 여러분도 같은 질문을 하고 싶으실 거에요.
아마도 그것을 완전하게 전부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저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저 이외에도 수천명에게도 하신 이 말씀이 항상 제 마음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이 주님의 특별하고 과분한 은총을 받을 자격이 없는 인간에게 하늘이 보낸 부르심이었습니다.
신학교 시절 저의 영적지도자는 저에게 사제는 그 무엇보다도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이 이것을 가능케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분께 완전히 위탁하며 신뢰하는 겁니다.
하느님의 백성은 사제들을 신뢰하고 싶어 합니다. 왜냐하면 사제는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부르심을 받고 스스로가 창조하지 않은 사명을 위해 특별히 선택되었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만찬에서 당신의 첫 사제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는데, 이 말씀이 우리가 사는 오늘날에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잠시 인용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뽑으시어 저에게 주신 이 사람들에게 저는 아버지의 이름을 드러냈
이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이었는데 저에게
저는 이들을 위하여 빕니다. 세상을 위하여가 아니라
이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세상은 이들을 미워했습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을 진리로 거룩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그리고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이들도 진리로 거룩하게
이것은 엄청나게 힘이 있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뢰를 받아 겸손한 존재로서 저는 더욱 신뢰를 통해 말씀드립니다.
사제직은 직업이 아닙니다. 사제직은 평안한 생계를 제공하기 위함도 아니고 제가 이룬 그 어떤 업적에 대한 보상도 아닙니다. 그것은 봉사입니다,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그것은 하느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며 전체 교회를 위해 기도를 드리는 일입니다.
남의 발을 씻겨 주는 데에 일생을 바침이요, 교구신자들의 일상 걱정에 관여하고 저를 필요로 할 때 도와주며, 그들이 고통 받을 때 함께 고통 받고 기쁠 때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변화는 인간의 본성의 일부이며, 또한 제 사제생활의 일부이자 핵심이 되었습니다.
저는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사람들과 동행하시는 하느님을 알려주며,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닌 오직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삶을 살도록 제안합니다.
우리는 함께 모여 사람들의 삶 가운데 계신 주님의 손길을 찬양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랑으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하느님아버지의 뜻과 마음을 알고 함께 나누는 은총의 삶을 이해하고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는 데에 도움이 되길 원합니다.
하느님의 사제로서 저는 갓난아이가 인간의 원죄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씻겨져 새롭게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날 때 그 순간에 집중하며 함께합니다.
그 외에 아이들이 첫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경험하고 첫영성체를 통해 하늘의 빵에 충만해질 때에도 청년들이 견진성사를 부부가 혼인성사를 통해 약속할 때에도 노인이나 병자들이 마지막 성사를 통해....함께합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사람들이 당신과의 거리를 줄이고 가까이 오도록 이끄시고 계십니다.
그 외의 시간에 저는 거룩한 미사를 매일 봉헌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고 노숙자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합니다.
또한 고민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애쓰는 이들에게 위로를 아픈 이들을 방문하고 이민자들에게 희망과 관심을 줍니다.
정의와 평화를 증진하고 모든 이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사제직은 언제나 특권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오직 섬김과 봉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느님과 인간이 한 그릇에 담겨있기 때문에 제 사제직은 이 세상에서 저를 양심의 포로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종종 태어나기 전에 하느님 앞에서의 나는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해 합니다.
인간이 만든 사랑이 부족한 이 세상에서는 이것을 잊거나 무시하기가 쉽습니다.
영적인 삶은 제가 배워야했던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였습니다.
저는 제가 부르심을 받은 큰 기준을 입증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상당한 사람들이 사제에게 주는 신뢰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두려움 때문에 여러 차례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실패의 두려움, 잘못된 말을 하는 두려움,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상황이나 어려움을 대하지 못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이렇게 깊이 생각하고 사색하는 마음이 인간이 만든 세계에 가장 큰 위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버지가 아닌 완전히 다른 것들에 집중하고 주의를 기울이게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내가 40년 동안 헌신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나의 개인적인 이유는 무엇이었나,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 무엇보다도 어떻게 나에게 하느님의 인내의 은총이 주어졌을까, 그 여정에 함께하며 나를 도와주고 이끌어 주는 분은 누구실까, 그리고 나는 왜 이러한 약속을 오랫동안 지켜왔을까,
헌신을 포기하는 생각도 들었었지만, 그 생각이 어떻게 나에게 들어왔을까.
그것은 단순한 유혹이었나, 아니면 한번 한 약속에 내 스스로를 더 열렬히 다시 아버지게 위탁할 수 있는 기회였을까
본인만의 게쎄마니 동산이 없는 사제는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우리 사제들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고 주님을 섬긴다는 생각으로 버티지 못한다면 선을 베푸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통찰력에 대해 제 과거의 기억들이 어두움과 불행함을 발견하는 원천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배에 올라 깊은 곳으로 나아가는 이 순간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인류역사의 마지막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하느님아버지의 은총의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니다.
모든 사제는 항상 자신의 이름이 무엇이든지 Alta Christi 또 다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사제는 그 어떠한 나라도 대학도 기업도 줄 수 없는 오직 사제만이 줄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일반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대리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미국 남부 조지아의 많은 외부에서 가난한 선교 임무를 맡았었습니다.
배관공, 전기기술자, 건설노동자가 되기도, 때로는 너무 많은 일에 사로잡혀 기도하는 것을 잊을 때도 있었습니다.
나에게 영성체가 필요하다는 사실, 고해성사를 받아 주어야 한다는 사실, 그리스도의 몸과 함께 하는 조용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적도 있었습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은 아버지께서 제게 선물해 주신 은총입니다.
거짓 자아, 인간이 만든 자아를 버리고 우리 안에 있는 영원한 선물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나의 거짓 자아를 죽게 내버려두어야 지금 그분의 임재를 경험하고 천국을 엿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dd은 사제인 저에게 너무나 큰 축복입니다. 저의 창조주와의 의식적인 집중입니다.
저는 오직 사랑을 향해서만 진화하며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있습니다.
저는 하느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에 매일 저의 삶을 돌아봅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내맡김 영성이 주는 축복 중 하나입니다.
나를 내맡긴다는 것, 저의 삶은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고 모든 생명은 오직 하느님 아버지만의 소유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 그것이 전부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느끼지 못한다면 창조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은 나의 에고, 자아를 바라보는 등불입니다.
저는 하느님께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