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자연학교 중고등부의 네 가지 핵심 교육 목표
1) 성경적 세계관 확립
2) 인문 고전 독서를 통한 지성의 함양
3) 진화론 대신 창조과학에 입문하기
4) 학창시절에 영어 끝내기
<창조과학>
우리 학교 중고등부의 핵심 교육 목표 중 세 번째 ‘창조과학 입문’에 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보통 ‘과학’이라고 하면 ‘국영수사과음미체’라는 교과목 중의 ‘과학’ 교과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사실 ‘과학’이라는 것은 교과로서의 과학을 넘어서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계몽주의 이후로 ‘과학’은 ‘신’의 자리를 대체하는 ‘진리’의 의미로 근현대 사회를 지배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것을 ‘과학적’이라고 하면 그것은 곧 ‘사실’이며 ‘법칙’이고, 따라서 ‘진리’이다, 라고 믿게 됩니다.
요즘은 모든 영역에서 ‘과학적’이어야만 사람들이 신뢰하고 실천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여름에서 가을까지 열심히 해온 ‘맨발걷기’라는 것이 있는데, 이 역시 그 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제창했지만 열풍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하던 것이 근래들어 ‘전기’ 실험을 통해 그 효과가 ‘입증’됨으로 해서 많은 사람들이 실천하게 된 건강법이 되었습니다.
과학 때문에 인류가 받아 누린 혜택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과학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잃어버린 것도 많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하나님입니다. 현대 물리학은 오히려 과학이 신의 자리를 반증해주는 이론이 되기도 합니다만, 일반적으로 과학은 하나님을 이 세상으로부터 몰아냅니다. 특히 진화론을 과학으로 믿게 되면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미 오래 전부터 과학을 비롯한 모든 교과서 - 세계사를 포함하여 - 는 진화론을 ‘과학적’인 이론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이들이 과학을 많이 공부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습니다. 특별한 사회적 이슈가 없는 이상 과학으로 인해 하나님을 부정하게 된 현상을 굳이 거론할 일도 없습니다. 과학이란 것이 우리 일상 깊이 들어와 있을 뿐 아니라 우리의 생각 깊은 곳까지도 지배하고 있기에 하나님을 ‘실재’하는 존재로 여기는 것 자체가 넌센스가 되어버린 시대입니다. 교회를 다니며 스스로를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저는 이 글에서 창조냐 진화냐를 논리적으로 기술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 크리스천이 ‘과학’의 이름으로 퍼져있는 진화론적 세계관을 극복하지 못하면, 지금 당장 우리 세대는 창조를 믿는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나 머지 않은 미래에 창조를 전혀 믿지 않는 크리스천들이 대거 등장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창조를 비과학적 신화라고 믿는 크리스천(?)들 말입니다. 조금 더 지나면 이런 창조를 믿지 않는 크리스천조차 사라질 것이며 그 속도는 매우 빨라질 것입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과학과 종교는 다른 영역이기 때문에 과학은 과학자들에게 맡기고 종교는 마음과 영혼의 문제를 다루니까 그 두 가지 영역을 분리해서 사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종교학에서도 종교현상학이라는 분야는 종교 자체의 옮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사람들이 무언가 초월적인 것은 믿는 현상이 있다, 라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논쟁하지 않고도 종교와 과학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진리는 이런 식으로 논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창조를 믿는 우리들은 창조를 ‘믿는’ 믿음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 곧 사실이며 법칙인 진리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맹신이요 맹목이라고 치부할지 모르지만, 진리는 절대로 이원론의 한쪽 편에 존재할 수 없는 무엇입니다.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할 깊은 주제들을 조금 뒤로 하고, 우리 아이들의 청소년기 시기에 창조라는 진리를 가르치고 알게 해야 한다는 대 전제 앞에서 이야기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반적인 의미의 과학, 다시 말해 검인정 과학 ‘교과서’를 통해 청소년기 시기의 6년, 초등까지 합친다면 12년간의 과학 공부를 통해 우리 아이들이 깨닫게 되는 중요한 진리는 바로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교과서뿐 아니라 대다수의 과학책들은 진화론의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세계사와 같은 역사 책조차도 인류학이라는 학문에 근거하여 인류의 기원을 유인원에서 진화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설명을 시작합니다.
저는 이른바 공부를 참 잘했던 학생에 속했는데, 과학과 역사를 열심히 공부한 결과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저는 철저하게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비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 시기에, 아니 청소년 시기까지 우리 아이들에게 이 세계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작품이며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피조물이라는 것을 반드시 알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이 시기에 ‘지식’으로 들어온 진화론, 과학의 이름으로 소개된 진화론은 우리 아이들로 하여금 내가 우연히 진화하여 생겨난 존재이며 하나님은 있으면 좋겠지만 존재할 수 없는 가상의 무엇이라고 ‘믿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이 ‘창조’를 진리로 믿을 수 있게 될까요? 창조과학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대목입니다.
창조과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가, 청소년기 시기에 왜 창조과학이 필요한가를 논하기 전에 먼저 우리 아이들이 ‘창조’와 만나야 합니다. 창조를 믿기 위해서 창조와 만나야 한다니, 동어반복 같지만 이것은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아이들에게 창조가 진리라는 것을 ‘말’하기 전에 창조된 세계와의 만남이 먼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학교에서 유아기부터 초등 저학년까지 자연 속에서 놀기도 하고 탐구 관찰을 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무슨 무슨 이론을 들먹이기 전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 그 자체를 아이들이 만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이 뭔지도 모르고, 그에 대한 아무런 감흥도, 누린 것도, 깊이 관찰하고 깨달은 것도 없는데, 나중에 청소년기에 이르러 진화론이 틀렸고 창조론이 맞다 어쩐다 하는 논쟁은 사실 거의 무의미하고 가치가 없습니다.
먼저 우리 아이들에게 유년기 시절까지 충분한 창조의 세계를 누리는 절대적인 시간을 마련해주어야 합니다. 충분한 자연과의 만남을 열어주는 것이 훗날 이렇게 아름답고 풍성하게 누리고 채워준 자연이 하나님의 작품이요 창조된 피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창조과학은 이처럼 창조의 세계를 충분히 누린 다음에 그 맨 마지막의 과정에서 화룡점정처럼 놓여져야 하고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둘째로 중요한 과정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경험입니다. 지지난 글에서 영적인 조기교육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물론 영적 조기교육을 한다고 해서 아이들이 그 취지에 맞게 그 시기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간절한 마음,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잘 소개하고 우리의 삶을 통해 아이들이 하나님에 대해 마음을 열고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어야 합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만이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고백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교회를 다녀도 말로는 창조주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 하고 우리도 죽으면 천국에 간다, 라고 앵무새처럼 교리를 읊어대지만 실제로는 아무 것도 믿지 않는 것이고, 아무 것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만나 보면, 하나님이 아, 정말 이 세상 전부를 만드셨겠구나, 하는 것이 깨달아집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이 보이는 물질 세계 전체를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운행하고 계시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지식으로나 과학으로 증명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분유받은 영적인 존재라는 이유 때문에만 경험할 수 있는 영적 체험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성령 하나님, 영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시간, 곧 어제와 오늘, 내일을 초월하여 존재하며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존재하셨던 예수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고 영원토록 함께 계시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영이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창조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영, 성령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온몸으로 체감한 사람의, 진리의 영에 대한 탄성으로서의 시인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창조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저절로 터져나오는 고백입니다. 창조과학은 이러한 고백에 대한 ‘과학적’ 언어로서의 기술(description)일 뿐입니다.
종종 창조과학자들이 진화론자들에 비해 뭔가 논리가 부족해 보이는 장면이 있는데, 창조과학자들의 논리의 막힘은, 그래서 창조론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적 차원과 물질적 차원의 괴리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어마어마한 영적인 차원을 아직, 이 땅의 과학적 언어로 설명하거나 논증하지 못한 것뿐이지 앞으로는 창조과학의 영역이 - 저는 소망합니다 - 우리 아이들을 통해 최첨단 과학이론과 만나서 더욱 확장되고 견고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린 시절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풍성하게 만나도록 해주고, 아이들이 어린 시절에 영이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돕는 일이 창조과학을 어떻게 배우는가보다 중요한 선행과제입니다.
저는 종종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세계적인 창조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자연을 직접 관찰하고 배우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우리 아이들 중에 창조과학자로 키우고 싶은 아이도 있기 때문에 저는 사명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해줍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기가 막힌 자연을 쳐다보지도 않고 느껴보지도 않은 사람이 무슨 수로 그 창조의 신묘막측한 비밀을 풀어낼 수 있겠습니까.
이제 마지막으로 위와 같이 충분한 만남, 자연과 하나님과의 만남의 전제 위에 청소년기 시기에는 창조과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이 땅의 모든 교과서는 진화론이 진리인 것으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에 대해 진화론이 얼마나 잘못된 전제 위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자체적으로 모순이 많은지를 ‘공부’해야 합니다. 아울러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이 신화나 신앙의 차원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과학’적이라는 사실도 알게 해주어야 합니다.
창조과학을 공부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우선은 ‘책’을 통한 공부입니다. 우리 학교에서 5학년부터 사용하고 있는 과학 교재는 창조과학의 관점에서 쓰인 책들입니다. [식물학], [동물학], [생물학], [천문학], [자연과학], [일반과학] 등의 창조과학적 관점에서 쓰인 교재들을 아이들이 공부해야 합니다. 일반 과학 교과서와는 달리 아이들이 한 장 한 장을 넘어가면서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저절로 눈을 뜨게 됩니다.
그리고 아직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창조과학의 관점에서 쓰인 여러 저서들이 있습니다. 미국 창조과학연구소에서 나온 [창조과학백과], [창조과학백과 공룡]이라든가 이재만 선교사의 [창조과학 콘서트], [노아홍수 콘서트], [빙하시대 이야기], [창조주 하나님]과 같은 책들도 청소년기 시기에 꼭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책들을 ‘읽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됩니다. 이 교재들에는 수많은 탐구와 실험과제들이 나오는데, 이런 과제들을 실제로 해보면서 하나님의 창조하신 자연의 ‘법칙’을 몸소 느끼며 배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실험과 더불어 중요한 것이 ‘답사’입니다. 지질 탐사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가까이는 영월 태백 지역은 화석이 많이 발견되는 이른바 ‘고생대’ 지형인데, 우리는 이에 대해 진화론적 관점이 아닌 창조과학의 관점을 가지고 답사를 해볼 수 있습니다. 멀리는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 같은 곳을 답사하기도 합니다. 노아 홍수의 증거로 제시되는 광활한 퇴적지형을 답사하는 것은 우리 아이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에 대한 경이로움과 더불어 하나님이 실제로 자연 세계에서도 살아 역사하시는 분임을 깨닫게 할 수 있는 중요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책을 읽고 실험과 답사를 하면서 창조에 대한 확고한 관점, 성경에 기초한 세계관을 갖도록 하면서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것이 우리 세계에 만연해 있는 진화론적 세계관을 찾아내고 분별하며 비판하는 작업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을 들어가고자 하는 아이들은 반드시 검인정 교과서를 공부해야 합니다. 이때 우리 학교는 앞선 글에서도 말씀드린 대로 거꾸로 공부법을 통해 일과시간에는 살아있는 책을 배우고 자신이 선택한 진학을 위한 자기 학습 시간에는 ‘시험’을 위해 일반 교과서를 공부합니다.
과학 공부에 있어서도 이처럼 주종을 분명히 함으로써 아이들이 본질과 진리의 편에 서서 진화론적 관점을 정확히 알되 비판적으로 사유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진화론은 말 그대로 하나의 ‘이론’이며 과학적 진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현재까지의 과학으로는 다 밝혀낼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이 많습니다.
청소년기까지의 시기 동안에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의 세계, 자연 그 자체를 많이 체험하고 누리도록 돕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고백하게 하며, 그 믿음의 고백에 바탕을 두고, 물질들끼리의 우연한 작용들로 모든 생명의 과정을 설명하는 진화론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에 대한 창조론적 관점을 세우도록 도와야 합니다.
진화론적 연구의 업적에 비해 창조과학의 업적은 그 분량에 있어서 극히 미미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아이들 중에서 세계적인 창조과학자가 나오길 기도합니다. 양자 역학과 같은 첨단 과학 이론이나 뇌과학과 같은 과학의 첨단 분야에서는 더 이상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자리에 ‘신’의 영역을 자연스레 가정하고 있기도 합니다. 진화론은 기껏해야 3차원적인 설명인데, 이미 과학은 4차원을 넘어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차원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 중에서 탁월한 수학 및 과학자가 나와서 진화론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면 좋겠습니다.
어려서부터 자연 속에서 감탄하고 탐구하며 자라난 아이들 중에서 저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당신을 드러내고 증거할 다음 세대의 과학자들을 준비하고 계실 거라고 믿습니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과학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기독학교 아이들은 창조과학을 접하고 이에 대해 눈을 떠야 합니다. 청소년기 시기에 확립된 창조에 대한 확고한 관점은 일평생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놓지 않는 중요한 도구가 되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