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안>
제목: 나사렛 예수의 삶과 꿈
일자: 2023년 7월 2일 주일
[로마서 1:3~4]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설교의 목적:
이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개를 목적으로 한다. 신약성경이 소개하는 예수님은 어떤 분인지 알아보려는 것이다. 우선 예수님이 태어나 사시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고 그 안에서 예수님은 무엇을 계획하시고 소망하셨는지를 그의 행적과 가르침을 통해서 살펴보려는 것이다.
다음 주 설교에서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이 예수님을 새롭게 깨닫고 경배하고 따른 대목을 살펴볼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나는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좀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설교 개요
1. 예수님은 무엇을 보셨을까?
2. 예수님은 무엇을 꿈꾸셨을까?
3.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할 예수님
1. 예수님은 무엇을 보셨을까?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 그를 이해하려고 할 때 우리는 그가 어디 출신이며 그의 나이가 얼마인지 알아봅니다. 언제 어디에서 나고 자랐는지를 아는 것은 어떤 사람에 대하여 이해할 때 가장 기초적인 정보입니다. 예를 들면, 박빙의 선거에서 어떤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우리는 텔레비전을 통해서 그 사람에 대하여 좀더 알려주는 방송을 봅니다. 그때 가장 먼저 듣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 사람의 고향과 성장 과정에 대한 스토리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믿고 고백합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을 소개하기를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서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며 본체의 형상이시라고 소개됩니다(히 1:3). 요한복음에서 도마는 예수님을 가리켜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요 20:28)라고 고백했습니다.
성경이 들려주는 예수님에 대한 소개는 위와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이 사시던 시대와 환경을 살펴보면서 예수님이 무엇을 보셨고 어떤 말씀을 하셨으며 어떤 행동을 하셨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예수님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장 과정에서 무엇을 보셨으며 어떤 일을 경험하셨을까요?
사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탄생과 행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저는 예수님이 사시던 시대는 어떤 세상이었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우선 예수님이 태어나 사시던 시대는 로마 황제가 세상을 다스리던 시절입니다. 로마 제국은 유대와 시리아는 물론 이집트와 지중해 일대를 전부 점령하고 식민통치를 했습니다. 식민통치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말입니다. 우리나라도 일본에게 35년간 나라를 빼앗기고 수탈을 당했습니다. 점령군들은 식민지를 자기 텃밭 정도로 생각하고 세금을 거두어 가고 사람들에게 부역을 시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짐을 지우고 억지로 오리를 걸어가게 시켰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하겠습니까? 아마 삶도 궁핍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시던 시절에 로마의 통치자들은 철권으로 식민지를 다스렸습니다. 반역자에게는 엄혹했는데 그 증거가 십자가형입니다. 십자가형은 대부분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을 따라 세워졌으며 그렇게 해서 사람들에게 겁을 주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약한 사람들이 억눌리고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잡혀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죽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메시지 중에는 유대인 지도층에 대한 책망도 적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유대 지도자들이 위선과 가식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지 않게 사는 것을 보셨음을 의미합니다. 그 결과 많은 백성들이 갈 길을 잃은 양처럼 방황하고 있다고 예수님은 그 시대를 이해하셨습니다.
아마 예수님은 배고픔도 아실 것입니다. 들판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기적을 행하셨을 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시면서 예수님은 가난에 허덕이는 민중을 가엾게 여기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시던 시절은 결코 풍요롭지 않은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사는 지금은 예수님의 시대와는 매우 많이 다른 것 같지만 비슷한 점도 많습니다. 세계대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전장에서 죽은 것이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이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잡아서 총으로 죽이고 매장한 사건들이 우리나라 곳곳에서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사시던 시절에 거리에 줄지어 서 있는 십자가 형틀에 달린 시신들을 보셨을 때 얼마나 참혹했을까요? 마찬가지로 전쟁의 참화 속에서 짐승처럼 죽어간 사람들의 비극이 이 땅의 곳곳에 흔적으로 발견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정치 지도자들의 은밀한 세계를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어떤 날에는 그들이 국회에서 언쟁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때도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영화로 제작되어 온 천하에 공개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하신 꾸짖음의 말씀은 우리 시대에도 유효할 것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마태복음 23:27~28
성경을 바탕으로 예수님이 사시던 시절을 대략적으로 되돌아볼 때 그 시절은 그다지 좋은 세상이 아닙니다. 압제와 착취가 있고 사람의 생명이 가볍게 여겨집니다. 백성들은 궁핍하고 지도자들은 자신의 안위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곳은 결코 가서 살고 싶은 시대도 아니며 동네도 아닙니다. 예루살렘이든 베들레헴이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시대는 암울하고 환경은 척박합니다. 바로 그런 세상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살았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예수님은 무엇을 꿈꾸시고 무엇을 소망하셨을까요?
2. 예수님은 무엇을 꿈꾸셨을까?
사방으로 암울한 시대와 환경 속에서 예수님은 무엇을 꿈꾸셨을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지 중에 가장 첫번째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열어 주시는 새로운 세상이 가까이 왔다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이전에 살던 낡은 삶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라는 촉구이자 격려였습니다.
환경은 암울해도 여전히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돌보시고 주관하신다는 것을 예수님은 굳게 믿으셨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가르침을 통해 사람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격려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자상하고 세밀하게 우리를 돌보시는지를 백성들에게 일깨워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시의 사회도 아시고 시대의 상황도 다 보셨지만 이 모든 것 위에 하늘의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믿음으로 사셨음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당시에 이 세상을 다스리는 권력자들을 보셨습니다. 그들은 갈릴리 지방을 다스리던 헤롯과 유대 지방을 다스리던 빌라도 총독입니다. 헤롯은 정통 유대인이 아니었지만 로마 황제와 연줄이 닿아서 갈릴리 지방을 통치하는 왕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빌라도는 로마 황제가 임명한 지방관리입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우리나라를 통치하던 이또오 히로부미도 총독이었으니 빌라도는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예수께서는 권력자들이 얼마나 교활한지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 잘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모든 권세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사셨으므로 이 세상의 권세자들을 부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헤롯에 대하여 여우라고 빗대어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 때에 몇몇 바리새파 사람이 다가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여기에서 떠나가십시오. 헤롯이 당신을 죽이려고 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 말을 전하여라.
‘보아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칠 것이요,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끝낸다.’”
누가복음 13:31~32, 표준새번역성경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로마 제국의 통치 아래서 신음하는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애국열사단을 조직하여 로마로부터 나라를 되찾아 오는 독립운동을 전개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곁에는 열심당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말이나 선동에 휘둘리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그 열심당원들을 감화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사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곧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의 회복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후에 성전건축을 위한 모금을 한 것 같지 않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들도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야말로 하나님이 거하실 진정한 성전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들어가는 천당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열어 주시는 새로운 세상이며,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그 세상은 정치지도자들의 권력에 힘입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또한 부패한 예루살렘 성전과 그 지도자들에 기대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신실한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를 통해서 이 땅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헤롯왕을 향하여는 여우라고 비유하셨고 빌라도 총독에게는 주님의 나라는 이 세상 권력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8:36).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진리로 믿고 받아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예수님의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수고했습니다. 즉,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예수님을 본받고자 노력한 사람들 중에는 정치권에서 일하면서 나라를 새롭게 하여 백성을 구하기도 했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일깨워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으로써 사회의 변화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정치세력에 의지하여 세상을 바꾼 것이 아니라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충실할 때마다 그 결과로 세상이 변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할 예수님
저는 오늘 설교를 위해서 지난 수요일 밤에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 시간에 예수님을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사시던 시대와 오늘 우리의 시대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제 결론은 그 두 시대가 비록 시간적으로는 2천년이나 떨어져 있지만 그 본질에 있어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에도 압제와 착취가 있었고 그 시대에도 집단학살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시대에도 약자들의 억울한 한숨이 하늘로 올라갔으며 재력을 얻기 위해서 권력자들과 결탁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그것은 오늘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들려오는 이런 뉴스를 들으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때로는 분노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좌절과 절망감이 마음을 짓누릅니다. 전쟁이 일어났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라가 어지러운데 어찌 할 도리가 없는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필요한데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같아 기도하며 기다릴 뿐입니다. 많은 일들이 저의 의지와는 별도로 일어나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질문이 당연히 마음 속에서 일어납니다. 그때 예수님을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힘든 시절을 사셨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사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세상에서 무엇을 꿈꾸시고 무엇을 소망하셨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결론이 오늘의 이 설교입니다.
저는 오늘 금요일 새벽에 꿈을 꾸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두통에 시달려 잠이 들었는데 꿈 속에서 한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바로 옆에 있는 큰 교회의 담임목사로 청빙되어 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교회는 정말 크고 넓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세히 보니 그 교회는 곳곳이 낡고 허물어지고 당장 수리해야 할 곳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은 옷을 잘 차려 입고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주일예배를 드리러 모여들었습니다.
교회의 장로님들이 저를 맞이하러 나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정장을 차려 입지도 않은 채 와이셔츠 바람으로 교회로 가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바짓가랑이는 접혀 있었습니다. 어디에서 일하다가 온 사람처럼 말입니다. 저는 얼른 바짓가랑이를 펼치고 교회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앞에 섰습니다. 인사도 했습니다. 이제 저는 그 사람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바로 그때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저는 꿈에서 깨어나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니, 그 꿈은 마치 저를 깨우치기 위하여 주님이 주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동시에 깨달음이 왔습니다. 설교의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 것 같았습니다. 제가 꿈에 본 모습은 거짓과 위선과 착각 위에 세워진 예루살렘 성전 앞에 서신 예수님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오늘 약해져 가는 교회의 모습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착각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깨달음이 밀려왔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에 수고하여 그래도 이만큼 세워놓았다고 자부하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진실을 마주하고 팔을 걷어 부치고 무너진 곳을 수리하며 가파른 계단을 보수해야 한다는 생각이 꿈을 통해서 제 마음에 밀려왔습니다.
무너진 곳이 무엇이며 가파른 계단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저에게 그것은 우리 교회의 건물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반듯이 서 있어야 할 신앙의 집을 의미합니다. 가파른 계단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오는 것을 주저하게 하는 우리의 성급하고 왜곡된 생각이나 언행입니다. 예수님을 닮아 진실되고 너그러운 말과 행동을 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부족하다면 그것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를 세우는 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도들의 글을 보면 그 핵심이 분명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무슨 계획을 가지고 이 세상을 경영하시며 우리를 부르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말한 ‘하나님의 경륜’이며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을 세울 때는 먼저 하나님의 뜻인 하나님의 경륜을 가르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세상이 흔들리고 군왕들이 헛된 일을 도모한다고 할지라도 결국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고야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그 뜻에 자신을 바쳐야 할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금방 현실이라는 풍랑에 휩쓸리고 말 것입니다. 어떤 비바람이 불어도 꿈쩍 하지 않는 바위처럼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굳은 믿음만이 우리를 든든히 세우게 하는 반석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나의 삶과 언행이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주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할 선한 행실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모범입니다. 예수께서는 교회를 향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말씀하셨고 사도들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편지나 향기 또는 택하신 백성과 제사장이라고 일깨워 주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 이 세상에서 어떤 행실과 언사를 나타내 보이고 있는지를 돌아보자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는 정치권력이나 금력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는 사람들의 무리에 의존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그 뜻을 올바로 깨달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본받아 살아가는 순종과 실천 공동체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힘써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이 두 가지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함께 모이기를 힘쓰고 서로를 권면하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우리 교회가 나아갈 길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열어 주시는 미래를 맞이하는 방법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이 소개하는 예수님의 이야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