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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대한민국 장애인 문학상 우수상 수상작품
환생의 새벽 변 삼 학
비포장도로로 들어서자 빗발은 점점 거세진다. 헤드라이트 빛에 담겼다 쏟아지는 나뭇가지들은 기름에 젖은 듯 번들거린다. 몇 년 동안 다니던 길이 젖은 밤길 탓인지 전혀 생소한 길을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날 밤도 노드리듯 내리는 폭우가 천둥을 동반하고 쏟아졌었다. 천둥소리에 잠이 깨어 화장실로 가던 나는 그만 기겁을 했다. 10촉짜리 불그레한 조명 아래 붉은 수곰을 연상케 하는 한 물체가 둘째 내외의 신혼방문 앞에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벌거숭이 물체는 두 다리를 뻗고 앉아 양손을 사타구니에 찌르고 거친 숨소리까지 내고 있었다. 폭우 소리가 없었다면 신혼 방은 공포에 떨었을지도 모를 일었다. 순간 나는 한 손으로 녀석의 입을 틀어막고 한 손으로 목을 잡아 감고 화장실로 끌고 들어갔다. 녀석의 두 손바닥에는 끈적한 액체가 질퍽했다. 녀석을 씻기며 나는 자신을 질책했다. 비록 정신연령이 겨우 10세를 밑돌지만, 신체적으로는 무르익은 청년이 아니던가.
녀석에게는 이미 신체적인 사춘기가 왔던 것이다. 그날 밤부터 나는 잠자리를 녀석의 방으로 옮겼다. 비록 이목구비가 반듯하지 않은 모습이지만 잠든 녀석의 모습은 별로 빠진 데는 없어 보였다.
잠자리를 같이 하고 보니 녀석에 대한 가여움이 더 큰 아림으로 솟구쳤다.
한때 녀석을 시설에 맡겼었다. 시설에서 나이가 넘쳤으니 데려가라고 했을 때 나는 정말 데려오고 싶지 않았다. 결국 아내가 데려왔지만, 녀석은 말이 느리고 좀 더듬거리지만 그때그때의 의사소통은 그런 대로하는 편이다. 둘째 내외를 딴살림 내보내고 녀석의 인연을 맞추어 주려고 애써 보았다. 걸맞은 상대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빗줄기는 더욱 강해져 고속 와이퍼 놀림도 소용이 없다. 점점 시야가 뿌옇게만 보인다. 길바닥은 길이라기보다 숫제 흙탕 물줄기를 이룬 봇도랑이다. 자동차는 몇 미터 못 가서 봇도랑 물에 복병처럼 숨은 돌부리에 걸렸다. 또한 고르지 못한 노면에 빠져, 차를 몰기가 여간 어렵지가 않았다.
일본을 거치고 있는 태풍이 우리나라 쪽으로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까지 듣고 잠자리에든지 얼마나 되었을까 울어대는 벨소리에 비몽사몽간에 송화기를 들었다. 그녀의 다급한 목소리가 잠자든 고막을 휘둘렀다. 녀석의 사고 소식이었다.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험한 밤길을 나는 가고 있다.
녀석의 욕구가 점점 구체화 되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직장 일로 늦게 퇴근하고 돌아와 안방 문을 열었을 때, 상상할 수 없는 장면에 나는 그만 온 몸의 신경 세포가 마비되는 듯 아연 질색한 순간에 녀석을 잡아 일으켜 사정없이 후려쳤다. 끓어오르는 화를 도저히 누를 수가 없었다. 베란다로 나온 나는 아내가 가장 아끼는 화분들을 뜰에다 집어던졌다. 화분들이 깨어지는 소리에 분노를 삭이며 마구 던졌다. 던지다보니 앞, 뒷집에서 창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늦은 밤에 이웃들이 놀라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언제 어떻게 마을 골목을 벗어났는지 기억도 없이 나는 4차선 대로변을 걸어가고 있었다. 주변에 음식점들이 문을 닫은 상태라 나는 평소 잘 이용하지 않던 포장마차에 들어가 술을 시켰다. 말간 술잔 속에 녀석의 몸부림이 비쳤다. 눈을 감고 술을 들이켰다. 다시 따른 술잔에 아내의 허연 젖가슴이 떠 있었다. 마시고 붓는 술잔마다 제 어미의 젖을 빨고 있는 녀석의 모습이 어지럽게 떠다녔다.
“아줌마 여기 국물 좀 더 주시오.”
옆자리 사내의 말에 주인 여자는 국물을 떠주며 눈길을 흘긴다.
“아따 서씨 안주 하나 시키시오잉 저녁내 꼬치 한 가락으로 끝낼 참인게벼.”
그러면서 여자는 시키지도 않은 내게까지 국물을 떠주었다.
내 앞에는 손도 대지 않은 서너 접시의 안주가 그대로 놓여있었다. 안주는 뭘 하겠냐는 물음에 그냥 알아서 달라고 하자, 닭갈비, 꼼장어, 삶은 오징어 등등이 주어졌다. 안주를 시켜먹지 않는다고 눈총 받는 옆 사내에게 안주 접시들을 밀어주었다. 마시다보니 내 주량인 소주 반병이 넘었다. 평소 같으면 식도에서 매스꺼운 거부감이 있어야 하는데도 그날은 술이 맹물처럼 목을 통과했다. 술병을 비우고 일어서려는데,
“노형! 안주도 남았는데 한잔 더 하는 게 어떻소?”
사내가 내 빈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나는 더 마시고 싶지 않았다.
“전 지금 좀 과음한 편이라서......”
“얼굴 보니 멀쩡한데 그리십니까? 기왕에 따라 놓은 술이니 드시오.”
나는 사내 말대로 기왕에 따라 놓은 술만 마시고 나왔다.
소주 한 병을 더 마시고도 이렇게 정신이 말짱해보기는 처음이었다. 깊은 밤거리를 걷는 내 눈앞에는, 여전히 안방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눈앞을 내내 가로질렀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녀석의 방에도 안방에도 들고 싶지 않았다. 옷을 입은 채 거실 소파에 누었다. 아내는 모포를 덮어주며 무안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녀석이 요즘 와서 부쩍 보채며 안 하던 짓을...”
나는 아내의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보기도 싫었다. 소름이 돋고 추하게만 느껴졌다. 대도록 나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입을 다물었다. 한데 계속 이어지는 아내의 말에 나는 그만 소리를 버럭 지르고 말았다.
“그렇다고 녀석을 밀어내지 못하고 다 큰자식한테 가슴을 내주어?”
내 고함소리에 흠칫 놀라 뒷걸음질을 치던 아내는 기어드는 목소리로.
“녀석의 힘이 어지간해야지...”
물론 녀석의 힘을 아내가 감당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왠지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다. 아내는 늘 녀석이 가여워 모질게 다루지 못한 탓으로만 생각되었다.
소파에서 잠을 자다 갈증에 눈을 떴을 때, 새벽녘이었다. 가슴이 서늘하도록 냉수를 들이 마시고 나니 가슴 한구석이 핑 뚫리는 듯 노기의 배기가스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가슴 한 편이 조금씩 비어들자 갑자기 아내와 녀석이 가엽다는 생각이 와락 들었다. ‘왜 나는 못난 생각만 하는 것일까? 녀석이 욕구의 불만으로 어미에게 투정을 좀 심하게 부렸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어째서? 추한 생각만을 했단 말인가?’ 내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녀석의 방으로 들어갔다. 잠든 녀석의 얼굴을 본 나는 내 가슴을 피멍이 들도록 두들겨 주고 싶었다. 녀석의 얼굴엔 피멍이 들어 있었고, 턱 주변이 퉁퉁 부어 있었다.
거센 바람소리와 함께 휘몰아치는 빗줄기는 그칠 줄 모른다. 깊은 밤 망망대해에 표류된 느낌이다. 한여름 내내 볶던 가뭄이 녀석의 사고를 불렀다. 유난히 더위를 타는 녀석은 밤마다 어두운 개울로 멱 감으러 다니다가 언덕에서 굴렀다는 것이다. 화덕 같은 불볕더위가 물러가며 태풍을 벗 삼아 한꺼번에 휘몰아치는 궂은 밤, 주위의 수목들이 검은 사자 복을 입은 듯 번갯불이 비칠 때마다 하얀 저승사자의 얼굴로 비쳤다. 이렇게 거친 심심 오지를 다니게 된 것은 녀석과 인연이 된 기연이 그녀 때문이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녀석의 짝을 찾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던가. 우연히 그 털보사내를 만나게 된 것이 그녀와 인연이 되었다.
퇴근길에 아구탕집에서 한 잔하고 있을 때, 한 사내가 다가서며 말을 걸었다.
“노형! 여기서 또 만났구려. 전 번에 푸짐한 안주 잘 먹었소이다.”
사내는 녀석이 어미에게 심한 투정을 부리던 날 포장마차에서 같이 술을 마시던 사내였다. 사내는 손을 썩썩 비비며 내게 양해도 없이 내 테이블에 마주앉았다.
“첫 추위 치고는 고약하구려. 순천 댁 마차에는 초저녁부터 손님이 만원이라 이리로 온 것이 잘 온 것 같소. 노형을 만났으니.”
사내는 앉자마자 전날과는 달리 기세 좋게 동태매운탕과 술을 시켰다. 내가 먼저 따라주는 술을 달게 한숨에 마셨다. 내가 먼저 시켜놓고 먹든 아구찜을 사내는 입안이 비좁도록 밀어 넣고 오도독오도독 오도독뼈 씹는 소리가 싱그럽게 들렸다. 사내를 보자 그의 기억 속에서 아주 지워버리고 싶었던 그날 밤의 일이 다시 감겨드는 것을 떨쳐 버리려고 나도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사내가 시킨 매운탕이 끓어오르고 있을 때 사내는 내 잔에 술을 따르며.
“노형도 늘 혼자 술자리요?”
“아, 아닙니다. 요즈음 좀 그런 일이 있어서...”
나는 술을 마시며 사내의 얼굴을 살폈다. 나와 비슷한 연배인 50대 중반으로 보였다. 멋대로 뻗친 머리모양새, 땟국에 절은 북청색반코트의 깃 자락의 꺾임 선에는 굵은 톱니 같은 줄때가 까맣게 번들거렸다. 몰골은 초라하나 사내의 길고 숱 많은 구레나룻이 한껏 건강해 보였다. 나도 사내의 잔에 술을 따르며 물었다.
“노형은 왜 늘 혼자요?”
“나 말이요. 난 여편네가 내 곁을 떠난 20십여 년 전부터요.”
“상처라도 하신 건가요...?”
“상처요? 아, 따지고 보면 상처는 상처지요. 아무튼 그년은 4년 동안의 내 피 땀을 몽땅 쓸어 어느 놈의 배때기에 기름칠을 하고 있었소.”
갑자기 흥분한 사내는 얼굴에 근육을 실룩거리며 눈꼬리가 위로 당겨졌다.
나는 사내의 넋두리를 더 듣고 싶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노형도 그만 마시는 게 좋겠습니다. 방향은 어느 쪽이 신지요?”
사내는 금세 얼굴에 흥분을 풀고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오늘밤 내 방향은 정해져 있지 않소. 발길이 닿는 쪽이 곧 내 방향이오”
먼저 아구탕집을 나서는 내 발걸음은 휘청거렸다. 술기로 화끈 달아오른 겨울밤 공기는 싫지 않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느닷없이 등 뒤에서 묵직한 손이 내 어깨에 철거덕 얹혔다.
“노형! 오늘밤 날 따라 꽃구경 안 가겠소?”
털보사내는 어느새 아구탕집에서 내 뒤를 따라왔다. 나는 꽃구경이란 뜻은 알았지만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사내는 팔을 길게 뻗어 왜소한 내 등을 휘감았다. 나는 사내의 팔 무게에 눌려 떠밀러 갔다. 어디쯤인가 가고 있을 때였다. 여인의 무리들이 몰려나와 두 여인이 나와 사내의 팔짱을 끼고 욱죄었다.
“놀다 가세요. 잘 해드릴게요.”
나는 여인들이 풍기는 지독한 화장 내에 술이 확 깼다. 나는 팔짱을 풀고 여인을 밀쳤다. 여인은 다시 팔짱을 끼었다. 털보 사내는 그제야 내 어깨에서 팔을 거두고 대신 여인의 허리를 감고 앞서가다가 뒤도 안 돌아본 채, 내게.
“노형! 재미 잘 보슈!”
어둠 속으로 사라지며 내뱉었다. 여인은 한사코 매달리며 몸을 바짝 밀착시켰다. 미니스커트에 가슴이 훤히 보이는 옷을 입고 추위에 떠는 그녀의 떨림이 내 몸에까지 진동이 왔다. 그녀는 치아까지 달그락거리며, 말을 더듬었다.
“아아저씨 재밌게 해에드릴께요. 아아주 붕...뜨게 해에드릴께요.”
“이봐요. 색시 난 아니오. 미안해요. 추운데 술이나 한잔해요.”
지폐 몇 장을 집어주자 여인은 떨어져 나갔다.
지금 꽃구경이 필요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녀석이다. 넘치는 사랑의 단물 주머니를 무겁게 달고 밤마다 꽃밭을 갈망하고 있는 녀석이 아닌가
‘그렇다! 녀석에게 꽃밭을 거닐게 해주자!’ 비록 일회용이 될망정.
나는 다음날 퇴근길에 전날 밤에 갔던 아구탕집과 주변 포장마차를 기웃거리며 사내를 찾았다. 하지만 어제 만났던 털보사내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절실해도 그렇지 나는 자신이 녀석을 꽃밭으로 데려 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짧은 사랑 놀음이지만 녀석에게는 도우미가 필요함으로 사내에게 부탁하고 싶었다. 사내를 찾던 사흘 만에 포장마차 속에서 그 사내를 만났다. 나를 본 사내는 퍽 반겼다. 나는 사내와 아구탕집으로 가 조용한 구석자리를 찾아 앉았다.
“노형 그날 밤은 어땠었소? 내가 실수라도 한 거요?”
“아 아닙니다. 제가 너무 취해서 그냥 ......”
“근데 오늘밤 웬일로 포장마차까지 날 찾아 오셨소?”
“아! 예. 그냥 노형과 한잔하며 얘기나 나누고 싶어서죠.”
사내는 얼떨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나는 내 소개를 했다.
“우리 통성명이나 하고 지냅시다. 고 준수라 합니다.”
“난 서정만이라 하오.”
“서형은 주량이 꽤 되시나 보군요. 전 소주 한 병이 조금 벅찹니다.”
“난 세 병은 거뜬하오.”
“건강하십니다. 참 지난번에 하신 부인 얘기는 어떻게 된 건가요?”
나는 먼저 내 얘기부터 꺼내기가 뭣해서 사내의 아내 얘기를 먼저 했다.
“난 월남전쟁 때 파월 기술자로 근무했었소. 월남이 패망할 무렵에 너무 경황이 없어 예고 없이 돌아와 보니, 아내는 어느 놈팡이와 배가 맞아 있었소. 그들은 나를 피해 튀었소. 빈털터리가 된 나는 일곱 살짜리 딸아이와 노동판을 전전하며 살다가 아내가 술집 작부로 떠돌아다닌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다니다 어느 탄광촌으로 갔을 때, 아내는 바로 전날 밤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후였소. 결국 나를 철저히 망쳐놓은 아내의 마지막 길을 내 손으로 거두게 되었소.”
털보는 아내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얘기 도중 턱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듣고 보니 안타깝습니다. 따님은 잘 자라고 새 출발은 어떻게?”
“딸아이는 제 어미의 일 때문인지 나이가 들자 수녀원으로 들어갔소. 빈털터리가 무슨 새 출발이 있겠소. 건설회사 경비를 맡고 있는 주제인데. 그저 거리의 여인들과 하루살이 장난질이 내 생활의 전부요 고형의 생활은 어떻소?”
“예, 저라고 사연이 없겠습니까. 실은 오늘 서형에게 제 사정을 말씀드리고 부탁할 일도 있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
“저...저에게는 좀 모자라는 자식이 있습니다. 아니 좀 모자라는 것이 아니고 많이 모자라는 자식 놈이 있습니다. 말씀드리기 부끄럽습니다만” 나는 내 자신이 처해있는 문제를 다 들려주고 부탁했다. 얘기를 들은 서정만은 실내가 뻐개질듯이 크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나는 무안함에 몸 둘 바를 몰랐다.
“걱정 마시고 아들을 데리고 나오시오. 아주 노곤하게 해 주도록 하겠소”
“고맙습니다. 그런데 녀석에게는 첫 경험이라 조금은 예의를 갖추어 주고 싶습니다. 가까운 온천에라도 일박 2일 정도 보내고 싶습니다. 안 될까요?”
서정만은 퍽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그래요? 안 될 것까지는 없겠지만, 어쨌든 그런 쪽으로 알아보겠소.”
태풍의 위세는 한결 누그러졌다. 그러나 아직도 빗줄기는 사선으로 내리고 있다. 천둥의 울음소리도 그쳤다. 아내는 녀석을 짝 아닌 짝을 지어 그곳으로 보내 놓고 수년 동안 이 길을 수없이 다녔다. 아내가 혈압으로 쓰러져 바깥출입을 못하게 된 후부터 내가 혼자 다닌 지도 수개월이 되었다. 불과 3달 전에도 나는 이 길을 다녀갔었다. 승용차가 겨우 비켜 갈 수 있는 이 좁은 길 주위 산야에 온갖 봄꽃들이 향기로웠다. 녀석은 여전히 숲 속의 야생마처럼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도우미 역할을 맡은 서정만이의 연락을 받고 만났다. 서정만은 만나자마자 거듭 술을 몇 잔 마시더니 조금 멋쩍은 낯빛으로 말했다.
“제기랄 밤꽃들은 포주의 사슬에 묶여있어 하루도 몸을 뺄 수가 없을 것 같소. 근데 좀 삭은 여자는 어떻소?”
“예? 예... 괜찮습니다. 녀석에게는 큰 누님 같은 여인이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동생처럼 보살펴 줄 수도 있고요.”
“그렇다면 내 주변에 걸맞은 여자가 한 사람 있소. 여행 파트너로서도 괜찮을 것 같소. 그 여자를 만나 타협이 되는대로 연락하겠소.”
서정만이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나는‘삭은’ 여자라는 말이 되씹혔다. 얼마나 무엇이 어떻게 삭았다는 것인지? 나이가 좀 들었다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 옳게 받아들인 것인지? 내 자신이야말로 녀석 때문에 폭삭 삭아 곰 내가 날 지경이었다. 곰 내가 변하면 고린내가 된다. 이러고 다니는 내 꼴이 서글프고 비감스럽다. 녀석으로 인한 근심은 내가 고린내 나는 몸이 되기 전에는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다. 녀석은 태어나서 몇 개월을 빼고는 온 가족들을 근심의 계곡으로 몰았다.
“선천성 지능 발달장애입니다.”
발달장애란 심한 지능 장애가 따르며 외과적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하며, 다만 뇌의 발육을 돕는 약물 요법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살아 계셨던 어머니와 아내는 지극 정성으로 두뇌발달에 좋다는 약은 다 구해서 먹였다. 깊은 사찰에서 어머니는 아내와 번갈아 가며 백일기도 드리기를 일상처럼 해 왔다. 녀석은 열 살이 되어서야 엄마 아빠라는 말을 더듬거릴 정도였다. 신체적으로는 두상이 조금 납작하고 작으나 다른 부위는 정상인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서정만이가 여인을 데리고 나왔다. 그의 말로는 삼십대 중반의 여인이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사십대 초반은 되어 보이는 여인이었다. 서정만이 말대로 삭기는 좀 삭은 여인이었다. 나름대로 단정한 차림이었고, 짙은 화장으로 감싸긴 했으나 얼굴 살빛이 마치 잘 못 띄운 메주 색을 띄고 있었다. 생김새는 앞으로 튀어나온 입 모양을 빼고는 그런 대로 얌전히 생겼다. 그녀는 미소만 지어도 잇몸이 붉게 드러났다. 또 입을 꼭 다물면 아래턱에 호두 알 문양이 박혔다. 아담한 키에 검은 통 코트를 입은 모습이 초라하나 선량한 분위기가 감도는 중년 여인이었다. 그만하면 녀석을 리드할 수 있는 원숙함이 엿보였다. 나는 여인에게 부탁했다.
“들으셔서 아시겠지만 많이 부족한 아이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그녀는 뻐드렁니를 살짝 드러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며칠 남지 않은 년 말 연휴를 기회로 잡아 나는 그들 일행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연휴 전날 흩날리던 눈이 다음날 아침 햇살이 퍼질 즈음에 그쳤다. 눈바람이 제법 쌀쌀하나 맑은 날씨였다. 나는 아내에게 녀석을 데리고 며칠 온천에 다녀온다는 말만 남기고 집을 나왔다. 터미널에서 서정만 일행과 만났다. 버스에 오르기 전 나는 녀석에게 그녀를 누님이라고 부르게 소개시켰다. 녀석과 그녀를 먼저 앉히고 맞은편에 나와 서정만이가 앉았다. 창 쪽으로 앉은 녀석은 조금 멀뚱한 표정으로 나와 서정만을 쳐다보다가 목을 돌려 그녀를 유심히 보기도 했다.
버스가 고속도로 진입하자 그녀는 준비해 온 귤 몇 알을 우리 쪽으로 건네주었다. 녀석에게는 귤을 까서 손에 쥐어주었다. 귤을 까고 있는 그녀의 손을 언뜻 본 나는 흠칫 놀랐다. 왼손 손가락 중 검지와 장지, 무명지가 첫째 마디쯤에서 잘려 나가고 없었다. 엄지와 새끼손가락 사이에 걸어 귤을 싸잡아 까고 있었던 것이다. 놀라는 내 표정을 본 서정만은 그녀의 삶에 대해 내게 말해 주었다.
그녀는 서정만과 파월 기술자로 같이 근무했던 친구의 아내였다고 했다. 그녀는 결혼생활 육 년 동안 아이가 없었으며, 남편이 월남에 있는 동안은 시골 시집에서 농사일을 돕고 살았다. 시골 생활을 하던 중 서툰 작두질을 하다가 손가락이 잘렸다고 했다. 7년 동안 월남에서 살던 남편이 동거하던 월남 여인과 두 남매를 데리고 귀국하자, 그녀는 스스로 물러났다고 했다. 한동안 혼자 살던 그녀는 몇 번의 재혼도 실패하고 떠돌며 포장마차 장사를 하는 친구의 뒷바라지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사연을 듣고 나는 그녀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감상적으로 봐서 그런지 어딘가 모르게 애잔함이 깃들어 보였다. 녀석은 벌써 그녀의 어깨에 기대고 입을 벌린 채 잠이 들었다. 그녀는 녀석의 옷깃을 여며주고, 민첩한 손놀림으로 녀석의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아주며, 토닥거려 주었다.
내내 하얗기만 하던 차창 밖은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헐벗은 겨울의 발목이 드러나 보이더니 곧 목적지에 도달했다. 관광객들로 북적대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녀석과 그녀를 가족탕으로 보냈다. 나는 서정만과 호텔 내부에 딸린 사우나탕으로 갔다. 뜨거운 훈김이 화끈하게 맞아주었다. 서정만의 벗은 체격을 보니 내 야윈 몸뚱이가 움츠러들었다. 열탕에서 냉탕으로 옮겨 다니는 서정만의 탱탱한 씨앗 주머니가 유난히 커 보였다.
싱싱한 남근이 보기 좋게 터럭 속에 불거져 있었다. 모든 에너지와 정기가 그쪽으로만 몰리는 녀석의 총각무에 못지않았다. 반대로 내 것은 번데기 마냥 오그라들기만 했다. 사우나에서 나와 갈증을 풀려고 무심코 들어간 곳이 나이트크럽이었다.
도대체 붐비지 않는 곳이 없었다. 무대 위에 촘촘히 실린 군상들은 함지박 속에 들은 미꾸라지에 소금을 뿌려놓은 듯 바글거렸다. 불그레한 조명 아래 홀 하나 가득히 담긴 사람들, 보기만 해도 멀미가 났다. 얻어진 좌석이 중앙에서 나체 춤을 추는 무희들을 등지는 자리였다. 나는 몸을 틀어 무희들을 바라보았다. 가까이 보이는 왼쪽 무희는 야윈 몸매를 가지고 흐늘거리듯 추는 춤은 생기가 없어 보였다. 오른쪽 무희는 길면서도 선이 굵게 빠졌다. 뚜렷한 굴곡에 상당한 볼륨이 있었다. 조명에 비쳐드는 미소 그 미소에 밀린 발그레한 볼이 매력적이었다.
“고형! 저 여자 죽여주게 생기지 않았소?”
서정만은 군침을 삼키며 바짝 마른 왼쪽 무희를 가리켰다. 나는 반대로
“그쪽보다 육감적이고 볼륨이 있는 저쪽이 더...”
“모르시는 말씀 마른 장작이 화력이 더 세듯이 뼈에 가죽 도배한 것 같은 여자 일수록 그 맛이 화끈하다는 것을.”
“손님 춤추지 않으시겠습니까?”
웨이터가 몸을 바짝 낮추고 서정만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서정만은 내게 눈길을 주며 머리를 끄덕였다. 잠시 후 웨이터가 다시 와 우리를 나오라며 무대 쪽을 가리켰다. 가리킨 쪽에 두 여인이 서 있는 형체가 보였다. 서정만은 내 의사를 무시한 채 기어이 나를 무대까지 끌고 나가 여인 앞에 밀어붙였다. 중년 여인의 손을 잡긴 했지만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자, 여인이 나를 이끌었다. 나는 몸이 점점 굳어들며 등에 진땀이 났다. 여인에게 춤을 못 추어서 미안하다고 속삭일 때 슬로 곡이 멈추고 디스코 곡으로 바뀌었다. 디스코는 나도 조금 추는 편이었다. 모임 때마다 동료들로부터 디스코 황제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으니까, 사실은 엉터리 막춤이지만, 내 파트너 여인은 흔들릴 때마다 풍만한 유방이 요동을 쳤다. 디스코 곡이 끝나자 좌석으로 돌아왔다.
서정만은 파트너의 어깨를 감싸고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시고 있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서정만은 여인과 밤을 그냥 보낼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먼저 피곤해서 숙소로 간다며 나왔다.
온천에서 첫날밤을 묵고 아침 식탁에 앉은 녀석은 조금 어른스러워 보였다. 물살이 찼던 얼굴이 가라앉아 한결 야물어 보이기도 했다. 그녀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시중만 받던 녀석은 간간이 반찬 그릇을 그녀 앞으로 당겨 가기도 했다. 아침식사를 끝낸 우리 일행은 온천 주변에 있는 ‘ㅅ’ 사찰에 오르기로 했다. 어제와 달리 날씨는 포근해 노오란 햇살을 등으로 받으며 사찰 입구에서부터 무수한 계단을 밟았다. 녀석의 손을 다정히 잡고 앞서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은 보기 좋았다. 내 마음을 읽은 듯 서정만이도 흠뻑 미소를 내게 쏟았다. 사찰을 둘러싼 푸른 소나무들 중, 유난히 등이 굽은 한 소나무에 달린 굵은 솔방울 하나가 오늘의 녀석 얼굴만큼이나 윤기가 흘렀다.
경내로 들어선 그녀는 녀석에게 합장을 가르치며 같이 탑돌이를 하는 그녀는 무언가 외는 듯 입술이 들썩였다. 대웅전을 돌아 나오는 모퉁이에 기왓장들을 죽 줄을 세워놓은 곳에서 스님 한 분이 합장을 하고, 머리 숙여 연신 염불을 외우며
“기왓장 시주들 하십시오.”
그녀는 스님 앞으로 다가가 손가방에서 푸른 지폐 한 장을 꺼내들고 자신과 녀석을 가리키며 무엇인가 말을 했다. 스님은 붓을 들고 까만 기왓장에다 두 줄기의 하얀 글씨를 써 내렸다. 그 중 한 줄의 글씨는 녀석의 이름이었다. 스님은 빌어줄 소원을 물었다. 그녀는 어색한 미소를 띠며 스님만 들을 수 있게 낮은 소리로 뭐라고 한마디의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녀석과 온천을 다녀와서 나는 아내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아내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듯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다시 아내에게 그녀가 불교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더라고 들려주자, 아내는 다소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녀석은 온천을 다녀온 지 일주일도 못되어 내 출근길에 대문 밖까지 따라와.
“아아바! 누으니임 보오고 시이프...!”
두꺼운 입술을 있는 대로 내밀며 더듬거리는 녀석의 눈빛은 애절했다. 그녀를 만나고 와서도 사흘이 멀게 그녀를 그리워했다. 그녀와의 만남 끝에 녀석은 헤어짐을 번번이 거부해 생떼를 쓰는 녀석을 떼어오는 것도 여간 곤욕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봉투를 건네는 일도 점점 낮 뜨거운 일 그녀 역시 얼굴을 붉히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아내가 그녀를 처음 만나보고 온 날 내게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여보 큰 녀석 살림 내주기로 하면 어때요?"
나는 아내의 말에 의아해 쳐다보았다. 아내는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만나게 할 수는 없잖아요. 차라리..."
“차라리 어떻게...?"
"솔직히 말했어요. 그 왜 있잖아요. 계약결혼 같은 것 말이예요."
“그녀가 순순히 그르겠다고 하던가?”
"금방 대답은 안 했지만 분명 싫지 않은 기색이라 구체적으로 말했어요. 결국 허락하더군요. 어쩌면 그러기를 기다린 눈치 같기도 하구요."
아내의 계속된 말로는 그녀는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조용한 산촌에 묻혀 살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아내는 일 년에 몇 차례씩 기도를 드리러 다니던 사찰의 부속 건물로 지어진 집에 그들을 살게 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너무 오지라 반대하였으나 아내의 말은 항상 주지스님이 그들을 보살피며 지켜 줄 수 있는 그곳이 적격이라고 고집이었다. 그녀도 다행히 그곳을 흡족해 했다. 부족함 없이 살림을 차려주고도 아내는 한 달이 멀다고 이것저것 사서 날랐다. 다녀올 때마다 그녀에게 감동하고 있었다. 주지스님의 말씀이, 그녀는 부처님이 보내신 관음보살의 화신이라고까지 말했다는 것이다. 아내 역시 스님 말씀에 공감하고 있었다. 나중에는 이무기의 화신일지도 모른다고 한 적도 있었지만,
그녀에게 녀석을 맡겼던 몇 년의 동안 그들은 조용히 행복하게 살았다
그녀는 녀석에게 정말 헌신적이었다. 젖먹이 아이 같은 투정과 장년의 욕구를 모성애와 같은 애정으로 보살폈다. 녀석 역시 그녀 앞에서는 그 쇠뿔 같은 고집의 뿌리가 뽑힌 순한 양이었다. 그녀가 텃밭에 물을 뿌릴 때면 녀석은 즐거움에 부푼 모습으로 찰랑찰랑 넘치는 물통을 양손에 들고 언덕을 나르는 듯 오르내렸다.
빗줄기는 가늘어졌다. 헤드라이트 빛에 물체들이 말갛게 담겼다. 요동을 치던 수목들이 이제는 조용히 제 자리에 서서 가지 끝으로 물방을 떨어뜨리고 봇도랑은 맹수들의 이빨처럼 돌부리들이 사납게 드러났다. 그리고 그 울음의산모롱이도 비쳐들었다.
그 울음의 산모롱이는 그녀와 녀석이 만난 지 4년째 접어드는 해였다. 그녀는 녀석을 절 집에 맡겨두고 친정 나들이로 집을 비우기 시작했다. 전에는 늦어도 이삼일 내로는 꼭 돌아왔었다. 아무런 연락 없이 일주일이 넘게 돌아오지 않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녀가 없는 날이면 녀석은 산모롱이 언덕에 올라 밤을 새운다는 연락을 받고 아내와 함께 갔었다. 그 산모롱이를 약 100미터의 전방을 두고 가고 있을 때였다. 마주 보이는 산모롱이 언덕에서 한 마리의 독수리 같은 물체가 후다닥 나르는 듯 뛰어내려 오더니 어느새 우리들 앞에 멈추어 섰다. 얼굴에 실망의 그늘을 잔뜩 뒤집어 쓴 녀석이었다.
녀석은 멀리서 자동차를 발견하고 그녀가 여느 때처럼 택시를 타고 오는 줄 알았던 것이다. 가쁜 숨결을 헐떡이던 녀석은 갑자기 그 큰 몸통을 제 어미의 가슴에 무너뜨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몸통만큼 큰 울음소리는 온 산등성을 휘두르고 되돌아왔다. 삼일을 더 기다려도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는 그녀가 녀석을 포기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오지 않겠다는 녀석을 데리고 그 산모롱이를 돌아 내려올 때었다. 녀석이 용변이 마렵다며 괴로운 호소를 해 잠시 차를 세웠다. 순간 녀석은 튀듯이 자동차 문을 박차고 수목이 우거진 골짜기로 맹수에 쫓기는 사슴처럼 달아났다. 한낮에 사라진 녀석은 산 그림자가 묻혀드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녀석을 찾아 헤매던 아내는 못내 산모롱이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의 통곡을 산모롱이는 삼키고 있다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되새김질처럼 들리는 듯 했다.
십 여일 후에 돌아온 그녀는 녀석과의 인연이 끊어질듯 하다가 이어지기를 거듭했었다. 십 여 일 동안을 녀석을 버려두는 것은 예사였고, 나중에는 2주일 이상 집을 비우기도 했다. 그녀의 행동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어 아내는 태도를 분명히 하라고 나무랐다. 그녀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며 그간의 사정을 얘기했다. 가족이 없는 친정 오빠가 교통사고를 당해 간병할 사람이 없어 그랬노라고 했다. 곧 오빠가 퇴원하게 되니 앞으로는 집을 비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 이후 그녀는 약속대로 집을 비우지는 않았다. 대신 사고로 다리를 절룩이는 오빠라는 자가 늘 와서 묵고 있다는 말을 아내를 통해 들었다. 남녀만 사는 집에 아무리 오빠라 하지만 오래 묵고 있다는 것이 아내는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나는 두 사람이 이제 말썽 없이 잘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그 후 어느 날 산촌을 다녀온 아내는 몹시 불쾌한 어조로 말했다.
“그 괘씸한 것이 우리 애는 뒷전이고 그 절름발이 오라빈지 기둥서방인지 하는 사내에게만 지극 정성이더라고요.”
“오라비라고 하면 오라빈 줄 알면 되지 함부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웃 사람들의 말을 들어도 그렇고 내가 봐도 전혀 닮지 않은 사내의 얼굴이 오라비라고 믿어지지 않아요. 험상궂게도 턱수염은 산적처럼 길러 가지고선...”
아내의 말 중에 험상궂은 턱수염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뇌리를 스치는 인물이 떠올랐다. 설마 그자가...? 나를 속였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자는 그녀의 검은 피 빨이 물벌레란 말인가? 그 작자는 용케도 내가 갔을 때는 없었다. 하지만 내가 확인하지 않고는 뭐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찰의 초입에 들어섰을 때 비는 완전히 그쳤다. 짧은 여름밤은 꼬리를 서서히 말아 올리기 시작한다. 광막한 어둠에서 포물선을 이루며 밑그림 같은 산마루가 전면에 드러난다. 장송곡 같은 염불 소리가 새벽을 가르며 아득히 들린다. 사찰의 정문에 들어서자 스님이 벌써 나와 합장으로 맞아준다. 토방을 밟고 올라서자 스님께서 말씀하신다.
“아드님은 운명하셨습니다. 뇌진탕이었습니다.”
나는 휘청거리는 한 걸음을 옮겨 방문 고리를 움켜잡고 막혀오는 숨을 고르지 못해 눈을 감고 한동안 서 있었다. 나는 결국 주저앉았다. 스님이 나를 일으켜 방으로 들였다. 내 눈에 두 구의 시신이 보였다. 등 뒤에서 스님의 말씀이 들린다.
“환생을 위해 두 분 함께 잠들었습니다.”
스님은 하얀 종이 한 장을 내게 내밀었다. 그녀가 남긴 글이었다.
“맑은 영혼 따라 떠납니다. 우리는 다시 부부 인연으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서정만은 저의 친오빠입니다. 용서해 주세요. 오빠를 부탁합니다.”
언제 나타났는지 서정만은 스님 곁에 머리를 숙이고 서 있었다.
당일로 장례를 치르고 나니 서녘하늘이 붉었다. 스님의 권고로 合葬을 하였으니 녀석은 영원히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승용차 뒷좌석에 서정만이 앉아있다. 자동차의 뒤꽁무니로 아득히 들리는 염불소리 환생의 나래를 달고 노을이 저문 하늘을 향해 치달았다. 끝
심사평
산문부 우수상을 받은 변삼학의 소설「환생의 새벽」은 도입부에서부터 정밀묘사가 시작된다. <비포장도로로 들어서자 빗발은 점점 거세진다. 헤드라이트 빛에 담겼다 쏟아지는 나뭇가지들은 기름에 젖은 듯 반들거린다.……> <그날 밤도 노드리듯 내리는 폭우가 천둥을 동반하고 쏟아졌었다.>. 이토록 매끄러운 문장을 끄집어내기 위해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을지 가히 짐작된다. 마치 영화의 첫 장면 같이 영상처리 되어서 시선을 확 끌어들이는 도입부에 더불어 이야기의 전개가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사용 어휘들이 워낙 구수하게 다가와서 마치 김유정 ·황순원의 소설을 읽는 것같기도 하다. 또 한편 <맑은 영혼 따라 떠납니다. 우리 다시 부부인연으로 태어나고 싶습니다.……>에서 느끼듯이 결말은 짐짓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뒤로 가면서 '털보가 오빠를 가장한 내연남인 줄 알았는데 진짜 오빠였다고 유서에 밝힌' 반전, 그리고 느닷없이 '맑은 영혼을 따라 죽는다'는 설정이 억지스럽긴 하지만 제목에서부터 '환생의 새벽'이라 언급했으니 그다지 험이 되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 역시 마지막 단락이 흥미롭다. 종장이 반복되는 형태의 사설시조조로 나타나기 때문인데, 이러하다. <(종장 1) 당일로/ 장례를 치르고 나니 /노을이 지고 있었다./……자동차의 뒤꽁무니로//(종장 2) 아득히/ 들리는 염불 소리/환생의 날개를 달고/ 노을이 지는 하늘을 향해 치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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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환생의 새벽을 읽는내내 너무 현실적인드라마가 흥미진진한 아침이였습니다.
선생님께선 하늘이 내리신 貴才십니다.
또 다음이 기대됩니다~~!!!
여기서 다시 만나 반가워요.
감사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다시 만게 되어서 너무 반갑습니다.
귀한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설 2) 변삼학 자문위원님, 안녕하세요
긴 원고를 보내시느라 고생하셨어요
멋진 동작문학지로 태어나길 기대합니다
늘 건행하세요~~ㅎ
네 회장님 부탁되로
먼저 올린 시는 취소하고
소설을 올렸습니다.
감동으로 마무리 된 이야기가 감동적입니다 푹 빠졌습니다
대단하십니다.^^
배성희님 반갑습니다.
바쁘신데도 읽고
소감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변 삼학 선생님,
수상을 감축 드립니다.
잘 읽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건필을 빕니다!
하늘하늘님 반갑습니다.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