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트로트의 미래 정서주 님이 <아씨>를 커버곡으로 발표했습니다. 그래서 <아씨>에 대해 살펴보도록 합니다. 몇년 전 한국에서는 <작은 아씨들>( Little Women ) 이라는 영화가 인기리에 상영된 바 있습니다. <작은 아씨들>은 1860년대 미국의 남북전쟁 시기를 무대로 한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지요. 이 영화는 총 7차례 이상 리메이크됐지만 1949년 미녀 배우 엘리자베드 테일러가 주연했던 영화가 가장 인기를 끌었습니다. 시대가 흘러도 고전은 영원하다는 말처럼 이 영화의 줄거리는 지금도 감동을 주고 있고, 그 결과 계속 리메이크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도 고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영화, 드라마들이 우리의 고전에서 모티브를 찾고 있고, 대중 음악도 옛 가수들과 가요들을 소환하고 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한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한국을 문화강국으로 이끄는 것 같습니다. 한국 영화 <기생충>이 2020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것도 한국적인 것이 세계인의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겠지요.
미국에서 <작은 아씨들>이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아씨>라는 드라마가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적이 있었지요. <아씨>가 방영됐던 시기는 지금처럼 TV 수상기가 풍족한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동네 사람들은 부잣집, 만화가게 등에 모여 드라마 등 여러 프로들을 시청하곤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 아씨 >는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드라마였습니다. < 아씨>는 현모양처의 가치관이 득세하던 시절의 드라마였습니다. 이 드라마는 극히 일부가 남아있지만 그 주제가는 남아 애창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씨>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드라마 <아씨>의 한 장면 (실제 방영은 흑백)
<아씨>는 1970년 3월부터 10개월 동안 253부작으로 방영된 TV 일일 드라마였습니다. 드라마가 방영되기 시작할 떄면 이미자 가수님이 부른 주제가가 흘러나와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지요. <아씨>는 흑백화면이었지만 역동적인 스토리로 인해 광장한 인기를 끌었지요. 이 드라마가 방영되는 밤 9시 40분 이후 시간에는 거리가 한산할 정도로 엄청난 시청률을 자랑했습니다. 어떤 글을 보니 시청률이 80%를 상회했다고 합니다. 지금 시청률이 20%를 넘어도 인기 드라마라고 하는 것을 보면 굉장한 드라마였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이 드라마는 인기의 여세를 몰아 1971년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지요.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끈 것은 탄탄한 대본, 탁월한 연출이 작용했지만 기라성같은 탤런트들의 훌륭한 연기도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3월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감독의 탁월한 연출 외에도 재능있는 배우들의 열연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영화 <아씨>(1971)의 포스터 (영화의 여주인공 역시 김희준 님)
드라마 <아씨>는 1930년대부터 1950년대에 걸쳐 숱한 고난을 겪으며 살아갔던 한 여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렸지요. 아씨는 예전에 하인이 상전 집의 젊은 부인이나 처녀를 부르던 말이지요. 참봉 벼슬을 지낸 집안에 시집을 온 이 여인은 독립운동가를 도왔다는 이유로 일제의 모진 탄압을 받았고, 해방이 되자마자 터진 한국전쟁으로 인해 피난살이, 가족의 이산 등의 고통을 겪습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 아씨 역을 맡았던 김희준 님은 시어머니, 시누이의 구박, 남편의 냉대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히 집안을 지켜낸 한국적 여인상을 잘 그려냈지요. 그 결과 당대의 이상적 여인상이었던 현모양처의 표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씨> 드라마의 여주인공 김희준 님
<아씨> 드라마가 성공을 거두자 <여로>, <꿈나무> 등이 방영되는 등 일일드라마 시대가 열렸고, 지금까지도 일일드라마는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지요. 또 드라마 <아씨>, <여로>의 인기는 TV 수상기의 보급의 확대로 이어졌지요. 사람들과 부대끼며 힘들게 드라마를 보느니 무리해서라도 비싼 TV 수상기를 구입하는 것이 낫겠다고 본 것이지요. 그 결과 TV 수상기 보급률은 1965년 0.6%, 1970년 10%, 1979년 79%로 급상승합니다. 이렇게 TV 수상기의 보급이 급증한 것에 대해 정권이 TV를 통치에 활용하고자 1971년 TV 특별소비세를 대폭 인하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러나 재미있는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즐기려는 욕망이 PC 보급률을 큰 폭으로 끌어올렸듯이 재미있는 프로를 시청하려는 욕망이 TV 보급률의 급증을 야기했다고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또 가정에서 채널 선택권이 여성들에게 넘어가면서 드라마는 여성 취향에 맞는 것으로 제작됩니다. 그같은 현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지요. 세계적으로 한국처럼 여성 시청자의 감수성을 중심으로 드라마를 제작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 특유의 여성 취향의 드라마 구조는 한류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평가되고 있지요.
<아씨>는 바로 이 인기 드라마의 주제가였고, 당대 최고의 인기 가수였던 이미자 가수님이 불렀습니다. 이미자 님은 열아홉살에 데뷔하여 2019년 데뷔 60주년을 맞았고, 많은 후배 가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노래하는 모습이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었지요. 이미자 님은 <흑산도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등 한국적 색채가 짙은 노래를 많이 불러 서구적 색채가 강한 패티김 가수님과 쌍벽을 이뤘지요. 패티김 님은 <초우>, <빛과 그림자> 등 많은 히트곡을 남겼지요.
이미자 님의 <아씨> 앨범 (아씨가 한창 방영중이던 1970년 9월 지구레코드 출시)
<아씨>를 작곡한 분은 당대를 대표하던 작곡가 백영호 선생님이었지요. 백영호 선생님은 1964년 이미자 님의 열창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동백아가씨>를 작곡했고, 그 외에도 <울어라 열풍아>, <동숙의 노래> 등 숱한 히트곡을 남겼지요.
<아씨>의 가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옛날에 이 길은 꽃가마 타고
말탄님 따라서 시집 가던 길
여기던가 저기던가
복사꽃 곱게 피어있던 길
한세상 다하여 돌아 가는 길
저무는 하늘가에 노을이 섧구나
2. 옛날에 이 길은 새색시 적에
서방님 따라서 나들이 가던 길
어디선가 저 만치서
뻐꾹새 구슬피 울어 대던 길
한세상 다하여 돌아 가는 길
저무는 하늘가에 노을이 섧구나
https://youtu.be/BCjg2Iyqs9I
가사는 꽃가마, 말탄님, 새색시, 서방님 등의 표현을 사용함으로서 전통적인 한국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또 복숭아꽃, 뻐꾸기, 노을 등의 자연을 등장시켜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를 드러내지요.
전통 결혼식을 치르러가던 신부가 가마를 탄 장면
가사는 한 여인이 옛 추억이 서린 길을 걸으며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가마타고 구식 결혼을 하러 가던 모습, 남편과 꽃구경 하던 장면 등을 추억합니다. 그러나 여인은 그 길을 -한세상 다해 돌아가는 길-이라고 표현합니다. 그것은 그 길에 대한 기억이 즐거웠던 때보다는 괴로웠던 때가 많았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황혼이 질 나이에 그 길가에서 노을을 보고 슬픔을 느끼게 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아씨>는 많은 가수들이 불렀습니다. 대여섯 분의 유명 여가수들이 부른 <아씨>를 감상해 봤습니다. 대부분 잘 부른다는 인상을 받기는 했지만 큰 감흥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정서주 님이 열창한 <아씨>는 감흥을 불러 일으키더군요. 정서주 님이 부른 <아씨>는 잔잔한 목소리로 파란만장한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여인의 모습을 잘 묘사했다고 보여집니다. 전통적 한국 여인의 한을 달래주는 듯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진한 감동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