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식당>
전설적인 천일식당에 왔다. '국민 맛집'이 된 지 오래여서, 누구나 한번쯤은 가고 싶어하는 집이다. 소문의 핵은 우선 떡갈비, 그리고 전라도 한정식의 그 '떡 벌어진' 한상이다. 우선 떡갈비는 좋다. 하지만 '떡벌어진 한상'은 맛도 내용도 부실한 편이다. 오늘 밥상이 별로 떡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옛날 10년 전 후기들과 대비하면 더욱 선명해진다. 명성에 부응하지 못하는 '그냥 맛집'으로 내려앉은 이유가 궁금하다.
1. 식당얼개
상호: 천일식당
주소 : 전남 해남군 해남읍 읍내길 20-8
전화 : 061) 536-4001/ 535-1001
주요메뉴 : (떡갈비)한정식
2. 먹은 날 : 2021.3.9.저녁
먹은 음식 : 떡갈비한정식 1인 30,000원
3. 맛보기
전형적인 집밥 냄새가 난다. 먹기 편하고, 대부분 늘 만나는 일상적인 식재료들이다. 맛도 집에서 먹는 익숙한 맛이 난다. 하지만 몇 가지는 오히려 그런 수준에도 못미친다.
상이 들어올 때부터 헤성헤성한 찬들, 그리고 신선한 식재료의 탱글거리는 느낌이 빠져버린 찬들에 잔치는 소문일 뿐인가보다는 우려가 앞섰다. 우려는 감추고 맛있는 한끼, 기대한 한끼를 보상받기 위해 열심히 먹었으나, 자세히 보고 맛볼수록 더욱더 뭔가 빠져 있는 느낌이 강해졌다. 우려가 현실화 되어버린 것이다.
먹고나서 너무 소문과 다른 이 '현실'의 실체를 확인하느라 몇 가지 사례를 찾아보니 2009년에 반찬이 32가지, 그중 젓갈이 5가지가 나왔단 후기가 눈에 띈다. 가격은 2만원이었다. 2010년은 30가지다. 오늘가격 3만원이면 그때와 큰 차이없는 반찬이 제공되어야 맞을 거 같은데, 우선 젓갈부터 두 가지다. 그때 나온 전어밤젓 같은 것은 어림없는 얘기다. 황석어젓과 토하젓이 나왔는데, 모두 때를 못 맞춘 듯한, 신선함이 떨어지는 맛이었다.
반찬 종류는 21가지, 그때보다 10가지 정도가 더 적다. 전주 음식이 유명한 이유는 첫째는 맛에 있지만, 둘째는 푸짐한 양, 셋째는 성실한 조리에 있다고 본다. 이 세가지가 모두 전성기 때와 차이가 나는 것이다. 오랜 명성을 이어가려면 기초적인 차원에서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명성만은 못해도 아직 먹을 만하니 맛집은 맛집이다. 그때의 그 내실있는 국민맛집으로 되돌아가기를 빌면서 상차림을 대략 살펴보기로 한다.
주인공 떡갈비, 명성의 핵심은 요녀석이다. 과연 이 맛은 명성에 부합한다 싶다. 달근하고 쫄깃거리면서 부드럽다.
그러나 조금만 단맛을 빼면 어떨까. 맛에도 유행이 있다. 요즘은 간이 세지 않고, 자연스러운 맛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식재료도 변하고 조리법도 변하고 새요리도 끝없이 나온다. 식중의 입맛은 밥상을 선도하기도 하고, 추수하기도 하며 변한다. 10년, 20년 전 음식으로는 손색이 없을 거 같은데, 요즘 입맛으로는 단맛이 아무래도 세 보여서다.
해파리는 아주 좋다. 상큼하고 오도독 씹히는 식감도 일품이다. 간도 세지 않다. 뭣보다도 싱싱해 보인다.
고등어도 간이 썩 잘맞는다. 고기가 좀 더 통통했으면 하는 것은 욕심일 터이지만.
겉절이 김치. 좋다. 맛도 시원하고 양념 맛도 편해서 좋다.배추도 사근거린다.
게무침은 구색맞추기용같다. 싱싱한 맛도 없고 게도 그저그렇다. 한정식은 찬이 많은 것이 장점이면서도 단점이다. 손님은 많은 찬을 먹을 수 있으니 장점이고, 준비하는 쪽에서는 손이 너무 많이 가 찬마다 맛의 수위를 높이기가 어려우니 단점이다.
그러나 한정식으로 승부를 건 집은 찬마다 맛과 때가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그게 안 되면 가짓수를 과감하게 줄이고 찬마다의 완성도를 높이는 쪽으로 가는 것이 맞는 거 같다. 그점에서 전북 완주 고산이 시골밥상을 눈여겨볼 만하다. 더구나 게장은 전라도 특별한 맛을 보여야 하는 향토음식이아닌가.
호박전은 부친 지 여러 시간 된, 아침 나절의 음식인가. 밀가루 옷이 다 굳어서 제맛을 내지 못한다. 한정식, 참 어려운 메뉴다.
낙지는 서비스라는데, 아주 좋다. 우선 낙지가 싱싱하고 탱글거려 식감이 좋다. 혀에서 통통 튀는 맛이 그대로 감지가 된다. 단지 양념에 감칠맛이 좀 더 깊었으면.
황석어젓. 반찬으로 먹으려면 이보다 더 탱탱해야 할 듯. 우리는 젓갈의 나라다. 젓갈로 간 맞추고 그 자체로 반찬도 삼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는 듯하다. 월남의 넉맘은 주로 간을 맞추고 유럽의 엔초비는 음식으로 먹는다.둘 다 사용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을 듯.
하지만 간에 쓰는지, 반찬으로 쓰는지는 구분이 있다. 너무 삭지 않은 것을 찬으로 써야 한다. 이 젓갈은 그 중간 단계에 있다. 찬으로 올리기는 너무 무른 게 아닌가 한다. 신선한 맛도 식감도 부족하다.
토하젓. 짜기만 하고 갱미가 떨어진다. 역시 김치 담글 때 쓰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상차림용 젓갈은 나름의 신선도와 함께 식재료의 품질에도 신경을 더 써야 할 것이다.
김치, 깊은 맛이 없고, 농익었는데, 게다가 먹잘 것없는 부위만 내왔다. 양념 부위를 주로 내오고 배추가 없다. 성의를 좀 더 보여줘야 할 거 같다.
먹을 만하지만 맛이 가볍다. 국물 맛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듯하다.
누구나 하는 계란찜이지만 폼과 맛이 함께 나게 하기는 어렵다. 두 마리를 다 잡았다. 게다가 간도 맞다. 계란비린내도 없다. 오래 묵은 솜씨다.
톳무침. 아마 제끼에 마련한 음식이 아닌 듯하다. 신선한 맛이 덜해 매력없는 찬이 되었다.
떡갈비와 젓갈 포장판매가 눈에 띈다.
4. 먹은 후
찬을 하나하나 쓰다보니 왜 명성만 못한지 이해가 된다. 가짓수도 현저하게 줄었고, 맛도 떨어지고, 음식 때를 맞추지 못했다. 성의가 떨어진 거 같다.
오랫동안 쌓아온 명성에 누가 되지않게, 음식의 기본인 이 세가지를 다시 갖추기 위해 초심을 지키며 노력해야 할 듯하다. 1924년에 문을 열었다니, 이제 100년이 다 되어가는 식당이다. 이 정도 역사면 우리에게는 거의 문화유산이 되는 식당이다.
주막으로 진행되다, 근대 식당의 역사는 길지 않은 우리 상업음식의 역사는 이 정도면 그 자체가 우리 식당사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서울 종로의 이문설렁탕(1904)을 비롯하여, 나주 하얀집(1910) 등 초창기 식당의 대부분은 주요메뉴가 국밥류다. 국밥을 주로하는 주막의 전통을 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냉면이나 비빔밥이다. 국밥만은 못해도 메뉴 준비가 비교적 경제적인 음식들이다.
이식당은 국밥이 아니고 떡갈비고 한정식이다. 둘 다 주메뉴로 삼은 집이 없다. 아마도 본격적인 식당으로 요새 음식을 해 낸 첫 번째 식당이 아닌가 한다.
주막은 대개 교통의 요지나 시장통에 자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식당은 시장통 중심에 있다. 식당을 중심으로 시장의 블럭이 1자로 이어진다. 시장에서 이런 메뉴로 승부하여 성공했다는 것은 대중성을 잡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힘들겠지만 초심으로 돌아가 근본적인 점검을 통해 명성에 걸맞는 음식을 제공하여 명실상부한 국민식당으로 돌아가기 바란다. 많은 문인들이 기억하고 있고, 자주 많은 글에 올랐다. 이미 문인을 넘어 국민의 식당이 된 지 오래다. 물론 해남에서는 아직도 대표적인 식당으로 얼굴 관광상품이다.
코로나 여파로 잠시 힘들어진 탓이라고 믿고 싶다. 해남의 자존심, 한국의 자존심을 살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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