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누구인가 --
전국의 수많은 마라토너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서울 동아마라톤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러나 나는 다리 부상으로 석 달 넘게 달리기를 못한 상태라 대회 출전은 포기한 상태였다.
이슬람교 신자들이 매년 성지순례하듯 서울 동아마라톤은 대한민국 마라토너들에게 마라톤 성지순례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내가 이런 마라톤 성지순례에 동참하지 못한다면 두고두고 천추의 한으로 남을 것 같아서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중병에 걸려 병석에 누워 있지 않는 한, 매년 3월의 마라톤 순례자가 되려고 거듭 다짐한다. 순례자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음악에 ‘순례자의 합창’이라는 곡이 있다.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 중 순례자의 합창이 나온다. 바그너가 지독한 반유대인이었다고 하고, 나치 독일군은 이 음악(순례자의 합창)을 독가스실에서 틀어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유태인들은 독가스실에서 이 음악을 들으며 죽어간 것이다. 역사상 음악을 악용한 최악의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나치 독일군이 저지른 만행이나 일본군이 중일전쟁이나 태평양전쟁 기간에 저지른 만행이 잔인함 정도를 따진다면 도긴개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전쟁이 끝나고 세월이 흘러 독일은 자신의 조상이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도 하고 적절한 배상까지 했다는데, 일본은 지금까지 왜 저모양인지 모르겠다.
내가 알기로는 일본이라는 나라는 어릴 적부터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교육을 철저히 시킨다는데, 어찌하여 그런 훌륭한 교육이 이웃나라에는 적용이 안 된다는 말인가. 오로지 자국 국민들에게만 해당되는 교육이고, 이웃나라에는 어떠한 피해를 줘도 괜찮다는 말인지 참으로 알 수가 없다.
사실 마라톤(풀코스)은 준비 없이 대들었다가는 목숨까지도 위험한 지경에 빠질 수 있다. 충분한 연습이 없다면 완주하기도 힘들고, 설사 완주하더라도 기록은 형편없게 된다. 그래서 나는 연습도 전혀 못했으니 무슨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가 묘수(정확히 표현한다면 꼼수라고 해야겠지만)를 생각해냈다. 즉, 연습을 못했으니 딱 하프코스까지만 뛰고 그 다음에는 지하철을 타고 잠실까지 와서 하차한 후 마지막 1~2km를 더 달려서 근사한 폼으로 잠실 종합운동장으로 질주해 들어가는 것으로 목표를 세웠다. 그래서 대회 1주일을 남겨두고 딱 4번(4일)만 연습을 했다. 며칠만 연습해도 하프코스 정도는 달릴 자신이 있었다.
내가 누구냐 하면, 나는 계백장군의 후예이고 당당히 마라톤 풀코스를 서브5(마라톤을 5시간 이내에 완주하는 것) 할 수 있는 대한민국 마라토너라는 사실이다. 풀코스 서브5를 아무나 하나? 대한민국 5천만 국민 중에 마라톤 서브5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겨우 수만 명에 불과할 것이다. 이렇게 서브5에 빛나는 내가 아무리 연습을 못했다 할지라도 하프코스 정도는 충분히 뛸 수 있다는 말이다. 더군다나 내가 요즘 술도 끊었지 않나. 아무튼 동아마라톤을 앞두고 대회 3개월 전 기준으로 겨우 네 번 달려보고 출전하는 사람은 아마 나 말고는 없을 것이다.
내가 다리 부상으로 눈물의 재활치료에 매달리고 있다고 전국 교도관 전용 인터넷 카페에 소식을 전하니 어느 독자가 “이번 기회에 독서나 음악 등 다른 취미를 가져보시라”라고 권하는데, 사실 독서는 나의 또 다른 취미이기도 하다. 한 달에 보통 네댓 권은 읽고 있다. 학생 때도 간간이 책은 읽었지만 10여 년 전쯤, 책을 읽으면 치매 예방에 좋다는 어느 신문 기사를 접하고 그때부터 책과 매우 친해지기 시작했다. 열심히 책을 읽으면 나는 치매에 안 걸리고 100살까지는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잘하면 110살까지도......
최근 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을 몇 권 소개한다면, 정여울 작가의 유럽 여행기 『내가 사랑한 유럽 톱10』 은 작가 특유의 문학적 감성이 드러나는 책인데, 덕분에, 간접적으로나마, 유럽 여행 잘했다. 류시화 시인의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은 사색과 철학과 신비의 나라 인도 여행기라고 할 수 있는데, 책이 나온 지 꽤 오래되어 어렵게 책을 구해서 읽었다.
몇 년 전에도 류시화 시인이 쓴 인도 여행기 『지구별 여행자』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류시화 시인은 인도 여행 전문 작가로 봐도 되겠고 류시화 시인이 마치 수도승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심재우 작가가 쓴 『네 죄를 고하여라』는 조선시대의 법률과 형법.형벌에 대해 쓴 책인데, 우리 교도관들에게 잘 맞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여러 명의 저자들이 공동으로 집필한 『침묵과 열광』은 8~9년 전 온 국민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었던 황 모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조작사건을 냉철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분석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엄을순 여사가 쓴 『을쑤니가 사는 법』은 얼마나 재미가 있는지 책 속에 코를 처박고 읽었고 때로는 배꼽을 잡고 떼굴떼굴 구르기도 했다. 엄 여사의 화끈하고 거침없는 인생이 펼쳐지는데, 특히 주부들이 읽으면 꽤 공감할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또한 요즘 내가 읽고 많이 공감한 책은,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인이자 최고의 문필가인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송호근 교수가 쓴 『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였다. 송 교수는 이 책에서 베이비부머(1955년~1963년 사이에 태어난 전후 세대)들이 청춘을 바쳐 일한 직장에서 아무런 노후 대책 없이 밀려나는 서글픈 현실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고찰하고 있다. 그렇다고 책에서 뭐 특별한 처방을 제시하는 건 아니고 저자 자신도 같은 베이비부머로서 공감하고 위로하고 소통하자는 취지의 책이다. 나도 따지고보면 베이비부머 세대의 막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20대 후반의 혈기방장한 나이에 입사했을 때, 나는 절대로 늙지 않을 것이고 청춘은 영원하리라 믿었다. 그런데 내가 방심하는 사이, 세월은 조용히 소리없이 흘러가더니 이제는 젊은 직원들 눈치가 보이는 원로 취급을 받는 입장이 돼버렸다. 이 책에서 송호근 교수는 베이비부머들을 역사적.시대적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즉, 베이비부머들은 우리나라 산업화의 주력부대였으며, 어릴 적부터 가부장적 가치관을 교육받아온 세대라 부모님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고 부모룰 봉양하는 것을 당연한 자식의 도리로 여기며 동시에 자식들에게는 자식들의 성공을 위해 모든 희생을 감수하는 세대라는 것인데, 부모 봉양과 자식 뒷바라지에 헌신하다보니 정작 자신들은 아무런 노후 대책 없이 일터에서 밀려나 쓸쓸히 노후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송 교수의 이런 주장에 대해 나는 충분히 공감한다.
머지 않아 100세 시대가 도래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이 60에 퇴직을 하더라도 40년은 더 살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저자인 송 교수는 퇴직자 또는 퇴직 예정자들에게 요리를 배울 것을 제안하고 있는데, 이 책 226페이지에 실린 글을 인용한다.
--- 요리는 필자가 적극 권하는 취미다. 퇴직자에게 가장 서럽고 귀찮은 것이 식사다. 어지간히 간이 크지 않은 다음에야 아내에게 세끼를 요구하기에는 염치가 없다. 아직 홀로 서지 못한 사람들이 주로 삼식이가 된다. 삼식이는 고령화 단계에 접어드는 순간 아내로부터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할 위험이 크다. ---
요리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나는 결혼생활 2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아내가 해주는 음식이 내 입맛에 맞지 않아 애로사항이 많다. 그래서 툭하면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얻어먹으려고 엄마한테 곧잘 달려간다. 아내가 챠려주는 음식은 위생에 많은 신경을 쓰고 간이 심심하고 건강식이지만 맵고 짜고 얼큰한 맛을 좋아하는 내 입맛하고는 맞지가 않는다. 반면 엄마가 해주시는 음식은, 위생관념은 매우 희박하지만, 얼큰하고 구수하고 매콤한 맛이 내 입맛에 딱 맞아떨어진다. 내가 얼마나 얼큰하고 맵고 간간하고 구수한 음식을 좋아하는지 식당에서 칼국수를 사 먹을 때도 고추장을 한 숟가락 휙 풀어서 칼국수 국물을 벌겋게 물들여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내가 이렇게 맵고 짠 음식을 좋아하니 주위에서는 나더러 성인병 걸리겠다고 걱정하는데, 희한하게도 건강검진 받을 때마다 특별히 이상 있는 곳은 없고 혈압.혈당도 정상이란다. 그것도 ‘매우’ 정상이라고.
나는 엄마가 더 연로하시기 전에 엄마한테 내가 직접 요리를 배우려고 한다. 그래서 내가 나중에 퇴직하면 내가 맛있게 요리해서 아내에게 접대하려고 하는데, 글쎄, 계획대로 잘 될지.....
내가 이렇게 맵고 짠 음식을 먹어대도 멀쩡한 것은, 대표적 유산소 운동인 마라톤을 꾸준히 해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이러니 내가 죽을 둥 살 둥 마라톤에 매달리는 것이다. 이렇게 너저분하게 글을 늘어놓다 보니 주제가 수시로 왔다리갔다리 하는 통에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다고 항의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는데, 미안하지만, 글은 어떻게 쓰든 쓰는 사람 맘이다.
아무튼 준비 안 된 몸을 이끌고 레이스 출발선에 섰다. 이날 날씨는 매우 황사스러운 날씨였다고 할 수 있겠다. 최근 몇 년 동안 서울에서 열린 메이저 마라톤 대회에서 날씨가 좋았던 적이 별로 없었다. 비가 오거나 황사가 찾아왔었다.
오늘 레이스는 서두에서도 밝혔듯 일단 20km까지만 가는 것이다. 레이스를 출발하여 5km 지점을 지나는데도 몸이 전혀 풀리지 않고 무겁기만 하여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다행히 6km 지나면서부터 서서히 몸이 풀리는 것 같아 안심이 되기 시작했고 하프 지점까지는 충분히 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7km 지점에 이르러 내 앞에서 어느 할아버지가 등짝에 “로마는 100세까지 달린다. 로마회장 김종주”라고 써붙이고 달리시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나는 이 어르신 정체가 너무나 궁금하여 견딜 수가 없어 어르신 옆에 바짝 다가가 즉석인터뷰를 시도했다.
“할아버지, 홧팅”
“네, 홧팅”
“할아버지,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87세요“
”100세까지 정말로 달리실 건가요?”
“그럼요”
“할아버지, 홧팅”
“홧팅”
나는 그저 100살까지 살 궁리만 하고 있는데, 이 어르신은 100살까지 마라톤을 하시겠다니 나는 이 어르신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밀겠다. 이렇게 우리 주위에는 고령이시면서도 우리가 깜짝 놀랄만큼 건강 관리를 잘하시는 분들이 계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마라톤 대회장에서 칠마회 석병환 어르신을 자주 뵐 수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이 어르신을 뵐 수가 없다. 석병환 어르신 연세가 80을 훌쩍 넘기셨을 텐데,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이 어르신 몸이 안 좋아지셨다는 소문을 들은 바가 있는데, 부디 대회장에서 다시 뵐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내가 7km 지점에서 김종주 어르신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져 달리다가 10km 지점에서 다시 고비가 왔다. 갑자기 허기가 밀려오고 온몸에서 에너지가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면서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목표로 했던 20km 지점까지 억지로라도 가려고 하다가는 아무래도 쓰러질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배고파서 견딜 수가 없다. 먹을 것이 있는 20km 지점까지 가려면 앞으로도 10km는 더 가야 하는데, 도중에 쓰러져 초상 치를 것 같았다. 물론 내가 언젠가 내 인생 마지막 소원은 ‘달리다가 쓰러져 최후를 맞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렇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난 지금 쓰러지기에는 아직 너무 젊고 할 일이 많다. 자식들 학교 졸업도 시켜야 하고 결혼도 시켜야 하고 손주도 봐야 하고 악기(기타)도 배워서 손주들에게 공연도 해줘야 하고 나중에는 초대 팔마회장도 해야 한다. 그리고 평균 수명은 살고 난 후에 쓰러지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나의 마지막 꿈(뛰다가 쓰러지는 것)과 비슷하게 생을 마감한 어느 할머니에 대한 기사가 외신을 타고 전해졌으니.... 그러니까 작년 11월, 미국 새너제이의 86세 된 조이 존슨이라는 할머니가 8시간 가까운 기록으로 마라톤을 완주하고 다음 날 호텔방에서 누워 쉬던 중 세상을 떠났다는 것인데, 이 할머니는 평소 가족들에게 “달리다가 죽고 싶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이 기사를 접하고 나는 이것이 남의 일이 아니고 내 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물론 눈을 감기 전에 가족들과 짧은 작별의 인사를 나눌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어찌 그런 복까지 바랄 수 있겠나.
10km 지점에서 나는 결국 레이스를 포기했고 지하철에 올라탔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잠실대교 근처 구의역에서 내려서 내가 ‘희망의 다리’라고 명명한 잠실대교를 나의 두 발로 달려 건너가서 잠실운동장 골인 지점까지 가기로 했다. 정말이지 나는 요단강 건너가기 전까지 매년 3월에 저 희망의 다리를 건너가려고 한다. 차 타고 건너가는 게 아니고 튼튼한 나의 두 다리로 달려서 건너가겠다는 말씀이다. 레이스 대열에서 빠져나와 지하철을 타기 위해 패잔병처럼 털레털레 걸어가려니까 마침 그곳에서 교통통제를 하던 어느 경찰관이 친절하게도 나를 지하철 역까지 태워다 주었다. 내가 대회 나가서 언젠가는 지하철을 탈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결국 그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역시 꿈은 이루어지나 보다. 그것이 비록 원치 않는 꿈이라 하더라도.
역시 마라톤은 요행이 안 통한다. 마라톤은 정직한 운동이다. 연습한 만큼 정확하게 기록으로 보상 받고, 나처럼 연습 않고 달리게 되면 이처럼 댓가를 치르게 된다. 다른 운동 종목에서는 경기 중 심판을 속일 수도 있고 또 내가 부진하더라도 팀 동료가 잘하면 커버가 되기도 하지만, 마라톤은 심판을 속일 일도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나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책임지고 해결해야 하는 비정하고 고독하고 인정머리 없는 운동이기도 하다.
구의역에서 하차하여 조금 걸어 잠실대교에 도착하니 너무 이른 시간이라 마스터스 참가자들은 보이지 않고 엘리트 선수들만 간간이 지나갈 뿐이다. 일단 나는 배가 너무 고팠기 때문에 자봉요원으로 보이는 어느 아줌마가 빵.우유를 한 보따리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보고 얼른 빼앗아 배고픔을 해결한 후 잠실대교에서 잠실운동장까지 7km를 천천히 달려 골인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니까 내가 누구냐 하면, 나는 연습 부족으로 애초 목표했던 하프 지점까지도 못 가고 실패한 참가자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누구냐 하면, 나는 오늘 비록 연습 부족으로 완주하지 못하고 지하철 탔지만 결코 기 죽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직 완전히 부상 치료가 끝나지 않았는데,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된다면 예전처럼 다시 죽을 둥 살 둥 달릴 것이다. 훈련도 국가대표 급으로 혹독하게 해서 나의 잃어버린 서브4 기록도 되찾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올가을에 꼭 '가을의 전설'이 되어 화려하게 재기하리라 다짐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 2014년 3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