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대밀종천의 범환대연력
대사막,
작열하는 태양이 사막을 불덩이처럼 태운다.
광활한 모래 벌판은 그늘 한 점 없이 망망대해처럼 가이없다.
하늘 아래 버려진 사막에는 오로지 죽음처럼 황량한 고적감만이
메마른 모래알 위에 감돈다.
한데, 폭염을 고스란히 받으며
일곱개의 인영이 이 대사막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들의 신형은 하나같이 쾌속했고
그들이 지나간 뒤에는 미약한 발자국 하나 남지 않았다.
선두에 선 양인,
긴 장발을 허리에까지 휘감은 칠 척의 깡마른 노인이 그 중 일인이었으며...
다소 창백한 용모의 청년이 그 옆을 따르고 있었다.
노인은 분명 불사천황성의 총상이 된 목극렴이었다.
그렇다면 이 창백한 면모의 청년은..?
바로 변장을 한 용비운이었다.
이미 죽은 것으로만 알려진 그였기에
그는 새로운 신분으로 활동하기 위해 이렇듯 용모를 바꾼 것이었다.
그들 뒤로는 용비운의 시위격인 십대금사 중 오대금사가 따르고 있었다.
용비운은 너무도 지독한 폭염에 고개를 저었다.
"목로, 진정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오?"
그들은 불사천황성의 성주와 총상이 아닌 상종과 노복으로 호칭했다
. 목극렴은 자신 있게 말했다.
"주공, 노신의 기억력은 틀림없소이다
. 대밀종천을 가려면 반드시 이 사막을 지나야 하오."
"목로, 당신은 백 년 전에 겨우 이곳을 한 번 지나친 적이 있다고 하지 않았소?"
"세월은 변했어도 세상은 그대로 있는 법이오."
용비운은 그의 말을 너무 신용한 자신의 실책을 자책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내 좀더 상세한 길을 알아보는 것인데..."
그나마 그는 잔화와 함께 오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는 그녀를 오대금사와 함께 먼저 중원으로 떠나 보낸 것이다.
잔화는 십 개월 동안 엄청나게 변신 해 있었다.
가벼운 미풍에도 쓰러질 것만 같은 나약한 소녀가 아니었다.
과거 오백 년 전 천하를 진동시켰던
구파일방의 십대절학을 가진 대성한 당대의 초절정고수로 성장한 것이다.
용비운은 그녀에게 중대한 임무를 맡길 요량으로
먼저 중원행을 요구한 것이다.
목극렴은 자신이 신뢰받지 못하고 있음을 한탄했다.
"주공께서는 노신을 항상 과소평가 하시고 계시오. 정말 섭섭하외다."
용비운은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그 놈의 과소평가라는 소리 좀 뺄 수 없소?
그런 소리가 듣기 싫으면 과대평가를 받을 만한 행동을 해 보시오."
이때, 목극렴은 무엇을 보았는지 득의에 찬 광소를 터뜨렸다.
"카하하하... 저기를 보시면 노신을 달리 평가하시게 될 것이오."
용비운은 그가 가리킨 남천을 응시했다.
하나, 광대한 모래벌판이 눈에 들어올 뿐
지평선 저쪽에는 폭염에 지친 하늘만이 위치하고 있을 뿐이었다
. 오대금사 역시 아무것도 찾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목극렴은 저 혼자서 가가대소했다.
"저기 초원이 보이지 않소?
저 초원을 넘어서면 바로 대밀종천이 자리하고 있는 수미산이 보이오."
용비운은 냅다 그의 뺨을 갈겼다.
찰-싹!
"어쿠!"
목극렴은 아픈 비명을 토하며 주춤 물러났다.
"아니, 주공 미쳤소?"
목극렴은 어이없이 맞은 것이 분한 듯 흉광을 폭사했다.
용비운은 나직이 혀를 찼다.
"쯧쯧...목로, 다시 한 번 보시오. 저기에 어디 초원이 있소."
"응...?"
목극렴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눈을 부볐다.
하나, 그의 시안에는 끝없는 모래벌판이 보일 뿐이었다.
"아니, 갑자기 왜 초원이 사라졌습니까?"
용비운은 낭랑히 웃었다.
"미친 사람은 바로 당신이오.
당신은 지금 신기루를 본 것이오.
아마도 무척 피로한가 보오.
내 만일 미리 일깨워 주지 않았다면
당신은 미쳐서 모래를 물로 알고 퍼마셨을 것이오.:
"음..."
목극렴은 반박할 도리가 없자 쓴 입맛을 다시며 오대금사를 홱 쳐다보았다
. 어떻게
화풀이를 할 트집을 잡기 위해서였다.
오대금사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그와 시선이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 이때, 용비운이 서편 저쪽을 가리켰다.
"오, 저기 초원이 보이는군."
목극렴은 그의 말을 듣고는 서천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 일순, 그의 입가에 득의의 괴소가 피어올랐다.
(흐흐.. 이제 내가 보복할 차례군.)
그는 용비운의 볼을 노리며 일수를 휘둘렀다.
"용서하시오...응...?"
하나, 그는 용비운의 반사적인 보법에 허공만을 치게 되었다.
"무슨 짓이오. 목로."
용비운은 안색을 굳히며 일갈했다
. 목극렴은 그의 뺨을 때리지 못한 것이 못내 한스러운 듯
계속 허공에 일수를 그었다.
"주공, 저곳에 어디 초원이 있다는 것이오?
그러니 주공도 신기루를 본 것이 틀림없소.
그래서 정신을 차리게 하려.."
용비운은 고개를 저었다.
"목로, 오늘 대체 왜 이러시는 것이오? 저기 초원이 보이지 않소?"
목극렴은 다시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이 말씀드려라. 참, 주공도 어지간하시오."
한데, 오대금사는 정중히 아뢰었다.
"노사, 주공의 말씀대로 초원이 보입니다."
목극렴은 입가에 서린 웃음이 대번에 사라졌다.
그는 다시 서천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아니 이것이 대체 어찌된 일이냐?
분명 잠시 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용비운은 그의 등판을 탁탁 두드렸다.
"목로, 당신은 조금전 풍사에 의해 초원을 보지 못한 것이오..
.이래도 과대평가 해드려야 겠소?"
목극렴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아니오, 주공...노신은 역시... 과소평가를 받아야 하오."
그 말에 일행은 잠시 폭염을 잊고 폭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푸하하하하..."
한데, 함께 웃던 목극렴은 별안간 웃음을 뚝 그치며 오대금사를 쏘아보았다.
"너희들은 웃지 마라!"
그의 일갈에 오대금사는 입을 다물며 자세를 고쳤다.
목극렴은 그들을 예리하게 훑었다.
"건방진 것들..사문의 대존장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감히 뉘 앞이라고 방자한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냐?"
오대금사는 그의 노여움이 미칠까 두려워 고개를 떨구었다.
목극렴은 일수를 치켜올렸다.
"뭣들 하는 것이냐?
어서 대밀종천의 문을 활짝 열고
천마공자를 맞을 채비를 갖추라 전하지 않고!"
그제서야 오대금사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일제히 복명했다.
"예, 초..아니, 노사."
그들은 날렵히 신형을 날려 서편 멀리에 보이는 초원으로 달려갔다.
용비운은 엄지를 치켜보였다.
"하하...목로의 수하 다루는 솜씨는 일품이오."
"카하.. 가시지요, 주공."
목극렴은 오랜만에 받은 칭찬에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앞장을 섰다.
수미산 기슭,
운무를 뚫고 솟은 거산의 기슭은 부채를 펼쳐 놓은 듯 수려했다.
그 중앙에는 거대한 사원이 장중한 기운 속에 펼쳐져 있었으니..
담장은 높아 성곽을 방불케 했고,
곳곳의 첨탑과 반원형 지붕을 지닌 건축물들이
이국의 냄새를 물씬 풍겨냈다.
<대밀종천.>
이곳이 바로 라마교의 총본산이자
서장과 신강을 지배하는 서역무림의 최강무단이었다.
서장과 신강의 열 여덟개의 대사찰이 이곳 대밀종천의 영을 받으니.
대법와이라 불리우는 대밀종천주는
서역 무림에서 신불처럼 숭배되고 있다.
백 년 이래 변황제일인으로 군림하는 변황천불 범패륵,
그의 존재는 서역인들에게 있어 영원한 우상이며
서역인들의 긍지였다.
콰-콰콰쾅!
퍼퍼퍼퍼펑!
신성시 되는 대밀종천 사원 밖에서
엄청난 폭음이 잇따라 터져 오르고 있었다.
정문을 등지고 반원형으로 포진하고 있는 수천의 라마승
, 유난히 침통한 안색을 짓고 있는 그들의 얼굴에는
차디찬 노기가 물씬 피어오르고 있었다.
오대금사,
그들은 적지의 위험도 마다한 채 대밀종천 휘하
십팔개사의 다섯 주지들과 살벌한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홍의가사를 걸친 노라마들은 승포를 휘날리며 침통한 안색을 짓고
오대금사를 향해 맹렬한 공세를 펼쳤다.
하나, 중원 최강 천마지맥의 오대금사제자들은
그들을 맞아 여유 있게 국면을 이끌어 가고 있었다.
"크흐흐.. 대밀종천이 겨우 이 정도에 불과하단 말인가?"
"어서 범패륵을 볼러 와 곧 당도하실 천마공자를 알현하도록 하여라!"
대밀종천의 진영에서는 이들의 격전을 응시하며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대체 이들은 누구이기에 사대존자 다음 가는 십팔대법사를 능가하는가?)
금발 갈안의 미청년은 팔짱을 낀 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범패륵의 제자 아목함,
그의 입가에 가는 경련이 일었다.
(중원에 십이대천마가 있다는데 이들이 혹시 그들이 아닐까?)
그의 생각은 그들의 상전을 운운하는 말로 이어졌다.
(이렇듯 막강한 자들을 수하로 부리는 인물은 디체 누구인가?)
이때, 사대존자가 그 뒤로 다가섰다.
"소천주, 노신들이 나서 보겠소."
맨발에 묵의가사를 걸친 그들은 금강역사처럼 우람해 보였다.
아목함은 고개를 저었다.
"저들의 상전이 무슨 이유로 본천을 찾아 왔는지 먼저 알아보기로 합시다.
지금 우리는 본천의 최대 불행을
어떻게 감당해 나가야 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소."
사대존자는 얼굴 근육을 파르르 떨며 한 걸음 물러섰다
. 이때,
"멈춰라!"
천지를 진동하는 폭갈과 함께 목극렴과 용비운이 장내에 내려섰다
. 오대금사는 용비운 앞에 부복했다.
"주공, 속하들의 능력이 부족하여 범패륵을 끌어내지 못하였소이다."
용비운은 가볍게 소매를 떨쳐 그들을 일으켜 세웠다.
"저들이 나를 몰랐던 것이니 그대들은 죄를 지은 것이 아니다.
물러서 있거라."
"주공의 은혜에 감사드리오."
오대금사는 공손히 예를 표하고는 그의 뒤로 가 시립해 섰다.
목극렴은 과거의 원한이 되살아난 듯 살벌한 광기를 피워냈다.
"범패륵은 어디에 있느냐? 어서 나와 일전을 겨워보자."
이에 아목함이 분연히 앞으로 나섰다.
"귀하는 너무 무례하군.
감히 사부님의 존명을 함부로 입에 담다니.."
목극렴이 그를 안중에 둘 리가 만무했다.
"이 계집애같이 생긴 녀석아! 어서 네 사부더러 나오라 해라!
노부 절대패왕이 백 년 전의 빛을 청산하고자 왔노라고 전하라!"
아목함은 가슴이 진탕되는 세찬 충격을 느꼈다.
"절.대패왕..? 귀하가. 백 년 전 사부님과 일만 초를 겨룬
중원의 광마 절대패왕이란 말이오?"
목극렴은 괴소를 흘렸다.
"크흐흐...이 자식, 복잡하게 묻는군. 그렇다. 본좌가 절대패왕이다."
이때, 아목함의 눈짓을 받은 사대존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과거 두 초인들의 격돌을 유일하게 관전했던 인물들이다.
"시주가 진정 패왕이라면 우리들을 기억하시겠소?"
목극렴은 그들을 빠르게 훑어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너희들의 형상으로 보아 범패륵의 시종들이었던 사대금강같구나."
사대존자는 예를 취했다.
"틀림없는 패왕이시오."
"변황천불은 어디에 있느냐?"
목극렴은 그들의 예는 거들떠 보지도 않으며 외쳐 물었다.
사대존자는 난색을 표명하며 고개를 저었다.
"대법왕께서는 갑자기 출타하셨기에 어디에 계신지 알 수가 없소.
패왕께서는 수고스럽지만 훗날 한번 더 찾아오셔야 겠소."
"나오라 전해라."
목극렴은 광오한 대소를 터뜨렸다.
한데 이때, 아목함이 환상처럼 날아들며 쌍수를 홱 뒤집였다.
"범황대수천인!"
콰..르르르... 목극렴은 두 개의 거대한 수인의 공세에 일순 당황했다.
하나, 그는 희대의 고수답게 반사적인 방어능력이 뛰어났다.
"천마혈옥수!"
그의 쌍수가 팔꿈치까지 투명한 혈색으로 변하며
허공에 일천 개의 수영을 작렬시켰다.
밀종과 천마의 절학의 충돌, 꽈꽝! 천지가 개벽하는가?
짙은 흙먼지가 돌풍에 휘말려 허공 수십 장 높이까지 두텁게 뒤덮었다.
사방으로 휘몰아치는 경기에 라마승들은 갈대처럼 휘청였다.
실로 엄청난 격돌이었다.
"크으으..감히 기습을 하다니..찢어 죽이리라!"
오기로써 버틴 목극렴은 극도의 노기에 불꽃 같은 마기를 뿜어냈다
. 아목함은 아홉 바퀴를 선회해 사뿐히 내려섰다.
"패왕, 본천에는 사람이 없는 줄 아시오?"
목극렴은 마화를 뿜어내며 그에게로 다가섰다.
"오냐, 네 놈을 까뒤집어 진짜 사람인가 보겠다
. 이 젖비린내 나는 자식아!"
아목함은 느긋이 팔짱을 꼈다.
"패왕, 만일 귀하가 사대존자의 범환대연력을 받아낼 수 있다면
사부님을 출관하시게 하겠소."
범환대연력!
이것은 일종의 독문절예로 일명 파천의 합격술이라 불리운다.
사인이 사상의 위치를 접하고,
여덟개의 손이 팔방을 동시에 공격하는 절대필승의 범환대연력...
서역사상, 아직 범환대연력을 능가하는 합격술은 없었으며
, 또 이것을 받아낸 사람도 없다고 전해지는 가공할 위력의 밀학이었다
. 목극렴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두려워 거부할 인물은 아니었다.
"오냐, 어서 범환대연력을 펄쳐라!
어디 서역사상 최강의 합격술이라는 잡학을 견식해 보겠다. "
이때, 용비운이 그 옆에 내려섰다.
"목로, 비켜 서시오. 내가 받아보겠소."
"아니오, 주공. 이것은 노부의 일이오."
목극렴은 단호히 거절했다.
용비운은 안색을 굳혔다.
"종사의 길은 아무도 막지 못하는 것이라 알고 있는데...?"
목극렴은 잠시 그를 응시하고는 묵묵히 비켜섰다.
"거 갑자기 종사란 말씀은 왜 하시오?"
용비운은 위로조로 한 마디 던졌다.
"대신, 변황천불과의 대전의 우선권은 넘겨 주겠소."
목극렴은 그제서야 꽁한 마음을 풀며 대소를 터뜨렸다.
"카하하... 진작에 그러실 일이지."
용비운은 사대존자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나는 천마공자라 하오. 그대들의 범환대연력을 받아보겠소."
사대존자는 그의 전신에 서린 범상치 못할 기도에 내심 경각심을 높었다.
(가히 대법왕과 비교되는 인물이다.)
(절대패왕을 종복으로 둘 정도라면 그 내력이 어마어마한 것이다.)
사대존자는 심각한 표정으로 사상의 위치를 잡고 섰다
. 용비운은 아목함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목함, 당신의 여동생인 사라는 왜 보이지 않소?"
아목함은 창백한 면모의 신비청년이
자신과 여동생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나, 자신들이 십 개월 전 천각봉 대전에서 모습을 보였기에
자신들의 명성이 중원에 널리 알려진 것을 생각하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그것은 왜 물으시오?"
"당신의 안색이 매우 어둡소.
또한 당신들 모두의 얼굴에 깊은 수심이 깃들어 있소.
아마도 대밀종천에 무슨 불상사가 생긴 것이 틀림없는 것 같소."
아목함은 그의 예리한 관찰력에 일시 어떻게 응대해야 할지 몰랐다.
용비운은 그의 표정에서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는 것을 확실할 수가 있었다.
"나는 본래 변황천불과 자웅을 겨루기 위해 이곳을 멀리까지 온 것이오
. 하나 내가 범환대연력을 감당해 내지 못한다면 그대로 돌아가겠소."
"하나, 다행히 범환대연력을 감당해 냈다면
지금 대밀종천에 생긴 불상사에 대해 말해 주셔야겠소."
용비운은 당당히 조건을 내걸었다.
아목함은 잠시 숙고했다.
(이들의 태도로 보아 본천 전체와도 겨룰 심사인 것 같군..
뛰어난지 모르지만 범환대연력은 불패의 합격술이다.
그렇다면 조건을 수락하는 것이 낫겠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당신이 범환대연력을 막아낼 경우 모든 사실을 밝히겠소.:
용비운은 커다란 소매를 팔목에 감았다.
"잘 생각했소."
정적..
그의 쌍수가 가슴 앞에서 열십자로 교차했다.
장내를 둘러싼 중인들은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대격돌의 전개를 주시 중이었다.
사대존자의 쌍수가 각기 천지로 갈라졌다.
그들의 묵색 법의가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
슈슈슈슈..
그들의 전신에서는 짙은 자색 기류가 피어오르며 거대한 강막을 형성해 갔다.
(음... 내가 이들 사 인의 합친 공력보다 뛰어나지 못하기에
절대 힘으로 맞부딪쳐서는 안된다.
기학...그렇지.)
용비운은 휘감아 쥔 소맷자락을 서서히 풀며 빳빳하게 세웠다.
일순, 사대존자의 폭갈이 자색 강막 안에서 터져 나오며
어마어마한 진기의 폭출이 시작됐다.
"범환대연력!"
꽈...르르르르... 우우우우웅...
해일처럼 밀려드는 자색강막...
용비운은 엄청난 중압감에 전신의 혈관이 터질 것만 같았다.
무려 십갑자의 공력이 단숨에 그의 경맥을 조여 온 것이다.
그는 빳빳이 세운 소매를 휘저으며 전신을 빙그르르 둘렸다.
번뇌 어린 승무처럼 그의 유연한 동작은
도저히 범환대연력의 가공할 암경을 감당해 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 한데, 그의 넓은 소맷자락은
기묘하게 범환대연력의 강막 사이를 헤집고 들어섰다.
파파파파팟!
그토록 강력한 자색 강막이 거미줄과 같은 균열을 일으켰다.
곁을 따라 파고 드는 그의 신수에 번환대연력은 여지없이 폭발해 버렸다.
콰-콰-콰-쾅!
대지는 지진이 일어난 듯 신음했고,
하늘은 강풍에 놀라 빛을 잃었다.
사위로 흩어져 나가는 막강한 암경에
비교적 공력이 약한 라마승들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끄으으윽!"
"으으윽..."
사대존자는 가슴을 움켜쥐며 비틀비틀 물러섰다.
그들은 서로의 공력이 격돌하는 충격에 상당한 내상을 입은 듯
검붉은 선혈을 꾸역꾸역 토해냈다
. 한데, 놀랍게도 용비운은 조금의 부상도 없었다.
그는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선 채 엷은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범천신수의 위력은 불가사의하군.)
그는 범천패엽진경의 기학을 이용하여
가공할 범환대연력을 격파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어떤 무학이라도 파훼할수 있다는 파멸의 소맷자락,
그랬기에 그는 부상없이도 쉽게 승리할 수 있었다.
"하하하... 아목함, 이제 대밀종천의 불상사가 무엇인지 들어야 겠소."
아목함은 믿었던 범환대연력이 이토록 어이없이 무너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무..물론 말씀 드리겠소."
그의 얼굴은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사문의 수치!
이것이 외부인에게 알려진다는 것은 참기 어려운 수모가 아닐 수 없었기에...
용비운은 그의 심정을 간파하며 부드럽게 한마디 던졌다.
"누가 알겠소? 대밀종천에 득이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