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고(古)의 것을 변별(辨)하다
진무택(陳無擇)의 삼인방([三因方])에 이르기를 "학(瘧)은 삼인(三因)을 갖추었다. 외(外)로는 사기(四氣)를 감(感)하거나, 내(內)로는 칠정(七情)을 동(動)하거나, 음식(飮食)의 기포(飢飽)나, 방실(房室), 노일(勞逸)이 모두 이에 이를 수 있게 한다.
경(經)에서 말한 '하(夏)에 서(暑)에 상(傷)하면 추(秋)에 해학(痎瘧)이 된다.'는 것은 시(時)로 인하여 서술(敍)한 것일 뿐이지, 전적(專)으로 이것으로만 논(論)하면 안 된다.
외인(外因)의 증(證): 한학(寒瘧) 온학(溫瘧) 단학(癉瘧)이 있으니 모두 소문([素問])에서와 같다. 또 습학(濕瘧)이 있는데, 한열(寒熱) 신중(身重)하고 골절(骨節)이 번동(煩疼)하며 창만(脹滿) 자한(自汗)하며 잘 구(嘔)한다. 이는 ①한출(汗出)에 다시 목욕(:浴)하므로 인하여 습(濕)이 피부(皮膚)에 사(舍)하거나 우습(雨濕)을 모(冒)하였기 때문이다. 또 빈학(牝瘧)이 있는데 한(寒)이 많고 ②열(熱)하지 않으며 다만 참척(慘戚) 진률(振慄)하고 병(病)이 시(時)로 작(作)하니, 이는 대부분 음습(陰濕)을 감(感)하여 양(陽)이 음(陰)을 제(制)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5종(種)의 학질(瘧疾)은 풍한서습(風寒暑濕)을 외감(外感)하고는 위기(衛氣)와 서로 병(幷)하여 된 것이다.
단학(癉瘧)은 오직 열(熱)하고, 온학(溫瘧)은 먼저 열(熱)하며, 빈학(牝瘧)은 열(熱)이 없다는 것을 제외(除外)하고는 여러 학(瘧)들은 모두 먼저 한(寒)하고 나중에 열(熱)하다.
내인(內因)의 증(證): 병자(病者)에 쌓인 노(怒)로 간(肝)을 상(傷)하여 기(氣)가 울(鬱)한 소치이면 이를 명(名)하여 간학(肝瘧)이라 하고, 희(喜)로 심(心)을 상(傷)하여 심기(心氣)가 모산(耗散)한 소치이면 이를 명(名)하여 심학(心瘧)이라 하며, 사(思)로 비(脾)를 상(傷)하여 기울(氣鬱)하고 연결(涎結)한 소치이면 이를 명(名)하여 비학(脾瘧)이라 하고, 우(憂)로 폐(肺)를 상(傷)하여 폐기(肺氣)가 응담(凝痰)한 소치이면 이를 명(名)하여 폐학(肺瘧)이라 하며, 실지(失志)로 신(腎)을 상(傷)한 소치이면 이를 명(名)하여 신학(腎瘧)이라 한다. ③이르게 되는 증(證)은 소문([素問])에서와 같다.
이 5종의 학질(瘧疾)은 감(感)한 기(氣)가 불화(不和)하므로 ④담음(痰飮)이 울결(鬱結)한 소치(所致)이다.
불내외인(不內外因)의 증(證): 역학(疫瘧)이 있으니 일 년(:一歲) 사이에 장유(長幼)의 증(證)이 서로 비슷하다. 귀학(鬼瘧)이 있으니 ⑤몽매(夢寐)가 상서롭지(:祥) 못하고 공포(恐怖)가 많이 생(生)한다. 장학(瘴瘧)이 있으니 사열(乍熱) 사한(乍寒)하고 사유(乍有) 사무(乍無)하며 남방(南方)에 이 병(病)이 많다. 위학(胃瘧)이 있으니 ⑥음식(飮食)의 기포(飢飽)로 위(胃)를 상(傷)하여 되니, 세(世)에서 말하는 식학(食瘧)이다. 노학(勞瘧)이 있으니 해(:年)를 지나도 낫지 않고 그 (시기의) 전후(前後)로 다시 발(發)하며 가벼운 노동(勞)조차도 맡기지(:任) 못한다. 또한 수년(數年)에도 낫지 않고 결(結)하여 복협(腹脇)에 징벽(癥癖)이 된 것도 있으니 이를 명(名)하여 노학(老瘧)이라 한다. 또한 모학(母瘧)이라고도 한다.
이상의 제증(諸證)은 각기 그 방치(方治)가 있으니, 마땅히 유추(推)하여 이를 사용(用)하여야 한다." 하니라.
내(:愚)가 말한다.
학질(瘧疾) 일증(一證)은 내경([內經])에서 이미 상세(詳)히 다 말하였으니, 추가(加)할 것이 없다. 그런데 후세(後世)에 의론(議論)이 번다(煩多: 번잡하고 다단하다)하므로 도리어 의심(:疑貳 의심하여 딴 마음을 품다)만 더하게(:資) 되었다.
이에 진씨(陳氏)의 삼인설(三因說)을 들어서 그 개요(槪)를 알아보고자 한다.
'①습학(濕瘧)이란 한출(汗出)에 다시 목욕(:浴)하므로 인하여 습(濕)이 피부(皮膚)에 사(舍)한 것이다.'는 말은 진실로 일설(一說)이다. 그런데 열탕(熱湯)에 목욕(浴)하고, 풍(風)이 부는 곳(:處)을 피(避)하였다면 단연코(斷) 학(瘧)에 이르지 않으니, 오직 냉수(冷水)의 더함으로 학(瘧)이 되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곧 한기(寒氣)이니, 곧 내경([內經])에서 말한 '하(夏)에 처창(淒滄)한 수한(水寒)를 만난 증(證)'이다. 이는 서로 근사(近似)하니, 단지 한열(寒熱)만 분명(明)하게 분별(辨)될 뿐이다.
'②빈학(牝瘧)은 열(熱)이 없다.'에 있어서, 내경([內經])에서는 이러한 설(說)이 없고, 오직 금궤요략([金匱要略])에서 이르기를 '학(瘧)에 한(寒)이 많으면 이를 명(名)하여 빈학(牝瘧)이라 하니 촉칠산(蜀漆散)으로 주(主)한다.' 하였는데, 이 또한 '열(熱)이 없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만약 전혀(全) 발열(發熱)이 없고 단지 한률(寒慄)만 보인다면 이는 진한(眞寒) 양허(陽虛)의 증(證)일 뿐이다. 이는 따로 본문(本門)이 있으니, 이 또한 어찌 학(瘧)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게다가 내인(內因)의 오장(五臟)의 학(瘧)에 있어서, 내경([內經]) 자학론(<刺瘧論>)에서 말한 육경(六經) 오장(五臟)의 증(證)은 그 사기(邪)가 어느 경(經)에 있는지를 변별(辨)한 것에 불과(不過)할 뿐이고, 원래 '칠정(七情)에 상(傷)하면 바로 학(瘧)이 된다.'는 말은 아니다. 여기서 '③이르게 되는 증(證)은 소문([素問])에서와 같다.'고 하였지만 소문([素問])에는 이 설(說)이 없다. 또 '칠정(七情)에 상(傷)한 것'이라고 말하였으면 그 허실(虛實)에 크게 차이(:不同)가 있는데, 어찌 모두 ④담음(痰飮)으로 인한 소치(所致)라 하였는가?
게다가 만약 불내외인(不內外因)의 경우 대개 귀학(鬼瘧) ⑤몽매(夢寐)의 설(說)에서 이는 혹 학사(瘧邪)가 신(神)을 난(亂)하게 하므로 인하여 광언(狂言)에 이르는 것이 귀(鬼)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어찌 귀수(鬼祟)가 과연 학(瘧)이 되겠는가?
위학(胃瘧)에서는 ⑥음식(飮食)을 말하므로 분명(明)하게 내상(內傷)이다. 또 대개 먼저 학(瘧)으로 인(因)하고 그 후(後)에 식(食)에 체(滯)한 경우는 있을 수 있겠지만, 외사(外邪)로 인하지 않고 단지 식학(食瘧)만 있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병정(病情)에는 반드시 표본(標本)이 있으니, 표본(標本)을 오인(誤認)하면 그 치료(治)에 어찌 어긋남(:差)이 없겠는가? 진씨(陳氏)의 말을 살짝 논(:計)하여 보자면, 삼인(三因)으로 입론(立論)하였으므로 그 설(說)을 부연(敷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화려(:燁然)하게 보일 수는 있어도, 이에 영향(影響)을 받은 말(:談)들은 병(病)에 무익(無益)할 뿐만 아니라 또한 사람의 의견(意見)을 어지럽혀서 임증(臨證)할 때 호의(狐疑: 의심되고 헷갈리다)하여 따를 바를 알지 못하게 하고 매번 해(害)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니, 이는 모두 그러한 류(類)이다.
단계(丹溪)는 이르기를 "학(瘧)에는 서(暑) 풍(風) 습(濕) ⑦담(痰) 식적(食積)이 있다. 오래 발(發)하면 노학(老瘧)이고 낫지 않으면 학모(瘧母)이다. 풍서(風暑)의 학(瘧)은 대부분 하월(夏月)에 풍량(風凉)한 곳에서 쉼(:歇)으로 인하여 결국 폐(閉)하여 한(汗)이 설(泄)하지 못하고, 서(暑)가 내(內)에 사(舍)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대법(大法)은 당연히 발한(汗)하여야 한다. 학(瘧)하면서 음식(飮食)을 싫어하면(:惡) 반드시 음식(飮食)으로 얻은 것이니, 마땅히 식(食)으로 치료(治)하여야 한다. 세속(俗)에서 비한(脾寒)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그 명(名)으로 인하여 실재(實)을 미혹(迷)시킨다. 하물며 음식(飮食)에 상(傷)하므로 인하여 얻었다면 반드시 한(寒)인 것은 아니니, 하물며 다른 경우는 (어떠하겠는가)?" 하니라.
엄용화(嚴用和)는 이르기를 "양(凉)할 때에 냉(冷)한 것을 음(飮)하고 풍(風)을 맞으며 습(濕)한 곳에 와(臥)하며 기포(飢飽)로 그 시(時)를 실(失)하면 비위(脾胃)의 불화(不和)에 이르러 담(痰)이 중완(中脘)에 적(積)하여 마침내 이 질병(疾)이 된다. 이는 '⑧담(痰)이 없으면 학질(瘧疾)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니라.
장자화(張子和)는 이르기를 "내경([內經])에서는 '하(夏)에 서(暑)에 상(傷)하면 학(瘧)이 된다.'고 하였는데, 어째서 세의(世醫)들은 모두 비한(脾寒)으로 여기고 이를 치(治)하면서 건강(薑) 부자(附) 유황(硫黃)의 종류(類)를 사용(用)하는가? 심(甚)하면 ⑨수괴(祟怪)로도 귀결(歸)시키니, 참으로 가소(可笑)롭도다! 또한 하월(夏月)의 생랭(生冷)한 종류(類)를 음식(飮食)하므로 인하면 ⑩식학(食瘧)이라고 지칭(指)하니, 이 또한 틀린 것이다. 내경([內經])의 논(論)이 그렇지 않다고 하는데 어찌 이를 알겠는가?
모두 하(夏)에 서(暑)에 상(傷)하고 추(秋)에 풍한(風寒)을 만난 후(後)에 작(作)하는 것이다. ⑫사열(邪熱)이 천(淺)하면 연일(連日)로 하고, 사열(邪熱)이 심(深)하면 간일(間日)로 하며, 리(裏)에 병입(幷入)하면 한(寒)하고, 표(表)에 병입(幷入)하면 열(熱)한다. 이 논(論)과 같다면 비(脾)와 전혀 상관(:干)되지 않는다.
⑪태평(:治平)한 시절(時)에는 그 백성들이 평안(:夷靜)하여 비록 비석(砒石) 진사(辰砂)와 같은 유독(有毒)한 약물(藥)을 사용하고 열(熱)로 열(熱)을 치(治)하여도 효(效)를 취할 수 있다. 어지러운(:擾攘) 시절(時)에는 그 백성들이 노고(勞苦)하므로 내화(內火)와 외화(外火)가 모두 동(動)하니 열(熱)로 열(熱)을 공(攻)하면 전(轉)하여 사리(瀉痢) 토혈(吐血) 창양(瘡瘍) 구토(嘔吐)의 질병(疾)이 되니, 어찌 평안(:夷靜)한 사람들과 같이 치(治)할 수 있겠는가?
나는 ⑭예전에 장중경(:張長沙)의 한토하(汗吐下) 삼법(三法)을 사용하여 학병(瘧病)을 낫게 한 경우가 극(極)히 많았다. ⑮이를 비한(脾寒)으로 잘못(:錯) 보고 이를 치(治)하는 것은 크게 기(忌)하여야 한다." 하니라.
내가 말한다.
학질(瘧疾)이 되는 것은 본래 풍한(風寒) 수습(水濕)의 사기(邪)에 감(感)하므로 말미암아 병(病)에 이른 것이다. 또 풍(風)이나 수(水)가 아니어도 옷이 얇은데 양(凉)을 받은 경우 대개 체(體)가 겁(怯)한 자는 모두 학(瘧)이 될 수 있다. 그 병(病)이 깊으면(:深) 경(經)에서 장(臟)에 미치게 되고, 표(表)에서 리(裏)에 미치게 되는 것을 면(免)하지 못한다. 따라서 음식(飮食)에 신중(:愼)하지 않아 더 심(甚)하게 되거나 노역(勞役)에 신중(愼)하지 않아 병(病)이 더하게(:增) 되더라도 결국은 외사(外邪)가 본(本)이 아님이 없다. 어찌 식(食)으로 인하거나 담(痰)으로 인하여 학(瘧)이 될 수 있겠는가?
지금 주단계(朱丹溪)의 말을 보건대, 또한 ⑦담(痰) 식(食)을 아울러 열거(:列)하였고, 엄용화(嚴用和)는 ⑧담(痰)으로 모두 귀결(歸)시켰다. 대개 이들은 모두 진씨(陳氏)의 설(說)로 인한 것이니, 내경([內經])의 바른 의미(意)를 한참(:殊) 잃은 것이다.
따라서 장자화(張子和)도 또한 '수괴(祟怪)로 여기니 가소(可笑)롭다!' 하였고, '⑩식학(食瘧)은 아니다.' 하였으며, '⑪태평(:治平)하거나 어지러운(:擾攘) 시절(時)로 나누어 치(治)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모두 이치(理)가 있는 확고(確)한 견해(見)이다.
다만 괴이(怪)한 것은 '⑫서(暑)는 화(火)이다.' 하거나 또 '⑬어지러운(:擾攘) 시절(時)에는 그 백성들이 노고(勞苦)를 하니 ⑮이를 비한(脾寒)으로 잘못(:錯 보고 치(治)하는 것을 크게 기(忌)한다.' 하면서 '⑭일찍이 한토하(汗吐下)의 삼법(三法)을 사용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런 말들도 편견(偏見)에 속(屬)하는 것으로 우려(:恐)된다.
생각해 보건대, 나는 다행히 명(明)의 성대(盛)한 시절을 만나 진실로 어지러운(:擾攘) 모습(:景象)에 대해 잘 모른다. 다만 노고(勞苦)에 과(過)하게 상(傷)한 사람이라면 그 허(虛)가 더 심(甚)할 것이니, 어찌 삼양(三陽)의 피손(疲損) 등의 증(增)이 없겠는가? 이를 모두 '⑫화(火)'라고 말하면서 모두 ⑭한토하(汗吐下) 삼법(三法)을 쓸 수 있겠는가? 심(甚)하도다! 주장하는(:立) 말들(:言)의 어지러움(:亂)이여!
이로써 보건대 시중(時中: 때에 맞다)을 얻기가 이와 같이 쉽지 않다.
첫댓글 진무택(陳無擇)의 삼인방([三因方])
'①습학(濕瘧)이란 한출(汗出)에 다시 목욕(:浴)하므로 인하여 습(濕)이 피부(皮膚)에 사(舍)한 것이다.'는 말은 진실로 일설(一說)이다. 그런데 열탕(熱湯)에 목욕(浴)하고, 풍(風)이 부는 곳(:處)을 피(避)하였다면 단연코(斷) 학(瘧)에 이르지 않으니, 오직 냉수(冷水)의 더함으로 학(瘧)이 되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곧 한기(寒氣)이니, 곧 내경([內經])에서 말한 '하(夏)에 처창(淒滄)한 수한(水寒)를 만난 증(證)'이다. 이는 서로 근사(近似)하니, 단지 한열(寒熱)만 분명(明)하게 분별(辨)될 뿐이다.
'②빈학(牝瘧)은 열(熱)이 없다.'에 있어서, 내경([內經])에서는 이러한 설(說)이 없고, 오직 금궤요략([金匱要略])에서 이르기를 '학(瘧)에 한(寒)이 많으면 이를 명(名)하여 빈학(牝瘧)이라 하니 촉칠산(蜀漆散)으로 주(主)한다.' 하였는데, 이 또한 '열(熱)이 없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만약 전혀(全) 발열(發熱)이 없고 단지 한률(寒慄)만 보인다면 이는 진한(眞寒) 양허(陽虛)의 증(證)일 뿐이다. 이는 따로 본문(本門)이 있으니, 이 또한 어찌 학(瘧)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게다가 내인(內因)의 오장(五臟)의 학(瘧)에 있어서, 내경([內經]) 자학론(<刺瘧論>)에서 말한 육경(六經) 오장(五臟)의 증(證)은 그 사기(邪)가 어느 경(經)에 있는지를 변별(辨)한 것에 불과(不過)할 뿐이고, 원래 '칠정(七情)에 상(傷)하면 바로 학(瘧)이 된다.'는 말은 아니다. 여기서 '③이르게 되는 증(證)은 소문([素問])에서와 같다.'고 하였지만 소문([素問])에는 이 설(說)이 없다. 또 '칠정(七情)에 상(傷)한 것'이라고 말하였으면 그 허실(虛實)에 크게 차이(:不同)가 있는데, 어찌 모두 ④담음(痰飮)으로 인한 소치(所致)라 하였는가?
게다가 만약 불내외인(不內外因)의 경우 대개 귀학(鬼瘧) ⑤몽매(夢寐)의 설(說)에서 이는 혹 학사(瘧邪)가 신(神)을 난(亂)하게 하므로 인하여 광언(狂言)에 이르는 것이 귀(鬼)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어찌 귀수(鬼祟)가 과연 학(瘧)이 되겠는가?
위학(胃瘧)에서는 ⑥음식(飮食)을 말하므로 분명(明)하게 내상(內傷)이다. 또 대개 먼저 학(瘧)으로 인(因)하고 그 후(後)에 식(食)에 체(滯)한 경우는 있을 수 있겠지만, 외사(外邪)로 인하지 않고 단지 식학(食瘧)만 있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병정(病情)에는 반드시 표본(標本)이 있으니, 표본(標本)을 오인(誤認)하면 그 치료(治)에 어찌 어긋남(:差)이 없겠는가? 진씨(陳氏)의 말을 살짝 논(:計)하여 보자면, 삼인(三因)으로 입론(立論)하였으므로 그 설(說)을 부연(敷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화려(:燁然)하게 보일 수는 있어도, 이에 영향(影響)을 받은 말(:談)들은 병(病)에 무익(無益)할 뿐만 아니라 또한 사람의 의견(意見)을 어지럽혀서 임증(臨證)할 때 호의(狐疑: 의심되고 헷갈리다)하여 따를 바를 알지 못하게 하고 매번 해(害)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니, 이는 모두 그러한 류(類)이다.
단계(丹溪)
엄용화(嚴用和)
장자화(張子和)
학질(瘧疾)이 되는 것은 본래 풍한(風寒) 수습(水濕)의 사기(邪)에 감(感)하므로 말미암아 병(病)에 이른 것이다. 또 풍(風)이나 수(水)가 아니어도 옷이 얇은데 양(凉)을 받은 경우 대개 체(體)가 겁(怯)한 자는 모두 학(瘧)이 될 수 있다. 그 병(病)이 깊으면(:深) 경(經)에서 장(臟)에 미치게 되고, 표(表)에서 리(裏)에 미치게 되는 것을 면(免)하지 못한다. 따라서 음식(飮食)에 신중(:愼)하지 않아 더 심(甚)하게 되거나 노역(勞役)에 신중(愼)하지 않아 병(病)이 더하게(:增) 되더라도 결국은 외사(外邪)가 본(本)이 아님이 없다. 어찌 식(食)으로 인하거나 담(痰)으로 인하여 학(瘧)이 될 수 있겠는가?
지금 주단계(朱丹溪)의 말을 보건대, 또한 ⑦담(痰) 식(食)을 아울러 열거(:列)하였고, 엄용화(嚴用和)는 ⑧담(痰)으로 모두 귀결(歸)시켰다. 이들은 모두 진씨(陳氏)의 설(說)로 인한 것이니, 내경([內經])의 바른 의미(意)를 한참(:殊) 잃은 것이다.
따라서 장자화(張子和)도 또한 '수괴(祟怪)로 여기니 가소(可笑)롭다!' 하였고, '⑩식학(食瘧)은 아니다.' 하였으며, '⑪태평(:治平)하거나 어지러운(:擾攘) 시절(時)로 나누어 치(治)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모두 이치(理)가 있는 확고(確)한 견해(見)이다.
다만 괴이(怪)한 것은 '⑫서(暑)는 화(火)이다.' 하거나 또 '⑬어지러운(:擾攘) 시절(時)에는 그 백성들이 노고(勞苦)를 하니 ⑮이를 비한(脾寒)으로 잘못(:錯 보고 치(治)하는 것을 크게 기(忌)한다.' 하면서 '⑭일찍이 한토하(汗吐下)의 삼법(三法)을 사용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런 말들도 편견(偏見)에 속(屬)하는 것으로 우려(:恐)된다.
생각해 보건대, 나는 다행히 명(明)의 성대(盛)한 시절을 만나 진실로 어지러운(:擾攘) 모습(:景象)에 대해 잘 모른다. 다만 노고(勞苦)에 과(過)하게 상(傷)한 사람이라면 그 허(虛)가 더 심(甚)할 것이니, 어찌 삼양(三陽)의 피손(疲損) 등의 증(增)이 없겠는가? 이를 모두 '⑫화(火)'라고 말하면서 모두 ⑭한토하(汗吐下) 삼법(三法)을 쓸 수 있겠는가? 심(甚)하도다! 주장하는(:立) 말들(:言)의 어지러움(:亂)이여!
이로써 보건대 시중(時中: 때에 맞다)을 얻기가 이와 같이 쉽지 않다.
요약
1. 진무택의 삼인방에 대한 견해
2. 주단계 엄용화 장자화에 대한 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