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 감사절은 미국의 국경일인데
◎ 한국 교회가 11월 셋째 주일을 감사주일로 지킨 연유가 무엇인가요?
◎ 감사절은 세계의 개혁교회가 지키고 있는 교회력은 일부인가요?
◎ 왜 우리의 추석과 같은 추수 감사의 대명절은 교회의 감사절과 연관을 맺지 못하고 있나요?
◎ 미국이 지키는 국경일인 감사절과 우리의 감사절이 무슨 관계가 있나요?
우리 민족은 가을을 무척이나 즐기고 흐뭇해하면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이 계절에 무르익은 들판의 오곡과 8월의 보름달을 보면서 맞이한 한가위가 얼마나 만족했으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부르짖게 되었는지 그 뜻을 음미해 봅니다. 교통이 아무리 혼잡하여 십수 시간이 걸려도 내 고향, 내 조상, 내 부모를 찾아 나서는 행진은 조금도 지칠 줄 모릅니다. 이 계절은 역시 우리 한민족의 마음에 흐뭇한 정취를 심어 주는 가장 으뜸가는 계절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 강토에서는 기독교인의 신분 여하를 막론하고 창조주와 선조들과 부모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절한 시기로 모두가 생각하면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학을 강의하는 교수로서 이 계절을 맞이할 때마다 마음에 남아 있는 섭섭한 감정을 숨길 길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한국 교회가 우리의 정서상 감사로 가득한 이 계절을 피하여 1904년부터 지금까지 감사주일을 11월 셋째 주일로 고착시켰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있는 거의 모든 교단이 율법처럼 지키고 있는 이 관행에는 전정 문제가 없는지를 다시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대한 문제의 제기는 그 동안 뜻이 있는 신학자들과 언론에서 계속적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막상 산하 교회를 움직이는 총회와 같은 기구는 말이 없습니다. 아무리 노회로부터 상정을 해도 일 년간의 연구라는 과정을 거쳐 다시 그 날짜로 되돌아오는 촌극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11월 셋째 주일이 자신들의 추수 절기에 적절하다는 말을 합니다. 이러한 견해는 우리 나라의 남쪽과 북쪽의 추수 시기가 일기의 차이와 함께 동일할 수가 없음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말입니다.
어떤 교회는 추수감사주일을 임의로 변경하여 지키게 되면 큰 모순을 범한 듯한 착각을 합니다. 이러한 입장 역시 우리가 지키고 있는 감사절이 어떻게 이 날짜에 판에 박은 듯 지키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기독교 방송에서 감사주일에 대한 좌담회를 갖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사회를 맡은 필자는 우선적으로 필자의 학교에 와서 학업을 이수하고 있는 외국인 목사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들도 추수감사주일을 지키되 그 날짜만큼은 우리의 추석과 같은 명절을 전후한다는 증언이었습니다. 이어서 영국(United Kingdom)대사관 문화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11월 셋째 주일의 감사절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그 대답은 아주 간단하였습니다. "그것은 미국의 국경일입니다." 그러면서 자기 나라는 자신들의 고유한 날에 지역마다 감사주일을 지키고 있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대답에서 풍기는 뉘앙스는 "한국 교회는 미국에 예속되어 있기에 그들의 국경일을 지금도 지켜 주고 있지 않은가?" 였습니다. 복음을 받고서 한 세기를 넘긴 지 벌써 오래인데 이러한 인상을 우리 교회가 아직도 풍기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참으로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선교사들이 이 땅에 복음을 전해 줄 때 우리에게 소개해 준 감사주일은 자신들의 교회 관습을 전해 준 것에 불과합니다. 그것이 성경에서 제정된 날은 더욱 아니였습니다. 이 날은 1621년 미국으로 건너간 이주자들이 최초의 수확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단을 쌓은 날이었습니다. 그 후에 1863년 링컨 대통령이 이 날을 국경일로 선포하고 그 날에 가까운 주일이 감사주일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와 기독교 모두가 그 민족의 정서에 맞는 주일을 감사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주체성을 언제나 뚜렷이 지키고 있는 이웃 중국 교회를 봅니다. 이들은 9월 말에서 10월 초까지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있을 때 감사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이며 떳떳한 자세입니까?
이제 우리도 제발 우리의 문화와 정서에 맞는 절기를 찾아 감사주일로 제정해야 합니다. 이 민족의 가슴에 감사로 가득 넘치는 중추절을 전후한 주일을 감사주일로 제정한다면 하나님을 향한 민족적인 감사의 열기가 더해질 것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한국 교회가 미국의 국경일을 지켜 주고 있다는 인상을 하루빨리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세계 교회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지도적 위치를 확보해 가고 있습니다. 피선교국으로서 아직도 선교국에 예속적인 관계를 지속해야 할 단계는 벌써 지났습니다. 우리 문화에 자주적으로 복음의 싸앗을 뿌리고 거둘 수 있는 성숙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해 준 나라에 우리 문화까지 예속시키면서 그들의 국경일을 지켜 주는 모습만은 비켜 나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