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발문(跋文)
‘삶의 흔적’과 교감하는 시적 진실 ---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신민철 시인이 시집 『 시집 이름 기재 』을 상재합니다. 시인이 자신의 정서와 사유(思惟)가 스며있는 작품을 집대성해서 한 권의 칠순 기념시집으로 묶는다는 것은 시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동시에 발현하는 인생의 역사적인 사건으로 모두가 환호를 보내야 할 것입니다. 일찍이 영국의 대시인 T.S. 엘리엇은 ‘시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새로운 감정을 찾는데 있지 않고 보통 감정을 이용하여 이것을 손질하여 시가 되게 하며 <전연 실지로 겪지 않은> 감정인 여러 가지 느낌을 표현하는 데에 있다. 그리하여 그가 경험한 일이 없는 감정이 그에게 익숙한 감정과 함께 안성맞춤으로 쓸모가 있게 되리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들려줌으로써 우리들이 시창작에서 많은 사유의 융합을 시도하는 교훈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시인의 숙명적인 작품 창작의 성취에서 절감(節減)하는 자존(自尊)의 위의(威儀)는 우리들의 자긍(自矜)과 공감(共感)을 유로하는 지향점이 되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 시인들이 성찰하고 고뇌하는 시적 열정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민철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서 그가 탐색하는 자아(自我)에서 존재감을 상승시키고 더불어 새로운 인생의 가치관을 정립하는 시법(詩法)으로 그의 진실을 구현하고 있어서 엘리엇이 말한 보통 감정에서 손질한 그의 보편적인 사유를 읽을 수 있게 합니다. 그는 작품의 상황 설정이나 이미지의 투영 그리고 주제의 창출(創出)은 대체로 주변 사물에서 취택하는 경향을 간과(看過)할 수 없는데 그의 감정과 정서를 손질하면서 ‘그에게 익숙한 감정과 함께 안성맞춤으로’ 동시에 현현되는 그의 평범성에서 시적 진실을 이해하게 합니다.
고단한 삶의 흔적으로 구비 구비 내려다 뵈는 오색약수터로 향한 길 한 고개를 넘은 환희의 영역이기도 하다
이 작품 「설악산 주전골 가을맞이」의 한 부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의 시적 대상은 ‘설악산 주전골’이라는 우리 주변의 지명에서 그가 체험한 ‘고단한 삶의 흔적’을 이미지로 추출하는 특성이 여러 작품에서 현현되고 있어서 그의 깊은 사유에서 그가 탐색하는 인생관이 적절하게 투사(投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품의 발상이나 동기는 ‘경주에서’, ‘문경새재’, ‘고향’, ‘하노이’, ‘남한산성’, ‘마니산 참성단’, ‘독립기념관’, ‘청계천’, ‘부여시’ 그리고 ‘북악에서 인왕산’ 등등 많은 현장에서 그의 사유가 끊임없이 넘쳐나고 있어서 시적 소재와 주제는 그의 내면에서 분출하는 진정한 진실의 시법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다시 시간성에 민감한 반응으로 그에게 잠재(潛在)한 메시지를 띄우고 있는데 이는 작품「겨울이 가기 까지는」중에서 ‘겨울이 가기 까지는 / 나보다 차가움이 / 물러서지 않는 / 실 랑 이.’라거나 작품「경주에서」 중에서 ‘돌 하나 / 기와 한 장에도 / 숨결을 바르며 / 천년을 / 더 살라 한다’ 또는「남한산성」에서 ‘세월의 / 무게 만큼이나 /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물의 소리」에서도 ‘계절은 수시로 / 방향과 자리를 바꾸기도 하지만 / 시멘트 바닥을 흐르다가 / 어딘가는 찾아야 할 / 운명 같은 입구’라는 어조(語調)와 같이 그가 이 시간성이 만유(萬有)의 사물과 교감하는 진실을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민철 시인에게서 다시 중요한 부분은 그가 평소에 간직한 서정성입니다. 특히 시각적인 이미지에서 투영하거나 동화(同化-assimilation)하는 자연과 사물에서 그 형상이 명징(明澄)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밀물이 머물다 간 자리 그리다가 만 지도위로 분주히 길을 내고 있는 게 물님이 올 때 까지 한나절의 처소를 꾸리고 --「갯벌에 한나절」중에서
해무가 뿔뿔이 닦아놓은 수면 갈매기들의 날개 짓에 아침은 쉬이 열리고 어제 몫을 다 털고 난 배가 출항을 서두르고 --「강화와 석모도의 나들이」중에서
그렇다. 신민철 시인은 자연 사물(갯벌, 석모도)에서 투영한 서정적인 정서가 잔잔한 진실로 승화하는 현상은 우리들이 흔히 대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일상의 소재를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서정시입니다. 그는 ‘밀물이 머물다 간 자리 / 그리다가 만 지도위로 / 분주히 길을 내고 있는 게’ 또는 ‘해무가 뿔뿔이 닦아놓은 수면 / 갈매기들의 날개 짓’이라는 등의 어조는 시각적인 이미지의 추출의 특성을 잘 살린 한 폭의 회화(繪畫)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미지의 발양(發揚)은 ‘누군가 놓고 간 / 아쉬움에 더욱 몸집이 / 커진 바위 / 석양에 물들어 가고 // 아직도 떠나지를 / 못하는 갈매기 한 마리 / 어둠을 쪼아 먹고 있다.’라거나 ‘멀리서나 가까이서나 / 원을 그리다가 / 파도의 거센 춤에 밀려나는 / 섬들의 일상사’라는 시각에 의한 사물의 형상이 바로 시적인 메아리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신민철 시인에게서 다시 발견되는 것은 자연 서정의 심취(深趣)를 이해하게 되는데 이는 그가 천성적으로 간직한 친자연적인 체험에 의한 정서의 토로(吐露)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깊어가는 밤만큼이나 깊숙한 가을의 소리 붉은 잎들이 길바닥에서 숫자를 더하는 소리 우린 아직도 내일이 있어 어딘가 있을 푸른 열매를 익히기 위하여 거리를 누비고
어느 날 찬바람이 겨울을 데리고 온다 할지라도 우리들의 이야기는 가까이서 또 한 계절을 뜨겁게 더 하리. --「가을밤에」중에서
그는 이와 같이 계절적인 시간성에서도 서정적인 사유를 배제하지 못한다. 그가 절실하게 느끼는 정감(情感)에 의해서 그가 시도하거나 지향하고자 하는 사유의 주체는 아마도 그가 이 자연의 시간(가을밤)을 통해서 적시(摘示)하려는 주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는 이러한 서정에서도 시각적인 인식 외에도 ‘깊어가는 / 밤만큼이나 깊숙한 / 가을의 소리 / 붉은 잎들이 / 길바닥에서 숫자를 / 더하는 소리’ 등의 ‘소리’라는 청각적인 이미지를 동원하면서 시적 묘미(妙味)를 살려 나가고 있어서 그의 시법에는 다양하고 다변적인 상황과 시공(時空)이 복합적으로 현현하는 특성으로 우리들의 공감영역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민철 시인의 의 심중(心中)에 내재(內在)된 진실은 그가 그의 순박한 정의(情誼)에서 창출한 ‘그리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따사로운 겨울에」중에서 ‘옷이 두꺼워 지기 보다는 / 멋이 옷을 벗기는 거리에 / 출렁이는 멋보다는 / 그리워지는 누군가의 / 체온’에서 이해할 수 있듯이 그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시적 상황을 읽을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속에서 뇌이던 이름 인가 나도 몰래 불러보는 당신에 이름 그리고 말 못하는 사연은 나 혼자 그리다가 넘쳐흐르면 언젠가 어딘가에 이 마음 모두를 보여 주리 그리고 사랑과 행복 언제나 함께하리. --「그리고」전문
신민철 시인의 그리움에 대한 시적 원류에는 ‘나도 몰래 불러보는 당신에 이름’의 ‘누군가’가 화자(話者)로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고 말 못하는 사연은 / 나 혼자 그리다가 넘쳐 흐르’고 있음에서 그의 간절한 그리움이 하나의 기원 의식으로 흐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그리움의 원천에는 ‘저 멀리 멀어 져간 내 살던 옛집’이며 ‘어느 때 이련가 깊은 사랑 그이 있는 곳(이상「돌아뵈는 마음」중에서)’이기도 합니다. 그의 ‘고향’이라는 향수가 그의 옛 체험으로 상상되어 절실한 그리움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다시 ‘딸 자랑 / 아들 자랑 / 나도 한 몫 했음에도 / 세월인가 뭔가는 옛날 이련가--중략--밤이슬에 젖은 소리 / 풀벌레 소리 드높고 / 부모 마음 한결 같아 / 이 밤도 여러 번을 / 잠을 천하실 고향 어머님.’이라는 그리움의 주체가 ‘어머니’라고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어서 그가 재생하는 상상력에는 이러한 심저(心底)가 잘 발현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국의 비평가 I.A. 리쳐즈가 말한바와 같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정서생활과 시의 소재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이러한 생활의 언어적 표현은 시의 기교를 사용하게 되어 있다. 이것만이 단지 근본적인 차이일 뿐이다’라는 언지를 새겨들을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신민철 시인은 1991년 『문학공간』에 김경린, 김규동 선생님의 추천으로 등단한 이후 꾸준한 작품활동을 통해서 한국문인협회와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한국가곡작사가협회 회원으로서 관악문인협회 부회장직으로 재임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제 칠순이라는 인생의 성숙된 정점에서 우리 시문학의 경지를 다시 인식하고 앞으로 더욱 차원 높은 시적 경지를 창조할 것을 진심으로 기원하면서 그 기념 시집 상재의 기쁨을 함께 교감하고자 합니다. 축하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