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기행 / 하나의 국가에 담기는 벅찬 다양성
<적도지대> 하면 안 가본 사람들은 우선, 불덩어리 같은 태양을 연상하겠죠? 과연 적도지대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까요? 사막을 횡단할 때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밤에 걷고 낮에 쉬듯이, 뜨거운 태양 아래 사는 사람들 역시 기후에 맞도록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고는 있겠지만 <적도지대>라는 4글자는 왠지 우리를 아찔하게 만듭니다.
직접 여행해 보면 지구촌이 참으로 신기하다 싶은 것이, 다 사람이 살 수 있도록 기후 환경조건이 갖추어져 있어, 기후가 다른 지대에서 온 여행자도 곧 익숙해지게 되어있습니다. 어쩌면 온대나 아열대보다 더 살기 좋은 곳이 적도지대일 수 있습니다. 추운 지역에 대해서는 천국 같을 수도 있습니다.
동서로 5천km, 남북으로 1,700km의 광대한 바다에 흩어져있는 크고 작은 섬 13,700개의 인도네시아는 대표적인 열대우림 기후로 1년 내내 습도가 높고 더운 나라입니다. 적도지대는 우기와 건기의 경계가 분명치 않습니다. 잠깐 사이 스콜이 형성되어 대량의 비를 쏟아내다가 금세 멈춰버리기 일쑤여서 비가 내리는 때가 우기요, 햇살이 비치면 건기입니다.
1년 내내 무더위가 계속되지만, 그렇다 해도 나무의 경우 4계절이 뚜렷한 지역과 같이 여기서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정확하게 옷을 갈아입습니다. 스콜이나 폭풍에 늙은 잎이 떨어지고 새 잎이 돋는 것입니다. 년 평균 기온은 27℃ 정도입니다. 실제로 아열대나 온대보다 좋은 환경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활동하는 시간대도 다르지 않습니다. 낮이면 온통 숨이 막힐 정도로 더워 모든 것이 땅 속이나 그늘 아래 숨어버리고 말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보통의 관공서나 사무실이 모두 아침 8시에 문을 열고 오후 3시에 닫습니다. 이슬람문화권이기 때문에 금요일이 일요일인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입니다.
서민들은 더 이른 새벽, 날이 밝기 전부터 움직입니다. 빠사르(새벽시장)는 새벽 4시가 한창 활기 넘치는 시간입니다. 우리들 여행자가 호텔 침대에서 곤히 자는 시간에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한창 활발하게 움직이고, 여행자가 관광을 다닐 때쯤이면 그들은 쉬거나 잠을 잡니다.
그런 특징이 있기에 적도지대 나라들은 여행자의 느낌과 그 나라의 참모습이 전혀 다를 수는 있습니다.
수수께끼의 역사
인도네시아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역사가 깊은 나라입니다. 태고 때부터 좋은 환경 때문에 인류가 발상하고 발전하는 지대였습니다. 이른바 자바원인(피테칸트로푸스에렉투스)을 위시하여 모조케르토인 솔로인 등 원시 인류의 화석이나 유물이 자바섬을 중심으로 발견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은 자바 섬 중부에 있는 세계 최대의 불교 건축물 <보로부두르 사원>의 발굴입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이자 세계문화유산인 보로부두르는 산스크리트어로 ‘산 위의 절’이란 뜻입니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중부 자바의 고도(古都) 족자카르타(Jogjakarta)에서 북서쪽으로 42km의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설계를 보면 다섯 가지 상징—정방형의 땅과 원형의 하늘을 결합한 우주의 지도라 할 수 있는 만다라, 부처를 상징하는 피어나는 연꽃, 스투파, 세상의 중심이라는 수미산, 그리고 깨달음으로 통하는 삼차원의 길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습니다.
한 층 한 층 보다 높은 경지의 깨달음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부처의 삶과 가르침을 회화로 표현한 조각을 벽을 따라가며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아래층의 정방형 플랫폼으로부터 위층의 원형 플랫폼으로 올라가면서 진행됩니다.
원형 플랫폼의 벽에는 72개의 실물 크기 부처상이 벽감 속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꼭대기의 스투파는 해탈을 의미하며 그 내부는 비어 있습니다. 보로부두르는 이후 불교 건축의 모델이 되었으며,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와 같은 건축물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원은 8세기 중엽 중부 자바에서 번성한 사이렌드라 왕조(Sailendra dynasty) 때 지은 건물로 추정됩니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보다 300년이나 앞서 지은 건물로 완공하는 데 5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9세기 중엽 산자야 힌두교 왕조가 들어서면서 방치되었으며, 1006년 인근 므라피 화산 폭발로 생긴 화산재 속에 묻히고 말았습니다.1814년에 영국인이 발견했으며, 네덜란드가 1907~1911년에 복구 작업을 하였습니다. 그후 1973년부터 10년간 아시아 유적으로는 처음으로 대규모의 복구사업이 유네스코 주도로 진행되었습니다. 사원은 도굴 등으로 인해 심하게 파괴된 상태였습니다. 속설에는 스투파 속에 손을 넣어 부처 발등에 손이 닿으면 소원이 성취된다고 합니다.
깊은 역사와 많은 종교유적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안타깝게도 문서 역사가 빈곤하기 짝이 없습니다. 중국의 고승이 인도를 왕래하던 도중 수마트라 섬에 들렸을 때 남긴 기록 정도가 남아있을 뿐입니다.
그들의 생활을 유심히 보면 우리가 친근감을 갖게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촌락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적 상호부조제도, 생활을 규제하는 여러 가지 도덕적 관습 등이 그렇습니다. 또한 강한 애니미즘(animism)을 바탕으로 하는 신앙이나 사유(思惟) 형식도 낯선 모습이 아닙니다. 미신과 점치기 등등도 우리와 유사한 것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처럼 길일(吉日)이 있다고 믿어, 여행을 떠날 때나 결혼을 할 때 최선의 날짜를 고릅니다. 운명이나 출세를 위한 점치기에도 관심이 높고 심한 경우에는 도둑을 잡는 일까지 점에 의존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또 개운(開運)의 부적으로 빨간색이나 녹색의 원색 돌로 만든 팔지를 끼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 왜 그런 문화, 그런 신앙이 생겼는지를 입증해줄 문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사가(史家)들은 다음과 같이 인도네시아문화를 소개합니다.
…인도네시아 문화는 역사를 통하여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기반을 이루는 말레이 민족문화 위에 인도 중국 이슬람 유럽 등 외래요소가 가미되어 다양성을 띠고 있다. 이들 가운데 어떤 것은 표면적 구성요소에 불과하지만, 인도문화 같은 것은 원주민 문화와 깊이 융합하여 전반적인 문화발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인도네시아 특유의 와양(wayany:그림자극), 가물란(gamelan)음악, 무용을 비롯하여 고전문학도 모두 그 영향 아래 발전해왔다. 이들 대부분은 조령숭배(祖靈崇拜) 등의 신비주의와 결부되어 인도문화가 유입되기 이전부터 인도네시아지역에 있었던 것이며, 많은 전설과 민간신앙, 주술 등을 통하여 전승되어 왔지만, 그러나 인도의 영향이 가미되면서 그 내용이나 표현 방법이 한층 풍요롭고 보다 완전한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 대서사시 라마야나(Ramayana:라마王行傳), 또 바라타 족의 전쟁을 주제로 한 대서사시 마하바라타(Mahabharaya) 등의 이야기는 현재도 널리 인도네시아의 각층에 퍼져있다. 이 이야기의 공통점은 주인공들을 모두 비슈누 신(힌두교 평화의 신)의 화신으로 등장시켜 그 계보와 위업 등을 기술하고 있는 특징이다…
다양한 가운데의 통일
수백 가지나 되는 다양한 언어를 존중하면서도, 표준국어 사용을 헌법에 명시하여 의무화함으로서 원활한 의사소통에 의한 일체감 조성에 성공한 인도네시아는, 마찬가지 목적에서 국가 표어를 제정해 가지고 있습니다. ‘비네까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 즉 다양성 속의 통일이 그것입니다. 국장(國章)에 있는 전설상의 새 가루다가 발로 단단히 쥐고 있는 것이 이 국가 표어입니다.
하나의 언어와 문화 전통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의 존재를 이해하고 그것을 기초로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국가적 차원에서 창조해 나가자는 것이 이 표어에 담긴 뜻입니다. 이를 위해 국장 가루다의 가슴에는 독립 당시 서로 맹서한 5원칙(빤짜실라/Pancasila)의 이념 심볼이 그려져 있습니다. 첫째 절대 신에의 신앙, 둘째 인도주의, 셋째 국토의 통일, 넷째 민주주의, 다섯째 사회정의입니다.
그러나 다민족으로 구성되어 각 방면에서 다양성을 나타내는 인도네시아 사회 주민들의 생업이나 계층 간 구별 등은 정말로 종합하기 어렵습니다. 생업은 농림, 수산, 과업 등 1차 산업의 비율이 높은데 으뜸은 농업입니다.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가장 높습니다.
그러나 자바 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왕족과 귀족의 혈통을 이은 ‘은다라’, 인텔리나 식자층인 ‘원티리’, 일반 서민층인 ‘아방강’ 등 3계층으로 구별하고 제각기 세습되어 내려오는 전통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관습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물론 정보 소통이 활발해진 최근에는 유럽적인 것과의 결합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려는 노력이 일각에서 나타나고, 도시생활자들에 있어서 봉건적인 계층의 차이가 감소하는 등 변화하고 있는 모습은 현저합니다. 그러나 한쪽만을 집중적으로 보완하면 다른 한쪽에서 더 큰 문제가 생기는 법입니다.
도시생활자들 사이에 경제소득의 차이에 의한 빈부차가 심해지면 뒷골목 빈민가는 슬럼화하고, 점차 사회불안의 한 원인이 되어가듯 말입니다. 어쨌든 인도네시아는 다양성 속의 통일을 외쳐왔고 지금도 외치고 있습니다.
"비네카 퉁갈 이카!"를 외치면서.
여행정보
대한항공이 주4편, 인도네시아 가루다 항공이 주 3편 운항합니다. 자카르타까지의 소요시간은 8시간 30분. 발리 덴파사르를 경유하면 9시간 45분 걸립니다. 싱가포르에서는 1시간이면 갈 수 있습니다. 비행기란 본질적으로 수요에 의한 것이므로 성수기에는 편수가 늘어날 수 있고 특별 전세기도 운항됩니다.
인도네시아는 비자 없이 2개월간 체류할 수 있습니다. 단, 단순 관광목적이어야 하고 여권 유효기간이 6개월 이상이어야 하며 자카르타 발리 메단 메나드 비양크섬 수라바야 파간바르 등 관광특구에 한해서입니다. 그 외의 목적이나 지역을 여행하려면 비자를 얻어야 합니다.
숙박 음식
숙박시설은 1박에 US$100부터 US$7까지 아주 다양하고 형편대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민박이나 게스트하우스는 고급스런 정도에 따라 하루 2천원에서 1만원 사이를 요구합니다. 로스맨, 위스마, 뽕이나빤 등 값싼 숙박시설은 역이나 버스 터미널 주변에 많습니다.
이색적인 숙박시설로 바다 가까운 곳에 코티지(Cottage)가 있습니다. 지붕을 야자 잎으로 덮거나 벽을 대나무로 엮어 남국 풍의 분위기를 낸 곳입니다. 요금은 중간 수준. 그런데 서양식 콘티넨탈 호텔에 코티지 섹션을 설치하고 있는 곳도 있는데 이런 곳은 us$100 수준입니다. 한 가지 알아둘 상식은 대개의 숙박시설 목욕탕 욕조에 항상 물이 채워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관습에선 하루 두 번 이상 목욕을 하지만 욕조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습니다. 바가지로 물을 떠 몸에 끼얹는게 그들의 관습입니다.
약 13,000개의 섬에 1억 6천만 명의 인구를 가진 것이 인도네시아입니다. 종족 수만도 300종족이 넘습니다. 자연 재료에서부터 조리법 먹는 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식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를 거쳐 인도네시아에 간 사람이라면 요리가 낯설지 않습니다. 볶고 튀기고 익히고 삶고 굽고 찌고 하는 요리법이 거의 같기 때문입니다. 다만 조미료가 달라 맛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음식점으로 ‘빠당 요리 전문레스토랑’이 있습니다. 특징은 입구의 쇼 윈도우에 닭고기 생선 소고기 야채 볶은 것, 튀김 국 카레 등의 갖가지 요리들을 쟁반 같은 법랑접시에 담아 진열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들어가 테이블에 앉으면 주문하지 않았음에도 그 여러 가지 음식이 가득 식탁에 놓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여행자는 놀라게 마련이죠. 그러나 손을 댄 음식의 값만 지불하면 되는 방식이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대신 먹는 방법은 고민(?)하는 것이 좋습니다. 스푼과 포크를 주긴 하지만 그들의 관습대로 핑거볼의 물에 손을 씻고, 손(오른 손)으로 먹어보자. 음식 맛이 새삼스러울 것입니다. 마실 거리로 가장 보편적인 것은 커피와 테(홍차)입니다.
주민 언어 교육
한반도의 8.5배 크기, 1억 6천만명 인구는 27개의 자치주와, 약 300종족으로 나뉩니다. 가장 숫자가 많은 종족은 자와 인으로 약 6천만 명, 그 다음이 순다 인으로 2,230만 명, 다음은 바딱 인(북수마트라) 320만 명 순입니다. 종족 특유의 언어는 250종에 달하지만 지금의 인도네시아어를 국어로 헌법에 명기하고 초등학교부터 철저히 배우도록 하고 있습니다. 라디오 TV에서도 표준어만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이러한 강력한 국어정책이 다양한 인도네시아를 하나로 묶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교육은 우리와 같은 6·3·3 제로 되어있고 초등학교만 의무교육이며 취학 율은 90%로 높습니다. 41개의 4년제 국립대학이 있고 이밖에 주요 도시에 아카데미라는 2∼3년제 학교, 사립대학이 다수 있습니다. 우리와 같은 방송통신대학도 설립되어 있습니다.
가볼만한 곳
어느 나라든 수도를 먼저 가볼만한 곳으로 꼽는 게 상식입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만큼은 발리가 우선입니다. ‘키예프의 우크라이나’라고 부르듯 여행자에게는 ‘발리와 인도네시아’입니다. 이슬람교 신자가 90%인 인도네시아에서 발리는 힌두의 신이 만든 섬이기 때문입니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화 되었으나 발리는 이슬람 화 되지 않았습니다. 남한면적의 60%쯤 되는 곳에 300만 명 정도가 살고 있는데 주민의 생활 문화 습관이 모두 종교와 연관되어 있고 1년 내내 종교행사가 계속되는 곳입니다. 아름다운 자연풍광과 신비한 종교문화, 독특하고 훌륭한 - 또한 값싸게 접할 수 있는 - 예술은 발리를 잊을 수 없게 하는 매력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서핑의 적지 쿠타, 조용하고 아름다운 비치 사누르, 바다낚시의 누사두아 등이 발리를 대표하는 리조트 지구입니다. 섬의 중앙부에는 2천 미터급 산들이 잇달아 있고, 섬 전체가 한 개의 주를 형성하고, 발리어를 쓰는 발리 족이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 지배하에 있던 때에도 발리는 네덜란드 영향을 받지 않아 전통적인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도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카르타
동남아시아 최대의 국제도시 자카르타는 여러 면에서 10년 전 쯤의 서울과 비교됩니다. 면적은 서울(605㎢)보다 자카르타(637㎢)가 약간 크지만, 인구 수는 자카르타가 조금 많고 경제수준은 비슷하며 거리가 온통 무질서한 것은 똑같습니다.
교통법규를 무시하며 달리는 자동차, 죽음도 아랑곳 않는 듯한 용감한 무단횡단 자, 도로 한 모퉁이에 모여 서성대는 젊은이들, 그 옆에서 소리 지르며 물건을 파는 행상인들… 현대와 옛것이 조화를 이루고, 아름다움과 추함, 빈부가 공존하는 점, 그리고 지방의 젊은이들에게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 자카르타는 여전히 ‘희망의 도시’이며 인구가 몰리는 현상도 같습니다. 다른 것은 서울에서는 맛볼 수 없는 남국의 뜨거운 바람이 분다는 것 정도.
자카르타는 인도네시아 독립기념탑이 있는 므르데카(독립)광장 주변을 중부로 하여 동서남북의 5개 지구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대체로 중부는 고급호텔과 현대적 고층빌딩이 밀집해있는 비즈니스가(街)이고 북부는 네덜란드 식민지 지배 때의 중심으로 역사를 느끼게 하는 바다의 관문 항구나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어 있고, 남부는 붕층의 고급 주택가와 함께 백화점 나이트클럽 디스코장 등이 모여 있습니다.
자카르타에서 가볼만한 곳은 독립기념탑이 있는 모나스 주변, 가치 있는 전시품으로 손꼽히는 국립박물관, 인도네시아의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민속박물관 ‘미니 인도네시아’ 등입니다. 미니 인도네시아는 광대한 공원으로 전국 27개 주를 대표하는 민족의 의식주와 같은 전통생활양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공원중앙의 거대한 인공호수에는 인도네시아의 모든 섬을 모형으로 만들어놓아 케이블카를 타고 한 눈에 볼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기타
도서국가 인도네시아의 섬을 크게 대별하면 중심이 되는 자와섬, 적도선상에 비스듬히 걸쳐있는 수마트라섬, 역시 적도선이 가운데를 통과하는 칼리만탄(보르네오)섬, 그리고 동쪽의 셀레베스(슬라웨시)섬, 또 뉴기니섬의 서반부인 이리안자야 등입니다.
인도네시아적인 옛 모습은 자와 섬의 고도(古都) 족자카르타에 가장 많이 남아있고, 현대적인 모습 또한 자와 섬의 자카르타에 모여 있습니다. 수마트라섬은 이슬람문명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섬 최북단의 도시 반다아체에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