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11월 어느날 입영 통지가 날아 왔다. 나는 1973년 12월 11일 논산 훈련소에 입대하여 1976년 7월 27일 김해에 있는 공병 학교에서 약31 개월 동안의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 하였다. 나는 73년 12월 몹씨 추운 겨울날 입대를 한다. 열차와 버스를 번갈아 타고 대구에서
대전을 거쳐 논산 훈련소에 입소하여 6주간의 기본 훈련을 받고 후반기 교육을 맞쳤다. 논산 훈련소 26연대 5중대 1소대
에 배치되여 같이 입대한 동료들과 함께
피나는 군사 교육을 받았다.
추운 겨울 날씨에 구보훈련,각개전투훈련,
등 특히 연막탄을 피워놓고 훈련병을 마구
밀어넣는 깨스실에 들어 갈때에는 순간
죽는 줄 알았다. 저녁 시간이면 내무반에서
군가 및 국민교육헌장,등을 외우는 것은
완전히 군기가 들어서 잘 외울수 있었다.
군 생활은 힘 들었으나 동등하게 함께 고생
하는 같은 동기들과 어울려 훈련 받는 일은
그런데로 참고 견딜수 있었다.
논산 훈련소에서 힘들고 어려운 훈련 교육
과정을 무사히 잘 마치고 전방에 제2보충
대로 전출 되게 된다.1974년 4월5일 전방기와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보충대로
가는 길이 왜 그렇게 험란하고 고달프게
여겨 졌는지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한 생각이 든다. 군에서 제공하는 터럭
을 타고 첩첩 산중 골짜기를 들어가는 길에
흰눈이 쌓여 휘날리는 그 모습들이 나는
아직도 내 눈에 선하게 떠 오른다.
구비구비 꼬부랑 길을 한참 지나 보충대에
도착 하였다. 우리는 보충대에서 몇일을
지나고 대기 상태에 있다가 우리 동료 5명
은 수도기계화보병사단(8008 맹호부대)
공병대대에 배치된다. 우리 동기생 5명은
대대장에게 전입 신고를 한다.
차렷..... 경례..... 신고 합니다. 이병 이정수외 4명은 1974년 4월 15일부로
공병대대로 전입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 합니다. 차렷... 경례.....
대대장님께 신고식을 마치고 4명의 전입
동기생들은 2중대와 3중대로 배치되고
나는 1중대 1소대로 전입 되었다.
소대에 와서 소대장님께 또다시 전입 신고
한다. 신고가 끝난 다음 나는 내 자리를 배정 받아 따블백을 풀어서 관물을 정리
정돈 하고 앉아 있으니 고참들이 옆에 와서
나에게 묻는다. 어디서 있다가 왔으며,
무엇을 하다 왔는지? 꼬치 꼬치 묻는다.
나는 대충 대답하고 점호 받을 준비를 한다
그날로서 우리는 내무반 한 식구가 된다.
몸은 하룻동안 시달리며 몹씨 피곤한데
자리에 누우니 고향 생각도 나고 지난일
들이 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가며 만감이
교차되며 제대로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모든 지난 일들을 단렴하고 내 스스로 내
마으을 단단히 다져 본다.
잠시 눈을 붙였나 싶은데 아침 기상 나팔이
나의 단 잠을 깨운다. 나는 제 빠르게
기상 하여 옷을 입고 연병장으로 집합 한다
집합하여 점호를 취하고 씩씩하게 군가도
부른다. 잠시 휴식을 취한후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식판을 옆구리에 끼고 줄을 서서
식당에서 배식을 받아 아침 식사를 마친다.
아침 식사가 끝난후 연병장에 집합하여
총검술 훈련을 한다. 선임자의 구령에 맞추어 절도있게 교육 훈련을 받는다.
겨울에는 파견생활이 없어 자대에서 반복
으로 훈련에 임한다. 아주 추운 날에는
내무반에서 정훈 교육을 실시한다.
정훈 장교의 교육이 실시되는 날이면 황홀
감에 젖어든다. 따뜻한 배치카 옆에 앉아
교육 받는 시간은 축복의 시간 이였다.
쫄병 시절에는 왜 그렇게 사역병 소집이 많았는지? 어느듯 겨울이 지나가고 따뜻한
봄날이 왔다. 우리는 공병부대라 부대공사
위주로 일을 하는 부대이다.
우리 소대는 자부대에서 3시간 정도 떨어
진 깊은 산골 타 부대에 파견되여 장교
숙소를 짓는 공사 작업에 투입 되였다.
완전한 파견 생활이라 우리 소대장이 공사
감독겸 완전 지역 대장 노릇을 한다.
그 당시 장교숙소 한동 짓는데 소요되는 건축 자재는 일반 사회에서 공사하는 자재
물량보다 약3배 정도 더 많은 자재가 배정
된다. 당시 공병대 소대장의 위력은 대단
하였다. 토요일이 되면 소대장은 남는 자재
물량을 요령 있게 잘 배정하고 처분 하여
소대원들의 술 파티 잔치가 벌어진다.
군에서 자대를 떠나 파견 생활을 하는 일들
은 참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도 잘 보내는
날 들이였다.소대원들의 사기 진작면에서
아주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소대원들은 군에 오기전 사회에서
모두들 각자 다방면으로 기술을 습득한
기능공들이라 소대장의 도면 지시에 따라
일사천리로 자기 맡은바 일들을 부담없이
원만하게 처리하는 능력들이 있다.
나는 그당시 쫄병이라 막사 부근에서 내 바로 위 고참과 함께 땔감 나무를 수거하는
일을 담당 하였다.
공병대 에서는 모든 자재들이 풍부하게 지원되여 안전하고 튼튼하게 건축 할수
있도록 모든 설계들이 완벽 하다.
일 예를 들어 자체 벽돌을 생산 하는데 Fm
데로 세멘트1포에 벽돌12장씩만 제작하여
양생이 되면 돌덩이 처럼 단단한 블록이
생산된다. 우리는 파견생활을 하니까 군대
생활이 그런데로 재미있고 시간도 잘 지나
갔었다. 그당시 우리는 완전히 딴 세상에서
생활 하는것 같은 착각을 하게되는 느낌을
받았다. 파견생활 하는 동안에는 중대에
규제를 받지 않고 소대장 재량으로 자유롭게 생활 하였다. 군생활에서 지침시
점호가 없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편한
생활인지 모른다. 9개월 동안 파견 생활
하다가 날씨가 추운 초 겨울이면 우리소대
는 자대에 복귀하면 은근히 군기가 다시
들어간다.
날씨가 추운 겨울이면 자대에 들어와 공병대 특수 교육 훈련인 Ftc교육을 실시
한다. 특수교육은 훈련의 난이도가 높아
아주 괴로운 훈련이다. 우리 부대는ftc교육
을 받으려고 준비 하고 있던중 겨울 날씨가
갑자기 너무 추워 교육이 취소 되었다.
정말 나에게는 천금 같은 행운 이였다.
세월은 흘러 다음 또 한해가 지나 새 봄이 오니 다시 파견생활이 지속되었다.
이번 파견 생활에는 소대장님께서 나에게
취사반을 맡아서 하도록 명령 하셨다.
우리 소대장님께서는 서울 분이셨는데,나
처럼 아담한 체구에 아주 인자한 분으로
기억된다.한양대 건축학과 재학중에 군입대 하셨으며 소대장의 누님께서는 육군 중령으로 재직하고 계신 전형적인 군인가족 집안이 셨다. 우리 소대는 무사히
2차 파견생활을 완수하고 자대로 복귀한다
자대에 복귀하니 좋은 소식이 들려온다.
사우디 공사현장에 투입할 인원을 모집
하는 기회를 얻는다.나는 지원하여 김해 공병학교로 전출된다.나는 군생활 말년에
배관 기능사보 자격을 취득하는 행운을 얻는다.김해 공병학교에서 1976년 7월27일 육군 병장으로 만기제대를 한다.
무더운 사우디 공사현장에 가는것을 공곰히 생각해 보니 엄두가 나지않아 취소
하였다.나는 31개월 동안 국가의 부름을 받아 무사히 충실하게 임무 수행하고 만기
제대함을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한다.
첫댓글 군대를 늦게 가셨군요!
난 71년 2월 15일에 입대해서 74년 12월에 제대 했습니다.
형님 입대 때 저는 병장 입니다. ㅎ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