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가을을 태운 완행열차
가을엔
완행열차를 타고 떠나고 싶다
치자빛으로 물든거리
바쁠것 없는 일요일의 구름처럼
한가한 무요일
가을을 보내야 한다는것이
가슴을 타게하는 오늘
완행열차를 타고 떠나고싶다
삶을 질주하는 열차와 같은
쇠바퀴 소리 듣기도하고
후미진 산골 굽은 터널을 돌아나와
오가는 이 없는 한적한 역에서 내려
길 저편 억새 갈대 숲을지나
바람의 길로 들어서면
만나야 할 사람 서 있을것 같아
완행열차를 타고 떠나고싶다
바람스치는 소리에 고독한 눈빛 젖으며
가슴을 앓고있는 사람도 만나고 싶다.
2.장맛비
수 천개의 아픔이 모여
하늘의 문을 열었나 보다
이그나이트가 하늘에 줄을 긋고
천지에 불 호령을 한다
그리고
우 우 바람소리와 내리는
어떤 비는 바다에 뛰어내려
바다가 되고
어떤 비는 땅위에 스며들어
연못이 된다
어디에 내리든
그 무게를 실어
저리 혼자 알몸으로
울어 버리는
슬프도록 우울한 눈물.
3. 손목시계
열 세살
보송보송한 단발머리 소녀
배냇 저고리 허리에 차고
시험 보러 가던 날
손목시계 사 달라고 떼 부리며
몸살나게 조르던 기억 생생해
커다란 손목 시계차고
시 공부하러 갔더니
시인 선생님
시계라는 제목으로
시 지어 보라고 하신다
까마득한 옛 이야기
엊그제 같지만
그때 그날 마디 마디 새롭게 되 살아나
살짝 얼굴 빨개지기도 하고
슬몃 슬몃 웃음도 나오더니
이젠
생명 줄 잘라내는 째각 째각 초침소리
손목 시계가 주는 의미는 사뭇 다르다.
4.술
가끔은 혼자서
너를 가까이 하고 싶을때가 있다
텅빈 마음
늪으로 빠져들때
허무감이 시린바람으로
가슴을 치 닳을때
일탈과 자유로움 얻기위해
너를 가끔은 가까이 하고 싶을때가있다
위반의 쾌감
상식에 대한 반항이
억지 매력을 갖고있는
너를 가끔은 가까이 하고 싶을때가 있다.
5.설이오면
정말
가기 싫은가 보네
그냥 떠 밀어도
버티고 있으니
하늘에도
진눈깨비가 내리는 걸 보니
가기 싫은가 보네
혼란스럽게도
땅에 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걸 보니
딱하기도 해라
나도 설이오면
가기 싫은 가보네
유년의 고향집
뒤란에서 머물고 있으니 말이야.
6.형광등
있는듯 없는듯
튀지말고 은은하게
잘난척 아는척 하지마라
번갯불에 콩볶아 먹겠다 하시며
급한성격 나무라지 않으시고
늘 가슴에 소 우(牛)자 새겨주신
어릴적 어머니가 하신 말씀
경전처럼 새기지만
어머니
마음대로 안돼요
아직도 튀고 급하고 척하고 사니
어쩌면 좋아요
늘 그자리에서 비춰주는
십자형 형광등처럼
은은함이라도 배워야겠지요.
7.꽃샘추위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돌아 가야해
너도 네 마음대로 할수없다는 걸
조금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찢어진 살 틈으로 비집고 나오는 새 잎들
겨우내 움츠리다 터트리는 함성
저 뜨거운 고백을 듣고 있겠지
앙칼진 너의 심성을
용서 해줄께
그냥 돌아 가야해.
8.개나리
어서 나서야 해
갈길 막아도 소용없어
나 할일이 있는데
노란 손수건 나무가지에 걸듯
노란 꽃 등으로 길 밝혀야지
움추려 작아진 것 들에게
새 봄이 왔다는 것을 알려야 해
그러면
허리를 피며 따라 나서겠지
진달래,목련,목단도
부석한 얼굴
봄비에 말갛게 씻고
줄을 서겠네.
9. 5월을 머물게하자
잔인한 울음으로
떨어져 자취를 감춘
4월의 목련을 잊기로하고
눈 시도록 부신
푸른계절 5월을 머물게하자
사방 푸르니 마음도 푸르고
군데 군데
초롱 꽃 등불 밝히는
목단꽃으로 붉게 타오르는
5월을 머물게하자.
9. 6월연가
각시붓꽃 오붓하게 핀 초여름
작은 뜨락엔 빨강,노랑 백일홍이
사이사이로 햇살처럼 웃고있고
유리창으로
내다 보이는 키가 큰 나무는
6월 바람에 나뭇잎 흔들며
시냇물처럼 흐르네
이따금씩 들리는 뻐꾸기 울음소리에
싸아한 마음 그리움 되어 오는데
붓꽃 앞에서 얼굴 빨개지고
뻐꾸기 울음소리에
가슴두근거리니
누군가 눈치 채지 않을까
6월의 혼자 부르는 연가를.
10. 건달산
하늘이 닿는다 해서 건달산(乾達山)
난봉기 있는 남정네 같다해서 건달산
건달산 해발고도 367미터에 오르면
소쩍새,솔부엉이,딱다구리가
이 산의 청정함을 대신 말해주고
조선 선조 21년 봉화를 오렸다는 흔적있고
삼봉산,태행산이 내려다 보이는
해 맑은 날 인천대교 서해대교 한눈에 들어오는 산
해병대 사령부 아치를 지나 정문
오른쪽으로 유리호수 돌담을 끼고 돌면
나라의 사변이 일어나도 살았다는 깊은 골 건달산 자락
여산송씨, 해주오씨들 마을 가르는 청솔마을 이정표
따라오르면 여인의 봉긋한 젖가슴처럼 보이는
봉오리 사이로 오솔길 가 큰 절터 있어
기왓장과 그 잔해 남아있는곳
수도승들의 기도소리 들리는 듯 옷깃 여미게하고
가파른 길 조붓한 길 반복해서 올라가
골미봉 잘려진 허리너머
청정지역으로 남아있는 건달산 아랫마을
건달산 산 그림자 하루에 한번씩 마중가네.
11. 12월
시 한줄 나오지 않는 나날
하루
이틀
사흘
이미 잎지고 새들 떠나간 자리
빈 나무 가지마다 걸린 등꽃
햇살에서 핀 화려함은 아니지만
얼어붙은 땅 위에
눈부신 순백의 꽃으로 피어나
가두웠던 맘 그리움으로 풀어내는
백설의 언어가 시를 쓰게한다
꽃밭도 아니고 함께 나눌 한평의 땅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얼음같이 차가워진 가슴위에도 내려앉아
따스해진 12월
이맘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추억 하나
해바퀴 수 없이 지나간 1966년 겨울
불씨처럼 타오르며 번져가는 불우 이웃돕기에
단발머리 셋이서 밤새워 신문팔이 한
안국동 로터리
겨울이 오고 한파가 몰아치는 그 거리는 안녕한지
시네스코처럼 다가와 풋풋했던 그때를 회상하며
짓는 미소지만 그해 12월이 그리웁다.
12.새해
어서 오세요
기다리지 않아도
오실 것이고
반기지 않아도
오실 것이니
그냥 그렇게
어서 오세요
바랄 것도 없고
이룰 것도 없어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천천히 오셔도 될것을
그리 바삐도 오시는군요.
13.주홍색 토마토
작열하는 7월 한낮
하늘과 구름
나뭇가지에 걸린 바람마저도
힘겨워 하는데
기다리는 이 누구길래
주홍색 등 달고
저리도 설레이고 있을까
노란 살꽃 흔적 버리고
에레나가 된 분이의 볼이
저리도 탐스러웠을까
아무도 모르는 사랑이야기
주홍색 낱말로 알알이 벗겨
수줍게 토해낸다.
첫댓글 ㅎ 저는 7편 쓰는것도 헉헉대고 있는데......
13편이나 내신 거예요?
요즘 서정 숙제 내느라 진땀빼고 있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가을을 태운 완행열차가 참 좋네요^^
감사드립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