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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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치라.”
“예잇. 때리오.”
딱 붙이니 부러진 형장개비는 푸르르 날아 공중에 빙빙 솟아 상방 대뜰 아래 떨어지고 춘향이는 아무쪼록 아픈 데를 참으려고 이를 복복 갈며 고개만 빙빙 두르면서
“애고 이게 웬 일이어.”
곤장 태장 치는 데는 사령이 서서 하나 둘 세건마는 형장부터는 법장이라 형리와 통인이 닭싸움하는 모양으로 마주 엎뎌서 하나 치면 하나 긋고 둘 치면 둘 긋고 무식하고 돈 없는 놈 술집 바람벽에 술값 긋 듯 그어 놓(으)니 한 일자(一字)가 되었구나.
춘향이는 저절로 설움겨워 맞으면서 우는데
“일편단심 굳은 마음 일부종사 뜻이오니 일개 형벌 치옵신들 일년이 다 못가서 일각인들 변하리까.”
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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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남원부 한량이며 남녀노소없이 모여 구경할 제 좌우의 한량들이
“모질구나 모질구나. 우리 골 원님이 모질구나. 저런 형벌이 왜 있으며 저런 매질이 왜 있을까. 집장사령놈 눈 익혀 두어라. 삼문(三門) 밖 나오면 급살을 주리라.”
보고 듣는 사람이야 누가 아니 낙루(落淚)하랴. 둘째 낱 딱 붙이니
“이비절을 아옵는데 불경이부 이내 마음 이 매 맞고 영 죽어도 이도령은 못 잊겠소.”
세째 낱을 딱 붙이니
“삼종지례 지중한 법 삼강오륜(三綱五倫) 알았으니 삼치형문 정배(定配)를 갈지라도 삼청동 우리 낭군 이도령은 못 잊겠소.”
네째 낱을 딱 붙이니
“사대부 사또님은 사민공사 살피잖고 위력공사(威力公事) 힘을 쓰니 사십팔방(四十八坊) 남원 백성 원망함을 모르시오. 사지를 가른대도 사생동거 우리 낭군 사생간(死生間)에 못 잊겠소.”
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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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낱 채 딱 붙이니
“오륜(五倫) 윤기 그치잖고 부부유별(夫婦有別) 오행(五行)으로 맺은 연분 올올이 찢어낸들 오매불망 우리 낭군 온전히 생각나네. 오동추야 밝은 달은 님 계신 데 보련마는 오늘이나 편지 올까 내일이나 기별 올까. 무죄한 이 내 몸이 악사할 일 없사오니 오결죄수 마옵소서. 애고 애고 내 신세야.”
여섯 낱 채 딱 붙이니
“육육은 삽십육으로 낱낱이 고찰하여 육만번 죽인대도 육천 마디 어린 사랑 맺힌 마음 변할 수 전혀 없소.”
일곱 낱을 딱 붙이니
“칠거지악 범하였소. 칠거지악 아니거든 칠개 형문 웬 일이오. 칠척검(七尺劍) 드는 칼로 동동이 장(杖) 질러서 이제 바삐 죽여주오. 치라 하는 저 형방아 칠 때마다 고찰 마소. 칠보홍안(七寶紅顔) 나 죽겠네.”
여덟 째 낱 딱 붙이니
“팔자 좋은 춘향 몸이 팔도 방백 수령 중에 제일 명관(明官) 만났구나. 팔도 방백 수령님네 치민(治民)하러 내려왔지 악형(惡刑)하러 내려왔소.”
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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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낱 채 딱 붙이니
“구곡간장(九曲肝腸) 굽이 썩어 이 내 눈물 구년지수(九年之水) 되겠구나. 구고 청산(靑山) 장송(長松) 베어 청강선(淸江船) 무어 타고 한양성중 급히 가서 구중궁궐 성상전(聖上前)에 구구원정 주달(奏達)하고 구정(九庭) 뜰에 물러나와 삼청동을 찾아가서 우리 사랑 반가이 만나 굽이굽이 맺힌 마은 저근듯 풀련마는.”
열째 낱 딱 붙이니
“십생구사할 지라도 팔십년 정한 뜻을 십만번 죽인대도 가망없고 무가내지. 십육세 어린 춘향 장하원귀 가련하오.”
열 치고는 짐작할 줄 알았더니 열다섯 채 딱 붙이니
“십오야 밝은 달은 띠구름에 묻혀 있고 서울 계신 우리 낭군 삼청동에 묻혔으니 달아 달아 보느냐. 님 계신 곳 나는 어이 못 보는고.”
스물 치고 짐작할까 여겼더니 스물 다섯 딱 붙이니
“이십오현탄야월에 불승청원 저 기러기 너 가는 데 어디메냐. 가는 길에 한양성 찾아들어 삼청동 우리 님께 내 말 부디 전해다오. 나의 형상 자세(히) 보고 부디부디 잊지 마라.”
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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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삼천(三十三天) 어린 마음 옥황전(玉皇前)에 아뢰고저. 옥 같은 춘향 몸에 솟느니 유혈이요 흐르느니 눈물이라. 피 눈물 한데 흘러 무릉도원(武陵桃源) 홍류수(紅流水)라. 춘향이 점점 포악하는 말이
“소녀를 이리 말고 살지능지하여 아주 박살 죽여 주면 사후(死後) 원조라는 새가 되어 초혼조 함께 울어 적막강산 달 밝은 밤에 우리 이도련님 잠든 후 파몽이나 하여지다.”
말 못하고 기절하니 엎뎠던 통인 고개 들어 눈물 씻고 매질하던 저 사령도 눈물 씻고 돌아서며
“사람의 자식은 못 하겠네.”
좌우에 구경하는 사람과 거행하는 관속들이 눈물 씻고 돌아서며
“춘향이 매 맞는 거동 사람 자식은 못 보겠다. 모질도다 모질도다 춘향 정절이 모질도다. 출천열녀로다.”
남녀노소 없이 서로 낙루하며 돌아설 때 사또인들 좋을 리가 있으랴.
“네 이년 관정(官庭)에 발악하고 맞으니 좋은 게 무엇이냐. 일후에 또 그런 거역관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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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생반사(半生半死) 저 춘향이 점점 포악하는 말이
“여보 사또 들으시오. 일념포한 부지생사 어이 그리 모르시오. 계집의 곡한 마음 오유월 서리 치네. 혼비중천(魂飛中天) 다니다가 우리 성군(聖君) 좌정하(坐定下)에 이 원정을 아뢰오면 사또인들 무사할까. 덕분에 죽여주오.”
사또 기가 막혀
“허허 그년 말 못할 년이로고. 큰칼 씌워 하옥하라.”
하니 큰칼 씌워 인봉하여 쇄장이 등에 업고 삼문 밖 나올 제 기생들이 나오며
“애고 서울집아 정신 차리게. 애고 불쌍하여라.”
사지를 만지며 약을 갈아 들이며 서로 보고 낙루할 제 이때 키 크고 속없는 낙춘이가 들어오며
“얼씨고 절씨고 좋을씨고 우리 남원도 현판감이 생겼구나.”
왈칵 달려들어
“애고 서울집아. 불쌍하여라.”
이리 야단할 제 춘향 어미가 이 말을 듣고 정신없이 들어오더니 춘향의 목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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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고 이게 웬 일이냐. 죄는 무슨 죄며 매는 무슨 매냐. 장청의 집사님네 길청의 이방님 내 딸이 무슨 죄요. 장군방(將軍房) 두목들아 집장하던 쇄장이도 무슨 원수 맺혔더냐. 애고 애고 내 일이야. 칠십당년 늙은 것이 의지없이 되었구나. 무남독녀 내 딸 춘향 규중(閨中)에 은근히 길러 내어 밤낮으로 서책만 놓고 내칙편 공부 일삼으며 나 보고 하는 말이. 마오 마오 설워 마오. 아들 없다 설워 마오. 외손봉사 못하리까. 어미에게 지극정성 곽거와 맹종인들 내 딸보다 더할손가. 자식 사랑하는 법이 상중하(上中下)가 다를손가. 이 내 마음 둘 데 없네. 가슴에 불이 붙어 한숨이 연기로다. 김번수야 이번수야 웃 영(令)이 지엄타고 이다지 몹시 쳤느냐. 애고 내 딸 장처 보소. 빙설(氷雪)같은 두 다리에 연지같은 피 비쳤네. 명문가 규중부야 눈 먼 딸도 원하더라. 그런 데 가 못 생기고 기생월매 딸이 되어 이 경색이 웬 일이냐. 춘향아 정신 차려라. 애고 애고 내 신세야.”
하며
“향단아. 삼문 밖에 가서 삯군 둘만 사오너라. 서울 쌍급주 보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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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이 쌍급주 보낸단 말을 듣고
“어머니 마오. 그게 무슨 말씀이오. 만일 급주가 서울 올라가서 도련님이 보시면 층층시하(層層侍下)에 어찌할 줄 몰라 심사 울적하여 병이 되면 근들 아니 훼절(毁節)이오. 그런 말씀 말으시고 옥으로 가사이다.”
쇄장의 등에 업혀 옥으로 들어갈 제 향단이는 칼머리 들고 춘향모는 뒤를 따라 옥문전 당도하여
“옥 형방 문을 여소. 옥 형방도 잠 들었나.”
옥중에 들어가서 옥방(獄房) 형상 볼작시면 부서진 죽창(竹窓) 틈에 살 쏘느니 바람이요 무너진 헌 벽이며 헌 자리 벼룩 빈대 만신을 침노한다. 이때 춘향이 옥방에서 장탄가(長嘆歌)로 울던 것이었다.
“이내 죄가 무슨 죄냐. 국곡투식 아니거든 엄형중장(嚴刑重杖) 무슨 일고. 살인죄가 아니거든 항쇄족쇄 웬 일이며 역률 강상 아니거든 사지결박 웬 일이며 음행도적(淫行盜賊) 아니거든 이 형벌이 웬 일인고. 삼강수(三江水)는 연수되어 청천일장지에 나의 설움, 원정(原情) 지어 옥황전에 올리고저. 낭군 그(리)워 가슴 답답 불이 붙네. 한숨이 바람되어 붙는 불을 더 붙이니 속절없이 나 죽겠네. 홀로 섰는 저 국화는 높은 절개 거룩하다. 눈 속의 청송(靑松)은 천고절을 지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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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솔은 나와 같고 누른 국화 낭군같이 슬픈 생각 뿌리나니 눈물이요 적시느니 한숨이라. 한숨은 청풍(淸風)삼고 눈물은 세우(細雨) 삼아 청풍이 세우를 몰아다가 불거니 뿌리거니 님의 잠을 깨우고저. 견우직녀성은 칠석 상봉하올 적에 은하수 막혔으되 실기한 일 없었건만 우리 낭군 계신 곳에 무슨 물이 막혔는지 소식조차 못 듣는고. 살아 이리 그리느니 아주 죽어 잊고지고. 차라리 이 몸 죽어 공산(空山)에 두견이 되어 이화월백(李花月白) 삼경야에 슬피 울어 낭군 귀에 들리고저. 청강에 원앙 되어 짝을 불러 다니면서 다정코 유정(有情)함을 님의 눈에 보이고저. 삼춘에 호접(胡蝶) 되어 향기 묻은 두 나래로 춘광(春光)을 자랑하여 낭군 옷에 붙고지고. 청천에 명월 되어 밤 당하면 돋아 올라 명명히 밝은 빛을 님의 얼굴에 비추고저. 이내 간장 썩는 피로 님의 화상(畵像) 그려 내어 방문 앞에 족자 삼아 걸어 두고 들며 나며 보고지고. 수절 정절 절대가인 참혹하게 되었구나. 문채 좋은 형산백옥 진토(塵土) 중에 묻혔는 듯, 향기로운 상산초가 잡풀 속에 섞였는 듯, 오동 속에 놀던 봉황 형극 속에 깃들인 듯. 자고(自古)로 성현(聖賢)네도 무죄하고 궂기시니 요(堯), 순(舜), 우(禹), 탕(湯) 인군(仁君)네도 걸주의 포악(暴惡)으로 하대옥에 갇혔더니 도로 놓여 성군(聖君) 되시고 명덕치민 주문왕도 상주(商紂)의 해를 입어 유리옥에 갇혔더니 도로 놓여 성군 되고 만고성현(萬古聖賢) 공부자도 양호의 얼을 입어 광야에 갇혔더니 도로 놓여 대성(大聖) 되시니 이런 일로 볼작시면 죄 없는 이내 몸도 살아나서 세상 구경 다시 할까. 답답하고 원통하다. 날 살릴 이 뉘 있을까. 서울 계신 우리 낭군 벼슬길로 내려와 이렇듯이 죽어갈 제 내 목숨을 못 살린가. 하운은 다기봉하니 산이 높아 못 오던가. 금강산 상상봉(上上峰)이 평지 되거든 오려신가. 병풍에 그린 황계(黃鷄) 두 나래를 툭툭 치며 사경일점에 날 새라고 울거든 오려신가. 애고 애고 내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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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창문을 열치니 명정월색(明淨月色)은 방안에 든다마는 어린 것이 홀로 앉아 달더러 묻는 말이
“저 달아. 보느냐. 님 계신 데 명기(明氣) 빌려라. 나도 보게야. 우리 님이 누웠더냐 앉았더냐 보는 대로만 네가 일러 나의 수심 풀어다오.”
애고 애고 설이 울다 홀연이 잠이 드니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에 호접이 장주 되고 장주가 호접 되어 세우(細雨)같이 남은 혼백(魂魄) 바람인 듯 구름인 듯 한 곳을 당도하니 천공지활하고 산령수려한데 은은한 죽림간(竹林間)에 일층(一層) 화각이 반공에 잠겼거늘 대체 귀신 다니는 법은 대풍기하고 승천입지하니 침상편시춘몽중에 행진강남수천리라. 전면을 살펴보니 황금대자로 만고정렬황릉지묘라 뚜렷이 붙였거늘 심신이 황홀하여 배회터니 천연한 낭자 셋이 나오는데 석숭의 애첩 녹주(綠珠) 등총(燈籠)을 들고 진주 기생 논개, 평양 기생 월선이라. 춘향을 인도하여 내당으로 들어가니 당상에 백의(白衣)한 두 부인이 옥수(玉手)를 들어 청하거늘 춘향이 사양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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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세간(塵世間) 천첩이 어찌 황릉묘를 오르리까.”
부인이 기특히 여겨 재삼 청하거늘 사양치 못하여 올라가니 좌(座)를 주어 앉힌 후에
“네가 춘향인가? 기특하도다. 일전에 조회차로 요지연(瑤池宴)에 올라가니 네 말이 낭자키로 간절히 보고 싶어 너를 청하였으니 심히 불안토다.”
춘향이 재배주왈(再拜奏曰)
“첩이 비록 무식하나 고서(古書)를 보옵고 사후에나 존안을 뵈올까 하였더니 이렇듯 황릉묘에 모시니 황공비감(惶恐悲感)하여이다.”
상군부인이 말씀하되
“우리 순군(舜君) 대순씨(大舜氏)가 남순수하시다가 창오산에 붕(崩)하시니 속절없는 이 두 몸이 소상죽림에 피눈물을 뿌려놓(으)니 가지마다 아롱아롱 잎잎이 원한이라. 창오산붕상수절이라야 죽상지루내가멸을 천추(千秋)에 깊은 한을 하소할 곳 없었더니 네 절행(節行) 기특키로 너더러 말하노라. 송관기천년에 청백은 어느 때며 오현금 남풍시(南風詩)를 이제까지 전하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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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이 말씀할 제 어떠한 부인
“춘향아. 나는 기주명월음독성에 화선하던 농옥이다. 소사의 아내로서 태화산(太華山) 이별 후에 승룡비거 한이 되어 옥소(玉蕭)로 원을 풀 제 곡종비거부지처하니 산하벽도춘자개라.”
이러할 제 또 한 부인 말씀하되
“나는 한궁녀(漢宮女) 소군(昭君)이라. 호지(胡地)에 오가하니 일배청총뿐이로다. 마상(馬上) 비파 한 곡조에 화도성식춘풍면이요, 환패공귀월야혼이라. 어찌 아니 원통하랴.”
한참 이러할 제 음풍이 일어나며 촛불이 벌렁벌렁하며 무엇이 촛불 앞에 달려들겨늘 춘향이 놀래어 살펴보니 사람도 아니요 귀신도 아닌데 의의한 가운데 곡성이 낭자하며
“여봐라 춘향아 네가 나를 모르리라. 나는 뉜고 하니 한고조(漢高祖) 아내 척부인이로다. 우리 황제 용비 후에 여후(呂后)의 독한 솜씨 나의 수족 끊어 내어 두 귀에다 불지르고 두 눈 빼어 음약 먹여 측간 속에 넣었으니 천추에 깊은 한을 어느 때나 풀어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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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울 제 상군부인 말씀하되
“이곳이라 하는 데가 유명이 노수하고 행위자별하니 오래 유(留)치 못할지라.”
여동(女童) 불러 하직할 새 동방 실솔성은 시르렁 일쌍 호접은 펄펄. 춘향이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로다. 옥창(玉窓) 앵도화 떨어져 보이고 거울 복판이 깨어져 뵈고 문 위에 허수아비 달려 보이거늘
“나 죽을 꿈이로다.”
수심 걱정 밤을 샐 제 기러기 울고 가니 일편 서강(西江) 달에 행안남비 네 아니야. 밤은 깊어 삼경이요 궂은비는 퍼붓는데 도깨비 삑삑, 밤새 소리 붓붓, 문풍지는 펄렁펄렁, 귀신이 우는데 난장 맞아 죽은 귀신, 형장 맞아 죽은 귀신 결령치사 대롱대롱 목 매달아 죽은 귀신 사방에서 우는데 귀곡성이 낭자로다. 방 안이며 추녀 끝이며 마루 아래서도 애고 애고 귀신 소리에 잠들 길이 전혀 없다. 춘향이가 처음에는 귀신 소리에 정신이 없이 지내더니 여러 번을 들어나니 파겁이 되어 청승 굿거리 삼잡이 세악 소리로 알고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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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몹쓸 귀신들아. 나를 잡아 가려거든 조르지나 말려무나. 암급급여율령사파쐐”
진언 치고 앉았을 때 옥 밖으로 봉사 하나 지나가되 서울 봉사 같을 진대
“문수하오.”
외(치)련마는 시골봉사라
“문복(問卜)하오.”
하고 외(치)고 가니 춘향이 듣고
“불러주오.”
춘향 어미 봉사를 부르는데
“여보 저기 가는 봉사님.”
불러 놓(으)니 봉사 대답하되
“게 뉘기. 게 뉘기니.”
“춘향 어미요.”
“어찌 찾나.”
“우리 춘향이가 옥중에서 봉사님을 잠깐 오시라 하오.”
봉사 한번 웃으면서
“날 찾기 의외로세. 가지.”
봉사 옥으로 갈 제 춘향 어미 봉사의 지팡이를 잡고 인도할 제
“봉사님 이리 오시오. 이것은 돌다리요 이것은 개천이요. 조심하여 건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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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개천이 있어 뛰어볼까 무한히 벼르다가 뛰는데 봉사의 뜀이란 게 멀리 뛰진 못하고 올라가기만 한 길이나 올라가는 것이었다. 멀리 뛴단 것이 한가운데 가 풍덩 빠져 놓았는데 기어 나오려고 짚는 게 개똥을 짚었지.
“어뿔싸. 이게 정녕 똥이지.”
손을 들어 맡아 보니 묵은 쌀밥 먹고 썩은 놈이로고. 손을 내뿌린 게 모진 돌에다가 부딪치니 어찌 아프던지 입에다가 훌 쓸어 넣고 우는데 먼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며
“애고 애고 내 팔자야. 조그마한 개천을 못 건너고 이 봉변을 당하였으니 수원수구 뉘더러 하리. 내 신세를 생각하니 천지만물을 불견(不見)이라. 주야를 내가 알랴. 사시(四時)를 짐작하며, 춘절(春節)이 당해온들 도리화개 내가 알며, 추절(秋節)이 당해온들 황국단풍 어찌 알며, 부모를 내 아느냐, 처자를 내 아느냐, 친구 벗님을 내 아느냐. 세상천지 일월성신과 후박장단을 모르고 밤중같이 지내다가 이 지경이 되었구나. 진소위 소경이 그르냐 개천이 그르냐. 소경이 그르지 아주 생긴 개천이 그르랴.”
애고 애고 설이 우니 춘향 어미 위로하되
“그만 우시오.”
봉사를 목욕시켜 옥으로 들어가니 춘향이 반기면서
“애고 봉사님. 어서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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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 그 중에 춘향이가 일색이란 말은 듣고 반가(와)하며
“음성을 들으니 춘향 각씨인가부다.”
“예. 기옵니다.”
“내가 벌써 와서 자네를 한번이나 볼 터로되 빈즉다사라. 못 오고 청하여 왔으니 내 쉰사가 아니로세.”
“그럴 리가 있소. 안맹(眼盲)하옵고 노래(老來)에 기력이 어떠하시오.”
“내 염려는 말게. 대체 나를 어찌 청하였나.”
“예. 다름 아니라 간밤에 흉몽을 하였삽기로 해몽도 하고 우리 서방님이 어느때나 나를 찾을까 길흉 여부 점을 하려고 청하였소.”
“그러게.”
봉사 점을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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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태서유상치경이축축왈 천하언재심이요 지하언재시리요만은 고지즉응하시느니 신기영의시니 감이수통언하소서. 망지휴구와 망석궐의를 유신유령이 망수소보하여 약가약비를 상명고지즉응(尙明叩之卽應)하시느니. 복희, 문왕, 무왕, 무공(武公), 주공, 공자, 오대성현 칠십이현, 안증사맹, 성문십철, 제갈공명 선생, 이순풍, 소강절, 정명도, 정이천, 주염계, 주회암, 엄군평, 사마군, 귀곡, 손빈, 진(秦), 유, 왕보사, 주원장, 제대선생은 명찰명기하옵소서. 마의도자, 구천현녀,육정, 육갑 신장이여 연월일시(年月日時) 사치공조, 배괘동자, 성괘동랑, 허공유감, 여왕(女王) 본가봉사, 단로향화(壇爐香火), 명신문차실향, 원사강림언하소서. 전라좌도 남원부 천변(川邊)에 거하는 임자생신(壬子生辰) 곤명열녀(坤命烈女) 성춘향이 하월하일(何月何日)에 방사옥중하오며 서울 삼청동 거하는 이몽룡은 하일하시에 도차본부하오리까. 복걸 첨신은 신명소시하옵소서.”
산통을 철겅철겅 흔들더니
“어디 보자, 일이삼사오륙칠. 허허 좋다. 상괘로고. 칠간산이로구나. 어유피망하니 소적대성이라. 옛날 주무왕(周武王)이 벼슬할 제 이 괘를 얻어 금의환향(錦衣還鄕)하였으니 어찌 아니 좋을손가. 천리상지하니 친인이 유면이라. 자네 서방님이 불원간에 내려와서 평생 한을 풀겠네. 걱정 마소. 참 좋거든.”
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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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이 대답하되
“말대로 그러면 오죽 좋사오리까. 간밤 꿈 해몽이나 좀 하여 주옵소서.”
“어디 자상히 말을 하소.”
“단장하던 체경이 깨져 보이고 창전(窓前)에 앵도꽃이 떨어져 보이고 문 위에 허수아비 달려 뵈고 태산이 무너지고 바닷물이 말라 보이니 나 죽을 꿈 아니오.”
봉사 이윽히 생각하다가 양구(良久)에 왈
“그 꿈 장히 좋다. 화락(花落)하니 능성실(能成實)이요, 경파(鏡破)하니 기무성(豈無聲)가. 능히 열매가 열려야 꽃이 떨어지고 거울이 깨어질 때 소리가 없을손가. 문상(門上)에 현우인(懸偶人)하니 만인이 개앙시(皆仰視)라. 문 위에 허수아비 달렸으면 사람마다 우러러볼 것이요. 해갈(海渴)하니 용안견(龍顔見)이요 산붕(山崩)하니 지택평(地澤平)이라. 바다가 마르면 용의 얼굴을 능히 볼 것이요 산이 무너지면 평지가 될 것이라. 좋다. 쌍가마 탈 꿈이로세. 걱정 마소. 멀지 않네.”
한참 이리 수작할 제 뜻밖에 까마귀가 옥 담에 와 앉더니 까옥까옥 울거늘 춘향이 손을 들어 후여 날리며
“방정맞은 까마귀야. 나를 잡아 가려거든 조르지나 말려무나.”
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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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가 이 말을 듣더니
“가만 있소. 그 까마귀가 가옥가옥 그렇게 울지.”
“예. 그래요.”
“좋다. 좋다. 가자(字)는 아름다울 가자(嘉字)요, 옥자(字)는 집 옥자(屋字)라. 아름답고 즐겁고 좋은 일이 불원간 돌아와서 평생에 맺힌 한을 풀 것이니 조금도 걱정 마소. 지금은 복채 천냥을 준대도 아니 받아 갈 것이니 두고 보고 영귀(榮貴)하게 되는 때에 괄시나 부디 마소. 나 돌아가네.”
“예 평안히 가옵시고 후일 상봉하옵시다.”
춘향이 장탄수심으로 세월을 보내니라.
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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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한양성 도련님은 주야로 시서 백가어를 숙독하였으니 글로는 이백(李白)이요, 글씨는 왕희지(王羲之)라. 국가에 경사 있어 태평과를 보이실 새 서책을 품에 품고 장중에 들어가 좌우를 둘러 보니 억조창생 허다 선비 일시에 숙배한다. 어악풍류 청아성에 앵무새가 춤을 춘다. 대제학 택출하여 어제를 내리시니 도승지 모셔내어 홍장(紅帳) 위에 걸어 놓(으)니 글 제에 하였으되
“춘당춘색이 고금동이라.”
뚜렷이 걸었거늘 이도령 글 제를 살펴보니 익히 보던 배라. 시지(試紙)를 펼쳐놓고 해제(解題)를 생각하여 용지연(龍池硯)에 먹을 갈아 당황모 무심필을 반중동 덤벅 풀어 왕희지 필법으로 조맹부 체(體)를 받아 일필휘지(一筆揮之) 선장하니 상시관이 이 글을 보고 자자(字字)이 비점이요 구구(句句)이 관주로다. 용사비등(龍蛇飛騰)하고 평사낙안이라 금세의 대재(大才)로다. 금방의 이름을 불러 어주삼배(御酒三盃) 권하신 후 장원급제 휘장이라. 신래(新來)의 진퇴(進退)를 나올 적에 머리에는 어사화요 몸에는 앵삼이라. 허리에는 학대로다. 삼일(三日) 유가한 연후에 산소에 소분하고 전하께 숙배하니 전하께옵서 친히 불러 보신 후에
“경의 재조 조정에 으뜸이라.”
하시고 도승지 입시(入侍)하사 전라도 어사를 제수하시니 평생의 소원이라.
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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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繡衣), 마패(馬牌), 유척을 내주시니 전하께 하직하고 본댁으로 나갈 때 철관 풍채는 심산맹호(深山猛虎)같은지라. 부모전 하직하고 전라도로 행할 새 남대문 밖 썩 나서서 서리, 중방, 역졸 등을 거느리고 청파역 말 잡아 타고 칠패, 팔패, 배다리 얼른 넘어 밥전거리 지나 동작이를 얼픗 건너 남대령을 넘어 과천읍에 중화(中火)하고 사근내, 미륵당이, 수원 숙소(宿所)하고 대황교, 떡전거리, 진개울, 중미, 진위읍에 중화하고 칠원, 소사, 애고다리, 성환역에 숙소하고 상류천, 하류천, 새술막, 천안읍에 중화하고 삼거리, 도리치, 김제역 말 갈아 타고 신구, 덕평을 얼른 지나 원터에 숙소하고 팔풍정, 화란, 광정, 모란, 공주, 금강을 건너 금영에 중화하고 높은 한길 소개문, 어미널티, 경천에 숙소하고 노성, 풋개, 사다리, 은진, 간치당이, 황화정, 장애미고개, 여산읍에 숙소참하고 이튿날 서리 중방 불러 분부하되
“전라도 초읍 여산이라. 막중국사 거행불명즉 죽기를 면치 못하리라.”
추상같이 호령하며 서리 불러 분부하되
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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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좌도로 들어 진산, 금산, 무주, 용담, 진안, 장수, 운봉, 구례로 이 팔읍을 순행하여 아무 날 남원읍으로 대령하고, 자, 중방 역졸 너희 등은 우도로 용안, 함열, 임피, 옥구, 김제, 만경, 고부, 부안, 흥덕, 고창, 장성, 영광, 무장, 무안, 함평으로 순행하여 아무 날 남원읍으로 대령하고, 종사 불러 익산, 금구, 태인, 정읍, 순창, 옥과, 광주, 나주, 평창, 담양, 동복, 화순, 강진, 영암, 장흥, 보성, 흥양, 낙안, 순천, 곡성으로 순행하여 아무 날 남원읍으로 대령하라.”
분부하여 각기 분발하신 후에
어사또 행장을 차리는데 모양 보소. 숱 사람을 속이려고 모자 없는 헌 파립에 벌이줄 총총 매어 초사갓끈 달아 쓰고 당만 남은 헌 망건에 갖풀관자 노끈당줄 달아 쓰고 의뭉하게 헌 도복에 무명실 띠를 흉중에 둘러 매고 살만 남은 헌 부채에 솔방울 선추달아 일광을 가리고 내려올 제 통새암, 삼례 숙소하고 한내, 주엽쟁이, 가리내, 싱금정 구경하고 숩정이, 공북루 서문을 얼른 지나 남문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소강남여기로다. 기린토월(麒麟吐月)이며 한벽철연(寒碧淸煙), 남고창종(南固暮鍾), 건지망월(乾止望月), 다가사후(多佳射侯), 덕진채련(德眞採蓮), 비비락안(飛飛落雁), 위봉폭포(威鳳瀑布), 완산팔경을 다 구경하고 차차로 암행(暗行)하여 내려올 제 각읍 수령들이 어사 났단 말을 듣고 민정(民情)을 가다듬고 전공사(前公事)를 염려할 제 하인인들 편하리요. 이방, 호장 실혼(失魂)하고 공사회계(公事會計)하는 형방, 서기 얼른 하면 도망차로 신발하고 수다한 각 청상(廳上)이 넋을 잃어 분주할 제 이때 어사또는 임실 국화들 근처를 당도하니 차시(此時) 마침 농절(農節)이라. 농부들이 농부가(農夫歌)하며 이러할 제 야단이었다.
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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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로 상사디야 천리건곤 태평시(太平時)에 도덕 높은 우리 성군(聖君) 강구연월 동요 듣던 요(堯)임금 성덕(聖德)이라 어여로 상사디야. 순(舜)임금 높은 성덕으로 내신 성기 역산에 밭을 갈고 어여로 상사디야. 신농씨 내신 따비 천추만대(千秋萬代) 유전(遺傳)하니 어이 아니 높으던가 어여로 상사디야. 하우씨(夏禹氏) 어진 임금 구년홍수(九年洪水) 다스리고 어여라 상사디야. 은왕(殷王) 성탕 어진 임금 대한칠년(大旱七年) 당하였네 어여라 상사디야. 이 농사를 지어내어 우리 성군 공세 후에 남은 곡식 장만하여 앙사부모 아니하며 하육처자 아니할까 어여라 상사디야. 백초를 심어 사시(四時)를 짐작하니 유신(有信)한 게 백초로다 어여라 상사디야. 청운공명 좋은 호강 이 업(業)을 당할소냐 어여라 상사디야. 남전북답 기경하여 함포고복(含哺鼓腹) 하여보세 얼럴럴 상사디야.”
한참 이리할 제 어사또 주령 짚고 이만하고 서서 농부가를 구경하다가
“거기는 대풍(大豊)이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