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서울역 역사 4층의 도원스타일이라는 중국집에서 '구취조절연구회' 회식이 있었다. 입석으로 ktx를 탓다. 통로에 한발로 서서 책을 읽기엔 덥고 옹삭하였다. 내 자리없음이 그러했다. 승무원이 특실엔 출입도 못하게 하는 나는 기차안에서 아무 것도 아닌 기분이었다.
역사 식당가 중심엔 갤러리가 있었고 해변의 풍경이 밝은 톤의 거친 붓질로 그려지고 있었다. 그 앞을 지나는 서울 사람들은 그림처럼 밝게 돋보였다. 낯설고 부러운 모습이다. 분주하고 공허한 모습이다.
직장인지, 동호회인지, 연인인지 하는 이들이 화려한 식당에 삼삼오오 모여 들었다. 자신의 지인이, 업무가, 세상일이 곧장 자기연민이 되는 이야기들이 음식과 고량주을 타고 풍성하다. 수다라는 게 자기 세를 과시하는 것 다름 아니었다.
서울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창가는 어두워지고 잘잘한 나무잎 형상을 한 식당 조명이 화려하다.
구취증(구취에 대한 불안)을 병명으로 등재시키고, 환자의 얼굴에 직접 자신의 얼굴을 들이 밀며 냄세의 거리를 재어 의사의 권위와 권력을 만들었던 이가 일본의 수의사, WHO 연구원 출신의 치과의사 혼다이다. 그가 작년 겨울에 강의 일정중 숙소에서 응급실로 옮긴후 돌아가셨다. 그의 한국 지부의 모임이 어제였고 그 자리에서 이제까지의 한국 지부 회장이 퇴임했다.
일년에 두번 구취증의 치료와 연구를 업그레이드하던 대규모 혼다식 구취증 학술대회가 힘을 잃었다. 그리고 유튜브를 통해 알게된 한국의 구취증 환자가 진료를 받던 고대병원 예방치과 교수인 전 한국지부 회장도 직장에서 은퇴하였다 . 그는 과천시 보건소의 5급 보건직이던 치과의사가 면직된 자리에 업무대행 사업주 형태(특수고용) 로 2.5일 고용되었다. 즉, 한국의 구취조절의 핵심멤버가 그의 능력이 입증된지 일년여 만에 아무 것도 아니게 되었다.
그는 그의 자리가 없고, 그가 아무것도 아닐때 과천 보건소에서 논문작성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예산없이 예방과 행정업무를 하라하니 그는 주 2.5일 근무 시간에 온전히 연구에 몰두할 수 있다. 4대 보험도 없는 업무대행이라는 보건소 치과의사 자리가 예방치과연구로 평생 일하던 그의 새로운 일자리가 되었다.
나도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어떻게 사는가가 궁금해졌다.
첫댓글 feel 님은 페이닥터가 아니시잖아요.. 원하지 않는 한 늘 ‘아무것’일 겁니다. ^^
인생의 보람이라고 우리가 믿고 살아가는 것들이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나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죠. 하지만 의사라는 직업은 그 모든 실행이 보람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