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크라 각성의 원리
4)차크라 각성 기제
차크라의 각성은 흔히 쿤달리니(kuṇḍalinī)의 각성과 혼동되거나 또는 같은 의미로 인식된다. 좀 더 엄밀하게 설명하면 같은 생체에너지의 각성 체계로 연장선상에서 발생하는 각각의 현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과정은 동시적 상호작용으로 서로를 내포하며, 촉진하는 관계라 할 수 있다.
Satyanada는 "차크라의 각성은 쿤달리니의 각성과 전혀 다르다. 수슘나의 각성도 전혀 다른 사건이며, 물라다라의 각성도 쿤달리니의 각성이 아니다. 설령 물라다라에서 아갸(ājnā)까지의 모든 차크라가 각성된다 할지라도 이것이 쿤달리니가 각성되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라 하였다. 또한 "쿤달리니 에너지는 하나의 에너지이지만, 이는 개별적인 심령적 중추들이라 한다. 또는 차크라를 통해서 처음은 거친 본능적 방식으로, 그 다음은 점점 더 미묘한 방식으로 스스로 다르게 표현한다."고 하였다. 쿤달리니와 차크라는 별개의 과정이라 설명하면서도 차크라를 통해 쿤달리니 에너지가 표현된다고 말하고 있다. 요가의 전통에서는 쿤달리니를 일깨움으로써 차크라를 각성하는 것이 보편적이라 할 수 있다.
Selby는 "쿤달리니는 척추 기저의 하부에서 잠재적 에너지 형태로 존재하는데, 깨어나서 에너지 센터인 일곱 차크라들을 활성시키며, 통찰력과 힘으로서 차크라 각각을 변형시키고 상위 차크라로 상승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다. 또한 Frawley도 "쿤달리니 에너지는 우리의 잠재력을 드러나게 하는데, 이 발전적인 잠재력은 미묘한 몸 속의 잠재적 에너지 센터인 일곱 차크라들로 존재하고 있다. 이것은 쿤달리니에 의해서 활성화된다."고 하였다.
Arnold는 "쿤달리니 뱀은 차크라의 진화 과정을 상징하며 쿤달리니는 영적인 에너지로서 각 차크라를 깨워 충전시키며 서로 연결시킨다."라고 하였다. Mookerjee도 "쿤달리니가 각각의 차크라에 도달하게 되면 각 차크라의 연꽃은 만개하고 꽃봉오리는 위로 향하고, 그녀(샥티)가 그 다음 차크라로 이동하면 연꽃은 꽃잎을 오므려 꽃봉오리는 아래로 쳐진다. 이것은 차크라의 에너지가 활성화되고 쿤달리니와 감응하는 것을 상징한다."고 하였다. 이는 차크라와 쿤달리니가 서로 구별되는 각성 과정이지만 서로 밀접한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상의 차크라와 쿤달리니의 관계에 대한 설명들에 의하면 모두 쿤달리니의 각성이 차크라의 각성을 유도하고 또한 촉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쿤달리니(kuṇḍalinī) 각성
쿤달리니는 인간의 신체에 잠재되어 있는 잠세력으로 잠자는 형태로 설명되어진다. 산스크리트어로 '고리' 또는 '똘똘 감겨진 모양', '소용돌이', '사리(똬리를 튼 것)'을 뜻하는 『kuṇḍala』의 여성 명사이다. 문자의 형태 그대로 표현하면 『감겨있는 여성』이라는 뜻이다. 쿤달리니(kuṇḍalini)는 보다 깊은 장소, 구덩이나 '동굴'을 뜻하는 꾼다('kuṇḍa')에서 파생되었다. 꾼다는 똬리를 틀고 자는 뱀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 뇌가 깃들여져 있는 옴폭한 공동을 가리킨다. 탄트라에서는 이것은 쉬바 신의 아내인 여신 샥티(śakti)를 이르는 말이며 가장 낮은 에너지 센터인 물라다라 차크라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잠재적 상태로 지니고 에너지를 응집한 채 존재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소우주인 미묘한 신체에서 이것은 쉬바 신의 상징으로 알려진 링가를 세 바퀴 반을 감고서 잠자고 있는 뱀의 형상으로 신성한 힘과 인간 안에 있는 무의식을 상징한다. 감겨진 것은 근본원질(프라크리티)을, 세 바퀴는 세 구나(사트바, 라자스, 타마스)를 의미한다. 신체에서 여신 샥티는 쿤달리니 또는 쿤달리니 샥티라 한다. 대부분의 샥티 에너지는 일상적 생명활동만을 유지하기 때문에 몸을 똘똘 감은채 자고있는 뱀과 같은 형상과 같기에 그러하다.
일반적으로 물라다라 차크라(mūladhāra cakra)에서만 쿤달리니가 잠재되어 있다고 전해지기도 하지만 인간은 각자 진화의 정도에 따라 일곱 개의 차크라에 조금 잠재되어 있을 수도 있고 각성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Satyanada는 생체에너지의 완전한 각성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쿤달리니 각성 과정의 첫 번째는, 이다(iḍā), 핑갈라(piṅgalā)의 정화를 통한 조화의 과정이며, 두 번째는 차크라 각성이고 세 번째로 수슘나 나디의 각성, 마지막으로 쿤달리니 각성의 순서이다."라 하였다. 이것은 쿤달리니가 각성되기 전에 차크라가 각성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므로 쿤달리니의 각성이 차크라의 각성에 전제가 된다. 차크라의 각성은 쿤달리니 전체 각성 체계과정과 구별되지 않는 연속적 과정이며, 쿤달리니의 각성이 차크라 중심센터들의 각성을 촉진하는 가장 전통적인 수행 방식이라는 것이다.
쿤달리니 에너지는 차크라를 통해서 처음에는 거친 본능적 방식으로 시작하여 점차적으로는 미묘한 방식으로 저절로 다르게 표현된다. 즉, 쿤달리니가 상승하게 되면 각 차크라에 있는 요소와 의식 기능들이 점차 용해되어 정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쿤달리니가 하나의 차크라에 도착하면, 그 차크라는 강하게 진동하면서 기능을 완전히 발휘한다. 하지만 쿤달리니가 다음 차크라로 이동하면 그 이전의 차크라는 진공처럼 된다. 쿤달리니가 그 차크라가 가지고 있는 모든 요소들을 완전히 정화하고 흡수한 후 다음 차크라로 떠나기 때문이다. 상키야 철학적으로 각 요소들은 근본원질과 같은 차원으로 진동하면서 우주적 모체 속으로 재흡수된다. 이러한 과정이 수행자를 순수한 존재로 재창조하는 것이다. 수슘나 나디를 통과하는 쿤달리니 상승은 요소 정화(부타 슛디)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쿤달리니 샥티가 각성되게 되면 정수리에 위치하는 사하스라라 차크라까지 수슘나를 통해 위로 오르면서 물라다라 차크라로부터 아갸 차크라에 이르기까지 여섯 개의 차크라를 차례로 관통한다. 각 차크라의 속성을 소멸시킨 쿤달리니는 사하스라라에서 자신마저 소멸된다. 차크라의 속성들이 사라지면서 차크라는 다시 억제되지만 이는 각성 이전의 차크라와는 다르다. 불순물이 제거된 변형된 형태의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쿤달리니가 차크라를 통과해 아트만이 거주하고 있는 사하스라라 차크라에 도착하면 더 이상 육체를 감각하지 않고 초월의 영역으로 의식이 확대되어진다. 이로써 영원한 실재인 우주적 브라흐만과 합일함으로 해탈에 이르게 된다. 영적인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쿤달리니 각성과 관계되어진다 한다.
쿤달리니는 물러남의 힘이기도 하며, 세계 전개의 과정을 거꾸로 돌림으로써 아스트랄 몸의 차크라들을 원인의 몸으로 변환한다. 따라서 우리가 외적 감각의 휘둘림과 집착을 줄이지 않게 되면 차크라는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쿤달리니가 상승하여 쉬바와 샥티의 합일 후 쿤달리니가 다시 자신의 휴식처인 거친 수준의 물라다라로 돌아가도 각 차크라는 그 이전보다 더 조화로운 방법으로 각 기능을 발휘한다. 쿤달리니의 하강은 변형된 의식 즉, 인간의 보다 낮은 정신적 수준이 더 이상 평범한 마음의 영향을 받지 않고 초월심(supermind)이 대신 들어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쿤달리니 각성은 인간에 내재된 강력한 변형 에너지가 발현된다는 뜻이다. 쿤달리니 각성과 함께 신에게 가까운 완전한 인간으로 나아간다는 것으로서 신체를 자극하고 움직이는 수련 과정을 통해 신체와 마음, 정신적으로 완전한 존재를 이루고 그렇게 된다는 확신을 통하여 신체의 개념이 단순히 물질적인 개념을 넘어서 모든 가능성을 내포하는 도구로서, 더 나아가서는 정신과 동등한 위치를 갖는 개념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2)차크라 각성의 조화와 균형
차크라의 각성은 에너지 체계인 차크라를 열어서 진아를 바라보고 자신 내부의 잠재력을 펼치고 정화와 활성화하는 전인론적인 방식이다. 차크라는 끊임없이 외부의 세계와 에너지를 주고받는 체계인데 이러한 시스템이 조화롭게 작동되어서 생체에너지가 정체(blockage)되거나, 부조화(imbalances)상태, 누설(leaks)상태, 밀집(congestion)상태가 없는 차크라 체계가 이상적 형태라 할 수 있다. 요기 Bhajan은 "차크라를 조화롭게 하는 것은 우리 존재의 모든 측면의 균형 잡히고 조화로운 모습에 도달하는 것이다. 각각의 차크라가 우리 생명의 어떤 부분에 조화롭다는 것은 내분비선의 적절한 기능과 분비를 통하여 드러난다."고 하였는데, 그는 차크라와 연결된 분비선들의 점진적 활동이 높은 의식과 정서와 사고, 물리적 균형을 가져온다고 이해하고 각 내분비기관이 기능에 맞게 적절히 활동하게 하는 것이 쿤달리니 요가의 주요한 목적이고 결과라 하였다.
Arnold는 "명상에서는 이 쿤달리니를 일깨워 삶의 에너지를 흐르게 하여 치유의 힘으로 발달시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하며 쿤달리니 요가를 통해 차크라의 각성이 치유의 길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Niranjanananda는 정묘한 자각과 높은 지성은 고수위 주파수의 프라나 진동의 결과이며, 고속, 고배율의 프라나 진동은 상위 차크라의 각성을 가져온다 한다. 이와 같이 쿤달리니와 차크라의 각성과 같은 높은 주파수의 프라나 진동은 높은 수준의 인식 상태를 유도하여 인식의 오류로 생기는 부정적 사고와 감정, 행동 등을 수정하게 하고 긍정적 사고와 반응으로 변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다.
각각 차크라의 톱니바퀴가 상호 연결되어서 균형 잡힌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톱니 중 하나가 다른 것에 비해서 너무 빠르거나 또는 너무 천천히 움직이게 되면 전체 시스템의 불균형을 야기하게 된다. 또한 차크라는 너무 열려 있는 경우만이 아니고, 진동의 회전 흐름이 깨져 있는 경우에도 부정적인 양상으로 드러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다시 재정렬하여 균형과 조화를 이루게 하여서 차크라가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
아유르베다에서는 의식 에너지가 어느 차크라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지에 따라서 기질과 성격 등이 결정되어진다고 본다. 차크라에 집중하고 또한 그것을 자각하게 되면 자신을 지배하는 특정 성향을 객관적으로 관조하게 되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하였다. 다시 말해, 이러한 에너지는 우리의 몸과 마음, 영혼의 상태에 관여하며, 그것들의 균형 정도에 따라서 성격과 인간관계의 패턴, 또 물질관과 영적 특징 등 삶에서 매우 다양한 특징들을 보여준다.
차크라 체계에서 각 차크라들 간의 완전한 균형은 인체 내에서 최상의 정신과 감정상태 그리고 신체의 건강을 유지 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삶에 있어 더욱 큰 균형과 그러한 균형을 삶 속으로 들어오게 하여 진정한 힐링을 갖게 해준다.
<아로마테라피의 차크라 각성 기전연구/장은주 선문대학교 일반대학원 통합의학과 자연치유전공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