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의 꿈
정 의 숙
남편과 나는 성격이 참 다르다. 남편은 친절하고 자상하고 호기심이 많으며 활동적이다. 반면에 나는 소극적이고 내성적이며 남편과는 거의 반대의 성격이다. 처음에는 무뚝뚝한 나와 달리 남편의 부드럽고 다정한 성격이 매우 신기했지만 살면서 그 다른 성격 때문에 서로 부딪힌 적도 많았다. 함께 산 세월의 밥그릇이 쌓여가면서 서로 맞추어 사는 우리에게 닮아가는 것이 점점 많아지는데 그중 하나가 식성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우리 부부가 새롭게 같이 좋아하게 된 음식은 고구마다. 옛날에는 구황작물이었던 고구마가 요즘에는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받는다. 구황작물이란 자연재해의 영향을 덜 받고 좋지 않은 땅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이다. 먹고살기 힘들었던 옛날 다른 농작물이 잘 안되었을 때 대안 먹거리로 활용할 수 있어서 좋아했고, 오늘날에는 식이섬유소가 풍부하여 변비에 좋고 소화를 촉진시키며 다이어트뿐만 아니라 항암작용에도 효과가 있다고 하여 사람들이 좋아한다. 고구마를 텃밭에 심어보니 자주 돌보지 않아도 잘 자라고 수확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래서 올여름에 텃밭을 장기간 비우게 되자 일반 작물을 조금 심고 남은 대부분의 텃밭에 고구마를 심었다. 다른 작물처럼 고구마도 때를 맞춰 심어야 하는데 우리가 떠나기 전에 심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물도 자주 주고 정성을 다해 열심히 보살펴주며 우리가 없는 동안에도 잘 자라주기를 당부했다. 그 후 두 달이나 지나서 돌아온 우리는 오자마자 텃밭에 들렀다. 그곳은 텃밭이 아니라 밀림이었다. 우리가 돌보지 못하는 사이에 잡초는 담장을 넘어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어디가 길이고 두둑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관심 있게 찾아본 곳은 고구마밭인데 어림짐작으로 추측할 수 있을 뿐 고구마잎이나 줄기는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일단 낫과 예초기로 밀림 같은 잡초를 제거하고 길을 만들어 내었더니 풀 속에 숨어있는 몇몇 키 작은 작물이 보였다. 숨겨진 고구마밭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뒤에 있는 키 큰 잡초를 헤치고 들어가야 했다. 함께 크는 잡초가 고구마의 잎과 줄기를 고통스럽게 한 탓인지 시든 우거지 같은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고구마는 자연재해보다 주변 이웃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동안 자주 들여다보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으로 고구마밭 주변의 잡초를 뽑고 잡초에 치여 숨죽이고 숨어있던 줄기를 정리해 주었다. 시들시들했던 고구마의 잎과 줄기가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우리가 구석구석 노력을 퍼부으며 고구마를 살린 것이라고 스스로 자화자찬했다. 얼마 후 고구마 수확의 날. 화장한 얼굴을 보는 것 같은 오해가 있었음을 알았다. 겉보기에 괜찮은 모습이었던 고구마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렸다. 일반적으로는 고구마 두둑을 열고 고구마 줄기를 위로 잡아당기면 서너 개의 덩이뿌리가 주렁주렁 달려 나와야 한다. 그런데 우리 고구마는 덩이뿌리가 땅속에 수직으로 박혀있어서 줄기가 끊어져 버렸다. 한두 개가 아니고 제법 많은 녀석이 그 모양이었다. 흙 속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돌 틈으로 뻗어 자라기도 힘들었겠지만 캐내기도 힘들었다. 고구마를 캐는 것은 흙이 데려간 고구마의 삶을 캐내는 것이다. 아주 작은 돌들이 뭉치고 다져진 그 틈을 껴안고 뿌리를 뻗어 덩이를 만들어야 하는 힘든 삶이다. 게다가 아주 오랜 시간 잡초에 묻혀 햇빛조차 받을 수 없었던 고구마가 아닌가. 고구마밭에 잡초가 너무 잘 크면 그 뿌리가 깊이 내려서 고구마의 뿌리가 굵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 엄청난 잡초들 틈에서 우리 고구마는 악착같이 온몸을 던져 한 개의 고구마 덩이를 만들어 낸 것이다. 자신이 고구마임을 증명하려는 듯이 그 한 덩이에 자기 존재를 집중했을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환경을 이기고 그 고통을 안으로 삼켜야 하는 과정을 뚜벅뚜벅 통과했을 고구마의 절박한 아픔과 간절함에 마음이 무거웠다. 우리 모두 다 제 몫의 삶을 견디며 산다. 그러나 꿈을 꿀 수 있는 틈이 있으면 삶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다. 고구마는 어떤 꿈을 꾸고 있었을까. 돌 없는 흙이었을까. 잡초 없는 환경이었을까. 절망 속에서도 마음을 키우는 한마디 말이었을까. 침묵 속에서만 말할 수 있는 진실이었을까. 서로 맞추어 살아가는 우리처럼 고구마도 함께 맞추어 살아갈 질 좋은 자연같은 이웃이 필요하다는 마음속 울림에 귀를 기울여본다.
2018 수필춘추등단
달구벌수필문학회 회원, 대경상록수필창작교실 회원
삶의 안전핀
학교를 벗어나 밖으로 나오니 어깨에 날개를 단 것 같았다. 자유로운 몸과 마음으로 하늘을 나는 새들처럼 신이 났다. 삼십 년을 한결같이 있는 힘을 다해 충실했던 시간을 딛고 이제 내가 아닌 내가 되었다. 시간과 공간에 매여 있던 하루는 내 삶의 바깥에서 조금은 게으르고 조금은 나태하게 지나갔다. 나 자신에게 너그러워지고 삶의 여백이 주는 가치를 새롭게 알았다. 오카리나로 트롯 연주하기, 수채화 그려서 벽에 붙여놓고 전시회 하기, 연필그림으로 가족들의 얼굴 그려주기, 노인대학 어르신들께 쑥뜸 떠드리기 등 퇴직 후에 하려고 마음먹었던 느슨한 생활에 만족했다. 결원이 생긴 교사충원을 위해 기간제교사로 근무하기를 권하는 동료들이 있었지만 나는 다시 학교에는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학생들과 함께 주고받던 울퉁불퉁한 이야기들과 따뜻하던 시간 들이 자꾸 떠올랐다. 방과 후 교실에 남아서 지구보다 큰 고민을 털어놓던 학생들의 눈망울이 생각나 남겨두고 온 꿈처럼 애달팠다. 날이 갈수록 그 추억이 또렷해지고 그리워졌다. 학생들을 만나고 싶은 욕심이 점점 타올랐다. 학교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며 잘한다고 여겼던 일은 학생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스스로 자신의 가능성을 회복하곤 하였다. 나는 그것이 좋았다. 학교에서 오랫동안 상담업무를 맡아왔던 나는 학교에 출근하지 않고도 학생들과 함께할 방법을 찾았다. 사이버 상담이었다. 마침 현직에 있을 때 청소년을 위한 무료 상담을 했기 때문에 퇴직 후에도 사이버상담실을 통해 나는 계속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몸담았던 사이버상담실은 전직 교사와 현직 교사들이 마음을 모아 청소년이나 학부모들이 의뢰하는 문제를 상담하는 곳이다. 청소년들이 마주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혼자서 고민하고 방황하지 않도록 도움을 준다. 전에는 학업과 진로 분야에서 답답한 마음을 하소연하는 학생들의 상담을 주로 맡았었다. 내 내담자들은 학업성적이 낮고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지 못해서 답답해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떻게 공부해야 성적을 올릴 수 있는지, 자신의 적성은 무엇인지, 진로를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알고 싶은 학생들이었다. 나는 상담을 하려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매력적인 존재인가를 먼저 일깨워주곤 했다. 상담을 의뢰하는 것 자체가 지금의 고민에서 빠져나가려는 노력이고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금 겪고 있는 방황이나 아픔을 더욱 멋진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디딤돌로 삼고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도록 조언하였다. 퇴직 후에 맡은 상담 분야는 학생들뿐 아니라 학교 밖 청소년들의 교우 관계 분야였다. 그들을 힘들게 하는 친구와의 갈등, 차별이나 비교를 당할 때 느껴지는 소외감, 부모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의사소통의 문제 등의 갈등 상황을 상담해 주는 분야다. 상담 글이 보여준 청소년들의 마음을 읽는 동안 내내 자기의 감정을 성숙하게 처리할 줄 몰라서 고스란히 고통으로 껴안은 그들이 보였다. 한 글자 한 글자 힘들게 적어 온 길지 않은 상담 글은 두려움을 헤쳐나가고 싶은 간절한 기도였다. 충분한 공감과 격려를 담아 답글을 올려줄 때마다 답글을 읽는 그 짧은 시간이 겨울에 새로 핀 눈꽃처럼 그들에게 소중한 세상이 되기를 바랐다. 온 나라에 학교폭력이란 어둠이 어린이부터 청소년까지 두렵게 하는 시점에서 교우 관계로 고민하는 청소년들은 더 힘들다. 언어폭력, 신체폭력, 집단따돌림 등 학교폭력이라는 이름으로 교우 관계를 덮어씌워 소심하고 마음 여린 친구들은 빠져나갈 틈이 없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어 보였다. 그 고통은 학창 시절의 일반적인 현상으로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큰 짐이었다. 사이버 상담이지만 그 치열한 고백 앞에서, 짐을 덜어주어야 하는 책임 속에서, 글 뒤에 숨지 않는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했다. 어떤 몸부림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아픈 위기의 청소년은 전문 심리 상담실에 의뢰하여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상담 글을 쓰고 답글을 올리는 일이 바로 주위의 시간과 공간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가지는 일임을, 자기 운명을 사랑하는 노력임을 청소년들이 알았으면 했다.
청소년기에는 자신의 감정이나 경험이 다른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고 독특하다고 믿는 특징이 있다. 자아 중심적인 사고를 갖기 때문이다. 자신의 자존심을 위해서 자기만의 비밀을 혼자 간직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기를 싫어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다른 사람에게 비밀을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일이 있기 마련이다.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들어주고 마음을 위로해주며 힘이 되어줄 누군가가 필요할 때 그들은 대면 상담에 앞서 사이버상담실을 방문한다. 자신을 보여주지 않고도 비밀을 유지하면서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19로 대면 상담이 어려웠던 시기에 사이버 상담은 학생들에게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손에 인터넷을 들고 다니는 이 시대는 일상생활에서도 인터넷을 통하여 시공간을 초월한 다양한 관계를 형성한다. 청소년 대부분이 소지하고 있는 휴대폰을 이용한 모바일 상담으로 더 많은 청소년들이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때에 상담 글을 올릴 수 있고 전문가들에게 빠르게 조언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영국의 정신과 의사인 앤서니 스토(Anthony Storr)는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익숙한 존재 자체가 아니라 서로 알아봐 주고 인도해 주는 것. 그리고 비록 보잘것없다 해도 서로의 삶에 도움이 되도록 지지해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누군가 자신의 고민을 들어주고 이해해주며 따뜻하게 지지해준다고 느끼게 된다면 우리 스스로가 작은 존재로서도 큰 기쁨일 수 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인간은 가치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는 말을 마음에 넣어본다. 나의 정성이 담긴 글자 하나가 진심으로 관심받은 경험이 되어 청소년 자신의 인생에 삶의 안전핀이 되기를 소망한다. 경험은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는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