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악동 클럽
“할머니 여긴 어린이 놀이터란 말이에요!”
“어린이 놀이터가 따로 있고 어른 놀이터가 따로 있는겨? 아무나 먼저 와서 자리 잡으면 되지!”
“그게 아니라니까요! 할머니는 어른이면서 왜 어린이 놀이터에서 놀려고 하세요?”
“요런~ 어른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여?”
주먹을 쥐고 때릴 듯이 치켜드는 할머니가 꼭 마귀할멈 같아서 나는 주춤하며 입을 닫아 버렸다. 얼마 전부터 우리 동네 놀이터를 할머니 네 명이 독차지하고 있다.
처음엔 우리보다 먼저 자리를 잡고 있고 어른들이라 말도 못 하고 친구들이랑 공원놀이터에 가서 놀았다. 하지만 그쪽 동네 아이들이 텃세를 부려서 그곳에서도 놀 수가 없어 밀려나고 말았다. 우리는 더이상 갈 곳이 없는데 우리 놀이터는 할머니들이 차지해 버린 것이다. 오늘 석주랑 보드를 타고 싶었는데 할머니들이 돗자리를 깔아놓고 음식을 먹고 있어서 우리는 그네를 타다가 시이소를 타다가 재미가 없어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학교수업이 끝나면 학원에 가거나 집 근처 놀이터에 모여 친구들이랑 노는 게 하루의 즐거움인데 오늘은 너무 재미가 없었다. 책가방을 던져놓고 거실에 앉아 놀이터를 되찾을 방법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석주야, 우리 놀이터를 할머니들에게 빼앗겨서 어떡하니? 놀이터를 다시 찾아올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하고 석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석주는 생각해보고 내일 학교에서 만나 방법을 짜 보자고 한다.
다음 날, 4교시가 끝나고 점심을 먹자마자 친구들과 모여 회의를 했다. 미란이가 제일 먼저 얘길 꺼낸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한 사람이 부지런히 놀이터로 가서 자리를 잡아 놓자.”
“부모님께 말씀드려서 우리가 끝날 때까지 자리 좀 잡아 달라고 부탁드리자.” 석주도 한마디 한다.
“아예 학교를 하루 빠지고 등굣길에 놀이터로 가서 자리를 잡고 있으면 어때?”라고 민수도 한마디 한다. 덩치가 커서인지 생각하는 것도 덩치답다.
“그건 말도 안 돼. 놀이터를 차지하자고 학교수업에 빠지면 안 될 것 같아.”
“또 다른 생각 있는 사람!”
더 이상 얘길 꺼내는 사람이 없다. 의견이 모아졌으니 이제는 거수로 결정을 해야 한다. 그런데 민수가 손을 든다.
“우리 부모님은 매일 직장에 나가야 해서 자리를 잡아줄 수 없어.”
“그래? 우리 부모님도 식당을 하시니 그럴 것 같은데.”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미란이 의견인데.”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 그럼 오늘부터 수업이 끝나자마자 놀이터로 달려갈 사람을 정하자. 오늘은 나, 내일은 민수, 모레는 석주, 그다음 차례는 수경이, 미란이 어때?”
“좋아!” 모두가 찬성이다. 오늘은 내가 1번 타자로 달려가야 한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께 인사를 마치자마자 가방을 들고 뛰었다. 푸른 하늘 높이 흰구름이 따라오며 응원해 주는 것 같다.
숨이 차게 뛰어와 놀이터에 들어서니 할머니들이 벌써 모여있다. 마귀할멈처럼 무섭게 생긴 할머니는 그네에 앉아있고 깡마르고 홀쭉한 빼빼 할머니는 시이소에 앉아있고 대장 할머니와 다른 할머니는 돗자리 위에서 자고 있다. 땀도 나고 숨도 차는데 화도 나려고 한다.
“할머니! 오늘은 우리가 좀 놀면 안 돼요?” 하고 물으니까, 돗자리에 누워있던 할머니가 벌떡 일어난다.
“뭔 소리여? 우리가 먼저 와서 이렇게 누워있는 거 안 보여?” 하며 악을 쓴다. 기가 막혔다. 어린이 놀이터를 어른이, 그것도 할머니들이 독차지하고 있다니.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주일 후에 스케이트보드 대회가 있는데 중요한 기술 하나를 연습해야 해요. 연습 좀 하게 해 주세요.” 할머니들은 들은 체도 않는다.
“어떻게 된 거야? 할머니들이 먼저 온 거야?” 석주와 민수가 달려왔다. 미란이, 수경이도 도착했다.
“보다시피야.” 나는 힘없이 말했다.
“어떡하면 좋을까?”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글쎄.”
친구들도 뾰족한 수가 없는 모양이다. 할 수 없이 다음 날 순번인 민수가 더 빨리 오기로 하고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수업 내내 집중이 되질 않았다. 끝나자마자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일제히 뛰어나갔다. 헐떡이며 놀이터에 도착하니 할머니들이 돗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째 또 온겨?”
할머니들이 웃으면서 우리에게 묻는다.
“할머니들이 매일 우리 놀이터를 차지하고 있으니까 연습도 못하고 놀 데가 없잖아요.”
“그려? 그럼 우리 놀이터 걸고 내기 하나 할까?”
“무슨 내기요?”
“너희들 우리 할미들이랑 게임을 하는 겨. 그래서 이긴 팀이 이 놀이터의 주인이 되는 거지.”
“무슨 게임을요? 우리는 게임이라면 못 하는 게 없는데요. 할머니들이 불리할 텐데요. 할머니, 컴퓨터 할 줄 아세요?”
“에그~할미 말을 끝까지 들어봐 이것아! 말끝마다 소리만 지르는 악바리 할머니가 나를 째려본다. 우리가 하려는 게임은 딱지치기, 공기놀이, 구슬치기여. 어때? 할 수 있겠어?” 어이가 없었다.
“할머니, 너무 해요. 할머니들은 다 할 줄 알지만 우리는 모르잖아요.”
“아, 이 게임을 모른다는 겨?”
“딱지치기는 가끔 하지만 나머진 말만 들었고 잘 몰라요.”
“그럼, 딱지치기로 하지 뭐. 이리 와 앉아봐. 설명해 줄게.”
대장 할머니는 어린 시절에 오빠들이 많아서 딱지치기, 구슬치기, 사방치기도 잘 했다고 한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앉아 열심히 들었다. 그리고 옛날 딱지치기로 정했다. 옛날 딱지치기는 헌종이로 딱지를 만들어 놀지만, 요즘 딱지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나오는 것이 색깔도 갖가지고 화려하고 예쁘다. 할머니들이 낯설어하시니 옛날 딱지치기로 정했다. 오늘은 늦었으니 딱지를 5개씩 만들어 내일 수업이 끝나면 놀이터로 모이기로 하고 집으로 갔다.
집에 오자마자 잡지를 찾아 딱지를 접기 시작했다.
“아빠! 딱지 접는 것 좀 도와주세요. 헷갈려요.”
“갑자기 딱지는 왜?”
“내일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할머니들과 딱지 베틀 하기로 했어요.”
딱지를 접으면서 내일 있을 일을 아빠께 말씀드리니 어이없다는 듯 웃으신다.
“너희가 할머니들을 이길 수 있겠어?”
“일단 붙어봐야지. 놀이터는 애들이 노는 곳인데 할머니들한테 빼앗기면 안 되잖아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나는 그동안 할머니들하고 놀이터 때문에 싸우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내 얘기를 다 듣고 난 아빠는
“이상한 할머니들도 다 있네. 어른들이 애들 놀이터를 차지하고 내주질 않다니.”
“그래서 내일 시합해서 진 쪽이 물러나기로 했어요.” 아빠는 하하하 웃으시더니
“너희가 할머니들을 이길 수 있겠어? 내일 되어봐야 알겠구나.” 하면서 방으로 들어가신다. 맨 마지막에 쓸 제일 큰 왕딱지 ‘까바’ 한 개와 4개를 더해서 5개를 만들었다.
“아빠, 딱지치기 연습게임 좀 해 주세요.”
방으로 들어가신 아빠가 다시 나와서 딱지 치는 방법과 요령을 알려주셔서 한참 동안 연습을 했다.
다음 날, 우리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놀이터로 달려갔다. 역시나 할머니들이 먼저 와 계셨다. 모두 자신이 만들어 온 딱지를 꺼내 자랑하면서 보여줬다. 우리 팀 딱지는 모두 잘 만든 것 같은데 할머니들 딱지도 누가 만들어줬는지 크고 튼튼한 게 좋아 보였다. 나는 속으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우리 딱지보다 좋아 보이는데 지면 어떡하지?’ 할머니팀이 네 명이니까 우리 팀은 한 명이 빠져야 한다.
“푸름아! 내가 빠질게.” 미란이가 뒤로 물러선다.
“알았어.”
“20장은 많다. 1명당 4장씩 16장만 걸고 하자.” 대장 할머니가 힘드신가 보다. 네 명씩 편 먹고 16장을 먼저 잃는 팀이 지는 거고 지는 팀이 놀이터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우린 서로 얼굴을 쳐다보다가 모두 찬성을 했다. 드디어 놀이터를 걸고 딱지 베틀이 시작됐다. 손에서 땀이 난다. 대장 할머니와 내가 가위바위보를 해서 내가 이겼다. 우리 팀이 먼저 공격이다. 나, 석주, 수경이, 민수가 차례로 하기로 하고 할머니팀도 순서를 정했다. 대장 할머니가 딱지를 골라 한 장 깔았다. 나는 제일 큰 ‘까바’는 아껴두고 근사해 보이는 걸로 집어서 있는 힘을 다해 내리 쳤다.
“철퍼덕!”
“와~안 넘어갔다!”
‘이크! 긴장했는지 처음부터 실수다.’ 할머니들이 좋아서 난리다. 다음은 대장 할머니 차례다.
“철썩!”
할머니 역시 못 넘겼다. 이젠 석주 차례다. 석주는 영리한 친구다. 머리를 써서 많이 따 줬으면 좋겠다.
“황석주 파이팅!” 우리는 간절한 눈빛으로 석주를 쳐다봤다.
“철퍼덕!”
“와~넘어갔다.” 친구들이 함성을 지르며 좋아한다. 석주가 딴 딱지를 얼른 집어온다. 할머니팀에서 다른 딱지 한 장을 깔았다. 이번에도 석주가 내리쳤다. 이번에는 넘어가지 않았다. 할머니팀의 두 번째 선수 마귀 할머니가
“철썩!”
“와~넘어갔다.”
이 할머니가 보기보단 힘이 센가 보다. 아니, 힘이 세 다기보다 꾀를 쓴 것 같다. 별로 힘도 들이지 않고 우리 딱지 밑을 파고들어 넘겨버렸다. 바로 ‘밑장 까기’다. 다시 우리 팀의 딱지를 한 장 깔았다. 내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마귀 할머니가 있는 힘을 다해 내리친다.
“철썩~!”
이번엔 어림없다. 다음은 수경이 차례다. 수경이가 약간 긴장한 모습으로 딱지를 집어 힘껏 내리친다.
“철퍼더억~”
“와~넘어갔다.!!”
우리도 모르게 함성을 질렀다. 수경이 여자라서 못 넘길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대장 할머니가 또 다른 딱지를 깔아준다. 수경이가 다시 있는 힘을 다해 “철퍼덕!”
“와~~ 또 이겼다. 수경이 대박이다.” 친구들의 함성 소리에 놀이터가 멀리 날아가 버릴 것만 같다. 내 친구 수경이 진짜 짱이다. 여자친구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두 장이나 넘겼다. 대장 할머니가 놀라며 또 한 장을 슬며시 깔아준다. “철퍼덕~!” 난 못 보겠다.
“에이~” 친구들의 아쉬워하는 합창을 들으니 이번엔 못 넘긴 모양이다.
이번엔 깡마른 빼빼 할머니가 “철썩!”
다음엔 우리 팀 민수가 “철퍼덕~!”
신경질 잘 내고 성질부리는 악바리 할머니가 “철썩!”
다음엔 또 마귀 할머니 차례가 되었다. 마귀 할머니는 딱지와 바닥을 요리조리 살피더니 우리 딱지 옆에 내리꽂으며 ‘바람 치기’를 시도했다. “철썩” 딱지가 넘어갔다. 이번에는 내가 딱지를 깔았다. 마귀 할머니가 내리치려는 순간,
“잠깐만요!” 나는 할머니를 정지시키고 딱지 네 귀퉁이를 꽉꽉 밟았다. 이렇게 하면 뒤집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마귀 할머니가 빙그레 웃더니 딱지 밑을 파고드는 ‘밑장 까기’를 또 시도한다. 훌러덩 우리 딱지가 힘없이 넘어갔다. 순서가 여러 바퀴를 돌았다. 딱지도 몇 장 남지 않았는데 큰일이다. 우리 팀이 지고 있다. 이제 마지막에 쓰려고 두껍고 크게 만든 ‘까바’ 한 장만 남았다. 할머니팀은 세 장이나 남았는데, 우리가 넘기지 못하면 할머니팀에 지는데…, 하필 마지막 순서가 나다. 저걸 넘기고 두 장마저 넘겨야 우리 팀이 이긴다. 눈을 감고 온몸의 힘을 끌어모아 움켜쥐고 힘껏 내려쳤다.
“와아~~ 넘어갔다!” 친구들의 함성과 “에이~”하는 할머니들의 실망하는 음성이 메아리가 되어 내 귀를 맴돈다. 다행이다. 이제 두 장 남았다. 저걸 넘겨야 하는데 하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진다.
할머니팀이 긴장했나 보다. 딱지를 깔아주지 않는다. 당황한 게 분명하다.
“딱지 깔아주세요!” 하니까 남은 두 장중 한 장을 얼른 내려놓더니 이번엔 대장 할머니가 발로 콱콱 밟아서 깔아준다.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다. ‘제발~제발 넘어가게 해 주세요.’ 나는 아까 마귀 할머니가 쉽게 넘겼던 ‘밑장 까기’를 시도했다. 있는 힘을 다해 “철퍼덕~!” ‘에이~~’ 친구들이 주저앉는다. 마지막 기회가 요리조리 달아나며 나를 비웃는 것만 같다. ‘아차, 넘기지 못했다.’ 다음 대장 할머니가 비장한 모습으로 딱지를 집어 든다. ‘철썩~!!’ 마지막 한 장 남은 까바가 나를 비웃으며 넘어가 버린다. 속으로 빌었는데 허무하게 넘어가 버렸다.
‘와~’ ‘에이~’ 우리는 한 장도 없고 할머니팀은 두 장이 남았으니 우리가 졌다. ‘맞아? 우리가 진 거 맞아?’ 믿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지다니? 맥이 빠져 기운이 없다.
“자, 우리가 이겼지? 너희가 놀이터를 양보하는 거다.” 할머니들은 신이 나서 춤을 춘다. 우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속상해하는데…….
“자, 울지 말고 아이스크림이나 사다 먹자.”
침울해있는 우리를 보고 대장할머니가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네준다. 한참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누군가의 전화가 울린다.
“뭐라고? 응, 수리가 다 끝나고 마무리했다고? 응, 알았어.”
전화를 끊은 대장할머니가 씨~익 웃는다.
“우리 내일부터는 놀이터에 오지 않는다.”
“네?”
우리는 동시에 할머니를 바라보면서 정말이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입에 물고 있던 아이스크림이 튀어나올 뻔했다.
“이 할미들이 놀이터를 차지하고 짓궂게 굴어서 미안혀. 너희들이 귀여워서 어쩌나 보려고 장난 좀 친겨. 우리가 가던 경로당이 며칠 동안 리모델링하는 바람에 집에 있으면 며느리 눈치도 보이고 갈 데도 없고 해서 여기와 놀았던 겨. 그러니 우리 미워하지 마. 알았지?”
우리는 할 말을 잃고 웃기만 했다. 한편으로는 웃기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며칠간 우리 속을 상하게 했던 할머니들이 밉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놀이터에서 맘껏 놀 수 있고 스케이트보드 연습도 할 수 있다니 그 사실만으로 신난다. 그리고 우리가 게임에 졌는데도 이렇게 아이스크림까지 사 주셨으니. 갑자기 놀이터가 예쁜 꽃들로 넘쳐나면서 꽃 옆의 할머니들이 천사로 보이기 시작한다.
“자, 이제부터는 연습도 많이 하고 대회에 나가서 꼭 1등 해. 우리는 간다.”
우리는 수업 후 놀이터에 모여 놀기도 하고, 나는 스케이트보드를 공중으로 띄워 점프하는 기술을 마음껏 연습했다.
며칠 후, 초, 중, 고생들의 스케이트보드 대회가 열렸다. 우리 동네의 학생들은 모두 모인 것 같다. 친구들 응원 덕분에 나도 대회에 참석했다. 물론 잘 안되던 보드를 띄워서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알리’ 기술도 훌륭히 해냈고 초등부에서 우승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