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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포션 이름 (파라샤) | 모세오경 (토라) | 예언서 (하프타라) | 신약 (브리트하다샤) |
베하르 / 산에서 (희년의 선포) | 레 25:1-26:2 | 렘 32:6-27 | 눅 4:16-21 |
<단락 1> 1. 레25:1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히 : 베하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히 : 하아레쯔 :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시내산에서 토라를 주셨습니다 (레 11:44-45).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닮아갈 수 있는 방법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생명나무의 열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를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자신을 부인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개인적인 차원의 것으로만 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차원으로 풀어지게 됩니다. 즉, 하나님 나라는 거룩한 공동체와 함께 이루어 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구원을 이루어 가는 삶 (성화의 삶)을 살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2절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실 ‘땅’의 히브리어를 보면, ‘하아레츠’ 입니다. 이 단어는 창세기 1장 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히 :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에트, 하샤마임, 베에트, 하아레츠)
성경의 첫 단어 ‘태초에’의 히브리어는 ‘베레쉬트’이며, 히브리어 ‘베트 (ב)’와 ‘레쉬트 (תִׁישאר)’의 합성어입니다. 히브리어 ’베트‘의 뜻은 ’아버지의 집‘ 이며, 히브리어 ’레쉬트‘의 뜻은 ’처음, 시작, 최초‘ 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당신이 거하시는 집을 짓기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어 ’베트‘의 또 다른 뜻은 ’아들‘ 입니다. 그래서 ’태초에 (히 : 베레쉬트)‘를 직역하면, ’하나님은 이 땅에 당신이 거할 집에서 당신의 아들과 함께 살기 위해 천지를 창조하셨다‘ 입니다. 하나님은 태초 전부터 자신의 이름을 두시기 결정한 장소가 있습니다. 그곳의 이름은 예루샬라임 (에덴동산) 입니다. 그곳은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된 장소이며,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거할 아버지의 집이 될 것이며, 재림 예슈아께서 왕으로 열방을 통치하는 곳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1장 1절 마지막에 나온 히브리어 ‘하아레츠’의 의미는 ‘온 땅 (열방) 가운데 한 부분’ 입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장소가 하나가 되는 곳을 에덴동산으로 지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토라포션 레위기 25장 2절에 나오는 안식년에 대한 규례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땅은 약속의 땅입니다. 참고로 약속의 땅을 히브리어로 ‘하아레츠’ 라고 말합니다.
2) 레 25:8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9.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 10.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이번 주 토라포션 ‘베하르’의 주요 내용은 안식년과 희년입니다. 안식년의 계산법은 약속의 땅으로 하여금 7년에 한 번씩 쉬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7번째 해에 먹을 음식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나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시켜 주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샤밧’이라는 시간을 통해 믿음의 훈련을 하게 하십니다. 세상의 가치로 보았을 때에 1주일 내내 일하며 돈을 버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 보았을 때에 ‘샤밧’은 모든 것을 책임져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샤밧은 단순히 노동하는 일만 멈추는 것이 아닌, 세상적인 생각과 감정을 멈추고, 하나님의 말씀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8장 47절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말씀합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순종하는 것 (쉐마)입니다. 야고보서 1장 25절에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말씀합니다. 세상 이들은 돈을 더 벌기 위하여 땅을 쉬게 하지 않고, 화학비료와 이모작 또는 삼모작을 통하여 땅을 혹사시키며, 쉼 없이 생산량을 늘리고 있습니다. 그 결과 땅이 병들게 되며, 작물들 또한 병에 걸리게 됩니다. 그 병든 작물을 사람이 먹고 마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쉬게 하시듯 땅을 쉬게 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안식년과 희년을 단 한번도 지킨 적이 없으며, 각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사사시대가 시작되어 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바벨론과 앗수르를 통해 열방의 종으로 잡아가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며, ‘희년의 때’가 되면 열방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유를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레위기 25장 23절에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그 땅 (히 : 하아레츠)을 함부로 팔지 말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강조하신 이유는 태초부터 특별히 그 땅을 에덴동산으로 구별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이는 인본주의 관점으로 이스라엘 땅을 원래 주인이었던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에게 넘겨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 땅의 원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 땅을 다른 나라 사람에게 돌려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되어졌을 때에 가나안 7족속을 멸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그 땅을 정결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가나안 7족속은 약속의 땅에서 우상숭배와 죄악으로 그 땅을 더럽히게 됩니다 (레 18:25).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땅이 세상 이들의 우상숭배와 죄악으로 더럽혀져 있다면, 우리가 영적전쟁하며 그들을 내쫓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번 주 신약성경의 말씀은 누가복음 4장의 말씀입니다.
<단락 2> 2. 눅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슈아는 희년에 관한 예언을 자신에게 적용시키면서, ‘내가 바로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자유와 해방을 이루는 메시야로 너희에게 왔느니라!’ 라고 선포하십니다. 그래서 예슈아의 초림은 은혜의 해를 선포하기 위한 것입니다. 눈 먼 자의 눈이 회복되어 다시 볼 수 있으며, 눌린 자와 묶인 자들이 자유케 되며, 마음이 상한 자를 치유하심으로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의 회복을 가져오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슈아를 떠나게 되어지면, 우리는 세상 (돈과 명예와 권력 등)과 사단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세상의 것은 우리에게 자유를 줄 수 없습니다 (조정의 영). 오직 진리만이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4장의 말씀은 이사야 61장의 말씀을 인용하였는데, 이 말씀을 이스라엘의 회복의 관점으로 해석해 보겠습니다.
1) 사 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 (히 : 베소라 : 복음) 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
이사야 61장에 나온 가난한 자, 마음이 상한 자, 포로된 자, 갇힌 자, 눈먼 자, 귀 먹은 자, 모든 슬픈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 포로 상태가 되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3절에 예슈아는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재림하셔서 화관과 기쁨과 찬송의 옷을 주실 것입니다. 참고로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란? 예루샬라임 성전의 파괴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로 상태로 인해 슬퍼하고 애통하는 자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가 외친 아름다운 소식 (히 : 베소라) 이란? 예루샬라임 성전과 유대 백성들에게 온 열방의 왕으로 다시 오실 예슈아를 외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슈아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의 해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날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고 억압하고 죽이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보복의 날이 되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회복 (은혜의 해)과 하나님의 보복의 날은 첫 번째 곡과 마곡의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과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사 34:8, 겔 36:24). 물론, 누가복음 4장에 예슈아는 이사야 61장의 말씀을 인용하시며 주의 은혜의 해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슈아의 초림은 죄사함의 은혜를 베푸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회복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에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하나님의 보복의 날은 예슈아의 재림을 통하여 한 날에 성취되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날은 예슈아를 통하여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유를 선포하는 날인 희년 (히 : 요벨) 될 것입니다 (레 25:10). 희년에는 나팔을 불어 모든 빚을 탕감해 주며, 노예를 해방시켜 주어서 자기 기업의 땅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히 : 알리야). 그래서 예슈아께서 나팔절에 큰 나팔을 소리를 통하여 열방에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며, 12지파에게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시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될 아름다운 소식, 복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사야 61장 3절에 ‘...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합니다. 마지막 때에 교회는 의의 나무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는 교회로 세워져야 합니다. 즉, 우리가 예슈아의 십자가로 인해 의롭게 되어졌다면, 우리의 삶 가운데 예슈아의 의로움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롬 3:22-26). 이는 구원받기 위해서 의로운 행실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았기 때문에 의로운 행실을 행하는 것입니다 (신 6:25, 마 5:20).
2) 사 56:6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7.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방인들은 성산 (시온산)으로 와서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고, 섬기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않은 결과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집니다. 에스겔 37장 16절에 ‘16. 인자야 너는 막대기 하나를 가져다가 그 위에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가지고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쓰고 22. 그 땅 이스라엘 모든 산에서 그들이 한 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 말씀합니다. 막대기의 히브리어는 ‘에쯔’이며, ‘나무’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유대인의 나무 (참감람나무)와 이방인의 나무 (돌감람나무)를 에스겔의 손으로 서로 연합하였을 때, 두 나무가 하나가 되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 교회는 에브라임 지파로 편입되어져 혈통적인 이스라엘과 함께 기업을 분배받게 될 것입니다 (겔 47: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