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망(김원일)

[작업실]

미 망

김 원 일

“또 그느무 간갈치를 꿉었구나.”

하며 아내를 타박하는 어머니의 말소리가 들린다. 소금에 절인 갈치구이는 할머니가 가장 즐기는 반찬이었다. 어머니와 아내는 호마이카 밥상을 마주 들고 마루로 옮겨 놓았다. 준구와 준옥이가 기다렸다는 듯 먼저 밥상에 붙어 앉았다.

“묵을 귀신이 씨었나, 꼭 걸귀신 들린 꼴이다.”

어머니가 아이들을 보며 혀를 찼다.

그 말이 나오면 언제나 하는 말씀인, ‘알라들이 걸구 들린드키 묵을라 칼 때는 한창 살림이 쪼들릴 때고 알라들이 밥투정을 할 때라야 엔간히 살림이 폈을 때다.’ 는 말씀은 입에 담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즐기는 맵지 않은 달걀을 풀어 찐 반숙과 감자복음을 아이들 앞으로 옮겨 놓았다. 그리곤 수저를 들다말고 내 쪽을 보았다. 담과 부엌 사이의 좁은 통로에서 나는 막 세수를 마치고 마루로 올라서던 참이었다.

“에비야, 어서 밥 묵거라.”

어머니가 내게 말했다. 늘 그런 편이지만 오늘 아침의 어머니의 목소리는 더욱 위엄이 서려 있고 냉랭하게 느껴졌다. 어머니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저녁을 드시기 전에 두 분이 또 한 바탕 하셨어요. 그래서 할머닌 저녁 진지도 안 드셨지 뭐에요.”

어젯밤 업무수당 명세서를 작성하느라고 야근을 마치고 열 시가 넘어 귀가한 나에게 아내가 대문을 열어주면서 하던 말이 생각났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는 할머니와 한방 잠자리를 하지 않기 위해 요 이불을 마루로 내어와 따로 주무시고 계셨다.

어머니가 울산의 점포를 정리하고 서울의 우리 집으로 합가를 한 것이 다섯 달 째인데, 그 새 할머니와 말다툼은 벌써 여섯 번째였다. 만약 앞으로 한 달 동안 두 분이 별 마찰 없이 지낸다 해도 한 달에 한 번 꼴은 다툼이 벌어진 셈이었다. 말다툼이라면 서로 삿대질을 하며 맞대거리를 해야 마땅하나 두 분의 경우는 그렇지가 못했다. 어머니 쪽에서 먼저 발작적으로 할머니의 마땅치 못한 행동거지를 두고 험구를 했고, 그러면 할머니는 조개가 입을 다물 듯 침묵으로 그 따가운 수모를 묵묵히 견디어 냈으니, 일방적이라 말해야 옳았다.

제 분에 못 이긴 어머니가 새삼스레 옛 모화 시절의 케케묵은 과거까지 꺼내어 짧게는 십여 분, 길게는 삼십여 분을 할머니와 아버지까지 싸잡아 닦달을 놓다 제 풀에 지쳐 입을 다물 때까지, 할머니는 자리를 뜨지 않고 돌아앉아 그 말을 죄 새겨들으며 담배질로 응어리진 한을 눌러 삭였다. 그런데 그쯤에서 할머니가 어머니를 피해 장소를 옮기면 되련만, 할머니는 꾸중 듣는 아이처럼 청승스레 그 험담을 다 들으셨다.

그래서 어머니가 입을 닫은 뒤면 반드시 혼잣말처럼, 그러나 분명히 어머니도 듣게끔 한 마디 말대꾸를 담배 연기 속에 풀어 날리는 것이었다.

“그래, 그래, 니 말이야 다 맞지러. 축구등신같은 이 늙어빠진 시에미가 잘 한 기 머가 있노. 자슥을 잘 나았나, 나온 자슥을 잘 키았나. 아무 것도 잘 한 기 없지러. 하늘 보기가 부끄러버 거리구신 돼서 객사를 하든가, 약을 묵고 죽든가 해야지러. 이 짓 저 짓 다 몬하모 우짜겐노, 호야네한테라도 가야지, 그 노무 차를 또 우째 탈고.”

호야네란, 불광동 고모댁을 이르는 말이었고, 차타기가 두려워 하는 것은 심한 멀미가 뒤따랐기 때문이었다. 할머니의 그 푸념은 꺼지려는 어머니의 울화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어머니가 발끈하여 악을 쓰기 마련이었다.

“맨날 천말 죽는다카면서 와 몬 죽을꼬, 쪽박 들고 동냥질 댕기모 똑 맞은 그 잘 사는 딸네 집에 갈라카모 어서 가소, 평생 딸네 집 뒤만 봐줬는데도 딸네는 이날 이때까지 와 제 밑도 몬 닦는고.”

이제 고모까지 들고 나서는 어머니의 빈정거림이었다. 두 분이 그렇게 한바탕 말다툼을 치르고 나면 사나흘 동안 집안은 한겨울 냉방 같은 분위기가 되곤 했다.

방 두 칸에, 세 평 남짓한 마루 한 칸이 고작인 아래채 전세에 두 분이 마치 딴 살림을 하듯 냉전체제로 들어가면 한방을 쓰는 두 분의 불편한 잠자리에 내가 무슨 화해의 특사나 되듯 부득불 이불과 베개를 옮겨 부엌방으로 건너가야 했고, 어머니는 못이기는 체 우리 내외 방에서 잠을 잤다.

어느 쪽을 두둔할 수도 없는 내 입장은 두 분을 중재시키기에 여간 곤욕이 아니었다. 결국 아내가 불광동으로 전화를 걸어 그 쪽 단간셋방으로 할머니를 며칠간 피신을 시켰던 적도 두 번이나 있었다. 고모가 할머님을 다시 모시고 오거나, 아내의 전화를 받고 짬을 내어 수유리로 온 고모가 산전수전 다 겪은 그 수더분한 입심으로 어머니의 기분을 넉살좋게 맞춰 겨우 두 분을 밥상에 마주 앉게 했다. 고모의 그 역할은 대체로 성공률이 높았다.

“다 같이 늙어 파뿌리가 된 처지에 이 날까지 무슨 원한이 골수에 사무쳤다고 이래 견원지간으로 지냅니꺼. 쌈하는 어무이나 성가(언니)보다도 조카 내외가 우째 하룬들 온전케 배겨 내겠능교예. 젊은 사람들을 봐서라도 인자 참고 살아야지예.”

고모가 어머니는 설득하는 데는 반드시 이런 말이 양념으로 쳐졌다.

“어차피 자슥 집에 올라온 이상 나도 살모 몇 천 년을 살 끼라고 이래 속을 낋이겠노, 그저 눈 감고 지낼라 캐도 노망도 안 한 늙은이가 하는 짓마다 우째 그래 밉상인지...”

어머니의 말이 이 쯤 되면 마음도 엔간히 풀어졌다는 증거였다.

“할머닌 왜 안 나오시냐, 같이 식사를 하셔야지.”

어제 두 분이 한바탕했다면 할머니 쪽에서 으레 어머니와 밥상을 마주 하지 않으실 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밥상 앞에 선 채 내가 짐짓 한 마디 했다. 아내가 저는 먹지 않고 준옥이의 밥 시중을 들며 조심스레 어머니를 곁눈질했다.

“할머닌 따로 채려드려야지요.”

하는 말이 입 속에 맴도는 눈치였으나 아내는 끝내 말문을 떼지 않았다.

이럴 땐 내가 모래 씹듯 몇 숟갈을 숭늉에 말아 아침 끼니를 때우는 곤욕도 곤욕이지만, 하루 종일 두 분과 얼굴을 맞대고 있어야 할 아내가 치를 마음의 짐이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님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자기 묵기 싫은 밥 억지로 권할 끼 뭔가. 굶다 허기지모 그 잘 사는 딸네 집에 가서 실컨 포식하라 카라지.”

어머니가 부엌방에 군눈을 주며 할머니가 들으란 듯 시큰둥 말했다. 그러곤 나에게 채근을 놓았다.

“어서 애비 니나 묵거라, 출근길 늦겠다.”

내 입장으로서는 어머니의 말이라도 덜렁 퍼질고 앉아 수저를 들 수가 없었다. 아내가 구운 갈치도막의 뼈를 발겨 준옥이의 밥그릇에 올려놓는 것을 내려다보다, 나는 부엌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방 귀퉁이에 허리를 반쯤 접고 앉아 손톱이 타들도록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일 미터 오십이 채 못 되는 작은 키에 몸피가 장작개비 같이 마른 할머니인지라 무릎을 세워 꼬부장하게 앉은 몰골이 마치 원숭이 같았다. 할머니는 정말 명 만큼이나 인중이 길었다.

“어제 저녁도 안 드셨다면서예? 할무이, 일어나이소. 이러다 병 나시겠심더.”

측은한 마음으로 내가 말했다.

“속이 끓어올라 밥이고 머고 몬 묵겠다. 묵을 생각도 없고, 죽어야지, 어서 죽어야지. 굶어서라도 죽어야 이 설움을 안 받지러.”

할머니가 풀기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숨길이 바쁜지 목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났다. 휠터 끝만 소복하게 담긴 재떨이 옆에는 대형 활명수 병이 놓여 있었다. 속이 끓어 복통이 시작되면 늘 조금씩 마시는 할머니의 상비약이었다.

어머니가 울산 살림을 정리하고 올라오기 전에도 할머니는 달걸이로 속앓이를 하셨는데, 그럴 때면 한 끼는 늘 거르셨다. 냉동기술자였던 아우가 2년 계약으로 사우디로 나가자 어머니는 그제서야 울산 살림을 정리하고 서울의 내 집으로 옮겨 올 뜻을 비쳤다. 그 즈음부터 어머니는 고혈압 증세로 뒷골이 아프시다며 종종 자리에 누우시곤 했다. 그러나 몸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어머니는 자력으로 사시겠다고 환갑을 넘기고도 군청 앞에서 스물일곱 해 째 멸치포 장사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웃사람들은 아들 둘이 다 칠칠하게 사는데 왜 그 나이까지 장사를 벌이고 있느냐고 말했지만, 어머니는 환갑을 지내고도 4년 동안 그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 그런데 이자놀이를 하던 생돈을 두 군데나 떼이고 젊은이들에 밀려 장사도 힘에 부치자, 비로소 옷 한 벌 제대로 못 해 입고 한 푼 두 푼 평생을 모아 장만한 울산 집을 내놓았던 것이다. 방 세 칸에 마당이 달린 작은 집이었다.

제수씨가, 애 아빠가 돌아올 때까지 울산서 그냥 살자고 말했으나, 어머니는 집 판 돈과 여기저기 깔아놓았던 돈을 챙기자 서울로 올라오셨다.

어머니가 서울 내 집으로 올라오기 일주일 전에도 할머니는 속앓이를 하셨다. 앞으로 범같은 며느리와 한 지붕 밑에 산다는 것이 지옥같이 여겨졌는지 지레 겁을 먹고 밤잠조차 설치시더니 기어코 드러누워 사흘을 꼬박 앓으셨던 것이다.

어머니는 서울로 올라오시자, 늙은이가 지닌 돈이 없으면 죽을 때까지 설움 받는다시며 수중에 지닌 이천만 원을 당신 앞으로 은행에 맡겼다. 서울로 온 후 사흘 뒤 고모가 인사삼아 집으로 왔을 때, 어머니는 서울로 옮기게 된 결심을 변명삼아,

“둘 째 며느리가 같이 살자고 쪼루고, 나도 콧구멍 같은 큰 애 셋방에서 시어머니 마주보고 살기가 싫었지마는, 자슥한테 얹혀 살라카모 진작부터 장남한테 붙어야지, 지체한테 얹혀 살다가 늙은이 하대하모 그때서야 머신 낯짝 들고 장남 집에 드가겠노.” 하고 말씀하셨다.

“자, 일어나이소.”

내가 할머니의 한 팔을 잡고 일으켜 세우려 했다.

“할무이가 좋아하시는 갈치도 꿉었심더.”

어머니 귀에 들리지 않게 내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할머니는 평생 소식주의였고, 하루 세 끼의 식사량이 일정했다. 반찬도 간갈치, 간고등어 구운 것이나 짠 젓갈 종류를 즐기셨다.

거기에 비하면 체격이 우람한 여장부인 어머니는 폭식주의였고, 입이 걸어 아무 음식이나 잘 드셨다. 혈압이 높으신데도 특히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즐겼고, 생선 지진 국물에 된장을 곁들인 상치쌈이 나오면 지금도 한 그릇 반을 너끈히 비우셨다. 젊을 때 하도 굶어 나는 그저 묵는 재미 밖에 없다고 어머니는 자주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고양이처럼 쪼작쪼작 자시는 할머니의 식사 모습을 보면 눈총을 주며,

“저래 좀살궂게 묵으니 평생 식복이 없어 저 나이가 되도록 남의 눈칫밥이나 묵지,” 하고 타박을 주곤 했다.

“나는 안 묵는다카이. 어서 니나 묵고 회사 나가거라.”

할머니는 내 손을 뿌리쳤다. 그리곤 휠터가 반쯤 타서야 담배를 재떨이에 부벼 껐다. 할머니는 기침을 콜록이곤 긴 한숨을 내쉬었다.

“부모 복, 서방 복, 자슥 복, 다 없는 이 늙은이를 저승사자는 와 안죽 안 데불고 갈꼬. 생각할수록 원통하고 서럽은 내 팔자야. 그저 자는 잠에 꼴깍 숨 거두모 좋겠구마는.”

할머니가 세운 무릎에 얼굴을 묻더니 소리 죽여 흐느끼기 시작했다. 지지미 저고리의 폭 좁은 등심이 떨렸다. 할머니는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순백의 머리칼이었는데, 이제 다시 검은 머리가 새로 돋아 오히려 어머니보다 덜 반백이었다. 그 윤기 없는 머리카락이 깡마른 어깨가 떨릴 때마다 연기처럼 날렸다. 숱이 적은데다 끝이 몽그라져 쪽머리를 하기가 어려운데도 할머니는 아침 세수를 마치면 반드시 오랜 시간을 들여 곱게 빗질을 하셨다.

‘진작 못 죽어 이렇게 껴 붙어사는 팔자에 손자며느리 일감이나 덜어야지.’ 하시며 당신의 양말과 속옷은 늘 스스로 빨아 입었고, 남 앞에 정갈하게 보이려 애쓰시는 분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직 세수도 빗질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어무이 잔소리야 어데 어제 오늘 듣습니꺼. 험한 세상 살아오다 보니 세상에다 대고 풀 분을 그저 우리들한테 넋두리 하는 거지예. 할무이가 다 귓가로 흘려 들으시면 되잖습니껴. 그만 우시고 어서 나오이소.”

“두 귀가 묵었으모 모를까, 짐승 새끼도 아닌데 들리는 말을 우짜노. 서방 잘못 만내 너거 에미 고생한 것도 다 알고, 저래 역정을 내는 것도 다 한이 맺혀 하는 소린 줄 알지마는.”

할머니가 뒷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마루에서 어머니가 외쳤다.

“돈 더 벌 생각 말고 한 끼 입 덜어라는 옛말도 있다, 늙은이 놔두고 니나 나와 묵거라, 노친네란 한두 끼 굶는다고 쉽게 죽지 않는다.”

할머니가 소매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물코를 풀곤 주름이 겹쳐 살갗이 문드러진 눈가를 훔쳤다.

“어서 니나 묵고 회사 나가거라. 속이 끓어 나는 몬 묵는다. 물 한 모금도 넘길 수 없다 카잉께.”

하곤 할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또 담뱃갑을 집어들었다. 한 개비를 열 번 정도 껐다 피우는데도 이틀이 멀다하고 한 갑씩 피워대기 때문에 나는 봉급날 숫제 환희를 열다섯 갑씩 사다 할머니께 안겨 드렸다. 그래도 담배가 모자라는지 내 재떨이의 피우다 남은 꽁초는 늘 할머니가 휠터가 탈 때까지 마저 피우곤 했다.

“아빠, 노할머니하고 울산 할머니하고 또 쌈했다. 노할머니가 막 울었다.”

두 달 전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준옥이가 수저를 드는 나를 보고 말했다.

“그래 그래, 어서 밥 먹고 학교 가야지.”

내가 말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준구는 이 눈치 저 눈치에 다 익숙한 철든 애 같이 아무 말 없이 다부진 숟가락질만 해댔다.

나는 콩나물국에 댓 숟갈 밥을 말아 어느때보다 빨리, 씹지도 않고 그것을 먹어치웠다. 이 자리를 어서 벗어나 회사라도 나가버리면 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서두르게 했다.

“그느므 속앓이병인가 먼 강은 담배 탓이지. 구십이 다 된 늙은이가 무신 담배를 저래 지독시리 꿉는지. 내 시집 가니깐 안죽 미구처럼 새파란 색시가 야시같이 토구리고 앉아 담배를 빠꼼빠꼼 피우고 안 있나. 그때부터 피아 덴 줄담배니 담배값만 모아도 집 한 채는 샀을 끼다.”

밥을 먹으며 어머니는 다시 할머니의 흉을 잡고 늘어졌다.

“대담배는 독해서 못 피운다고, 담배를 피아도 꼭 마구초만 피우니깐 담배값이 곱절로 더 들제, 거기다 한 번 피우모 몇 시간은 참는 기 아니고, 껐다 피았다 껐다 피았다 카니 알라들 장난도 아니고 성냥이 오죽 헤프나. 큰 성냥통도 일주일이 몬 갈끼다.”

“마 어무이도 그만큼 하이소. 그래 봐야 서로 무슨 좋은 일이 있다고 그랍니꺼. 스스로 속이나 상하는 거지예.”

숟가락을 상 위에 놓으며 내가 말했다. 그러자 빼꼼히 열려 있는 부엌방에서 할머니의 쫑알거림이 들려왔다.

“내가 담배 피운다고 니가 운제 시에미한테 한 보루 사다준 적 있나.”

어머니의 말을 엿들은 모양이었다.

“내가 와 담배를 사다 주노. 담배 많이 피우는 사람 나라서 상 준다고 사다 주나. 담뱃재 모다 팔모 양식 될 끼라고 사다 주나. 돈으로 쌈이나 싸묵으모 뱃속으로 들어가제, 연기로 날리는 그느므 담배, 무슨 집칸이나 논마지기를 물려 줬다고 주야장철 태워 날리는 담뱃값을 내가 와 대주겠능교!”

어머니가 소리 나게 수저를 놓으며 악을 썼다.

“어머님, 주인집 듣겠어요. 혈압도 높으신데 고정하세요.”

아내도 참다 못해 애원조로 한 마디 했다. 그러며 자기 말에 무슨 잘못이 없는지 하고 내 눈치를 살폈다.

“할머니, 정말 그만 하세요. 노할머니가 울지 않아요.”

여지껏 제 밥만 챙겨먹던 준구가 불퉁하게 말했다. 손자 말에야 어머니도 비로소 찔끔해 하며, ‘그래 그만 하자, 네 놈도 노할망구가 업어 키우다 보니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편익을 들고 나서는구나.’ 했다.

나는 내 방으로 건너갔다.

방 안 귀퉁이는 온통 털실 꾸러미였다. 봉제업자로부터 털실을 받아다가 쉐터 한 벌을 짜주고 오백 원씩 받는 부업을 아내는 네 해째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지런을 떨면 하루 세 벌까지 짤 수 있어 가계에 제법 보탬이 되고 있었다. 집에서 입는 허드레옷을 벗고 나는 외출복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내가 다니는 작장은 외판회사라 사장이 전 직원에게 늘 정장을 강요했으므로 삼복 더위 한 철을 빼고는 윗도리까지 입고 다녀야 했다. 와이셔츠와 바지를 입고 넥타이를 맬 때, 아내가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창 밖 주인집 정원을 내다보고 있었다.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한 바깥 주인은 수도꼭지에 호스를 꽂아 정원과 화단과 큰 키 나무들에다 물을 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5월 중순의 맑은 아침나절이었다. 정원에는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었고, 안채 베란다 위로 뻗어 오른 포도나무의 새 넝쿨 순이 깃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새 잎 무성한 정원의 푸르름이 내 눈에는 하나 싱싱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제 저녁답에 할머님이 마루에 걸레질을 하다가 노할머니가 흘린 담뱃재를 봤지 뭐에요.”

양복 윗도리를 들고 뒤에 섰던 아내가 말했다.

“그래서 할머니가 노할머니 들으시라고, 담배 끊는 꼴 봤으면 죽어도 원이 없겠다고 한 마디 하신 게...”

“알았어, 그만 해 둬.”

윗도리를 받아 입으며 내가 건짜증을 냈다.

“정말 속상해서..어쩜 좋지요?”

아내가 작은 소리로 투정을 했다.

“어쩌긴 어째, 한 이틀 견뎌보고 정 안 되면 또 고모님을 부르는 거지 뭘.”

“당신이 어떻게 한 마디 영을 좀 세워요. 가장이란 사람이 늘 윗사람들 눈치만 보니 오히려..”

“이게 이제 못하는 소리가 없어.”

내가 아내의 말을 막고 눈을 부라렸다. 아내에게 화를 낼 입장은 아니었으나 나는 나 자신에게 역정을 내고 있었다.

“두 분 싸움을 나는 못 말려. 하루 이틀 보아온 것도 아니고 말이야. 잘못이 있다면 두 분을 모실 수밖에 없는 내 죄지. 이제 와서 어떻게 하겠어.”

나의 목소리는 어느 사이 풀이 죽고 말았다.

“이런 경우를 뭐 운명으로 돌려야 하나, 참고 견디는 수밖에 더 있겠어. 할머님이 사시면 언제까지 사실 거라고.. 어렵더라도 당신이 좀 참아야지.”

나는 아내의 어깨를 다독거려 주었다. 아내가 얼굴을 떨군 채 머리를 주억거렸다.

참고 순종하는 데는 어느 여자보다도 잘 길들여진, 나에게는 더 없이 착한 아내였다. 내가 제대를 하고 울산으로 내려가 어머니 밑에서 빈둥거리다가, 자립해서 네 밑 네가 닦으라는 어머니의 닦달질에 견디다 못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신문광고를 보고 취직한 곳이 월부책 출판사 수금사원이었다. 별다른 기술도 필요 없었고, 다리 힘 하나와 성실과 정직으로 버틸 수 있는 직업이었다.

그때 아내는 야간 중학을 막 졸업하고 집안 형편상 진학을 포기한 채 관리부의 사환으로 입사해 있었다. 일 년 반을 서울서, 3년을 전국을 순회하며 지방 수금사원 끝에 본사로 올라왔을 때, 아내는 스물이 다 된 그때까지 사무실 청소나 하고 책 배달이나 도우는 사환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우리는 눈이 맞았다.

그로부터 3년간을 길거리에서 만나고 길거리에서 헤어지는 별 재미없는 연애 끝에 결혼을 했을 때, 서로는 서로의 가난과 주리며 살아온 성장기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젊기 때문에 앞으로 열심히 살아보자는 꿈 이외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우리는 사글세방부터 출발했던 것이다. 야채 행상으로 사 남매를 키워 온 장모나, 서른둘로 홀몸이 되어 두 아들을 키워 온 어머니로 볼 때, 우리는 밑진 것 없이 잘 만난 한 쌍이었다.

마루로 나오니 밥상은 그대로 놓여 있으나 어머니와 아이 둘은 보이지 않았다. 집안 분위기를 눈치챈 준구는 재빨리 가방을 챙겨 학교로 간 모양이고, 아직 학교에 갈 시간이 안 된 준옥이는 어머니가 데리고 골목길로 놀러 나갔을 것이다. 나는 부엌방을 들여다보았다.

할머니는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모로 누워 계셨다. 작고 여윈 몸매라 한 손으로 들어 올려도 가벼이 들릴 듯 애처롭고 앙징스런 모습이었다. 쪼그라진 마른 얼굴에 눈을 살풋 감고 있던 할머니가 문 여는 소리에 눈을 뜨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눈물이 찌찌그레 고인 그 묽은 시선에 힘이라곤 전혀 없어 나의 코끝도 찡해졌다.

“어무이가 바깥에 나갔심더. 인제 일어나셔서 누름밥이라도 좀 드이소.”

내가 말했다. 할머니는 입술만 달삭거릴 뿐 대답이 없었다. 말할 힘도 없는 건지, 만사가 귀찮아지셨는지, 그것도 아니면 정말 복통이 심한 건지 짐작할 수 없었다.

된 콧심을 내쉬던 할머니가 어깨를 오소소 떨었다. 아마 오한이 있는 것 같아 나는 윗목에 개어 놓은 홑이불을 펴 할머니를 덮어드렸다.

“마, 마 치아라. 속에 불이 나서 이불이고 머고 몬, 몬 덮겠다.”

할머니가 한 손으로 이불을 걷어내며 말했다.

“죽을 때모 한 분은 다 아, 알라 놓을 때만치 아파 까무라치고, 그 고비를 넘기모 저승사자가 길 안내를 자알 해 줘서 아주 편안케 숨을 끊는다던데, 증말 그런지 어떨지.”

“그라모 저는 회사에 다녀오겠습니다. 조리나 잘 하이소.”

나는 인사를 하고 부엌방에서 나왔다.

“니 에미한테도 인사는 하고 가거라.”

방문을 닫는 나에게 할머니가 가랑가랑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문 앞 골목에도 어머니와 준옥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도봉산 쪽 숲으로 산보를 갔겠거니, 하고 생각하며 나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시계를 보니 일곱 시 반이었다. 여덟 시 반까지 출근이라 걸음을 서둘러야 했다.

나의 직장은 을지로 3가였다. 종점이어서 늘어선 줄의 꼬리에 붙어 한 대의 버스를 보내고, 다음 버스에 오르자 뒷자리 창가에 빈 좌석이 있었다. 버스가 시내로 빠져 들어갈 동안 나는 창밖만 내다보며 초라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집안의 내력을, 그 중에서도 할머니의 과거를 시름겹게 되새기고 있었다.

할머니 연세가 올해로 여든여덟이니 십이 년만 더 살면 한 세기를 사시는 셈이었다. 할머니의 친정은 모화에서 삼대봉이란 해발 육백 미터 남짓한 산허리를 휘어 돌아 동으로 늘어진 시오 리 길을 걸으면 당도하는 하서라는 갯마을이었다. 하서는 방어진과 감포 중간 쯤에 위치해 있는 면소재지로 백여 호가 넘는 대촌이지만, 할머니가 살았던 시절은 가구 수 삼심 호 정도의 작은 어촌이었다.

나는 여지껏 할머니의 고향을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고, 어머니도 할머니도 하서라는 어촌으로 가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할머니가 당신의 친정 이야기나 부모 동기간을 입에 올려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적도 없었다. 할머니는 하서에 살았던 자신의 처녀 시절을 철저히 함구하며 살아오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알고 있는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는 어머니와 고모로부터 흘려들은 것이 전부였다.

할머니는 열아홉 살 때 모화 땅의 상처한 홀아비한테 처녀 시집을 왔다. 할아버지는 손 귀한 집안의 외동아들로 겨우 호구나 면하는 가난한 소작농이었고, 할머니와 혼례를 치렀을 때는 시쳇말로 이가 서 말이나 된다는 서른하나의 늙은 홀아비였다.

할아버지는 죽은 전처와 사이에 자식이 없었는데, 뜨내기 방물장수의 소개로 할머니에게 새 장가를 들었던 것이다.

들은 바로는 증조할아버지는 모화 땅 천석꾼인 최부자네 종이었는데 당시의 개화바람을 타고 인간해방을 맞아 그 최부자네 논 다섯 마지기와 밭 두 두렁을 배내기로 타내 딴 살림을 나오신 모양이었다.

“들은 이바구로 니 할메 친정은 친가 외가를 따져 사촌조차 없는 사고무친이었던 기라. 어느 과수가 딸 둘을 키았는데 울도 없는 두 간 초가에 삽작만 나서모 사 철 시퍼런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였단다. 니 할메 친정 애비는 배를 타다가 젊어 물귀신이 됐고 친정에미가 청상에 과부가 되어 딸 둘을 키우며 미역을 따다 호구를 이었는데, 바다라카모 하도 원한에 사무쳐 뱃놈한테는 절대로 딸을 안 줄라고 벼르다가 우째 모화 땅 니 할배와 혼삿말이 있었던 기라. 지금도 보모 얼굴이 갸름하고 이마가 반듯한 기 할메가 처녀쩍은 꽤나 새첩었을(예뻤을) 끼라. 니 할메가 시집을 와서는 딱 두 번 친정걸음을 했다는데 한분은 동상이 시집간다는 기별이 와서 갔고, 한 분은 두 딸을 출가시키고 가랑잎맨쿠로 홀홀이 살던 친정엄마가 쉰도 몬 되어 죽었다는 기별이 와서 하서로 갔단다. 그것도 다 들은 이바구고, 내가 시집을 와서는 니 할메가 한 분도 친정 가는 걸 못 봤다. 친정 이바구를 입에 담지도 않고, 담배를 피우며 저 동쪽 하늘을 보다가 혼자 눈물 지우는 모습이사 수천 번도 더 봤지러. 죽은 부모나 감포 쪽으로 시집가서 소식없는 동상 생각이 나서 그랬겠지. 아이들이 우짜다가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라는 노래라도 부르모 그기 듣기 싫은지 귀를 막곤 했지러.”

어머니가 내게 들려준 말이었다.

“추석이나 설날이나 제사 지낼 때 니 할메 하는 짓 봤제? 제사를 지내모 꼭 따로 밥 두 그릇을 새로 떠서 제사상을 문 쪽으로 반쯤 돌리놓고 할메 혼자 두 번 절하는거. 그거는 제상에 밥 올리놓은 손을 몬 두고 죽은 친정 부모님 제사를 니 할메가 대신 지내주는 기다.”

내가 어릴 때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회사로 출근하여 일에 쫓기다 보니 나는 잠시 집안일을 잊고 있었다.

열한 시 쯤, ‘신계장 전화 받아봐,’ 하며 부장이 송수화기를 내게 넘겨 주었다. 그제서야 직감적으로, 집에서 온 전화구나 하고 생각했다. 아내였다.

“아무래도 할머님이 좀 이상해요. 속앓이라도 전과 다른 것 같아요.”

아내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다르다니?”

“제발 한 번만 의사를 좀 불러 달래요. 전에는 그런 적이 없었잖아요?”

사실이 그랬다. 결혼 이태 후부터 고모한테 할머니를 인계받아 칠 년 째 모셔왔지만 당신이 속앓이 이외 다른 병을 앓으시는 걸 본 적이 없었고, 한 번도 병원에 가신 적이 없었다. 그 흔한 감기에 걸려도 속이 따갑고 어지럽다는 이유로 약방의 약조차 거절하셨다. 그 점에는 어렵게 사는 손자에게 약값까지 부담지울 수 없다는 여린 심정도 작용하고 있었다.

자리보전을 하고 죽으로 연명하며 한 이틀 정도 보내면 어김없이 일어나셔서, 머리단장 옷단장으로 외양을 정하게 갖추어 수챗가로 아장아장 걸어나가 당신의 옷도 손수 빨고 마루에 걸레질도 하시곤 했다.

“의사를 불러 달란다니? 정말 많이 편찮으신 모양이군, 그래 당신 어떻게 했소?”

내 목소리가 다급했다.

“그래서 병원엘 왔지요. 여기 시장 앞, 그 윤내과 있잖아요. 어떻게 할까요? 고모한테 연락을 해야 하겠죠?”

아내가 물었다. 단칸 셋방에 다섯 식구가 복작거리는 고모 댁에 전화가 있을 리 없었으나 고모부가 연탄가게에서 배달원으로 있었으므로 그쪽으로 연락이 닿았던 것이다.

“고모님 좀 오시라 카고, 의사 선생님이나 어서 모시고 가.”

“퇴근하고 곧장 들어오세요.”

“알았어, 무슨 일이 있으면 또 전화해.”

전화가 끊겼다. 오후 두 시가 넘자, 아내가 다시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당신이 좀 들어오셔야겠어요.”

큰길에 면한 약국의 공중전화를 이용하는지 아내의 숨가쁜 목소리에 석여 클랙슨 소리가 들렸다.

“왜, 위독하셔?”

내 목소리도 자연 높아졌다.

“숨길이 가쁘고 진땀을 흘리셔요, 아무래도..”

“의사선생이 뭐라드노?”

“원체 연세가 많은 노약자라 뭐 특별하게 쓸 약도 없으시다며 주사 한 대만 놓고 가셨어요. 목이 많이 붓고 기관지가 헐었다나요. 아무래도 오늘 내일이 고비실 거라고...”

“알았어. 내 곧 들어가지.”

나는 부장에게, 할머니가 위독하시다고 말한 뒤 조퇴허락을 받았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니 준옥이의 학교 공부가 벌써 끝났는지 어머니가 대문 앞에서 준옥이와 함께 놀고 계셨다.

“할무이는 어떻게 됐습니까?”

어머니에게 내가 물었다.

“안 돌아가신다모 돈깨나 까묵게 생겼어. 아프다고 하도 소리치길래 듣기 싫어 밖으로 나와버렸다.”

어머니가 냉담하게 말했다. 신록이 울울한 앞산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길에 한 겹 시름이 실려 있었다. 그러더니 어머니는 혼잣소리로 중얼거렸다.

“한 분 눈 감으모 그만인 목숨, 모지고 질긴 게 명줄이라, 집도 절도 없이 울산으로 나와 내가 어린 너그 성제간을 데리고 미군부대 앞에서 걸식을 할 때, 그만 모자 셋이 같이 약이라도 묵고 죽어뿔라꼬 결심도 여러 번 했건만 그래도 몬 죽고 살아왔지. 니 할메도 사무친 원한이 앞산만큼 높아 하눌님도 차마 박정하게 숨질을 못 끊는 모양 같고.....”

마루로 들어서니 고모부가 열무김치를 안주삼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이 쉰다섯에 연탄 배달부 노릇을 하니 군복 검정물 들인 아래위 작업복이야 연탄과 같은 색이라 그렇다치고, 얼굴과 손을 씻고 왔을 텐데도 여기저기 탄가루가 묻어 있었다.

“열이 오나, 아무래도 할무이가 마 세상 하직하는 거 같으다.”

고모부가 단숨에 소주잔을 비워내며 허탈하게 웃었다. 늘 주기가 눈 가장자리에 가시지 않는 고모부는 근년에 들어 모든 낙을 술에다 붙여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눈만 뜨면 해장술부터 시작하여 잠자리에 들 때까지 소주병을 끼고 다니며 짬짬이 마셔댔다. 그러나 정신을 잃을 정도로 과음하는 법은 없으니 묘한 주법을 몸이 익히고 있는 셈이었다.

나는 목례만 하곤 말없이 할머니 방으로 건너갔다. 아무 것도 덮지 않고 반듯이 누운 할머니는 깊은 잠이 든 듯 눈을 감고 있었다. 반쯤 열린 입을 통해 목구멍에서 가랑거리는 소리만 나지 않는다면 이미 시신과 다름없어 보였다. 주름진 얼굴은 더욱 검어졌고 눈자위가 움푹 꺼져 있었다.

할머니의 옆에는 아내가, 할머니의 머리맡에는 할머니를 닮아 얼굴의 하관이 빠르고 콧날이 오똑 선 고모가 앉아 있었다. 아내는 떠다놓은 세숫대야 물에 가제 수건을 적셔 짜선 할머니의 얼굴과 목에서 배어나오는 진 같은 땀을 닦아내고 있었다. 고모는 터져 나오는 오열을 참느라고 수건으로 입을 막고 할머니의 얼굴을 뚫어져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이미 두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아이구, 마 이래 세상 베리는 갑지러. 열아, 우짜다가 할무이가 이 지경이 됐노? 약도 안 사다 드리고 병원에도 한 분 안 모시고 갔더나.”

고모가 원망 섞인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제가 출근할 때까지는 말씀도 잘 하시고 앉아 계셨습니더.”

아내 옆자리 할머니의 발치에 앉으며 내가 말했다. 저승꽃이 군데군데 핀 뼈만 남은 할머니의 작은 발은 잘 씻어 놓은 외무이듯이 깨끗했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의 발은 통째로 본 것이 처음인 듯 느껴져 왠지 못 볼 것이라도 본 것 같이 마음 한귀가 쓰렸다.

“밥술이나 묵는 집은 이 지경이 되었으모 입원을 시킨다 우짠다 하겠구마는, 이래 병원 신세 한 분 몬 져 보고 돌아가시다니, 아이구 원통도 해라. 딸자슥이라도 있어봐야 수중에 돈 몇 만원도 지닌 것이 없으니 그노무 돈은 다 어디서 썩고 있는지..”

고모가 오열을 삼키며 푸념을 했다.

고모네가 고모부의 고향인 모화 아랫역 호계 역전에서 식당을 할 적만 해도 할머니를 모시고 있었고, 살림살이가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나 고모부가 남의 보증을 잘못 서 집칸을 날리고 노름으로 패가망신을 하자 할머니를 나에게 떠넘겼던 것이다.

서울로 올라오신 할머니가 나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손자며느리에게 하신 말씀을 들어보면 그동안 밥을 얼마나 굶으셨던지, ‘범 같은 자슥이 셋이나 되제, 그것들이 한창 어구같이 묵을 나이 아니가. 그러니 딸네 집에 얹혀사는 이 늙은 것이사 목이 메어서 어데 밥술이 제대로 넘어가겠나. 내사 하루 두 끼도 몬 묵을 때가 많았고 어떤 날은 멀건 수제비국 한 끼로 하루 해를 넘갔다.’ 하셨다.

결국 4년 전 고모네마저 서울로 솔가를 해왔다. 고모부의 사촌이 불광동에 연탄가게를 벌이고 있어 그 친척을 짝지 삼아 무작정 상경했던 것이다. 그리고 고종사촌들도 일터를 구해 나갔다. 큰아들은 노동판에, 스물이 된 여동생은 식당 종업원이 되었다.

“의사선생님을 한 번 더 모셔올까요?”

고모의 눈치를 보면 아내가 말했다.

“내 참말로 이런 말이사 안 할라 캤지마는 성가(언니)가 해도 너무 하다. 밉던 곱던 시어무인데, 사람이 이래 죽어가는 것 한 지붕 밑에서 보면서도 우째 낯짝 한 분 안 비칠꼬.”

고모가 아내의 말이 시덥다는 듯 어머니를 두고 험담을 하며 뽀드득 이빨을 갈았다.

“늙으신 분들은 꼭 자신이 조만간 당할 일 같아 임종을 잘 안 지키시려 합디다. 고모님이 오시기 전에는 어머님이 이 방에 계셨더랬어요.”

아내가 말했다.

고모나 아내의 말은 이미 할머니의 임종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울산서 집 팔아 아들네 집에 왔으모, 아들 앞으로 집이사 때가 일러 몬 사준다캐도 이럴 때 돈 좀 풀어놓으모 안 되나. 너거나 우리사 입치레도 힘드니 내 아무 말도 안 하지만, 성가 하는 짓은 증말 괘씸도 하다, 어데 두고 보자, 관 속에 그 돈 가주고 가는 꼴을.”

열린 방문을 통해 마루를 내다보며 고모가 맵게 말했다.

어머니와 할머니, 그 고부간의 사이란 옛말에도 싸움이 잘 날이 없다는 말이 있지만, 두 분은 평생 무슨 살이 낀 듯했다. 어머니가 갓 시집을 왔을 때나 아버지가 집에 붙어 있었을 때는 당사자들보다 이웃 눈도 있었으니 물론 어머니가 할머니에게 눌러 지냈음이 틀림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정확하게 말해서 육이오 동란 뒤부터 어머니는 할머니와 완전히 갈라서고 말았다. 육이오 뒤부터 할머니의 우리 입 출입은 마지못한 나들이 정도가 고작이었고, 내가 모시기 전까지는 줄창 외손자들을 키우며 호계 고모네 집에서 사셨다.

우선 신체적 조건부터가 어머니와 할머니는 판이했다. 할머니는 여자 중에서도 작고 왜소한 체구였고, 어머니는 여장부답게 몸집이 컸다. 성격 또한 할머니가 꼼꼼하고 찬찬하며 어떤 면에서는 게으른 편이라면, 어머니는 드세고 괄괄하고 남달리 부지런했다. 할머니는 점심 식사 뒤 꼭 한 시간 정도 낮잠을 자는 습관이 있었는데, 나는 어머니가 여지껏 앉은 자리에서라도 낮에 눈을 붙이는 걸 본 적이 없었다.

할머니는 음식 솜씨가 없어 어머니 말처럼 오징어젓이나 잘 담그고 초장이나 맛을 낼 줄 알까, 나물 하나 제대로 무치지를 못했고, 손이 잘아 밥을 하면 딱 알맞거나 조금 모자라기가 십상이었다.

“원래 본 바 없고 배운 바 없이 청상과부 아래 짠물로 자라다보니까 시집와서 끼니 때 마다 밥하라고 쌀을 떠내줄 때는 바가지 한 분 사용하는 법이 없었니라. 똑 조막만한 손으로 쌀을 퍼내 주니 내사 노상 누름밥을, 그것도 반 그릇이 못 되게 묵었지러. 낮이모 그 험한 논밭 일에 밤이모 베틀 앞에 앉아, 말만 듣던 시집살이가 오죽이나 했겠나. 거게다가 니 애비는 그느무 빨갱이 공부를 하는지 기집질을 하는지 울산이다 경주다 부산이다 외지 출입을 장 구경 가듯 나댕겨 한 해모 반 년은 집을 비았을 끼라. 그러니 니를 뱄을 때는 이 큰 뱃가죽이 시레기맨쿠로 주름져 그저 자나깨나 묵는 생각 밖에 없었다. 그래서 철따라 감자나 고구마나 닥치는 대로 시에미 몰래 삶어 묵었지러. 그라모 니 할메는, 말 같은 여편네가 손이 커서 소도 잡아 묵을 상판이니 살림 망칠 끼라고 동내 방네 재잘거리고 다니제......”

어머니가 자주 읊으시는 시집살이의 넋두리였다.

창문과 방문이 열려 있기에 나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담배를 태우며 할머니 얼굴을 보니 눈꺼풀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호흡은 가빠 납작한 가슴팍이 오르내렸다. 할머니가 사용하는 재떨이에 담뱃재를 털다보니 휠터가 반쯤 타버린 꽁초가 열 개쯤 되었다. 그것이 마치 할머니의 이빨이나 화장 뒤 바스러진 뼛조각 같았다.

낮잠을 주무셔서 그런지 할머니는 밤잠이 별로 없으신 편이었다. 새벽 두세 시쯤 어쩌다 변소라도 가기 위해 마루로 나오면 부엌방에 불이 켜져 있을 때가 있었다. 무심코 문을 열고 보면 할머니는 늙은 여우가 호호백발로 둔갑한 듯 눈을 빠꼼히 뜨고 오두마니 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무슨 생각이 깊으신지 할머니는 꼭 심야에 한두 차례 일어나 앉아 담배를 태우며 일이십 분을 보내다 다시 잠을 청하곤 했다.

지난날의 굽이굽이 살아온 삶의 한 자락을 펼쳐놓고 계신 것이 분명했고 당신이 결코 입 밖에 꺼낸 적이 없었지만 삼십 년이 넘도록 소식없는 외동아들 생각을 담배 연기 속에서 풀어놓고 있으리라. 사진으로만 보았을 뿐 기억조차 없는 아버지를 떠올리며 나는 그렇게 짐작했다.

할머니가 서울로 오신 얼마 뒤 언젠가 내가 할머니께 물었던 적이 있었다.

“할무이는 언제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지예?” 그러나 할머니는 눈만 껌뻑거릴 뿐 쉬 대답을 않으셨다. 그러곤 내 질문이 심란한 듯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런데 당신은 손자의 그 질문을 가슴 깊이 새기신 듯 그로부터 며칠 뒤 어느 일요일, 이웃집 아주머니와 이런 얘기를 골목길에서 나누는 것을 나는 엿들을 수 있었다.

“자슥은 키아 놓고 보모 다 소용이 없담더. 그래 애 써서 공부 시킬 때가 젤로 좋은 시절이지예. 대가리 굵어지모 벌써 부모 말 안 듣고 어긋나기 십상임더.”

무슨 얘기 끝인지 그 지나가는 말 속에서 나는 아버지를 중학 공부 시킬 때 할머니의 기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위로 낳은 아들 둘을 홍역으로 내리 잃고 세 번째 얻은 아버지를 모화보통학교에 보냈을 때 할머니와 나이 많은 할아버지의 즐거움이란 대단했을 것이다.

그 시절, 할아버지는 억척같은 노력과 근검절약 끝에 반자작농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머리가 뛰어나 향리 보통학교를 일 등으로 졸업한 뒤 해마다 인근 군에서 한둘이 입학한다는 울산농업 중학교에 쉽게 합격하였다. 그래서 중학 5년을 모화에서 울산까지 기차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시간을 통학했던 모양이었다.

“새북같이 아침밥 해 믹이서 벤또 싸가지고 영감하고 같이 아들을 사이에 끼고 역까지 바래다 주던 때가 그래도 좋았지러.”

고모가 할머니 말씀을 흉내 내어 들려주시던 말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학교 졸업과 더불어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눈 밖에 난 모양이었다.

수리조합이니 면 서기나 금융조합이니, 그 좋다는 직장을 다 마다하고 모화에서 야학당을 개설하여 농민운동을 시작했는데, 그것이 왜경의 눈에 사회주의적 민족운동으로 지목되어 지서로 들락거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되자, 결혼이나 하면 아들 마음이 잡힐까 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버지의 혼인을 서둘렀다. 마침 경주에 재산을 다 날려 백수건달이 된 적빈한 유생의 막내딸과 혼삿말이 있었는데, 바로 어머니였다.

당시 외할아버지는 퇴락한 스물네 칸 고가나 지키며 주야장천 술에 취해 향교에서 벌어진 시회의 모임에 나가고 남의 집 혼사의 사주단자나 써주는 일로 소일하고 계셨다 한다. 끼니는 근친일족들로부터 한두 됫박씩 양식을 얻어먹던 구차한 처지였다. 그러나 기상만은 살아있어 때를 잘못 만난 진사감으로 주위에서 흠모 받고 있었다.

막내딸이 너무 크고 말상이라 하여 데려갈 사윗감을 못 찾던 참에 선으로 본 아버지의 명민함이 외할아버지의 눈에 출중하게 들었던 게 분명했다. 현재의 처지는 접어두고라도 집안의 문벌로 따진다면야 맺어질 수 없는 사돈이었지만, 외할아버지는 할아버지께 그 혼사를 쾌락하셨다. 혼삿날을 받자, 할아버지는 유생 집안의 처녀를 며느리로 맞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조상의 허물을 죄벗는다는 기분에 하늘로 날 듯했을 것이다. 그래서 기차 편으로 경주 나들이가 잦았고, 바깥사돈끼리 권커니 잣커니 약주를 즐겼던 것 같았다.

그러나 어느 날, 할아버지는 경주에서 하룻밤을 쉬고 돌아와 그 곳에서 무슨 음식을 잘못 자셨는지 토사곽란의 병을 얻어 약 한 첩 변변히 써보지 못한 채 보름 만에 숨을 거두었다. 자식의 혼인날을 일주일 앞 둔 음력 동짓달이었다.

일이 그렇게 되면 흉도라 하여 파혼함도 마땅한데 외할아버지는 대쪽 같은 고집으로, 바깥사돈끼리 회유를 하다 그 지경이 되었으니 내 딸은 마땅히 신씨 집안의 며느리로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고 혼례를 예정대로 강행하였다. 이런 이야기는 어머니가 내게 들려주었고, 아버지 때문에 내 팔자를 망쳤다고 늘 한탄하셨다.

“어무이, 어무이, 나를 알아보겠습니껴?”

할머니의 눈이 조금 뜨이는 듯하자 고모가 할머니의 귓밥에 입을 대고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대추씨만큼 벌어졌던 눈꺼풀이 잠시 잠자리 날개 털 듯 가늘게 떨리더니 다시 닫겨지고 말았다.

“아직 의식은 있는 것 같으신데에?”

담배를 끄며 내가 말했다. 휠터 길이 만큼 꽁초가 남은 상태였다. 할머니가 영원히 깨어나지 못한다면 내가 남긴 담배꽁초는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이었다.

“가물가물 하는 거다. 촛불이 꺼질라 칼 때가 이럴 끼다.”

고모가 말했다.

나는 그냥 멀뚱히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고 있어야 할지, 아니면 지금부터 장례준비를 해야 할지, 장례준비를 하자면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서른일곱 해 동안 내가 주무가 되어 장례를 치러본 적도, 장례를 가까이에서 도와주며 눈여겨 본 기억도 없었다. 다만 군대시절, 실연을 비관하여 휴가 귀대 직후 자살한 동료를 의무대까지 업고 가서 밤을 새워 본 적 밖에 없었다. 아우라도 국내에 있다면 연락을 취할 텐데 그 점이 못내 아쉬웠으나, 오늘 안으로 울산의 제수씨에게는 전보라도 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열아, 내 좀 보자.”

마루에서 고모부가 나를 불렀다. 내가 마루에 나가 마주앉자 고모부가 반 잔쯤 남은 술을 홀짝 털어 마시고는 그 잔을 내게 권했다.

“니도 한 잔 묵거라. 머 애통해 할 거는 없는 기라. 니도 생각해 바라. 할무이는 참말로 오래 사셨다. 올해 여든여덟이모 보통 수를 누리신기 아니다.”

“왜들 이러시는지 모르겠군요. 저러다가 깨오나시모 어떡할라고, 할무이가 곧 숨이나 거두실 듯 이러십니까?”

내가 한 음절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해 둔 말은 아니었다.

말을 하고보니 장례를 치를 일이 그저 막막하게 느껴졌고, 어차피 여든여덟까지 사신 이상 2년을 더 채워 구순까지 사셨으면 싶었고, 마음 한 편에 다른 어느 누구의 짧은생애보다도 할머니의 긴 생애는 삶의 보람이 별 없는 듯 느껴졌다.

“한 분 보고 다 안다. 니 할무이 속앓이가 어디 작년 재작년에 얻은 병인가. 호계 있을 때도 자주 하셨제. 내가 집에 들어서서 척 보니까 벌씨로 가망이 없는 것 같애.”

하더니 고모부가 내게, ‘니 담배 있건 한 개피 도라.’ 했다. 나는 담뱃갑을 내놓았다. 나는 고모부가 넘겨준 잔에 술을 따르었다. 반 잔을 못 채워 술병이 바닥났다.

“아무래도 의사 선생은 한 번 더 불러야겠어요.”

내가 일어서려 했다.

“마, 치아라, 니 효성이사 내가 잘 안다. 그러니 앞으로 돈 들 일이 태산 같은데 쓸데없이 왕진비 디리지 마라, 그 비용도 무시 못한다 카잉게.”

고모부가 나를 다시 앉혔다. 고모부는 트림을 하곤 열무김치 한 점을 젓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입에 문 담배에 내가 성냥불을 당겨드렸다.

“그동안 할무이 모신다고 열이 니가 고생이 많았다. 층층시하에 질부도 고생이 많았고, 그래도 맏손자가 임종을 지키는 데서 돌아가시니깐 할무이는 별세를 하셔도 마음 놓고 눈 감을 끼고. 니 정성 다 알 끼다. 오직 하나 아들을 끝내 상면 못하고 눈 감는 것이사 원통할까?”

할머니와 어머니 사이가 벌어진 결정적인 이유는 해방이 되고 아버지가 본격적으로 좌익운동에 나서고 부터였다. 아버지는 남로당 모화책이었고 울산지부 조직부장책을 맡아 뛰었다. 그러니 아버지는 자연 집을 비웠고 지서의 순경들이 거의 우리 집에 살다시피 했다. 순경과 서북청년단원, 대한청년단원들은 아버지를 찾아내라고 걸핏하면 어머니를 지서로 연행해 갔다. 연행을 당해가면 어머니는 얼마나 매타작을 당하셨는지 전신에 피멍이 들어 돌아왔다. 한 번은 실신을 해 가마니에 실려 돌아온 적도 있었다 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전지불을 비추며 저들이 또 들이닥칠까 봐 밤을 무서워 했다.

그런데 할머니라도 집에 있어주면 그 무섬증이 덜 하련만 할머니는 체구처럼 간이 작아 아버지가 좌익운동에 나서고 순경들이 집 출입을 하고부터, 대동아 전쟁 말기에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결혼한 호계 고모네 집에 숫제 눌러 사셨다. 어머니는 젖먹이 어린 나를 업고 밤이면 밤마다 공포에 떨며 뜬 눈으로 새벽을 맞기가 일쑤였다.

“내가 니를 업고 호계 시누이집으로 가서 울며 불며 얼매나 애원을 했겠노. 지발 집에 오셔서 내하고 같이 지내자고 말이다. 그래도 씨가 믹히 드가야지. 순사가 어데 거게만 가나, 여게가 성모 여동상 집이라고 여게도 자주 온다며 한사코 안 온다 카더라. 그때는 니 할메가 귀신한테 씨있는지 죽자 살자 내 얼굴을 안 볼라 안 카나.

말 같은 며느리가 이 집 귀신 댈라꼬 간택되는 바람에 멀쩡한 서방 죽고 자슥까지도 좌익에 미친갱이가 됐다고 동네 방네 나발을 불고 댕기니, 시집 잘몬 온 죄밖에 없는 내 팔자가 와 그래 서럽덩공...그러던 차에 머신 법이 새로 생겨 자수를 하지 않는 빨갱이는 몽지리 잡아 처넣고, 그 중에 악질은 총살을 시킨다 카니, 그때서야 니 애비가 어디선가 모화로 돌아와 지서에 자수를 한기라. 보도연맹인가 먼강 , 거게 가입을 해서 겨우 살 길을 찾았지러. 그러니까 시어미가 그제서야 딸네 집을 떠나 우리 집으로 옮겨 오더라. 참말로 사람도 좁쌀만 한데, 하는 짓까지 얼매나 얄밉던지....

그런데 알고 보니까 니 애비가 자수를 하고도 지서 몰래 그 짓을 계속했던 모양이라, 야학당한다고 시아비가 안 묵고 안 쓰고 장만한 논마지기를 쪼개서 팔아묵더니, 육이오가 날 때까지 지 에미 나머지 논마지기를 또 몽땅 팔아뿐 기라. 그리고 육이오가 터지자 니 애비는 일주일 만에 온다간다 말없이 사라져뿌린 기 아니겠나. 미친늠으 서방, 그 놈을 믿고 자슥 둘까지 싸질러가며 살은 내가 축구등신이지. 니 할메는 지금도 이북 어디에 자슥이 살아 있겠거니 하지만 내가 생각키로는 벌써 뒈졌다. 홀에미한테 불효하고 처자슥 버리고 도망질 간 놈이 땅에 두 발 딛고 살 수가 있겠나. 그렇게 니 애비가 없어지고 나자, 하메 소식이 올까올까하고 기다리는 기 두 달, 시에미마저 보따리를 싸 가지고 또 호계 딸네 집으로 가뿌린께 내가 무슨 청승으로 빈 집을 지키겐노. 남은 논마지기도 없응께, 하루 두 끼 묵기도 힘이 들어, 내 젖은 안 나오니까 니 동상은 비실비실 말라 다 죽어가제, 밤이오 순사들이 또 찾아오제... 그래서 내가 모진 결심을 안 했나.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진인께, 이 언슨시럽은(지긋지긋한) 모화땅을 떠나자고 말이다. 너거 두 성제간을 걸리고 업고, 걷고 걸어 울산으로 나갈 때, 들판에 곡식이 자알 익었더라. 가랑잎은 날리고, 곧 엄동은 닥치는데 낯설고 물 설은 울산으로 나오자 눈앞이 캄캄하더라, 딸린 새끼만 없었더라캐도 그때 나는 목을 매달아 죽었을 끼다. 그래 울산에서 내가 너거들 데불고 추위는 닥치는데 남의 집 처마 밑이나 역 대합실이나 헛간이나, 비 피하고 바람 막을 데모 가리지 않고 너거 성제간을 양쪽 가슴에 꼭 붙안고 그 체온으로 겨울을 넘길 시절에 처음 이 에미가 한 짓이 먼 줄 아나? 바로 걸뱅이 짓이다. 깡통을 들고 퉁퉁 부은 손발로 남의 집이며 미군부대며 문전걸식을 했니라. 몸에 이가 수백 마리나 끓고, 열흘이고 보름이고 낯짝도 못 씻은 얼굴에 입성이라고는 살을 가렸응께 너거 성제간 꼴은 말하고 머하겠노. 그때 니가 다섯 살, 니 동생이 두 살이었다. 울산서 호계 사람도 만났응께 니 할메한테 내 소식도 전해졌으련만 메루치 장사로 방 한 간 얻을 때까지 코빼기도 안 비치더라. 어냐, 내가 이 자슥을 질질이 키아서 옛말하고 살 때, 내 괄시한 이노무 세상, 어데 두고 보자. 내가 무명지를 깨물어 나올 젖도 없는 쪼그라진 가슴에 피로써 십자가를 그렸다. 지금도 보이제, 이 살점 날아간 손가락이...“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 하던 날 밤, 나에게 처음으로 새 교복을 맞춰 주시고 어머니는 우리 형제간을 앉혀놓고 이 말을 하시며 우셨다. 그 울음은 너무 절절하여 나도 아우도 따라 울지 않을 수 없었고, 우리 세 모자는 울음으로 밤을 밝혔다.

그 거칠고, 어떤 면에서는 모질기까지 한 어머니를 내가 뜨겁게 이해하게 된 것은 그날 밤 이후였다. 우리 형제를 숯포대 매질로 키워올 때도, 그 매가 서른둘에 청상이 되신 뒤 홀몸으로 세파를 이겨 온 분풀이와 설움의 또 다른 표현임을 알고 나는 순종으로서 달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래저래 마음이 심란하여 나는 반쯤 찬 술잔을 고모부 앞에서 겁 없이 비워냈다.

“할무이가 일찍이 화장 이바구는 한 분도 안 하신 걸 보모 아무래도 묘를 서야 할 낀데, 니 생각은 어떻노?”

고모부가 물었다.

“묘를 서야지예.”

“그라모 장지를 우짜제?”

고모부가 넌지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대답이 없자,

“할베도 모화의 공동묘지에 묘를 섰응께 거게 어데 선산이 있나...그렇다고 모화에 친척붙이가 사는 것도 아이고 말이다.”

하고 다시 내 의중을 떠보았다.

“공원묘지라도 서너 평 사야지예.”

“글쎄 그것도 문제가 있을 것 같다. 니 보다시피 내야 몸으로나 때울까 뭉쳐둔 돈 없고, 니도 안죽 집칸하나 없이 박봉으로 힘들게 사니, 할메 장례비라고 따로 모아둔 기 있겠나.”

“어떻게 되겠지요. 회사에 가불도 좀 하고 빚도 내지요.”

내가 자신있게 말했다. 어차피 한 번은 당할 일, 할머니 장례만은 조촐하게나마 내 힘으로 성의껏 치르고 싶었다.

“너거 어무이가 돈이 좀 있을 낀데, 이럴 때 우째 좀 안 내 놀란가?”

하며 고모부가 입맛을 다셨다.

“어무이가 스스로 내놓지 않으신다면 강요할 순 없습니다. 어떻게 모으신 돈인데 그 돈을 쉬 축내려 하시겠습니꺼. 우리 애들 간혹 사탕 사주시는 것도 다 계산을 하는 모양이던데예.”

하고 말하자, 내가 어머니의 인색함을 은근히 드러낸 듯 느껴져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 점은 너무 걱정 마시고, 제가 장례절차를 잘 모르니 고모부님이 뒷두량이나 좀 해 주이소.”

말을 마치자 나는 일어섰다. 고모부는 술을 한 병쯤 더 마시고 싶은 표정이었으나 내가 일어서자 따라 일어섰다. 윤내과로 찾아가 의사를 한 번 더 모셔올까 하다가 잘못하면 임종 장면을 놏칠 것도 같아서 나는 다시 부엌방으로 갔다. 이럴 땐 심부름을 시킬 고종사촌이 가까이 없다는 게 큰 아쉬움이었다.

“아무리 호구가 바쁜 세상이기로서니 외할무이 별세야 봐야지러. 아무래도 아들한테 내가 두루 연락을 해야겠구만.”

하며 고모부는 마당 쪽으로 나갔다.

부엌방에서는 고모님의 질펀한 울음 속에 넋두리가 끝없이 풀어지고 있었다.

“아이고 아이고 살아 생전 호강 한 분 몬해보고, 이 날 이 때꺼정 대접 받는 밥 한 그릇 몬 자셔보고 돌아가시다니....어무이요, 어무이요. 이 못난 딸자슥 욕하이소. 마음씨가 여려 딸네 집에 살 때는 사위 보기 미안타면서 늘 눈 한 분 몬 치뜨고 밥상 앞에 앉으셨고 며느리는 무섭다고 울산 쪽은 얼씬도 몬 하셨고, 겨우 마음씨 고븐 손자며느리 덕에 몇 년 잘 지내셨는데, 또 원수지간인 며느리 눈칫밥을 묵자 그기 어데 소화나 됐겠습니꺼?

오매불망 기다리던 아들 얼굴 한 분 몬 보고 마 이래 눈을 감으시다니.... 대역죄인 아들이라고 남한테 아들 말 한 분 속시원히 몬 해 보고, 한이 되고 암이 돼도 이날 이때꺼정 보도연맹에 자수한 아들이라며 오빠 기다리는 정성 하나로 목숨을 부지해 오다가....“

“고모님, 그만 우시이소.”

내가 말했다. 아내가 잠시 부엌으로 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 자리에 내가 앉았다.

나는 다시 담배 한 가치를 꺼내 물며 무심코 할머니의 얼굴에 눈을 주었다. 순간, 나는 할머니가 숨을 쉬고 있지 않다는 듯 느껴졌다. 얼굴이 아주 평온하고 구긴 미농지 같은 그 많은 주름도 좀 펴져 있었다. 할머니는 눈을 반 쯤 뜨고 있었는데, 그 눈동자가 초점이 전혀 없었다.

“고모님, 할무이가...”

하고 더듬거리며, 나는 장작개비 같이 마른 할머니의 팔목을 잡고 맥을 짚었다. 맥박이 뛰고 있는지 멈췄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고모님이 할머니의 얼굴을 감싸안고 엎어지며 와락 통곡을 쏟기 시작했다. 나의 눈에서도 한 줄기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준구 엄마! 어무이!”

내가 아내와 어머니를 다급하게 불렀다. 부엌에서 아내가 뛰어왔다. 그러나 어머니는 종내 나타나지 않았다.

시장 입구에 있는 장의사와 윤내과를 들르기 위해 내가 골목길을 허겁지겁 뛰어갈 때, 저 맞은편에서 어머니가 준옥이와 나란히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어머니는 한 손으로 준옥이의 손을 잡고, 한 손에는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나의 다급한 걸음과 얼룩진 눈을 보고도 어머니는 애써 시선을 피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어머니가 들고 오신 그 비닐봉지 속에는 갈치 두 마리가 들어있었다.

그날 저녁 고모가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할 때, 사십여 년을 차고 다닌 낡은 비단 꽃주머니 속에서 동전 삼백 원과 닳은 증명서 한 장이 나왔다. 그 증명서는 누렇게 색바랜 아버지의 손톱만한 사진이 붙은 보도연맹 가입증이었다.

(200x138)

[운무]

김원일의 작품성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도수 높은 안경 너머 그의 깊은 눈빛이 떠오릅니다.

한동안 잊어 왔던 우리의 역사와 현실에 또한 먹먹해지네요.

[시인과나]

애증관계에 있는 할머니와 어머니 관계를 잘 묘사해 놓았네요.
이념 논쟁 속에 희생된 한국 여인들의 질곡된 삶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