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1 - 유목민, 그중에 몽골이라고 불리는 민족의 출현과 용사 예수게이!
가오홍레이가 지은 1,043페이지에 달하는 “절반의 중국사” 라는 책에는 제1장 흉노에서 제18장 누란
까지 18개 민족의 역사가 나오는데..... 그중에 제13장 몽골편에 보면 “ 몽골인의 조상은 실위이다,
한어로 번역하면 ‘삼림(森林)’ 이란 뜻이니, 아르군강 유역의 숲속에서 발원한 어렵민족이라고 합니다.
7세기에 실위의 분파인 “몽올실위” 가 테무진 가계의 시조로 ‘푸른 늑대’ 라 불린 부르테치노
의 인솔 하에 에르구네강(아르군강) 을 떠나 서쪽으로 가서 오논강, 케룰렌강, 툴르강의
근원지인 헨티산맥 부르칸 칼둔 지방에서 유목을 했는데.... 초원으로 나온지라 튀르크,
위구르, 키르키스 및 카타이(거란)에 예속되어 “몽골”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고 합니다.
말에까지 갑옷을 입힌 중무장한 여진족 금나라 기마군대 “괴자마” 나 청나라 8기군은
인간 병기에 가까운데... 그 보다 더한 살인기계 집단이 있으니 몽골 기마군단으로,
동서고금을 통틀어 켄타우로스 신화를 낳은 스키타이인이나 사람 고기를 씹는다는
훈족을 넘으니..... 공포 그 자체로 그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시체만 뒹굴 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세간의 평가와 달리 몽골인들은 신성하다고 여기는 피를 흘리는 것을 꺼렸으니
죽은후 언젠가는 영혼이 몸으로 돌아오는데, 피를 너무 흘리면 그게 어려워 푸른 하늘
로 돌아가기가 힘드니 적군의 피가 자신의 몸에 묻는 것 조차도 꺼리는지라 가급적 창
과 칼로 하는 육박전을 피하고...... 멀리서 말을 달리며 활로 적을 죽이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적군과 마주쳐도 불리한 싸움은 피했으며 싸우다가도 불리하다 싶으면 언제든지 달아났으니..... 김유신은
신라군이 석문전투에서 당군에 참패했을 때 임전무퇴를 어기고 후퇴한 아들 김원술을 죽이려고 했는데,
이는 농경 민족으로 보병이 중심인 신라는 땅을 빼앗고 지킨다는 개념이지만.... 유목민인 몽골족은 땅
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약탈이 목적이라 달아났다가도 언제든 다시 습격해오니 진퇴가 자유자재였습니다.
스기야마 마사아키(杉山正明) 씨는 저서 “유목민이 본 세계사” 에서 척박한 자연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사계절 물과 풀을 찾아 이동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살아온 이들을 “유목인”
이라고 하니.... 소통을 위한 언어는 가졌으나 기록을 남겨야 할 이유가 없었던 유목민들
에게 정주민들은 무자비한 약탈자라거나 문명의 파괴자 라는 오명을 덧씌웠다고 말합니다.
스기야마 마사아키 교수는 역사의 편견과 오해라고 단언하며, 18세기 전까지 유라시아의 넓은 영토를
지배하고 중화와 서구를 압박한 역사의 주인공은 오히려 그들이라고 역설하는데.... 그러니까 역사
시대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주도했던 세력은 정주민이 아니라 유목민이라고 말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역사 속에서 주변인이자 약탈자, 문명의 파괴자로 폄훼되었고 역사가 왜곡· 축소되었는지 설명합니다.
미개인이라고 치부되었던 유목민들은 은(銀)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인 경제체제를 갖추고
있었으며, 오아시스에 사는 정주민들의 고립을 막아주는 문화 교류자였다는 등의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데.... 현대 사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유목의 속성인
‘모바일 Mobile’ 이니 끊임없이 이동과 변화 속에서 가치를 해석하는 시대라고 말합니다.
한국에서 휴대폰이나 노트북을 뜻하는 모바일은 영어단어 Mobile 를 발음한 것이니 1480년대
프랑스 단어가 영어로 넘어온 것이고 그 어원은 라틴어인 Mobilis (모빌리스)
인데.... 모두 “움직이는, 이동할수 있는” 이란 뜻이니 몽골족등 유목민족의 삶의 방식 입니다.
유라시아의 몽골에서 초원과 황야 및 반(半)사막의 차이는 풀의 많고 적음의 정도로 나누며
한자로는 사(沙) 라든가 막(漠) 이니 사막(沙漠) 인데, 하지만 사막(砂漠) 과는 다르니....
페르시아에서는 물을 아브라 하고 비아반은 물이 적다는 말이며 아바도는 물이 있다는
것이니 초원, 황야, 사막은 비아반이고 경지, 녹지, 마을은 아바도 인데 몽골도 그러합니다.
몽골인은 유목민이지만 정작 유목(遊牧) 이라는 말은 명나라시대에 가서야 처음으로 등장
했다고 하는데, 영어로는 패스트록 노우메드(pastoral nomad) 즉 “목축하는 이동민”
이며 이때 유(遊)라는 말은 유희처럼 빈둥빈둥 보내는 것을 뜻하는게 아니고 유학(遊學)
이라고 할 때 처럼 “나간다” 는 뜻이니..... 로맨틱하기 보다는 고통스러운 삶의 현장 입니다.
여름철에는 하늘은 높고 청정하며 산들바람이 초록대지를 불어오니 널찍한 산의 경사면과
평원에 흩어져 있는 풀을 뜯지만.... 겨울이 되면 기후는 혹독하게 춥고 눈이 엄청 내려
교통이 끊기는지라 강추위와 적설을 피할수 있는 산의 남쪽 언덕과 계곡 사이에서 집단
생활을 영위하며 월동하는데 눈이 많이와서 풀을 찾지 못하면 가축들이 굶어죽기도 합니다.
그런데 흉노와 선비족에 거란족 요나라와 여진족의 금나라 그리고 몽골족의 원나라 및 만주족의 청나라
등 유목민족 국가는 일어설 때는 무시무시하지만 결국 망하는 것은, 거친 초원에서 소박하게 살 때는
부락생활 자체가 군사훈련이라 우수한 무사 집단이지만, 따뜻한 남쪽 농경 국가를 정복해 호의호식
하며 안일한 생활을 하다 보면..... 상무(尙武) 정신을 잃어버려 기마 군단의 위력이 줄어드는가 봅니다.
훗날 유럽의 베네치아는 무역은 물론이고 해군도 강국으로 이슬람 오스만 투르크의 침공을 거의 혼자서
막아내며 유럽을 지켰는데... 그들은 15살이 되면 무역선의 각궁수로 승선해 자신의 화물을 싣고는
험한 뱃길에 이익을 남기면서 해군으로 컸지만, 뒤에 북이탈리아를 손에 넣은후에는 농장주가 되어
안일과 사치에 빠지니 고생없이 자라는지라 해군력도 쇠퇴해 결국 망한 것과 같은 이치인가 합니다?
이 글을 쓰기위해 인터넷에 몽골이나 징기스칸을 검색하면 나오는 기록들 외에 5권의 책을 꼼꼼하게
읽고 내용을 발췌해서 정리 했으니, 하나는 미국 매칼래스터 대학 인류학과 교수인 잭 웨드포드
가 지은 “징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라는 436페이지 분량의 책이니 1부 초원의 공포정치,
2부 몽골 세계전쟁, 3부 세계 인식의 대전환에 영원한 푸른 하늘, 징기스칸 으로 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스기야마 마사아키(杉山正明) 씨의 저서 “유목민이 본 세계사” 로 척박한 자연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사계절 물과 풀을 찾아 이동한 “유목인” 에 대해 쓴 책으로
1부 민족과 국경, 2부 중앙 유라시아, 3부 유목국가의 원형, 4부 초원과 중화,
그리고 5부 투르크 몽골족, 6부 몽골의 전쟁, 7부 바다와 화포의 시대로 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는 가오홍레이가 지은 1,043페이지에 달하는 “절반의 중국사” 책이니 제1장 흉노 부터
오환과 선비, 유연, 백흉노, 돌궐, 회골, 거란, 말갈, 강, 토번, 저, 월지, 몽골, 오손, 월, 서남이,
복 그리고 제18장 누란까지 18개 민족이 나오는데.... 그중에서 제13장 몽골편을 참고했습니다.
13장 몽골편은 전설, 영웅의 탄생, 홀로 천하를 걷다, 후계자 이야기, 몽케 정권탈취, 중국을 통일하다,
쿠빌라이, 마르코폴로, 대막으로, 세계제국의 꿈, 토목보의 변, 북경방어전, 남궁의 황위, 알탄칸
의 사랑, 준가르의 자살, 토르구트 동쪽으로, 볼가강 서쪽, 몽골 독립, 올랑후 기억으로 서술했습니다.
네 번째는 미야와 키준코 씨가 슨 최후의 몽골 유목제국으로 1장 쥰가르의 갈단,
2장 몽골제국의 전통, 3장 몽골과 오이라트, 4장 오이라트 연합, 5장 17세기
오이라트, 6장 쥰가르부의 패권, 7장 쥰가르부의 청나라 건륭제로 이어집니다.
다섯번째는 몽골 군주의 일칸국 왕궁에 출사해 최고직인 ‘재상’ 의 직위에 까지 올랐던 학자
“라시드 앗 딘” 이 지은, 세계 최초의 세계사라고 불리는 “집사” 를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교수 김호동씨가 번역한 “부족지” 를 읽고 관련 부분을 발췌헤서 정리했습니다.
집사 제1부는 몽골제국의 흥기로 1권 부족지는 1편 오구즈족, 2편 몽골화된 투르크족, 3편 투르크족,
4편 몽골족이며 2권 몽골제국사는 1편 징기스칸과 조상들이고 2편은 징기스칸과 계승자들이며
제2부는 세계 각 민족들의 역사로 1편은 아담 이후 사도와 칼리프들의 역사 및 지구 각 종족
들의 역사이고 2편은 이후 전개된 역사이며 제3부는 세계 각 지역의 경역과 도로 및 하천 입니다.
집사 부족지에 몽골화된 투르크족 중 처음 나오는게 잘라이르 종족인데 몽골초원 오난
에 거주할 때 키타이(거란) 군대가 그들을 절멸시켜 소수만이 도주했는데...
그들은 10개 부족으로 늘었고 그중 차트지파의 무칼리는 징기스 칸의 좌익 군대
를 지휘했으며 징기스칸이 호레즘에 원정간 후에는 혼자서 중국 금나라를 공격합니다.
그 외 수니트 종족 중에는 초르마군, 예케 제베와 수베테이라는 뛰어난 장수를 배출했으니 우구데이칸
시절 각 1만명씩 지휘했으며 세 번째 타타르 종족은 워낙 유명한데 모두 7만호로 카타이(거란) 변경
부유르 나우르 등에 거주했으며 예수게이와 테무진이 여러번 전투를 한 부족으로 금나라가 세력을
경계해 왕칸 및 테무진과 연합해 몰살시키는데 유럽에 몽골족이 “타타르” 라는 이름으로 알려집니다.
네 번째 메르키트 종족은 몽골초원 북쪽 삼림지대에 거주했는데.... 병사가 많고 호전적
이었으니, 예수게이가 이 부족에게 시집 오는 호엘룬을 납치해서는 테무진을 낳는
바람에 훗날 메르키트족은 테무진의 아내 부르테를 보복하는 의미에서 납치하니....
몽골족과는 원수지간이 되는데 테무진은 왕칸 및 자무카와 연합해 이들을 멸족시킵니다.
다섯 번째 오이라트 종족은 셍키스 무렌에 거주했는데 훗날 몽골이 명나라에 망한후 세월이 흐르고 세력
을 키워 에센은 1449년 토목보 전투에서 명군을 대파하고 명나라 황제 정통제 영종을 포로로 잡는데
이때 부족 이름이 몽골의 오이라트이니... 그 조상이지 싶으며 그외 소수 종족이 10개 정도 더 있습니다.
투르크족 중에 첫 번째는 케레이트 종족이니 몽골초원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으며 크게 나누어 다섯
몽골족 중에 가장 강력했으니 훗날 옹칸(왕칸) 이 세력을 잡아 몽골을 통일할뻔 하다가 테무진에게
패하는데 옛날 군주의 일곱 아들이 얼굴이 모두 검었기 때문에 케레이트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나이만 종족이니 몽골 초원 서쪽 알타이 산맥 아래에 거주했는데 이들은 모두 기독교도
(네스토리우스교, 경교) 라....... 유럽에서는 이슬람 군대를 물리칠 기독교 군주
프레스터 존(Prester John)으로 생각해 찾아다녔으며 훗날 테무진과 처절한 전투 끝에 멸망합니다
세 번째는 웅구트 종족이니 몽골초원 동쪽에 거주하니 키타이(거란)의 군주 알탄 칸의 속민과 군대의 일부
를 이루었으며, 몽골과 유사한 종족으로 예수게이가 납치한 신부 후엘룬의 고향 종족으로 칭가스칸이
카타이를 공격할 때 도왔기 때문에 칭기스 칸은 딸 알라카이 베키를 족장의 아들 센구이에게 시집보냅니다.
네 번째 위구르 종족은 전차, 밀, 양을 비롯 청동기 문물이 토하라인들을 통해 유입되었
으며 기원전 13세기에 가장 먼저 철기가 출현했고..... 스키타이 사카(塞) 인들이
기원전 8세기 승마술을 전파했으며 중앙아시아 승려들이 와서 불교를 전했고
사마천의 사기에는 위구르는 흉노의 오른팔 그리고 고조선은 흉노의 왼팔이라 말합니다.
한무제는 이광리 장군을 보내 이 지역에서 흉노를 몰아냈으니 “동쪽으로 조선을 정벌하고
현도와 낙랑을 세워 흉노의 왼팔을 끊었다. 서쪽으로 대완을 정벌하고 36국을 아우르며
오손과 관계를 맺고 돈황(敦煌) · 주천(酒泉) · 장액(張掖) 을 세워 야강을 막아
흉노의 오른팔을 찢었다. 선우는 고립되어 멀리 막북으로 돌아갔다. 『사기』 위현전”
위구르인들은 741년에 동돌궐을 멸망시키고는 위구르 제국을 세워 몽골 초원을 지배
하다가 848년 키르기스인의 침공으로 멸망하는데..... 위구르는 서쪽 아바스
왕조와 연합해 751년 일어난 탈라스 전투에서 고선지 장군의 당나라군을 격파합니다.
위구르인들은 중국에서 안사의 난이 일어나자, 당나라를 지원하면서 수복한 낙양을 약탈
하고 칸은 옹왕(후의 당나라 덕종) 이 보는 앞에서 당나라 장수들에게 춤을 춰
보라고 협박하고, 거부하자 칸이 직접 매질해 죽여버릴 정도로 당나라를 업신여겼습니다.
위구르에 바치는 어마어마한 비단등 조공량 때문에 당나라 사람들은 허리를 펼 날이 없었다고
할 정도인데..... 위구르를 비롯한 유목민 국가들은 자신들의 말과 중국의 비단을 거래하는
이른바 '견마무역' 을 통해 이득을 얻었으니..... 원래 말과 비단의 환율은 1대 1 이었으나
위구르는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이 환율을 1대 40, 1대 50 등으로 멋대로 올려서 당나라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켰는데 그후 서쪽 키르키즈에 망하면서 몽골 여러 부족들이 독립 합니다.
다섯 번째는 키르키즈 종족으로 몽골초원 서북쪽에 살았으며 위그르 제구을 멸망시킨 부족으로
오늘날 중앙아시아에 키르키스탄이란 나라가 있으며.... 여섯 번째는 탕구트 종족이니
몽골 초원 남쪽에 거주했는데 이 종족은 "서하" 라는 강대한 나라를 세웟으니 칭기즈 칸은
무려 여섯차례나 전쟁을 하여 결국 멸망시키게 되며 그 외 킵착 종족과 카를룩 종족이 있습니다
몽골족에 속하는 종족으로는 첫 번째 우량카트 종족은 벼락이 가축에 떨어져 죽으면 그 고기를 먹지
않으며 이 종족중 징기스칸의 사구(四拘) 로 나오는 2인자 젤매 우하가 있으며 수베테이 바하두르
도 이 종족이고..... 두 번째 쿵그라트 종족은 이스칸다르의 성벽과 같이 키타이(거란) 와 몽골
지방 사이를 따라 뻗어있는 웅구의 변경에 있으며 칭기즈 칸의 딸의 사위로 좌익을 담당했습니다.
세 번째 타이치우트 종족은 카이두 칸의 둘째 아들인 차라키 랑쿰의 후손으로 랑쿰은
대 아미르 라는 뜻이며, 카이두 칸의 첫째 아들 바이 싱코르의 후손이 테무진
의 아버지 예수게이이고 셋째 아들 차우진의 후손은 아르티간과 시지우트라고 합니다.
타타르 족이 키타이(거란) 군주에게 복속하고는 타이치우트 종족 함바카이 카안을 급습해 거란의 알탄칸
에게 보내니 글르 나무로 만든 나귀에 못박아 죽였는데..... 훗날 칭기즈 칸도 이 조상의 원수를
갚는다면서 타타르와 키타이를 공격했으며 이 타이치우드 종족과 테무진은 친족으로 피터지게 싸웁니다.
네번째 솔두스 종족은 어린 테무진이 타치우드 씨족에게 잡혀와 칼을 쓰고 감시를 받다가 탈출해 강물속
에 코만 내놓고 숨어 있을 때 이 종족의 소르칸 시라는 테무진의 코를 발견하고는 수색하는 무리들을
따돌리고는 그를 구해 칼을 벗겨준후 양털 속에 숨겨주고 이후 갈색 암말과 고기를 주어 도망치게 합니다.
다섯 번째 살지우트 종족의 사무카에게 칭기즈 칸은 군대를 주어 알탄 칸의 아미르
중에 한명이 군대와 함께 귀순하는걸 맞이하게 했으며, 칭기즈 칸은 귀순한 군대
를 앞세워 알탄 칸을 공격해 전리품을 챙겼는데 그 외 10여개 종족이 더 있습니다.
예전에는 “몽고(蒙古)" 라고 불렀으나 정식 국명은 몽골어 키릴 문자 표기로는 Монгол Улс
(Mongol Uls), 몽골 문자 표기로는 ᠮᠤᠩᠭᠤᠯ ᠤᠯᠤᠰ(mongɣul ulus) 이며 이는 '몽골국(國)' 이라는
의미니 몽골이라는 국명은 물론 몽골인의 민족명에서 유래하며 그 어원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몽골인이 나타나기 이전 부터 몽골 지역을 휩쓴 튀르크인의, 튀르크라는 의미 가 "용감한"
이라서..... “몽골” 또한 "용감한" 으로 추측할 뿐이지 문헌적으로 기록이 존재하지
않으니 중국 학자 신력건에 의하면 몽골의 기원은 "말갈" 이며 "말갈" 의 중고
한자 발음 자체가 몽골과 비슷하고 살았던 지역 또한 몽골 동부와 만주 지역은 가깝습니다.
몽골이 사서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원조비사 이며, 실위의 부족 중 하나인 몽올(蒙兀) 이라는
명칭으로 나타나니, 아무르강 상류(아르군 강 하반) 에 있었던 작은 부족 중 하나였을 뿐
이었는데 북송 시절부터 강성해지며 이 때부터 중국에서는 몽고(蒙古) 란 명칭으로 불렀습니다.
원나라 시절 공식 문서에도 몽골을 한문으로 표기할 때는 중국인만 아니라 몽골인도 '蒙古(몽고)' 라고
썼으며 오늘날 중국에서 몽골을 이렇게 표기하지만 '몽(蒙)' 자가 어리석다는 뜻으로 많이 쓰이고
'고(古)' 자도 낡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현대 몽골인들은 좋아하지 않으니.... 비록
단순한 음차에 불과하지만 중국에서 이민족이니까 안 좋은 뜻의 글자를 썼다고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도 전통적으로 '몽고' 라고 해 왔지만, 1991년에 외래어 심의를 통해 '몽골'
도 표준으로 올렸으며 이후 '몽골' 로 표기하지만.... 예전부터 몽고라고 많이 써
왔기 때문에 몽고 제국, 몽고 반점 등 역사적 의미로서 몽고라고 많이 표기합니다.
그러다가 저 몽고(蒙古) 라는 말에 비하적 의미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2007년 우리나라 고등학교의
국사 교과서에서 몽골 제국으로 수정했으며.... 몽골 국기에 들어간 소욤보 문장에는 한국의 태극기
처럼 중국 주역에 나오는 음양오행을 뜻하는 “태극” 이 보이니 중국 문명권에서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몽골의 남부 일부 영토는 현재 “내몽고” 라는 이름으로 중국 영토이며 외몽고가 현재 몽골 공화국인데
면적은 세계 18위이니 한반도의 7배(남한의 16배) 가 넘고,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을 모두
합친 것과 맞먹으며 내륙국가로 건조하고 일, 연교차가 큰 극단적인 대륙성 기후를 띄며 고지대 입니다.
지형은 서쪽 끝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과의 접경지역에 높은 알타이 산맥이 있으며 ,
중부에는 항가이 산맥이 존재하고 동쪽엔 낮은 헹티 산맥이 있으니..... 남동부는
낮고 평평하지만 거의 전 지역이 사막으로 덮여 있는데ㅡ 그 유명한 고비 사막이고
사막 외곽엔 초원이 있으며 북부 지역엔 시베리아 비슷한 타이가 숲지대도 있습니다.
2010년 서북부 옵스에서 50일 동안이나 기온이 -55℃ 밑으로 떨어지는 등 조드라는 혹한
으로 전국 가축의 17% 인 200만 마리의 가축이 죽었으니 이런 혹한과 눈보라 때문에
인명피해도 발생하는데, 고대로 부터 몽골인들을 괴롭히던 자연재해로 "전사는 화살
한 발에 죽고 부자는 조드(зуд) 한 번에 망한다." 라는...... 몽골 속담도 있을 정도 입니다.
고생물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땅만 파면 공룡 화석이 나오는 나라로 인식되고 있으니
프로토케라톱스나 오비랍토르, 벨로키랍토르, 피나코사우루스등이 발견되며 백악기
때 부터 사막이어서 손도구 만으로도 지층이 제거되며 포유류는 설치류 와 토끼가
많고 몽골가젤이나 영양에 혹이 2개인 쌍봉낙타 그리고 늑대가 많은데 1만마리 수준입니다.
몽골고원에 살던 민족들을 보면 처음에 동호이고 흉노와 철륵으로 이어지는데 철륵에는 선비, 유연,
돌궐, 북위 등이며 그 다음 돌궐에 이어 위구르제국이 통합했다가 다시 거란과 실위로
갈라져 나가고 실위에서 몽골족이 나오니 나이만, 타타르, 케레이트, 메르키트에 몽골 부족 입니다.
고대로 부터 몽골 지역은 몽골인이 아닌 흉노, 돌궐 등 튀르크인들이 지배하였으니 흉노
와 돌궐 같은 튀르크인 정복자들이 중앙아시아에서 몽골로 건너와서는 동쪽의
몽골인을 정복했기 때문에.... 몽골에서는 흉노와 돌궐을 몽골의 선대 역사로 배웁니다.
몽골족의 조상은 몽골 동부 지역에 존재한 동호족 계통인 더더우위, 몽올 실위이며 약소국이였던
고대몽골인들은 사서 문헌적 기록에서 몽올실위로 가끔 보일 뿐이니, 튀르크인들이 중앙아시아
와 알타이 산맥에서 동쪽으로 이동하여 현재 몽골 동쪽 지역에 존재하던 몽골인들은 정복
하면서 원시 몽골인들은 튀르크인들의 지배하에 언어적으로도 튀르크의 특징이 나타나게 됩니다.
몽골의 직계 조상으로 몽올 실위와 더더우위로 보는데..... 실위(室韋)는 6세기에서 10세기 까지
중국 동북부의 넌장강, 아르군강, 흑룡강 유역에 존재했던 동호족의 일파 부족으로... 돌궐이
철륵을 격파했을 때부터 철륵 지배하에 있던 몽골인의 조상 실위는 튀르크화가 진행되었습니다.
실위(室韋) 는 타타르(達靼) 나 조복(阻卜) 등으로 불렸으며, 돌궐의 퀼테긴 비문
에서는 한문 사료의 실위를 30성 타타르(𐰆𐱃𐰕𐱃𐱃𐰺 Otuz Tatar) 라고 부르고
있고, 빌게 카간 비문에서도 9성 타타 르(Toquz Tatar) 로 부르고 있습니다.
북조에서 수까지 실위(室韋)는 5개 부족으로 분열하니 남실위(南室韋), 북실위(北室韋), 발실위(鉢室韋),
심말달실위(深末怛室韋), 대실위(大室韋) 이며 고구려 시기 때 다시 20개의 부족으로 분열합니다.
황두실위(黄頭室韋) 는 군사력이 강하였고 인구도 많았으며 색깔지부락(塞曷支部落) 은 좋은
말(馬)을 산출(産出)하였고 인구도 많았으며 제일 세력이 강했고 오환국(烏丸國)은 오라호
(烏羅護)의 동북 2백여리에 거주하니 오환족의 후손이었고..... 몽올실위(蒙兀室韋) 는
몽와부 (蒙瓦部) 라고 부르니 훗날 몽골의 직게조상이며 그외 15개 부족이 더 있었습니다.
탁발씨의 화북 통일왕조 북위가 분열하니 동위(東魏) 무정 2년, 554년 4월에 실위의 사신들
이 동위에 조공했다는 기록이 있고, 550년에 동위의 선양을 받은 북제(北齊) 가 성립
하여 선비족의 북제에게 조공한 기록이 있으며.... 그 전인 380년에 실위가 고구려에
조공했다는 기록이 있고, 몽골인의 또 다른 조상인 더더우위는 고구려에 분할 점령됩니다.
튀르크의 몽골 정복에 의해 실위의 부족장이 사라졌기 때문에 돌궐에서 파견된 3명의 튀르크인
지배자인 토둔(吐屯 : 감찰관) 들이 실위 몽골인들을 관할했으며 요나라 대강 10년인 1084년
2월과 3월에 맹고국(萌古國) 이 요나라에 사신을 파견한 것이 『요사』 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최근 몽골 다리강가에 고구려의 성벽과 고분이 발견되어 고구려인들이 몽골 동부 지역
의 몽골인 조상(더더우위) 들도 지배했다는 것이 밝혀졌으니... 문헌의 관점에서도
몽골이라는 이름은 보이는 것은 원조비사에 나오는 몽올실위와 연관성을
보이며, 몽골인은 더더우위와 몽올실위에서 기원한 후계 민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몽골고원등 유목지대를 통일했던 튀르크계 위구르 카간국이 840년에 서쪽 키르기스 10만 대군에 의해
멸망하면서 튀르크인들의 지배하에 있던 몽올실위는 비로소 독립하였으며, 그후 1206년에 보르지긴
테무친이 몽골을 통일하고 쿠릴타이에서 칭기즈칸으로 즉위하면서 국명을 몽골 제국이라고 하였습니다.
몽골고원은 동쪽의 흥안령과 서쪽의 알타이라는 2개의 거대한 산맥에 의해 외부와 분리되는데 사방 주변
의 경사면은 장대한 녹지가 펼쳐지며 북쪽에는 삼림으로 에워싸인 거대한 바이칼호가 있고 흥안령
동쪽 기슭에는 만츄리아평원으로 내려가며 옛날부터 목민(牧民) 들의 주거지였고 알타이는 서쪽 기슭
에서 천산의 북쪽 기슭에 걸쳐 삼각지대를 형성하고 남쪽은 사막지대를 지나 만리장성을 만나게 됩니다.
몽골고원은 세계 최대의 초원지대이니 흉노, 동호(東胡), 선비, 유연, 고거(高車), 돌궐,
위구르, 키타이(거란), 몽골과 준가르등 대부분의 유목국가들이 저 대초원에서
일어났으니 유목국가에는 요람의 땅인데 유목수렵민으로 살아가며 토지는
비옥하니.... 항가이와 알타이 사이는 물이 풍부해서 벼농사도 가능했다고 합니다.
이후 몽골은 중국지역이 대원, 킵차크 칸국, 오고타이칸국, 차가타이칸국, 일한국 등의 여러나라
들로 분열되면서 14세기 말에 몽골인 제국은 중국의 북원을 빼고는 전부 현지 세력에 의해
멸망하였고, 청나라는 몽골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몽골을 내몽골과 외몽골로 분리시켰습니다.
1911년 중국에서 신해혁명이 일어나 청나라가 멸망의 길로 들어서자 외몽골은 기회를 잡고 그해 12월에
혁명(제1차 혁명) 을 일으켜 자치를 인정받았으며 1913년 티베트와 우르가(울란바토르) 에서 몽장
조약을 체결하였고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이 일어나자 1920년에 국민당이 외몽골의 자치를 철폐시킵니다.
그 해에 반중국·민족해방을 목표로 몽골 인민당이 결성되었으니 1921년에 담딘 수흐바타르
가 혁명군을 조직하여 제2차 혁명을 일으켜 독립하였으니 세계에서 2번째로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으며.... 몽골은 1924년 11월 26일부터 독립 국가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니
1991년 말에 민주화 혁명이 일어나 복수 정당제와 사회적 시장경제 정책을 도입했습니다.
몽골족의 역사는 테무진(징기스칸)의 아버지인 예수게이(예수헤 바트르) 부터 시작되니
그는 전투에 능했기 때문에 용사라는 뜻의 바아투르(Bayatur) 라고 불렸다는데,
몽골 부족의 한 무사 집단의 지도자로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보르지긴 씨족인 예수게이 바아투르는 아버지 바르탄 바아투르와 어머니 수치킬 우진 사이의
4명의 아들 중 셋째로 태어났다고 하는데.... 즉 징기스칸의 할아버지 바르탄 바아투르는
“카마그 몽골” 의 초대 대칸이었던 카불 칸의 차남이었으니 예수게이는 카불 칸의 손자입니다
카불 칸(1085년 ~ 1146년? 合不勒汗) 은 보르지긴 씨족장이자 몽골 부족 최초의 칸으로 예수게이
의 조부이자 칭기즈칸의 증조부인데, 1148년 금나라 희종으로 부터 “몽올국왕(蒙兀國王)”
에 책봉되었으며 사촌 동생 암바카이 칸이 그의 뒤를 이었는데 그 후손이 타이치우드 종족 입니다.
카불 칸은 보르지긴 오복(oboq, 몽골 성씨) 출신으로, 카마크 몽골의 칸 카이두의 장남 바이신호르 도크신
의 손자이고, 툼비나이 세트센의 아들로 한때 금나라를 침공했으나, 남송 원정을 떠난 금나라는 카불
의 군대를 상대하지 못했는데.... 뒤에 금 태종(金太宗) 이 회군하자, 카불은 금나라로 가서 종주권
을 인정하고 되돌아왔으며 그는 일곱 아들 대신에 사촌 동생 암바가이 칸을 후계자로 내정 했습니다.
뒤에 그의 넷째 아들 쿠툴라 칸이 암바가이 칸의 뒤를 이어 카마그 몽골의 칸이 되는데 카불 칸이
병으로 죽어갈 때.... 암바가이와 몽골 인들은 타타르 주술사를 초청했으나, 죽어가는 그를
살릴 수 없었고 이 때문에 카불의 친척들은 카불 칸이 죽자 마자 주술사를 살해했으니 이 일로
타타르인들은 앙심을 품게 되었으며 금나라 통치자들은 유목민간 대립, 갈등할 기회로 보았습니다.
예수게이가 태어났을때 바아투르 가문은 예수게이의 조모 가문 쿵크라트(콩기라트, 옹기라트)족을 도와
타타르와 전쟁을 벌였는데.... 라시드 앗 딘의 기록에는 예수게이의 할머니 코아 쿠룰쿠의 동생인 사인
테긴이 병에 걸리자 타타르족 무당인 차리칼 누디를 불러 치료했지만 죽었는데 이 때문에 테긴의 가족
들은 무당 차리칼 누디를 죽여버렸고, 이것 때문에 쿵크라트와 타타르가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게이는 타타르와 싸워 명성을 높였고 이후 케레이트 부족의 토그릴(옹 칸)을 도와 칸의 자리에
올려놓기도 했으니 이때 토그릴 칸과 '안다'(의형제) 관계를 맺으니(카라툰의 맹약) 이것은 훗날
아들 테무진이 자립하는데 엄청난 자산이 되는데, 다만 쿠툴라 칸이 죽고 몽골이 분열된 시기고
예수게이도 칸은 못 된 것으로 보아 분열된 몽골을 다시 통일할 만한 역량은 없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느날 예수게이가 오난(오논) 강 절벽에서 매사냥을 하던 중 쿵크라트족의 울구누드 씨족의
여인 호엘룬이 남편이 될 메르키트족의 예케 칠레두와 함께 시집을 오는 것을 보게 되자...
예수게이는 형제 둘을 데려와 칠레두를 쫒아내고, 호엘룬을 납치해서 자기 아내로 삼았습니다.
메르키트족의 칠레두는 미녀가 많기로 소문난 올쿠누트 부족을 찾아 동쪽 초원까지 와서 후엘룬
에게 구혼했으니..... 초원의 전통에 따라 부모에게 선물을 준후 몇 년동안 처가댁 일을 해 준
뒤에야 딸을 신부로 데리고 고향으로 가는 길에 나섰는데 몇주나 걸리는 장거리 신혼이었습니다.
열여섯살 후엘룬은 황소가 끄는 검은 수레에 탔고 남편은 호박색 말을 탔다는데 오논강을
따라 초원을 가로지른후 메르키트의 땅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헨티산맥에 이르렀는데,
혼자 매사냥을 하던 예수게이는 절벽에서 신혼 마차를 보고는 집으로 급히 돌아가 두
형제를 데리고 납치에 나서자 칠레두는 자신이 따돌린 후에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후엘룬은 그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는 남편이라도 목숨을 살려야 하겠다는 생각에 “살아만
있으면 앞방마다 수레마다 처녀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거예요, 그 여자들을 나 대신에 후엘룬
이라 부르세요” 그러고는 저고리를 벗어 신랑에게 던지며 “이것을 가져가요, 내 냄새를 맡으며 가요”
예수게이와 저 여인에게서 태어난 아들이 테무진으로 훗날 칭기즈 칸인데 초원 문화에서는
냄새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니 다른 문화에서는 헤어질 때 끌어안거나 입을 맞추지만
초원 유목민들은 뺨에 입을 맞추는 것과 유사한 동작으로 서로 냄새를 맡는다고 합니다.
사람의 숨결과 독특한 체취는 사람 영혼의 일부로 여겨지니 던져준 저고리는 사랑의 정표였던 것
이며 그녀가 울부짖으니 몽골비사에는 “오논강이 물결치고, 숲과 골짜기가 울렸다” 라고 합니다.
후엘룬을 납치한 예수게이는 몽골족이지만 당시에는 미약한 보르지긴 씨족의 구성원이었고 더
강력한 타이치우드 친척들의 명령을 따르고 있었는데 납치범이 이미 아내(첩?) 인 소치겔
에 아들 벡테르가 있었으니 당혹스러웠는데..... 보르지긴씨족은 큰 초지가 없었던지라
마못, 새, 쥐, 물고기에 사냥으로 잡은 사슴이나 영양등 거친 음식을 먹어야만 했습니다.
호엘룬을 납치하고 얼마뒤 그녀는 임신했고 비슷한 시기 예수게이는 테무진 우게, 코리, 부타가 이끄는
타타르족을 전멸시킨뒤 부족을 델리운 볼닥지역에 주둔시켰는데 여기서 호엘룬의 아들이 태어나게
되었으니 예수게이는 패장 테무진 우게의 이름을 따서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테무진으로 지었습니다.
: 몽골제국의 역사는 양이 방대한지라.... 모두 12편 정도로 나누어 올리고자 하는데 오늘은 첫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