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이 있는 노래
-메기의 추억-
지금부터 150년 전 미국에 남북전쟁 끝나고 평화가 찾아올 무렵 ‘죠지 죤슨’ 이란 20세 된 젊은 총각 선생님이 헤밀턴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거기서 제자 ‘메기’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죠지 선생과 메기는 금잔디에 앉아서 흐르는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보면서 사랑을 속삭였지요.
그 후 그녀가 졸업한 후에 결혼을 하게 되며, 조지 존슨 교사는 미국 오하이오 주 클리브랜드 학교로 전근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신부는 폐결핵을 앓게 되며 사내아이를 낳고 세상을 떠납니다. 아내를 잃은 존슨은 지난 추억의 장소인 고향 언덕에 메기를 묻어줍니다.
그 후 캐나다"토론토대학"철학교수이며 시인이 됩니다. 그의 <maple leaves>시집 서문에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슬픔과 옛날 일을 회상하면서 시를 게제했는데 친구 "버터훨드"가 작곡하여 발표한 노래가 메기의 추억입니다.
1.옛날의 금잔디 동산에 메기같이 앉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메기 내사랑하는 메기야
동산 수풀은 없어지고 장미화만 피어 만발하였다
물레방아 소리 그쳤다 메기 내 사랑하는 메기야
2.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 같이 앉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메기 아 내 희미한 옛 생각
지금 우리는 늙어지고 메기 머리는 백발이 다 되었네
옛날의 노래를 부르자 메기 내 사랑하는 메기야
우리 학창 시절 음악시간에서 배운 누구나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노래가 됩니다. 젊은 여인이 유명을 달리한지가 150 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가슴속 깊이 그녀를 향한 사랑은 계속 음악을 따라 영원히 흐르고 있습니다.
ㅡ청라언덕과 동무생각 (思友)ㅡ
대구 동산동 제일교회 옆 선교사 박물관이 있는 곳이 청라 언덕이다. 청라언덕의 청라(靑蘿, 푸를(靑) 담쟁이(蘿)를 뜻한다.
계성학교를 다녔던 박태준 선생이 청라 언덕을 오르내리며 이웃에 있는 신명여고 여학생을 흠모하여 지은 시에 곡을 붙인 노래다.
박태준 선생이 마산 창신학교 시절 이은상(동무생각 작시) 선생에게 첫사랑이야기를 들려주고 이은상 선생이 가사로 만든 동무생각이다.
동무생각(思友)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 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 나리 꽃 향기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청라 언덕과 같은 내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더운 백사장에 밀려드-는 저녁 조수 위에 흰새 뛸 적에 나는 멀리 산천 바라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저녁 조수와 같은 내 맘에 흰새 같은-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떠돌 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서릿바람 부는 낙엽 동산 속 꽃진 연당에서 금어 뛸 적에 나는 깊이 물속 굽어 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꽃 진 연당과 같은 내 맘에 금어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뛰놀 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소리 없이 오는 눈발 사이로 밤의 장안에서 가등 빛날 때 나는 높이 성궁 쳐다 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 래부른다 밤의 장안과 같은 내 맘에 가등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빛날 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ㅡ솔베이지의 노래ㅡ
노르웨이 어느 산간 마을에는 가난한 농부 ‘페르귄트’와 아름다운 소녀 ‘솔베이지’가 살고 있었다. 둘은 사랑했고 결혼을 약속했다. 가난한 농부였던 페르귄트는 돈을 벌기 위해 외국으로 갔다. 갖은 고생 끝에 돈을 모아 10여 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다가 국경에서 산적을 만난다. 돈은 다 빼앗기고 살아난 페르귄트는 그리도 그리웠던 솔베이지를 차마 볼 수가 없어서 다시 이국땅으로 떠나 걸인으로 평생을 살다가 늙고 지치고 병든 몸으로 겨우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어머니가 살던 오두막에 도착해 문을 여니 어머니 대신 사랑하는 연인 솔베이지가 백발이 되어, 다 늙어버린 노인 페르귄트를 맞는다. 병들고 지친 페르귄트는 그날 밤 솔 베이지의 무릎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는다. 꿈에도 그리던 연인 페르귄트를 안고 '솔베이지의 노래'를 부르고 솔베이지도 페르귄트를 따라 죽는다.
ㅡ오빠생각ㅡ
일제강점기인 1925년, 어린이 잡지 <어린이>에 열두 살 소녀 `최순애`의 시가 실렸습니다. 서울 간 오빠를 그리워하며 지은 시 <오빠생각>이 입선한 것입니다. 그리고 수원에 살고 있던 최순애가 지은 시 오빠 생각은 멀리 경상남도 마산에 살고 있는 열다섯 살 소년 `이원수`의 가슴을 설레게 하였습니다. 이듬해 이원수도 어린이 잡지사에 ‘고향의 봄’이란 시를 보내 장원을 한다. 호감을 가진 두 사람은 7년간을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워간다. 그리고 10년 후, 이원수와 최순애는 러브스토리에 성공하여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순애 작사 박태준 작곡
1.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구두 사 가지고 오신다더니2.기럭 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ㅡ고향의 봄 ㅡ
이원수 작사 홍난파 작곡
1.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2.꽃동네 새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 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ㅡ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주오(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ㅡ
감옥에서 3년을 복역한 죄수가 형기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다. ‘애인에게 아직도 날 사랑한다면 집 앞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매달아 달라 했소. 만일 노란 리본이 없으면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지나가겠다고.’ 다 함께 가슴 졸이던 승객들은 마침내 노란 리본이 가득한 떡갈나무가 보이자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지른다.
ㅡ동숙의 노래ㅡ
1960년대 어려웠던 시절 궁벽한 시골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난 동숙은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채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
구로공단 가발공장에 취업 열심히 일해서 받은 월급을 동생들의 학비와 가사에 보태기 위해 생활비만 남기고 시골의 부모님에게 모두 보내 드렸다.
그녀의 꿈은 대학을 졸업한 뒤 국어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중앙 검정고시학원에 등록하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마침내 중학교 졸업자격을 얻었다.
그 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던 총각 선생을 사모하게 된다
순진하고 착하기만 한 동숙은 그의 자취방까지 찾아가 밥도 해 주고, 옷도 빨아 주는 등 뒷바라지를 하였다. 그러면서 그녀는 처음으로 한 여자로서의 행복을 느꼈다. 동숙은 그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쳤다. 몸과 마음, 그리고 돈까지..... 세월이 흐르면서 전자산업에 밀린 가발공장의 부도와 그로 인한 정리해고로 직장을 잃은 동숙은 학원비가 없어 학원에도 나가지 못하는 형편에 처하게 되었다.
친구에게 어렵사리 돈을 빌려 다시 학원에 등록하였다.
그러나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총각 선생이 약혼자가 있으며 곧 결혼식을 올릴 것이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자신은 단순히 그의 노리갯감이었을 뿐임을 깨달았다.
그 처절한 절망감과 한은 복수심으로 바뀌어 수업시간에 총각 선생이 칠판에 글씨를 쓰고 돌아서려는 순간 동숙은 앞으로 달려 나가 총각 선생의 가슴에 한 맺힌 복수의 칼날을 꽂았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어났다. 총각 선생은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동숙은 경찰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으면서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총각 선생의 안부를 더 걱정했다.
그녀는 스스로를 책망하면서 총각선생이 살아나기만을 빌고 또 빌었다.
총각 선생은 가까스로 살아났지만, 동숙은 결국 살인 미수죄로 형무소 복역을 하게 되었다.
비극적인 동숙의 사연은 당시 모 여성 주간지의 '사랑의 생활수기'에 실려서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동숙의 노래'는 동숙의 비극적인 사연을 토대로 작사가 한산도가 가사를 쓰고, 작곡가 백영호가 곡을 붙인 것이다.
이 노래는 1966년 2월 백영호가 발굴한 16세의 여중생 소녀가수 문주란은 이 노래로 가요계에 혜성처럼 데뷔한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 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 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 하오 막내아들 대학 시험 뜬 눈으로 지내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 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 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큰 딸아이 결혼식 날 흘리던 눈물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 하오 세월이 흘러가 흰머리가 늘어가네 모두가 떠난다고 여보 내 손을 꼭 잡았소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 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ㅡ송해의 아버지와 딸ㅡ
내가 태어나서 두 번째로 배운 이름 아버지 가끔씩은 잊었다가 찾는 그 이름 우리 엄마 가슴을 아프게도 한 이름 그래 그래도 사랑하는 아버지 세상 벽에 부딪혀 내가 길을 잃을 땐 우리 집 앞에 마음을 매달고 힘을 내서 오라고 집 잘 찾아오라고 밤새도록 기다리던 아버지 내가 시집가던 날 눈시울을 붉히며 잘 살아라 하시던 아버지사랑 합니다. 우리 아버지 내가 처음 너를 만났던 그날 아침은 산 까치가 너 가 왔다고 알려 주었지 너만 보면 온갖 시름 모두모두 다 잊고 힘든 세상을 헤엄칠 수 있었지 공든 탑을 쌓듯이 소중하게 키어온 사랑하는 딸아 내 딸아 징검다리 놓듯이 아낌없이 모아 온 내 사랑을 꼭 안고 살아라 네가 시집가던 날 아쉽고도 기쁜게 아버지의 마음이 었단다사랑 한다. 예쁜 내 딸아 아무리 바빠도 얼굴 한번 봅시다 만나서 차 한 잔 합시다 우리 사랑을 가슴에 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