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은 요즘 말로 '꽃미남'이란 단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화랑의 선발 기준은 귀족 자제 중 미소년이었다.
요즘같이 남성우월적인 사회에서 장차 국가의 지도층이 될(사관학교 정도) 남자들을
미모로 선발한다면 얼마나 충격적일까?
그러나 풍류를 즐기고 무예를 닦고 서로 어울렸다는 기록만 가지고 그들이
동성애를 했다는 단정은 힘들다.
<삼국사기>에는 진흥왕때 유명한 화랑 사다함은 무관랑이 죽자
식음을 전폐하고 슬퍼하며 굶어죽었다고 한다.
애인이나 배우자의 죽음을 따라 죽는 경우는 많아도 동료를 따라 죽는 경우는
거의 없다. 즉 무관랑과 사다함이 단순한 사이가 아님을 입증한다.
사실 여부의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에는 사다함의 어머니 금진과 무관랑이 연인 사이였고
사다함과 금진은 무관랑을 두고 삼각관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화랑세기>의 기록들이다.
'법흥왕이 영실공을 용양군으로 총애하였다.'
'구리지라는 귀족이 설성이란 용양신을 총애하였는데 그의 교태와 미모가 뛰어났다.'
'양도공이 흠순공(김유신의 동생)을 사모하여 그의 밑에 들어가 폐신이 되었다.'
'선덕여왕이 보량공의 군관에 대한 미모를 물어 화랑에 임명했다.'
필사본 <화랑세기>에는 남색(男色)을 지칭하는 용양(龍陽), 남자의 화장술과
미모(심지어 피부에 관한 묘사도 있음)에 관해 언급한 글이 너무 많이 보인다.
또한 이들의 관계를 '마치 연인이나 부부같았다'고 묘사하는데 이는 단순히
친구나 동료관계에선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다.
오죽하면 이익이 <성호사설>에서 화랑을 남색집단으로 매도했을까?
이것은 마치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문학작품에서 미소년을 찬양하던 글과 거의 흡사하다.
또한 그리스의 성인 남자와 소년과의 파트너 관계에서도 선배는 무예, 지식, 예절을 가르치고
소년은 성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화랑의 짱인 풍월주(風月主)가
청소년들을 '부제(副弟)'라 하여 후임병이나 제자 비슷하게 두고
가르친 것과 제도적으로 비슷하다.
무열왕의 전처(김문희 이전의) 보라의 아버지 보종공에 대한 기록을 보자.
보종공은 미남이지만 여자를 멀리하고 호림공과 동거하니 어머니 미실궁주가
아들을 유혹하는 여자에겐 포상하겠다는 공약까지 하였다.
양명공주가 보종공을 억지로 유혹하여 두딸을 낳았으나 곧 헤어진다.
오히려 염장공이란 키가 큰 화랑이 보종공을 섬겨 아내처럼 업고 다녔다고 한다.
보종공이 뭇 여자들을 제치고 남자들을 연인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신라인의 정신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향가 중에서도 이런 흔적을 찾을 수가 있다.
다음은 죽지랑이 죽자 그를 사모하던 득오곡이 올린 <모죽지랑가>이다.
지난 봄이 그리워
모든 것이 서럽게 시름하는데
아름다우신 얼굴에 주름살이 지려 하옵니다.
눈을 돌이킬 사이나마
만나뵙도록 바라옵니다.
낭이여! 그리운 마음 가시는 길에
다북쑥이 우거진 구멍에서 함께 잘 밤이 있으리이다.
남자들의 우정이라고 보기엔 지나친 애정과 애끓는 사연을 엿볼 수 있다.
이성애자 남녀의 연모시로 보아도 전혀 하자가 없는 노래가 아닌가?
특히 다북쑥은 무덤을 말하는데 '함께 잘 밤'이란 구절은 죽지랑과 함께 합장되고
싶다는 소망 또는 동침의 욕구라는 의혹을 가중시키고 있다.
36대 혜공왕은 본래 공주로 태어날 몸이었지만 부왕 경덕왕이 부처님에게 빌어 성별을
바꾸어 태어났다. 대사는 왕자가 태어나면 신라가 망한다고 경고했으나 경덕왕은 그래도
좋으니 왕자를 달라고 애원했다.
혜공왕은 어려서부터 여자옷을 입고 '비단주머니 차기' 등 여자들의 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아마 요즘으로 치면 트랜스젠더 하리수씨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본다.
그는 재위기간중 나약하고 정치에 무관심하여 후에 쿠데타로 선덕왕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신라는 이후 쇠망의 길을 걷는다.
38대 원성왕은 묘정이란 사미(동자승)의 미모에 탄복하여 그를 가까이 두었으며
심지어 당나라 황제까지도 묘정에게 반하였는데 알고보니 비결은 자라가 준 여의주에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묘정은 당시 "니, 내한테 반했나?"란 유행어를 달고
살지 않았을까?
51대 진성여왕도 미소년과 더불어 즐겼다고 하는데 화랑이 왕의 성별에 관계없이
'기쁨조' 역할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조선 왕들이 모든 궁녀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던 것과 비슷한 경우로 보인다.
출전: http://gondola21.com/technote/read.cgi?board=eye1&y_number=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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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산책
신라 화랑의 동성애 기록
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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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2.08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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