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나의 군복무. -당시에는 월남전 파병기간-(9)
♥. 그 시절에는 월남전 파병
그 시절 육군, 해군에 입대한다는 것은 월남전에 파병된다는 것을 각오해야 했다.
월남전 파병이라하여 1955년부터 1975년까지 계속된
베트남민주공화국(북베트남)의 민족적인 공산주의자와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베트콩)이
베트남공화국(남베트남)과 싸운 내전에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이 남베트남을 지원하기 위해 개입하고,
이에 맞서 중국과 북한도 비공식적으로 전투원을 파견하여
북베트남을 지원하여 국제전쟁이 수행중인때였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월남전 파병 처음에는 전혀 환경이 다른 날씨 음식 등등 난관을 무릎쓰고
더욱이 이국땅에서 목숨을 걸고 전쟁터로 향하는 일로 두려움이 앞섯다.
한국군 월남전 파병기간중
육군과 해병대로 입대하면 파병 될 수도 있었고,
공군은 병력, 물자 수송에 국한하였지 전투병력이 파견된바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 당시 미국의 동맹국으로
대한민국의 월남전쟁 파병약사를 대충 보면
1964년도 부터 공병을 담당한 비둘기부대,
의무를 담당한 십자성부대의 파월로부터
1965. 맹호(육군 보병, 기갑, 포병 등등)
1965. 청룡(해병대)
1966. 백마부대(육군, 보병, 기갑, 포병 등등)
1973년도 까지 파월
1975년도에 결과적으로
미국은 반전여론과 불투명한 전세에 휴전협정을 맺고 퇴각하지만 남베트남의 패전으로
남베트남의 사이공에 임시혁명정부가 수립되면서 20년간의 전쟁이 종료되었다.
★. 백과사전을 참고하면 이 전쟁으로
남베트남 민간인 사망자 수는 1,581,000 명 정도로 추정되며,
캄보디아 민간인 사망자도 700,000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또한 라오스 민간인 사망자 수도 50,000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미군 사망자는 대략 60,000 여 명에 이른다.
-. 대한민국에서 참전한 군인도 5,000 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미군이 사용한 무기와 고엽제 같은 화학약품으로 인해
피해자 본인과 자녀들이 장애를 입는 사례가 지금도 속속 집계되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2012. 8. 6(월). 청록실에서 붕촌 이 명 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