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일간의 겨울 유럽 여행
2009.01.27 41일째
산토리니 비하다
산토리니의 셋 째날 아침이다.
니키의 친구 레아는 산토리니를 떠나면서 자신의 자전거를 내게 빌려주었다.
사실 산토리니라는 섬은 렌트카를 이용하며 둘러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버스를 타고 다니기에는 노선이 많지도 않고 운행도 자주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걸어서 다니기에 너무 크고 둘러 볼 만한 마을이 군데군데 떨어져 있기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은 바퀴 4개 달린 오토바이를 많이들 렌트한다.
자전거를 손안에 든 난 마치 새 신발을 신은 초등학생처럼
산토리니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바람이 다 빠져있고 기어도 말을 듣지 않는
고물 자전거를 노래까지 불러가며 신나게 몰기 시작했다.
해변을 향하던 길
도중에 나온 해변가
화산으로 인해 모든 해변이 검은 모래로 뒤덮여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해변가를 구경하고 비하다를 가던 중 길에서 나귀를 타고 가는 아저씨를 만난다.
차나 자전거 대신 교통수단으로 애용하는 듯한
저 자연스러운 나귀위의 아저씨 모습이란.
시간도 문명도 모두 멈춰진듯 천천히 그렇게 가고 있었다.
나귀를 타고 가는 아저씨.
그리고 옆으로는 돌산과 초원이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어제 파란색의 절정을 보여주던 이아마을과는 달리 이 곳은
또 푸른 초원위의 한가로이 풀을 먹는 말이
반겨주고 있었다.
산토리니의 숨은 마을들.
그렇게 마을과 마을을 이동하다 보니 어느새
산토리니의 끝자락 비하다에 도착하게 되었고
저 멀리 작은 항구가 보이기 시작한다.
비하다의 항구
비하다라는 마을은 좌측에는 항구와 해변을 갖추고 있고
우측으로는 길게 절벽을 늘어뜨리고 있어서
넓은 바다와 함께 진풍경을 이끌어 내고 있는 곳이었다.
버스가 닿지 않기에 관광객들에게는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그 조용한 맛이 파도소리와 함께 묘한 조합을 이끌어 내고 있었다.
바다 앞에 마련된 벤치에 누워 모처럼 혼자 만의 낮잠을 취해 본다.
감탄했던 비하다 전경
햇빛 아래 누워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낮잠을 취하는 일,
참 별거 아니지만 난 이 낮잠을 늘 그리며 꿈꾼다.
3년 전 호주에서 일할 때 쉬는 날이면 늘 상 바닷가를 찾아가 누워서
하루 종일 혼자 놀곤 했던 추억들이 있어서 그런가,
이 햇살의 따사로움을 사랑한다.
비하다를 나와서 페리사 비치로 가던 중 이 작은 마을의 이정표에 한글이 보인다.
아무도 낙서하지 않는 이런 작은 마을에 몇 개 있지도 않는 이정표에 한글로 낙서를 하다니.
진짜 온몸이 오므라질 정도로 부끄럽다 못해 이 글쓴이를 증오하고 싶었다.
아니 정말 만나고 싶었다. 과연 이게 추억인지, 너희들만의 그림이더냐 .
산토리니 작은 마을 이정표의 한국어 낚서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정말이지 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바로 낙서다.
물론 여행 중 추억의 한 페이지로 흔적을 남기는 것 까진 좋지만
낙서도 그에 맞는 장소가 있고 또 그 낙서 하나가
그 장소, 마을, 도시의 이미지를 망가뜨릴 수 도 있는 점을 왜 생각 안 하는지.
주위의 돌을 주워 지워보려 했지만 더 더러워 지는 걸 막기 위해 결국 지우지도 못했다.
손만 더러워지고 마음만 상했다.
산토리니의 명물 페리사비치에 다 달으니 각종 숙박 시설 등이 들어서고 식당 가가 줄을 서있다.
여름에는 이 곳도 사람들로 붐빌걸 생각하니 참 아이러니하다.
겨울에는 저렇게 다 닫아있으니 말이다.
페리사 비치
이 곳도 마찬가지로 해변의 색깔이 검은색이다.
모두 화산의 영향으로 이렇게 되었다고 하니 재미있다.
그래서인지 심한 바람 때문인지 해변가의 바닷물은 이미 검게 물들어 있었고
나무 조각들과 부패한 물건들이 나도는 그런 비치였다.
여름엔 모르지, 혹시나 깨끗한 물이 들어올지도.
집으로 오니 니키의 미술작품들이 눈에 띄었는데
색종이를 잘게 자르고 그것들을 하나의 하모니를 이끌어 붙이고
문양을 내며 만들어 내는 작품이었다.
그렇지.
이런 곳에서 살면 예술적 감성들이 넘쳐나지 않을 듯 싶다.
l 현호의 여행 팁
l 비하다는 산토리니 섬의 남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서
버스가 닿지 않아 자전거나 차를 이용해야 갈 수 있다.
산토리니 지도.
이아마을은 북쪽 끝에, 시내인 피라는 중심에, 비하다는 남쪽 끝에 위치해 있다.
본 여행은 내일여행이 후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