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부시령에서 덕항산까지의 연결이 목적인 산행이라 '외나무골교 → 구부시령 → 덕항산 → 골말 갈림길 → 환선굴 전망대 → 골말'의 접속 구간 포함 6km, 2시간 30분 코스의 산행을 할 예정이었다. 남은 시간은 하산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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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항산[德項山]
높이: 1,073m
위치: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덕항산은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있으며, 약 12km 길이의 무릉천이 이 산에서 동으로 계곡을 따라 흘러 오십천에 합친다. 덕항산은 산보다도 "환선굴"로 더 유명하며 수많은 사람이 환선굴을 찾는다. 그러나 덕항산은 산세 또한 수려하다. 동남으로 펼쳐지는 병풍암, 거대한 암벽, 칼로 벤 듯한 암면, 하늘을 받치고 있는 듯한 우뚝 솟은 촛대봉 등 산세도 수려하고 특이한 절경을 이루고 있다.
덕항산은 능선으로 지극산과 나란히 하고 있다. 주차장에서 올려다보면 왼쪽이 덕항산, 오른쪽이 지극산이며, 이 가운데 해발 840m에 환선굴이 있다.
환선굴은 5억3천만년 전부터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종유석의 아름다움보다도 규모가 크고 웅대하다. 환선굴은 총연장 6.5km, 높이 30m, 폭 100m로 동양 최대를 자랑한다.
동굴 안에는 크고 작은 동굴 호수 10여개와 폭포 6개가 있어 우렁찬 폭포 소리와 함께 동굴을 관람한다. 둘레가 40m인 중앙광장의 옥좌대와 동굴 어귀의 만리장성, 그리고 지옥굴 안의 버섯형 종유폭포는 환선굴만의 독특한 구경거리다.
거대한 벽면을 뒤덮은 종유석들이 얼어붙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가 싶으면 넓은 광장이 펼쳐져 있고, 산호, 영지버섯, 만리장성에 달걀부침 모양까지 천태만상이다.
환선굴은 '97년 10월에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었다. 총연장 6.5km 주굴 3.2km로 6개의 동굴군 중 가장 규모가 큰 굴로 내부에는 기암괴석이 항아리, 호랑이, 소, 사람 등 다양한 형태의 석수와 종유석이 형성돼 있어 석회동굴의 아름다움을 고루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동굴 내 지형지물과 동·식물 집단 서식지의 보호를 위해 전체 6.5km 구간 중 1.6km만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있다.
환선굴은 '97년 10월 개방 이후 98년 말까지 14개월 동안 환선굴을 찾은 관광객 1백40만명, 입장 수익 50억원을 올릴 만큼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주차장에서 덕항산 오르는 길옆에 물방아와 굴피집이 한 채 있다. 굴피집은 지붕에 나무판자 대신 굴피(참나무 껍질)를 덮은 집이다
산 입구 도로 왼쪽에 있는 물방아는 "통방아", "벼락방아" 라고도 부른다. 물통에 물이 담기면 그 무게로 공이(찧는 틀)가 올라가고 그 물이 쏟아지면 공이가 떨어져 방아를 찧게 된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전형적인 경동지괴(傾動地塊) 지형으로 기암절벽과 초원이 어우러져 있으며 갈매굴, 제암풍혈, 양터목세굴, 덕발세굴, 큰재세굴 등 석회동굴이 많이 소재하고, 대이동굴 군립공원(1996년 지정) 구역 내인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약 4~5억년 전에 이루어진 길이 6.9㎞, 천장높이 30m에 이르는 동양 최대의 동굴인 환선굴(幻仙窟: 천연기념물 제178호)이 유명하다. - 한국의 산하
백두대간 산행은 까만 소가 인증하듯이 내가 선정한 거점 산행으로 해오다가, 2022년 봄철 산불 통제, 입산 금지 기간에 백두대간 연결로 바꿔 지금까지 5번 산행하고 이번 번개 산행이 여섯 번째다. 백두대간 산행을 처음 하는 게 아니라, 거점 산행을 해오다가 연결 산행으로 바뀌면서 문제가 될 건 없으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다면, 의도치 않게 중복 구간이 많다는 거다. 사실 거점 산행에서 연결 산행으로 바꾼 이유 중 하나가 이미 거의 모든 거점 산에 오른 후라 오를 거점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중복 구간이 조망이 좋다거나, 산을 오르는 재미가 있는 게 아니라는 게 정말 문제다. 만약 그랬다면, 소위 인기 명산에 이름을 올렸겠지. 그저 무턱대고 앞만 보고 걷는 구간이 대부분이라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서 대간꾼이 거의 달린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그렇게 앞만 보고 빨리 걷는 걸지도!
그렇다고 한번 하겠다고 결심한 백두대간 연결을 중지할 수는 없으니, 최고의 전략은 중복 구간을 최소화하는 거다. 해서 지금까지 내가 갔던 구간을 정리해 표를 만들고 빈 구간을 최소한의 중복으로 연결하기 위해 백두대간 산행을 진행하는 각 안내산악회를 찾아다니며 그들의 산행계획을 일일이 확인해 거기에 채워 넣었다. 그렇다고 해서 중복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런 구간 중 구부시령에서 댓재와 댓재에서 백복령 구간도 골칫거리 중 하나다. 이 두 구간은 덕항산에서 연칠성령까지 2017년 10월 봉 감독과 2박 3일 일정으로 산행을 즐겼다[산행기]. 당시 2박 3일이라는 충분한 시간이 있어 마음껏 즐긴 산행이라 그저 달리기 위해 다시 간다는 건 별 의미가 없다. 그런데 백두대간을 연결하려면 구부시령에서 덕항산까지 1.1km, 연칠성령에서 백복령까지 15km 정도만 이어주면 된다. 당연히 그렇게 딱 떨어지게 다니는 산악회는 없다. 울며 겨자 먹기로 산악회에 맞춰 구부시령에서 댓재까지, 댓재에서 백복령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다. 와중에 댓재에서 백복령은 무박으로 거의 30km에 이른다. 안타깝게도 백두대간 연결에는 이렇게 중복되는 구간이 13개에 달한다!
안내산악회의 산행계획은 대략 2개월에서 3개월 사이라, 그 이후의 산행을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그렇다고 구간이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어쨌든 그렇게 확인하는 중 한 산악회 게시판에서 평일에 덕항산, 환선굴 산행 계획 공지를 확인했다. 산행이라기보다는 관광에 가까운. 외나무골교에서 출발해 환선굴로 하산하는 계획이다. 이중 백두대간은 구부시령에서 자암재까지다. 나는 구부시령에서 덕항산까지 간 후 골말 갈림길에서 하산하면 된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막걸릿잔이나 기울이면 딱이다. 평일이라는 걸 빼면 다시 보기 힘든 산행이라 일단 회비를 입금하고 버스에 한자리를 배정받았다. 여의찮으면 닥쳐서 취소하기로 하고. 그 산행 일이 5월 26일 화요일이다. 다행히 프로젝트를 쉬고 있어 평일에 산에 가는 가능하다. 그런데, 처음에는 자암재까지 가지 않고 덕항산에서 골말로 내려갈 생각이었는데, 자암재에서 환선굴까지의 코스는 초행이라, 이번 기회에 가보는 것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1년에 백만명 이상이 찾는 관광지라는 환선굴도 궁금하고.
처음 구부시령부터 덕항산까지의 백두대간 연결을 끝내고 골말로 하산할 생각이었을 때는 준비물은 생수 한 통이면 충분했었다. 그런데 자암재까지 가서 환선굴 방향으로 내려가기로 했으니, 평소 산행과 다름없이 점심과 비상식 등을 준비했다. 와중에 산행 당일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는 예보라, 우산과 의자도 챙겼다. 그나마 다행은 비 소식에 취소자가 많아 한때 신청자가 간신히 성원을 채운 14명에 불과할 때는 최소자가 더 나올까 봐 가슴을 졸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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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기상해 배낭에 레인 커버를 씌우려 아지트로 가기 위해 밖으로 나오니, 간밤에 비가 내린 건 맞는데, 예보와는 달리 5시가 조금 지난 현재 비가 내리고 있지는 않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봐도 비가 더 올 거 같지도 않고. 해서 레인 커버 씌우는 건 없었던 걸로 하고, 현지 덕항산의 예보를 확인했다. 변함없이 12시까지 비라, 레인 커버를 포함 의자, 우산 등은 그대로 들고 가기로 했다. 누룽지로 아침을 먹고 배낭을 둘러메고 나와 양재역에 도착한 시각이 5시 40분이다. 평일이 공휴일보다 2분 늦다. 역시 평일이라, 양재역 구내의 청과물 가게는 한산하다. 휴일이야 등산객을 상대로 김밥이나 떡을 팔 목적이라는 건 알겠는데, 평일에 새벽같이 여는 이유가 뭘까?
6시 45분경 양재역 12번 출구로 나가 산악회 버스가 정차하는 국립외교원 앞으로 가자, 평일임에도 30여 명이 넘는 등산객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6시 50분이 조금 지나자 영남알프스로 떠나는 버스를 선두로 버스가 도착하기 시작해 7가 다 된 시각에 덕항산으로 가는 차가 도착했다. 옆자리가 비었으니, 당연히 모든 걸 들고 버스에 타서 배낭을 빈 옆자리에 두고, 슬리퍼로 갈아 신는 등 가장 편한 자세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도 안 오고, 읽을 만한 책도 없고, 유튜브도 보고 싶지 않은, 지난밤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만사가 귀찮아 멍때리고 창밖만 보고 있는데, 버스가 휴게소로 들어가고 있었다. 매주 산악회 버스를 이용해 산에 다니니, 이제는 산의 위치를 보면 대략 어느 휴게소에서 쉬는지 아는 수준이 됐다. 예상대로 치악 휴게소다!
휴게소에서 할 일은 없으나, 신선한 공기가 필요해 버스에서 내려서 주변을 둘러보니, 여기 또한 많은 비가 내린 흔적은 있으나, 비가 오지는 않고 있었다. 산으로 올라가고 있는 안개로 봐서는 좀 전까지 내린 거 같지만. 어쨌든 휴게소에 내렸으나. 급하지는 않은 볼일을 보고 버스에 타려고 보니, 버스가 없다. 뭐지 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있었다. 해서 어쩔 수 없이 휴게소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중앙고속도로 개통 기념비와 비에 젖은 꽃을 사진으로 남기고 버스가 제자리로 돌아온 걸 확인하고 버스에 탔다. 휴식이 끝나고 버스가 출발하자 인솔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이번 산행에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한 얘기를 시작했다.
먼저 이번 산행의 백두대간 코스인 구부시령에서 자암재까지는 까만 소 인증 장소가 두 곳인데, 구부시령과 덕항산이다. 고로 인증이 필요한 대간꾼은 그 두 장소에서 인증을 남기면 되는데, 문제는 예수원에서 구부시령으로 올라가다 보면 이정표가 없는 서너 개의 갈림길이 나오니, 구부시령은 무조건 오른쪽이라는 거. 구부시령에서 덕항산 방향으로 봉우리에 올라가면 기둥에 '구부시령'이라 적힌 이정표가 있으나, 그건 인증 대상이 아니라는 거. 끝으로 다시 덕항산 방향으로 가면 '댓재'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는데, 거기서 직진하면 안 되고 무조건 좌회전하라는 거 세 가지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등산로 난이도 최하이나, 자암재에서 환선굴까지 하산길은 대단히 험난하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하산 길목에 있는 천연기념물 환선굴을 한 바퀴 도는데 40분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니 빠른 등산객은 환선굴에 들르는 걸 추천하고 혹시 뭔가를 먹을 생각이라면 매표소 밖에는 없으니, 안에서 먹고 나오라는 했다. 끝으로 산행에 주어진 시간은 5시간 30분으로 16시 30분에 서울로 출발한다는 말로 설명을 마쳤다.
이번 산행 코스의 거리가 10km 정도에 불과하고, 산행에 주어진 시각이 5시간 30분! 이미 2017년 덕항산에서 자암재까지 즐긴 경험에 의하면, 대장 얘기대로 난이도 최하, 지난 4월 10일 예수원에서 구부시령까지 올랐을 때도 별 어려움이 없었으니, 평소 대간을 달리듯 달리면 3시간 이내에 산행을 마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남는 시간이 2시간 30분가량, 1시간 30분은 하산주를 마시는 데 쓰면 나머지 한 시간은? 그것도 하산주에 쓰면 대낮부터 취해서 문제가 많다. 해서 정말 내가 언제 다시 여기 올지 모르니, 천연기념물인 굴 구경이나 하기로 해, 환선굴 입구까지의 도착 목표를 두 시로 잡았다. 3월에 구부시령에 가기 위해 달렸던 익숙한 경치가 보이는 순간 등산화로 갈아신고 끈을 조인 후 비가 내린 후라 미니 스패츠를 착용했다. 비가 내리지 않으니, 배낭에서 우산을 꺼냈다. 의자는 점심 먹을 때 필요해서 두고. 모든 준비가 끝나고 조금 있으니, 버스가 지난번과 같은 곳에 정차했으나. 인솔 대장이 도로를 따라 조금 더 가면 다른 다리가 있다며 기사를 재촉해 버스는 300여 미터를 더 가서 정차했다. 사실 시내버스 정류장이 있는 이 나무다리가 예수원으로 올라가는 외나무골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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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 정류장이고 길이 좁아, 다른 차량에 방해가 되지 않게 승객 모두가 일단 짐을 들고 내려, 간이 버스 정류장에서 산행 준비를 했다. 이미 버스 안에서 준비를 마친 나는 폰과 스마트 워치의 등산 앱이 정상 작동하는 걸 확인하고 바로 산행을 시작했다. 2시 이전에 사실상의 산행을 마치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했다. 가뜩이나, 11시 정각 도착을 기준으로 마감 시간을 산정했으나, 계획보다 11분이 늦은 11시 11분에 들머리에 도착해 산행 시각이 그만큼 줄었다. 외나무골교를 지나자, 원하든 아니든 내가 선두로 가고 있었다. 예수원으로 향하는 중에 현지의 해발 고도가 궁금해 등산 앱을 확인해 보고 깜짝 놀랐다. 해발 725m다! 등산 앱의 고도가 실제와 15~20m가량 높게 나오는 걸 고려해도 이 동네 해발이 700m가 넘는다는 거다. 그래서 지난 4월 10일 산행 때도 거의 해발 1,000m에 육박하는 구부시령에 올랐음에도 큰 어려움을 못 느낀 거다.
외나무골교에서 구부시령까지는 3주 전인 지난 4월 10일 5번째 백두대간 연결인 구부시령에서 삼수령까지 산행[산행기]에서 이미 한번 올라갔던 코스라 새로울 건 없어, 주변의 야생화를 감상하며 오르는데, 예수원으로 향하는 길목 한쪽에 서 있는 택시를 보고 나라도 택시를 이용한다면 예수원까지 올라오겠다고 생각하며 지나치려고 보니 이 지역이 아니라 서울 개인택시다! 그리고 주차 상태를 보니, 금방 내려갈 차가 아니다. 그럼 등산객이 여기까지 택시를 타고 온 게 아니라, 기사가 등산객이란 얘기다. 물론 승객이 있다면 그도! 그리고 지난번에는 초면이라 서둘러 올라갔으나, 이번에는 등산로의 상태를 아는 만큼 예수원을 자세히 살펴볼 생각이었기에 일단 모든 걸 카메라에 담았다. 가장 눈길을 크는 건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라 레 25:30(中)"이라고 쓴 비석이다. 자기 걸 뺏기고도 침묵하는 야훼는 역시 대인배라고 생각하며 11시 25분에 예수원 앞 주차장에서 포장도로가 끝나고 등산로가 시작되는 곳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등산의 시작이다.
치매기가 있어 기억이 오락가락하나, 3주 전 등산로의 모습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스스로에 놀라며, 평소라면 버스에서 내릴 때 이미 벗었을 바람막이를 비 온 뒤라 추울 것에 대비해 입고 올라왔는데, 예수원까지 올라오는 길의 경사가 보통이 아니고, 그 이후 시작되는 등산로 또한 급경사, 와중에 습도도 높아 땀이 비 오듯 쏟아져 이 상태로는 더 올라갈 수 없어 급경사 끝에 멈춰서서 바람막이를 벗어 배낭에 넣었다. 와중에 뒤따라오던 등산객이 나를 추월해 가고. 결과적으로 그 한 번의 멈춤이 사실상의 산행 종료인 환선굴까지 유일하게 배낭을 벗고 잠깐 쉰 시간이다. 하다못해 갈증 해소도 걸어가며 배낭 옆주머니에서 물통을 꺼내서 해결했다. 이동 중 손을 뒤로 뻗어 물통을 꺼내고 넣는 연습을 많이 한 덕이다. 그렇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올라가자, 올해 처음 보는 엘레지가 보였다.
등산로 주변의 얼레지와 이름 모르는 야생화를 카메라에 담으며 올라가 11시 49분에 구부시령 이정표가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11시 50분에 올 4월 두 번째로 구부시령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등산객이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표정인데, 망설이는 걸 보며, 이정표를 사진으로 남기고 딱히 인증이 필요한 게 아니라, 바로 덕항산을 향해 왼쪽의 봉우리로 올라갔다. 추측건대 내가 인증을 찍어 달라고 부탁하기를 바랐던 게 아닐까? 인증이 필요하면 그냥 부탁하면 찍어줬을 텐데, 그 사람도 재수 없게 인증 장소에서 처음 만나 등산객이 까만 소 인증에는 관심이 없는 인간이니. 가랑비를 맞으며 옆 봉우리 정상에 도착하자 인솔 대장이 얘기했듯이 기둥에 '구부시령'이라 적힌 이정표가 있었다. 그런데, 이정표를 자세히 보니, 아래 고개에 설치하려고 만들었는데, 설치하는 사람이 위치를 혼동한 거 같다. 고개와 봉우리의 개념을 잘 모르는 사람이 아닐까? 하긴 고개를 부르는 말도 재, 령, 치, 천, 현 등 많으니.
제 자리를 못 찾은 이정표를 떠나 평지나 다름없는 등산로로 계속 전진하자, 인솔 대장의 이정표 관련 주의 대상 두 번째가 나타났다. 정확히 직진하는 길을 막아서 있는 이정표에는 댓재는 좌로 내려가라고 표시되어 있어 슬쩍 보기만 해도 직진하는 등산객은 없을 거 같은데, 대장이 주의하라고 경고하는 걸 보면 생각 없이 앞만 보고 간 등산객이 있었던 듯! 오히려 이정표가 없었으면, 직진했을 거 같은 곳을 떠나, 12시 11분에 덕항산 정상에 도착했다. 백두개간 구부시령과 덕항산이 연결되는 순간이다. 2017년 10월에 왔을 때는 정상석이 없어 백두대간 지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까만 소가 덕항산을 인증 대상에 넣었을 때 당연히 그 이후 정상석을 설치했을 거로 생각했는데, 없었다. 정상석 비슷한 게 이정표 기둥에 비스듬히 서 있었으나, 정상석이 아니라 이정표에 불과했다. '청라 산악회'의 그 비석을 포함 덕항산 정상에는 총 8개의 이정표가 있었다. 무척 중요한 봉우리다! 그렇다고 8개씩이나. 그런데, 2017년 사진과 비교해 보니, 백두대간 지도, 소개문이 그 이후 정비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현재는 알아볼 수 없었다. 2017년이 백두대간의 전성기였나?
카메라를 돌 위에 두고 타이머를 이용해 여기저기서 인증을 찍은 후 400m 거리에 있는 쉼터로 출발했다. 내 기억으로 그 쉼터는 골말에서 올라오면 바로 있는 고개로 2017년 당시에는 그 쉼터에 배낭을 두고 덕항산을 다녀왔었다. 덕항산 정상에서 고개로 하산해 12시 20분에 오른쪽 아래로 철계단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골말 삼거리다. 그리고 그 조금 아래에 우리가 배낭을 두고 갔었던 쉼터가 있다. 그런데, 이정표의 상태는 백두대간 관리를 전혀 안 하는 거 같은데, 쉼터가 깨끗한 걸 보면 그게 아닌 거 같고, 혼란스럽다. 2017년에는 쉼터에 풀숲이 울창해 그 속에 값비싼 카메라를 감추고 덕항산을 왕복했는데, 현재는 카메라를 감출만한 풀숲이 안 보인다.
짙은 안개로 3m 앞이 흐릿한 상태로 뭘 조망하고 구경하고 할 분위기가 아니라, 애초 목표가 2시까지 하산인 걸 무시하더라도 딱히 할 일이 없어 묵묵히 앞만 보고 가야 했다. 고로 걸음이 빨라지는 건 당연하고. 그렇게 환선봉을 향해 가는데, 머리 위로 밧줄이 지나가고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한 안내문이 달려있다. "등산로 유도선"이란다. 대간꾼이 길을 잃는 걸 방지하기 위한 용도인가? 물론 다른 곳으로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함도 있을 거고. 별 필요가 없는 유도선과 나란히 달리다 보니, 이제 막 새싹이 돋은 등산로 옆의 철쭉이 사열하듯 나란히 달리는 모습이 볼만해 동영상으로 찍으며 갔다. 그 새싹의 터널을 지나 100여 미터를 가자 지각산 환선봉이다. 물론 두 번째 방문이다.
2017년에도 그랬지만, 덕항산에도 없는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을 찍었다. 물론 넓적한 돌 서너 개를 탑처럼 쌓고 그 위에 카메라를 두고 타이머를 이용했다. 인증을 남긴 후 환선봉을 떠나 이번 코스 백두대간에서 이름을 가진 마지막 지표인 자암재로 향했다. 이정표에 의하면 그 전 700m 지점에 헬기장이 있다는데 기억에 없다. 당연히 환선봉에서 자암재의 고개로 가는 길이라, 하산이라는 건 알고 있었으나, 등산로의 가파름이 생각 이상이다. 분명 한 번 갔던 길인데, 이 정도로 가파른 길이었나? 자암재 전 고개에 도착하자 상식적으로 직진해야 할 거 같은데, 이정표는 아래를 가리키고 있었다. 앞에 있는 봉우리를 우회한다. 넘어가는 길이 좋지 않나? 어쨌든 시키는 대로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데 그 길목 좌우가 얼레지 군락이다. 이 규모의 군락은 과거 대덕산에서 본 이후 처음이다. 해서 당연히 사진 몇 장 찍고 가야 했다.
저 앞 자암재로 생각되는 고개를 넘어가는 구름을 사진을 남기고 계속 가자, 등산로 유도선이 등산로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숏다리인 내 가슴 높이로. 처음 그걸 본 순간, 어두운 밤이었다면 그 유도선에 걸려 대형 사고가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도선이 아니라 교수대다. 그런데 거기만이 아니다. 교수형을 면하고 내려가자 저 아래로 널찍한 고개가 보인다. 자암재다. 아니 자암재라 생각했다. 그러자, 그럼 헬기장은 하고 의문이 들었다. 아까 이정표가 있던 고개가 헬기장이었구나 라고 자신을 설득하고, 도착해 2017년 10월 우리가 간이 텐트를 설치했던 나무를 찾아봤으나 없었다. 뭔가 이상했다. 그럼 이정표는 하고 찾아보니, 있다. 헬기장이다. 애초 헬기장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이유가 환선봉에서 고작 700m 왔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어서였다. 느낌은 최소 1.5km 이상인데, 거기다 자암재로 가기 위해 봉우리를 하나 더 넘어야 한다는 것도 받아들일 수 싫었기 때문일 거다. 그런데, 유도선인지 교수대인지 모를 그 밧줄도 헬기장 직전에서 끝났다. 도대체 뭘까?
헬기장을 떠나 작은 봉우리를 넘자 익숙한 모습이 나타났다. 숲이다. 진짜 자암재다! 우리가 텐트를 쳤던 나무와 고생해서 떠왔던 식수를 걸어 놓았던 이정표도 그대로다. 2017년 기억을 더듬으면 잠깐 주위를 둘러보고 환선굴을 향해 출발했다. 그 시각이 1시 22분이다. 물론 점심 전이다. 현재 결과만 놓고 보면 배낭을 메고 올 필요가 없었다. 배낭에 든 모든 건 그대로 집으로 들고 간다. 비록 인솔 대장이 자암재 하산 길 상태가 나쁘다고 했으나, 5년 전과 비교하면 무언가 달라졌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환선굴과 하산주를 위해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했다. 2017년에는 하산이 아니라 500m 아래에 있는 ‘사이다’ 약수에서 식수를 떠 오기 위해 봉 감독과 둘이 약수까지 왕복했었다.
5년 전과 비교해 등산로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손을 안 댔으니, 당연히 더 나빠졌다. 무언가 정비를 했다면, 밧줄을 교체한 정도다. 은근히 뒤에서 따라오는 일행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대간을 달릴 정도면 큰 사고는 없겠으나, 10km에 불과한 코스에 5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을 책정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꽤 많이 내려왔다고 생각하는데 약수가 보이지 않는다. 혹시 산사태로 사라졌나 주변을 살펴보니, 산사태의 흔적은 있는데 5년 전에도 그랬다. 어쨌든 이 소식을 봉 감독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정표가 보인다. 약수터 갈림길 이정표다. 약수터로 가서 보니, 명패는 그대로 인 거 같은데, 글이 안 보인다. 그리고 약수의 위치도 조금 변한 거 같고. 물맛은 변함이 없는지 마셔보고 갈림길로 돌아가 환선굴을 향해 내려갔다. 여기서부터는 초행이다. 2017년에는 약수를 떠서 자암재로 돌아갔기 때문에.
사이다 약수를 떠나 3분가량 급경사의 등산로를 내려가자 제2 전망대라 쓴 이정표가 있었다. 짙은 안개로 5m 전방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전망대라는 게 의미가 없으나 일단 올라가 보기로 했다. 예상대로 전망대의 끝 외에는 보이는 게 없지만, 안전시설 없이 조금만 실수하면 대형 사고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전망대로 올라오며 아니 굳이 여기다 이런 시설을 한 이유가 궁금했는데, 막상 올라와서 보니, 이해됐다. 이 시설이 있든 없든 나 같은 인간은 올라왔을 거고, 아차 하는 순간 사고가 생길 수 있으니, 아예 안전시설을 해 놓고 전망대로 활용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여기가 제2 전망대니, 제1 전망대가 아래 있다는 얘기라, 거기는 어떨까 궁금해하며 다시 하산을 시작했다. 버스에서 인솔 대장이 전망대 옆에 자연 굴이 있는데, 바로 굴로 들어가지 말고 전망대에 갔다가 가라고 강조했는데, 지금은 전망대가 아니라, 그 굴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저 아래로 제1 전망대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생각되는 게 보이는 순간 자연 굴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보이지 않았다. 해서 전망대 조금 아래에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일단 전망대로 올라갔다. 역시 보이는 건 제2 전망대와 다를 바가 없었다. 예상했던 일이라 미련 없이 전망대를 떠나 등산로를 따라 굴을 찾으며 내려가니, "천연동굴" 이정표가 있었다. 그런데 그 주변 상하좌우를 아무리 찾아봐도 굴이 없다. 굴을 찾지 못해 사기당한 기분으로 그 자리를 떠나며 앞을 보니 거대한 돌기둥이 안개 사이로 희미하게 보여 사진으로 남겼다. 화창한 날 이 구간의 전망은 설악산 못지않을 거라 생각하며 계속 내려가는데 앞에 위로 올라가는 철계단이 나타났다. 계속 급경사의 내려가는 길이라 생각했는데,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에 한숨을 쉬고 계단으로 올라갔다. 와중에 등산로 못지않게 급경사라 사람을 지치게 하는 계단으로 올라가는데 갑자기 계단 끝에 굴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대로다. 굴이 보인다. 그리고 내 예상을 벗어났다. 지금까지 굴이라고 하면 두 바위 사이나, 지붕을 얹듯이 두 바위 위에 다른 바위가 올라앉은 게 대부분이라 천연굴이라는 이 굴도 그런 종류일 거로 생각했는데, 거대한 바위에 뚫린 구멍이다. 마치 사람이 뚫은 것처럼. 해서 계곡으로 내려가도 될 등산로를 굳이 철계단을 설치해 위로 인도한 거다.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계단 정상에 도착해 인솔 대장이 강조했듯이 먼저 굴로 들어가지 않고 그 옆 전망대로 갔다. 그리고 비록 안개로 희미하게 보이지만, 왜 인솔 대장이 여기를 강조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안개가 아쉬울 뿐이다. 전망대에 있는 그림에 의하면 골말 등산로와 덕항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인데. 아쉬움을 뒤로 하고 전망대를 떠나 굴로 들어갔다. 먼저 생각보다 거대함에 놀랐다. 그리고 바닥에 흩어져 있는 돌덩이들이 위에서 떨어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섬뜩해 위를 쳐다봤다. 뭐가 떨어질지 몰라. 굴로 등산객을 인도할 정도면 떨어질 만한 건 다 손을 봤겠지만.
동굴을 나오자 옆에 또 전망대가 있는데, 뭐 올라가 봐야 보이는 게 뻔해 무시하고 환선굴을 향해 내려갔다. 그 등산로 역시 지금까지와 다름없이 급경사 너덜에 가끔 흙바닥이 보이나, 비에 젖어 미끄럽기 그지없어, 엉덩방아 찢는 걸 피할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은 탁월한 순발력으로 손을 먼저 짚에 엉덩이 전체에 진흙 칠하는 걸 면했다는 거. 다시 급경사의 철계단을 내려가 철 다리를 건너자, 저 아래로 위로 향하는 계단이 보였다. 그리고 내려가는 등산로는 잠겨있고. 이 상태로 봐서는 우리가 불법 등산을 한 거 같은데. 철책을 넘어 들어가자 잠겨있는 등산로 입구에 흐르는 물을 받아 놓은 게 있었다. 등산로 상태를 익히 아는 환선굴 관리업체가 등산화에 묻은 진흙을 씻으라고 설치한 거로 보여 의도대로 등산화 바닥을 씻었다.
환선굴은 등산로 입구에서 위로 170m를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것에 한숨이 나왔으나. 언제 여기를 다시 올지 몰라 일단 환선굴 내부를 탐험하기로 하고 환선굴을 향해 빠른 속도로 계단을 올랐다. 그런데 환선굴을 향해 올라가는 옆으로 요란한 물소리가 들려 아래를 내려다보니 울창한 숲 사이로 폭포가 보였다. 지도에서 봤던 환선굴 아래 폭포다! 대단히 궁금했던 폭포인데, 숲에 가려 전체를 보지 못하는 아쉬움에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잘 보이는 곳을 찾았으나, 없었다. 그나마 전망대 비슷한 게 있었으나, 간신히 폭포가 떨어지는 지점만 볼 수 있어 그걸 동영상으로 찍고 계속 올라가자 모노레일 승차장인데, 무인이다. 그리고 승객 서너 명이 차가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고. 무엇보다 평일임에도 환선굴 관광을 온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모노레일 승차장 바로 앞에 거대한 동굴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첫모습에 입을 쫙 벌어졌다.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굴에서 음습하고 서늘한 바람이 쏟아져 나와 약간 춥기까지 했다. 해서 대기자용 의자로 보이는 곳으로 가 배낭에서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배낭을 의자에 둔 채 카메라와 폰만 들고 굴 입고 매표소로 보이는 곳으로 갔다. 그러자 관리자가 나와 표를 달라고 해서, "표요?"하고 놀란 표정을 짓자 어디서 왔냐고 물어 위에서 내려오는 중이라고 하자, 그럼 4,500원을 달라고 해 그 돈을 주고 굴로 들어갔다. 그때 시각이 2시 12분으로 목표보다 12분 늦었다.
굴 내부는 더 놀라운 게 지금까지 상상했던 모든 걸 초월했다. 글로 쓰는 것도 힘들다. 곳곳에 폭포고 못이다. 어두워 사진은 찍어봐야 잘 나오지도 않고,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봐야 한다. 미녀상 옆 폭포는 또 다른 굴에서 떨어지고 있었는데, 그 굴에 들어가면 또 어떤 모습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환선굴 소개 글을 보면 아직 전부 다 탐험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어쨌든 관광객이 갈 수 있는 모든 구간을 도는데, 1시간 정도 걸린다는 인솔 대장의 말은 굴을 과소평가한 거라는 걸 알았다. 정말 제대로 보려면 2시간은 잡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그리고 굴에서 길을 잃는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고.
감탄을 연발하면 빠른 속도를 환선굴을 한 바퀴 돌고 나와 시계를 보니, 2시 51분이다. 12분에 들어갔으니, 39분 걸렸다. 굴이라 당연히 GPS, 통신 다 불통이라, 트랙을 기록 중이던 등산 앱에는 그 시간이 사라졌다. 물론 그 거리도. 한 시간 반 동안 하산주를 마시려면 서둘러 내려가야 해서 바로 배낭을 둘러메고, 모노레일을 타고 갈까 잠깐 고민하며 승차장을 보니, 세 명의 관광객이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 올지 모를 차를 기다리기보다는 바로 내려가는 게 빠를 거라는 생각이 들어 주저 없이 올라왔던 계단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물론 내려가다가 울창한 숲에 가려 보지 못한 폭포의 하단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기는 걸 잊지 않았다. 식당을 찾으며 내려가다가 모노레일이 출발하는 승차장을 보니, 모노레일이 대기 중이다. 분위기로 봐서 올라갔다 내려온 거 같지는 않고 만약 저걸 기다리고 있었다면 낭패를 볼 뻔했다.
3
환선굴 모노레일 승강장을 지나나 바로 식당이 나타났다. 점심 시각이 지난 시간이라 걱정하며 식당으로 들어가자 오늘 영업 안 한다고. 안주가 딱 내가 원하는 건데. 2017년에 이어 통방아를 사진으로 남기고, 계곡을 따라 내려가며 보이는 식당마다 문을 두드렸으나, 다 영업을 안 한다. 하산주를 위해 1시간 30분이나 일찍 내려왔는데, 낭패다. 거의 포기 상태로 버스에서 뭘 할까 고민하며 마지막 희망을 품고 한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TV가 혼자 떠들고 있는 게 영업을 하는 거 같아 목을 놓아 주인장을 불렀으나, 대답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식당을 나와 내려가려는 데, 식당 옆에서 삶은 옥수수와 떡을 팔고 있는 노점이 있어 식당 영업 여부를 물어봤다. 그러자,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하죠. 주방에 있을 텐데요!” 한다. 해서 다시 식당으로 들어가 불러봤으나, 없다. 실망해서 다시 나오는데, 계곡을 앞치마를 하고 계곡의 다리를 건너오는 여성이 아무래도 식당 주인장 같아, 노점에게 눈으로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인다. 해서 그 여성에게 큰 소리로 "영업합니까?"하고 물어보니, 한다고.
신이 나서 식당으로 들어가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차림표를 봤으나. 소주를 마시고 싶은데 적당한 안주가 보이지 않았다. 해서 일단 도토리묵무침을 주문하고 그것만 주문하는 건 미안해 청국장을 주문했다. 그리고 냉장고로 가 술의 종류를 확인했다. 소주는 처음처럼, 막걸리는 없고, 2L 더덕동동주다. 처음처럼은 마시고 싶지 않아서 한참 음식을 만드는 주인장에게 혹시 막걸리는 없냐고 물었다. 동동주가 막걸리라는 답이 돌아와, 양이 많아서 그렇다고 하자 그럼 반만 주겠다고 해서 동동주를 달라고 했다. 조금 있다가 동동주와 함께 나온 묵무침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다. 그리고 이어 나온 청국장과 반찬. 깔린 반찬이 다 먹음직스럽다. 애초 내게는 과하다는 걸 알고 주문했으나 과해도 너무 과하다.
청국장의 진하기는 거의 강된장 수준이라,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남기면 안 될 거 같아 꾸역꾸역 밥과 동동주, 묵무침을 먹고 있는데, 등산객 한 명이 문을 열고 막걸리가 있는지 묻는다. 없다고 하자. 그냥 가고, 출발 30분 전에 한 등산객이 들어와 김치찌개와 감자전, 소주를 주문해서 마감 시각에 늦지 않기 위해 정신없이 먹는 걸 보고 어쩔 수 없이 묵무침을 1/3가량 남기고 터질 거 같은 배를 움켜쥐고 어기적거리며 주차장으로 향해 도착한 시각이 4시 17분이다. 일단 버스에 타고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은 후 씻기 위해 화장실에 가자 입구에 "간이 세면장 =>"이라는 글과 함께 씻기 금지라는 경고문도 있었다. 해서 화살표가 있는 방향으로 가니 계곡물이 꽐꽐 나오고 있는 게 많은 등산객이 화장실을 더럽혀 이렇게 씻을 수 있도록 만들어 둔 거 같았다. 어쨌든 오랜만에 등산 후 세족을 할 수 있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버스에 타서 분위기를 보니, 영업하는 식당을 찾지 못해 하산주를 하지 못해 아쉬워하는 승객이 꽤 많았다. 와중에 등산객 3명이 조금 늦어 예정보다 5분 늦은 4시 35분에 버스는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그런데, 들머리는 백두대간의 서쪽이고 날머리는 백두대간의 동쪽이라 당연히 올 때와 갈 때의 길이 다를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차가 북으로 달리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강릉 방향으로 올라가 영동고속도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덕분에 올 때는 4시간 10분이 걸렸으나, 이대로 달리면 3시 30분 내에 양재에 도착할 수 있을 거 같았다. 피곤해서 한 시간가량 자고 일어나, 지도를 확인하니, 횡성을 지나, 원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휴게소에서 15분 정도 쉬었는데, 어딘지 기억이 안 난다. 치매다! 어쨌든 환선굴 주차장을 떠나 버스는 예상대로 3시간 30분도 안 걸린 8시 3분에 양재에 도착했다. 집에는 9시 전에 도착해 저녁을 겸해 하산주 2차를 했다.
산악회 계획대로 '하사미동 외나무골교 → 예수원 → 구부시령 → 덕항산 정상 → 지각산 환선봉 → 자암재 → 환선굴(관광) → 선녀폭포 → 이끼계곡 → 환선굴 주차장'의 10.20km, 4시간 11분의 산행이었다. 이동 3시간 36분, 휴식 37분! 사실 휴식 37분은 자리 잡고 쉰 게 아니라, 1.6km의 환선굴을 한 바퀴 돈 시간이다.
가랑비와 비구름으로 앞이 보지 않아 조망은 형편없었으나, 2017년의 추억을 더듬기에는 더없이 좋은 산행이었다.
이번 백두대간 연결로 화방재에서 연칠성령까지 이어졌다. 아쉽게도 댓재에서 백복령까지 무박 산행이 기다리고 있지만.
환선굴은 무조건 가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