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이윤기의 마지막 작품
이야기꾼은 가도 이야기는 남는다. 어떤 이야기꾼은 세상을 떠난 뒤 우리로 하여금 그가 미발표로 남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보게 한다. 지난달 27일 63세로 타계한 소설가 이윤기의 마지막 신간들이 내달 잇달아 나온다. 동인문학상 수상작가 이윤기는 100만부 넘게 팔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신화'(전 4권)를 남긴 신화(神話)학자였고,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등을 우리말로 옮긴 번역가였다. 세 가지 직업을 통칭하면 이야기꾼이 된다.이야기꾼 이윤기의 유고(遺稿)는 세 가지다. 우선 웅진지식하우스에서 낼 '그리스 로마신화' 제5권이다. 또 하나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번역이다. 전 9권 예정으로 번역할 계획이었지만 이윤기는 3권까지 딸 이다희와 공동 번역한 원고를 휴먼앤북스 출판사에 넘긴 뒤 타계했다. 평소 이윤기는 "서양의 무수히 많은 고사성어가 탄생한 과정을 담은 책"이라며 완역을 다짐하곤 했다. 민음사에선 유고 소설집이 나온다.이윤기는 마지막 원고뿐만 아니라 진짜 그의 일생을 건 최후의 작품도 남겼다. 그는 생전에 경기도 양평 작업실 주변에 '문필 노동'으로 번 돈으로 나무 1500그루를 심었다. 3일장을 치른 뒤 한 줌의 재가 된 그는 그 나무들 밑에 묻힐 예정이었다. 그러나 폭우가 쏟아져 정상적으로 장례식을 치를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유족은 49재가 되는 날(10월 16일)로 수목장을 연기했다. 이날 그가 남긴 마지막 신간 헌정식도 있을 예정이다. 그가 일군 숲에서 그의 유골이 미발표 원고들과 합쳐져 일생(一生)이란 한 편의 작품을 빚어내게 됐다.생전에 그는 단편 '봄날은 간다'를 통해 나무 심는 까닭을 밝히면서 "나무는 나의 재산에 속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실존에 속할 것이다"고 했다. 2001년 어느 날 그의 작업실 부근에서 여섯 그루의 잣나무가 자연 발아(發芽)했다. 나무가 한 해 동안 5센티 크기로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는 '시간의 눈금'을 발견했다. 1947년생인 그의 몸 또한 6·25, 4·19, 5·16, 월남전으로 이어지는 역사가 새겨진 시간의 눈금이다. 그런데 그의 몸은 나무만큼 오래오래 눈금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조그만 '시간의 박물관'을 세우는 심정으로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나무 밑에는 그 해의 기록을 새긴 조그만 비석을 세우기로 했다.이윤기는 소설에서 "중세 유럽에선 예수를 '아보르 비타에 크루치피크사에'(십자가에 못 박힌 생명나무)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나무를 심으면서 슬프고 처연한 노래 '봄날은 간다'를 경쾌하게 흥얼거렸다. 봄날이 가듯 인생이 덧없다고 해도, 숲을 걷다 보면 시간에 저항할 필요없이 즐겁기에 '봄날은 간다'를 신나게 불렀다고 했다. 프랑스의 상상력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수직으로 뻗은 나무를 보면서 "오늘 우리에겐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불확실한 삶 속에서, 지하의 삶 속에서, 외로운 우리의 삶 속에서, 대기의 삶 속에서 느낀다"라고 했다. 오래전부터 나무는 신성한 생명력을 상징해왔던 것이다.생전에 이윤기는 "노래방이 생긴 뒤 한국인의 암기력이 떨어졌다"고 개탄했다. 그는 즉석에서 한 곡조 뽑아 흥(興)과 한(恨)을 번갈아 발산하길 즐겼다. 그의 호는 과인(過人·지나가는 사람)이었다. 그가 심은 나무는 '이 땅을 지나간 이야기꾼'의 일생을 오랫동안 흥얼거리지 않을까.
위의 글은 신문기사에서 인용한 글이고 아래 글은 이윤기님의 산문집 ‘어른의 학교’에서 인용한 글입니다.
이윤기님은 “나는, 누가 뭐라고 하건 세계 최고의 유행가 가수를, 수년전에 작고한 일본의 가수 미소라 히바리로 꼽습니다. 조선일보 이주호 기자의 저서 『후지산과 대장성』에 따르면 히바리의 어머니 이름은 〈키미에(喜美枝)〉, 처녀적의 성은 김씨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이걸 잘 모른다는군요.”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나는 일본 문화 아는 척하는 짓거리가 우리 한국의 문화환경에 대단히 부적당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과 몇 주일 전 바로 이 칼럼에서, 지금은 작고한 일본의 유행가 여가수 미소라 히바리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부른, 유랑극단 춤꾼 소녀의 비애를 그린 가요의 노래말 일부와 함께요. 제목이 <에찌고시지(越後獅子)의 노래>인 문제의 가요는 미소라 히바리의 음반에는 약방 감초처럼 끼리만치 유명한 노랩니다. 일본의 콜롬비아 회사가 70년대에 제작한 <특선집 미소라 히바리>라는 제목의 음반에도 물론 들어 있습니다. 사랑의 불가사의한 힘을 노래한「아이산산(愛燦燦)」을 타이틀 곡으로 하는 이 음반에는 모두 20곡의 노래가 실려 있습니다.
연전에<룰라>라는 댄싱 그룹이 일본노래「오마쓰리 닌자」를 표절해서 말썽이 된 적이 있지요. 사실 이「오마쓰리 닌자」라는 노래는, 미소라 히바리가 아주 옛날에 부른「오마쓰리 맘보」를, 요즘 말로 ‘리메이크’한 것입니다. ‘오마쓰리’는 ‘축제’라는 뜻인데,「오마쓰리 맘보」는, 집에 불이 난 줄도 모르고 축제에 정신이 팔려있는 축제광(祝祭狂)아저씨와, 집에 도둑 든 줄도 모르고 축제판에 흠빡 빠져 있는 아주머니의 모습을 코믹하게 그려낸 아주 경쾌한 노랩니다. 이 「오마쓰리 맘보」역시「아이산산」을 타이틀 곡으로 하는 <특선집 미소라 히바리>에 실려 있습니다. 일본인 중에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한 노랩니다. 표절이나 모방……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에 대한, 그 방면 전문가여야 할 가수들의 무지입니다. 정책 탓도 없지 않지요.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던 또 한 가요의 전주곡을 듣다가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왜 놀랐는가 하면, 그 가요 전주곡이 문제의 노래「오마쓰리 맘보」의 전주곡을 연상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럴 기회가 베풀어져 많은 사람들이 들어서 확인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만 너무 똑같아서 번안곡인 줄 알았을 정돕니다. 그러나 전주곡 들을 때의 놀라움은, 그 가요 제목 듣고 놀란 것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가요 제목이「찬찬찬」이라는 겁니다. 콜롬비아 레코드가 낸 문제의 특선집 타이틀 곡목「아이산산(愛燦燦)」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우연의 일치였으면 좋겠지만, 전주곡은「오마쓰리 맘보」를, 제목은 「아이산산」을 상기시키는 이 「찬찬찬」이라는 가요는 내 마음을 매우 착잡하게 합니다.
「아이산산」이라는 일본 가요의 노래말은 한번 읊을 만합니다. 이 노래1절은 ‘아메산산도(비는 주룩주룩)………’ 2절은 ‘가제산산도(바람은 살랑살랑)………’ 3절은 ‘아이산산도(사랑은 찬연히)………’라는 말로 각각 시작됩니다. 따라소 ‘산산’이라는 말은 세 차례에 걸쳐 각기 다른 의미로 쓰이면서 노래에다 대단히 시적인 운율을 부여합니다. 따라서 ‘산산(燦燦)’은 장단이나 맞추자고 무의미하게 지르는 소리가 아닙니다. 나쁘게 말하자면 절묘한 말장난 같은 것, 좋게 말하자면 소리가 같되 뜻이 다른 의태어 운용의 극치 같은 것 이지요.
우리 가요「찬찬찬」의 우리 모국어 ‘찬찬찬’ 은 무엇을 시늉한 말이지요…… 만일에 술잔 부딪치는 소리를 시늉한 의성어라면, 작사가에게는 송구한 말이지만, 우리는 우리 모국어에 더 할 나위 없이 송구한 허물을 짓는 셈이 됩니다. 나는 내가 받은 인상이 잘못된 것이기를 바랍니다.
뿌리 깊지 못한 꽃이 흐드러지고, 샘이 깊지 못한 물이 굽이칩니다. 이 시대의 많은 분야 종사자들은, 기본기도 되어있지 않은 주제에, 상대가 누군인지도 모르는 주제에, 콜로세움으로 나가고 싶어 안달을 부리는 검투사들을 떠 올리게 합니다.
우리 너무 서둡니다.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빠르되 지나치지 않게)………「찬찬찬」에 돌을 던질 때 조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