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그 기억의 파편들
제주에 4월이 오면 동백은 왜 그렇게 붉게 피어나는 것일까요? 그 붉은 동백꽃은 또 왜 그리도 한순간에 툭 떨어지는 걸까요? 바닥에 떨어진 그 꽃은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 처연하게 느껴지기만 합니다. 사월이 오면 어르신들은 혼잣말처럼 되 뇌이십니다.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 기억들은 조각보처럼 군데군데 이어집니다. 어르신들의 조각난 이야기들을 적어봅니다.
「4.3사건이 발생할 때 내가 신촌초등학교 다닐 때였어. 우리 동네 높은 동산에 키 큰 대나무가 세워져 있었는데 그 대나무가 눕혀지면 경찰이 온다는 신호였어. 그러면 우리는 지은 죄도 없이 무조건 굴속에 들어가 숨었어. 학생들도 다 잡혀간다고 생각했었지.
고모 아들이 무슨 총 책임자였는데 그 때문에 고모와 고모부를 집안에 가두어 두고 불을 질렀어. 그래서 모두 다 불에 타 죽었지....
낮에는 경찰에게 시달리고 밤이 되면 산사람들에게 시달리고, 그 때에는 언제 죽을지 모르던 시절이었어.」
「그때 내가 오현중학교 다닐 때였지. 한번은 학교 모임에 안 나갔더니 같은 반 동급생이 엎드리라고 하고서 몽둥이로 엄청나게 때렸어. 산에 갔다 왔다고 하면서....
어떤 사람은 산에서 온 대장이라고 하면서 총살시켜서 관덕정 앞에 나무에 매달아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했던 일도 있었어.」
「내가 일곱 살 되던 해 그 사건이 일어났어. 교육자이신 아버지를 밤에는 산에서 온 사람들이 잡으러 오고 낮에는 경찰들이 잡으러 오곤 했어. 그 사람들이 와서 아버지 있는 곳 말해달라고 했지만 어린 나이에도 잡혀가면 죽을 줄 알고 말하지 않았어. 난 무서워서 옆에 있는 할머니집으로 도망쳐 숨곤 했지. 어느 날 아버지가 나에게 공부 가르쳐 준다고 하면서 외워보라고 하길래 그것을 다 외웠더니 똑똑하다고 하며 안아 주면서 엄마 말 잘 듣고 있으라고 하면서 나가셨지. 그것이 마지막 아버지 모습이었어. 그 후 아버지는 밭에서 총 맞아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수용소에 끌려가면서 외할머니께 ‘우리 애들 잘 키워 줍써’라고 울면서 말했대. 그 후 다시는 집에 오지 못하고 돌아가셨지. 난 어머니 시신도 보지 못한 체 어린 동생을 업고 ‘온달 같은 어머니 비행기 타고 우리 보러 봅써’라며 울면서 노래를 불렀어. 지금도 어머니가 보고 싶어...」
4·3평화 공원에 누워있는 백비에 이름이 새겨지고 그 비가 일으켜 세워지는 날이 오면 어르신들의 상처가 아물까요? 아니! 사월의 동백꽃이 수천수만 번 피었다 진다한들 그분들의 한이 사라지지는 않겠지요. 다시는 이러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길 바라면서 센터 어르신들의 아픈 마음이 조금이나마 위로 받을 수 있도록 저희 직원들이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