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제봉 삼림욕
장마 틈새 날이 갠 칠월 셋째 토요일이다. 새벽녘 잠을 깨 산행 행선지를 물색해 봤다. 불모산이나 장복산이 떠오르고 달천계곡으로 들어가 산정마을로도 가보고 싶었다. 마산역 광장으로 나가 서북산이나 여항산으로 갈 수 있는 농어촌버스를 타 볼까도 했다. 여름이라 김밥이나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고 반나절 만에 집으로 복귀할 수 있는 코스를 생각하니 용제봉 기슭이 떠올랐다.
용제봉이 떠오름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인적 드문 우거진 숲에서 삼림욕을 누릴 수 있어서다. 둘째는 장맛비로 물이 불어난 계곡에서 더위를 식힐 수 있어서다. 마지막은 혹시라도 모를 영지버섯을 만날 수 있을까 싶어서다. 영지버섯은 삭은 참나무 그루에서 장맛비에 자루가 솟아 갓을 펼쳐 자란다. 근래 숲속 생태계는 자꾸 바뀌는지라 영지버섯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이른 아침 집 앞에서 배낭에 얼음생수만 챙겨 마산 월영동을 출발해 대방동 종점으로 가는 101번 시내버스를 탔다. 창원대학 앞에서 도청과 법원 앞을 지났다. 대방동 뒷길에서 대암고등학교 앞을 지날 때 내렸다. 횡단보도 건너 대암산 등산로 들머리에서 성주동 아파트단지를 돌아 용제봉과 상점고개로 가는 숲길로 들었다. 이른 시각 산행을 마치고 나오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앞으로 드러난 불모산 정상부 송신소와 오른편 안민고개에서 이어진 장복산 산허리로는 운무가 걸쳐 여름 산다웠다. 숲길 아래 저만치 짐작되는 창원터널 입구로는 차량이 드나드는 바퀴 구르는 소리가 붕붕거렸다. 농바위와 평바위에서 계곡으로 드니 수량이 제법 되는 맑은 물이 소리 내어 흘렀다. 아까 들머리서 상점고개로 나뉘는 이정표까지는 거리가 꽤 되어 한 시간이 더 걸렸다.
대암산과 용제봉 가는 숲길로 들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산행객들은 하나 둘 떨어져 나가고 나 혼자였다. 김해 김씨 선산 묘역으로 가는 산기슭으로 묵혀진 희미한 등산로를 따라 올랐다. 인적이 없는 계곡은 수량이 제법 되는 물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흘렀다. 소나무가 우거진 숲을 지나니 활엽수가 섞여 자라는 횬효림 지대가 나왔다. 느긋하게 걸으니 절로 삼림욕이었다.
등산로를 벗어나 숲으로 들어도 겨냥한 영지는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언젠가 지기에게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참나무는 죽으면 영지를 남긴다고 했다. 봄은 산나물을 채집하느라 주말을 바삐 보내다 여름은 근교 산에서 영지를 찾아 숲을 누빈다. 이젠 기력이 부쳐 고도가 높은 데나 바위 벼랑은 타질 못한다. 그래도 영지버섯을 만나려면 골이 깊고 숲이 우거져야 했다.
용제봉 산자락은 아주 넓었다. 등줄기는 성씨를 달리하는 무덤들이고 골짜기는 장맛비로 계곡물이 흘렀다. 영지를 찾다보니 어릴 적 강변으로 간 소풍에서 보물찾기가 떠올랐다. 담임선생님은 모래밭 갯버들 틈새 쪽지를 끼워두었다. 그 쪽지를 찾느라고 얼마나 두리번두리번했던가. 삼림욕을 겸해 숲을 누비다 찾아내는 영지버섯은 초등학교 시절 소풍에서 찾은 보물 쪽지와 같았다.
날씨가 그다지 무덥지 않아 숲을 누벼도 땀이 흐를 정도는 아니었다. 숲이 우거져 하늘을 가려 햇볕이 나는지 구름이 가렸는지 알 수 없었다. 발품을 판 보람은 있어 영지버섯을 찾아냈다. 삭은 참나무 그루터기에서 작년에 돋아난 묵은 영지 곁에 올여름 새 영지가 돋아나 있었다. 약초꾼이 흔히 일컫는 ‘대물’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만한 영지라도 눈에 뛰어 산신령님께 감사했다.
용제봉 산자락에서 계곡으로 내려서면서 아기 손바닥 크기 영지버섯을 몇 개 더 찾아냈다. 아침나절 두어 시간 숲을 누비면서 삼림욕을 즐기고 말려 차로 달여 먹을 영지버섯을 마련했다. 숲에서 나오니 등산로였다. 용제봉으로 오르지 않고 계곡을 내려섰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흘러가는 계곡물에 손을 담갔더니 찌릿하게 감전되듯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선계가 따로 있나. 20.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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