맺힌 것은 풀고, 풀린 것은 묶고(3)/ 원철 스님
어쨌거나 농경시절에는 이동하는 성격을 ‘역마살’이라 하여 부정적으로 불렀지만, 현대 IT시대엔 그것이 또 다른 경쟁력이 되었다. 노마드(nomad·떠돌이)가 칭송되고 붙박이는 알게 모르게 ‘도태’라는 뉘앙스가 가미되었기 때문이다.
머물고 있으면서도 늘 떠날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매듭지으며 살았고, 반대로 늘 떠돌아다니면서도 영원히 머물 사람처럼 주인의식을 가지고 순간순간 살 수 있을 때 비로소 제대로 붙박이와 떠돌이의 자격을 갖춘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어쨌거나 이동과 머묾이 적절한 조화가 이루어졌을 때 이동은 이동대로, 머묾은 머묾대로 같이 빛나게 된다.
하지만 혜원(523~592) 스님은 30년 동안 그림자조차 여산(廬山) 밖을 나가지 않았고, 마조(709~788) 선사는 개원사(開元寺)에서 30년을 머물렀다. 그렇지만 그 머묾을 어느 누구도 정체나 도태로 보지 않았다.
같은 장소지만 그 안에서 해제와 결제를 거듭했을 것이고, 매 순간순간 머묾 속에서도 떠남을 반복하도록 스스로를 경계하고 훈련시킨 까닭이다.
알고 보면 사바세계 전체가 80년 평생을 머물러야 하는 거대한 총림이요 또 수도원이다. 서로 의지하며 또 참지 않고서는 함께 살 수 없는 땅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살기 위해선 붙박이건 떠돌이건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삶의 자세가 필요했다.
그것은 나와 남에 대한 부끄러움을 아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 까닭에 법연(1024~1104) 선사는 이런 소박한 구절을 남겼다.
“20년 동안 죽을 힘을 다해 공부해 보니 이제 겨우 내 부끄러운 줄 알겠다.”
맺힌 것은 풀고, 풀린 것은 묶고(3)/ 원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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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자원님 감사합니다
좋은날 되세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_()_
만리향꽃님 감사합니다
좋은날 되세요
고맙습니다.()
심주월님 감사합니다
좋은날 되세요
오성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