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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얘기, 저런 얘기 스크랩 [USNY 세바] 체코 프라하를 다녀온 것만 같은 여행
남아프리카 세바 추천 0 조회 1,132 13.02.12 01:30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세바는 이탈리아 투어가이드 면접을 보러 상경한다.  장소는 엔젤리너스 커피?이다.  현지 여행사는 서울에 사무실이 따로 없어서이다.  그는 면접관을 만난다.  면접관은 세바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


 "저기 세바씨, 혹시 가이드를 해보신 적 있으세요?"


세바는 잠시 생각한다.  그리고 씨익 웃으며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네, 있습니다."


세바는 어떻게 그렇게 자신있게 "네, 있습니다." 라고 대답 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를 밝히러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인 2009년으로 거슬로 올라가서 세바의 일기를 보도록 하겠다.




세바의 일기


2009년 10월 11일


‘관광가이드영어’란 수업을 듣고 있다. 관광가이드영어라고 하면 어떤것이 떠오르는가? 관광에 필요한 영어를 배울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한국의 문화, 종교, 관습, 건축, 예절 등등 영어로 배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그것들을 난 배우고 있다.

 

하지만, 난 좀 특별한 무언가를 수업을 통해서 경험하게 되었다. 경주에 주둔하고 있는 대학교가 아니고선 결코 경험하기 힘든 그 무언가를 했다.

 

교수님께서는 구글과 야후에서 경주에 오는 외국인들을 위해 카페를 운영하고 계신다. 그래서 그 외국인들과 우리학생을 연결시켜주고, 우린 그 외국인들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가이드를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그것이 바로 관광가이드영어에서의 그 특별한 무언가이다.

 

교수님께선 수업중에 느닷없이 하루 후인 9월 17일에 체코인 두명이 온다고 한다. 나와 친구는 당장 손을 들며 가이드를 한다고 신청했고 우린 다음날을 기대하며 그들을 기다렸다.

 

그들은 이메일을 통해서 점심 1시쯤에 도착할 것 같다고 했으나 오후 5시가 되어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날 올까 생각해서 마음을 접고 있을 무렵 그들의 전화가 울렸다. 터미널에 있다는 것이었다. 우린 그때 차에 타고 충효동으로 가고 있었는데 곧장 터미널로 갔다.

 

그들은 산더미만한 큰 배낭을 하나씩 메고 있었다. 그들은 체코 커플이었는데 남자는 그렇다쳐도 여자가 저만한 큰 배낭을 메고 있다니, 한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남자의 이름은 Michel 여자는 keith였다. 산만한 배낭을 차에 ?고 바로 우린 보문으로 갔다.

 

우린 그들과 4일 동안 같이 먹고 자고 여행했다. 우린 4일 동안 여행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그들과 3개의 도시를 같이 함께 다녔다. 이제 난 그들과의 여행여정을 가며 보고 듣고 느낀것들을 생생하게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아래에 있는 것은 4일동안 우리의 행보이다.

 

첫째날 : 터미널(만남) - 보문 - 오리배 - 한식집(비빔밥) -밀레니엄 파크 - 천마총 -교수님댁 - 우리집 - 막걸리집

 

둘째날 : 8시 기상 - 터미널앞 자전거집 - 첨성대 - 계림 - 얼음골 - 안압지 - 경주박물관 - 숟가락젓가락(점심) - 불국사 - 대구 길엽이집

 

셋째날 : 길엽이집 - 현대백화점 - 울산대공원 - 친척집 - 방어진 회직판장 - 우리집

 

넷째날 : 새벽 5시 20분 기상 - 대왕암공원 - 일산해수욕장 - 집 - 교회 - 울산역

 

첫째날 - 첫만남


 

우린 그들과 보문에 가서 오리배를 탔다. 4명이 타는데 경비 10,000원 그들은 연인이었지만, 우린 아니었다.

그들은 재밌었을지 모르겠지만, 우린 아니었다. 왜? 연인이 아니었기에....

 

 


  우린 바로 저녁을 먹어야했는데 뭘 먹고 싶냐고 물어보니 spicy한걸 먹고 싶다길래 비빔밥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들은 생각보다 잘 먹었다. 김치찌개, 비빔밥, 도토리묵을 시켰는데 Keith는 김치찌개를 한 숟가락으로 먹는다것을 꺼려했다. 그래서 덜어줬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밥을 자꾸 안먹고 반찬만 먹었다. 밥은 반도 안먹어도 반찬만 계속 먹는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한국 식사문화예절을 한수 가르쳐줬다. 한국에선 밥이 주식이고 가장 중요하다 말했다. 그리고 밥을 다 먹으면 식사는 끝나는 것이라고하고 만약 어디 다른 집에 갔을때 밥을 남기는것은 반찬이 맛이 없어서 많이 못먹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래서 한국에선 밥을 다먹지 않는것이 실례라고 말했다. 만약 배가 불러서 밥을 먹지 못할 것 같으면 미리 밥을 먹기전에 먹을 양만 덜어 먹는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들은 너무 착했다. 내가 하는 말들을 곧이 곧대로 잘 듣고 따라서 실천했다. 내가 그 말을 한 이후로 그들은 한번도 밥을 남기는 일이 없었다.

 


우리는 밥을 먹고 밀레니엄 파크로 향했다. 하지만 늦은 시간에 열려 있을 리가 없었다.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구경을 했다.

그들은 여기가 어떤 곳이냐고 물어봤다. 사실, 나도 안가봐서 잘 몰랐다. 그래서 디즈니랜드보다 더 좋은 곳이라고 소개했다.

당신들은 모르지만, 여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거의 대부분의 세계의 사람들은 여기를 모른다고 했다.   여긴 세계에서 가장 popular한 곳이라고 했다.  

안들어가봤으니 모르지 않는가~  ^^

 


우린 천마총을 둘러보고 교수님의 전화를 받고 외국인들과 교수님께 갔다.

교수님께선 외국인들을 마치 10년전 유럽여행때 같이 여행했던 사람같이 반갑게 대하는 걸 보았다.

교수님께선 마치 경주땅의 지주인데 귀한 손님이 와서 특사인 우리들에게 잘 모셔 드려라고 사명을 주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교수님을 실망 시켜드리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교수님과 30분가량 담소를 나누고 나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그들은 나의 자취방에서 하룻밤을 보낼 것이다. 난 그들을 위해 방을 비워주고 난 친구 길엽이집에서 잘 것이다. 그들의 산더미같은 짐을 우리 집에 실었다.

그들은 많이 피곤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우리집에서 간단히 막걸리를 먹고, 내일을 위해서 자려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하는건 어때?라고 물어보니 자신들은 전혀 피곤하지 않단다. 우리들이 피곤하지 않으면 어디든 좋다고 말하는 것 이었다. 그래서 우린 밖에 나가서 한국전통술인 막걸리를 먹으러 갔다. 

 

막걸리를 먹으며 문화적인 얘기를 많이 나눴다. 체코는 어떤 곳이며, 우리 한국은 이런 곳이고 등등, 그런데 사실 한국사람들, 체코에 대해 아는게 얼마나 될까? 체코의 수도가 프라하인건 아는가? 체코가 북유럽인가 중유럽인가 남유럽인가? 유럽인건 아는지, 그리고 예전에 축구 좀 잘 했다는 거 말고 특별히 아는거 있는가?

 

난 우리 동아리 SFC(Student For Christ 학생신앙운동)의 기독교역사 강의에서 기독교역사의 초기의 희생자, 그로 인해 종교개혁의 불꽃이 타오를 수 있었던 후스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었다. 그 강의때 목사님께서는 체코의 프라하의 중심에는 후스의 동상이 세워져있고 너무 보고 싶다고 말씀하신걸 난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그들에게 당신의 나라의 수도인 프라하의 중심에는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되었던 후스의 동상이 있지 않느냐? 라고 하자 그들은 조금 놀라며 어떻게 그걸 아냐고 하길래 동아리 얘길 하면서 강의에서 들은걸 기억한다고 했다.

 

 그들의 기독교인의 인구는 약 80% 정도 된다고 했다. 거의 십중 팔구는 기독교인이라는 말인데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그들은 주일에 교회를 안간다는 것이었다. 교회에 그리 많이 가진 않는단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기독교는 그저 나라를 대표하는 종교일 뿐, 자신들하곤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종교가 뭐냐 물어보면 Christian이라고 한단다.

 

그리고 정말 신기했던 것이 세금을 50%낸단다. 그래서 대학까지 공짜로 다닌단다. 또한 같은 유럽이면 어디든 공짜로 유학을 갈 수 있단다. 가히 ‘놀랠 노’자다. 그리고 실직을 해도 정부에서 지원금이 나와서 굶어 죽는 일은 없단다. 그래서 내가 물어봤다. 그럼 왜 일을 하냐고 정부에서 다 대주는데 일부러 일을 안 하려고 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니, 절대 그렇지 않단다. 오히려 일없이 빌빌대고 정부에서 돈 받고 살면 친구들이 멀리한다고 한다. 역시 유럽인들의 국민의식은 좀 다르구나라고 생각되었다.

 

난 그들에게 한국의 술문화를 가르쳐줬다. 한국은 나이가 정말 중요하고, 그래서 술을 따를때도 나이에 따라 방법이 다르고, 두손을 잡는것 대신 한손을 다른손에 받치고 따르는데 그 이유는 조선시대때 옷자락은 너무 커서 옷이 음식에 묻기 때문에였는데 오늘날까지도 그런 방법으로 잡는다 등등 많이 가르쳐줬다. 나중에 우리 친척집에 가게 되는 기회가 있는데 그들은 정말 내가 가르쳐준 걸 그대로 잘 숙지하며, 한국의 예절을 따르는 모습이 무척 귀여워 보였다. 내가 강요하진 않았다.

 우린 이런저런 얘기를 계속 나눈 뒤, 우리집에 갔다. 방 한칸 밖에 없는 좁은 원룸이다. 원래는 내가 그들을 위해 비켜주고 난 친구 길엽이집에서 자려고 했지만, 밤이 너무 늦어 길엽이의 룸메이트에게 해를 끼칠까봐 난 그냥 그들과 같이 잘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체코 2명과 같이 동침했다.

 


둘째날 - 자전거타고 불국사로~~!!!  결국 탈진

대구까지 가서 고기먹다!!!

 

아침에 일어나고 난 그들을 위해서 음식을 준비했다. 미역국과 꽃게탕을 끓여줬는데 그들은 참 잘 먹었다. 사실 꽃게탕은 좀 먹을만했는데, 미역국은 완전 맛없었다.

 

어쩌면 내가 끓여준 미역국이 처음이자 마지막의 미역국이 될 수도 있다. 참 미안하다. 

 


 

 




우린 오늘 경주를 둘러볼 계획이다. 우선 자전거를 빌리고 첨성대쪽으로 가서 쭉 둘러볼 것이다. 박물관, 안압지 등등 그러고 우린 불국사와 석굴암을 갈 것이다. 자전거타고 말이다.

 

 우린 9시 30분에 터미널 자전거 대여점에서 자전거를 빌려 

첨성대로 향했다. 가는 길목에

우뚝 솟은 무덤을 보고 그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사진에서 샷 버튼을 연신 눌러댔다.


난 사실 좀 많이 봐왔던 것이고, 다 가본 곳이었다. 그래서 조금 지루하긴 했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는 점은 당연히 외국인과 같이 가는 것이었고, 나에게 도전을 줬다는 것이다. 외국인들에게 이 문화재를 내가 유창한 영어로 설

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말이다.


우린 점심을 시내에서 싸고 어느정도 한식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숟가락 젓가락’으로 갔다. 된장, 김치, 비지찌개를 시켰는데 역시나 잘 먹었다. 그들의 입은 한국인이다. 난 이후로는 수업을 가야했다. 그들은 불국사를 갔다오고, 난 수업을 갔다오고, 다시 터미널로 만나기로 했다.   숟가락 젓가락 밥값의 비용은 한사람당 4500원이다.   이것은 그들이 쐈다.


수업 중 문자가 왔다. 가는 도중에 keith가 거의 탈진할 수준이라고, 불국사까지 가는데 자전거로 2시간 걸린다는 것이었다.


 

사실 여행경로는 내가 짰다. 지도상으론 그렇게 멀지 않아보였던 거리가 엄청난 것이었다.

 

그들은 불국사까지 겨우 갔고, 난 수업마치고 차를 몰고 그들에게 갔다. 그들은 다행히 힘들게 불국사로 가서 구경을 마친 상태였다. 

 

그들의 자전거를 차에 싣고 터미널까지 갔다.

 

참 그런 여행경로를 짜서 미안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한마디 불평조차 하지 않았고,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우린 이제 차를 타고 대구로 간다. 어디? 길엽이부모님께서 운영하시는 돼지갈비음식점으로 말이다. 거기서 우린 돼지갈비를 배터지게 먹었다. 무엇보다 좋은 건 공짜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역시 돼지갈비도 잘 먹었다. 완전 한국인이다.

 

난 다음날 맥도날드에서 알바를 해야기 때문에 울산으로 혼자 내려갔고 그들은 길엽이집에서 잤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그들과 울산에서 다시 만날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알바가 끝나는 시간을 맞춰서 그들이 울산으로 오기로 했다.

 

 

셋째날 - 울산 투어 고고싱~~


난 다음날 맥도날드에서 알바를 해야기 때문에 울산으로 혼자 내려갔고 그들은 길엽이집에서 잤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그들과 울산에서 다시 만날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알바가 끝나는 시간을 맞춰서 그들이 울산으로 오기로 했다.

 

난 다음날 아르바이트를 하고, 현대백화점 동구점에서 그들과 재회했다. 어제 본 그들이었지만 나의 고향땅에서 다시보니 너무 반가웠다. 그들과 난 현대백화점을 제일 윗층에서 아래층까지 훑어보았다. 조금 놀란건 그들은 옷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둘러보기나 할 순 있지 않은가? 전혀 그런거도 없었다. 가방샵에도 갔는데 전혀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좀 신기했다.

 

우린 바로 울산대공원을 향했다. 사실 울산대공원 그렇게 추천할 만곳은 아니다. 왜냐면 딱히 그렇게 이쁘다할 것도 없고, 울산의 특색이 드러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냥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공원일 뿐인 것이다. 물론, 애인하고 가면 상황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이제 길엽이도 없고, 그들은 둘이 커플이고 난 너무 쓸쓸할 것 같아서 같은 클라스의 후배인 박지영이란 친구에게 전화해서 가이드를 좀 도와달라고 부탁했고, 흥쾌히 와주었다. 지영이와 그들과 이렇게 4명이서 우린 많은 대공원 한바퀴를 돌았다. 나비박물관도 가고 장미공원도 갔다. 입장료가 두 개 합한 입장료가 한사람당 4000원이었다. 내용에 비해 비싼것 같았다.






우린 다음 코스로 바로 우리집에 가려고 했는데 아버지께서 벌초를 다녀오시고 큰집에 있다는 것이었다. 외국인과 같이 있다고 하니 오라고 하신다. 그래서 저녁을 먹으러 큰집을 갔다.

 
큰집엔 큰아버지, 큰어머니, 작은 아버지들께서 계셨다. 그들은 저녁을 먹고 계셨고, 우리도 같이 저녁을 먹었다. 반찬은 정말 전통한식이었다. 된장에 나물등등 하지만 뭘 걱정하리 그들의 입은 한국인인데...... 그들은 기대에 저버리지 않고 잘 먹었다. 또한 밥한톨 남기지 않았다. 친척들은 신기해했다.
 
정말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친척어르신들의 물음이었다. 우린 보통 외국인이 오면 물어보는것이 어디서 왔고, 나이하고 취미랑 직업하고, 한국에 온 이유 등을 묻지 않느냐? 그런데 그들은 전혀 다른 질문을 했다.
 
친척들은 외국인들의 부모님 나이를 물어봤고, 그들의 직업을 물어본다. 그리고 체코의 총 국민 소득이 얼마인지 물어봤다. 참 신기했다. 더 웃긴건 그들은 뭐 아무런 거리낌없이 다 대답하고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이제 우린 우리집에 갈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집에 가는데 빈손으로 갈 수 없다며 선물을 사자고 했다. 그래서 뭐가 좋을지 물어보길래 우리 어머니는 회를 무척 좋아하신다고 하니 사러가자고 한다. 좀 무리한 말이었나? 방어진에서 회는 그렇게 비싸진 않다. 5만원 정도면 한가족이 배불리 먹을 수 있다. 5만원정도 된다고 하니 괜찮다고 사러 가자고 한다. 우린 거기서 농어한마리와 돔한마리를 샀다. 농어는 원래 2만원이라고 했는데 농어를 자르고 말하길 1킬로에 2만원이라며 2킬로니 4만원이라고 한다. 총 6만원이란다. 혹시나 부담이 될까 걱정했는데 괜찮다고 자기들이 쏜다고 했다. 난 대신 해삼, 멍게, 개불 등을 샀다. 2만원들었다.




우린 그 회들을 가져가니 어머니는 너무 좋아하셨고, 맛있는 다른 반찬과 함께 차려주셨다. 어머니께서는 외국인이 우리 집에 왔다는 것에 대해서 무척 신기해하셨고, 더욱 신기해 하는 건 내가 외국인과 어느 정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난 좀 신기한게 우리 아버지께서 외국인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다른 사람의 얘기를 통해서만 들었는데 아버지께서 그렇게까지 영어를 잘 하실줄은 몰랐다.



내 친구중에 마술을 전문적으로 하는 이상옥이라는 친구와 별 특색없는 윤석규란 친구가 우리집에 놀러왔다. 마술사친구는 그들에게 마술을 보여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 했으나, 체코 친구들의 반응은 썩 좋아하진 않았다. 그들은 정말 좀 성격이 온순해서 그런지 표현이 둔해서 그런지 그냥 그랬다. 그래도 그들은 착하니까 괜찮다.

 
오늘은 토요일, 내일 그들은 부산으로 간다. 난 내일 교회를 가야하고, 그렇다면 우린 울산까지 데리고 온 외국인들을 대왕암을 같이 안가고 보낸다면 내가 섭섭했다. 우리집에서 차타고 15분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다. 그래서 생각해낸것이 아침 일출과 함께 대왕암을 보는 것이었다.
 
체코는 세계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중부유럽이다. 바다를 전혀 끼고 있지 않다. 그래서 어쩌면 그들에게는 바다란 아주 특별한 의미일 수 있다. 또한 그렇다면 일출은 더더욱 그럴 것이다.
 
우린 내일을 위해서 자야했다. 사실 잘 시간도 거의 없다. 기껏 해봤자 2시간 30분 잘 시간이다. 왜냐면 우리가 자는 시간은 2시고 일출은 6시에 있으니까 적어도 거기에 5시 40분에 도착해야한다.
 


 

우린 2시간 30분을 자고 대왕암으로 향했다. 그 특색없는 친구 윤석규란 친구를 데리고 같이 갔다. 날씨는 구름이 많이 껴서 썩 좋진 않았다. 우리 대왕암에서 사진을 찍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고 일산해수욕장에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다시 일찍 집에 돌아와 1시간 정도 잠을 청하고 같이 우리 교회를 갔다.


 
교회에서 예배를 같이 드렸다. 그들은 그다지 낯설어 하진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다지 놀라지 않고, 그다지 싫어하지 않고, 주면 잘먹고, 가르쳐주면 잘 따라했다.

 

우린 이제 헤어져야할 시간이다. 그들의 이메일을 받고, 우린 작별인사를 했다. 그들과 4일간을 함께 했기에 헤어지는 시간은 더욱 아쉬웠다. 부디 체코가서도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고 꼭 결혼하길~~

 

난 외국인과의 여행은 처음이다. 그것도 해외가 아닌 국내에서 외국인과 여행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경주란 곳은 정말 매력있는 도시다. 그리고 이 지역에 내가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것이 이런 면에서는 너무 좋다. 다른 도시에 있는 대학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난 기회가 생긴다면 또 가이드를 하고 싶다. 이것이 산교육이고, 산영어라 생각한다.. 그리고 진정한 관광학이라 생각한다. 난 가이드를 하면서 내가 진정 관광학 학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교수님께서 소개를 시켜주지 않아도 내가 길가는 외국인을 붙잡고 가이드를 할 용기가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과 또 많은 문화교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2009년 10월 11일

경주대학교 관광영어학과 학생

세바의 일기 中



필자가 다른 건 몰라도 스스로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은게 있다면,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는 것이었다.  누가 알아주건 알아주지 않던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스스로가 좋아하고, 잘하고, 즐거움이 있다면 시키지 않아도 나서게 된다.


경주라는 공간은 어떤 이들에게는 촌스럽고, 수학여행때만 가는 시시하고 하찮은 도시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대학교를 나왔다고 이야기하면 속된말로 '꼴통'으로 본다.  언젠가부터 그 시선에서 자유하게 되었다.


어디를 사는 것도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다.  경주에서도 자신만의 인생스토리를 만들려면 충분히 만들 수 있다.  그게 서울이 아니라고 해서, 남들이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도시라고 해서 주눅들 필요는 전혀없다.  따지고 보면 나의 인생과 시간만큼 소중한건 없다.  아무리 남의 인생이 부러워 보인다고 한들, 나의 무대보다 아님 내가 만나고 나와 호흡하는 사람보다 소중할 순 없다.


세바가 베니스에 왔기 때문에 저렇게 글을 쓴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필자는 한국사람들이 수학여행때만 가게 되는 경주에서도 글을 쓰고 스토리를 만들고 살았었다.  제일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다.  전문용어로 '자존감', '자아존중감'이라고 한다. (자아존중감 自我尊重感, 영어: self-esteem)이란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이다.


자신의 시간과 인생이 얼마나 소중하고 갚진지 알면 남들이 그렇게 부러워보이진 않을 것이다.  또한, 자신이 가진 타이틀을  비록 남들이 시시하게 여길지 몰라도 자신에게는 소중한 스토리이자 발자취이다.


현재 세계에서 손꼽히는 관광지이자 하루에도 6만명 찾아오는 베니스에 살고 투어가이드라는 직업을 가진 30살의 세바는 사람들이 우습게 보고, '꼴통'이라고 조롱당했고, 초등학교 수학여행때나 오는 도시인 경주에서 착실하게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왔던 26살의 세바에게 박수를 보낸다.



글이 길어서 읽는다고 힘드셨죠?

여기까지 다 읽어주시느라고 고생많으셨습니다.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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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2.12 02:20

    첫댓글 우와- 세바 님 글에 댓글을 다는 건 처음이에요~ 더군다나 제가 1등이군요..ㅎㅎ
    전 아직 대학생인데요... 어떻게 보면 지나칠 수 있는 일에 이야기를 덧붙이는 게 진짜 어려운 것 같아요~ㅜㅜ 전 아직 학생이지만 '자신만의 스토리' 가 아직은 어렵고 없는 것도 같아요... 세바 님은 좋은 이야기를 많이 가지고 있고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 같아서 부럽기도 해요! ㅎㅎ

  • 작성자 13.02.12 05:50

    댓글 너무 고맙습니다!
    너무 길어서 안 보신 않을까 걱정했는데 감사합니다!
    어느누구나 자신의 삶이 소중합니다!
    님의 입장에서 사실 세바의 삶은 그저 조미료와 같은거죠. 정말 중요하고 값진 삶의 소중함을 잘 가꾸어나가시길 바랍니다!~. ^^

  • 13.02.12 05:43

    늘 세바 님 글 재밌게 잘 읽고 있어요 많이 깨닫게 하는 글이였어요 제 나이에 비해선 스토리가 없는것 같은데 세바 님 처럼 저도 저만의 스토리 만들어 가야겠어요 다음글이 기대됩니다!

  • 작성자 13.02.12 05:53

    다음 글이 기대되신다는 말씀 참 힘이 됩니다!
    사실 이 폴더에 와서 제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쓸쓸하지 않게 하나둘씩 남겨주시는 댓글덕에 힘이납니다!!!
    고맙습니다!!!!

    님의 스토리는 저의 스토리보다 훨씬더 멋질겁니다!!!

  • 13.02.12 08:46

    ㅋㅋㅋ 글 잘 읽었어요!!! 진짜 어릴때부터 열씨미 사신듯~ 정말 좋은 경험 하신거 같아여~~. 항상 홧팅 입니다~ 이태리에서 설은 잘 보내셨나요?!^^

  • 13.02.12 09:54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이젠 항상 기대가 되네요^^ 글을 읽고 있으면 정말 열심히 진지하게 살아오셨다는게 느껴져요... 또 한사람의 가치관과 인생이 보이는것 같아 세바님이 좋은분이라는 것도 느껴지네요^^
    글 마치고 마지막부분에 파란색으로 쓴 글도 너무 와닿네요. 다른사람의 시선보단 제자신을 더 사랑하고 저도 제 위치에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어요^^ 다음글도 기대합니다. 그리고 세바님 인생도 응원합니다:) 모두모두 화이팅!^.^

  • 13.02.12 11:12

    세바님 항상 눈으로만(?) 잘 읽고 있어요..저도 경험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한명으로써 세바님이 정말 부럽기도 하고 그만큼 인터뷰때 할 말도 많았을것 같고~ 그럽니다..^^ 나중에 모아서 책 내셔도 되겠어요
    앞으로도 멋진 여정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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