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없음’이 있는 정직한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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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음’이 있는 성경과 ‘없음’이 없는 성경의 차이
세상에 존재하는 ‘성경’은 크게 두 종류로 분류될 수 있다. ‘원어 성경’과 ‘번역 성경’이다.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과 헬라어로 된 신약 성경을 ‘원어 성경’이라고 한다면 나머지는 모두 ‘번역 성경’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독일어로 번역하든지 영어로 번역하든지 한국어로 번역하든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보고 있는 성경은 번역된 성경(번역본)이다.
번역 성경도 1차 번역본이 있고 2차 번역본이 있다. 1차 번역은 원어에서 직접 번역된 성경을 말하고, 2차 번역은 번역본에서 다시 번역된 성경을 말한다. 그러나 오늘날은 이 구분이 별 의미가 없다. 원어에 대한 자료와 지식이 풍부하게 넘치고 서로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번역본은 문체나 어투만 다를 뿐 거의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이러한 특징은 한국어 성경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어 성경의 역사는 스코틀랜드 존 로스 선교사가 중국에서 가지고 온 한문 성경을 서상륜, 백홍준 등이 1882년 누가복음을 번역한 것을 그 시초로 보고 있다. 거기서부터 번역 사역이 계속되어 1887년에는 한국어로 된 최초의 신약성경이 출간되었다. 이 때 사용된 저본(底本)은 중국어 신약성서, 킹제임스 성경(KJV), 영국 개정역(RV)이라고 한다(신약성서 사본과 정경, p. 233). 이후 1911년에 구약성경이 출간되었다. 이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현대 번역본은 다양한 역본들이 참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한글 맞춤법이 시행되어 1936년에 구약성경이, 1938년에 신약성경이 출간되었는데 이 성경을 ‘성경전서 개역’이라고 불렀다. 다시 개정된 한글 맞춤법에 따라 1961년에 성경을 개정하였는데 이 역시 다양한 번역본들을 참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참조된 헬라어 성경에는 옥스포드판 헬라어 신약성경, 구약은 긴스버그의 히브리어 성경이며 참조된 번역본에는 영국 개정역(RV), 미국 표준역(ASV), 킹제임스 성경(KJV), 중국어 성경과 일본어 성경으로 알려지고 있다(같은 책, p. 236). 그리하여 2006년 5월에 ‘개역 개정판’이 나왔다. 이것이 한국 성경의 간략한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번역본은 어느 하나의 저본만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다른 역본들을 함께 참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1611년도 영국 킹제임스 성경도 마찬가지이다.
1611년도 초판 킹제임스 성경의 표지를 보면 이 당시 번역위원들이 여러 종류의 번역본을 참고한 것을 명확하게 기록해 놓았다. 그래서 킹제임스 성경도 2차 번역본이 된다,
이제는 시대가 변하여 더 좋은 번역본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성경 독자들에게는 참으로 기쁘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으니 이것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오랜 시간동안 한국 성도들의 신앙에 지대한 공헌을 한 ‘개역 성경’ 자체를 부정하려는 생각들이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원인 중의 하나는 성경 속에 ‘없음’이란 구절 때문이다. 그 요지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완전하게 보존하셨는데 어떻게 ‘없음’이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듣고 보면 맞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치명적인 오해가 있다.
첫째, 사본(寫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오는 오해이다. 일반 성도들이 접근하게 어려운 영역이라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둘째, 번역본(飜譯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오는 오해이다. 번역본은 하나님의 은혜이지 문자적 보존에 대한 약속의 결과물이 아니다. 따라서 번역이라는 ‘섭리적인 보존’의 의미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셋째, ‘완전한 말씀’과 ‘완전한 성경’을 구분하지 못한 오해이다. ‘완전한 말씀’과 ‘완전한 성경’은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성경 안에 있는 문자는 불완전하다. 왜냐하면 문자는 오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단어의 의미도 변하고 철자법도 바뀐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들에게 계시하기 위한 도구인 문자 자체는 불완전한 체계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무궁토록 완전하다. 따라서 성경이 완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하기 때문에 어떤 시대, 어떤 지역, 어떤 인종, 어떤 언어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성경은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이 사용하는 문자로 기록된 책이다. 마치 예수님 안에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이 공존하는 것과 비슷하다. 예수님이 완전한 하나님이라고 해서 예수님은 눈물도 없고 고통도 없고 배고픔도 모르는 분이셨는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의 연약하심이 그대로 있었다. 성경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은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면서도 동시에 사람들이 사용하는 문자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 시대에 맞는 맞춤법이 나오면 그 이전에 사용되었던 단어나 문법이 오류투성이가 되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틀렸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적어도 세 가지 오해가 풀리면 ‘없음’이란 구절 때문에 생기는 불필요한 논쟁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다. 먼저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손양원 목사(1902-1950)는 본 글을 통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한국 교회의 보물이며 자랑이며 한국 사회의 빛과 소금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분이다. 그런데 그분이 평생동안 읽고 묵상하고, 기도했던 성경이 ‘없음’이란 구절이 있는 ‘개역성경’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누가 그분이 읽었던 성경을 폄하할 수 있는가? 아니면, 손양원 목사는 문제가 없는데 그분이 읽었던 성경은 문제가 있다고 말할 것인가?
‘없음’이란 구절이 있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필사본(筆寫本)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필요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번역본은 번역을 위한 저본(底本)이 있다. 그 저본이 되는 필사본(筆寫本)은 크게 대문자 헬라어 사본과 소문자 헬라어 사본으로 나뉜다(*구약성경에는 ‘없음’이란 구절이 없기 때문에 신약성경만 다루기로 하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역성경의 저본(底本)은 대문자 헬라어 사본 계열이다. ‘없음’이란 구절이 생기게 된 것은 대문자 사본과 소문자 사본의 차이를 의미한다. 사본학에서는 이것을 ‘이문’(異文)이라고 한다.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장(章)과 절(節)은 소문자 사본 계열인 수용본문(TR)에서 먼저 만들어졌다. 이후에 대문자 사본에서 번역된 영국 개역성경은(RV) 이미 만들어진 장(章)과 절(節)을 그대로 존중하여 수용하였다. 다만 대문자 사본과 소문자 사본의 차이를 공란(空欄)으로 남겨 놓았다. 영국 개정역(RV)에는 영어로 ‘없음’이란 단어가 없다. 그러나 한국 개역성경은 너무나 친절하게 ‘없음’이란 구절을 집어 넣었다.
21
22 And while they abode in Galilee, Jesus said unto them, The Son of man shall be delivered up into the hands of men; (Mat 17:21-22) – 영국 개정역(ERV)
21 (없 음)
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마태 17:21-22 ) –개역 개정역
그런데 한글 개역성경에만 있는 ‘(없음)’은 심각한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사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올무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차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최소한 이해가 더 필요하다.
1. 사본(寫本)에 대한 가치 중립적 사고가 필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의 도시이기에 그곳에서 발견된 사본은 사악한 사본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이러한 결론은 사본에 대한 치명적인 무지이며 독선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이집트로 피신하신 사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마 2:15)
사악한 애굽으로 피신했다고 해서 예수님까지 비난할 것인가?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붙잡으려던 대제사장에게 반문했다.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요 7:51)
그러자 대제사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요 7:52)
유대 대제사장의 관점에서는 누가 선지자든지 상관 없었다. 갈릴리 출신은 모두 사악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킹제임스 성경의 저본(底本)이 되는 에라스무스 성경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에드워드 힐스의 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1516년과 1535년 사이에 에라스무스는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다섯 판에 걸쳐 펴냈다. 첫 번째 판에는 본문 앞에 교황 레오 10세에게 보내는 헌정사… 등이 있다”(킹제임스 변호, p. 195)
에라스무스 성경 초판에는 교황 레오 10세에게 보내는 헌사가 있다. 교황 레오 10세는 면죄부 판매를 허용한 교황이며 이로 인해 종교개혁이 촉발되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렇다고 해서 에라스무스가 편집한 헬라어 성경이 사악한 사본인가?
(교황 레오 10세: http://ko.wikipedia.org/wiki/%EA%B5%90%ED%99%A9_%EB%A0%88%EC%98%A4_10%EC%84%B8)
사본은 알렉산드리아에서 발견되었든지, 시내산에서 발견되었든지, 아니면 바티칸에서 발견되었든지 사본 자체가 사악하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자신의 상상 속에서 지어낸 억측에 불과하다. 그렇지 않으면 영지주의자들처럼 육(肉)은 악하고 영(靈)은 선하다는 이원론적 결론을 내리고 성경을 보는 것이 되고 만다. 그들(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의 육체까지 판단하여 예수님이 육체로 오시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2. 사본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에드워드 힐스는 에라스무스가 헬라어 성경을 편찬하기 전에 수집한 사본이 11세기에서 15세기 사본이라고 자료를 제시했다. 이 외에도 라틴어 사본 두 개를 카톨릭 사제인 자신의 친구에게서 빌렸다고 했다(킹제임스 변호, p.196). 그 이름은 존 콜렛(John Colet)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는 헬라어 신약 사본이 크게 대문자 헬라어 사본과 소문자 헬라어 사본으로 구분되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매우 중요한 구분이다. 왜냐하면 헬라어 소문자는 8세기 말엽과 9세기 초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신약성서 사본과 정경, p. 21). 그 의미는 사도 바울 당시에는 소문자 헬라어가 없었다는 뜻이다. 글자만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대문자 헬라어 사본에는 쉼표도 없고 띄어 쓰기도 없고 구두점도 없다.
대문자 헬라어 사본에서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시내사본, 바티칸 사본, 알렉산드리아 사본이다.
시내 사본은 4세기, 바티칸 사본은 4세기, 알렉산드리아 사본은 5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대문자 사본들은 에라스무스가 수집한 소문자 사본의 연대보다 길게는 1000년 이상이나 오래된 사본들이다.
다시 반복하지만 시내산 사본이든지, 알렉산드리아 사본이든지, 바티칸이든지 사본이든지 그 자체는 선악의 기준이 아니다. (물론 알렉산드리아 사본과 바티칸 사본에 외경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킹제임스 성경 초판에도 외경이 포함되어 있다.)
북한 사람들이 보는 성경은 악한 성경이고 남한 사람들이 보는 성경은 선한 성경 일리가 없지 않은가? 성경을 그렇게 평가하지 않은 것처럼 사본 자체도 그렇다는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사본’이라고 해서 모세 시대의 사악한 바로와 연관 짓거나 ‘바티칸 사본’이라고 해서 중세 암흑시대의 로마 카톨릭을 연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3. 다양한 사본이 존재하는 이유
사본학자들은 시대가 지날수록 사본 속에서 ‘첨가’되고 ‘변형된 구절’들이 많이 등장하게 되는 특징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형된 차이를 ‘이문’(異文)이라고 한다. 사본학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연구 분야이다. 사본은 번역본이 아니지만 시대가 흐름에 따라 더 편리하고 쉬운 문자의 영향을 받았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마치 오늘날 현대 중국이 간체자를 사용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동일한 한문이지만 더 쉽고 편리한 문자를 사용하려는 현상은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다. 그 원인도 다양하다. 심지어 교리적인 부분을 더 분명하게 하도록 첨가된 부분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요한일서 5장 7절이다. 에라스무스 3판은 요한의 콤마로 유명하다.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요 5:7-8)-개역개정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분은 하나이시니라. 땅에 증언하는 셋이 있으니 영과 물과 피라. 또 이 셋은 하나로 일치하느니라”(요 5:7)-흠정역
요한의 콤마는 위 밑줄 친 구절에 대한 명칭이다. 에라스무스 헬라어 성경1판과 2판에는 밑줄 친 구절이 없이 출간하였다. 그러자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거센 항의가 일어났다. 에라스무스는 이 항의를 잠재우기 위해 헬라어 사본 중에 단 하나라도 발견되면 그것을 복원하기로 합의하였다. 힐스의 글에도 있는 내용이다.
“많은 비평가들은 이 사본이 1520년경에 에라스무스를 반박할 특별한 목적으로 옥스퍼드에서 기록되었다고 믿고 있으며 에라스무스 자신도 자신의 주석에서 그렇게 언급했다”(킹제임스 변호, p. 207)
에라스무스는 로마 카톨릭에서 제시한 헬라어 사본을 근거로 3판부터 요한의 콤마를 첨부하였다. 그런데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루터 성경에는 요한의 콤마가 없다. 에라스무스 제 2판에서 번역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루터 성경에 ‘없음’이란 단어가 없다. 번역할 때부터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요한의 콤마가 있음으로써 삼위일체에 관한 진리가 더 분명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삼위일체에 관한 진리는 이 구절 외에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명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에라스무스 1판과 2판은 오류 있는 성경이고 3판부터 완전한 성경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비록 이문의 차이가 있다고 할지라도 섭리적인 관점에서는 모두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4. 다양한 사본은 하나님의 안전 장치
일반 사람들은 필사본을 거론할 때 발견되는 사본들이 신구약이 통째로 묶여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다시 말하지만 초대 교회시대에는 66권 완전한 성경이 없었다.
사도 요한이 1세기 말엽에 요한 계시록을 최후로 기록하였지만 신약 27권이 공식적으로 선언된 것은 아프리카 카르타고 공의회에서(397년)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오늘날처럼 구약과 신약이 하나로 통합되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5세기가 지나서 일어난 일이다. 에라스무스 자신도 27권이 담겨 있는 4종류의 헬라어 성경을 모아서 편찬한 것이 아니라 조각난 사본들을 하나로 통합해서 27권의 헬라어 성경을 편찬한 것이다.
그래서 1516년은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 해이면서 동시에 성경을 인쇄기로 찍어내기 시작한 해(年)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마가복음 16장 9-20절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개역 성경 난외주에 보면 ‘어떤 사본에는 16장 9-20절까지가 없음’이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개역성경은 왜 이런 설명을 하고 있으며 ‘어떤 사본’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에드워드 힐스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이 구절들은 알레프나 B를 제외한 모든 그리스어 사본들에서 그리고 k를 제외한 모든 라틴어 사본들에서 발견된다”(p. 160)
‘알레프’는 ‘시내 사본’을 의미하고 ‘B’는 ‘바티칸 사본’을 의미하고 'k'는 '구(舊) 라틴 사본'을 의미한다. 그런데 '구(舊) 라틴 사본'에는 '짧은 결말'로 호칭하는 짧게 변형된 구절만 있다. 대문자 사본 중에서 시내사본과 바티칸 사본에는 마가복음 16장 9 -20절이 없다. 그러나 같은 대문자 사본인 ‘알렉산드리아 사본’에는 있다.
다시 반복하지만, 하나님께서 기록된 말씀을 보존하시는 방식을 보면 구약 성경은 일자형 썰매이지만 신약성경은 부채꼴형 썰매이다. 신약성경의 사본들이 어느 하나가 물에 빠져도 모두 죽지 않게 섭리적으로 보존하셨다는 의미인 것이다.
에라스무스가 참고한 마지막 계시록 사본(사본 1r)에는 6구절이 빠져 있었다고 힐스도 자신의 책에서 말하고 있다(킹제임스 변호, p.200)/(신약성서 사본과 정경, p.93).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성경을 편찬하는데 문제가 없었던 것은 라틴 사본에는 빠진 6구절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5. ‘없음’이란 구절은 옳고 그름의 기준이 아니다
개역 개정역을 보면 신약성경에 ‘없음’이란 구절이 13군데가 등장한다.
1) 마 17:21 (없음) –개역
어떤 사본에, 21절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가 있음.
2) 마 18:11 (없음) – 개역
어떤 사본에, 11절 ‘인자가 온 것은 잃은 자를 구원하려 함이니라’가 있음.
3) 마 23:14 (없음) –개역
어떤 사본에, 14절에 막 12:40과 눅 20:47과 유사한 구절이 있음.
4) 막 9:44 (없음)-개역
어떤 사본에, 44, 46 양절에, 48절과 같은 문구가 있음
5) 막 9:46 (없음)-개역
어떤 사본에, 44, 46 양절에, 48절과 같은 문구가 있음
‘거기에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48절)
6) 막 11:26 (없음) –개역
어떤 사본에, 26 ‘만일 너희가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지 아니하시리라’가 있음.
7) 막 15:28 (없음)-개역
어떤 사본에는, 28 ‘불법자와 함께 인정함을 받았다 한 성경이 응하였느니라’가 있음.
8) 눅 17:36 (없음)-개역
어떤 사본에는, 36절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가 있음.
9) 눅 23:17 (없음) –개역
어떤 사본에는, 17절 ‘명절을 당하면 반드시 한 사람을 놓아주더라’가 있음.
10) 행 8:37 (없음)-개역
어떤 사본에, 37절 ‘빌립이 이르되 네가 마음을 온전히 하여 믿으면 가하니라.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줄 믿노라’가 있음.
11) 행 15:34 (없음)-개역
어떤 사본에, 34절 ‘실라는 그들과 함께 유하기를 작정하고’가 있음.
12) 행 28:29 (없음)-개역
어떤 사본에, 29절 ‘그가 이 말을 마칠 때에 유대인들이 서로 큰 쟁론을 하며 물러가더라’가 있음.
13) 롬 16:24 (없음)-개역
어떤 사본에, 24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모든 이에게 있을지어다 아멘’이 있음.
(*특이한 것은 누가복음 17장 36절이다. 이 구절은 에라스무스 1,2,3,4,5판과 스테파누스 1,2,3판에는 없다. 스테파누스 4판부터 있다. 이 구절은 틴데일 성경에도 없다.)
개역성경의 중심 저본(底本)은 대문자 사본 계열이다. 그러나 KJV성경은 소문자 사본 계열에서 번역된 성경이다. 연대적으로는 많게는 1,000년의 차이가 난다. 쉽게 말하면, 대문자 사본은 최초 신약성서가 기록 완성된 된 약 AD 90-100년경에 훨씬 가까운 연대에 필사된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성서를 최초로 기록한 기자들의 원문에 더욱 일치성이 높은 것이 대문자 사본이다. 그래서 TR계열의 소문자 사본들은 원래 대문자 사본에 없었던 단어나 문장을 인위적으로 첨가한 것들이 많이 발견된 것이다.
대문자 사본의 필사 연대를 보면 소문자 사본보다 먼저 필사 되었다. 그러나 사본이 발견되어 사본 연구가 먼저 된 것은 대부분 소문자 사본 계열이었으며, 뒤늦게 대문자 사본들이 발견되었다. 그래서 성서 사본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이 두가지의 사본 계열을 면밀히 조사 연구하게 되었고 대문자 사본과 소문자 사본 간에 상이한 부분들을 더욱 세밀하게 연구하게 되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비평본문이다. "비평본문"에서 "비평"이라는 말은 뭔가를 트집잡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원래 대문자 사본에는 어떻게 기록되었는지, 또는 다른 사본에서는 어떻게 기록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장치를 말하는 것이다. 실례로 한글개역성경 난외주를 보면 "어떤 사본에는 ***라고 되어 있음"이라고 정직하고도 친절하게 설명을 달아 놓았는데, 이것이 바로 비평본문장치인 것이며, 이러한 본문을 비평본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 대문자 사본은 대략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1. 시내사본 : 4세기경, 약 AD 360년 이전 사본
2. 알렉산드리아 사본 : 5세기경 사본
3. 바티칸 사본 : 4세기경 사본
4. 에프라임 사본 : 5세기경에 필사
5. 베자 사본 : 5세기의 이중언어로 필사된 코덱스 사본.
6. 클라로몬트 사본 : 6세기경 이중언어(좌측에 헬라어, 우측에 라틴어)로 필사된 사본
7. 워싱턴 사본 : 4세기말이나 5세기 초의 사본
8. 코리데티 사본 : 9세기경 후기 대문자체로 필사된 사복음서 사본
● 소문자 사본은 12-13세기경에 필사된 사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에라스무스가 헬라어 신약을 처음으로 출판할 때(1516년) 그는 사본. 1(12세기 사본)을 사용하였고 그의 주요 자료였던 사본 2.(13세기 사본)의 보충 자료로 사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소문자 사본 중에 사본 33, 사본 1424, 사본 1739, 는 9-10세기경에 필사된 사본이다.
한국의 킹제임스 성경 복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치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항변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상상일 뿐이다. 또한 진리에 대한 믿음과도 전혀 상관없는 우월주의 의식일 수 있다.
첫째로, TR 옹호자들의 주장은 교회가 1,500년 동안 전통적인 본문(수용본문)으로 받아들였고, 하나님은 부패한 본문을 교회가 따르도록 하시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TR의 완전성이 입증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본문비평학자들이 말하는 것은 TR이 나쁘거나 이단의 본문이 아니라는 사실과 또한 인쇄기가 발견되기 전에는 어떤 성서도 완전히 동일한 성서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둘째로, TR 옹호자들의 주장은 소수의 초기 사본들의 증거를 선호하며 수백 개의 후기 사본들의 증거를 무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세속문헌의 본문비평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칙으로서 더 오래되고 믿을만한 증거사본이 후기 사본들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것이다.
셋째로, 수용 본문이 실상은 더 오래되고 내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이 TR 옹호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비잔틴 본문 유형의 원조가 될 수 있는 오래된 사본이 한두 개 있을 수 있으나 수용본문이 더 오래된 것이 결코 아니다. 또한 수용 본문이 내적으로 우월하다는 주장은 아주 주관적인 견해이다. 본문 유형을 면밀히 검토해보면 후기 본문이 일반적으로 열등할지언정 결코 우월한 적이 없었다.
생각을 해보자.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글은 한글 맞춤법이 만들어진 이후의 한글이다.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같은 한글이라도 이해하기 힘든 문장을 만나게 된다. 사본학에서는 이러한 변화와 차이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킹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차이를 마귀가 만들었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킹제임스 성경 외에는 모두 부패한 성경이 되고 만다. 당연히 부패한 성경은 부패한 신앙을 낳는다는 쉬운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러한 접근방식이 과연 맞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러한 관점이 맞다면 ‘없음’이 있는 성경을 사용했던 손양원 목사의 신앙은 부패한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과연 그러한가?
사본의 차이(이문)를 마귀가 만들었다는 것은 정말 상상력이 풍부한 생각이다.
쉬운 예로, 아래와 영어문장 처럼, 대문자로 기록된 영어 성경이 있다고 하자.
‘INTHEBEGINNINGGODCREATEDTHEHEAVENANDTHEEARTH’.
무슨 뜻인지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이 구절을 소문자로 풀어 쓰면 다음과 같다.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대문자 헬라어 사본과 소문자 헬라어 사본은 단순히 글자만 다른 것이 아니라 구두점, 쉼표, 마침표가 없는 것도 차이이다. 이렇게 띄어 쓰기가 아닌 이어 쓰기(scriptio continua) 때문에 오해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많은 사본학자들이 실제 사본을 연구한 결과는 그러한 오해의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위의 전자는 띄어쓰기가 없는 영어 대문자로 구성된 창세기 1장 1절이다. 대문자 헬라어 사본도 이런 형태로 기록되어 있다. 소문자체는 글자와 글자를 영어의 흘림체 처럼 이어서 쓰므로 필사 속도도 빠르고 글씨체가 작기 때문에 지면을 차지하는 공간도 작아져서, 대문자체보다는 여러 면에서 경제적이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소문자체 사본이 대량으로 생산되게 되었다. (p. 21 by 신약성서 사본과 정경).
그러므로 소문자 사본을 다수 사본이라 하는 것은 반대로 대문자 사본은 더 이상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는 성경이 아니라는 뜻도 된다. 자신도 읽기 어려운 성경을 무엇 때문에 필사를 하겠는가? 그래서 대문자 사본은 소수 본문이 되고 소문자 사본은 다수 본문이 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본에 대한 지식이 없을 때에는 자신이 보는 킹제임스 성경(KJV) 외에는 모두 사탄이 개입해서 변개시킨 성경이라고 말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래야만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는 차별된 신앙인, 우월한 신앙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무의미하다. 한발 짝만 뒤로 물러서면 모두 이해될 수 있는 문제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성경을 보존하도록 부탁하시겠는가? 홍해를 가르고 요단 강물을 마르게 하신 하나님이 힘이 미약해서 사람들에게 그런 부탁을 하시겠는가?
그렇다면 어찌하여 개역 성경의 ‘없음’이란 구절을 사탄이 개입한 것으로만 생각하는가? 오히려 대문자 사본과 소문자 사본에서 생기는 그 차이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보존의 역사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은 왜 못하는 것인가? 사람들의 연약하고 불완전한 손길을 통해서도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보존하셨다는 생각은 왜 못하는 것인가?
참으로 심각한 차이는 이러한 이문(異文)의 차이가 아닌 ‘마르시온 성경’이나 ‘위경’(僞經)이나 ‘외경’(外經)이다. ‘마르시온’은 누가복음 일부와 바울 서신 10개만을 추려서 마르시온 성경을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위경이나 외경은 성경 66권에 있는 근본적인 교리와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외경인 토빗서 6장 8절에는 물고기 염통과 간을 태워 마귀를 쫓는다는 내용이 있다. 바룩서 3장 4절에는 죽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내용이 있다. 마카베오 2서 12장 45절에는 죽은 자들이 속죄한다는 내용이 있다. 집회서 38장 24-34절에는 농부나 기술자, 대장장이, 옹기장이는 성경학자가 될 수 없다는 내용이 나온다. 아모스 선지자는 농부이며 사도들은 대부분은 어부들이다. 교리적으로도 심각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참으로 심각한 차이란 그런 차이를 말하는 것이지 이문의 차이가 아닌 것이다.
참고로 1611년판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는 정 가운데, 외경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1611년판 킹제임스 성경은 이 외경을 구약과 신약에서 관주로 사용하고 있다.
(http://cafe.naver.com/palmtree7/107)
6. ‘없음’이 생겨난 이유
성경의 장(章)의 구분은1200년대 초 영국의 켄터베리 대주교 스테펜 랭돈(Stephen Landon)이 라틴 벌게이트(vulgate)를 구분한 것을 최초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절(節)까지 나누지는 않았다. 구약의 절은 1440년 랍비 이삭 나단(Rabbi Isaac Nathan)에 의해 도입되었고 신약은 1551년 스테파누스(Robert Stephanus)에 의해 시작되었다(p. 21, 신약성서 사본과 정경). 그래서 스테파누스 성경 제 4판(1551)부터 성경 전체가 장(章)과 절(節)로 구분되기 시작하였다. 킹제임스 성경도 스테파누스가 만든 장과 절을 그대로 따랐다. 그 이후부터 모든 사본과 번역본이 출판될 때 통일성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문자 사본이 그 이후에 발견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이런 장과 절 시스템이 대중화 되었기 때문에 다시 만들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그 차이는 공란으로 남겨두었다.
* 장(chapter) 나누기와 장 제목: 위에서 언급한대로, 오늘날의 신약성서의 장과 절은 각각 13세기 초의 랭돈(Langdon)과 16세기의 스테파누스(Stephanus)의 작업에 의한 것이고, 그 이전에는 이와 동일한 장과 절 나눔이 없었다. 그러나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이와는 다른 형태의 장이나 문단 구분이 있었다. 또한 그 장이나 문단에 대한 제목도 붙였다. 이러한 장을 도입하고 있는 사본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바티칸 사본인데, 미태복음은 170장, 마가복음은 62장, 누가복음은 152장, 요한복음은 80장으로 되어 있고, 바울 서신은 한 책 처럼 장을 나누었기 때문에 서신의 순서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장이나 문단의 제목을 도입한 사본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알렉산드리아 사본이다.
대문자 사본인 알렉산드리아 사본은 1627년 콘스탄티플 장로에 의해 영국의 찰스 1세에게 헌정된 사본이며 시내산 사본은1844년 독일의 사본학자 티센도르프에 의해 시내산 성 캐더린 수도원에서 발견한 사본이다. 대문자 사본 중에는 ‘베자 사본’도 있다. 베자가 만든 사본이 아니라 베자가 1581년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 기증한 대문자 사본을 말한다. 이 사본 이름을 ‘코덱스 베자’ 또는 ‘D 사본’이고 한다(킹제임스 성경 4중 우수성, 도표 p.38).
또 클라로몬트 사본(Codex Claromontanus)이 있는데 이것은 6세기경의 대문자 사본이다. 베자 사본에 없는 히브리서와 바울 서신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베자 사본을 보충한다는 의미로 ‘DP’, 또는 ‘D2’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다(같은 책, 도표, p.38). 이와 같이 대문자 사본이든지 소문자 사본이든지 ‘사본’ 전체가 완전한 하나의 성경으로 발견된 것은 거의 없다.
에라스무스가 참조했던 ‘사본 1’에는 복음서, 사도행전, 서신서들만 있었다. ‘사본 2’는 복음서만 있었다. ‘사본 2ap’에는 사도행전, 서신서만 있었다. ‘사본 4ap’는 사도행전과 서신서가 있었다. ‘사본 1r’은 요한 계시록만 있는 사본이었는데 마지막 6구절이 없는 사본이었다(킹제임스 성경 변호 p. 200, 신약성서 사본과 정경p. 93.). 그래서 현재까지 발견된 사본이 5,800개가 발견되어도 동일한 100%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문의 차이가 성경의 기본적인 교리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보존의 섭리가 아닐 수 없다. 수많은 연약한 사람들이 필사한 성경임에도 불구하고 66권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성경 66권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은 이러한 이문의 차이가 아니라 외경이나 위경이다. 위경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외경은 결코 성경 목록 안에 들어가서는 안 되는 책이다. 그래서 현대 역본 중에서 외경을 부록으로 넣거나 첨가한 성경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킹제임스 성경이 외경을 성경 안에 포함시켰다. ‘없음’이란 구절과 비교하면 비교도 안 되는 차이다.
영국은 1611년 킹제임스 성경을 출판한 이후 약 274년 후인1885년에 대문자 사본에서 번역된 영국 개정역을 세상에 내놓았다(English Revised Version).
당연히 소문자 헬라어 사본 계열인 수용본문(TR)을 지지하는 사람들 편에서는 분노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성경 자체를 불신하는 위험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킹제임스 성경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본문 비평’이나 ‘알렉산드리아 사본’, ‘시내 사본’, ‘바티칸 사본’이란 말만 들어도 치를 떨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이것 역시도 하나님의 보존의 섭리인 것이다. 대문자 사본과 소문자 사본의 차이는 오히려 수세기를 지나왔어도 큰 변화가 없음을 증명하는 것도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차이로 인해 수많은 성경 연구가 지속적으로 일어났으며 말씀에 대한 깊은 관심이 더욱더 고조되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서 다음과 같은 마음을 전했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 1:18)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대문자 사본 계열의 성경이든지 소문자 사본 계열의 성경이든지 차이가 없다. 목숨을 걸고 한국에 복음을 전했던 수많은 선교사들이 들고 온 성경은 모두 대문자 사본 계열이었기 때문이다.
손양원 목사가 사용했던 개역성경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셨음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반대로 킹제임스 성경을 본다고 해서 모두 정상적인 신앙인이 된다는 논리라면 킹제임스 성경을 보는 안식교, 몰몬교 또는 프리메이슨 회원들도 바른 교리를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성경을 보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 제칠일 안식교의 '벤자민 윌킨슨'이 킹제임스 유일주의 사상을 만든 사람이다.)
(* 벤자민 윌킨스 관련정보: http://en.wikipedia.org/wiki/Benjamin_G._Wilkinson )
Benjamin George Wilkinson(1872–1968) was a Seventh-day Adventist(제칠일 안식교) missionary, educator, theologian and considered one of the originators of the King James Only beliefs. He was also the Dean of Theology at the Seventh-day Adventist Washington Missionary College (now known as Washington Adventist University) which is located in Takoma Park, Maryland, near Washington, D.C. -------------- 제칠인안식교의 킹제임스 유일주의 관련 글: http://en.wikipedia.org/wiki/Our_Authorized_Bible_Vindicated |
그리고 기록된 66권 성경만이 믿음과 삶의 최종권위가 되어야 함을 부인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자신이 보는 번역본 성경 외에는 모두 부패한 성경이라고 몰아세우는 일은 누가 더 좋아하는 일인지 자문해 볼 필요는 있다고 본다.
에라스무스 3판도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에라스무스 2판도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최초로 영어로 번역된 틴데일 성경과 킹제임스 성경의 차이는 약 10-15%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틴데일 성경은 오류가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틴데일 성경도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렇다면 킹제임스 성경도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개역성경도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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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킹진영이 얼마나 많은 뻥으로 순진한 한국 교인들을 미혹했는지 이 글 하나만으로도 알 수가 있을 겁니다.
킹 진영은 자기들이 떠 받드는 성경을 믿지 않는 부류이고, 자기들은 우월적 믿음을 가졌다는 만족감을 즐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징물아비가 도둑이 훔친 물건을 구입했는데 그 도둑이 말하기를 "아이고, 내 어제 수십 군데의 빈집을 털어 모조리 갖고 올 수가 없는 가운데 이 훔진 물건밖에 갖고 올 수 없었오, 장물애비야. 그런데 어제 내가 다 훔쳐오지 못한 물건들이 어떤, 어떤, 어떤 집구석에 수북히 쌓여있다네. 그러니 장물애비 당신에게 못다 훔친 그런 집들의 주소와 물품들의 목록들을 정리해 이 쪽지를 건네주니 유심히 보면서 너 장물애비가 기회가 되면 그 도둑질 미수 물품들을 훔쳐오게나 매우 존경하는 장물애비여!!" 이 두더지 어젯밤 꿈에 이런 꿈을 꿀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하나의 예를 들어 여러분들께 말씀을 드릴 때에 이 가상의 꿈의 내용이 어떤
의미인가 즉각적으로 파악하실 수 있으신 분들이라면 머리큐(IQ)가 저 두더지 정도의 머리큐 수준(?)이 되시는 분들로서 매우 존경할 것입니다, 앞으로...
@두더지 그래서 어쩌라고요?
중얼중얼하지 말고 정확하게 말씀해 보세요.
메쯔거 책 한권이라도 읽어 보세요.
@산악잔차 잔차님 아예 이참에 영어킹제임스성경 보다 우월한 영어성경, 한글킹제임스성경 보다 우월한 한글성경을 번역해보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대단한 영어실력, 한국어 실력이 계신 분이신데 그 재능을 잔차역 영어성경, 잔차역 한글성경으로 번역하시는데 올인을 해보시기를 건의드립니다.
참 적절하고 좋은 자료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