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교사론
교육은 궁극적으로 인간을 위한 활동이다. 그러므로 교육에 관련된 모든 환경들은 교육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그것은 결국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교육은 실제적으로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 교육 내용을 가지고 교실이라는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교육에 관련된 교육심리, 교육과정, 교육행정, 교수학습이론 등 모든 것들은 교사와 학생 사이에 바람직하고 효율적인 교육활동이 일어나도록 도와주는 입장에 서게 된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뛰어넘지 못한다. 아무리 교육적 환경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하더라도 교사가 그것을 현장에서 적용하고 활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교사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교사교육과 교직의 지도성이 강조되고 있다.
교사의 지도성과 미술교사
1) 교사의 지도성
지도성이란 개념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우나 하나의 조직체 안의 상호 작용에 의해 목표를 지향하는 활동으로, 주어진 상황 속에서 구성원들의 저항을 자아냄없이 조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조직 구성원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협조하도록 하는 일종의 기술 및 영향력이라 할 수 있다. 지도성은 조직장 자신이 평소에 쌓은 명망, 권위, 영향력 등을 근거로 해서 권위가 성립하는 것이다. 이런 권위는 지도자 자신이 평소에 쌓은 권위, 즉 자발성을 근거로 하는 것이다.
원래 지도성은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있었다고 할 수 있으나 학문적으로 연구가 시작된 것은 산업 사회가 발달하면서 조직의 효율적인 구성과 생산성의 증대 등의 목적 때문에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지도성에 대한 연구는 각 영역으로 파급되어 적용되면서 그것을 교육에도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생기게 되어 교육적 지도성(educational leadership) 또는 교직의 지도성이란 말로 연구되고 있다. 이것은 교직이 다른 조직과는 다른 특성이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교직은 교원, 학생, 일반 직원, 학부모 등의 복합조직이고, 효과가 단기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며, 과업 중심이면서도 인간관계가 크게 작용하고, 결과가 매우 다양하다는 특성이 있다. 이런 특성에 기초한 교직의 지도성은 수업을 구성하고 조직하는 수업 지도성, 학교 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조직 지도성, 효과적인 지도와 장학을 하는 장학 지도성, 자료나 문서, 서무 등을 관리하는 관리 지도성 등이 있다.
교직의 지도성하면 보통 교장을 떠올리지만 교직의 지도성은 교육과 관련되어 있는 모든 지도자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교육이 실제적으로는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교사의 지도성도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이싸. 이는 교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교사상이란 당위성과 이상성을 전제로 하여 사회가 기대하고 바라며 장차 이룩하고자 하는 새로운 교사의 모습을 의미하는 것으로, 실현가능한 미래상을 의미한다.
이병진은 한국 교사상의 전통을 첫째로 한국의 교사는 만인의 사표가 되려고 노력하였고, 둘째로 항상 배우려는 자세를 견지했으며, 셋째로 정성을 다해서 가르쳐 왔다고 보고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교사의 자질을 다음의 다섯 가지로 들고 있다.
첫째, 한 사람의 휼륭한 인격자여야 한다.
둘째, 사랑의 실천가여야 한다.
셋째, 투철한 국가관과 올바른 역사적 안목을 지녀야 한다.
넷째, 스스로 사회계몽적 역할과 임무에 대한 자각을 가져야 한다.
다섯째, 폭넓은 교양의 토대 위에 고도의 전문적 지식과 기술을 갖추어야 한다.
한편 송용의는 인간주의 교육관에서 교사의 특성을 고찰했는데 인간주의적 교사의 자질로 다음의 여섯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진실한 교사
둘째, 어린이를 하나의 인간으로 존중하는 교사
셋째, 공감적 이해를 갖는 교사
넷째, 긍정적 인간관을 갖는 교사
다섯째, 자아를 상호교환하고 자아를 규율할 수 있는 교사
여섯째, 폭넓은 지식을 갖춘 교사
우리 나라 교사의 이상상은 대한교육연합회(현 한국교총)가 제정, 선포한 사도헌장과 사도강령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도강령 제2장을 살펴보면 스승의 자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첫째, 우리는 확고한 교직관과 긍지를 가지고 교직에 종사한다.
둘째, 우리는 언행이 건전하고 생활이 청렴하여 제자와 사회의 존경을 받도록 한다.
셋째, 우리는 단란한 가정을 이룩하고 국법을 준수하여 사회의 모범이 된다.
넷째, 우리는 학부모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지 아니하며 또 이에 좌우되지 아니한다.
다섯째, 우리는 자기향상을 위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전문화된 기술을 연마하는데 주력 한다.
2) 미술교사의 지도성
(1) 미술교사의 특수성
미술교사가 특수성을 가지고 있느냐를 살펴보려면 가르치는 내용인 미술교과가 특수한가를 알아보아야 한다. 미술교과가 타교과와 다른 성질로 다음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다른 교과가 대부분 학생에게 전달해야 하는 보편적인 지식이나 가치가 미리 정해져 있는 반면, 미술은 그런 보편성 보다는 학생의 개성과 창의성을 강조하는 교과이다. 미술이라고 해서 전달해야 할 지식이나 기능 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타교과 보다는 융통성이 매우 많으며, 기본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과 느낌 등을 반영하여 다양하고 개서있는 표현과 가치의 창조를 지향하는 교과인 것이다.
둘째, 학생들이 직접적으로 활동해야 하는 교과이다. 다른 교과도 학생의 활동을 강조하지만 다른 예체능 교과와 함께 말 보다는 학생의 실제적인 표현과 활동을 중시한다.
셋째, 미술은 시각적 활동이다. 인간이 사용하는 감각 중 가장 많이 활용하는 것이 시각이다. 다른 교과도 시각의 도움이 없으면 거의 교육이 불가능하지만 미술은 특히 그러하며, 시각의 전제 위에 미술은 가능한 것이다.
넷째, 어느 정도의 전문적인 기능을 갖추어야 한다. 미술을 언어적이기 보다는 활동중심이며 지식적이기 보다는 정서와 감성을 중시한다. 그래서 미술실기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어야 효과적인 지도가 가능하다.
다섯째, 인간의 이성적인 측면 보다는 감성을 강조하는 활동으로 좌뇌보다는 주로 우뇌와 관련된 활동이다. 이성과 감성이 뚜렷하게 구별되어 따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교과가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지식의 전달을 중시한다. 그러나 미술은 종합적이고 창의적인 정서와 느낌의 교육으로 주로 우뇌와 연결되는 활동이다.
이러한 미술교과의 특수한 성질은 미술교사의 특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2) 미술교사와 미술가
미술이 전문적인 감각과 기능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다 보니, 미술가와 미술교사라는 특수한 문제가 제기된다. 음악이나 체육 등도 같은 문제가 제기되기는 하지만, 미술처럼 교사활동을 하면서도 비교적 자유롭게 작가나 선수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큰 문제가 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이론이나 학문의 측면에서 보면 미술이 다른 주지교과는 물론 음악과 체육 보다도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뒤떨어져 있다. 그 이유는 1장에서 살펴 보았었다.
미술교사는 작가와 교사에 비추어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유형은 미술교육에서 교육보다는 미술을 강조하는 교사들이다. 미술을 전공하고 부수적으로 교직과목을 이수하여 교사가 된 사람들은 대부분 이 유형에 속하며 미술교육을 전공한 사람도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은 이 유형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교사이기 때문에 작가로서의 작품생활에 큰 방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교육을 무시하고 조형활동 자체만을 강조하기 쉽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미술은 가르칠 수 있는 활동이 아니므로 조형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 바로 미술교사의 일이며, 그것을 학생이 보고 본받게 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두 번째 유형은 미술 보다는 교육을 강조하는 교사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미술교육을 전공하여 작품활동 보다는 미술을 가르치는 교육에 비중을 두는 교사이다. 그들은 조형활동도 중요하지만 학생들로 하여금 조형활동을 할 수 있게 하여 학생들이 자신을 표현하고 조형의 즐거움을 알며, 생활 속에서 미를 보고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아동화를 보는 관점을 비교해 보면 미술을 강조하는 첫째 유형의 교사는 아동화를 작품 전체가 조화 속에서 통일감을 주어야 한다는 미술 전문적 입장에서 바라보려고 하여 좋은 작품을 만드는 기법이나 기능을 가르치려 한다. 반면 교육을 강조하는 교사는 기능이나 미적인 면이 다소 부족하다 하더라도 어린이의 마음이 그대로 표현되고 그림에 꾸밈이 없으며 나름대로의 개성있는 표현을 중시하여 창의적인 자기표현을 하도록 도와주려 노력한다.
요즘에 들어서는 「미술의 교육」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후자의 입장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미술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통찰력을 지니지 않고서는 어린이의 개성있고 자발적인 표현을 도와주고 발견하여 격려할 수 있느냐에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가장 바람직한 경우는 미술교육이 미술과 교육의 조화로운 일체화를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술에 대한 전문적이고 종합적인 이해와 기능을 갖추고 그와 더불어 교육에 대해서도 포괄적으로 이해하여, 그런 미술에 대한 전문적인 것들을 어린이의 수준에 맞게 도와주고 지도할 수 있는 교사일 것이다. 즉 참된 예술가임과 동시에 참된 교사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초등의 경우 모든 교사가 각 교과에 대한 이런 능력을 갖춘다는 것은 이상론에 가깝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초등에서는 「미술전담교사제」가 대두되고 있다.
초등의 미술전담교사
위에서 언급했던 미술교과의 특수성과 모든 교사가 바람직한 미술적 전문기능과 이해, 그리고 교육과 어린이에 대한 이해와 지도력을 함께 갖추기 힘들다는 측면에서 미술전담교사의 문제가 대두된다. 또한 국민학교 고학년 교사의 수업 부담이 너무 많으므로 전담교사의 도입으로 부담을 덜어주자는 입장과 교사당 학생수를 줄여야 한다는 이유 등 복합적으로 교과전담교사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하나의 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초등교사들은 음악, 미술, 체육과를 가장 지도하기 어려워하고, 그 이유로는 첫째, 예체능 교과의 지도 능력이 부족하고, 둘째, 예체능 교과를 경시하는 풍조 때문이다. 즉 가장 소홀히 지도하고 있는 교과가 체육, 미술, 도덕, 음악 순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체육, 음악, 미술을 모두 자신있게 지도할 수 있다고 대답한 교사는 0.7%에 불과했다. 또 이규선 등의 연구는 현행 학급담임제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 미술교과전담제를 주장하였다. 그 실시는 예체능 교과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교사양성 대학에서의 적절한 전담교사 양성과 제도적 장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첫째, 국민학교에서의 교육은 모든 교육의 기초가 되며 교육력의 영향이 가장 크고, 가소성이 높은 시기이면서, 전인교육을 실시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은 특징을 실행하기 위한 교과로 미술교육은 인간의 조화로운 발달을 위한 전인교육으로서 그 가치를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둘째, 국민학교에서 미술교육은 미술이라는 교과활동을 통하여 아동의 정서교육, 창의성 교육, 조형성 교육, 지적 교육, 자아개념 형성 및 실현교육이다.
셋째, 국민학교에서 미술수업에 대한 아동의 흥미도는 대단히 높다.
넷째, 국민학교 미술과 수업은 교사의 지도력에 의하여 좌우되고, 교사는 미술과 교육과정을 이해하고 수업에 임해야 함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면서 많은 교사가 미술과 수업의 애로점으로 자신의 실기능력 부족을 말하고 있다.
다섯째, 미술과 학습지도에 대한 교사의 능력 부족은 교원양성 기관에서 받은 미술과 학습지도에 대한 교육이 현장교육과 거리감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여섯째, 많은 교사가 예체능 교과를 지도하는 전문교사가 있기를 원하고 있다. 대상 학년은 중학년 이상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교사 자신의 지도혁 부족을 보완하기 위한 연수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결국 미술전담교사 문제는 첫째, 가장 좋은 것은 담임교사가 모든 교과를 능숙하고 바람직하게 지도하는 것이지만, 이런 만능 교사관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오히려 초등교육의 발전을 저해해 왔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한 교사가 특별활동까지 포함하여 10개 교과를 모두 잘 가르친다는 것은 힘든 일이며 오히려 기본적인 인격과 교양, 초등교육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능력을 갖추게 하고, 그 후에는 한 교과에 대한 전문가가 되는 것이 초등교육을 더 발전하게 하는 것이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미술전담제는 미술교과의 전문성과 특수성의 관점에서 논의가 되어야 한다. 즉 교사의 수업부담 경감이란 특면에서부터 접근해 간다면 여러 가지 부작용과 부정적 측면이 대두될 염려가 있다. 그러므로 국민학교 미술과 수업의 효과가 교사의 지도력에 따라 좌우되고, 어느 정도의 전문적인 실기지도 능력이 필요하며, 미술을 통해 어린이의 정서와 창의성, 개성, 조형력 등을 기르기 위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셋째, 현재 부분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교과전담제에 대해 교사들의 부정적인 견해가 많은데, 그것은 제도상의 미비, 교과전담제에 대한 현장의 이해부족, 증치나 보결교사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 담임교사의 선호, 젊은 교사의 무조건적 교과전담교사 배치, 부실한 운영 등에 기인하므로, 현실적이고 실제적이며 종합적인 연구로 실질적이고 바람직한 미술전담제가 실시되어야 한다.
넷째, 바람직한 미술전담제가 실시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사양성기관에서의 바람직한 교사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교사들은 미술과 지도가 안되는 이유로 대부분 실시지도 능력 부족을 뽑고 있으며, 그 부족은 대학에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때문에 미술교사에게는 어떤 인성과 능력이 필요하며 그런 것들을 기르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떤 방법으로 어떤 과정을 거치게 해야 하는지 연구하여, 바람직한 교사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하겠다. 이런 측면에서 이병진은 교원교육 프로그램을 교과활동과 교양과정(일반교양과 교직교양), 전공과정(학교교육학 영역, 교과내용학 영역, 교과교육학 영역)으로 나누어 교육하자고 주장하였는데,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하겠다. 또한 패터슨(Patterson)은 인간주의 교육은 인간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교육을 받은 교사에게서 나온다고 주장하고, 교사들에게 인간행도에 대한 하나의 체계적인 이론적 접근을 통해 훈시적 방법 뿐만 아니라 경험적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며, 인간주의적 교사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미술교사의 바람직한 자질
이제 초등의 경우도 미술전담교사에 의한 수업이 일반화되고 있기 때문에 미술교사에 대한 자질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결국 미술교육은 교사와 학생 사이에 미술내용을 매체로 수업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수업에서 교사의 역할은 절대적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술 교사의 자질로 카프만은 다음의 네 가지를 꼽고 있다.
첫째, 미술교사는 아동의 능력과 잠재력을 주의깊게 파악하고 깨우쳐 주는 눈을 가져야 한다.
둘째, 미술교사는 아동들이 재빨리 반응하고 배우고 창조할 수 있는 적절한 분위기를 마련할 수 있는 감화력이 있어야 한다.
셋째, 미술교사는 모든 인간관계에 대해 예민해야 한다.
넷째, 미술교사는 날카로운 통찰로 이끄는 적절한 지식과 폭넓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
미술교사는 세 가지 입장에서의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먼저 일반적으로 교사들이 갖추어야 하는 기본적인 자질을 먼저 갖추어야 하고, 그 위에 미술교과가 갖는 특성에 맞는 교사여야 하며, 또 미술수업의 특성에 맞는 교사여야 한다. 여기서는 일반교사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은 위에서 언급했으므로 두 가지 입장에서의 자질을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미술과의 특성에 따른 교사의 자질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미술은 일반적이고 규범적인 하나의 가치를 전달하기 보다는 학생 각자의 개성과 창의성을 강조하므로 미술교사는 어린이들을 하나의 인간으로 이해하고 그들이 다양하고 창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줄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둘째, 미술은 학생들이 직접 활동해야 하는 교과이므로 미술교사는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표현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셋째, 미술은 시각적이므로 어린이들에게 삶 속에서 환경을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시지각을 길러줄 수 있도록 미술 표현, 감상, 이해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가 있어야 한다.
넷째, 미술은 전문적인 표현 능력이 요구되므로 미술교사는 미술의 다양한 표현 방법, 재료 등을 알고 이를 직접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화나 조소 등 어떤 한 분야 뿐만 아니라 미술의 전 영역을 고르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다섯째, 미술은 이성보다도 감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이런 감성을 기러주는 교과가 별로 없기 때문에 미술교사는 미술을 통해 어린이들이 자신들의 정서를 표출하고 감각을 발달시키며, 그런 활동을 통해 길러진 미감을 생활 속에 활용하도록 이끌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미술수업의 특성에 따른 미술교사의 자질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미술수업은 우선 개방적이어야 하므로 미술교사는 자신의 생각이 그대로 어린이에게 미치지 않도록 자유로움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둘째, 미술은 어린이의 발달단계에 맞아야 하므로 어린이의 미술표현 발달을 완전히 이해하고 그에 맞는 제재, 참고작품, 재료 등을 안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셋째, 미술 수업은 표현 뿐 아니라 감상과 이해도 중요하므로 이해와 감상 교육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넷째, 미술수업은 즐거워야 하므로 어린이들이 미술시간은 즐거운 시간이란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자유롭고 허용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수업과정을 즐겁게 이끌 수 있는 자질이 필요하다.
다섯째, 미술수업에서 평가는 매우 어려우며 그 평가에 따라 어린이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기 때문에 미술교사는 직접적인 평가는 되도록 피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도록 하며, 학생들끼리 평가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수업의 과정에 따라 요구되는 미술교사의 자질을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목표의 설정 : 타당하고 명확한 교육목표의 인식과 설정 능력
·교과의 핵심 이해 : 교육내용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적절한 학습과제의 선정, 조직 능력
·학습활동의 전개 : 학습목표의 달성에 필요한 최적의 교수전략 설정 능력과 그 수행 능력
·합리적인 평가 : 합리적이고 적절한 평가활동을 통한 교수, 학습과정의 확인 및 개 선 능력
미술은 일반적인 하나의 가치보다는어린이의 다양한 개성과 창의성을 인정하고 오히려 그것들을 길러주는 교과이고,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여 활동해야 하는 교과이며, 시각적인 활동의 교과이다. 또한 미술이 요구하는 전문적인 능력이 필요하며, 이성보다는 감성, 좌뇌보다는 우뇌에 작용하는 교과이다. 이런 미술의 특수성 때문에 교사가 독단적인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거나 특정한 것을 하지 못하게 했을 때 어린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때문에 미술교사는 일반적으로 교사들이 갖추어야 하는 지도성을 물론 갖추어야 하지만, 그 바탕 위에 미술의 이러한 특성에 따른 지도성과 미술수업의 특성에 따른 전문적인 지도성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그런 측면에서 초등에서는 미술전담교사가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바람직한 교과전담교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만능교사를 요구하는 학급담임제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고, 교사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측면에서의 접근이 아니라 교과의 특성의 입장에서 접근해야 하며, 그에 대한 다른 모든 교육상황을 고려한 종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그런 전문적인 교사의 양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므로 교사양성 대학에서 자질있는 전문적 교사를 육성할 수 있는 교육과정과 교수진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미술교육의 역사
미술교육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미술교육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에 필수적인 일이다. 과거의 흐름을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검토하여 현재의 미술교육에 주는 시사점을 분석하며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이 장에서는 지금까지의 미술교육을 그 목적에 따라 세 흐름으로 묶을 수 있다고 보고 그것들의 역사적 배경, 주요 특징과 대표적인 미술교육자, 검토와 시사점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미술교육역사의 세 가지 흐름
역사적으로 인간이 있던 곳에 항상 미술이 있었고 문자가 생기기 이전부터 삶에 중요한 도구로 활용되었던 미술은 문명이 발달하면서 거의 상류계층의 전유물이 되었다. 미술이 교육에서 공식적인 교과로 받아들이는 데는 실로 긴 세월이 필요했다. 물론 미술가를 기르기 위한 미술교육은 도제형식으로 실시되었지만 학교에서의 본격적인 미술과교육의 역사는 백년이 약간 넘을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미술이 이간으로 하여금 미에 대한 판단을 가지게 하는 것으로 여겨 매우 가치있는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긴 세월 동안 미술은 학교의 정규 교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500년 초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공방 형태에서 소묘와 판화 등의 실기지도를 했다. 그는 인간 중심의 개성을 존중하는 교육을 강조하였고, 교사의 소묘를 모방하게 하거나, 비례에 맞게 자연을 소묘하는 학생들 자신에 의한 미술표현을 중시하였다. 또한 1550년경에는 로렌죠가 베르톨로 공방을 설립하여 근대적 화가교육을 실시하였다. 17세기에 들어서는 프랑스 등에 회화나 조각 아카데미가 세워져 평면연습을 통하여 인체를 묘사하고 조각을 단계적으로 연습하였다.
한편 교육학자들 중에서 미술교육에 관심을 두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에라스무스는 아동의 개념을 존중하고 시각을 이용하여 유희에 의해 학습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또 코메니우스(1592-1670)는 그의 저서 <大敎授學>에서 습자를 한 후에 소묘를 학습하는 것이 좋다고 하면서 모든 지식은 오관을 통과한다고 보고, 아동의 감각적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어린이의 내부감각을 발달시키는 하나의 방법으로 미술을 지지하였다. 로크(1632-1704)는 감상을 통한 교육, 과학적 지식을 인간의 복리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중시하였다. 또한 교과와 내용, 성인에게 있던 교육의 무게 중심을 아동으로 옮긴 루소(1712-1778)는 어린이의 본성을 중시하고 성장해가는 아동 발달의 여러 단계에 교육이 부합해야 한다고 보아 아동의 정서적 측면을 강조하고 손과 눈에 의한 공작활동도 강조하였다. 페스탈로찌(1746-1827)는 눈과 손의 감각 훈련을 통해 관념을 명확하게 하고 형태에 대한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고 보고 아동의 체험을 존중하며 자연물의 사생에 의한 소묘 교육과 찰흙에 의한 만들기 교육, 손의 기능 습득을 중시하였다. 프뢰벨(F. Frobel, 1782-1852)도 아동에게 놀이와 노작이 자기활동의 원리이며 인간형성의 양면이라면서 기하도형이나 여러 실물에 의한 교육을 중시하였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생산 방법이 급격하게 변하고 상품의 디자인이 중요해짐에 따라 산업계에서 미술을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동력으로 작동하는 기계로 인해 사람들은 일을 분화시켜 작업하게 되었고 기계에 의해 조악한 제품들이 쏟아지면서 상품의 미적인 면에 대한 요구가 거세져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많이 대두되었다.
유럽의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미술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기관이 많았으나 교과의 하나로 초등이나 중등에서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1820-30년대이다. 1827년 푸월(William B. Fwole)이 미국의 보스턴 영어고등학교에 소묘를 선택교과의 하나로 도입하였고, 1830년대에 미국의 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1833년에는 프랑스가, 1834년에는 영국이 초등교육에 국가의 재정을 지원하는 법률을 공포하였고, 런던 국제 박람회를 계기로 1835년에는 영국에 미술공업조사위원회(국회위원회)가 조직되어 미술과 디자인 원리에 관한 지식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최상의 방법을 검토하였으며, 1837년에는 국립 디자인 학교를 전국적으로 설치하였다. 또한 그 해에 프뢰벨은 최초로 유치원을 설립하여 놀이를 중시하고, 신의 개념을 기하학과 찰흙 등으로 단계적으로 지도하였다.
우선 미술은 다른 활동인 쓰기와 함께 교육과정에 도입되었다. 두 활동 모두 손과 관련되어 있고 글로 나타내기 어려운 부분을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찰흙 활동도 지리와 연결되어 교육과정에 포함되게 된다. 페스탈로찌는 지표 등고선을 표시하기 위해 찰흙을 빗어 실물교육의 한 부분으로 그것을 활용하였다. 프뢰벨은 " 현 시대에 미술은 진정한 자유활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단 하나의 것이고, 모든 인간은 다소 창의적인 활동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으며, 미술은 곧 인간을 신성한 창조자이게 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미술활동을 중시하였다. 여기서 프뢰벨이 말하는 미술은 기하학적인 선과 형태로 대강 구성하는 매우 형식적인 것이었다. 그에게 미술은 자유로운 신의 본질을 상징하는 기하학적이고 수학적 형태들의 구성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19세기 중반까지 미술교육은 미술가를 기르기 위해 도제형식으로 이루어지던 형태 외에 두 가지 요구에 의해 교육과정에 도입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산업혁명으로 인한 산업적 필요이며, 다른 하나는 루소 이후 아동을 중시하고 감각과 실물을 중시한 교육자들을 중심으로 실제적인 실물교육의 한 방법으로 도입된 것이다.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미술가들을 기르기 위해 도제교육 형태로 행해져 오던 미술교육은 산업혁명에 따른 사회의 요구와 루소 이후 교육방법의 무게 중심이 아동으로 옮겨감에 따라 학교 교육과정에 편입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산업혁명으로 전체 공정이 분화되어 노동자들이 한부분만 담당하게 되고, 보다 보기에 좋은(보다 잘 팔리는) 제품의 대량생산이 필요해짐에 따라 미술의 도움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 루소 이후 아동을 존중하게 됨에 따라 아동의 발달에 미술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즉 아동의 자발적인 충동의 배출구로서(루소), 어린이들의 내부 감각을 발달시키는 것으로서(코메니우스), 어린이들의 타고난 능력을 발달시키고 지리의 지표 등고선을 직접 제작하는 등의 실물교육의 일부로서(페스탈로찌), 자유로운 신의 본질을 상징하는 기하학적이고 수학적인 형태로 신의 이미지인 인간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서(프뢰벨) 미술을 활용했던 것이다.
19세기 중반부터 학교교육에 하나의 교과로 도입된 미술교육은 지금까지 각국에서 여러 가지 형태와 방법으로 전개되었다. 그럼 이러한 미술교육의 흐름을 어떤 방법으로 묶을 것인가? 그것은 「미술교육의 목적을 어디에 두었느냐」에 따라 묶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목적을 따라 미술교육의 다른 모든 것들, 즉 목표나 내용, 방법, 평가 등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여러 형태의 미술교육은 모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실시되었으며, 그 목적에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이러한 많은 목적들을 포괄적인 것으로 묶으면 크게 세 가지로 묶을 수 있다. 첫째는 표현기능을 향상시켜 미술가나 디자이너 등을 기르고자 하는 것이고, 둘째는 미술을 통해 인간의 잠재력, 특히 창의성을 기르고자 하는 것이며, 셋째는 미술의 본질적인 면에 가치를 두고 미적 경험이나 미적 자각, 미적 반응을 통해 미적 감수성과 미술을 이해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 세 목적의 묶음은 지금까지의 미술교육을 대체로 세 흐름으로 묶을 수 있게 한다. 그 하나는 표현기능 중심 미술교육이고, 다른 하나는 창의성 중심 미술교육이며, 또 다른 하나는 이해 중심 미술교육이다. 이 세 흐름의 역사적 배경과 주요 특징, 대표적인 학자나 미술교육 운동, 검토와 시사점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표현기능 중심 미술교육
표현기능 중심 미술교육은 「미술의 교육」이다. 즉 미술을 위한 교육을 말한다. 교육에서 미술을 가르쳐 표현능력을 향상시키고 결국은 사회에서 필요한 화가, 조각가, 디자이너, 공예가 등을 기르고자 하는 미술교육이다. 미술교육을 우리 생활에 필요한 물건이나 미술작품을 만들 수 있는 표현기능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16세기 이후 산업이 발달하면서 19세기까지 미술교육의 기본적인 생각이었으며 현재의 미술교육 저변이나 일반인들의 생각에 아직도 많이 깔려있는 입장이다. 이 흐름은 미술교육이 학교의 교과로 도입되었던 두 가지의 필요 중 산업적 필요의 흐름을 타고 이어진 것이며, 미술가교육이었던 아카데미 미술교육도 이 흐름으로 이어지게 된다.
1) 역사적 배경
(1) 산업혁명으로 인한 산업의 발달
18세기 중엽부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농업중심 사회를 공업중심 사회로 변화시키면서 사회 전반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공장이 들어서고 공장의 시설이 기계화되면서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고 그에 따라 노동자들의 근로 형태에서부터 경제 구조와 저이 구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변화를 가져왔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도 결국은 산업혁명에 의한 사회, 경제, 정치 구조의 탐색과정에서 탄생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러한 사회 전반의 변화는 미술 분야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그것은 그 동안 수공예 형태로 이어져 오던 모든 물품을 공장에서 기계로 대량으로 생산하게 됨에 따라 수공예가 침체하게 되었고, 기계로 대량생산된 물품들이 미적으로 너무 조악하여 산업에 미술을 도입하자는 요구가 계속되었다. 생활용품의 산업적 대량생산에 대하여 미술 쪽에서는 두 가지 입장이 대립하였다. 하나는 산업생산에 미술을 적용하여 대량생산 되는 생활용품을 미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기계에 의한 생산을 거부하고 다시 손에 의한 제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산업계에 종사하던 자본가들은 미술계에 산업에 필요한 디자이너와 미술가의 육성을 강력하게 주장하였으며, 이러한 산업계의 요구로 유럽의 각국에서는 직업학교나 기술학교, 미술학교가 설립되어 미술에 관련된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산업적 요구에 의한 디자인 학교 설립의 예는 영국에서 잘 살펴볼 수 있다. 기계 산업이 가장 먼저, 가장 활발하게 발달했던 영국은 생산되는 제품의 수준이 미적으로는 형편이 없어 결국 1835년에 미술과 디자인의 요소를 산업에 적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국회위원회까지 구성되고 1837년에는 런던에 디자인 사범학교가 개교되었다. 이 학교는 기초 소묘와 각 산업에 응용되는 데생 과정을 교육시켰다. 그러나 1851년 런던에서 개최된 박람회는 영국 산업제품이 프랑스 같은 다른 나라의 제품에 비해 질이 떨어져 표현기능 중심의 미술교육에 대한 요구는 더욱 거세졌다.
한편으로 러스킨(John Ruskin) 등은 기계에 의한 산업의 근대화가 사회의 빈부의 차를 크게 하고 자연의 미를 파괴하며 고귀한 미술이나 공예를 타락시켰다고 생각하여 수공예로의 복귀를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러스킨은 <드로잉의 요소>라는 책을 저술하여, 드로잉의 요소에 대한 체계적 이해와 아는 것이 아닌 본 것을 그리도록 강조하였다. 이 운동은 모리스(William Morris)의 미술공예운동으로 이어져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이처럼 산업혁명으로 산업에 디자이너나 미술가가 필요해짐에 따라 미술 표현능력을 갖춘 사람들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그에 따라 미술학교나 기술학교가 생기고 국가적으로 산업에 필요한 미술교육을 논의하고 학교를 설립하며 지원했던 것이다.
(2) 미술 아카데미의 전통
아카데미는 본래 그리스에서 유래한 말로 플라톤이 그 제자들과 함께 철학을 토론하고 가르쳤던 것을 지칭한 것이다. 이 아카데미는 과학, 문학 등을 연구하는 모임이었으며 르네상스 이후 미술이 발달하면서 미술 아카데미가 생기게 되었다. 르네상스 이래로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융성하였고 17-19세기에는 프랑스가 그 중심이었다. 유럽의 르네상스 이후 현대 이전의 미술은 이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발달하였다고 할 수 있으며 주로 미술가를 기르기 위해 도제 형식으로 교육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아카데미에서는 표현 기법, 미술 해부학 등을 가르치면서 자파의 세력을 학생들에게 전수하는 데 노력하였으며, 주로 정확한 시각의 교육에 중점을 두었다.
이들은 미술 기법만이 아니라 미술의 원리나 정신적인 측면까지 가르쳤으며 조형요소나 데생 등을 지도하였다.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아카데미는 산업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역할도 하였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제품 생산을 위한 공장의 보급과 거기서 일할 생산 기능공들에게 눈과 손의 협응력을 길러주기 위한 제품의 생산 기술의 기초 훈련이 중시되었다.
헨리 콜(Henry Cole)은 1852년 학교교육에서 미술교육을 본격적으로 실시하게 된다. 콜은 미술학교에서 미술교사를 양성하도록 했으며, 과거의 아카데미와는 다른 방식으로 평면 기하학적인 그림을 강조하는 교육에 의해 미술교사를 양성하여 배출하였다.
이처럼 주로 미술가를 육성하던 미술 아카데미의 전통은 산업혁명에 의해 사회에서 요구하는 산업 디자이너 교육과 맞물리면서 표현기능 중심의 미술교육을 자연스럽게 형성시켰다고 할 수 있다.
2) 주요 특징
산업혁명의 진행과 미술 아카데미의 전통을 역사적인 배경으로 하는 표현기능 중심 미술교육에 대해 몇 가지 특징을 꼽을 수 있다.
첫째, 표현기능 중심의 미술교육은 사회에서 필요한 미술가나 산업 디자이너 등을 기르기 위해 미술교육을 실시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 아카데미나 미술학교, 직업학교 등에서 표현기능을 향상시켜 미술가를 육성하거나 산업 현장에 필요한 디자이너나 공예가 등을 육성하고자 하였다. 모리스 등을 중심으로 한 미술공예운동과 무테지우스를 중심으로 한 독일공작연맹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는 바우하우스 미술교육 운동도 교육방법의 과학화와 교육내용의 체계화 등을 강조하였지만 결국은 사회에 필요한 건축가, 디자이너, 공예가 등의 양성을 목표로 표현능력 육성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이러한 표현기능 중심의 흐름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미술가나 디자이너의 육성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교육방법은 자연히 반복 훈련에 의해 미술가가 되는데 필요한 미술적 능력의 향상에 초점을 두게 되었다. 학생들은 교사에게서 주어진 학습과제를 실기 중심으로 수행하면서 표현기능을 숙달시키게 된다. 물론 정신적인 면에 대한 교육도 실시하지만 그런 정신적인 면의 교육도 훌륭한 미술가가 되는데 필요한 정신적 능력의 소양이다. 표현기능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의 교육도 중시했던 대표적인 미술교육운동이 바우하우스 미술교육이다. 훌륭한 미술가가 되는데 필요한 정신과 표현능력의 종합적인 발달을 꾀하였던 것이다.
셋째, 미술의 교육이므로 미술에 대한 기본적 요소와 체계적인 구조에 의한 지도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표현기능 중심 미술교육은 미술가를 기르는 미술교육이기 때문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가르치느냐에 관심을 집중한다. 그래서 미술의 기본적인 요소나 구조를 파악하여 체계적으로 실기지도를 하려는 시도가 많이 있었다. 즉 조형요소나 조형원리에 따라 체계적으로 지도하거나 각 표현영역에 따라 기본적인
것부터 지도하는 등의 방법이 그것이다. 도우(A. W. Dow)는 선이나 명암, 색 등의 조형요소와 반복, 대칭, 대비, 전환 등의 조형원리를 제시하고 보다 미적인 디자인을 산출할 수 있는 교육을 전개하였다. 조형요소를 조형원리로 조화시키는 종합적인 지도를 하였던 것이다. 선의 구성, 선의 묘사 등의 경험을 하고 명암의 지도에서는 밀도, 양감, 구성, 명암의 묘사 등의 경험 과정을 다루었다. 이런 지도는 단순한 구성에서 복잡한 구성으로 이끌고 이 과정들의 경험을 모아 종합적으로 이끌도록 미술수업을 전개하였다.
또한 바우하우스 미술교육도 새로운 미술재료와 용구, 조형요소에 의해 조형 감각을 훈련하여 창의적인 조형 능력을 기르는 과학적인 지도과정과 방법을 사용하였다. 지각훈련을 중시하여 먼저 전 감각을 훈련하고, 다음으로 사고와 감각을 조화시키며, 그런 다음 탐구와 의미, 직접 경험의 조하를 통해 표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거치도록 하였다. 모든 감각적 경험 단위는 나중에 종합적 패턴을 이루게 되고, 학생들의 경험은 단계적이고 분석적으로 진행되어 각각의 새로운 경험이 먼저의 경험과 연결된다. 이러한 감각훈련과 연습으로 나중에 주관적이고 창의적인 표현을 하게 하는 것이다. 도우의 미술교육이든 바우하우스의 미술교육이든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미술 전문가의 양성에 있었으며, 그런 모든 미술 교육과정과 지도방법도 보다 훌륭한 미술가를 기르기 위한 것이었다.
3) 주요 미술교육자와 운동
표현기능 중심 미술교육은 치젝의 활동이 본격화되기 이전까지 모든 미술교육의 전반적인 흐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흐름은 크게 유럽과 미국의 20세기 초반까지의 미술교육과 바우하우스 미술교육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 유럽과 미국의 초기 흐름
유럽에서 미술 아카데미나 다른 미술교육 기관을 중심으로 하는 미술가와 산업 디자이너 양성 교육은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졌으며 19세기 중반부터 학교교육에 미술이 도입되면서 미술교육에 점차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콜(H. Cole)은 제도나 도학을 강조하는 미술교육을 통해 정밀한 기능공의 훈련에 목적을 두엇다. 한편 러스킨은 이런 콜의 방법에 반대하여 「도학교본」이 아닌 자연을 면밀하고 경건한 자세로 관찰하여 표현하는 방법을 제안하면서 <드로잉의 요소>를 저술하여, 드로잉에 대한 체계적 이해와 지도를 시도하였다. 그도 수공예의 부활을 주장하였지만 산업에 이바지하는 미술교육을 강조하였다. 즉 엄격한 자연탐구를 통해 산업인으로서의 수공예가 양성을 역설하였던 것이다. 또한 코크(E. Cooke)는 러스킨의 이론을 영국학교에서 실험적으로 지도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한편 미국에서 처음으로 교육에 미술의 도입을 주장한 사람은 벤쟈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으로 1749년 교육과정에 미술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다른 미국의 교육 선각자들처럼 프랭클린도 미술을 유용성과 물질적인 가치를 가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의 관점에서 미술교육은 어린이에게 '예쁜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발전에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그의 관점에서 미술은 삶에 필요한 공예품의 질과 전문적인 기능을 향상시키는 훌륭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미국에서 1860년대까지는 이런 미술에 대한 실용성고 유용성의 개념이 지배적이었다. 그 당시는 학교교육 자체를 실용적인 입장으로 바라보았으며, 학교는 그들에게 실용적이며 청교도적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중요한 장소였던 것이다. 인생에 대한 청교도들의 이런 지향점은 미술교육에 또 다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미술을 학교에서 가르칠 때 그들은 「순수미술(fine arts)」로 접
근하지 않았다. 즉 그 접근은 삶에서 실용적인 필요와 관련된 활동이었으며,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직면하는 실제적인 필요와 만나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불, 양탄자, 가구나 다른 유용한 것들을 만드는 공예기술의 발달은 국가가 설립되는 시기를 전후한 기간 동안 미술에 대한 관심의 주요 대상이었다.
미술지도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접근의 발달은 보스턴의 푸월(W. B. Fowle)과 필라델피아의 미니피(minifie)의 연구에 의해서이다. 푸월은 일반교육 분야에 두드러진 공헌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19세기에 미국 미술교육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1842-1852년의 출판 기간 동안 아마 가장 영향력 있는 교육 저널이었던 일반학교 저널(Common School Journal)의 편집자로서, 그는 영향력 있는 지도력을 행사했다. 푸월은 그가 교장으로 있던 학교에서 그림을 도입하였을 뿐만 아니라 보스턴의 학교에 모니터 제도(moniterial system)를 처음으로 도입하였다.
영국의 랜케스터(J. Lancaster)와 벨(A. Bell)에 의해 독자적으로 개발된 이 제도는 교사가 학생 모니터들을 가르치고 그 모니터들이 배웠던 대로 동료학생들을 가르치는 제도이다. 이 방법으로 인해 교육이 매우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졌으며, 푸월은 보스턴 학교에서 모니터 제도의 활용을 지원하였고 이 모니터 제도를 여학교에도 새로이 도입하여 활용하였다. 푸월은 교사와 다른 사람들이 미술을 유용성 보다는 장식성으로 바라보는 시기인 1827년 보스턴 잉글리쉬 고등학교에서 선택교과로 미술을 도입하여 체계적인 방법으로 미술을 가르치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니피(William Minifie)는 19세기의 30-40년 동안 미술교육에 중요한 기여를 했던 사람이다. 볼티모어의 인정받던 건축가로서 고등학교에서 그림을 가르치던 미니피는 작품 만들기로서가 아니 미술을 과학으로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교육에서 요구되는 이
러한 체계적인 방법을 통한 지도는 연속적이고 조직적인 실천을 통하여 개발되었다 미니피는 체계적인 「과학적」접근과 더불어 그는 직접 미술을 지도하였으며, 푸월처럼 그도 미술이 단지 장식적이기 보다는 유용해야 한다는 견해를 지지하였다. 그래서 그에 의해 미술은 산업적인 면에 활용되었다. 그의 견해는 제조 상품의 디자인과 생산을 도와주기 위해 미술적 기능을 활용하자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20여년 후에 월터 스미스(Walter Smith)가 보다 강조한 관점이었다. 푸월과 마찬가지로 미니피는 쓰기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림을 배울 수 있으며, 그림을 배우는 것은 쓰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생활인의 기호를 개선하고 산업의 발전에도 간접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또한 호라스 만(H. Mann)은 유럽의 학교를 방문한 후 소묘가 쓰기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아름다움과 표현이 가능한 언어로 생각하고, 프러시아 미술교사인 페터 슈미트(P. Schmidt)의 지도방법을 미국에 소개하였다.
이런 미술교육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실천된 이 시기의 미술교육 방법과 목적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는 미술(주로 드로잉)이 삶의 실제적인 필요와 만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미술이 쓰기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매체로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셋째는 미술을 산업에 유용한 것으로 바라보았다는 사실이다.
미술을 산업에 유용한 것으로 보고 본격적인 미술교육이 시작된 것은 스미스에 의해서이다. 스미스는 영국의 미술학교에 있다가 미국에 건너와 메사추세츠 주 미술교육 지회장과 보스턴 미술장학관, 메사추세츠 미술 공립학교 교장을 거치면서 산업에 기여하는 미술교육을 주장하게 된다. 그는 기하학적이고 기계적인 드로잉 기법과 프리헨드(freehand) 소묘를 강조하였다. 또한 헤르바르트학파의 지도단계를 소묘지도에 도입하여 소묘를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지도하려고 노력하였다. 1870년대에 학교미술은 산업발달을 위한 부수적인 것
으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학교미수은 지역 공장의 산업 디자이너로 훈련할 수 있는 재능있는 젊은이들을 발굴하는 데 기여하였다. 또한 미술활동은 미래의 소비자들에게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물건을 안목과 선택력을 가지고 사는 것을 가르쳤다. 그 당시에는 장식적인 디자인들과 가장자리 장식, 색차트나 명암과 같은 것들이 미술교육의 주요 내용이었다. 이 시대는 학교에서 산업미술이 미술교육과 함께 병행되었던 시기이다. 이러한 산업미술의 목표는 연장을 사용하는 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한 훈련에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도우(A. W. Dow)는 창의성을 감상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나는 신성한 재능이며 천부적인 재능이라고 보고 모든 사람들을 감상하는 능력을 키우도록 교육시켜야 한다고 제안하였으며, 이런 목적을 달성하도록 지도방안을 개발하였다. 도우는 미술의 구조를 분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그것을 가르칠 수 있는 체계적인 방법을 개발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조형요소와 원리를 개발하여 지도하였으며, 미술가들이 작품의 조화로운 관계를 이루도록 하는 대칭, 반복, 대비, 변화와 그러한 원리를 가능하게 하는 선과 명암, 색 등의 요소가 있다고 보고 이것을 종합적으로 지도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다. 이런 도우의 지도도 좀더 미적인 산업디자인 제작을 목표로 하는 표현기능 중심의 미술교육이었다.
(2) 바우하우스 미술교육
러스킨과 모리스 등에 의한 미술공예운동은 무테지우스(H. Muthesius) 등의 독일공작연맹에 영향을 미치고 이런 운동은 바우하우스 태동의 기초가 되었다. 1919년 독일의 바이마르에 그로피우스를 중심으로 세워진 조형학교인 바우하우스는 모든 예술을 건축에 종합하고자 했던 미술교육 운동이다. 그로피우스는 모든 조형미술의 궁극적인 목표가 건축에 있다고 보고 조각과 회화, 공예 등을 건축이라는 하나의 전체로 통합하려 했다. 또한 건축가나 화가, 조각가 등은 모두 공예가여야 한다고 보았다. 미술은 직업이 아니고 미술가와 공예가 사이에는 차이가 없으며 모든 미술가에게는 공예의 숙련이 필요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들은 실용미술과 순수미술의 구별을 없애고 건축으로 통합하고자 하였으며, 모든 수준의 건축가와 화가, 조각가들을 그들의 능력에 따라 교육시켜 유능한 공예가와 독자적인 창의적 미술가가 되게 하여 미래의 지도적 미술가와 공예가를 위한 작업 공동체를 형성하고자 하였다.
바우하우스의 미술교육의 원칙은 모든 미술은 결국 공예이기 때문에 교육이 가능하며 이것은 철저한 단계적인 훈련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교사와 제자로 구분하지 않고, 마이스터, 직인, 도제로 구분하여 교육을 실시하였다. 마이스터가 준마이스터와 직인, 도제의 교육을 실시하였던 것이다.
바우하우스 교육의 범위는 건축과 회화, 조각으로 나누어 이러한 모든 분야에 공예의 교육을 강조하였다. 그 교육 단계는 공예실습→소묘와 회화→과학과 이론 교육이었으며 창립 당시의 팜플렛에 나타난 세부적인 교육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교육의 범위
바우하우스에서의 교육은 창조적 작업의 모든 실제적, 이론적 분야를 포함한다.
A. 건축 B. 회화 C. 조각
여기에 공예의 모든 분야를 포함시킨다.
학생들은 ① 공예, ② 소묘, 회화, ③ 과학과 이론의 교육을 받는다.
1. 공예실습 - 점차로 확충되어갈 우리의 공방과 실습계약을 맺은 외부 공방에서 학생 들은 다음과 같은 실습을 받는다.
a) 조각장, 석장(石匠), 벽토세공장(壁土細工匠), 목조장(木彫匠), 도자기장, 석고세공 장(石膏細工匠)
b) 철장(鐵匠), 금구장(金具匠), 선반장(旋盤匠)
c) 가구제조장(家具製造匠)
d) 장식화장(裝飾畵匠), 유리채색장, 모자이크 세공장, 에나멜장
e) 동판화가, 목판화가, 석판화가, 미술인쇄장, 조금장(彫金匠)
f) 직조장(織造匠)
공예실습은 바우하우스에서의 모든 교육의 기초가 된다. 학생들은 누구나 공예를 배워야 한다.
2. 소묘 및 회화 실습에는 다음 분야가 포함된다.
a) 기억이나 상상에 의한 자유 소묘
b) 머리, 인체모델 및 동물의 소묘와 채색
c) 풍경, 인물, 식물, 정물의 소묘와 채색
d) 구성
e) 벽화, 판화 및 성구 제작
f) 장식 디자인
g) 레터링
h) 구성 및 투시도
I) 건축 외장, 정원 및 실내디자인
j) 가구 및 실용품의 디자인
3. 과학과 이론의 교육은 다음 분야를 포함한다.
a) 미술사 - 양식사의 의미보다는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표현방식 및 기술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
b) 재료학
c) 해부학 - 실물 모델
d) 색채의 물리적, 화학적 이론
e) 합리적인 색채방법
f) 부기, 계약, 청부의 기초지식
g) 예술과 화학의 모든 분야에서의 일반적인 지식에 대한 강의
◆교육과정의 구분
교육은 세 과저으로 분류된다.
1. 도제과정, 2. 직인과정, 3. 준(準)마이스터 과정, 개인의 교육은 전체 프로그램과 작업 일정의 범위 안에서 각 마이스터의 재량에 따라 맡겨지고 작업일정은 학기마다 수정된다. 학생들에게 가능한 한 다양하고 광범위한 기술적, 예술적 훈련을 베풀기 위해 건축가, 화가, 조각가 지망생들이 모두 다른 과정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작업일정이 편성될 것이다.
이런 교육내용으로 도제과정인 기초과저에서는 지각 능력을 발달시키는 지도를 강조하였으며, 이것은 결국 미술적 사고를 심화하는 단계로 연결되었다.
이런 지각훈련의 기초 3단계는 다음과 같다.
·시각과 촉각, 미각, 후각, 청각 등 모든 감각의 훈련
·이런 감각과 사고의 조화
·탐구와 직접 경험을 통한 문제의 해결
이런 과정의 중요한 특징은 따로 경험된 단위들을 통합하는 체계적인 과정이라는 것이다. 조형의 요소나 원리 등에 대해 처음에는 각자 연구하다가 그 다음 공동으로 연구하였다. 각자의 새로운 경험은 이전의 경험과 연관되고 표현의 가능성을 충분히 발견하기 위해 폭넓은 도구와 재료를 철저히 탐구하고 실험하게 하였다. 이런 바우하우스의 지각 훈련은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첫째, 시각적이고 강렬한 대비현상에 의한 지각 훈련이라는 점이다. 즉 크다-작다, 검다-희다, 길다-짧다, 두껍다-얇다 등의 대비되는 현상에 의해 지각을 훈련하여 교육 효과를 높였다는 점이다.
둘째, 시각적인 감각과 다른 모든 감각의 종합에 의해서 경험과 사고를 강화시켰다는 점이다. 시각 뿐만 아니라 촉각과 후각, 청각, 미각 등과 기존의 개념 등을 결합하여 모든 감각과 사고를 종합하여 표현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셋째, 모든 경험과 훈련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으로 교육의 효과를 높였다는 점이다. 바우하우스는 모든 수업과 문제의 해결을 단계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하여 학생들이 쉽게 받아들이도록 지도하였다.
넷째, 감각기관을 통해서 수용한 정보를 분류하고 조직하기 위해 사고와 결합하게 하고 그런 지각을 매체로 표현하게 하였다. 이것은 지각한 것을 작품으로 객관화시키는 작업을 의미하며 표현문제의 해결을 의미한다. 또한 감각을 사고와의 결합에 의해 표현하게 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러한 바우하우스의 미술교육은 수업전에 명상을 하게 하거나 운동을 하여 예술의 정신적이고 내면적인 측면을 강조하기도 하였지만 기본적으로는 분석적이고 조직적인 탐구방식에 의한 문제 해결적 접근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학생들의 독특한 표현을 기초기능이 길러진 이후로 미루어 놓음으로써 표현의식보다는 표현기능을 우선하였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아카데미적 발상을 그대로 계승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바우하우스의 미술교육은 그 목적을 사회에서 필요한 화가와 건축가, 조각가 등을 기르는 데 두었다는 점에서 표현기능 중심 미술교육의 한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4) 검토와 시사점
표현기능 중심의 미술교육은 오늘날 우리 나라의 대학 미술교육이나 학원의 미술교육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미술교육의 실질적인 흐름이다. 앞에서 한국 미술교육의 현황을 살펴보면서 언급했듯이 우리 나라의 미술교육은 표면적으로는 창의성 중심에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표현기능 중심에 있다. 아직도 미술 대학의 입시 준비를 위해 1-3년의 장기간을 예상 실기 문제에 따라 단순히 표현기능 만을 향상시키려고 반복 훈련을 하고 있는 현실에 있다. 제품 생산을 위하여, 또는 대가가 원하는 유형의 미술작품을 산출하기 위하여 학생들이 어른의 요구와 가치관에 일방적으로 예속되어야 하는 전통적 의식에 입각한 미술교육에서는 미술교육의 목적인 미적 안목이나 조형능력, 창의성을 제대로 기를 수 없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물론 표현기능 중심 미술교육에서도 시사받아야 할 점은 있다. 그것은 미술교육을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지도하려 한 점으로, 단순히 표현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나름대로 시지각과 손의 협응력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려 했다는 것은 발전적으로 검토할 문제인 것이다. 비록 그 체계와 방법이 학습자를 고려하지 않고 표현능력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두었지만, 시지각과 손의 역할을 보다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방법으로 대상을 관찰하고 형태 특성을 분석하여 단계적으로 표현에 이르게 하는 지도는 의미가 있는 접근인 것이다. 또한 사회의 요구를 반영한 점도 시사점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산업의 발달과 미술가의 육성이라는 좁은 관점의 사회의 요구이기는 하지만, 미술교육은 사회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으며 학습자가 살고 있고 살아갈 사회의 요구를 민감하고 폭넓게 반영하여 교육과정이 구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표현기능 중심 미술교육의 문제는 먼저, 학습자의 입장은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표현기능 중심 미술교육은 일정한 프로그램에 의해 미술을 가르치기 때문에 어떤 학생들이 배우든 그 체계에 따라 반복훈련에 의
해 배우게 된다. 그 학습이 모방에 의한 것이든, 조형요소나 원리에 의한 학습이든, 기초적인 지각훈련에 의한 단계적 학습이든 간에 학습자의 입장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일정한 프로그램에 의해 학생들로 하여금 따라오게 하는 수업 형태인 것이다. 표현기능 중심은 미술교육의 기초를 이루는 미술의 본질과 학습자의 특성, 사회의 요구 중에 미술의 본질과 사회의 요구에는 충실하면서도 학습자의 특성은 거의 무시한 것이다.
둘째는 학생들을 미술작품이나 제품 생산의 도구적인 입장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이다. 산업혁명에 의한 산업의 발달과 미술 아카데미의 전통으로 사회적 필용에 의해 미술교육이 이루어짐에 따라, 학생들을 훌륭한 미술가나 산업 디자이너로 육성하여 좋은 작품이나 제품을 만드는 것을 기대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학생들을 하나의 개인적 인간으로 대했다기 보다는 산업을 발전시키는 도구적 입장으로 바라보았다는데 문제가 있다.
셋째는 학교 생활을 단순히 미래에 대한 대비로 바라보았고 학생 시절에는 희생과 훈련이 강조되었다는 점이다. 표현기능 중심의 미술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교육받는 기간 동안을 단지 미래를 위해 철저하게 대비하는 시기로 받아들여야 했다. 왜냐하면 철저한 연습과 훈련, 단계적인 경험, 표현문제의 해결 등이 모두 미래에 훌륭한 미술가가 되기 위한 것으로 여겨져, 미술을 통해 자신의 전체를 표현하고 그 당시의 학교 생활도 그들의 삶의 일부라는 생각을 거의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넷째는 미술표현에 어떤 일정한 방법이나 법칙이 있다고 믿고 그 방법을 가르치려 했다는 점이다. 표현기능 중심의 미술교육은 르네상스의 아카데미즘 전통이 19세기의 제품 생산적 미술교육관과 결부되어 데생 중심, 디자인 원리 중심으로 미술교육이 이루어져, 조형요소나 원리에 의해 작품의 조직과 구성이 가능하다는 믿음과 어떤 단계적이고 체계적인 법칙이나 방법이 훌륭한 미술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 위에 이루어진 미술교육관이다. 따라서 이런 원리에 의해 작품화하는 방법을 배우고 특정한 방법과 법칙을 배웠다고 할 수 있다. 설령 어떤 법칙을 가르치지 않은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그런 믿음 위에 미술교육이 이루어진 것은 분명한 일이다.
창의성 중심 미술교육
창의성 중심의 미술교육은 치젝이 자유로운 자기표현에 의한 미술교육을 실천한 후 세계적으로 급속하게 보급된 미술교육 흐름이다. 이것은 허버트 리드의 말처럼 「미술을 통한 교육」이다. 미술을 활용하여 교육에서 목표하고 있는 것을 성취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 흐름의 공통점은 자유로운 자기표현을 통한 창의성 육성에 있었다. 창의성이란 말은 19세기 말부터 미술교육에 등장하여 치젝이 자주 사용하였으며 로웬펠드에 이르러 미술교육의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1) 역사적 배경
창의성 중심 미술교육의 대표적인 역사적 배경으로는 아동 중심의 교육, 심리학의 발달, 표현주의 미술의 등장을 꼽을 수 있다.
(1) 아동 중심의 교육
교육의 역사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한 사람은 루소이다. 그에 의해 교과나 성인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교육이 아동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교육시키고자 하는 내용이나 사회의 필요보다 학습자인 아동을 교육에서 보다 중시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 루소 이후 코메니우스, 페스탈로찌, 프뢰벨, 헤르바르트 등 많은 교육학자들에 의해 아동의 흥미와 감각, 직접적인 경험 등을 중시하는 교육이 주장되면서 그런 요소에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미술도 학교교육에서 실시하게 된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창의성 중심, 어린이들의 자유표현 중심, 미술을 통한 교육이 전개되기에 이른 것이다.
아동중심교육을 세계적으로 보급시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듀이(J. Dewey)이다. 듀이는 교육의 개념을 다음의 네 측면에서 바라본다. 먼저 교육은 성장이며 생활이 계속되는 동안 교육이 계속된다는 것이고, 둘째, 교육은 생활이며 단순한 생활의 준비가 아니고, 셋째, 교육은 연속적인 경험의 부단한 재구성이며, 넷째, 교육은 사회적 과정이라는 입장이다. 듀이는 그의 저서 여러 곳에서 예술교육을 강조하였으며 <경험으로서의 예술, Art as Experience> 이란 저서에 그의 예술론을 정리하였다. 듀이의 견해는 미술교육에도 영향을 미쳤고, 듀이의 견해에 바탕을 둔 진보주의 미술교육은 20세기 초반부터 시도되기 시작하여 1920년대와 1930년대의 20여년간 절정을 이루었으며, 그 후에도 영향력이 지속되게 된다. 1940년대부터 미술교육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로웬펠드의 미술교육론도 그의 진보주의 교육사상에 그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듀이의 생각에 바탕을 둔 진보주의 미술교육의 기본 관점을 몇 가지 점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아동이 창의적인 잠재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믿고 그것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미술을 활용하는데 관심을 기울였다.
둘째, 미술능력은 적절한 환경만 주어지면 표출된다고 생각하였다.
셋째, 미술은 상상력을 펼치는 도구이며 의사소통의 비언어적인 수단으로 여겼다.
넷째, 교육과정에서 다른 교과와 연결하고 통합하는 활동분야로 미술을 바라보았다.
다섯째, 산업에 필요한 것으로서의 미술이 아닌 아동의 욕구와 흥미에서 나오는 미술경험을 강조하였다.
이처럼 듀이의 견해에 바탕을 둔 미술교육은 아동중심, 경험중심, 생활중심, 과정중심, 창의성중심, 통합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체젝이 미술가의 측면에서 미술교육에 접근했다면 듀이는 철학자, 교육학자의 측면에서 미술교육에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자연히 치젝은 미술교육의 실천 쪽에, 듀이는 미술교육의 이론 쪽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치젝과 듀이는 미술교육의 무게 중심을 미술에서 아동에게로 옮겨 놓은 사람들이다. 즉 그 동안 화가나 조각가가 되거나 산업 현장에 필요한 미술 전문인을 기르기 위해 미술의 기능에 중점을 두고 도제식으로 이루어져왔던 것을, 그들은 자기표현과 미적 경험을 통해 아동의 창의성과 조화로운 성장에 기여하기 위해 미술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즉 학습자를 기능과 정보를 습득하도록 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욕구와 충동을 가진 인간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창의성 계발과 조화로운 성장을 위해 미술을 활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듀이는 34권의 저서와 700여편의 논문을 통하여 세계의 교육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런 영향력은 미술교육이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20세기 초부터 중반까지 미국을 중심으로 진보주의 교육의 큰 흐름을 형성하게 되는데 미술교육도 진보주의 교육의 흐름 속에 이루어지게 된다. 듀이의 교육관과 예술론이 미술교육에 미친 영향으로는 다음을 들 수 있다.
첫째, 교육에서 아동의 흥미가 중요하다는 듀이의 신념은 미술교육에서도 학습자가 하기 원하는 것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측면으로 전개되었다.
둘째, 아동의 자유로운 미술표현에 교사가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견해를 일반화시켰다.
셋째, 아동의 창의적인 지성을 학교를 통해 발달시켜야 한다는 듀이의 희망은 미술을 활용하여 아동의 창의력을 계발시켜야 한다는 미술교육자의 신념으로 전환되어 일반화되었다.
넷째, 예술은 어디에나 있고 경험은 완전성을 추구한다는 듀이의 견해는 미술을 다른 교과와 통합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관점을 갖게 하였다.
이처럼 듀이의 영향을 많이 받은 미술교육은 홀(S. Hall) 등의 아동연구운동과 연결되어 점차 창의적인 자유표현을 어린들에게 부여하는 쪽으로 전개되었으며,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그 이후 1940년대에 들어 로웬펠드와 허버트 리드 등을 중심으로 한 창의성과 아동의 미술표현 발달과정을 강조하고 미술을 통한 인간형성이라는 흐름으로 이어지게 된다.
(2) 심리학의 발달
창의성 중심 미술교육은 심리학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아 형성된 흐름이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철학의 한 연구 영역으로 여겨지던 마음이나 정신에 대한 연구가 독자적으로 독립하여 활발하게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자연과학의 발달로 실증적이고 실험적인 방법이 심리학 연구에 적용되면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런 연구의 일환으로 아동의 가장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심리의 표현인 그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그것이 아동중심교육과 연결되어 아동연구운동이 전개되었다. 독일의 프레이어가 자시의 아들을 대상으로 성장과정을 연구한 이후 홀이나 슈테른, 피아제 등 많은 아동심리학자들이 등장했다.
심리학의 발달은 아동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였을 뿐 아니라 아동화에 대한 연구를 촉진시켰다. 2-16세의 아동화 3천장을 연구한 루켄스, 아동화 연구 방법 등을 마련하여 아동화를 분석한 케르켄쉬타이너, 초기의 아동화부터 깊이 분석한 헬가 엥, 어린이 미술표현의 발달과정을 연구한 시릴 버트 등이 초기 아동화 연구의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창의성 중심 미술교육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치젝이나 로웬펠드, 허버트 리드 모두 심리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치젝은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아 초기에는 아동화를 통해 어린이의 심리를 분석하는 일에 중점을 두다가 자유로운 자기표현을 강조하게 되었다. 심리학자이기도 한 로웬펠드는 창의성과 자아동일화 등을 매우 강조하였고 자기표현 등의 미술활동을 통해 모든 어린이들에게 잠재되어 있는 잠재력 계발을 중시했다. 이는 프로이트를 중심으로 한 정신분석 이론과 게슈탈트 심리학 등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결과이다. 허버트 리드 역시 어린이의 미술을 심리학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 기질과 특성에 따라 분류하였으며 칼 융 등의 분류를 아동화에 적용하였다.
홀 등의 아동연구운동과 함께 프로이트의 심리학이 미술교육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프로이트는 미술에서의 자아표현을 내부 욕구표현의 일종으로 보았으며, 미술을 자아의 내부에 있는 것과의 동일화를 가능하게 하고 통합된 인격을 발달시키는 것으로 보았다. 창의성 중심의 미술교육은 어린이 누구에게나 창의성이 내재해 있고 반드시 일정한 발달과정을 거치며 어린이의 창의성과 지각의 발달을 방해하는 요인을 강조하는 등 심리학 연구에서 밝혀진 것들을 미술교육에 적용한 흐름이다.
(3) 표현주의 미술의 등장
창의성 중심의 미술교육은 현대미술의 다양한 전개에 영향을 받았지만, 그 중에서도 표현주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치젝과 로웬펠드 모두 젊은 시절에는 표현주의 화가로 활동했던 사람들이고, 인간 내면의 직접적인 표현을 강조하는 표현주의는 어린이의 내면을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하는 미술교육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표현주의는 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작가 개인의 내부 생명, 즉 자아나 혼의 주관적 표현을 추구하는 감정표출의 예술이다. 치젝과 로웬펠드는 모두 오스크리아에서 태어났고, 시기는 약간 다르지만 모두 표현주의의 본 고장인 빈(Wien)에서 미술을 배웠으며 화가로 활동하였다.
표현주의에서 작가 내면의 주관적인 표현이 강조된 것처럼 어린이에게도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자기표현이 강조되었으며 간섭이 배제되었다. 로웬펠드가 시각형과 촉각형으로 구분하여 촉각형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시각형만큼 자신의 내면을 감정이나 정서에 따라 자유롭게 표현하는 촉각형도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의미였으며 이 촉각형이 표현주의 미술과 비슷한 형태이다.
창의성 중심의 미술교육은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정서와 감정의 표출구로서 미술을 활용하고자 하였으며 자기표현을 강조한 것도 표현주의 미술과 심리학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2) 주요 특징
창의성 중심 미술교육은 표현기능 중심에 반발하여 형성된 것이므로 많은 점에서 표현 중심의 흐름과는 차이가 나며 많은 특징들을 들 수 있으나, 가장 큰 특징으로 자유로운 자기표현과 미술을 통한 창의성의 육성, 표현과정의 중시를 꼽을 수 있다.
(1) 자유로운 자기표현
치젝은 교육학에서 루소가 그런 것처럼 미술교육의 무게중심을 미술이나 성인에서 아동으로 옮겨 놓은 사람이다. 그 동안 미술을 가르치기 위해 미술교육이 존재했고 미술가를 기르는 미술가교육이 바로 그런 미술교육이었다. 그러나 치젝은 1903년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국립미술공예학교에 들어가 1904년부터 어린이들에게 자유를 부여하고 마음껏 자신의 표현을 하도록 격려하여 아동 중심 미술교육의 문을 열었다. 창의성 중심 미술교육의 가장 중요한 전제가 이러한 어린이의 자유로운 자기표현이었다.
이러한 자유로운 자기표현은 어린이들의 미술이 어른들의 미술과는 다르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어린이의 마음은 어른의 마음과는 다르며 어린이의 생각은 어른의 생각과는 다르기 때문에 어린이의 표현은 어른의 표현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린이에게 미술은 자신을 드러내는 하나의 자기표현 방법이라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이기 때문에 어린이의 표현과정에는 어른들의 간섭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어린이들은 자기에게 간서이 주어지지 않을 때 마음껏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창의성을 표현할 수 있으며, 어른의 간섭은 어린이의 미술을 어른의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결국 어린이들의 미술표현에서 중요한 점은 성인들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간섭의 배제이며 어린이의 표현은 자발적이어야 한다.
자유로운 자기표현에서는 교사의 역할이 촉매자나 분위기 조성자에 머무르게 된다. 교사나 학부모의 역할은 어린이들에게 자유롭게 자신과 환경을 표현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동기를 부여해주는 촉매자의 역할을 넘어서는 안된다고 보는 것이다. 교사들은 어린이의 자기표현을 간섭하지 않고 주의깊게 관찰하면서 성장의 발달과정에 맞게 어린이를 도와야 한다는 관점이다.
(2) 미술을 통한 창의성의 육성
창의성 중심의 미술교육은 미술은 인간의 조화로운 성장을 돕고 잠재력을 계발시켜주는 도구로 바라본다. 즉 미술보다는 교육을 강조하며 미술을 통해 길러지는 것에 관심을 둔다. 다른 교과와 공유하는 일반적인 목표와 미술만이 제공해줄 수 있는 목표로 구분하였을 때, 이들은 후자보다는 일반적인 목표를 중시했던 것이다. 로웬펠드와 치젝은 자유로운 자기표현을 통한 창의성과 잠재력의 계발을, 허버트 리드는 미술을 통한 조화로운 인간성의 육성에 초점을 두었다.
이들은 그동안 예술과 과학의 발달이 주로 창의적인 정신의 결과이므로 교육에서의 창의성 육성은 매우 중요하며 이러한 창의성을 계발하는 가장 좋은 교과가 미술이라고 생각한다. 창의성을 기르는 미술교육에서는 옳은 한 가지의 답이 없으며 어린이들이 표현하는 모든 것들이 옳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해답이 열려있는 혹산적 사고를 촉진하며 창의성의 요소들인 감수성, 유창성, 융통성, 독창성, 재정의하고 재조직하는 능력, 구성하고 추상하며 종합하는 능력을 발달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미술교육을 통해 길러진 창의성은 다른 모든 교과에 전이되며 사회생활의 곳곳에서 활용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모든 어린이들은 창의성을 가지고 있으며, 미술교육을 통해 잠재되어 있는 창의성을 계발시켜 주어야 하고, 미술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창의적인 사고의 주체인 개인을 발달시키는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인간의 상호관계에서 파생되는 갖가지 문제들과 인구의 증가, 국제사회에 대한 새로운 이해, 급격한 기술변화에서 기인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은 교육을 통해 창의성을 계발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입장이며, 창의성을 올바르게 기르는 교육이 바로 미래사회를 위한 교육이라고 보는 것이다. 허버트 리드도 교육의 기초를 예술에 두고 평화로운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예술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사회의 병리의 근원은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자발적인 창조능력을 억압하는 데 있으며 이러한 창조능력을 계발시켜 주는 교육이 예술교육이라는 관점이다.
이러한 주장은 그 동안의 「미술의 교육」, 「미술을 위한 교육」의 관점을 「미술을 통한 교육」이라는 관점으로 미술교육을 바라보도록 하였다. 이것을 미술교육에서 표현기능이나 미술작품의 제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술을 통해서 자신을 표현하고 그런 과정에서 창의성을 계발하며 더 나아가 조화로운 인간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관점인 것이다.
(3) 표현과정의 중시
창의성 중심 미술교육은 어린이의 창의적이고 조화로운 성장에 관심을 가졌고 이런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로 미술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주요 관심은 학생들의 조화로운 발달에 있었기 때문에 미술을 창의적인 인간으로 발달시키는 수단으로 여겼던 것이다. 미술을 통하여 어린이의 감수성을 육성하고 이기심을 줄여 협동심을 기르며 궁극저으로는 창의적인 능력을 계발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의 관점에서 미술은 교육적 도구이며 창의성을 표출하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자유로운 자기표현을 통한 창의성 계발은 표현 결과에 중점을 두어서는 불가능하며, 표현과정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장이란 계속적인 변화의 과정이기 때문에 미술교육에서는 최종작품이 어떤 지에 관심을 기울여서는 안되며 학생들이 어떻게 표현해 가는 지의 표현과정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수업에서도 미술표현의 과정이 중요하며 결과가 교육이 아니라 과정이 교육이라는 입장이다. 학생들이 창의적인 미술 매체를 가지고 진지하게 실험하며 자기의 표현 방법을 개발하는 과정이야 말로 미술 수업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는 어린이들의 작품이 성인의 작품보다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어린이들이 표현하면서 자신의생각, 느낌, 정서 등 자신의 모든 것을 작품 속에 표현하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이 그림을 통하여 자신을 발견하고, 표현과정에서 억눌려온 정서적인 벽을 제거할 수도 있으며, 창의적인 작업을 통해 자신을 실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의 작품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으로 바라보는 것은 그것의 결과만을 놓고 보기 때문이며, 표현과정에서 어린이들이 그 작품에 자신의 모두를 반영하고 정서를 표출했다면 그것은 매우 의미있는 것일 수밖에 없다. 특히 치젝은 어린이의 미술은 예술이라는 '예술로서의 아동화'를 강조하였다. 어린이들은 무의식으로 창조하며 위대한 것은 무의식에서 나오기 때문에 자유롭게 무의식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아동화를 예술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미술과 미술교육도 구분한다. 미술교육이 어린이의 표현과정을 중시하는 반면, 미술은 만들어진 것, 즉 최종작품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미술이 재료와 기법을 통한 조화로운 구성에 관심을 두어 결과를 강조하지만, 미술교육은 창작과정에서 각 어린이에게 미술이 미치는 효과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어린이의 미술표현에서 완성 결과를 강조하게 되면 창의적인 과정을 중요시하는 미술활동에 대한 이해가 제약받게 되면, 특히 교사 각자의 기호에 크게 좌우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러므로 어린이가 성장하여 미술가가 되든 다른 분야에 종사하게 되든 간에 어린이 각자 개성을 존중하는 창의적인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3) 주요 미술교육자
창의성을 강조하는 미술교육자로는 치젝과 로웬펠드, 허버트 리드 뿐만 아니라, 빅터 다미코(V. D'Amico), 바이텔(K. Beittel), 디 프란시스코(de Francesco) 등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 중 대표적인 세 사람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1) 치젝(F. Cizek)
치젝(1865-1946)은 미술교육의 무게중심을 미술과 성인에서 어린이로 옮겨 놓은 사람이다. 그는 미술을 가르치는 것에 중점을 주지 않고 어린이에게 미술을 통해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게 하였다. 이것은 그 동안 미술가를 기르기 위해 미술을 가르치거나 산업의 발달에 필요한 디자이너 등을 기르기 위해 미술교육을 하고 심리학자들이 어린이들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던 것을, 미술을 통해 어린이의 조화로운 발달을 꾀하자는 것으로의 전환이었다.
체젝은 1865년에 오스트리아의 보헤미아에서 태어나, 20살 때부터 빈의 미술학교에 다니게 된다. 그는 빈에서 하숙을 하게 되는데 아이들을 좋아하여 그들이 낙서하는 것을 흥미있게 지켜보았다. 그런 낙서에서 어린이들의 그림이 자신이 미술학교에서 그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데생처럼 관찰하고 분석하여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자유롭게 그들의 방법으로 표현함을 발견했던 것이다.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화가로 활동하며 유럽의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도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독특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을 주의깊게 관찰하게 된다. 그러면서 어린이는 어린이 나름의 독특한 표현방법이 있는 데도 어른의 그림그리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가 어린이가 자유롭게 자기표현을 하는 장을 처음으로 마련한 것은 1897년이다. 그는 어떤 학교의 조교로 들어가 어린이 미술교실을 개설하여 자유표현을 시도하였다. 이것이 어느 정도 성공하여 1904년에 빈에 있는 국립미술공예학교 안에 어린이 미술교실을 설치하여 본격적으로 자유로운 자기표현에 의한 아동화를 시도하게 된다. 처음에 그는 6-15세까지의 어린이 50명을 대상으로 하다가 4-15세까지의 어린이들로 확대하여 거의 교사의 간섭이 없는 자유표현을 통해 어린이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마음껏 표현하도록 했던 것이다. 치젝은 이 학습에서 색챠트 만들기와 자연물의 정밀묘사 같은 활동을 없애고, 어린이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그들의 개별적인 반응을 시각형태로 나타내도록 그들을 격려하였다. 치젝은 항상 자신의 목적이 미술가를 육성하는 데 있지 않다고 말했다. 모든 어린이들에게서 발견했고 느꼈던 창의력의 발달이 '자연법칙' 대로 꽃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그는 어린이들이 만든 작품을 높이 평가했다. 그들의 작품은 예술적 창조의 최초의 것이고 가장 순수한 것이며, 또한 어린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창조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린이들의 작품이 아름다운 것은 그들의 작품이 성인의 관점에서 보아 「잘못된」표현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교사가 이러한 잘못된 것을 많이 제거할수록 어린이들의 작품은 보잘 것 없어진다고 생각했다. 어린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자유로운 자기 표현을 통해 이러한 창의성을 표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치젝은 어린이의 작품에 손을 대거나 간섭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어린이가 표현할 때 그 앞에 서 있는 것도 어린이에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어린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교육하였다. 나이나 성별에 의한 구분이 아니라, 상상한 것을 자유롭게 그리고 싶어하는 어린이들과 보고 그리기를 하고 싶어하는 어린이들로 구분한 것이다. 그는 어린이들에게 각자가 생각하고 좋아하는 것을 자유롭게 표현하게 하였으며 결코 어떤 것을 그리도록 구체적인 대상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어린이들의 창조의욕을 높이는 자극을 주는 일에 열중하였다. 그는 어린이들을 성장시킨다는 것이 그들의 내적인 법칙에 따라 성장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그들을 바르게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의 내적 법칙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의 파악은 어린이들의 미술을 관찰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어린이들의 자율적인 표현을 최대한으로 보장하기 위해 표현재료의 자유로운 선택제를 도입하였다. 어린이들이 자신의 의욕과 흥미가 느껴지는 대로 목탄. 연필, 물감, 석고, 목조, 동판 등의 많은 재료 중에서 골라 자신의 표현을 하도록 한 것이다. 그의 지도는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주제, 개인의 자유로운 자아표현과 자주성의 강조를 통해 어린이의 개성을 존중하고 주체적 표현력의 강조를 꾀하는 내용을 우선하였다.
이러한 치젝의 미술교육 목적은 다음과 같았다.
·유년기 미술표현의 보호
·조형활동을 통한 어린이의 유기적인 성장의 촉진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표현룍과 조형력의 육성
·스스로 표현하는 감각과 미술작품의 이해를 통한 감상교육의 강화
·공예미술과 조형미술의 연구를 위한 준비단계
·미술의 초기 단계와 원시미술에 대한 연구
·강연, 전시회, 견학, 출판물에 의한 부모, 미술교사, 작가의 계속 교육
이런 활동은 1938년까지 계속되었으며, 세계 1차대전 이후 이 운동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수많은 참관자가 찾아오게 되고 전시회를 통해 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치젝의 활동은 치젝의 여러 제자들에 의해 파급되고 영국의 톰린슨(R. R. Tomlinson) 등에 의해 영국에 소개되었고 허버트 리드도 치젝의 영향을 받았으며 세계 각국의 미술교육을 미술의 교육에서 아동의 자유로운 자기표현 중심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2) 로웬펠드(V. Lowenfeld)
로웬펠드는 세계의 미술교육에 가장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치젝이 창의성 중심 미술교육의 실천 쪽에 허버트 리드가 이론 쪽에 기여했다면 로웬펠드는 이론과 실천 모두를 겸비하여 창의성 중심 미술교육을 전파시켰다. 로웬펠드는 1903년 히틀러가 태어났던 오스트리아의 린츠(Linz)에서 태어나 레악 김나지움과 빈네제 대학을 졸업하였다. 그는 빈에서 맹아와 약시아 등을 가르치면서 연구하다가 반유태정책으로 1938년 11월 미국으로 건너와 1939년 헴프턴 전문학교에서 근무하였으며 1949년부터 1960년 사망할 때까지 펜실베니아 주립대학 미술교육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로웬펠드는 심리학,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 맹아학교의 지도 경험, 듀이 등의 진보주의와 치젝의 자유표현 운동, 두 차례의 세계대전 등의 영향을 받아 아동중심, 창의성 중심, 과정 중심, 자기표현 중심, 발달과정 중심 등의 미술교육 사상을 확립하였다.
로웬펠드가 어린이를 바라보는 관점은 진보주의와 심리학 등의 영향을 받아 발달을 중시하고 어린이의 자발적인 표현과 자연스러운 성장을 강조한다. 모든 어린이는 내부에 잠재해 있는 창의적인 발달능력을 소유하고 있으며 교육은 그런 능력을 계발시켜야 한다고 믿었다. 어린이의 발달을 전체적인 것으로 보고, 그 전체적인 구조 안에 지적 발달, 정서적 발달, 신체적 발달, 지각적 발달, 사회적 발달, 미적 발달, 창의적 발달 등이 유기적 관계를 맺으며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이의 작품은 그 시기의 전체적인 인성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또래집단기에는 그 시기의 특성인 집단성과 사회성이 어린이의 표현에 그대로 나타나며 그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대상을 과장한다.
로웬펠드는 어린이의 창의적이고 정신적인 성장에 가장 큰 관심을 가졌고 이런 성장을 달성하는 매개체로 미술을 바라보았다. 그에게 미술이 중요한 것이지만 그의 주요 관심은 어린이의 적절한 발달에 있었으며, 지각하고 생각하는 창의적인 어린이로 발달시키는 수단으로 미술을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어린이의 감수성을 육성하고 협동심을 길러 이기심을 줄이고 결국 창의적인 능력을 계발하는 교육적 도구가 미술이었다. 촉각적, 시각적, 청각적 현상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을 통하여 어린이의 상상력과 지각 능력을 발달시킨다는 생각은 허버트 리드의 "어린이는 자신의 감수성의 계발을 통해 배워야 한다"는 생각과 유사하며, 듀이의 '행함을 통한 학습', 아른하임의 게슈탈트 접근인 '전체 안에서의 구분' 등의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미술교육이 창의적인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어린이를 미술을 매개체로 조화롭고 전체적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라면, 교사는 이런 어린이의 잠재력이 실현될 조건을 마련해주고 어린이의 미술적 발달의 자연스럽지만 단계적인 과정을 간섭하지 않고 촉진시켜야 한다. 이런 교사의 자질로 로웬펠드는 세 가지를 든다. 첫째, 교사의 창의성과 감수성이다. 교사는 자기 스스로 창의성과 감수성을 풍부하게 지니고 있어야 하며, 그래야만 어린이의 창의성과 감수성을 촉진시키고 격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교사의 감정이입적 능력이다. 교사는 학생의 정서와 감정을 수용할 수 있고 인정할 수 있는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학생의 욕구에 대한 지식과 이해이다. 학생의 욕구와 발달 단계를 정확하게 알고 이해하고 있어야 그에 맞는 지도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 자신의 욕구보다 어린이의 욕구를 보다 중시해야 하며 그들의 사회적, 심리적 욕구 등에 정통해야 한다. 그런 교사의 지도는 모든 상황을 예견하여 동기를 부여하는 산파적인 일이다.
이러한 로웬펠드의 미술교육에 대한 견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어린이는 잠재력과 창의성을 모두 지니고 있다.
둘째, 미술은 어린이의 창의성과 잠재력을 계발시켜주는 매개체이다.
셋째, 미술이나 교육보다는 어린이의 전체적이고 조화로운 발달이 중요하다.
넷째, 성인의 미술과 어린이의 미술은 다르다. 그러므로 어린이에게 성인의 미술과 닮은 아동화를 기대해서는 안되며, 성인의 관점을 부과하거나 간섭해서는 안된다.
다섯째, 어린이의 미술표현은 일정한 단계를 거쳐 발달한다.
여섯째, 모든 동기부여, 주제, 재료 등은 이런 발달단계에 맞게 제시되어야 한다.
일곱째, 교사는 어린이의 자기표현이 가능한 조건을 마련해 주고 격려하는 촉매자 역할을 한다.
여덟째, 제작결과보다 표현과정이 중요하다.
아홉째, 어린이의 표현유형은 시각형과 촉각형으로 대별할 수 있다.
(3) 허버트 리드(Herbert Read)
허버트 리드(1893-1968)는 시인, 문예비평가, 미술비평가, 예술교육론자, 평화주의자 등으로 활동하면서 미술교육에도 무시하지 못할 영향을 미쳤으며 우리 나라에는 그 어떤 미술교육자 보다 많이 알려져 있다. 리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에서 근무한 인연으로 미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미술영역에서는 프로이트와 융, 보링거의 영향을 받았고 미학적으로는 크로체의 영향을 받아 예술비평과 예술교육에 대해 뛰어난 족적을 남겼다. 그는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길은 인류가 하나의 인간 가족이라는 이념을 사람마다 갖는 길 밖에 없다고 보고, 이러한 길을 예술교육에서 찾아보자는 생각을 하였다.
리드는 미와 예술은 다르다고 본다. 미는 감각적 지각에 있어서의 형식관계의 통일이나 조화의 인식이고, 예술은 즐거운 형식으로 창조하려는 것(과정)이며, 예술활동은 지각을 즐거운 형태나 형으로 구성하는 미감의 과정에서 인간의 정서나 감정을 표현하는 작업이라는 입장이다. 또한 예술작품은 조형의지에 의해 지배되는 불변적인 요소인 미의 「형식」과 초현실적인 상징을 만들려고 하는 욕구에 의해 지배되는 가변적 요소인 「표현」을 지니게 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감각과 본능에 기초한 유기론적 예술론을 전개한 그는 예술교육에서 개인의 자발적 창조력의 억압을 지양하고 인간의 본래적인 창조력을 도야하여 분열없는 조화로운 인격의 완성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리드의 예술교육은 한마디로 「예술을 통한 인간교육」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는 교육의 기초를 예술에 두고 평화적 세계의 초석을 정초하는데 예술교육의 임무와 사명이 있음을 확신하였다. 사회적 병리의 근원을 개인이 지니고 있는 자발적 창조능력의 억압에서 찾았고, 교육에서 이런 자발성의 결여가 인격의 분해에서 유래한다고 보았으며, 이에 대한 해결책을 예술교육에서 찾았던 것이다. 인간의 파괴 충동과 공격본능을 창조적 활동으로 발산하여 순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허버트 리드가 보는 교육의 목적은 개인과 사회의 조화를 달성하는 데 있었으며 그러기 위한 교육방법은 주지주의와 과학만능주의에 반대하여 예술적 정신의 함양과 과학과 예술의 조화에 두었다. 그는 창작과정을 중시하여 인간의 자기상실을 자기표현으로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예술교육은 규범적이고 수신적인 도덕성을 요구하지 않으므로 예술의 창조적 표현과 미적 향수 과정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덕성을 계발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가 추구한 인간상은 예술적인 인간상인 이성과 감성이 조화된 인간형이었으며, 인간의 원만한 발달을 미적인 정서의 도야에서 찾았다.
그는 정신분석과 무의식의 영역을 예술교육에 적용하고 아동화를 심층 분석하였다. 개인적 무의식과 집합적 무의식에서 무의식적 정신작용의 단계와 각 개인의 정신구조를 구별하여 설명하였다. 창조표현은 우발적인 것이 아닌 필연적인 것이고 생명의 본질적인 작용이며, 인간에게는 표현욕구가 있고 표현해서 전달되어야 만족한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그는 감상교육도 강조하였는데 미술의 감상과정도 올바른 마음의 상태를 형성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즉 공감과 감정이입을 통해 자기 중심과 타인 중심의 조화를 꾀하고, 예술작품에 자신을 투영하여 자신을 재발견하는 것으로 여겼다. 자기표현은 곧 자기개조라는 것이다.
예술은 어린이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공감과 사랑에 응하는 힘이 되며 각 어린이가 지신 독특한 본능이나 경향을 지혜롭게 이끌어 가는 힘이 되는 것이다. 교사의 임무는 어떤 가치를 미리 판단하여 강제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가 가지고 있는 심리의 형태를 찾아내어 자연스러운 발달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고 이해와 인내를 가지고 협력하는 산파와 같은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리드의 예술교육론에서 두 가지 원칙을 찾을 수 있다. 하나는 교육에 있어 예술적 방법에 의해 감각을 신선하게 유지시킬 수 있고 이것으로 개인적 이상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것을 「사물에 의한 교육」의 원칙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교육의 기초로서 예술은 그 교육적 방법의 유일한 형식을 자연에서 찾아야 하며 그럼으로써 인간은 자연에서 예술을 통하여 우주의 가치있는 일원으로 조화있게 기여한다는 것으로, 이것을 분열이 아닌 「결합에 의한 교육」의 원칙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원칙 아래 그는 창조의 과정인 미술을 통한 어린이의 창의성 육성과 사회에 유용한 미술교육을 강조하였으며 조형 감각의 발달을 중시하였다.
이러한 리드의 예술교육론을 정리하면 인간에게는 모두 무의식과 표현욕구를 가지고 있는데, 이런 개성과 표출 욕구, 창조성이 억압되기 때문에 인간사회의 병리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 표현과 향수를 통해 그런 욕구를 충족시켜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꾀하고 예술적 인간을 길러 아름답고 조화된 사회를 이룩하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즉 인류를 비극적인 결말로 밀어붙이는 흐름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해내는 유일한 길은 손을 사용하는 기술이나 감각적인 식별의 절차를 동반하는 여러 가지 활동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이러한 활동은 본질적으로 미학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교육은 감각적인 교육 곧 「예술을 통한 교육」에 집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4) 검토와 시사점
창의성 중심의 미술교육은 지금도 세계적으로 가장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흐름이며 교사들이나 미술교육자들 사이에 지배적인 관점이 되고 있다. 이러한 창의성 중심의 미술교육을 검토해보고 시사점을 꼽아보기로 하자. 먼저 창의성 중심 미술교육의 긍정적인 측면을 살펴본다.
첫째, 창의성 중심 미술교육은 무엇보다도 미술교육의 무게 중심을 어린이에게로 옮겨놓았다는 데에서 그 의의를 찾아야 한다. 19세기 이전까지의 미술교육은 아카데미의 미술교육이든 산업을 위한 미술교육이든 미술내용이나 사회의 요구, 또는 성인에 그 중점이 있었다. 즉 미술가를 기르기 위해서난 산업 발달에 필요한 디자이너를 기르기 위한 교육이었지만, 창의성 중심 미술교육은 그 주체를 어린이에게로 옮겨놓음으로써 미술교육에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한 것이다. 어린이 미술의 발견은 곧 어린이 미술이 나름대로의 인간과 자연, 사회에 대한 의식의 표현이며 삶의 의미 형성과정의 표현임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교육학에서의 어린이에 대한 발견과 심리학의 발달, 표현주의 미술의 등장 등으로 가능했던 일이다. 그동안 미술교육을 성인들의 것을 어린이에게 전달하거나 산업적으로 필요한 것을 어린이에게 가르치는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을 어린이의 자유로운 내면의 자기표현을 통해 창의성을 계발한다는 어린이 중심으로 바라보게 된 것은 큰 관점의 전환이다.
둘째, 미술교육을 인간이나 교육에 중요한 위치로 자리잡게 했다는 점이다. 창의성 중심 미술교육은 미술이 인간에게 중요한 것이며 교육에 있어서도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라는 인식을 확신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세계적인 문필가였던 허버트 리드가 인간에게 있어 예술은 본능적인 것이며 사회의 모든 병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술을 통한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미술교육의 위상을 제고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로웬펠드가 미술교육의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생각하였던 창의성 교육학 전반적인 개념으로 확산시켜 교육학에서의 창의성 바람을 일으키게 하였다. 창의성의 개념이 미술 교육에서 제기되어 먼저 심리학계에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길포드와 토런스 등이 창의성에 관심을 기울여 그 특성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였다. 이런 미술교육의 개념에서 심리학 용어가 된 창의성은 다시 교육학 용어가 되어 점차 여러 영역에서 일반적인 개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렇듯 창의성 등의 개념을 통하여 미술교육을 교육에서 중요한 교과라는 인식을 심게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창의성 중심 미술교육은 미술이 본질적으로 줄 수 있는 목표보다는 교육의 일반목표인 창의성이나 이성과 감성의 조화등을 보다 중시하였던 것이다.
셋째, 미술교육에서 표현과정과 발달과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했다는 점이다. 그 동안의 미술교육은 완연한 결과 중심, 작품 중심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표현기능을 높이는 데 있었으며 미술을 가르쳐 미술가와 산업 디자이너를 기르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학생들의 표현과정은 단지 작품과 결과를 산출하기 위해 인내하고 희생해야 하는 단계일 뿐이며, 학생들의 발달과정도 학습에 거의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창의성 중심 미술교육은 심리학의 영향을 받아 학습자들의 미술표현 발달과정을 단계화하고 그 과정에 맞는 미술교육을 주장하였으며, 표현결과 보다 표현과정을 중시함으로써 표현과정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물론 미술교육에서 표현과정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표현결과도 과정 못지않게 중요하며, 창의성 미술교육이 의의가 있다는 것은 결과에 치우쳐 있던 것을 과정에도 관심을 기울이도록 했다는 점이다.
이런 창의성 중심 미술교육의 긍정적인 측면에 반대되는 부정적인 측면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먼저 지나친 표현 중심의 미술교육으로 흐르게 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창의성 중심 미술교육은 공통적으로 간섭없는 자기표현을 통한 창의성 계발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자연스럽게 표출하도록 강조한다. 하지만 어린이에게 자유롭고 자발적인 미술표현을 하게 하여 창의적인 발달을 꾀한다면 결국 미술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즐기는 수준을 뛰어넘지 못한다. 또한 개념적인 기초 기능의 부족은 재료만 끊임없이 다루게 할 수도 있다. 예술을 포함한 모든 중요한 인간 노력은 기본 기능습득을 요구하며 미술은 항상 재미있는 것만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미술을 활용할 수 있는 어린이를 길러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미술에 대한 이해와 감상교육이 필요하다. 미술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어야 그에 따른 표현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아동과 심리학 측면의 지나친 강조로 미술의 본질과 사회으 요구를 중시하지 않았으며 미술을 자기표현, 카타르시스적 표현, 유희적 표현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미술교육은 학습자의 특성과 미술의 본질, 사회의 요구가 조화를 이뤄 성립하는 교과이다. 창의성 미술교육은 학습자의 특성만을 너무 강조하여 미술교육이 어린이들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교육은 각 교과의 특성에 따라 이루어지며, 학습자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유지, 변화시키고 개선하는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아동의 지나친 강조는 성인 중심에 대한 대립적인 태도로 인해 아동에 대해 고립적, 독단적 편견을 갖기 쉽다. 어린이들도 현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은 계속 어린이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그 사회의 주역이 된다. 그러므로 어린이 문화는 어린이 문화에 그치거나 고립되어서는 안되며 청소년 문화로, 다시 성인 문화로 연결되고 창달되어야 한다.
한편으로 심리학의 영향에 따라 미술표현에서 카타르시스적 측면과 유희적 측면이 강조되는 경향이 강하다. 예술은 유희에 머무르는 활동이 아나며 세계나 인간의 존재적 의미를 추구하고 정신적인 가치도 가지고 있다. 어린이의 표현은 유희나 단순한 감정의 표출에 그쳐서는 안되며 그런 모든 활동은 그것이 교육이기 때문에 어떤 목적 아래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로 교사 역할의 소극성이다. 그는 교사의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그 역할은 주로 동기부여에 한정되는 느낌이다. 대부분의 교육 결과는 교사에 의해 좌우된다. 로웬펠드는 어린이의 개별적인 자기표현을 간섭하는 것을 극도로 경고하면서도 미술적 성장의 발달단계를 통해 어린이를 촉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간섭하지 않으면서 발달을 촉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린이를 간섭하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하게 해도 그리는 데 자시없어 하는 어린이는 매우 많다. '나는 그릴 수 없어요'라고 말하게 되는 이유가 부모나 교의 간섭때문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표현과 대상, 자신의 그림과 사진, 자신의 작품과 다른 잘 그린 사람의 작품의 차이를 인식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강요나 잘못된 간섭은 없어야 하겠지만 그것이 교사의 소극성이나 방임으로 흘러서는 안된다. 그것은 어린이의 창의적 미술작품을 다른 어린이의 것과 비교하지 못하게 하고, 다은 사람의 작품을 칭찬하기 어렵게 하며 구체적이고 특정한 표현과 기능발달을 건설적으로 돕지 못하게 할 수 있다. 다른 어린이의 창의성은 백지 상태에서 혼자 힘으로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창의적인 어린이나 작품을 보고 교사의 적극적인 지도를 받으면서 보다 효율적으로 발달할 수 있는 것이다.
이해 중심 미술교육
창의성 중심의 미술교육에 이의를 제기하고 미술교육의 다른 방향을 제시한 흐름을 하나의 묶음으로 제시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그리고 지금 전개되고 있는 현재의 흐름이기 때문에 정리하는 데도 약간의 무리가 따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래 30여 년간의 흐름은 창의성 중심의 미술교육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미적 경험과 미술에 대한 이해를 강조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1960년대 초에 미술교육자들은 개념으로서의 창의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면서 미술교육의 가능성을 다양하게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그런 모색에는 학문에 기초한 미술교육인 DBAE(discipline-Based Art Education)와 미적교육(Aesthetic Education), 사회중심 미술교육, 미술요법(Art Therapy), 보람있는 여가를 위한 미술교육, 우뇌 계발을 강조하는 미술교육, 다문화 미술교육(Multicultural Art Education) 등이 포함된다. DBAE는 미술을 하나의 학문, 또는 지식의 체계로 보고 미술의 기본적인 것들을 교육시키자는 것으로 미술사, 미학, 미술제작, 미술비평의 네 학문을 그 기초로 삼고 있다. 미적 교육은 예술 전반의 근원적이고 통합적인 것들을 통하여 미적 경험과 미적 만남을 늘려 미적 감수성을 고양하고 미적 인식을 높이자는 입장이다. 사회 중심 미술 교육은 미술교육에서 사회의 요구를 중시하는 입장으로 적절한 미술활동이 물리적 환경에 대한 감수성을 발달시켜 줄 수 있고, 환경 조형교육이 전반적으로 시각 판단 능려을 도와주며, 좀더 건전한 환경을 조성하고 환경을 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태도를 갖게 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미술요법은 독창적인 시각적 표현을 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의사결정이 자아의 건전한 이미지와 개인에 있어서의 독립성과 자신감을 증진시키는 데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미적 만남에 의한 즉각적인 심리적 경험은 인지적 기능과는 반대되는 경험이며 이러한 측면은 자연적이고 개방적인 개인으로 육성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여가시간을 보람있게 보내기 위해서는 미술교육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분할 뇌 기능에 대한 연구에 바탕을 둔 우뇌계발 미술교육은 우뇌가 주로 미술과 관련된 기능을 담당하고 통제하고 있다는 것에 관한 것이다. 몇몇 연구가들은 다른 수업시간에는 별로 사용되지 않는 뇌의 오른쪽 부분을, 즉 시각 언어능력, 공간지각력, 직감력 등을 미술교육이 발달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다문화 미술교육은 다른 문화의 미술을 그 특유의 표현으로 이해하기 위해 그 문화의 예술적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민족 중심주의의 반대개념으로 다른 문화에 대한 사실들을 단순하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화가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배우는 것이다. 다문화 미술교육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흐름에 부응하고 미국의 민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두된 것으로 미술과 문화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아이스너는 1960년대 미술교육을 다음과 같이 진단하였다.
첫째, 학생들에게 작업할 수 있는 매우 다양한 재료의 제공을 강조한다.
둘째, 자기표현이나 창의성 등 미술을 통하여 교육이 달성해야 하는 일반목적에 전념하고 있다.
셋째, 국민학교의 소수의 학급만이 미술교육을 전공한 교사에게서 배우고 있다.
넷째, 미술표현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다섯째, 미술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교육자료가 매우 부족하다.
이러한 진단들은 창의성 중심 미술교육에 대한 진단이며 미술이해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듯이 1960년대부터 제기되는 다양한 미술교육의 흐름의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예술의 근원적이고 통합적인 미적교육을 하자는 입장과 미술을 지식의 체계로 보고 그 독자성을 강조하여 미술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입장으로 대별할 수 있다.
1) 역사적 배경
(1) 학문중심 교육과정의 영향
미술이해 중심 미술교육은 1957년 소련의 인공위성인 스프트니크가 미국에 앞서 발사되자 그 동안의 진보주의 교육과정에 대한 비판의 소리와 함께 등장한 학문중심 교육과정의 영향을 받았다. 미국은 자국의 과학기술이 뒤떨어지게 된 원인을 교육에서 찾았고 그 대안 모색에 분주하였다. 학문중심 교육과정은 학생들이 학문의 기본적인 구조와 요점을 이해하게 되면 다른 여러 문제에 직면했을 때도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전제로 시작하여 가르칠 기본적인 지식의 구조와 개념, 원리 등을 중시하였다. 이 교육과정의 대표적인 교육학자는 부르너로 각 학문의 기본적인 것, 즉 개념을 익히는 것을 가장 좋은 교육방법으로 보았으며 이러한 학문의 기본적인 것을 지식의 구조라고 불렀다. 학문중심 교육과정의 바탕은 본질주의 교육철학으로 이것은 인류의 문화유산 중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을 학교교육을 통해서 다음 세대로 계승하자는 것이다. 즉 교육의 목표를 인류의 핵심적인 경험, 즉 문화유산 중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을 조직적인 학교교육을 통하여 다음 세대에 계승시키자는 교육사상이다. 본질주의 교육사상은 학습은 원래 강한 훈련을 수반하고 교사는 교육과정에 있어 주도권을 지녀야 하며, 교육과정의 핵심은 소정의 교과를 이수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러한 이론은 미술교육에도 영향을 미쳐 미술을 하나의 문화적인 자원이나 하나의 지식의 체계로 보는 시각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학자들은 미술 속에 인류 문화의 핵심적 경험이 담겨있다고 보고 이런 맥락에서 미술학습의 원리를 끌어내고 미술학습의 영역을 확장시킨 것이 이해중심 미술교육이다. 아이스너나 DBAE, 미적교육 모두 미술을 하나의 학문으로 보거나 문화유산으로 보아 미술을 이해시키고 미술문화를 통한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아이스너는 미술교육의 기초학문으로 미술제작, 미술비평, 미술사와 문화의 세 영역을 꼽았으며, DBAE는 미술제작, 미술비평, 미술사, 미학의 네 영역을 기초로
하였고 미적교육은 미학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이렇듯 미술이해 중심 미술교육은 학문중심 미술교육과 본질주의 교육철학의 영향을 받아 미술을 하나의 학문 체계나 구조로 보고 기본지식이나 구조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며 교육과정과 교사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2) 지각 심리학의 영향
미술이해 중심 미술교육은 지각 심리학의 발달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아른하임을 비롯한 지각 심리학자들은 사람이 대상들의 특징들을 지각하고 비교하고 대조할 수 있는 과정을 '지각의 분화(perceptual differentiation)'라고 부르며, 어린이들의 이러한 지각능력은 학습에 따라 발달하고 경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본다. 이런 입장에서는 어린이보다 어른의 지각이 더 복잡하며, 어린이들의 미술표현이 이러한 시지각 능력의 범위 안에서 발달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교사가 어린이들에게 산의 초록색이 단순한 초록이 아니라 다양한 초록 계통의 색을 광범위하게 포함하고 있음을 가르쳐주지 않으며, 그들은 산의 여러 가지 색을 지각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인지 분화 뿐만 아니라 지각의 분화도 어린이가 어떤 영역에서 자신의 전문적인 안목을 높여감에 따라 점차 복잡해지고 세련된다. 따라서 지각의 분화를 촉진시키고 시지각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의 습득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지각 심리학의 입장을 취하는 아이스너는 어린이 미술표현을 보는 관점을 네 가지로 요약하였다. 첫째, 어린이의 지각능력은 학습과 경험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 둘째, 어린이의 시지각 능력과 미술에 관한 제반 지식의 범위에서 그의 미술표현 능력이 발달된다. 셋째, 지각의 준거틀이나 시각적 지식 등은 어린이의 지각에 영향을 미쳐 결국 그것들에 의하여 어린이의 보는 것이 방해를 받는다. 그러한 시각의 준거틀이나 시각적 지식 때문에 어린이의 질적이고 분석적인 지각이 방해되는 경향이 있다. 이 방해를 시각적 불변성이라고 부르며, 그런 예측이나 시각적 불변성 때문에 어린이는 보는 것을 알고 있는 것으로 바꾸어 놓게 된다. 넷째, 어린이의 지각 발달의 특징은 집중성이다. 어린이의 시지각 발달은 '전체'보다는 '부분'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어린이는 대상의 전체적인 형태를 파악하지도 못하고 통일된
형태도 만들어 내지도 못하게 된다. 미술이해 중심 미술교육은 이런 지각 심리학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3) 현대미술의 다양한 전개
미술이해 중심 미술교육은 미술문화의 이해를 강조하기 때문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술에 대한 이해도 중시한다. 그러므로 현대미술의 흐름에 민감할 수밖에 없으며 복잡한 현대미술의 경향에 민감한 미술교육 방법을 모색하였다. 현대미술의 주 흐름이었던 모더니즘이 다양한 전개과정을 거치면서도 각각 하나의 이념 아래 일정한 흐름으로 전개되었고 점차 보수성을 띄어 고급화되었다. 그런 흐름에 반발하여 팝아트, 포스트모더니즘 등의 대중성, 개성, 다원성, 복합성을 특성으로 한 흐름이 전개되고 있다.
이해 중심 미술교육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학생들이 앞으로 직면할 다양한 미술문화에 대한 예비지식을 갖출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등을 이해하기 위하여 학생들은 자기 앞에 놓여진 미술작품을 평가할 수 있도록 미술이해에 대한 지식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현대미술의 다양한 측면을 미술교육에 반영하려고 노력하며 그런 생각은 미술교육에 미술제작 뿐만 아니라 미술비평, 미술사, 미학 등을 가르쳐야 한다는 관점에 반영되어 있다. 특히 다문화 미술교육은 자기 문화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교육를 강조하며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는 다원화가 생명이기 때문에 이런 다문화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2) 주요 특징
이해 중심 미술교육은 미술을 다른 일반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 교과로 보지 않고 미술에 본질적인 가치가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미술의 독자성 강조와 미술의 이해와 감상교육 강조, 교육과정과 교사의 역할 중시 등의 특징을 갖는다.
(1) 미술 교과의 독자성 강조
이해 중심 미술교육은 미술교육이 학생들을 성장시키는 데 공헌할 수 있는 특별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미술교과의 본질적인 가치를 강조한다. 미술교육도 다른 교과와 함께 일반 목표를 공유하고 있지만 이런 일반목표들은 미술의 이런 독자적인 목표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아이스너는 미술이 하나의 독립된 교과임을 주장하면서 미술을 수학이나 과학과 같이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 취급하였던 것이다. 그에 의하면 미술은 우리 문화속에서 하나의 중요한 자원이기 때문에 다른 학문과 공유하여 여러 가지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이스너의 입장에서 미술은 학교 교육과정 계획에 없어서는 안될 교과였던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 미술교과는 다른 목적, 즉 성격의 치료, 창의성을 기르는 수단, 취미의 수단, 표현 기능 육성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교과가 아니라, 인간경험과 문화의 독특한 하나의 영역이며, 그것은 그것만이 지니는 고유한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의 경험 속에서 미술은 인간에게 환상의 감각을 제공한다. 또 미술은 인간의 숭고한 상상력을 표현하는 데 활용된다. 미술가는 자신의 생각이나 이미지를 시각적 상징으로 변형시켜 대상을 창조하며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형성화시키고 구체화시켜 하나의 형태를 창조한다. 따라서 미술은 인간이 상상의 세계를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되며 우리의 감수성을 활기있게 한다. 또한 미술은 인간의 의식을 상호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문화적 자원이다. 이러한 미술의 본질적인 기능을 강조하는 미술교육을 아이스너는 강조한다.
미적교육의 흐름도 미술의 독자성을 강조하는데, 특히 브라우디(H. s. Broudy)는 미적교육을 읽기, 쓰기, 셈하기의 3R's에 더하여 미적 느역을 4R's라고 주장한다. 그는 언어나 숫자가 지식이나 생각을 연결해 주는 기호의 역할을 하듯이 예술활동의 다양한 양상들도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파악하게 하는 기호이며 시각 언어라고 보는 것이다. 즉 예술은 상호간에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매체가 될 수 있으며, 예술표현은느낌, 생각을 보다 직접적이고 감각적으로 전달해주는 매체이므로 3R만큼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미술을 읽거나 쓰기, 셈하기와는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한 것임에 분명한 것이다.
(2) 미술의 이해와 감상 강조
이해 중심 미술교육은 창의성 중심 미술교육이 표현에 너무 치우쳤다는 비판을 제기하면서 미술에 대한 이해를 가장 중시한다. 이들은 인간 경험과 이해, 미술의 본질적 가치를 다룰 때, 미술에 대한 탐구와 미술작품의 감상을 강조한다. 이것은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교육에 중요하고 주요 관심사이기 때문이지 사회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 아니다.
아이스너는 미술수업의 제작적인 면(the productive), 비평적인 면(the critical), 역사적인 면(the historical)을 제안하였다. 이것은 미술학습의 결과는 자연적인 성숙의 결과가 아니라는 그의 전제에서 나온 것으로 미술교육에서 가르쳐야하는 세 가지 영역이다. 다시 말해서 그의 미술교육의 영역은 미술제작, 미술비평, 미술사와 문화이다. 따라서 그의 관점에서 볼 때, 미술학습은 어린이가 작품을 만들고, 작품의 미적 요소와 특징 등을 이야기하며, 작품을 통해서 인류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복합적인 활동으로 구성된다. 그런 학습에서 교사는 미술 실기능력 뿐 아니라 미술비평과 미술사, 문화 등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아이스너는 미술비평과 미술사와 문화를 강조함으로써 표현보다 미술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고 있다. 그는 표현능력과 더불어 비평영역인 미술형태에 대한 지각력을 기르는 학습영역을 중시한다. 이 영역의 학습은 미술작품에 대한 느낌(경험적 영역), 작품 형태의 지각(표현 구조를 파악하는 능력), 미술작품으 상징적 의미 파악(상징적 영역), 상징적 작품의 주제 파악(주제 영역), 작가의 의도와 재료의 선택 이해(재료 영역) 등을 포함한다. 이러한 미술작품을 지각하는 것은 미술사와 문화에 댜한 이해로부터 끌어낼 수 있다. 학생들은 미술 문화를 통해서 과거 미술가의 노력을 엿볼 수 있으므로 과거의 미술전통은 미술가의 작업활동에 토대가 되는 것이다. 학생들은 역사와 문화 속에서 작업함으로써 기존의 문화를 이끌고 가거나 새로운 문화를 창달할 수 있는 것이다. DBAE도 미술제작 뿐만 아니라 비평과 미술사, 미학을 기초 학문으로 보며 미술제작 외에 세 영역이 미술이해와 감상과 관련된 영역인 것을 보면 이해와 감상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미적교육 역시 미적 경험을 통한 미적 감수성의 함양과 미적 인식의 발달을 추구하며 미적인식의 발달은 미술에 대한 이해와 감상능력을 의미한다.
(3) 교육과정과 교사의 중시
이해 중시 미술교육은 문서화된 교육과정을 매우 중시하며 적극적인 교사의 역할과 수업을 미술교육의 핵심으로 여기고 있다. 아이스너는 교육과정을 '학생들에게 교육적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개발된 연속적인 활동'이라고 정의하고, 미술 교육과정의 조직에 이용되는 영역으로 미술제작과 비평, 미술사를 꼽으며, 이들의 교육과정 구성에 있어 단원과 학습활동 개발의 기초로 삼고 있다. 교육과정은 교육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어떤 내용에 학생이 참여할 수 있도록 의도한 일련의 활동인 것이다. 이런 개념 속에 다양한 활동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러한 활동은 계열화되고 계속되는 과정이다.
아이스너는 교육과정의 개발에 네가지 전제를 꼽고 있다.
첫째, 미술학습에서는 자연적인 성숙의 결과를 바라지 않으며 미술적 능력의 발달은 학습에 의한 결과라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미술교육에서 기를 수 있는 것은 표현능력과 감수성, 시각 형태에 대응하는 능력, 인간의 문화적 경험 속에서 미술이 수행하는 역할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능력 등이다.
둘째, 미술이 다양한 목적을 서위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도 있지만 분명 미술만이 제공할 수 있는 독자적인 특성이 있다.
셋째, 미술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넷째, 미술학습은 평가될 수 있다. 형식적이건 비형식적이건 평가는 교수 학습의 성취도를 이해하고 보다 효과적인 미술교육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전제 아래 교육과정의 구성요소와 개발절차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영역→개념이나 양식→원리나 체계→준거→목표→동기부여 활동→학습활동→수업보조 매체→평가
DBAE 역시 형식적이고 계속적인 교육과정으로 미술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학년수준에 따라 체계적인 교육을 위한 근거로서 문서화된 계획인 교육과정을 요구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DBAE 교육과정은 첫째, 미술에 그 강조를 두고 둘째, 미술표현에 필요한 기능을 제시하며 셋째, 구조화된 방법을 제시하는 것을 특징으로 꼽고 있다. 이 교육과정은 미술제작, 비평, 미학, 미술사의 네 학문에서 도출되며 인정된 탐구양식과 절차 안에 정보와 개념, 기능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과 기능은 미술에 대한 발달과 이해로 이끄는 계열성에 따라 제시된다. 이러한 교육과정들은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특징을 가지고 미술교육에 접근하고 있다. 이 접근은 뚜렷한 전제에서 영역을 끌어내고 그 영역을 토대로 교육과정을 구성하는 것이며 이런 구성에는 목표와 내용, 교수학습활동, 평가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이해 중심 미술교육은 교사의 역할과 수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해 중심 미술교육은 미술을 하나의 기본적이고 근원적인 학문이며 지식의 체계로 보기 깨문에 이를 가르치는 교사의 적극성과 체계적인 지도를 매우 중요시하며 그런 활동이 이루어지는 수업을 교육의 핵심으로 생각한다.
아이스너의 관점에서 볼 때 전체적인 교육과정 구조 속에서 중요한 것은 수업이다. 그는 교육과정과 수업을 교육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교육과정이 수업에 적용될 수 있는 근거는, 어린이에게 교육적으로 가치있는 경험을 어느 정도 제공해 주느냐에 달려 있다.
교사는 개개인의 학습능력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수업에 참여해야 한다. 수업에서 전혀 새로운 기능을 배우는 학생에게 심미적인 측면까지 습득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소수의 학생들은 교사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교사가 교육과정의 내용을 결정할 때 어린이의 능력의 정도를 판단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업에 있어서도 교사는 그러한 판단을 해야 한다. 결론저으로 교사가 수업내용을 결정함에 있어서 어린이들은 교사의 도움없이 학습내용을 어느 정도가지 소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중요하다. 또한 아이스너의 입장에서 수업이 교육과정의 핵심이라면 교사의 능력과 역할은 수업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DBAE는 문서화된 교육과정과 함께 체계적인 지도를 매우 강조하며 수업을 효과적이게 하는 모든 교육환경을 중시한다. 학생들에게 미술문화를 이해시키고 표현과 비평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주어진 교육과정을 나름대로 해석하여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3) 주요 미술교육학자와 운동
창의성 중심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미술의 이해를 강조하는 최근의 미술교육 흐름에 의미있는 활동을 보여주는 미술교육학자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는 먼저 창의성 계발에 의문을 제기했던 바칸(Manuel Barkan), 가장 대표적인 학자인 아이스너(Elliot W. Eisner)를 비롯하여, 펠드만(Burke Feldman), 멕피(June K. McFee), 하우스만(Jerome Hausman), 호퍼(H. Hoffer), 그리어(W. D. Greer) 등과 인간의 기저에 있는 미적인 것을 찾아 근원적이고 통합적인 미적교육을 하자고 주장하는 부라우디(H. S. Broudy), 피셔(E. F. Fisher), 스미스(R. A. Smith & C. M. Smith), 젠틀(K. Gentle), 라니어(V. Lanier) 등이 있다.
이들 중 가장 대표적인 학자는 아이스너이며 그 외의 학자들을 DBAE와 미적교육의 흐름에 포함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 세 가지를 주요 흐름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 아이스너(E. W. Eisner)
아이스너는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 관심을 보이다가 시카고 미술재단에 있는 학교를 거쳐 시카고 루스벨트 대학에서 미술과 교육에 대해 보다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흑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기도 하였으며 일러노이드 공과대학 대학원에서 「협동작업 환경에서 미술의 치료적 공헌」에 대한 석사학위논문을 썼으며 그 후 시카고 칼 슐츠 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 교사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시카고 종합대학교 교육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미술교육에 대해 깊은 연구를 하였고, 화가로 일정기간 동안 활동하기도 하였으며 현재는 스탠포드 대학교 교수로서 미술교육 뿐만 아니라 교육과정, 교육평가 등에 대한 활발한 연구를 하고 있다.
그는 교육에서 주지주의의 지배적 풍토를 비판하면서 미술이 필요하지만 필수교과는 될 수 없다는 생각에 반대하여 회화나 조각을 정서를 함양하는 하나의 자료나 수단으로 여기는 데 이의를 제기하였다. 그는 눈에 의한 시각적 경험이 정신 활동의 일부이며 미술작품을 인식하는 과정은 자연과학에서의 실험계획과 같은 동일한 탐구과정이기 때문에 미술도 지성의 훈련을 필요로 한다고 강조하였다. 미술은 지성을 변화시킨는 경험이며, 그러한 변화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 교육과정이라는 것이다. 미술의 발견과 표현, 기록, 전달의 기능들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며, 이런 점에서 지성을 초월한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어린이들에게 창작활동을 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 아이스너의 생각이었다.
그는 본질주의 교육철학과 학문중심 교육과정의 영향을 받았으며 교육과정과 교육평가를 연구하여 미술교육에 적용하기도 하였다. 그는 유전적 요인 보다는 교육환경을 중요시하며, 어린이에게 발달 가능성에 기회를 주는 학습환경으로 가정, 사회, 학교를 꼽고 이 중에서 교수-학습이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을 학교로 보았다. 미술적 능력의 발달은 자연적 성숙의 결과라는 견해에 반대하여 미술적 능력도 학습에 의해 발달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미술교육에 접근하였으며, 「외부로부터 내부로」의 발달을 강조하였다. 즉 학생들의 발달은 조직적이고 체계화된 교육과정 안에서 학습을 통하여 촉진되며, 어린이 미술표현도 조직적인 학습환경과 질 높은 교사의 효과적인 수업을 통하여 촉진되고 발달된다는 것이다.
그는 시지각 능력이 지각의 분화과정이라는 지각 심리학을 지지하며, 무엇보다도 미술을 독자적인 학문으로 보고 그 자체가 본질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일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였다. 즉 미술은 인간 경험 속에서 환상과 상상을 인간에게 제공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이미지를 시각적인 상징으로 변형시켜 새로운 대상을 창조하여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형상화시키고 구체화시키는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내며, 인간의 감수성을 발달시켜 인간 의식을 서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문화적 자원이라는 것이다.
그는 미술교육의 새 가지 기초 영역으로서 미술제작적인 면, 비평적인 면, 미술역사적인 면을 꼽았다. 즉 미술학습은 학생들이 미술작품을 만들고, 작품의 미적 요소와 특징 등을 이야기하며, 작품을 통해서 인류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복합적인 활동이라는 것이다. 먼저 그는 미술제작의 중요한 요소를 기능(skill)으로 보고 미술표현에서 네 가지의 기능을 강조하였다. 그것은 재료를 다루는 기능, 형태를 지각하는 기능, 재료의 범위 안에서 형태를 발견하는 기능, 공간 질서와 미적 질서, 표현 질서를 창조하는 기능을 일컫는다. 두 번째 영역은 비평적 영역으로 미술형태에 대한 지각력을 기르는 학습영역이며, 미술작품에 대해 느끼기, 작품 형태 지각하기, 미술작품의 상징적 의미 파악하기, 작품의 주제 파악하기, 작가의 의도와 재료의 선택 이해하기 등의 활동이 여기에 포함된다. 미술사와 문화 영역은 과거의 미술작품을 통하여 미술가들의 노력과 관점, 문화를 이해하는 활동이다. 그의
미술과 미술교육에 대한 생각은 미술의 독자성이 강조되어야 하고, 인간 정신의 위대한 표현결과인 미술품을 이해해야 하며, 학생들에게 미술표현 뿐만 아니라 미술을 지각하고 이해하며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교육과정과 교사, 수업을 매우 중요한 것으로 강조하고 있다. 즉 미술이 하나의 학문의 체계라면 그것을 교육할 교육과정이 본질적으로 필요하며, 그 교육과정을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지도하는 교사의 적극적인 태도와 열성이 매우 중요하고, 학생들에게 교육적으로 가치있는 경험을 실질적으로 제공하는 수업이 교육과정의 핵심이라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아이스너의 생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제작과 감상에서 미술적 태도를 결정하는 데는 환경이 가장 중요하고 교사와 교육과정은 효과적인 미술학습에 중요한 요소이며, 학습에 의해 미술 능력이 발달한다.
둘째, 매체나 재료보다 미술과 관련한 개념의 학습이 중요하다. 미술에 대한 문화적이고 역사적 측면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매체는 지각이나 제작 기능을 발달시키는 수단이며 어떤 것을 만들 수 있는 재료일 뿐이다.
셋째, 제작 결과에 중요성을 많이 부여해야 한다. 왜냐하면 제작 결과는 학생이 배웠던 것과 관련하여 지도가 이루어질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넷째, 학생에게 보는 방법을 가르치고 미술을 제작하는 것 못지않게 미술을 이해하게 해야 한다.
다섯재, 미술교육에서 미술은 타 교과와는 다른 독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독자성인 미적 시각의 육성을 미술교육에서 지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육에서의 일반 목표보다는 미술교육의 고유한 목표의 달성이 훨씬 중요하다.
(2) 학문에 기초한 미술교육(DBAE)
DBAE는 학문에 기초한 미술교육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은 미국미술교육협회(NAEA)와 아이스너, 그리어 등 미술이해 중심 미술교육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접근을 통칭하는 용어이다. 이 접근의 특징은 미술실기 이외에 미술이해와 감상 교육을 강화하는 교육과정 구조를 고안한 것이며 이것은 사적 교육 단체인 게티 센터(Getty Center)를 배경으로 한 미술교육 관련 학자들이 1980년대 초부터 연구한 미술교육 운동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미술사 등을 통한 미술이해 교육을 강조하고 있으며 미술을 왜 가르치고 있으며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이들은 미술이 문화 유산의 보고이기 때문에 미술연구는 인간의 경험과 문화의 전수적 가치를 이해하게 하는 중요한 것이며 어느 누구도 미술이해교육을 받지 못하면 진정한 미술교육을 받았다고 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 접근은 미술 교육과정 조직 면에서 전체적인 접근과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이런 특징이 반영된 학습 경험은 미술의 역사와 문화의 이해, 미술작품의 미적 특징 및 인위적 환경의 이해, 시각적 이미지의 분석, 설명, 해석, 미술작품의 창조 등이다.
DBAE 접근의 전제는 어린이는 외부로부터 내부로(outside-in) 발달하며 미술 제작기능과 미술의 지각은 성격상 복합적이고 미술학습은 인간 발달 과정에 관련되어 있으며 교육과정은 어린이에게 의미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접근에서는 미술교육에 있어서 수업을 통한 학습이 강조되며, 그 학습에는 미술을 지각하고, 창조하고, 이해하고, 판단하는 활동들이 포함된다. 미술 학습의 성격이 복잡한 만큼 교사와 어린이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학습에서는 훈련이 강조되며 그 성격은 본질적이므로 어린이들은 학습을 통해서 각 영역의 기초적인 것, 즉 지식의 구조를 배우게 된다. 나아가 그들이 교실에서 배운 것은 교외에
서도 적용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이러한 점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DBAE 접근의 목표는 미술제작, 미술비평, 미술사, 미학 등의 영역에서 나온다. 이것은 어린이들이 교육과정과 수업을 통하여 미술을 창조할 수 있고(미술제작), 미술의 특성에 반응하고 지각할 수 있으며(미술비평), 역사와 문화 속에서 미술의 위치를 이해할 수 있고(미술사), 미술에 관해 판단하며 판단하는 근거를 이해할 수 있다(미학)는 것이다.
미술제작은 재료를 매체로 바꾸는 기회를 통하여 어린이의 인지영역을 발달시키는 것이다. 이 영역을 통해서 어린이는 재료를 다룰 수 잇는 제작기법 및 기능을 발달시키게 된다.
미술비평은 어린이가 미술수업을 통하여 특별한 방식으로 시각적 세계를 보고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 것을 말한다. 이때 어린이는 관찰하는 법을 배우게 되기 때문에 지각력이 발달된다. 결과적으로 어린이는 이 분야의 학습을 통해서 시각적 형태의 표현적인 특징을 경험하고, 분석하고, 해석, 설명하는 데 필요한 태도와 기능을 발달시키게 된다.
미술은 문화의 일부이며, 학습자는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미술의 문화적 표현을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미술의 내용과 형식을 통해서 문화가 시각적으로 어떻게 표현되는 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미술사 영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학 영역에서 사람들은 미술에 대해 판단하게 되기 때문에 이 영역을 통해서 어린이들은 주변환경 뿐 아니라 미술작품의 특징에 관한 판단력의 근거를 이해하게 된다. 이때 판단의 지적 자원이 미학이다. 미술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이 영역의 학습의 목적이 전문적인 미학자를 기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가 생활 속에서 미술의 성격과 의미에 관하여 계속적으로 대화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교육과정에서 활동하는 어린이들은 시각적 이미지를 창조할 수 있는 기능
을 획득할 수 있으며, 미술문화를 통하여 형태에 대한 미술적 관계를 이해할 수 있고, 미술작품에 관하여 이야기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이해력을 바탕으로 미술가가 만든 작품을 판단하고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DBAE는 미술문화와 미술작품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미술작품과 환경의 미적 특성에 잘 반응하는 교양있는 사람의 배출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그 특징으로 다음의 몇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DBAE는 미술에 대한 이해와 미술학습의 본질적 가치를 발견하는 데 중점을 둔다.
둘째, 미적교육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미술교육 실천에 중점을 둔다.
셋째, 조형능력을 발달시키기 위하여 미술작품에 주의를 기울여 그것을 이해하며,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맥락에 그 작품을 위치지우는 활동을 중시한다.
넷째, 미술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계열성에 따라 활동과 기능을 배치하는 문서화된 교육과정을 중시한다.
다섯째, 모든 미술영역을 포괄하는 계열성에 의해 조직된 교육과정을 통한 미술에 대한 통합된 이해를 강조한다.
여섯째, 교사의 역할의 강조와 체계적인 지도를 중시한다.
일곱째, 표현결과와 학생들의 성취 정도 등 미술교육에서 결과를 강조한다.
(3) 미적교육(aesthetic education)
미적교육은 예술의 근원적이고 통합적인 요소에 의한 교육이며, 예술작품을 이해하는 교육이다. 예술 활동은 어떤 다른 목적으로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있어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영역이다. 미적교육은 미적 향수와 미적 경험, 미적 인식을 대상으로 한다. 미적 향수는 환경의 질적인 단편들을 이해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며, 예술문화를 접하므로써 가능하다. 미적 경험은 미적 대상에 의한 체
험을 말하며 미적 인식은 예술 문화의 특성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미적 경험이나 미적 활동은 타 교과에 비해 학생들의 흥미를 유도하기 쉽고 상징화된 언어나 숫자에 의한 개념적인 사고가 아닌,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사고가 가능하게 하는 경험이다. 이러한 미적 경험은 모든 경험의 형태, 즉 인식하고 판단하고 행위하는 것들의 근원적인 지각이나 감각작용이며,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감각으로 상상에 의해 대상을 미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잇어서 어떤 이미지를 산출할 수 있는 표현의 모태가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의 미적 교육은 예술가나 비평가를 기르기 위한 것이 아니며, 보이는 것을 볼 줄 하는 미적 통찰력과 표현력을 길러주어 장래의 삶에 활력소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브라우디는 미적 교육의 중요한 접근 방법으로 미적 지가(aesthetic perception)을 제안하고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 미적 대상을 만드는 사람과 감상하는 사람은 그것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작품을 만들어본 경험이 없거나 감상하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다.
둘째, 큰 범위 안에서 미적 지각은 미적 대상의 질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줄 수 있다.
셋째, 감상은 미적 지각에 근거하며, 미술사나 비평, 미술이론 등의 미술에 대한 지식과 경험에 의해 보다 잘 할 수 있게 된다. 미적 지각과 세련된 심미안은 감상을 자극하고 격려할 것이다.
넷째, 미적 지각은 미술표현 활동과 감상 활동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표현활동은 기법적인 기능을 강조하고 감상은 지식으로 이해하려 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으며 미적 지각을 통해 이 두 활동을 통합하여 바른 미술교육을 해야한다.
미적교육은 세계를 미적으로 경험하는 학생의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이며 미적 경험은 직접적인 감각으로 현상을 이해
하는 경험을 말한다. 미적교육의 목적은 학생들이 개념의 매개없이 직접적인 감각에 의해 대상을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미적교육은 감각과 통합된 전체로서 직접적인 감각에 최대한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고, 미를 교육하는 과정은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사고의 발달에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사고의 발달도 추구하며, 학생들은 미적교육에서 소리를 내야 하고 색칠을 해야하며 조형을 해야 하고 움직여야 하며 접촉해야 한다. 미적교육은 예술의 근원적이고 통합적인 것에 의한 교육이므로 미술교육과 약간의 차이가 있으며, 색깔과 형태, 소리, 움직임, 맛, 냄새, 감촉 등의 모든 직접적인 감각으로 학생들이 세계를 직접 경험하는 문제를 다룬다.
매덴포트(W. J. Madenfort)는 이러한 미적교육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먼저 자신의 살아있는 몸과 세계의 조화에 개방하는 태도를 통하여 현상을 감각으로 경험하는 학생들의 능력을 발달시킨다. 두 번째로 몸의 움직임과 정서의 율동적 공간 형상으로 감각 현상의 직접성을 체험하는 학생의 능력을 발달시킨다. 세 번째로 하나의 감각 양상들의 이해를 통해 다른 여러 감각적 양상들을 이해할 수 있는 학생들의 능력을 발달시킨다. 네 번째로 다양한 직접적인 감각 현상들을 경험하여 새로운 감각적인 전체를 그것에 융합하는 능력을 발달시킨다. 다섯 번째로 창조적인 경험활동을 통해 감각적인 움직임의 직접성을 경험하는 능력을 발달시킨다.
이처럼 미적교육은 미학에 그 기반을 두고 있으며 에술의 전반에서 기본적인 경험을 추출하여 미적 경험을 통하여 미적 지각과 미적 인식, 미적 반응 능력 등을 육성하고자 하는 흐름이다. 이것은 미술이 예술로 확대되고 보다 근원적이고 통합적인 교육을 강조하고 있으며, 미술이해를 강조하는 흐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4) 검토와 시사점
미술이해 중심 미술교육은 미술표현과 미술비평, 미술사와 문화, 미학 등의 학문을 근거로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편성하여 적극적인 교사의 지도와 수업을 통해 미술을 이해하도록 하자는 접근으로 몇 가지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먼저 긍정적인 측면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첫째, 미술교육에서 표현 뿐만 아니라 미술이해와 감상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표현기능 중심 미술교육이나 창의성 중심 미술교육은 모두 밋루표현만을 강조하여 이해교육과 감상교육을 거의 무시하였다. 이해 중심 미술교육은 미술을 하나의 독자적인 학문으로 보고 이를 체계적으로 지도하여 이해시키고 작품의 결과와 미술문화를 감상시켜 미술을 이해하게 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그 미술에 대한 이해가 지나쳐 지식전달식이 될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 미술의 이해와 감상의 개념을 미술교육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이를 교육시키는 방법을 모색했다는 점은 많은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
둘째, 교사의 적극적인 지도와 수업, 교육과정을 매우 강조했다는 점이다. 교육은 교육내용과 학생, 교사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분명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설 수 없으며 교육은 결국 수업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미술교육에서도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의 교육내용을 선정하여 학습자의 발달에 맞게 조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런 교육활동은 수업을 통하여 교사의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지도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어린이의 자유로운 자기표현을 중시하여 교사가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창의성 중심 미술교육의 단점을 극복하였다. 또 문서화된 교육과정을 중시하고 수업과 교사의 적극적인 지도를 강조하는 것은 긍정적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미술의 독자성을 강조하여 미술의 본질적 가치와 미술교육을 학문의 체게로 세우는 데 기여하였다. 이해 중심 미술교육은 미술을 본질적인 가치가 있는 하나의 학문의 체계로 보고 이를 체계화하려고 노력하였으며, 미술교육을 다른 일반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지 않고 본질적인 가치가 있는 활동임을 강조하였다. 미술은 분명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교과이며 미술만이 인간에게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을 가지고 있다. 미술교육은 인간에게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의 교과로 존재하며 그것은 다른 교과가 기여할 수 없는 여역이다. 미술교육은 학습자와 사회의 요구도 중요하지만 미술과의 본질도 중요한 요소이다. 또한 미술교육은 하나의 교과교육학으로 자리잡아야 하며 그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해 중심 미술교육은 미술교육학의 가능성을 열어주었으며 학문으로 체계화하려는 연구를 많이 하였다.
이해 중심 미술교육의 부정적인 측면으로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미술교육을 미술에 관한 지식의 전달로 흐르게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해 중심 미술교육은 미술을 하나의 학문이나 지식의 체계로 보고 그것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여 기본 개념과 원리에 대한 지도를 중시하고 있다. 이러한 수업은 자칫하면 암기식 수업이나 지식 전달식 수업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충분한 참고자료와 시청각 매체, 표현과의 통합적 지도, 체계적이면서도 쉽고 재미있는 내용이 아니면 학생들은 지루해 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미술은 어쨌든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교과이며 학생들이 표현을 통해 그런 이해를 체험적으로 구체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에게 미술을 이해시킨다고 해서 미술사나 미학, 비평적인 요소들을 교사의 설명식으로 수업이 이루어지면 학생들은 오히려 미술을 싫어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미술을 이해시킬 교육내용이 체계적이고 학생들의 발달과정에 맞게 선정이 되었다면, 충분한 참고자료와 시청각 매체로 쉽고 재미있게 학생들의 발표 중심으로 이끌어 가고 그런 이해를 체험할 수 있는 표현활동에 직접 참여시켜야 한다.
이해 중심 미술교육의 다른 하나의 부정적인 측면은 미술을 학생들에게 체계적이면서도 쉽고 재미있고 이해시킬 구체적인 교육과정과 지도방법의 제시가 미흡하다는 점
이다. 결국 미술교육은 교육과정에 의해 수업의 현장에서 교사와 학생 사이에 일어나며, 아무리 좋은 미술교육사상이라 하더라도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제시되지 않을 때는 별의미를 갖지 못한다. 아이스너나 DBAE, 미적교육 모두 바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교육과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미적교육은 원론적 탐색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즉 교육과정을 중시하고 교사의 적극적인 지도와 수업을 강조하면서도 각급 학교별에 따른, 학년에 따른 교육과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미술제작과 비평, 미술사, 미학이 미술교육에서 가르쳐져야 한다면, 어떻게 그런 내용을 추출하고 어떻게 통합하며 학년 수준에 따라 어떻게 지도할 것인지에 대한 제시가 필요함에도 그런 제시가 미흡한 수준에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부정적인 측면은 교육의 결과와 표현결과를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미술은 교과의 특성 때문에 과정을 무시할 수 없다. 작가가 미술작품을 만들 때 완성의 시기는 작가 스스로 판단하여 정한다. 그 전까지는 모두가 제작의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고 생각을 반영하며 정서를 표출한다. 학생들도 표현과정이나 미술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과정이 결과 못지 않게 중요하다. 미술에서 결과가 중요하다는 것은 학생들이 자신이 만든 작품을 소중히 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기르며, 그 작품에 대해 발표하고 서로 토론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완성 결과의 미적 가치를 판정하거나 교사가 그 결과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닌 것이다. 미술에서 결과는 다음 다음 수업을 보다 효율적으로 지도하기 위한 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며, 학생들이 작품을 소중히 하는 태도를 기르고 작품에 대한 발표와 토론을 통해 미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또한 과정의 무시는 미술에서 표현의 소홀과 연결된다. 이해 중심 미술교육은 미술제작, 미술비평, 미술사의 세 영역이나 미술제작, 비평, 미술사, 미학의 네 영역을 미술교육의 기초학문으로 보기 때문에 미술표현의 비중이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 미술은 결국 표현교과이며 활동 중심 교과이다. 미술에 대한 이해가 강조된다고 해서 표현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표현이 90% 이상을 차지하는 현재의 우리 나라 미술교육은 분명 표현을 축소하고 이해와 감상을 늘려야 하지만 그렇다고 표현이 지나치게 축소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표현이 무조건 그리고 만드는 활동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미술을 이해시킨다는 측면에서 표현지도가 이루어져야 한다.
첫댓글 교육이 힘이드나 봅니다
저도 미술이 너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