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타 니파타 [쭌다의 경] 총정리
쭌다[춘다]의 경은 다른 경전에는 산문의
형식으로 전해지며 석가 세존의 인간세계
마지막 여로에 해당하는 부분과 관련이 있는
내용으로 그는 금속세공사 혹은 대장장이였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다른 기록으로는
아버지가 대장장이 였고 그는 금속세공사 였다고
하는데 결론은 모두 그 당시 평민계급 중 공업분야에
해당하는 일에 종사하던 고급 기술자라고 보면 될 듯하다 .
주석의 이야기에 보면 석가 세존께 공양을 올리기
위해 커다란 황금그릇에 공양물을 담아 올리려고
했었는데 세존은 돌 발우[석발]를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황금그릇을 함께 공양청에 온 비구 가운데
불량한 습성의 못된 비구가 몰래 훔쳐갔는데 석가
세존과 승단을 공경 공양하는 마음과 평민이라는
신분으로 문제를 제기하게 되면 아무래도 부담이
될 듯 하여 그 부분을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갔으나
마음에 의문이 생긴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공양청을 다 마치고 별도의 시간에 석가 세존을
면담하고 은근하게 수행자의 종류를 묻는다.
석가 세존은 이미 그가 어째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이미 파악 하셨으니 [대장이 아들 쭌다]와
[석가 세존]의 대화가 7개의 시로 구성된 경전이다.
석가 세존의 대답을 퇴현 전재성 거사의 한글 옮김
본으로 정리하면
1. 길을 아는 자
2. 길을 가리키는 자
3. 길 위에 사는 자
4. 길을 더럽히는 자가 있습니다.===게송84번
여기에서 길이란 진리이며 진리의 길을 가는 향하는
사람들이라 이해했다.
가사단상과 시조단상에서는 단수가 아닌 복수로
표현하였는데 한 개인이 아닌 이러한 부류의 여러
사람 즉 다수가 있을 수 있다는 사유를 덛붙인 표현이다.
석가 세존의 간단한 대답과 함께 설명이 붙어 있는데
역시 정리해서 옮기면
1. 의혹을 건너고 화살을 떠나, 열반을 즐기고,
탐욕을 버리고, 신들을 비롯한 세계를 안내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길을 아는 자라고 깨달은
님은 말한다.
2. 여기 위 없는 것을 위없는 것으로 알고,
이 자리에서 가르침을 설하고 분별하고,
의혹을 버리고 동요하지 않는 해탈자라면,
수행자들 가운데 두 번째 길을 가리키는
자라 부릅니다.
3. 새김을 확립하고 자제하고, 허물없는 길을
따르며 잘 설해진 가르침의 길 위에 산다면,
수행자들 가운데 세 번째, 길 위에 사는 자라
부릅니다.
4. 맹세한 계율을 잘 지키는 체하지만, 경솔하고,
가문을 더럽히며, 오만하고, 거짓이 있으며,
자제가 없고, 말이 많고, 위선적인 자를 길을
더럽히는 자라고 합니다. ==게송86,87.88.89번
이 4개의 시는 위의 네 종류의 수행자에 대한
석가 세존의 자세한 설명으로 각 게송을 해설하는
더하는 말에서 설명을 붙였으므로 설명은 생략하겠다.
마지막의 총결론에 해당하는 해결의 답안지를
석가 세존께서 말씀하시는데 옮겨보면
이러한 것들을 꿰뚫어 배운 바가 많고 지혜로운
고귀한 제자라면 그들이 모두 같은 사람들이 아니
라고 알고 보아서 자신의 믿음을 버리지 않습니다.
어떻게 더럽혀진 자와 더럽혀지지 않은 자,
깨끗한 자와 깨끗하지 않은 자를 똑같이 볼
수 있을 것입니까? =====게송90번
,
결론의 부분의 답도 너무나 명확하고 분명하기
때문에 더하는말을 참고해 주기 바란다.
앞의 시에 대부분 두 계급 즉 제사장이나 왕족
귀족외에는 시를 읊거나 배우는것이 금지되어
있던 시대에서 진보적인 사문의 등장으로 변화가
생기긴 했지만 평민 기술자 대장장이 아들 쭌다가
시를 읊었다는 것은 맞지 않고 송출자의 편집에 의해
이야기 구성을 시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필자는 이 시를 읽고 가사단상과 시조단상,
더하는 말을 붙이며 이러한 질문은 초보의 신자가
수행자[우리나라식 표현 스님, 다른 종교의 성직자
신부, 목사등등]의 행동에 대하여 보고 듣고 하면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을 수 밖에 없으니
팔은 안으로 굽느다고 자기가 소속되고 믿고있는
종교지도자가 상식에 어긋난 행위나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며 심지어 공개방송의 고발 프로그램에
까지 등장하는경우를 보면 도저히 창피해서 자기가
그 종교를 믿는 신자라고 자랑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모든 행위가 공유되고 공개되는
시대에 더 이상 비밀은 많지 않다.
거기에 더해서 사이비 교주식 종교지도자의 탈을
쓴 범좌자급[악마급 ]수준의 사람까지 버젓하게
종교단체를 운영하거나 비밀스럽게 활동하는 경우가
있으니 예방하려 하지만 교묘하게 공권력을 피해가면
파렴치한 범죄행위를 종교라는 미명하에 저질러 지고
있으니 만약 석가 세존의 말씀대로 네 번째의 수행자에
대하여 파악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똥 오줌도
못 가리는 수준이라면 어쩌면 그는 진정한 신자가
아니며 어리석은 사람일 수 있음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고 본다.
필자도 종교인이라는 수행자라는 진리를 향한 길을
스스로 선택해 출가한 사람으로 이러한 사실들이
보도되고 소문과 소문을 통해서 알게 되고 그것이
사실로 확인되고 세인들의 비판과 비난이 쏟아질때
타 종교인 경우 그래도 어찌 저럴 수 있냐고 맞장구라도
칠 수 있으나 승단이나 스님들의 비리가 보도되고
팩트체크까지 되어 버리면 얼굴이 화끈거리며
제일 먼저 스치는 생각은 순수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상처받고 가르침과 멀어지겠구나와 그래도 우리들은
진리로 향하는 사람인데 저런일에 마음이 흔들리면
되겠는가 하면서 나 자신을 먼저 다지고 불자들이
물어오면 대답하는 논거가 바로 위에 제시한 석가
세존의 말씀이며 특히 마지막 결론을 제시하여 질문한
사람에게 경전을 공부하고 마음으로 비춰보는 수행을
하며 진리를 향한 마음 진리를 믿고 이해하고
닦으며 깨치는 길을 이야기 한다.
풀과 녹색은 같은 색깔이다[초록동색]은
같은 부류끼리 서로 따른다[유유상종]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더렵혀진 사람들, 깨끗하지 않은 사람들
더럽혀지지 않은 사람들, 깨끗한 사람들
어쩌면 사람들은 자기가 지은 행위대로 인식하고
믿는 방식대로 끼리끼리 어울리며 비슷한 성향과
습관끼리 이합집산을 하는데 도박을 좋아하면
도박을 즐기는 사람끼리 서로 모이고 노래를 좋아
하면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끼리 서로 만나며 춤을
즐기는 사람은 춤을 추는 사람끼리 서로 어울리고
술을 즐기는 사람은 술을 먹는 사람끼리 서로 잔을
주고 받는다.
여기에서 그러한 부류에 들면 바람이 났다라고
표현하고 그것이 병리현상까지 가게되면 뒤에
귀신이라는 호칭을 붙인다.
오락과 도박 노래와 춤등은 사람들을 쉽게
방탕의 길로 이끈다.
한 마디로 더럽혀지기 쉬운 원인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반면 문학을 좋아하고 시나 수필을 쓰며 사색을
즐기는 사람 철학을 좋아하며 언제나 무엇일까
고민하고 생각하는 사람 종교를 좋아하며 절을
찾고 신앙심을 가진 사람등도 있으나 이 부분은
긍정이라는 측면의 방향과 부정이라는 방향으로
나뉜다.
잘 되면 시인, 소설가, 수필가가 되어 글로
많은이를 감동 시킨다.
철학자는 그 생각하는 영역이 저 보이지 않는
세계와 우주까지 가며 나름 논리와 지식을 통해
알 수 없는 세계의 갈증을 풀어준다.
종교는 그저 나름 편안함을 추구하는 부류와
진리로 향하는 부류가 다르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부류는 절이라는 분위기
자체가 좋은 사람들이라면 진리를 탐구라고
깨침을 구하는 부류는 좀 더 진지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도 부정적인 잘못된 인연에 꼬여들고
자기자신의 마음의 매듭을 풀지 못하는 사람들은
글을 통해 불평불만과 선동을 일삼고 이상하고
기괴한 논리와 이야기로 세상 사람들을 현혹하기도
하며 사이비적인 가르침을 뒤죽박죽 만들어 교주
노릇을 하는 사람도 나오니 어떠한 부류나 색깔,
성향의 문제는 결국 껍질의 속에 불과하며 그 전체를
알거나 보지 못하고 그 속의 속과 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자기자신이 파 놓은 함정에 스스로 빠져 허우적
거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50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러종류의 사람들이
뒤섞여 살아가듯 종교라는 이름 아래 진리라는
포장지 속에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담고 있는지
개개인 각자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바로 보고
바로 안다면 문제의 해결은 바로 그대의 눈 앞에
드러나므로 스스로 안목을 가지고 지혜를 갖춰야
할 것이다.
----2568. 5. 4 법주도서관 & 자주선림
교수사 자림 심적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