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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의 추억이나 경험담 (살며 생각하며) 첫 가을 운동회
에릭손(남/NJ/1968) 추천 20 조회 531 20.11.01 12:41 댓글 3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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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0.11.01 13:28

    첫댓글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제게도 56년전의 생각이 나네요,
    병든 남편 병수발과 학교와 직장에 다니는 자식들 수발과 장사에 손이 모자라 어린 저를 챙겨줄 시간이 없으신 어머님,
    저를 친정에 맡겨놔서 사촌형들과 이종사촌형의 운동회에 따라갔던 기억이 나네요,
    그 후로도 방학때는 외갓집에서 지내면서 형들따라 나무도 해오고요,
    소꼴도 먹이러 다녀 봤고요,
    농촌일은 어려서부터 다 해봤네요,
    형들 학교가고나면 사촌동생들과 함께 개구리를 잡아다 닭주고요,
    도랑에서 검정 고무신으로 중태기 잡고요,
    찌그러진 막걸리 주전자에 가재잡아 오곤 했네요.

  • 20.11.01 13:35

    그런 제 고향은
    천지개벽으로 옛 정취는 찾아볼 수 없네요,
    20년전에,
    계룡대 군인 골프장에서 나무숲을 비집고 들어가니,
    무너져가는 작은 시골집,
    36년전,
    신도안이 전두환에 의해 군사도시로 바뀐후로는,
    고향의 향내음조차도 맡을 수 없을 정도로 다 붕괴되었네요.

  • 작성자 20.11.02 11:25

    분도님의 운동회의 추억도 반세기가 넘는 세월의 편린들을 마음속에서 꺼내 퍼즐 모으듯 맞추다 보면, 어느새 책이 되고도 남을 정도의 깊은 사연이 있으리라 봅니다. 벼집단을 작두에 썰어 소여물로 먹이던 소꼴도 생생히 기억이 나네요. 거름을 지게에 지고 논바닥에 뿌리고, 모내기 철에 모판도 옮기고 모 줄도 잡아 보고. 개구리, 뱀, 메뚜기, 잠자리, 벌 등등 이런 것들이 당시에는 우리만의 장난감이었습니다. 비슷한 추억을 공유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20.11.01 13:30

    멋진사진과 글!!! 정말 조아요!!! 추천 2번째로 합니다!!

    한데...주식시장이 어수선 하다는 말미의 글이 눈에 확 들어와 댓글 2착!! ㅋ..

    전주 금요일...아래로 깔아논 호가에 생각치 안케 제법 매수가 되어 쬐게 걱정도 하게 됩니다!! ㅎ...

    무어!! 판데믹 장세니.. 유동성은 살아 잇겟구..언젠가 주식은 오르리라 굳게 믿고...팔고 사고 진냥 돌리고 돌립니다!!

    사실..9..10월 약세장이엇는데..큰 손해 없이 구좌가 버텻스니...것두 다행입니다!!!

    암튼..주식시장은 요상허나 잘 버티면 제법 큰 돈 만질수 잇는 큰장이라구 낸 생각해요!! 건투 하시 길!! ㅎㅎ..

  • 작성자 20.11.02 11:30

    쭈리아빠님이 평소 주식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은 그 간 남기신 글들을 곁눈으로 남아 읽었습니다. 현업이 금융이라 상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초저금리에 시장 자본이 딱히 갈데를 잃은 것도 팬더믹 하에서도 나름 견고히 장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묵은지 마냥 인내를 가지고 묻어두었다 진짜 필요할 때 매매하시는 것이 주식투자의 최고가 아닐까요.
    꾸준함의 결과로 멋진 대박 나시는 그 날이 꼭 오길 바랍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20.11.02 11:35

    시골 운동회도 찰밥에 고구마와 계란 그리고 밤을 삶아 오고, 옥수수도 쪄서 가지고 오고 하면 나름 푸짐해집니다. 거기에 인심까지 더해지면 더 할 나위없는 온 동네 잔치였지요. andrew님도 당시의 추억을 함께 소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1.01 17:14

    그때 그시절로 돌아간듯한 착각에 빠져 오래전을 떠올려 보았네요
    나는 어릴때 하도 전학을 자주해서 조각 조각의 기억 뿐인데~~~

  • 작성자 20.11.02 11:39

    저도 분교를 마치고 본교에 가지도 못하고 부산으로 전학을 왔고, 부산의 달동네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느라 전학도 많이 했습니다. 한참 친구와 친하게 지낼 시기에 정들자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작은오빠님도 속이 많이 상하셨을 듯 합니다. 도회지와 달리 시골에서야 농사 짓고 사니 전학 자체가 말이 안되는 거라 그래도 오래 사귈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저희 누나들도 친한 친구들은 다 초딩때 친구들입니다.

  • 20.11.02 14:49

    @에릭손(남/NJ/1968) 그러게 말입니다
    초딩때 네번 전학 했으니
    동창이 무언지 아리송 합니다
    제와이프는 초딩 동창들하고 지금도 모임 하는데 너~~~무 부럽더라구요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20.11.02 11:46

    남편이 없으니 자식에게 더 강인함을 보이셨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 당시의 여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일제 강점기와 6.25를 겪으면서 험한 삶을 살아오셨던 우리의 어머니들이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불행한 인생의 연속이었지만, 그런 여인들의 삶들을 통해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지 않았나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다들 우리의 어머니들을 업어드리고 싶어집니다. noir님도 업이시는 분이 되시고도 남습니다.. 그럼 건강에 유의 하시길 빕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20.11.02 11:45

    초벌을 쓰고 다시 감정을 추스리고 다시 썼다가 다시 지우고....
    다시 어릴적 기억을 실타래 풀듯이 소환해서 한마디 옮기는데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생각하면서 쓰다보면 이내 눈시울이 붉혀지곤 합니다. 기록으로 남기는 글 이상의 것이 마음 속 깊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것이 어머니라는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어머니들은 모두 훌륭한 삶의 본이셨던 것 같습니다. 졸필이지만 저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트비렉보님의 마음에 전이되어 함께 공감해 주심에 깊이 감사 드립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길 빕니다.

  • 20.11.01 21:38

    지난일들 돌아보며
    흔적을 찿아
    옛 생각에 잠겨봅니다
    지지리도 가난하고 쓰리고 아픈 추억만 가득한데
    그래도 행복했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가을운동회,가을소풍....

    아름다운 사진과글 감사합니다

  • 작성자 20.11.02 11:47

    참 지금의 삶과 비교하면 지지리도 가난했다는 표현이 맞고도 맞네요..
    그래도 그 어릴 적 먹었던 시골의 과일과 곡식들이 산해진미였고, 만나는 사람들이 다 천사와 같은 선한 마음을 가졌던 이웃이 가족이였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 20.11.02 01:11

    와, 오늘따라 필력이 대단하십니다. 그때 그곳의 그 상황으로 빠져들게 하는 섬세한 묘사들이, 마치 고딩때 좋아했던 현진건 같은 근대 소설가들의 단편소설을 읽는 느낌이었습니다. 기억력(문학적 상상력?)도 대단하시고요. 저도 어머니에 대한 글을 쓰고싶은데.. 부럽기만 합니다 ㅎㅎ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런 노래도 떠올랐구요 ㅎㅎ
    https://youtu.be/PT9s8BiTXw4

  • 작성자 20.11.02 11:51

    올려주신 어느 산골소년의 사랑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렇게 답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쁜 소녀가 없었지만 나머지 가사의 내용대로 그림의 모습대로 정말 징검다리, 저녁달, 노을, 냇물, 꽃모자는 다 있었습니다. 빙세기님이 현진건 같은 거장에 감히 비교하시는 것 자체만으로 저에게는 영광이지만, 그져 부끄러운 글입니다.

  • 20.11.02 01:35

    우리들의 추억은 외롭고 힘들 때마다 찾아갈 수 있는 아늑한 동산과도 같습니다. 그 중심에는 항상 어머니가 있고 또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향수가 있지요. 느닷없이 찾아오는 소리와 냄새 그리고 시각의 기억이 흐르는 시간의 강 속에서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도 또 눈시울을 촉촉하게도 만듭니다. 11월의 초하루를 평화롭게 해주는 에릭손님의 추억에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 20.11.02 11:54

    추억을 아늑한 동산에 비유하신 것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아늑해야 편해지고 편해져야 쉴 수 있으니, 추억의 소환은 그 자체가 힐링이라 생각합니다.
    david님께서 연로하신 어머님과 같이 사신다고 일전에 말씀하셨는데 그 당신과 좋은 추억 많이 많이 만들어 가시길 기원합니다..

  • 20.11.02 02:05

    깊은 가을밤에 읽을 거리가 무척 많아졌습니다. 그 가을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마음속에 그대로 살아 삶의 빛이 되고 있군요. 어머니의 모습에서 세월이 느껴집니다.

  • 작성자 20.11.02 11:56

    깊은 가을 밤에 읽으실 것도 많으실 텐데, 저의 글이 그 일부라는 말씀에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아르테미스님의 말씀대로 그 세월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어머니를 생각할 수는 있으니 그리움의 대상이 내 마음 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 20.11.02 04:08

    이전 글도 좋았지만 오늘 글은 작가는 되어야 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구글링을 해보니 브런치에 올리신 흔적이 있더군요. 죄송,스토커는 아닙니다.
    제가 고딩때였는데 그런 시골의 분위기라니 놀랍고,
    어머님이 대단한 분이시네요.
    한국에 가면 섬진강 그 주변을 둘러보고 싶네요.

  • 작성자 20.11.02 12:01

    그 시대를 살아오신 우리나라의 모든 어머님이 대단하신 것이겠지요.
    앨에이조박님이 고등학생이셨으도 그 당시의 시골은 다들 어려웠습니다.
    글이라는 게 작가가 될려고 쓴 것은 아니고 그저 어머니와의 추억을 조금 더 가다듬으면서 군더기 없이 적어야지라고만 생각해 글로 옮겼을 뿐입니다.

    브런치에는 초벌의 만연체의 글들이 많아 시간이 날 때마다 원석을 가지고와서 정으로 다듬는 그런 작업의 일환입니다. 언젠가 시간이 나면 다시 브런치로 올려야 하는 데 게을러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섬진강은 저의 기억의 젖줄기와 같은 곳입니다. 사진에 보인 가운데 분이 저의 막내 고모인데 섬진강변의 강평에서 사셨습니다. 고모부도 섬진강 재첩을 많이 잡아 처가인 우리 집에 자주 준 기억이 납니다.

  • 20.11.02 07:32

    서울 변두리 초등학교라 그런지 운동회는 기억도 없습니다. 중학교 갔더니 운동회라고 해서 마라톤에 참가해 갔다가 돌아오니 폐회사를 하더군요. 그후로 운동회 날은 그냥 노는 날이었네요.

  • 작성자 20.11.02 12:03

    도회지의 운동회와 달리 시골의 운동회는 그 자체가 잔치였습니다.
    어르신들은 막걸리를 통채로 양조장에서 주문해와 동네분들끼리 모여서 운동장에 돗자리를 깔고 드셨고, 친지들도 모두 운동장에서 만나고 그랬으니까요...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20.11.02 12:06

    컨텐츠가 있는 삶도 살지 못한 주제에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그래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기억을 글로써 남겨야 나중에 딸이 읽어 보고 이 아빠를 생각해 줄 것 같아서 기록을 하는 의미에서 쓰고 있습니다. 바라건데 저의 아들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되면 좋겠지만, 장애가 있으니 그런 아들과는 추억을 함께 쌓아가면서 함께 있어주는 것이 아버지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무늘보님께서 졸필을 과찬해 주셔서 감사할 따릉입니다.

  • 20.11.02 11:05

    8살이 갑자기 어엿한 이유는
    옷핀으로 여며준 손수건을 매달고
    지루함을 참으며 한참이나 서 있던 입학식 날이 있어서..
    그리고 큰 세상 같았던 넓은 학교 운동장에서 같은 체육복 입고
    청군 백군 이겨라 큰소리 한번 내질러본 그것 때문이었나봐요

    파란하늘 네모난 만국기가
    색종이처럼 나란히 나란히
    공평하게 알록달록
    일학년 우리 가을 운동회^^

    글에서 화약냄새 얘기가 인상적인데..
    저는 서울생,
    기억에 쇠 냄새를 처음 인지한 때가
    어릴때 공용 수돗가 펌프물에서
    그리고 녹슨 철봉대에 매달려보고 난후였어요

  • 작성자 20.11.02 12:12

    라 로바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대한민국이란 우리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장소와 시대를 살아오면서 그래도 그 장소가 같다는 것만으로도 큰 공감을 형성하는 것 같습니다. 바로 같은 국민이니말입니다. 그래도 그렇다고는 하나, 세세히 따지면 도회지에서 자랐느냐 저처럼 시골 두메 산골에서 살았느냐에 따라 그 추억의 내용은 다르겠지요.
    어릴 적 눈치로만 생존의 길을 터득할 즈음이라, 보는 것, 먹는 것, 냄새 맡는 것 모든 것이 기억의 편린의 일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녹슨 철봉대를 만진 후에 손에 묻은 녹의 냄새를 맡으면 뇟냄새가 나죠.

    지금도 이런 운동회를 하라고 세트를 만들어도 못 할 거라 생각합니다. 삶을 담지 못한 셋트장에서 이런 모습을 그릴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어떤 기억들은 다시 되돌릴 수 없어서 슬플 때가 있습니다...
    그럼, 깊어가는 가을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길 빕니다.

  • 20.11.02 12:50

    '사랑의 추억'이란 어귀를 늘 쓰기를 반복하는 제게는 아주 깊이 와닿는 서정적인 수필입니다. 우리가 의도한 적이 전혀 없는 이 세상을 살면서, 남길 것도 가져갈 것의 유일한 것도 바로 이 '사랑의 추억' 하나 뿐입니다...

  • 작성자 20.11.02 12:17

    사랑하시는 아내분과의 사랑의 추억을 많이 많이 만드시고 계시니 그 차제로도 서정적인 수필을 적고 계시리라 봅니다. 저의 둘째 누나가 암투병 중이라 오늘 새벽에 카톡을 했습니다. 7남매중 제일 건강에 신경을 쓴 사람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암과 싸워야 하는 처지이지만, 제주아톰님의 아내분처럼 그런 삶에 대한 강렬한 애착으로 살아가 주길 바랄 뿐입니다. 남길 것이 없는 저에게 이런 기억을 일부를 글로 남김으로 해서 읽는 누군가가 그 삶과 연관시켜 또 다른 삶의 원동력이 되고, 그 원동력이 좋은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시키는 것이라면 이보다 더한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럼, 평온한 한 주 또 맞이 하시길 빕니다.

  • 20.11.02 23:51

    대단한 기억력과 뛰어난 감성과 묘사에 감탄했습니다. 저역시 시골에서 자랐지만 에릭손님의 고향이 훨씬 정감어린 모습으로 다가오네요. 위대한 어머님과... 어린시절을 떠올리게하는 추억어린 경상도 사투리... 어쩐지 한번만나 확인해보고싶은 마음입니다. 건강하시길.....

  • 작성자 20.11.03 09:38

    네, 저도 macon님을 평소에 꼭 뵙고 싶었는데, 한번 만나뵙고 싶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생과 만나는 거라고들 합니다.
    열심히 살아오신 그 인생을 만나는 것은 무엇보다 가슴 설레이게 하는 것이라 봅니다.
    아무리 남의 고향이라도 정든 내 고향만 하겠습니까? 어디가 고향인지 모르나, macon님도 마음에 품고 오신 그 고향도 필시 아름다울거라 믿습니다. 추워지는 날씨에 건강 잘 챙기시길 빕니다.

  • 20.11.03 12:22


    에릭손님의 이 글은 몇번을 읽어 보느라 댓글을 늦게 드립니다....

    님의 어머님과의 옛 시절 회상에 마음이 가라 앉기도 하고....아련하기도 합니다....

    그 옛날 학교 운동회가 아련히 떠오르면서 마음이 아프기도....
    왠지 그 때가 애처롭게 남아 있습니다....

    지금 세대가 읽는다면 어떤 감흥을 가질 수 있을까?.....
    이미 겪은 세대들만이 공유될 수 있지 않나......

    좋은 글 감사합니다.

    *흑백 사진 너무도 정겹습니다, 특히 머리에 두른 흰띠가 눈에 들어 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 20.11.04 05:24

    안녕하세요. nola님
    몇번이나 읽힐 만한 글도 아닌데, 나름 nola님도 어머님을 생각하셨나 보군요.
    11월3일 오늘이 저의 어머니 기일입니다.
    다행히 비수기에 돌아가셔서 비행기표가 바로 다음 날 마련되 한국에 가서 장례식을 무사히 치르고 원래는 2주정도 있다가 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안계신 집에 혼자 있으니 도저히 있을 수 없어서 그냥 항공사에 연락해 그 다음날 표를 예매하고 형제들에게 간단히 작별인사를 하고 JFK에 도착했는데, 도착하자마자 어머니에게 전화 할 뻔 했습니다. 아들이 무사히 잘 도착했다고요. 그만큼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실감이 안났습니다.

    지금 세대가 이 글을 읽으면 별 감흥이 없을 것 같습니다. 콩나물 시루처럼 아이들이 많았을 때는 니집 내집 할것 없이 다 비슷하고 다 가난해서 뭐든 나눠먹고 했었는데 요즘처럼 가진 자와 그렇치 못한 자의 차이가 나면 서로 같은 반에서 공부를 해도 진정한 친구로 여기면서 잘 사귈지는 그 친구의 인성에 달려있겠지만, 그렇게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네요.

    그냥, 5-6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그런 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고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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