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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1400만명, 한반도로 대이주 -통계청 자료분석
[자료분석]
통계청자료의 의하면
한반도 인구는 구한말 두차례에 거쳐 크게 늘어난다.
한차례는 순종 1906년 570만명에서
순종1908년엔 1300만명으로 2년간 730만명이 늘어난다.
두배이상의 인구증가율이다.
두번째는 순종 1908년의 1300만명에서
1919년 3.1운동때 기미년 독립선언문이 낭독될때 2001만으로
11년간 700만명이 늘어난다.
1.5배이상의 인구증가율이다.
결론적으로 구한말 1906년부터 1919년의 13년동안
한반도의 인구는 570만명에서 2001만명으로 1431만명이 늘어난다.
이것은 자연인구증가율을 휠씬 뛰어넘는 현상으로
대민족 이주로 인한 결과로 볼 수 밖에 없다.
즉, 원주민 570만명의 2.5배에 해당되는 1431만명이
13년동안 대륙에서 한반도로 대이주를 하였던 것이다. - 러브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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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의 근거]
우리역사의 비밀, 송준희 지음.
< 통계청자료 - "조선시대인구">
사서에 대한 인구관련 내용을 검토할때
사서기록 자체의 내용을 부인하면
우리역사를 밝히는 출발점부터 아무것도 논할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중국, 우리사서에서 공통적으로 부합되는 내용은
기록의 내용을 인정하고
왜그러한지 추적해보고
합리적인 해답을 찾으려고 증빙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공인된 통계청 자료를 소개합니다
사서의 기록과 비교한다면
참으로 답답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아시게 될것입니다
앞으로 사서의 인구를 논할 때 참고로 하시기 바랍니다
https://cafe.daum.net/greatchosunsa/75XT/5446
대한민국 통계청에서 1992년에 발간한 한국통계발전사(1) 란 책에서 보면,
조선시대에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구변화를 담은 통계자료가 있습니다.
당시 한반도 인구는 570만명.
위 설명대로 1906~18년에
1400만명 남짓이 대륙에서 이주해서 한반도 인구 합계가 2000만명?
그런데 아무도 이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고,
아무도 알 수도 없는 묘한 숨겨진 역사입니다 ㅡ 친일파가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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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신사 대동보는 한반도이주 조선양반 인명록..조선이주 수인초
박보생 김천시장 송설역사관에 조선신사대동보 기증 3월 1일 삼일절기념식과 자율형사립고 2기 입학식이 있기 전 박보생 김천시장이 송설역사관에 들러 송석환 총동창회장에게 최송설당 여사의 1913년대 사진이 담긴 '조선신사대동보' 원본을 기증했다. 원래 이 원본은 농소에 있는 한 분이 소장하고 계시던 것인데 박보생 시장이 이 귀중한 책을 김천시에 기증하든지 학교법인송설당교육재단의 송설역사관에 기증을 해야한다고 설득한 결과 송설역사관에 시장님이 직접 가지고 오시어 기증하게 된 것입니다.
복사본을 지난 1월 입수하여 홈피에 올렸던 내용을 다시 되내어 봅니다.
조선신사대동보(1913년 발행)에 게시된 최송설당 여사의 1913년대 사진입니다. 이 시기는 무교동에 집을 마련하고 집의 이름을 송설당으로 만드신 다음 해입니다. 연세로 보면 60세이실 때인데 사진은 더 젊으실 때의 것으로 추측됩니다. 젊으신 최송설당 여사는 동상이나 후년의 모습보다 더 강직해 보이십니다. 본교 출신이 아닙니다만 지역의 인물로 최송설당 여사와 송설에 관한 많은 자료를 가지고 계신 농소에 계신 분이 자료의 원본을 가지고 계십니다. 복사본이나마 자료를 제공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한글화 해 주신 분은 김천고 국어교사이자 시인이신 이병철선생님입니다. 김현철화백님이 사진의 원판이 뒤집혀 인쇄가 되어 옷고름의 위치가 바뀌었다고 하여 사진을 좌우 돌렸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조선신사대동보(1913년 발행) - 열녀, 부인부 부인부(夫人部) 최부인 송설당 사는 곳은 경성부 서부 여경방 뒤 국동 45통 2호. 평장사 오산군세기후 지제고 시호는 충절공 영유(永濡)의 이십세손이며, 대사성 사로(士老)의 십육세손이며, 이조참판 한정(漢禎)의 십오세손이며, 이조참판 중홍(重洪)의 십사세손이며, 일지평(벼슬명)으로 대사헌에 추증되었고 號는 수우당인 영경(덕천서원에 배향됨)의 십일세손이며, 부호군 천성(天成)의 현손이며, 부호군 봉관(鳳寬)의 증손이며, 부사과 상문(翔文)의 손으로 號는 지남인 창환(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이 남)의 따님이시다. 성품과 행실이 현숙(어질고 정숙함)하고 학식을 겸비하여 그 시(詩)는 예스럽고 우아하며 그 사(詞)가 농염(濃豓 : 아름다움)하고 종친에 도타우며 화목하여 궁핍함을 도와 구제(賙恤 주휼 : 도와주고 구휼함)하였으니 엄연히 장부(丈夫)의 국량이 있었다. 찬(賛)하여 이르기를 푸른 소나무의 절개와 흰 눈의 지조로다. 소나무도 때가 있어 시들고 눈도 때가 있어 녹아 없어지나니 오직 이러한 여사의 의범(아름다운 본)은 백세가 지나도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주(註) 뒤에 지제교(知製敎)로 고침.
http://blog.daum.net/borisu_gim/15964142 조선신사대동보는 한반도이주 조선양반 인명록
대동신사대동보에 나오는 이주양반들 명단
역사에반역, 박인수저, 거근당. 263~267쪽에서 보면, " 초창기 양반들이 이주를 시작할때 고종황제의 한반도 천도설을 들먹였었다. 고종이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강제퇴위를 당하자, 순종의 한반도 천도설을 유포하여 양반의 이주사업을 강행하였다. 그러나 고종도 순종도 한반도에 머무른 적이 없었으며, 조선 왕조 자체가 한반도와 아무 관련이 없는 대륙에 존재했던 왕조였다. 그러나 조선왕조를 세우고 이끌어왔던 양반층이 대거 한반도로 밀려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조선신사대동보는 흔히 친일파의 인명록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다른측면에서 살펴보면 조선사의 비밀을 푸는데 상당히 중요한 자료일 수 있다. 필자는 조선신사대동보를 초창기 단체 이민의 인명록으로 가정하여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만일 한반도 성씨족보에 대한 통계와 내력을 철저히 고증을 할 수 있다면 조선말 한반도 이민사를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철종이후부터 한반도에 정식으로 행정상의 한자 지명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일본은 이미 조선황제를 (제후)왕으로 한단계 낮추고 있다. 주지는 주소를 말하며 관은 본관을 의미하고 생은 생년월일, 한한 또는 유학은 수학을 한 학문의 종류 또는 종교를 의미하고 있다. 약 1만명을 수록하고 있는 인명록을 보면 대부분 유학자이며, 약간의 야소교(기독교)신자 그리고 열녀가 소개되어 있다. 조선시사대동보를 좀 더 검증을 해보면, 예를 들어 주소만 보더라도 군이하 면, 리는 한반도에 존재하지 않는 지명이 많으며, 각도별로 지명이 비슷한 곳이 있는 경우에 는 행정상 지명이 겹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임의로 지명을 고친 흔적이 여러 곳에 있었다. (빛고을-광주, 한밭-대전.. 등으로..) 조선신사대동보와 족보 책 몇 권만 비교해도, 한반도 지명이 모두 대룩에 존재했던 지명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초창기에 한반도로 이주해 온 단체 이주자들이다. 대부분 대규모 문벌단위로 이주해온 이들은 일제(열강음모 세력)로 부터 상당량의 정착금을 받은 것으로 사료된다. 인명록에 있는 초창기 이주자들은 대부분 유학자 양반들이었다. 인명록에 수록된 사람들이 모두 친일파는 아니었다. 대부분 정착금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 중 최근 상당수는 한반도에 정착한 후,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이샵 13.11.23. 20:52 전라도 고흥이 고향인데 약 35년전 혹 그훨씬 이전부터 2년간격으로 도시의 골동품 업자?(족보등의 수거자들)이 마을회관에 마을민들을 모아두고 고서, 족보등을 적당가를 지불하고 수거한 사례가 빈번하였고, 당시만 하여도 200호 되는 마을민들중 여자와 소인들을 제외하곤 한문을 아주 익숙하게 다루고 서당이 있었으며, 우리글을 버리면 안된다는(한자)일종의 신념들이 있었던 때였다, 즉 당시는 동네 어르신들의 한글과 한문의 문맹율이 거의 동비율에 가까울 정도 였으니 지금와 생각컨데 역사왜곡집단의 나머지 고서 족보 폐기 마무리 단계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샵 13.11.23. 21:01 그리고 각 마을마다 집성촌이 존재 했는데 대체적으로 그마을 인접지역의 토지는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 차지하였던 것으로 미루어 이들이 대륙의 양반세력중 일부가 지방토호로 변신하으나, 그곳의 사정에 밝지 않았던 터 토지사기등을 많이 당했다는 애기를 많이 들음, 우리 집안도 전주이씨로 약 30가구가 나머지 170여가구 아랫마을에 자리 잡았으며 어르신들 말로는 어디를 가던 내가 서있는 땅이 우리 집안 땅이었다는 애기를 많이 하셧으나!! ㅋㅋ 결국 사기당해 다날려먹고 약 20권에 달하는 집안 족보도 잃어버림 (외지사람의 도둑질로 알고있음) 참고로 우리집안의 성종대왕님의 일곱째 아드님 자손임 ┗ 러브 선(鮮) 13.11.23. 21:51 조선황족이시네요.. 조선황조는 틀림없이 중국에 위치해 있을 것이 맞을 것입니다. 위자안지 13.11.24. 08:31 본격적( 일제용어)인 일제 조선사 대말살기간인 1920년대 중반 완전히 멸망했다는 고려 개국공신의 후손입니다. 고려는 대륙이 아닐수 없읍니다. 태양해 14.03.18. 18:52 대원군의 큰 아들과 손자가 반도에서 가짜왕 고종과 순종 노릇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왕이 이주 하였으니 다들 따라서 이주하였고 왕이 있으니 반발도 적어겠조 ,,,,,, 민재 15.07.16. 01:10 예전에 현재의 논산(충남) 지명이 '놀뫼'였는데 일제때 한문자로 수정했다고 하더군요. 저희 아버지(34년생)말씀으론 어렸을 당시에도 '놀뫼'라는 명칭을 더 많이 사용했다고 하는데 어느순간에 지명이 논산(놀뫼 > 논뫼 > 논산(뫼산자))으로 수정된거죠. 아직 논산에 가면 놀뫼라는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는 여러 음식점이나 지명등이 남아있습니다. 충청도 사투리로 '고개'를 '날맹이' 라고 하는데 '추풍령고개'같은 한자식명칭이 아니라 '똥개말랭이 (실제 있음. 택시기사에게 얘기하면 두말않고 데려다줌-현 광석면 광석중학교 부근)라는 순 우리식 명칭이었어요... 한반도의 명칭이 대도시 위주로 조선 명칭으로 카피될때 군소도시들은 이런식으로 마구잡이(?)식 개명이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치자면 대한민국이 함락되어 제주도로 정부가 이전되고 제주도 각 지역을 한반도에서 이주한 주민들을 분리해서 행정구역을 다시 만든 꼴이네요... 서구열강이 대륙조선을 분할했다면 현재의 중공 (조선의 중국과 구별하기위해 현중화인민공화국을 저는 중공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이 어떻게 대륙을 차지했을까요? 장개석이 원래 동이족이라고 하던데 아무래도 장개석과 미국,영국이 손을잡고 조선을 넘긴듯 합니다. 그런데 중국공산당이 창설되고 인민을 위한 군대로 인식받게되어 민심을 얻고 그에 힘을 받아 장개석을 패퇴시켰다고 봅니다. 그 이후 일이 틀어져서 미,영이 대륙으로 진입을 못한거죠. (하지만 아무증거가 없으니 제가 바보인듯한 느낌이 드네요...) 도무지 어디서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역사인지 모르겠습니다. 민재 15.07.16. 01:29 한국전쟁때도 중공이 참전할것을 몰랐을리 없습니다. 진주만 기습을 모의한것도 미국정부인데 중공을 자극해서 만주로 진입을 시도했을겁니다. 인천에서 중공 천진으로 상륙해버리면 북경이 코앞인데... 아무래도 미국이 맥아더의 핵공격론을 잠재우고 한반도를 분할하는 정전협정을 맺은것도 조선중국의 한반도 천도를 조작한 사실을 숨기기위해 중공과 빅딜을 시도한것으로 봅니다. 중공은 '문화대혁명'으로 남아있던 조선의 사서들을 포함해 숨어있던 지식인들을 모두 도륙해버렸고 현재까지 정권을 유지할수 있도록 미국의 정치적 도움(?)을 받았을겁니다. 민재 15.07.16. 01:35 중공은 미국을 대신해서 대륙의 조선역사를 지워버렸고 미국은 군정을 통해서 역사를 뒤틀어버렸고 북한도 김일성 꼭두각시를 내세워 반만년을 바보로 살게 만든거죠. 일제시대 유명인사들을 3개 부류(왕족,귀족,사족)로 나누어 사진(일부)과 함께 수록한 1312쪽에 걸친 방대한 신상자료이며, 친일파들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으며, 稀姓(희성)과 여성인사들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포섭대상으로 삼았을 것으로 추정이 되는 이 책에는 친일 고관대작들을 조선의 '신사'로 기록하고 있다. 여기 기록된 조선의 멋쟁이 신사는 먼저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이근태,박재순 등 늑약의 첨병을 비롯 친일고관대작 60여 명이다. 유림과 석학 심지어 효자 효부,열녀까지 전국의 영향력 있는 인물을 총망라해 주소와 나이,조상,벼슬,일화 등 자세한 신상정보를 담고 있다. 특히 어떤 사람은 그의 성격까지 적어놓고 있다. 예를 들면 , 울유성적蔚有成績(훌륭한 치적을 이루었다), 수신근행持身恭儉(지신공검: 몸가짐이 공손하고 검소하다) 등이다. '서민은 지도급 인사를 따라 오게 마련이다' 이라는 서문의 한 대목으로 미루어 일본이 영향력 있는 전국의 유지들을 회유하는 방법을 동원해 식민작업을 진행했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협박과 회유를 했을 것이다(돈을 갹출케 했을 수도 있다). 오가끼는 일본에서 신문사 사장을 지낸 일본의 전형적인 국수주의자이다. 이 자가 1906년 한국으로 건너왔는데 한국인들의 식민지화 운동에 앞장선 인물이다. 이 인명사전은 오가키가 6년간에 걸쳐 치밀한 정보수집 끝에 편찬한 것이다. 실제 친일운동에 앞장선 인물들의 상당수가 실려 있는 이 조선신사대동보에는 그러나 항일운동에 앞장선 인물들 전혀 찾아볼 수 없어 친일진상규명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물론 이 책에 있다고 해서 모두 다 친일파다, 라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러나 그 당시 여하튼 영향력이 있던 사람은 틀림없다. 오가끼(大垣丈夫)와 김윤식(金允植)의 서문이 함께 실려 있는데, "신사(紳士)"라는 말이 있다. 이 책에서의 신사는 강점되기 이전 조선의 지배계층임을 알 수 있다. 또 특정 성씨의 계보만을 정리하지 않았음에도 ‘대동보’의 형식을 취한 것은, 조선의 유력한 계층을 전국적으로 망라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전 조선의 지배계층임을 알 수 있다. 이 "신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 지적 수준이 적어도 "漢文修學"(한문수학)이라 했으니 지식층이다. 《조선신사대동보》를 만들기 위하여 방침을 세운 것이 1912년(大正元年) 12월이다. 도대체 인원은 얼마나 될까? 왕족(王族): 5명; 리태왕[李太王: 熙(희), 載晃(재황)]·리왕[李王:(척)]· 왕세자[王世子: 垠(은)]·리강공[李綱公: 리재황(李載晃)의 2男]· 리준공[李埈公: 흥선대원군(興善大院君)의 왕손(王孫)]
귀족(貴族): 57명; 리재완(李載完)·박영효(朴泳孝)·윤택영(尹澤榮)·김윤식(金允植) ·민영휘(閔泳徽)·유길준(兪吉濬)·박제순(朴濟純) 등 사족(士族): 11393명; 156姓 [李: 2193, 金: 1895, 朴: 765, 鄭: 535, 趙: 284, 崔: 458, 韓: 191, 沈: 108, 徐: 144, 宋: 133, 尹: 220, 權: 315, 洪: 192, 申: 193, 柳: 199, 南: 109, 閔: 65, 吳: 129, 姜: 137, 安: 161, 任: 69, 兪: 54, 曺: 85, 黃: 138, 成: 69, 張: 203, 具: 44, 林: 138, 丁: 40, 嚴: 28, 元: 54, 許: 62, 白: 154, 梁: 46, 睦: 9, 呂: 19, 蔡: 48, 慶: 4, 盧: 47, 羅: 35, 魚: 15, 郭: 32, 辛: 57, 邊: 31, 愼: 10, 高: 58, 裵: 103, 河: 37, 禹: 53, 孫: 92, 尙: 3, 卞: 17, 琴: 24, 孔: 17, 孟: 8, 程: 2, 田: 31, 朱: 130, 石: 8, 周: 10, 康: 50, 奇: 4, 都: 36, 吉: 10, 南宮: 7, 皇甫: 8, 文: 43, 楊: 34, 魯: 9, 玄: 28, 池: 24, 咸: 29, 車: 30, 宣: 9, 全: 103, 陳: 22, 王: 9, 劉: 37, 玉: 6, 方: 16, 廉: 12, 千: 19, 魏: 12, 蔣: 28, 馬: 10, 印: 14, 秋: 21, 明: 10, 卓: 4, 秦: 4, 龍: 7, 芮: 5, 蘇: 4, 延: 4, 奉: 7, 賈: 1, 太: 7, 薛: 6, 智: 5, 昔: 3, 表: 7, 史: 3, 諸: 3, 諸葛: 5, 司空: 4, 余: 8, 鞠: 3, 殷: 3, 潘: 3, 夏: 3, 黃: 3, 牟: 8, 庾: 1, 陸: 3, 皮: 1, 卜: 2, 杜: 3, 堅: 1, 施: 1, 片: 1, 承: 6, 唐: 1, 晉: 2, 楚: 1, 桂: 6, 于: 1, 萬: 1, 范: 1, 弓: 1, 景: 2, 胡: 3, 溫: 2, 慈: 2, 簡: 2, 夫: 1, 房: 4, 路: 2, 弼: 3, 陰: 1, 邢: 1, 眞: 1, 公: 2, 彭: 1, 賓: 1, 설(人+契): 2, 化: 1, 東方: 3, 西門: 1, 獨孤: 6, 單于: 1, 頓: 1, 甘: 1, 龐: 1, 鍾: 1, 連: 1, 夜: 1]. 효자(孝子): 238명 열녀(烈女): 172명 총계: 1만1808명이다. 대단하지 않는가? 그러나 아뿔사! 당시에는 대단한 가문의 영광이었을지 모른다. 또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피하고 싶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온갖 협박과 회유를 했을 것이 자명하다. 그러나 100년 후 오늘날 천추의 한이 될 줄 그들은 꿈엔들 생각했을까? 도리어 가문의 수치가 된 것이다.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이 나의 조부나 증조부가 있지 않을까 해서 부랴부랴 찾아봤다. 천만다행이었다. 이 책에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조상도 들어 있다. 얼마나 무서운가? 눈길을 걷는 사람이여 어지러이 걷지 말아라 지금 그대의 발자취가 먼훗날 사람들의 이정표가 되리라. 서산대사의 말씀이다. 김구선생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성경에도 함부로 흔적을 남기지 말라고 했다. 일본인. 그들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했는가?
나의 컬렉션 이야기 박찬 일제금융수탈자료들 2006년 2월 17일 밤 10시 5분 난생 처음 나의 육성이 장시간 전파를 타고 전남 동부 지역에 울려퍼지는 일이 생겼다. KBS 라디오 <김유화의 금요초대석-한밤의 문화산책>에 출연한 것이다. 여태까지 끽 소리 한번 안 하고 내 할 일만 묵묵히 하면서 진득하니 지냈더니 드디어 이 순촌놈(순천놈)도 출세한 날이 온 것이다! 내가 국립지방대 철학과를 나왔으나 그래도 '영어'하면 순천 지역 학원가에선 단연 톱이었다. 한 마디로 '돈 잘 벌고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영어를 가르쳐 밥을 먹은 20여 년 동안 매스컴이 눈길 한번 안 주더니, 이제 와선 저희가 한번 모실게요, 하다니... 암튼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방송국에 근무하는 작가라는 분이 프로 진행자인 김유화씨와 내가 서로 주고받게 될 내용을 담은 원고를 미리 준비해줘서 서로가 버벅거리지 않고 무사히 방송을 끝냈다. 다음은 그때 그 원고다. Q(이하 김유화) 2월 27일부터 순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릴 <일제강점기 조선경제수탈자료전>에 전시될 역사 자료들을 수년간 직접 수집해 오신 고문서 수집가 박찬 씨 모셨습니다. 인사나누겠습니다. 안녕하세요... A(이하 박찬) 네, 안녕하세요. Q 조금 전에 제가, 고문서 수집을 해 오신 분이라고 소개를 했는데, 맞나요? A 네, 맞습니다. 맞구요, 고문서를 테마별로 수집해 오고 있는데, 단순한 수집 차원에 그치지 않고 이들 자료들을 내 나름으로 연구 분석하여 공개하는 일까지 합니다. Q 먼저, 2월말에 있을 전시회 소식부터 여쭐게요, 전시회 이름이? A 일제강점기 조선경제수탈자료전 입니다. Q 그럼, 일제 강점기 역사 자료들이 되겠네요? 조선 경제수탈 자료... 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얘기하는 건가요? A 금융을 비롯한 산림과 토지 수탈, 노동력 수탈 등 총체적인 수탈 자료들을 말합니다. Q 사실 올해가 3.1 만세운동이 있은 지... 87년째잖아요. 그런데 그동안 일제의 경제수탈 자료들이 전시됐던 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 A 이번에 공개될 자료는 70종 300여점으로, 이처럼 방대한 사료가 일반인에게 공개된 적은 없습니다. Q 네... 제가 지금, 전시회 자료가 담긴 소책자를 갖고 있거든요? 어제 나온 것이라고 하던데... 책 속에 보면, 전시될 자료들 사진이 담겨있고요... 몇 가지에 대해선 설명을 좀 들어야 할 것 같아요... A 대동아전쟁 물자지원용으로 보험 가입을 강요했던 자료들로는 전시보국채권, 특별보국채권, 전시저축표, 전시저축채권, 애국채권 등이 있고, 이밖에 각종 보험증서와 보험료 영수장, 출자증서도 있고요, 또 소작료 수납부도 있습니다. Q 이런 자료들은 어떤 사실들을 보여주는 건가요? A 이들 자료는 아까 잠깐 언급했던 바와 같이, 일제가 대동아전쟁 물자지원용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구입을 강요했던 것들입니다. 하지만 일제의 패전으로 순식간에 휴지가 돼 버린 것들입니다. Q 이들 중에서 특히, 역사적 가치가 가장 큰 자료들이 있는지요?... A 사료마다 우리 조상님들의 애환이 서려 있기에 다 가치가 있다고 보구요, 그 중에서 이번 전시회 포스터가 된 보험 가입 강요 리후렛 입니다. 일본 군대 깃발인 욱일승천기, 탱크 사진과 함께 ‘지키자 조국, 가입하자 보험’이라는 구호가 찍혀 있는 거 말입니다. Q 한동안 친일인명사전을 만드는 일을 두고 나라 전체가 소란했었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공개되는 자료에 반민족적 매국 행태를 알 수 있는 자료들이 포함돼 있어서 또 눈길을 끌어요... 어떤 것들이 있는지요? A 이완용의 친필, 친일 유림 인사들과 일본 고위층들이 주고받은 시를 모은 시집 ‘선린창화’가 있어요. 가장 폭발력이 있는 자료는 ‘조선신사대동보’라는 친일인명사전 입니다.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고관대작 61명을 포함, 조선팔도 지도급 인사 1만명의 신상명세가 들어 있습니다. Q 그런데요, 조금 전 설명해 주신 이런 자료들을 모두... 박찬 선생님 개인이 갖고 계신 소장품이라고요? A 네. Q 쉽게 수집할 수 있는 것들은 아닐 텐데, 이 역사 자료들을 어떻게 모으신 것들인지? A 전국 고서점과 골동품 가게를 돌며 수집했습니다. Q 이번 전시회에 내실 전시물들은 얼마나 되나요? A 70종 300 여점입니다. Q 이 자료들을 모으는 데 기간은 얼마나 걸린 거예요? A 60년대까지만 해도 이들 자료가 적지 않았다는데, 1964년 굴욕적인 한일협정으로 인해 일본 정부로부터 보상을 받을 길이 꽉 막혀버려 그만 휴지가 되고 말았죠. 누가 휴지를 애지중지 보관했겠어요? 그냥 버렸죠. 그러다보니 거의 멸실되다시피 해서 이제는 희귀 자료가 됐지요. 꿈에 용 보는 격으로 가끔 한점 두점 이렇게 나오는 것을 수집하다보니 20여 년이 흘렀답니다. Q 그렇게 모은 자료들을 전시하게 된 계기는요? A 순천시에서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냥 묻어두기 아까우니 시민들과 공유하면 좋겠고, 특히 학생들에겐 교육적 효과가 클 것 같다면서요. Q 이 자료들은 지금 남도평화문화재단을 통해 선보이는 것이잖아요? 그 재단과는 어떤 계기로?... A 맞습니다. 남도평화문화재단 이사장이신 조원래 교수님께서 저명한 사학자시라 검증 및 자문을 받는 등 유리한 점이 많다는 판단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Q 네... 지금 여러분께선 KBS 순천방송국에서 보내드리는 한밤의 문화 산책... 금요일 순서 함께하고 계십니다. 오늘, 일제강점기 조선경제수탈자료들을 모아오신 박찬 씨와 함께하고 있구요, 잠시 쉬어가려고 합니다. 음악 한곡 듣고 오지요... (음악)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안치환 한밤의 문화 산책 함께하고 계십니다. 조금 전에 들은 곡은 박찬 씨가 좋아하신 곡인데요... 노래에 담긴 사연이 있나요? A 전 음치인데요, 정신이 살아있는 노래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Q 오늘... 박찬씨 모시고, 일제강점기의 잔재들을 보여주는 자료들에 대해서 얘기 나누고 있는데요, 이런 옛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한 데는 아주 우연한 계기가 있었다면서요? A 그러니까 20여 년 전 한 골동가게에서 우연히 일제 말기의 보험영수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보험료 납입 증명 도장이 빼곡히 찍힌 것이었죠. 저는 그 빨간 도장 자국들을 보면서 공출이다, 성금이다 뭐다 해서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강제로 꼬박꼬박 보험료를 챙겨야했던 분의 핏방울을 본 것만 같아 무척 가슴 아팠습니다. 1943년 제2차 대전 당시 군수물자 조달을 위해 발행한 조선총독부 체신국 간이보험의 경우, 당시 인구 2천 5백 만명의 절반 가까운 천 백만 여 건의 계약이 이뤄져 매달 1원 씩, 현재 가치로는 10만원 정도의 보험료를 짧게는 2,3년 길게는 10년 이상 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고 싶은 마음에서 이들 자료를 모아 모아온 겁니다.
"돈 없으면 양식이라도 달라니까 몇 말씩 냈고 소가 송아지 낳으면 또 받고 나무라도 팔아서 보태고... 이 종이는 나뿐만 아니라 조선 사람들 기름을 죄다 뺀 거다." 기름 덩어리..."(허만문 89세 씨 증언) Q 수집해 오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나, 수집 과정에서 있었던 얘기들 좀 해 주세요. A 제가 처음 이들 자료를 찾는다는 소문이 나돌자, “별 미친 사람 다 보겠네” “쓰레기나 다름없는 것을 돈하고 바꾸다니 돌아도 한참 돈 사람이여” 했다나봐요. Q 사실, 박찬 씨처럼 이런 고문서들을 찾아내고 소중한 자료를 지켜내려고 하시는 분들... 많지 않거든요. 이번에 이렇게 소중한 자료들을 시민들을 위해서 공개를 해 주셨는데... 앞으로도 고문서 수집은 계속하실건가요? A 고문서는 그 자체가 유일무이한 희귀문서이며 사료로서의 가치가 높기 때문에 인멸되기 전에 수집 보존하고 또 세상에 널리 알려 학계의 연구 자료로 제공하는 일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누군가는 이 일을 계속해야하지 않겠습니까? Q 이번 전시회... 2월 27일부터잖아요, 특히 3.1절에 즈음해서 열리는 것이라 더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군요. 오늘 소중한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시회 준비에 여념이 없으실텐데요. 이번 기회... 잊혀질 뻔한 역사의 소중한 자료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금요 초대석이였구요. 오늘은, 일제강점기... 일제에 의한 조선의 경제 수탈 자료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자료들을 찾아 수집해 온 고문서 수집가 박찬 씨와 하께 했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2월 27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 순천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열립니다. 처음으로 공개되는 자료들이 많다고 하니까요, 생생한 역사의 흔적들, 확인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음악) 라 마리짜 La Maritza-실비 바르탕 Sylvie Vartan KBS 방송에 출연하기 며칠 전 일이다. 어디서 취재원을 얻었는지 여수 MBC 취재진이 일찌감치 11일께 나의 집에 와서 취재활동을 벌였다. 그들은 <조선신사대동보>를 특종 기사거리로 만들려고 무진 애를 썼다. 최경언 씨는 언론 밥을 20여년 먹은 베테랑인데도 긴장됐는지 무려 7번이나 NG를 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다음날 엄기영 앵커가 진행하는 밤 9시 뉴스를 통해 '친일하면 신사?'라는 제목으로 전국적으로 보도되었다. 2월 27일 오후 6시에 전시회는 예정대로 오픈 되었다. 남도평화문화재단 최호 사무국장이 개량 한복을 입고 오픈 행사의 사회를 보았다. 그는 공사다망하심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조선경제수탈자료전>을 관람하러 오신 내빈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오늘 이 자리는 사료를 통해 과거 일제의 만행과 친일인사들의 반민족적 행태를 생생하게 되짚어보고 다시는 이와 같은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마음 자세를 가다듬는 역사적인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를 비롯하여 유창종(순천시장권한대행), 강길태(순천 청암대 학장), 김광배(보험소비자연맹 사무국장), 조원래(순천대학교 교수), 오재선(일제강점하 사적재산권청구위원회 총무이사) 보성읍교회 목사 등이 전시회 개막 커팅을 했다. 이날 나는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랴, 출품된 사료를 설명하랴 도무지 정신이 없었다. 언론의 반응은 대단했다. 연합뉴스 남현호 기자(현 러시아 특파원)가 선수를 친 기사를 보고선 와따매 저거 월척이네! 하는 생각이 들었던지 지방 신문들이 앞다퉈 남 기자보다 더 큼직하게 보도를 해댔다. 자료를 컬러판으로 찍은 신문사도 더러 있었다. 이 열기가 언제쯤 가라앉을꼬 했더니 3.1 절 아침에는 MBC에서 김은혜 앵커우먼이 나와 이 전시회를 자세히 보도했다. 한마디로 대박을 터뜨린 전시회였다. 앞서 김광배 씨를 소개했는데, 보험소비자연맹에서 그를 보내 이 자료들을 국회로 옮겨 한번 더 전시회를 갖자고 날 은근히 꼬드기는 것이었다. 대체 무슨 소린고 했더니, ~~~ 메스컴이 이렇게 야단법석을 피우자, 평소 관심없던 사람들까지 대체 먼 일이랑가, 하고 와서 구경 다하고 돌아갈 때는 내가 듣기에 아주 통쾌한(?) 욕을 냅다 질러대는 것이었다.
"때래쥑일 쪽바리 새끼들!" 그러던 어느 날 생전 첨 보는 사람 예닐곱이 전시장에 들어왔다. 일행 중 유난히도 키가 작고 아주 못 생긴 사람 하나가 있었는데, 그가 자료들을 둘러보며 자꾸 전문가 행세를 하지 않는가. 이쯤 되면 나도 존심 팍 상하지 않겠어?~ 그래서, 짐짓 독수리 눈깔로 게 뉘요? 하는 눈짓을 보냈더니 곧 특유의 소년틱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손을 내밀고는 박한용... 입니다, 한다? 가만, 박한용? 그럼 당신이 민족문제연구소의 보물? 나는 그날 그렇게 처음으로 나와 갑장인 박한용의 현판을 본 것이다. 임헌영 소장만 쏙 빼놓고 사무총장, 연구원, 사무원 등 모든 직원들이 서울서 차를 몰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 ◀ANC▶ 퍄오찬 18.08.15. 07:27 Q 수집해 오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나, 수집 과정에서 있었던 얘기들 좀 해 주세요. A 제가 처음 이들 자료를 찾는다는 소문이 나돌자, “별 미친 사람 다 보겠네” “쓰레기나 다름없는 것을 돈하고 바꾸다니 돌아도 한참 돈 사람이여” 했다나봐요. Q 사실, 박찬 씨처럼 이런 고문서들을 찾아내고 소중한 자료를 지켜내려고 하시는 분들... 많지 않거든요. 이번에 이렇게 소중한 자료들을 시민들을 위해서 공개를 해 주셨는데... 앞으로도 고문서 수집은 계속하실건가요? ┗ 퍄오찬 18.08.15. 07:28 A 고문서는 그 자체가 유일무이한 희귀문서이며 사료로서의 가치가 높기 때문에 인멸되기 전에 수집 보존하고 또 세상에 널리 알려 학계의 연구 자료로 제공하는 일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누군가는 이 일을 계속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조선은 대륙에 있었다...일본의 역사조작
대륙조선에서 한반도로의 이주자 명단 조선신사대동보 1900년초 이광수의 고향은.. 1920년대 삼천리 창간호에 실린 이광수의 시 <새나라로> 중국땅에서 한반도로 이주하는것. 1900년초 김동환,김억의 고향은 1900년초 문인들의 고향 정주는 영화성 이성계의 위화도와 압록강은 대륙 영화성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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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http://cafe.daum.net/freemicro/1CmD/331
조선신사 대동보는 한반도 이주 양반 인명록 ..조선이주 수인초
https://youtu.be/_o7zMCK-4ew
역사왜곡의 서막 중국25사의 탄생과
조선사편수회의 관계
https://youtu.be/xO6BGLh07Gs
광화문 광장 지키자,
대륙조선사를 반도사관으로 바꾼 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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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daum.net/greatchosunsa/75XT/5446
구한말 1400만명, 한반도로 대이주 -통계청 자료분석
https://youtu.be/aueUrhvLpzM
신미양요의 재해석 1
강화도 위치..
구한말 매켄지의 대한제국의 비극에 의하면
조선은 거지가 1명도 없다.
백성들의 생활이 영국 중류가정과 같다.
한양은 동서남북으로 21미터의 도로가 죽죽 뻣어잇다.
지방에도 16미터의 도로가 죽죽 뻣어있다.
https://youtu.be/CvG1fUj82FA
신미양요의 재해석 2
1670년에 함경도에 흉작으로
대륙조선 양자강의 수천만명이
식량을 실어 3.000km 떨어진 함경도로 날라 백성을 살렸다.
강화도 위치.
https://youtu.be/PQajMSrKDn4
제물포와 마포 위치를 알아보자1
https://youtu.be/tx478Ob32pw
제물포와 마포 위치를 알아보자2
https://youtu.be/IjakmM38jfg
명성황후능은 14미터 크기 호러스 알렌..고종 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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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 에카르트, 1919년 조선이 대륙에 있었음을 증명하다 ㅡ 다음에서 검색
https://youtu.be/lJJ889PON7I
외국인 눈에 비친 아름다운 대륙조선 기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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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sedaily.com/NewsView/1VFD0RI301
윤봉길의사 선서문
“선서문. 나는 적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야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야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대한민국 14년 4월26일(1932년)
선서인 윤봉길 한인애국단 앞.”
윤봉길이 중국인인가?
왜 중국을 침략한 적장을 암살한다고 했을까요?
https://cafe.daum.net/freemicro/1CmD/259
기미가요는 김해 김씨 왕족을 찬양하는 노래
https://cafe.daum.net/freemicro/1CmD/260
한반도에서 건너간 7명의 일본 천황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50625/72099968/1
아키히토 왕 무령왕 후손
http://cafe.daum.net/sisa-1/f8lD/714
[‘만엽집(만요슈)’을 해석한 '노래하는 역사' -저자 이영희 교수 ]
http://cafe.daum.net/sisa-1/f8lD/713
"일본 '만엽집' 등은 고대 한국어의 보물창고"
http://cafe.daum.net/sisa-1/f8lD/716
일본의 만엽집은 ‘노래에 담은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