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건드릴 수 있는 모든 기회마다 그는 상대를 건드리는 것 같다. 그는 지른다. 때로 그것은 가장 파괴적인 공격은 아니지만, 그는 단지 그걸 상대에게 맞춘다. 그의 정확도는 최상위라고 한다. 내가 그를 존경하는 점은 그것이다. 그는 단지 상대를 건드리려고 가장 이상한 형태의 공격을 한다."
- 존 존스, 앤더슨 실바에 대해 언급하면서. "예전 존존스 인터뷰"(http://gall.dcinside.com/list.php?id=fight&no=1096384)
0. 왜 앤더슨 실바인가?
MMA를 처음으로 보기 시작한지 벌써 만으로 5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저 스스로가 그렇게 열성적인 팬이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당장 Pride FC와 UFC의 초기 경기들을 저는 거의 보지 않았죠) 2006년 이후 주요단체에서 열렸던 경기들은 거의 다 본 것 같습니다. 센고쿠만해도 중간에 경영자가 바뀌기 전까지는 거의 다 챙겨보았고요. 2010년쯤에 들어오면서 조금씩 못 보는, 아니 안 보는 경기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로 좀 더 바쁘게 살게 되었고, 동시에 MMA경기를 보는 게 예전만큼 즐겁지 않았다는 것도 큽니다. 특히 뒤의 이유가 중요합니다. 본래 제가 계속해서 새로운 대상을 쫓아다니고 알만큼 알았다고 생각이 들면 그만둬버리는 성격인 탓도 있지만, 단순히 변덕스러운 기질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MMA 경기를 보면서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으니까요.
UFC와 UFC의 규칙(특유의 룰 및 철창)이 MMA의 지배적인 표준으로 떠오른 후부터 급속하게 거의 모든 MMA 시합들은(물론 여기서 말하는 시합은 일정 수준 이상 단체가 주관하는 일정 수준 이상 선수들간의 대결입니다) 비슷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시합이 진행되는 몇 가지 패턴을 가정한다고 했을 때 그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는 시합들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물론 이건 단순히 UFC란 단체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닙니다. 다른 규칙과 다른 무대(예컨대 링)를 자신의 규준으로 삼는 MMA 단체들이 수준이 낮은 군소단체를 제외하면 거의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는 점도 아울러 지적되어야겠고, 결정적으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하나의 문화가 대중적인 성격을 띠게 될 때 벌어지는 일들이 종합격투기에도 일어나고 있는 거죠. 몇 가지 핵심적인 패턴을 정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쉽고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대중적인 판본-공식을 만들어내는 일 같은 것 말입니다.
예컨대 UFC를 가장 많이 점유하고 있는 하나의 전형은 레슬링을 베이스로 하고 복싱을 조금 배운 근육질의 선수들이죠. 이런 선수들의 시합은 정말로 몇 가지 패턴으로 정리가 됩니다. 간단하게 주먹을 교환한 후(가끔 여기서 게임이 끝나기도 합니다) 클린치 싸움을 하다가 누군가가 넘어지면 그라운드에서 파운딩을 때립니다. 여기에 로우킥이나 서브미션이 양념처럼 들어가고 가끔은 빰클린치-니킥이 나오기도 합니다만 최소 2년 안쪽에서 UFC가 주관한 시합들을 보면 대부분 이 패턴 혹은 이 패턴에 약간의 변형이 들어가는 정도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드뭅니다. 최근 '웰라운드'(well-rounded) 같은 표현이 유행하고 있는 건 좋기만 한 일은 아닙니다. 모든 분야를 잘 한다는 말은 뒤집어보면 아무런 특색도 없다는 말이기도 하죠. 실제로 그 웰라운드라고 하는 선수들끼리 시합을 벌였을 때-최근의 UFC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경기는 사실 이렇습니다만-그 경기의 양상은 지극히 도식적입니다. 조금 더 노골적으로 말해보면 웰라운드라는 말은 포장지에 불과합니다. 결국에는, GSP와 그의 강력한 도전자들이 주로 보여주듯, 클린치와 테익다운 대결, 즉 레슬링이야말로 현 MMA시합의 본질이라는 것이 드러나고야 맙니다. 물론 이들이 실제로 강한 선수들임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겠으나 모두가 똑같아지는 게임에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저같은 사람이 늘어난다고 해도 탓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직 MMA 시청을 완전히 그만두지는 않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몇몇 특별한 선수들의 시합을 챙겨보고 있다고 해야겠죠. 딱히 개인적인 애정이라든가 관심사 때문이라기보단, 그들이 아직까지 저에게 새로움을 선사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선수들과 모든 시합들이 점차 비슷해져가는 상황에서 이들은 아직 MMA가 하나의 전형-패턴의 반복으로 끝나지 않고 있음을, 여기에 어떤 전형으로 수렴되지 않는 단독성(singularity)이 있음을 몸소 입증합니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앤더슨 실바야말로 그 대표적인 실례라고 할 수 있겠죠. 그가 MMA 제1의 타격가라는 데는 현재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단순히 그의 타격능력이 정말로 뛰어나다는 설명과 등치될 수 없는 표현입니다. 과거 슈퍼액션의 UFC중계에서는 시합 전에 선수들의 능력치를 별 다섯 개 만점으로 정리해서 보여주곤 했습니다(당시 해설자는 포레스트 그리핀에게 로우킥의 장인이니 하는 과장된 수식어를 붙였죠-바로 그리핀이 앤더슨 실바와 대결했던 시합에서요). 앤더슨 실바와 같은 선수는 그러한 채점표를 완전히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립니다. 과거의 B. J. 펜이나 에밀리아넨코 효도르가 그랬듯 말입니다.
하지만 앤더슨 실바를 '정말로 특별한 타격가'라고 말해버리고 넘어가도 괜찮을 걸까요? 물론 그 표현은 사실이긴 하지만, 저는 (아마도 직업상의 버릇이겠지만)분석을 그 지점에서 멈추고 넘어가는 게 영 걸렸습니다. 그는 분명 다른 선수들과 애초에 다른 지점에 서 있는 단독적(singular)인 선수입니다. 다른 선수들이 그의 경기를 보면서 감탄하고 존경하는 건 가능해도 그를 흉내내고 모방하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할 말이 없을 때 가장 흔하게 써먹곤 하는 '재능'이라는 문제도 있지요. 저만 해도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가 경기에서 보여준 콤비네이션을 다 몸에 배도록 연습할 수 있을 겁니다-하지만 실제로 시합에서 그와 같이 경기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이와 같이 도저히 '분석불가능한' 지점이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긴 하지만, 여기서 끝을 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그의 움직임에는 분석의 여지들이 남아있고 또 다른 좀 더 평범한 재능의 사람들도 배울 수 있는 지점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지점에 좀 더 천착하고 싶은데, 부분적으로는 저 자신의 분석에 대한 욕망 때문이기도 하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는 현재 MMA의 추세 자체에 대해-정확히는 하나의 지배적인 패턴이 고착화되는 것에 대해-질문을 던지고 싶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저는 앤더슨 실바의 움직임에서 아직 MMA의 진화가 끝나지 않았음을,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할 여지가 남아 있음을 찾아내고픈 것입니다.
서문이 지나치게 길었습니다. 사실 제가 여기에서 하려는 말은 맨 처음 인용한 존 존스의 말에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그래서 저는 그가 정말로 영리한-브록 레스너가 머리가 좋은 인물이라고 할 때와는 질적으로 다른!-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MMA 트레이닝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 제가 말하려는 내용이 크게 새롭게 느껴지리라 생각되지도 않습니다. 어차피 전문적인 칼럼도 아니고, 저는 취미로 MMA를 시청하는 아마추어일 뿐이고(MMA수련을 그만둔지도 2년이 넘었고), 그렇다고 제가 말하는 내용이 엄청나게 새롭고 의미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크게 신경은 쓰지 않겠습니다.
1. UFC 117 앤더슨 실바 VS. 차엘 소넨 전 제5라운드 2분 50초
2010년 8월 7일에 벌어진 UFC 117에서 벌어진 차엘 소넨(Chael Sonnen)과의 경기는 2006년 이후 거의 5년 안쪽에 앤더슨 실바가 겪었던 최대의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5라운드 내내 소넨은 실바의 상위포지션에서 파운딩을 두들겼고 포인트도 그의 것이었습니다. 경기종료 2분여를 남기고 실바가 소넨에게 삼각조르기를 성공시켰고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그때 실바는 정말로 운이 좋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상황에 우연적인 요소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 앞의 4라운드 동안 언제든 성공시킬 수 있었는데 5라운드에서야 맘이 내켜서 서브미션을 받아낸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 장면을 전적으로 우연적인 요소만을 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공한 결과 자체는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우연은 필연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없이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앤더슨 실바는 운으로 승리를 훔친 게 아니라 하나하나 차근차근 우연이 나타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갔고 최종적으로 조르기를 성공시킨 겁니다.
저는 단순히 뛰어난 선수에 대한 존경심에서 비롯되는 상투적인 어구를 말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실바가 기습적으로 두 다리로 삼각을 캐치하기 직전의 상황을 보면, 소넨은 적극적인 파운딩을 때리고 있는 대신 한 팔은 앞으로 뻗고 왼손은 자신의 관자놀이께에 대고 얼굴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상위포지션에 있는 선수가 하위 포지션에 있는 선수로부터 자신의 안면부를 보호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셈이죠. 이런 장면은 흔하게 일어나는 상황이 아닙니다(저도 기껏해야 조쉬 바넷과 길버트 아이블의 경기 정도밖에 생각나지 않습니다). 특히 일급의 레슬러가 그렇지 않은 상대의 탑을 점유하고 있을 때는요. 그뿐만 아니라 안면부를 가드한 채로 고개를 숙이기까지 합니다-두 선수가 서서 타격을 주고 받을 때는 자주 나오는 자세이지만 그라운드에서 상대의 풀가드 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선수가 통상적으로 하는 행위는 아니죠. 상대의 이 비상식적인 행동을 본 앤더슨 실바는 소넨의 두부에 오른손으로 몇 번 더 타격을 가한 뒤(아마도 상대의 주의를 계속해서 그의 오른손에 집중시키기 위해서겠죠) 여유있게 상대의 겨드랑이께에 있던 왼다리를 끌어올려 아주 부드럽게 삼각조르기 그립을 완성시킵니다. 소넨이 왼손가드를 하고 있을 때의 시점부터(5라운드 2분 50초 경과) 삼각을 성공시키기까지의 10초를 반복해서보면 실바는 그저 유술초보에게 편안하게 삼각조르기를 걸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 장면만 다시 한번 보세요. 도대체 여기에 우연 따위가 어디에 있는 건가요?!
이 게임의 5라운드에서 2분 30초가 지난 시점부터 3분에 이르기까지의 시점은, 특히 그중에서도 마지막 15초는 굉장히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앤더슨 실바의 끈질긴 저항에도 불구하고 소넨은 계속해서 탑을 점유하고 쉬지 않고 파운딩을 날립니다. 앉은 채로 허리를 곧추세우고, 자신의 오른손은 실바의 왼손에 붙잡혀서 움직일 수 없는 채로 왼팔로만 훅성 파운딩/해머링을 날리고 있습니다. 이렇게하면 실제로 데미지를 주는 파운딩은 거의 치기 힘들지만 계속해서 잔펀치를 때리는 것은 가능하며 결정적으로 상대의 서브미션시도로부터 보다 자유롭게 처신할 수 있죠. 소넨의 왼팔이 거의 관성처럼 똑같은 궤도를 똑같은 리듬으로 움직이고 있을 때(그리고 실바는 그것들을 오른팔로 거의 다 쳐내고 있죠), 등과 후두부를 모두 옥타곤 바닥에 대고 있던 실바가 갑자기 고개를 듭니다-돌려보기 하다가 이 순간을 보았을 때 저는 정말로 소름이 돋았습니다-. 소넨이 전혀 그것을 의식하지 않은 채로 똑같은 리듬운동을 반복하는 걸 확인한 실바는 한순간 후두부를 다시 바닥에 댔다가 다시 고개를 들면서 그 연장선상에서 정말로 송곳같은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소넨의 왼편 관자놀이쪽에 꽂아넣습니다(2분 47초 경)!!
실바와 소넨의 경기를 본 모두가 1라운드 소넨의 라이트훅과 5라운드 실바의 삼각만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 한 순간의 라이트에 비하면 그 둘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라이트는 절대로 운 좋게 혹은 그냥 때린 게 아닙니다. 소넨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확인한 뒤 누운 상태에서나마 몸의 탄력을 최대로 이끌어내어(머리를 바닥에 다시 댄 것은 그것을 다시 들면서 얻을 수 있는 펀치력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펀치를 꽂은 거죠. 정확히 보고 제대로 때린 스트레이트입니다. 5라운드 동안 소넨이 때린 수많은 펀치-파운딩 중에서 실바의 이 라이트와 비견될만한 타격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라이트를 넣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실바는 정말로 위대한 격투가입니다. 이 경기를 보고도 실바는 타격능력이 뛰어난데 멘탈이 문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겐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능력이 없다고 봐도 됩니다. 23분간 아래에 깔려 두들겨 맞아온 사람이 여전히 매트에 등을 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면 그는 정신적으로도 비범한 인물이라고 봐야합니다. 이 장면에서 실바는 단순히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그 정도의 정신적 능력을 갖춘 선수는 생각보다 흔합니다. 그는 끝까지 이성적이기를 포기하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이와 맞먹는 멘탈리티를 가진 선수를 케빈 랜들맨과 대결할 때의 효도르 이외에는 거의 본적이 없습니다(최근 두 게임의 효도르의 패인은 그의 신체능력이 쇠락한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가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이성적인 능력을 상실했다는 데 있습니다).
다시 실바와 소넨의 경기로 돌아오면, 이후는 앞의 문단에서 서술한 그대로입니다. 사실상 이 라이트를 맞고 소넨은 졌다고 봐도 됩니다. 앤더슨 실바처럼 가드포지션의 운용이 능숙한 선수 앞에서 소넨은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짓들'을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소넨의 오른손은 실바의 왼손에 붙들려 있고(실바의 신체능력은 겉보기보다 훨씬 더 대단한 수준으로 짐작되는데, 그의 악력 또한 상당한 수준임을 알 수 있죠), 그의 고개는 숙여져있으며-다시 말해 상대가 무슨 짓을 할지 더 이상 볼 수 없으며-, 왼손은 파운딩은 커녕 실바의 추가타를 막기 위해서 정신없이 휘저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여기에서 실바는 절대로 냉정을 잃지 않습니다. 침착하게 상대를 보면서 오른팔로 팔굽을 먹이기도 하고, 느긋해보일 정도로 여유있게 리듬을 조정하면서 소엘의 거북이처럼 움츠러든 머리를 툭툭 때립니다. 그리고 상대가 마치 땅에 머리를 박는 타조처럼(실제 타조는 이렇지 않다고 하니, 타조보다도 바보스러운 일을 한 셈이죠) 눈멀고 귀멀어 있을 때 교본을 따라하듯이 자연스럽게 삼각조르기를-상대의 오른손을 빼내고 가드를 펀치를 막기 위해 쭉 뻗은 왼팔을 머리와 함께 얽어매면서-성공시킵니다. 소넨이 뒤늦게 풀려난 오른손을 휘둘러보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실바는 그립을 더욱 단단히 잠근 뒤 소넨의 무력한 왼팔에 암바시도까지 하면서 탭을 받아냅니다.
경기가 끝나고 공개된 신체검사결과에서 차엘 소넨은 금지약물을 사용한 채로, 앤더슨 실바는 갈비뼈가 골절된 상태로 경기에 임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2. 5라운드 2분 50초 전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
여기까지만 서술하면 우리는 단지 앤더슨 실바의 비범한, 정말로 비범한 정신을 칭송하는 걸로 끝나겠지요. 하지만 여기까지는 그저 조금 꼼꼼하게 본 '감상평'에 지나지 않습니다. 감상이 비평(criticism)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좀 더 많은 지적인-그리고 육체적인-노력이 들어가야 합니다.
1번의 분석은 앤더슨 실바의 5라운드 삼각조르기 역전이 그저 운이 아니라 가드상태에서도 탑을 점유한 상대방에게 라이트를 먹일 수 있는 능력에서 나왔음을 서술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한 순간의 장면을 그냥 장면 그대로 둔 게 아니라 좀 더 넓은 맥락에서 보고자 한 것이죠.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5라운드의 라이트 스트레이트' 또한 좀 더 넓은 맥락에서 보았을 때 더 풍부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지 않는가와 같은 물음을 던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합니다. 5라운드 2분 30초에서 3분까지의 상황은 5라운드 전체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리고 4라운드부터의 8분간으로 생각해서 접근했을 때 우리에게 다른 해석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이 경기를 본 대다수의 사람들은 1라운드부터 5라운드까지를 원패턴(one-pattern)의 반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소넨이 실바를 넘어트리고 상위포지션을 점유한 뒤 파운딩을 계속해서 때렸다, 가 그것이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섬세한 분석은 아닙니다. 실제로 경기를 지켜보면 1라운드, 2-3라운드, 4-5라운드가 미묘하게 다릅니다. 그리고 저는 말할 것도 없이 이 중 세 번째 파트를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라운드가 앤더슨 실바에게 재앙과 같은 시간이었다는데는 어떠한 변명도 할 수 없습니다. UFC에 온 이후로 최초로 펀치를 맞고 두 다리가 풀리는 상황을 맞이했고, 그라운드에서도 제대로 된 방어조차도 하지 못한 채로 불리한 포지션에서 위력적인 파운딩을 받아내야만 했죠. 그 자신이 강한 내구력을 지녔고 순간적으로나마 데미지를 줄이는 데 익숙해져있다는 것, 소넨이 겉보기만큼 파운딩이 강한 선수가 아니라는 점(실제로 2007년 이후로 그는 단 한번도 KO/TKO 승리를 거둔 적이 없습니다-거기에 그는 팔굽파운딩을 거의 제대로 사용하지 못합니다) 등이 아니었다면 1라운드에 경기가 끝났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정도로요. 그러나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2라운드와 3라운드에서는 실바의 대응양상이 조금 달라집니다. 가장 주목해야 하는 점은 소넨을 가드 안쪽에 두는 데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백이나 하프, 마운트에서의 파운딩과 가드에서의 파운딩의 차이가 얼마나 큰 지는 말하지 않아도 되겠죠. 이 두 라운드에서 실바는 상대를 가드 안에 두고 쉬지 않고 파운딩을 내려꽂는 소넨의 움직임을 묶어두려고 노력합니다. 상대의 상체를 끌어안거나 팔을 붙잡는 식의 방어로 말이죠.
정말로 중요한 4라운드부터는 실바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라운드까지만 해도 소넨은 최소한 한쪽 다리를 무릎꿇고 상체를 세운 상태에서-다시 말해 허리, 어깨힘을 사용하면서- 파운딩을 때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4라운드부터는 점차 앉은 채로 상체만으로 공격하기 시작하죠(앤더슨 실바는 2,3라운드부터 계속해서 상대가 이 자세를 취하도록 노력하고요). 이때부터 실바의 플레이가 변하기 시작하는데, 다른 무엇보다도 가드상태에서 탑포지션을 잡은 상대의 안면부에 공격을 가하는 횟수가 매우 빈번히 늘어납니다. 3라운드까지 실바가 소넨에게 보인 공격적인 면모는 가드를 잡고 있는 평범한 선수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4라운드에서부터 실바의 공격시도는 눈에 띄게 늘어나며, 4라운드 중반 이후부터는 심지어 소넨이 받는 데미지가 더 큰 것 같은 느낌마저 줄 정도입니다. 실제로 눈 근처에 출혈이 꽤 크게 나면서 라운드 종료할 때 얼굴을 보면 <배트맨>의 로빈이 쓴 가면마냥 피가 얼굴을 덮고 있죠.
앞서 5라운드의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언급했지만, 사실 앤더슨 실바의 가드플레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가 누운 상태에서 팔굽을 굉장히 잘 사용하는 선수라는 데 있습니다. 그가 누운 상태에서 탑포지션의 상대를 공격하는 상황은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상대가 서 있는 상태에서 가드로 들어오려고 할 때 업킥을 굉장히 날카롭게 쓸 수 있으며(오카미에게 반칙패할 때 봐도 실바의 업킥은 강력합니다), 일단 가드 안쪽으로 들어와서 고개를 들고 있는 상대에게는 펀치를 넣습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그리고 그의 가드플레이와 주로 직결되는 요소는 상대가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팔굽을 넣는다는 점입니다. 여타 다른 선수들과 대치할 때도 벌어지는 일이지만, 그는 상대의 목과 어깨를 제압하고 머리를 그의 가슴팍에 기대도록 당기는 일을 굉장히 잘합니다. 그리고 일단 상대가 거기에 어느 정도 고정이 되면 그때부터 상대의 관자놀이 및 이마, 눈가쪽을 향해 팔굽을 굉장히 날카롭게 휘둘러댑니다. 과거 Pride FC와 비교할 때 UFC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팔굽타격의 허용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팔굽은 탑포지션에 있는 선수들이 가드자세에서 교착상태를 만들고자 하는 상대를 갉아먹는 용도로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매트에 등을 대고 있는 사람이 상위포지션에 있는 사람에게 팔굽으로 실질적인 데미지를 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됩니다. 앤더슨 실바는 바로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해 그라운드 게임에서 아래에 있는 선수가 위에 있는 선수에게 유효한 데미지를 주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펀치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사실 몸의 요소요소가 다 동원되는데, 누워있는데다가 깔려있기까지 한 사람이 신체를 움직이는 건 매우 어렵죠. 하지만 사람의 몸에는 굳이 근육을 많이 동원하지 않고도 상대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부분이 몇몇 군데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무릎과 팔꿈치죠. UFC룰 하에서는 무릎을 많이 쓰기가 어렵습니다(이점에서 맷 세라와의 2차전에서 GSP가 엎드려있는 세라의 몸통에 계속해서 무릎으로 공격해내어 탭을 받은 것은 시대를 앞선 느낌이 있습니다). 4점 포지션의 제약도 심하고, 결정적으로 사이드나 백 사이드(엎드린 상대의 측면을)를 점유하지 않는 이상 통상의 가드포지션에서는 쓰지 못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팔꿈치는 다릅니다. 교착상태에서 얼마든지 묵직한 데미지를 줄 수 있으며, 결정적으로 무릎보다 훨씬 피부를 잘 베어냅니다. 지금까지는 팔꿈치의 이와 같은 효과를 주로 사용하는 선수들은 상위포지션을 점유하는 강력한 레슬러들이었습니다. Pride FC에서 상대의 팔을 묶어두는데 집중했던 가드플레이어들은 UFC에서 당할 수밖에 없었죠. 결과적으로 현재는 가드플레이를 최대한 빨리 벗어나는 게 일반적인 양상입니다-심지어 주짓떼로들까지도요.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전신을 움직이지 않고 작은 궤도만으로도 상대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는 무기는 하위포지션을 점유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유용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깨닫고 거의 최초로 유의미하게 사용하기 시작한 선수들 중 하나로 앤더슨 실바를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5라운드의 탁월한 라이트는 사실 4라운드부터 끊임없이 지속되었던 가드포지션에서의 타격의 연장선인 것입니다(한국에서 이와 같은 플레이를 먼저 보여준 선수는 카네하라 마사노리와 싸웠던 정찬성 선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대를 가드에 묶어놓고 긴 상체와 긴 팔다리의 이점을 이용해 가드에서 탑에 있는 상대에게 더 많은 데미지를 줄 수 있었죠. 만약 센고쿠에서 팔굽이 가능했다면 그 경기의 결과는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3. 천재, 혹은 새로운 패러다임
분명히 말해두어야 할 사실은 앤더슨 실바의 이와 같은 플레이-하위 포지션에서의 타격-는 단순히 궁지에 몰린 끝의 발악에서 비롯된 게 아니며 오히려 과거로부터 매우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차엘 소넨 전을 제외하고 UFC의 앤더슨 실바에게 최대한의 위협을 주었던 선수인 트래비스 루터와의 경기(UFC 67)를 봅시다. 대략적으로 정리하면 1라운드에 루터에게 마운트까지 내주었던 실바가 2라운드에 삼각을 잡고 역전승합니다. 직접 보면, 1라운드에서부터 실바는(비록 가드에 상대를 가두었던 시간이 짧지만) 이미 루터에게 펀치와 팔굽으로 공격을 시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연히 등을 대고 누운 상태에서요. 2라운드에서는 상대가 삼각조르기 그립에 걸린 상태에서 걸린 팔을 바깥쪽으로 빼내어 목을 압박당하지 않게 버티게 되자 조르기 그립을 완성시키는 대신 직접 두부를 팔굽으로 가격합니다. 팔굽 공격이 계속되자 루터는 버티지 못하고 탭하면서 경기가 종료되지요(셔독에도 팔꿈치에 의한 서브미션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게 아니라, 루터가 애초에 왜 삼각에 걸리게 되었는지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실바가 등을 대고 누워있는 상태에서 서 있던 루터가 가드로 들어가려는 순간 실바는 격렬하게 두 다리로 저항합니다-업킥으로 루터의 머리를 노립니다. 그 순간에 루터가 당황한 상태에서 머리와 한 팔이 실바의 두 허벅지 사이로 들어가게 되었고 실바는 곧바로 삼각조르기그립을 잡아냅니다.
네이트 마쿼트(UFC 73)와의 경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테익다운을 당한 상태에서 하프가드까지 빼앗기자 실바는 곧바로 팔굽으로 마쿼트의 비어있는 몸통을 내려찍습니다. 상대가 밀착하면서 사이드에 가까운 자세가 되자 왼쪽 팔굽으로 측두부를 찍어내고요. 이어 포지션을 유지하려는 마쿼트의 허벅지를 팔굽으로 찍은 뒤 곧바로 가드자세를 회복하죠. 이후 마쿼트와 실바는 치열한 포지션 싸움을 벌이는데, 실바의 기본적인 전술이 양팔로 상대의 목을 붙잡고 밀착시키는 자세임을 유의합시다. 이것만 보면 단순히 가드자세에서의 상식이지만, 여기서 상대가 억지로 고개를 들면 곧바로 펀치로 때립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고개를 들고 뽑으려던 마쿼트는 나중에는 자발적으로 고개를 숙이게 되죠. 상대가 아예 몸을 일으켜 세우면 두 발로 밀어내고, 이노키-알리 포지션이 되면 업킥을 뿌려댑니다(마쿼트도 한 방 맞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는 상황에서 마쿼트는 루터 또한 그랬듯 상위포지션을 점유하고도 거의 제대로 된 공격을 하지 못합니다. 심판 존 매카시가 교착상태에서 일으켜 세워서 그라운드가 끝나지만 그렇지 않았다도 해도 우리는 마쿼트가 곤혹스러워하는 장면들을 충분히 볼 수 있었을 겁니다. (이러한 상황의 거의 유일한 예외가 댄 헨더슨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때는 실바가 애초에 가드포지션 자체를 잡지 못한 상태에서 단지 헨더슨의 상체움직임을 묶어놓는데만 주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결론적으로는 큰 데미지를 안 받았죠).
여기까지의 이야기로도 우리는 앤더슨 실바가 MMA에서 하나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주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의 주전장은 여전히 서 있는 상태에서의 타격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등을 맞댄 상태에서도 굉장히 위협적입니다. 단순히 가드가 좋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전에 MMA 가드플레이의 대명사가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였다면, 서브미션 방어기술이 평균적으로 좋아진 뒤로 그마저 탑을 점유하는 플레이를 선호하게 되면서 사실상 MMA 가드플레이는 기피대상이 되었습니다(베우덤은 예외로 합시다). 그러나 바로 그 호드리고 노게이라에게서 가드플레이를 배운 앤더슨 실바가 지금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자신의 스승보다 훨씬 더 무서운 MMA 가드플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호드리고가 파운딩을 허용하더라도 상대를 얽어매다가 결국 관절기를 걸어내고야 마는 스타일이었다면, 실바는 상대의 상체컨트롤을 하면서 펀치와 팔꿈치로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데미지를 주고 경우에 따라서 그러한 상황에 당황한 상대에게 관절기를 시도합니다. 저는 실바가 단순히 루터와 소넨에게 항복을 받아냈기 때문에 이 점을 주목해야한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MMA의 정신에 가깝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MMA에 오면 입식격투기와 레슬링, 주짓수가 조금씩 다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MMA는 단순히 세 영역의 합으로 환원될 수 없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진보를 이끌어내는 동력은 바로 MMA라는 하나의 큰 덩어리로부터 세 영역으로 나뉘어지지 않는 잔여(residue)를 찾아내는 데서 나옵니다. 단적으로 오로지 MMA에서만 가능한 영역을 생각해봅시다. 그라운드 상태에서 타격을 할 수 있다는 개념을 도입한 파운딩, 클린치 교착 상태에서 타격을 할 수 있다는 개념을 도입한 더티 복싱이 있습니다. 효도르가 앞으로 MMA 역사상에서 잊혀지지 않는다면 바로 파운딩의 무서움을 모든 종합격투가들에게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며(정작 그는 호드리고 노게이라와의 경기 이후 파운딩을 거의 사용하지 않음에도), 랜디 커투어와 팀 퀘스트 출신 선수들이 기억되어야 한다면 그들이 클린치 상태에서 상대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종류의 진보에 비견한다면 GSP는, 비록 선수로서의 강함은 MMA 사상 손꼽힐 정도의 강자임에도 불구하고, 한 종목의 가능성을 후퇴-정체시키는 선수이지 전진시키는 선수가 아닙니다. 그래서 그는 완성형 격투가(complete fighter)일지는 몰라도 '천재'는 될 수 없습니다. 천재가 사람들이 그어놓은 선과 규정 자체를 새로이 수정하는 이라는 정의에 따르면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점에서 앤더슨 실바야말로 현재 MMA의 흐름에서 또 한 명의 천재로 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존 존스나 마치다, 심지어 B. J. 펜도 이 점에서는 아직 보여준 게 없습니다). 타격능력이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남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MMA에서의 가드플레이의 새로운 지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4. 진정한 MMA의 정신
아직은 사람들이 그가 몸소 보여주고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해하고 있지 못합니다. 물론 실제로 실바와 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가 흔한 건 아닙니다. 좋은 신체조건이 있어야하고, 강한 힘과 체력을 가져야하며, 서브미션캐치와 타격점을 맞추는 일에 뛰어난 재능을 가져야합니다. 그러나 신체적 제약조건은 GSP, 소넨같은 인물로 대표되는 강한 레슬링+쉼없는 파운딩의 조합(제가 '신고전적'이라고 부르는)에도 따르고, 모든 플레이스타일에 나름의 제약은 있는 법입니다. 중요한 것은 실바의 플레이가 새로운 방향으로의 가능성 그 자체를 품고 있다는 사실이죠. 아래에 깔린 상태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언제나 불리합니다. MMA의 시작은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을, 아래에 깔린 사람이 위에 있는 사람을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서브미션방어가 일반화되고 팔굽파운딩을 비롯한 기술적 진보가 곁들여지면서 그동안 MMA의 궤적은 큰 사람이 작은 사람을, 위에 있는 사람이 아래에 있는 사람을 더욱 확실히 제압하는 방향으로 흘러왔습니다. 최근에 유행인 아래에 깔렸을 때 재빠르게 탈출하는 기술은 사실 진정한 대응책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애초에 아래에 깔렸다는 것 자체가 상대가 자기보다 힘과 기술이 좋음을 의미하는데, 한번 탈출해서 일시적으로 타격을 노릴 기회를 잡아도 집요하게 테익다운을 노리는 상대에게는 두번 세번 넘어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룰에서는 많이 넘어트릴수록 점수가 좋기 때문에 레슬링이 좋은 선수가 필승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레슬링 싸움이 되면, 기술적인 측면의 차이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힘싸움에서 결판이 나 버리죠. 적어도 현재의 MMA에서는요.
지금 UFC의 번창과 별개로 MMA가 동력을 잃고 있다면, 단순히 프라이드에서는 이벤트와 줄거리, 포장기술이 있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자체가 불확실성이 매우 큰 세계였기 때문입니다. 누가 이기고 말고의 불확실성이 아닌 경기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의 불확실성 말입니다. Pride FC의 전성기는 정확히 MMA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합니다. 레슬링 밖에 할 줄 모르는 마크 콜먼을 호드리고가 펀치와 가드에서의 서브미션으로 제압하고, 크로캅이 태클을 막아내면서 타격으로 쓰러트렸습니다. 그리고 그 둘을 쓰러트린 효도르는 최초로 '올라운드'라는 경지가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고유명사를 빼고 말하자면, 그 몇 년 사이에 MMA의 패러다임 자체가 최소 두 차례나 요동친 셈입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후 UFC가 시장의 주도권을 잡은 이후에 그에 비견될만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없었습니다. 모든 분야를 잘하는 선수들이 점점 늘어나게 되었는데, 이는 효도르가 세워놓은 패러다임 위에서의 양적인 성장일 뿐 질적으로 새로운 모습은 아닙니다. 물론 이는 UFC에 특별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Pride FC도 더 많은 시간을 지배적인 단체로서 군림했다면 비슷한 궤도를 겪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 철장과 룰의 특이점과 맞물려 현재의 UFC는 웰라운더들끼리 누가누가 레슬링을 더 잘하나를 보여주는 시합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다른 투기종목들과 마찬가지로 MMA의 패러다임도 언제까지나 바뀔 수는 없는 거니까, 어찌보면 필연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경기가 점차 몇 가지 패턴으로 수렴되면서 재미없어지는 현황도 필연입니다.
따라서 앤더슨 실바가 보여주고 있는 가능성은 매우 소중하고 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흐름 안에서 스펙경쟁이 되어버릴 위험이 있는 현재의 MMA세계에서 '다른' 무언가를 꺼낼 수 있기 때문이죠. 사실 그를 진정한 MMA 정신의 구현자라고 부른다면, 이는 단순히 그가 가드플레이에서의 타격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점에서 맨 처음에 인용한 존 존스의 인터뷰는 정확히 찌르는 데가 있습니다. "상대를 건드릴 수 있는 모든 기회마다 그는 상대를 건드리는 것 같다." 실제로 실바는 매우 강력한 파운딩을 때리는 선수이기도 합니다. 네이트 마쿼트가 정신을 잃은 것도, 제임스 어빈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은 것도 그들이 누워있는 상태에서 실바의 파운딩을 맞은 직후임을 상기해봅시다. 심지어 판정으로 흘렀던 탈레스 레이테스와의 경기에서도 순간적으로나마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누워있는 레이테스에게 실바가 기습적으로 파운딩을 적중시키는데, 레이테스는 심각한 타격을 입고 웅크리는 것 이외의 저항을 하지 못합니다. 만약 그 자리에서 실바가 태업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무난하게 KO승을 추가하면서 자신이 파운딩에서도 일급임을 보여주었겠죠. 그러나 위와 같은 예시에서 실바의 파운딩이 모두 통상적인 의미의 파운딩이 아니었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고전적으로 상대를 넘어트리고 상위포지션을 유지한 뒤 가드 안/밖에서 자세를 잡고 때린 게 아닙니다. 앤더슨 실바가 진짜로 무서운 순간은 포지션이 전환되는 순간입니다. 예컨대 마쿼트는 실바와 테익다운 싸움에서 등을 대자마자 곧바로 날아온 파운딩을 맞고 쓰러졌으며, 어빈은 킥 캐치후 카운터를 맞고 쓰러진 상태에서-이때까지는 의식이 있었습니다-가드를 잡기도 전에 펀치를 맞고 의식을 잃었습니다. 레이테스의 경우에도 그렇고요. 헨더슨의 경우도 기습적으로 백을 잡자마자 파운딩을 넣었죠(탭은 초크에 했지만, 사실 경기를 끝낸 것은 뒤에서의 파운딩입니다). 오히려 실바는 상대가 가드포지션을 잡고 제대로 저항하고 있을 때는 파운딩 시도조차도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타이밍은 포지션이 전환되는 순간, 상대가 자세를 잡기 전이죠. 이 점에서 그는 문자 그대로 "상대를 건드릴 수 있는 모든 기회"를 활용하는데, 그가 MMA의 진정한 정신이라고 불릴 수 있는 까닭은 앤더슨 실바에게 있어서 '기회'란 MMA에서밖에 나올 수 없는 상황, 즉 입식타격-클린치-그라운드 간의 장면 전환까지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즉 그는 다른 어떤 선수보다도 MMA의 고유한 영역=잔여를 잘 포착해내는 선수인 거죠. 가드포지션에서의 타격도, 가드포지션에서의 타격이 별개로 있다기보다는 실바의 문자 그대로 '모든 기회'를 노리는 태도의 연장선에서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MMA적 타격가로서의 정신을, MMA의 정수를 구현하는 태도입니다. 그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는 선수일 수 있는 까닭은 역으로 그야말로 MMA의 본질을 가장 날카롭게 꿰뚫고 있기 때문이죠-가장 본질적인 것이야말로 가장 새롭습니다. UFC 117 실바VS.소넨 전은 이 점에서 앞으로도 기억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