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여장하거나 남장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질과 자궁과 여성형 유방을 갖고 있지만 매일 여장하며 살고 있습니다. 교복 치마는 제 여장의 시작이자 끝이었어요. 학교에서 교복 바지를 여학생이 입을 수 없게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입었지만 그건 다른 의미로 저를 꾸미는 행위였죠. 물론 치마랑 높은 목소리가 왜 여성의 것이라 생각하느냐 물으실 수도 있지만 이건 어떤 언어나 기호같은 거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여기기 때문이라고밖엔 변명의 여지가 없네요. 여하간 실제로 존재하는지 여부조차 알 수 없는 제 여성성을 과장하며 살았던 건 사실이잖아요.
제가 여장하지 않아도 되는 날을 상상합니다. 헐렁한 바지와 편한 옷 그리고 원하는 짧은 투블럭 컷. 조금 남성스러운 여자같아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키가 크지 않거든요. 여자의 얼굴은 분명한 상이 있지만 남자의 얼굴은 구름에 가려진 듯 어떤 것이 남성적인 얼굴인지 애매한 탓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마 트랜지션을 한다고 해도 그렇게 멋있는 남자가 되긴 글렀어요. 이건 조금 억울합니다. 남성적이지 않은 동시에 여성스럽지 않은 미인상은 없으니까요. 저는 그러니까 트랜지션을 하더라도 '완전한' 남자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동시에 여성도 아니고요. 어쨌든 원본이 되는 어떤 남성상에 부합하지 않는 많은 남성들 중에서도 저는 더더욱 원본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인 거죠. 젠더가 뭔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가 두 개의 굳건한 젠더를 횡단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더 남성성과 여성성이 각기 얽힌 요소들을 뜯고 재조립한 다음 실천하고 싶어요.
뒷머리를 조금 더 잘랐을 뿐인데 남자냐 여자냐는 물음을 받고 몸 선이 드러나지 않은 옷을 입었을 뿐인데 여성 화장실에서 경계섞인 눈빛을 경험합니다. 사실 남성성은 별 것 아니니까요. 동시에 제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모호한 관념의 무언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끔은 그런 오해도 받아요. 혹시 레즈비언, 그러니까 부치가 아니냐고요.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어떠한 젠더를 횡단하고자 할 때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고요. 다시 말하자면 여성을 사랑하는 속성은 남성이 가지는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에(요새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요.) 레즈비언은 젠더를 횡단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젠더와 섹슈얼리티는 그렇게 쉽게 이분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여성을 사랑하지 않고 남성을 사랑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저의 젠더를 남성에 가깝거나 그와 유사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특정 성 관념이 개인에게 고통을 준다면 그 '반대'의 성별이 되기를 간절하게 바라게 되는 것일까요? 대부분의 여자들은 남성으로 성별 재지정 수술을 받지 않습니다. 역시 잘 모르겠어요. 젠더화된 사회에서 젠더화되기를 거부, 불순응하거나 혹은 역순응하는 이유는 계속해서 절대 무너뜨릴 수 없을 것만 같은 사회의 안전한 일원이 되길 강제적으로 요구받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런 요구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저항해야 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고 트랜스젠더라는 개념조차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겠지요. 정답은 아닐 겁니다. 다만 저는 사회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계속해서 트랜스젠더라는 이름표를 달고 다녀야 하겠지요.
저는 스스로 남자에 가까운 존재라고 생각합니다만 저를 제외한 대부분 제가 만나온 많은 남자들의 경우엔 남성성을 잃는(그 남성성이 뭔지 그 자신도 명료하게 설명하지는 못하덥디다.) 것 자체에 대한 공포가 너무나도 강한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미 남성상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존재라 그런 것 쯤이야 견딜만 하지만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남성성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것들을 누리고 살았겠나요. 그렇기 때문에 남성성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바람으론 남성이 아니기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더 이상 그 남장이 필요없는, 남장으로부터 어떤 권력도 누릴 수 없는 사회라면 더 좋겠지만 제가 살아 있을 동안은 요원한 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들 또한 날 때부터 남성성의 상실을 두려워하지는 않았을 거란 말이죠.
여자는 무엇이고 남자는 무엇일까요. 애초에 그런 것이 없었다면 제가 트랜스젠더로 불릴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이미 여자랑 남자라는 관념은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두 가지 틀에 끼워맞춰 고통스럽게 하거나 특정 성별을 혐오의 대상상으로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정당한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원하는 모습이 스스로 되길 바라는 동시에 저는 많은 규율들과 그를 따르지 않았을 때의 처벌이 두렵습니다. 그래서 매일 여장하며 살고 있습니다. 또한 제가 아는 많은 여자들도 여장하며 살고 있습니다. 남자들도 또한 마찬가지로 남장하며 살아가고요. 그들에게 묻고 싶어요. 그 모습은 역시 사회가 당신에게 요구하기 때문에 만들어내고 가꾸어가는 모습이 아니냐고요. 그리고 그에 저항하는 트랜스젠더라는 개념이 본인과 그리 멀리 떨어진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모습과 트랜스젠더인 저의 모습은 얼마나 다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