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지배구조 평가에 대한 논란
증권선물거래소(KRX)가 매년 실시하고 있는 기업지배구조 등급평가에 대한 적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상장법인 지배구조 등급평가는 KRX가 기업지배구조개선제원센터(CGS)를 통해 매년 실시하고 있습니다.
CGS는 지난 2002년 설립된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KRX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기업지배구조를 전문적으로 조사·연구하는 기관입니다. CGS는 매년 KRX 상장기업들을 대상으로 공시자료와 언론기사 등을 참고해 지배구조를 평가한 후 개별기업마다 등급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지배구조등급은 ‘최우량(Excellent)’에서부터 ‘매우 취약(Very Weak)’까지 총 8단계로 구성돼 있습니다. 등급평가 결과는 지배구조 우수기업 선정과 표창, 주식시장 기업지배구조지수(KOGI) 구성 등에 활용됩니다. KOGI는 지배구조 평가점수가 우수한 기업 50개 종목으로 구성되며 KRX는 매년 7월 구성종목을 정기적으로 변경합니다.
문제는 CGS의 기업지배구조 등급평가결과가 전체적으로 공개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CGS는 전체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지배구조등급을 매기지만 발표는 우수기업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2005년의 경우 최우량에서 보통까지 상위 6개 등급에 해당하는 75개 상장법인의 지배구조등급을 발표했습니다. 전체 529개 평가기업 중 14%에 불과한 수준입니다. 게다가 발표를 원하지 않는 기업들은 발표명단에서 제외됩니다.
이에 따라 CGS의 지배구조 등급평가가 반쪽짜리라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투자자들에게는 지배구조우수기업보다는 취약기업에 대한 정보가 더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평가입니다. CGS 스스로가 지배구조 등급공표의 목적이라고 밝힌 ‘자발적인 지배구조 개선노력을 통해 투명한 경영환경 조성을 유도한다’는 취지와도 부합되지 않습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상장기업의 지배구조개선을 목적으로 지배구조등급을 평가하면서 전체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우수기업만 발표하는 것은 잘 이해가 안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CGS 측은 “부정적인 평가결과가 발표될 경우 부정적인 이미지는 물론 기업활동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해당 기업은 물론 재계가 전체 등급 공개에 반대하고 있으며 아직 공신력이 부족한 비영리 사단법인이어서 법률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다만 “지배구조 등급 발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인정하며 단계적으로 등급발표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CGS의 평가에 따르면 상장기업의 지배구조는 취약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05년 529개 상장법인의 지배구조 평균점수는 100점 만점에 40점에 불과했습니다. 그나마 2004년 38.68점에 비해서는 나아진 수준입니다.
기업지배구조 등급평가 기준 자체에 대한 반론도 논란도 만만치 않습니다. CGS는선진 각국의 모범규준과 각계 전문가 의견을 참조해 우리나라 기업에 가장 적합한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Best Practice)’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지배구조평가기준은 주주권리 보호와 이사회 구성, 공시, 감사기구, 경영의 과실배분 등입니다. 가령 집중투표제 도입 여부나 사외이사 선임비율, 감사위원회 설치 여부 등이 평가잣대가 됩니다.
하지만 지배구조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수익성이 취약하거나 부실기업이 우수지배구조기업으로 선정돼 지배구조지수 구성종목에 편입된 사례가 종종 있었습니다. 또 대기업 위주로 기준을 마련하다 보니 중소 벤처기업들에게는 기준이 너무 높아 비현실적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자산규모가 클수록 기업지배구조 점수도 높게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2004년과 2005년의 경우 ‘초우량’ 등급을 받은 기업은 없었으며 ‘우량+’와 ‘우량’ 등급을 받은 기업들의 경우 KT&G와 KT, POSCO 등 민영화된 공기업이나 특정 대주주가 없는 은행권이 대다수를 차지했습니다.
자연스럽게 기업지배구조지수(KOGI)의 효용성에 대한 의문점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평가기준의 객관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공신력이 높지 않아 투자자들의 매매에 별다른 변수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KOGI 도입 당시 이를 추종하는 펀드가 일부 나왔지만 현재는 하나도 없습니다.
거래소 측은 “KOGI의 경우 애초 상품용 목적이 강하지 않았다”면서 “지배구조 우수기업들의 주가동향을 비교하고 참조하는데 주로 활용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좋은 지배구조와 나쁜 지배구조를 구분하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원론적인 지적도 있습니다. 한국적인 경제여건과 기업문화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주주권리 보호와 이사회 구성 등의 잣대들이 지나치게 주주자본주의에 기초한 미국식 글로벌 스탠더드를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SK㈜에 이어 KT&G가 외국계 펀드나 투기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면서 이 같은 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습니다. 특히 KT&G의 경우 칼 아이칸의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가 있기 전까지 3년 연속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지배구조를 가진 기업으로 꼽혀 과연 좋은 지배구조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낳고 있습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좋은 지배구조는 정부나 거래소가 강제할 사항이 아니며 이것이 KOGI가 주식시장에서 크게 어필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라고 지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