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장 문을 나서야 하는데 몇 사람이 물 받는 곳에서 웅성거리며 물을 받고 있으니 나갈 수 없어 안절부절 못한다.
세탁한 수건을 보일러실에 말리고 또 건조기에서 돌아가고 있는데 넘치는 수건을 빨리 빨아 대야 한다.
견디고 견데 왔는데, 이젠 어쩔 수 없다.
미쳐 보일러가 물을 데워 내지를 못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늦게 오는 손님은 돌려보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직 결단을 못 내리고 있는 상태다.
새벽 6시, 개장 전부터 승용차와 승합차가 미리 도착해서 대기 중이었다.
보일러 온도는 80도까지 끌어올린 상태, 새벽 세 시 반부터 온도를 올려 불을 때기 시작하였으니 순조로운 시작이다.
보통 때 일요일 보다 시작이 좋다.
휘파람 소리가 절로 난다.
밀려들기 시작한 손님들이 오전에 이미 식당 주차장까지 메우고, 길가에 주차된 지 오래다.
샤워기 앞에 서너 명씩 늘어서 차례를 기다린다는 전갈이다.
보일러는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오후 한시가 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보일러실 온도가 육십 도로 떨어지더니 눈금이 회복할 기미가 없다.
오후 세 시가 되면서 오십 도로 떨어지는 것이다.
사용량과 공급의 균형이 허물어 진지 벌써 오래다.
열탕 온도가 온탕 온도로 곤두박질.
온수를 공급해도 회복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사람은 계속해서 들어온다.
보일러실과 세탁장은 마주 보고 있기에 두 곳만 계속 왔다 갔다 해도 이미 내 다리는 지쳐있다.
금 년 들어 처음 당하는 일이다.
“물 좋아 소문을 듣고 왔더니 물이 차서 감기 걸리겠다, 젠장.”
사실 따듯한 물이 조금만 덜 뜨거워도 사용자는 차다고 한다.
“사장 잘 아는데 오늘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네, 한소리 해 주고 가야겠는데.”
이러니 세탁실 안에서 나가기가 망설여 질 수밖에.
뻔한 이야기에 고개를 조아려야하니 이 비겁한 별장지기가 오금이 저릴 수밖에.
걸리면 일장 연설에 “또 오나 봐라.” 이렇게 겁을 줄 것이 뻔한 일.
그 손님들 물 받아 떠나고 난 후에야 비실비실 세탁물이 든 바구니를 들고 낑낑거리며 보일러실에 널어놓고 오는데 또 몇 사람이 물을 받느라 모여 있다.
“이 물이 위장에 그렇게 좋다는 물이 맞소?”
“예,”
될 수 있으면 짧게 말하고 자리를 피하려는 내 속셈을 알았는지.
“당신이 사장이요?”
“아니요, 일하는 사람입니다.”
“사장이면 한소리 하려 했는데 일하는 사람이라니 할 말 없네.”
갑자기 들이닥친 많은 사람들 때문에 미쳐 보일러가 감당을 못한 것이다.
“사장님, 남탕에 반란 났어요.”
헐레벌떡 뛰어 온 남탕 아르바이트생 얼굴빛이 하얗다.
“열탕에 물을 아무리 넣어도 사 십도 밖에 안 나오니 물 뜨겁게 해주라고 난립니다, 나 집에 갈래요, 무서워서 안에 못 들어가겠어요.”
샤워기와 열탕에 물을 쏟아 부으니 계속 불을 때도 온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목욕탕 크기에 비례해서 적정 인원이 들어와야 원활하게 돌아갈 것을 생각해 야단스럽게 광고하지 않고 적당한 범위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점진적으로 늘어나는 손님들을 유치하며 쾌적한 상태로 온천욕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온천을 갔을 때, 그 입장이 되어 항시 생각하며 손님을 대해 왔었다.
이런 낭패가 어디 있는가?
카운터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여탕 아줌마가 손님들과 설전이다.
“여기 사장 어디 있어?”
“여긴 지금 종업원들밖에 없어요, 왜요, 사장님 만나시면 뭐라 하시려고요?”
“손님을 적당히 받아야지 어디 움직일 자리가 있어야지, 또 탕은 차고, 이거 물 좋다고 해서 왔더니 돈 독에 올랐구먼, 이 집 사장 말이야.”
여탕 아줌마가 나를 쳐다보며 넉살 좋게 웃는다.
“다른 사람들은 좋다고만 하시는데 손님께서 늦게 오셔서 그래요, 커피라도 한 잔 하시고 모처럼 이 집 장사 잘 되니 좋겠다, 생각해 주세요.”
능청스럽게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내민다.
“커피 안 마셔.”
팩, 돌아서며 화를 내는 손님과 눈이 마주친 나는 빙그레 웃을 수밖에 없었다.
같이 온 일행이 화가 난 손님을 툭툭 치며,
“자네 덕에 내가 마심세.”
넙죽 받아 든다, 아줌마가 또 얼른 커피를 뽑아 또 권하며 생글거린다.
“이렇게 화가 나신 손님이 계시는데 사장님 계시면 머리칼을 다 뽑아 놓을 텐데 안 계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아예 나서지 마라는 암시다, 오늘 같은 날 안에서 돈을 벌 생각은 않고 못마땅해 하는 손님들 마음 누그러뜨리는데 전념을 한다.
몇 되지 않는 식구들의 마음이다.
슬그머니 돌아서 보일러실로 들어온 나는 온도계의 눈금을 보는 순간 발을 동동 구르고 싶다.
“나야, 지금부터 들어오시는 손님은 받지 마, 온도가 더 떨어지면 샤워기에서도 미지근한 물밖에 나오지 않을 것이니 지금 안에 계시는 분들이라도 제대로 목욕하시게 손님 더 받지 마. 알았어?”
“예, 손님이 계속 들어오시는데 어떻게 해요?”
“차라리 돌려보내고 욕먹는 것이 낳지, 들여보내서 다른 사람들까지 찬물 세래 주는 것보다 더 나아, 알았나?”
결국, 오후 네 시부터 손님을 돌려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가까운 초정약수나, 미원에 선녀 탕으로 가시라고 해.”
“물 보고 왔다고 그래도 들어가신다 하는데요.”
“사우나는 높이 올려놓았으니 고집 피우는 사람은 할 수 없이 설명하고 받든지.”
결국, 몇 사람이 사장을 찾는데 비겁하게도 일하는 사람이라며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 백배 사죄하며 꼬리 뺀 별장지기, 비겁해서 오늘 밤 한 잔 먹으며 반성하려합니다.
특히 아이들 아토스 피부병, 백선, 암 환자들, 사고 후유증 때문에 오신 분들이 많은데 오늘 정말 마음 아픈 날입니다.
외용과 내용을 같이하시는 분들 중에서 그냥 가신 분이 혹 계실까 그게 제일 마음에 걸린답니다.
“제가 사장입니다.” 하고 욕을 실컷 먹었으면 오히려 마음이 편했을 것인데 무거운 마음이 술을 찾게 합니다.
비겁한 놈 별장지기 맞지요?
그래도 보일러 기술진을 불러들여 손님이 더 올 것을 대비해 비상대책을 세워야겠습니다.
또 돈 들어갈 일이 생긴 것이다.
왕소금 별장지기, 큰일났습니다.
(종업원들이 절 보고 왕소금이라 한답니다, 저를 위해서만 돈을 쓰지 않는데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