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없는 세계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인간의 역사와 함께 출발한 음악은 오랜 기간 흘러오면서 끊임없이 변천되었다.
지금까지 음악예술의 형태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거나 새롭게 창조되어 왔다. 서양 음악사와 한국 음악사를 통틀어 새로운 형태의
음악이 태동하게 된 시금석이 됐던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순위별로 알아보았다
한 시대의 황혼으로부터 다음 시대의 여명으로 인도
선사시대에 전쟁의 외침이나 사냥의 신호소리, 혹은 집단 노동의 율동 등과 같은 원시적 형태에서 출발한 음악은 오랜 기간 지내오면서 끊임없이 변천되었다. 이는 바흐의 말에 따르면, 시대가 흐름에 따라 음악의 상황 또한 전과 상당히 달라지기 때문에 음악은 끊임없이 변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의 기호가 놀라울 만큼 변해가고, 따라서 이전의 양식으로 씌어진 음악은 더 이상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줄 수 없었다. 그럼으로써 음악예술의 형태와 양식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거나 새롭게 창조되었는데, 일반적으로는 중세기의 폴리포니에서 르네상스 양식으로, 바로크 양식으로부터 고전주의로, 그리고 19세기 낭만주의 운동에서 20세기 신고전주의와 현대음악으로 옮겨갔다.
이러한 음악 예술의 발전은 혁신적인 작품 없이 일어난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대개 과거의 전통에서 탈피하여 독창적인 형태를 제시한 작품들이 새로운 양식을 주도해갔으며, 이는 곧 새로운 세기로의 전환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비록 이 ‘새로운’ 음악이 한 시대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데는 상당한 진통이 수반될지라도. 과거 5∼6세기 동안 수많은 작품들이 새로운 방향을 추구하며 한 시대의 황혼으로부터 다음 시대의 여명으로 이끌어갔던 것이다.
그러면 그 가운데 서양 음악사에 가장 큰 획을 그은 혁명적인 작품은 무엇일까? 과연 어떤 교향곡이 낭만주의 운동을 예고했으며, 또한 최초의 위대한 오페라는 어떤 작품을 꼽을 수 있는가. 최근 영국의 클래식 음악지 ‘클래식 CD’는 ‘가장 혁명적인 클래식 음악 작품 50’을 선정, 발표함으로써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모두 10인의 음악평론가들이 설문을 통해 그 영향력의 비중에 따라 순위별로 작품들을 선정했는데, 대부분 초연 당시에 음악 혁명을 초래했거나 혹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다른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끼침으로써 점진적으로 음악사에 변화를 가져온 작품들이 주목을 받았다. 예를 들면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초연 당시부터 마치 제1차 세계대전을 예언하는 듯한 엄청난 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음악계를 온통 뒤흔들어놓은 경우이다. 이 곡은 그야말로 음악사에 혁명을 불러일으킬 만한 거대한 힘을 지니고 있었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힘은 여전히 살아숨쉬고 있다. 이제, 영국의 권위있는 음악평론가들이 선택한 선구자적인 작품들을 순위별로 알아보고, 이들은 왜 이 작품들을 주목해야만 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자.
1. 스트라빈스키/봄의 제전(1913)
음악사에서 가장 유명한 폭동을 일으킨 무대는 단연 1913년 5월 29일 파리의 샹제리제 극장 무대이다. 이날 무대에는 ‘이교시대의 러시아의 정경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무용곡 ‘봄의 제전’이 초연될 예정이었다. 발레 안무는 슈퍼스타 니진스키가, 지휘는 피에르 몽퇴가 맡은 이 작품의 작곡가는 다름아닌 당시 가장 유명한 젊은 작곡가 중의 한 사람인 스트라빈스키였다.
드디어 막이 올랐다. 그러나 서주가 시작되자마자 당장에 객석은 비웃음이 터져나오고 이어 청중들은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져 야유와 환호성을 외쳐대는 바람에 극장 전체가 떠들썩해졌다. 음악은 거의 들을 수 없었다. 이에 분노한 스트라빈스키가 무대 뒤로 갔을 때 니진스키는 의자 위에 넋이 나간 듯 서 있었으며, 무용수들은 큰소리로 떠들어댔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그러나 이날 사건의 발단은 음악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소란의 주요 원인은 그 당시로서는 매우 자극적이고 획기적이었던 니진스키의 발레 안무 때문이었다. 다음해에 이 곡을 파리에서 피에르 몽퇴가 연주회용으로 초연했을 때 야유와 노호는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스트라빈스키는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를 받았던 것이다. 공연이 끝난 뒤 찬양자들은 스트라빈스키를 무등을 태우고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기도 했을 정도이다.
스트라빈스키의 리듬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은 전작인 ‘불새’나 ‘페트루슈카’에서 이미 입증된 바 있다. 그러나 그가 ‘봄에 제전’에서 보여준 격렬한 리듬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거의 본능적으로 찾아낸 스트라빈스키다운 복잡하고, 억세고, 불규칙적인 리듬이야말로 이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핵심이며, 그밖에 원초적인 힘을 시사하는 짓눌려 있는 멜로디, 복잡한 화음의 얽힘과 악기의 강렬한 음향 등은 음악사를 뒤흔드는 폭풍의 전조가 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2. 바그너/트리스탄과 이졸데(1865)
바그너가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작곡했을 당시만 해도 음악 혁명을 이끌어낼 의도는 전혀 없었다. 그가 이 곡을 위해 새롭게 찾아낸 음악 언어는 그때까지 음악이나 드라마에 결코 묘사해본 적이 없는 영혼의 상태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이 오페라의 주제는 죽음을 통해서만이 완성되는 사랑에 대한 갈망이었다. 바그너의 다른 유명한 오페라의 연인들과는 다르게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일이 실패로 끝나 죽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는 도저히 결합할 수 없는 사랑을 저승에서 이루기 위해 숨을 거둔 것이었다.
이러한 사랑의 갈망을 음악 속에 담기 위해 바그너는 처음부터 혁명적인 하모니를 구사했다. 전주곡의 첫 마디에서 이미 긴장된 분위기의 화음이 울려퍼지고, 첼로들이 등장하다가 현악기로 이어지는 첫번째 프레이즈는 긴 침묵 후에 반복된다. 예컨대 이 ‘트리스탄’이 서양 음악사 속에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하모니 때문이었다. 관현악적 색채들의 거대한 음역. 그리고 이 웅대한 오케스트라의 초자연적인 소리의 성격을 부여하는 풍부한 드라마적 요소들. 특히 오페라 전곡을 통해 반음계 화성으로 진행되는 유도동기(leitmotifs)의 사용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또한 이 작품에서 사용된 단순한 음계들도 혁명의 요소로 작용했다. 바그너는 감정의 흐름이 식지 않도록 거의 일정하게 연속되는 아리아들과 합창들을 발전시켰다. 바그너는 스스로를 셰익스피어의 후계자로 생각했다. 그래서 ‘끝없이 길고 연속적인 음계’를 구체화시켰는데, 특히 이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바그너의 선행된 어떤 작품보다도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어떠한 희곡보다도 촘촘하게 작곡되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표현되는 연인들의 내밀한 세계는 우리들을 압도하며 끊임없이 매혹시키고 있다.
3. 몬테베르디/오르페오(1607)
‘오르페오’는 1607년에 작곡된 5막 오페라이다. 초연에 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 작품에 영향을 준 것은 르네상스 시대에 왕이나 귀족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공연된 발레나 인테르메디어라는 것이다. 이들의 전통 위에 몬테베르디는 지하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트롬본까지 동원된 대규모의 오케스트라를 등장시켰다. 이러한 시도는 이전의 음악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다. 그럼으로써 ‘오르페오’는 17세기의 모든 오페라들 가운데 사람들을 가장 많이 흥분시켰으며, 그 어떤 작품도 ‘오르페오’를 결코 능가하지 못했다.
이 오페라는 이전 시대의 마드리갈에 의존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거의 혁명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만일 몬테베르디가 관습을 전복시킬 의향을 가지고 있었다면 발레와 파스토랄, 마드리갈에 바탕을 둔 합창 등은 배제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오르페오’가 전 시대의 작품들과 전적으로 같은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몬테베르디는 당대에 널리 알려진 음악 양식을 추구하는 동시에 다음 세대에 오는 수많은 오페라들의 양식을 예시해주었다. 또 감정적인 성격의 요소들도 이 곡에 참신함을 더한다. 이를테면 에우리디체의 죽음을 알리는 전령은 풍부한 표현력이 돋보이는 성악 라인과 단순한 반주를 지닌 새로운 모노디 양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따라서 그때까지 경험할 수 없었던 몬테베르디 특유의 풍부하고 다양한 감정의 표현력이야말로 ‘오르페오’가 페리의 초기작들과는 다르게 아직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인인 것이다.
4. 베토벤/교향곡 9번 ‘합창’(1824)
훌륭한 교향곡들은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이 작곡되기 이전에도 씌어졌고, 그 이후에도 계속 씌어졌다. 하지만 인습을 완전히 타파한 이 대단한 교향곡보다 더 위대한 교향곡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이 곡은 그 당시 진행 중인 모든 인습을 과감하게 깨뜨렸으며, 더욱이 고귀한 인간애를 품고 있는 이 곡의 위대성은 분명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규모만 보아도 이 곡은 충분히 혁명적이었다. 어떤 교향곡과 비교하면 거의 두 배는 큰 규모이다. 극적으로도 이전의 고전주의 작곡가들의 캔버스의 형태보다 더 확대되었다. 또한 교향곡의 음악적 재료들도 풍부해졌는데, 베토벤의 이러한 시도는 이후 슈베르트와 브루크너, 말러 등에게 차례로 영향을 끼쳤다.
4악장 피날레에서의 합창과 솔리스트들의 등장은 또 다른 천재적인 수완을 보여주는 것이다. 엄격한 교향곡 형식에서 들리는 인간의 목소리는 일찍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후에 젊은 바그너에게 하나의 계시처럼 다가온 이 목소리는 바그너의 걸작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와 ‘반지’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교향곡은 인간의 삶의 저변에 깔려 있는 근원적인 존재의 문제에 대해 직접적이고도 단호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최초의 교향곡이라는 점이다. 독창자와 합창, 관현악이 합세하는 피날레에는 ‘백만의 사람들이여, 서로 껴안으라!’라는 유명한 구절이 들어 있다. 이 합창 악장은 쉴러의 ‘환희의 송가’를 작곡한 것으로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형제가 되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그날을 소리 높여 예언하고 있다. 비록 이 메시지는 1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실현되지 못했다 할지라도 여전히 우리에게 희망과 영감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5. 베토벤/교향곡 3번 ‘영웅’(1803)
몇몇 평론가들은 1803년을 음악에서 낭만주의가 도래한 뜻깊은 해로 기록하고 있다. 그 해에 다름아닌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이 작곡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영웅’은 새로운 정신, 즉 개인의 강한 개성 등을 묘사하는 음악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베토벤은 ‘영웅’을 통해 교향곡 형식을 확대시켰다. 1악장의 불협화음에서부터 격렬함과 힘이 느껴지고, 피날레 또한 빠른 서주와 코다에서 경쾌한 변주가 진행되는 등 일찍이 교향곡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형식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물론, 모차르트의 ‘프라하’ 교향곡의 1악장은 ‘영웅’의 그것보다 더 길다. 또 베토벤과 마찬가지로 하이든 역시 종종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영웅’을 주목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피날레에 있다. ‘영웅’의 피날레는 베토벤이 우리에게 남긴 또 다른 천재적인 유산이다. 대개 작곡가들은 음악적으로나 표현적으로 피날레에 가장 많은 의미를 담는다. 우리는 이러한 예를 이미 모차르트의 ‘주피터’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훨씬 더 앞서간 ‘영웅’은 작곡가들에게 마지막 악장에 훨씬 더 많은 노력과 힘을 기울이기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6. 베토벤/후기 현악 4중주들(1823~26)
베토벤은 죽기 불과 몇 년 전에 다섯 곡의 위대한 현악 4중주곡을 작곡했다. 원래 이 작품들은 연주와 감상을 염두에 두고 작곡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베토벤은 음악적인 양식들을 소홀히 다루었을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매우 대담하게 발전시키기도 했다. 예를 들면 첫번째 곡인 Op.127은 4악장으로 구성되었지만 이전의 여느 현악 4중주들과는 다르게 규모가 크고, 청중들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중심에 거대한 변주 악장이 나타나는 Op.131, 원래 대담하게 ‘대 푸가’로 끝을 맺는 Op.130, 아마도 깊은 종교적 표현을 위해서 사용했을 법한 옛 그리스의 리디아 선법이 보이는 Op.132. 어느 곡 하나라도 혁명적이지 않거나 우리를 압도하지 않는 곡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이 곡들은 한동안 묻혀 있다가 바그너에 의해 명예를 회복했으며, 특히 20세기의 현악 4중주 작곡가들인 바르토크나 쇤베르크·티페트에게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7. 드뷔시/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1895)
20세기의 음악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아마도 드뷔시가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을 발표한 1895년일 것이다. 이처럼 이 곡이 우리에게 의미를 지니는 것은 작품의 완벽한 형식과 수법, 말라르메의 시를 환기시키는 절묘한 표현력이나 독특하고 초개인적인 소리세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드뷔시의 업적은 서양의 고전음악이 스스로 어떻게 진행될 수 있는지를 새롭게 자각시켜주는 데 있다.
이 곡은 음조 음악이다. 모든 것은 조성에 의해서 움직인다. 예를 들면 곡이 시작하면서 등장하는, 복잡하고 유동하는 플루트의 프레이즈들은 처음에는 독주로 연주된 다음 반복되고, 이어 오케스트라의 현악기들이 D장조로 반주된다. 그런 다음 즉시 반복되고 이번에는 E장조로 반주하는 식이다. 이러한 연속성이 작품에 놀라운 분위기와 짜임새의 통일성을 부여하는데, 이것이야말로 매너리즘이라고 할 정도까지 이른 드뷔시의 특성이다. 마디 줄을 넘어서 연속적 흐름으로 흐르는 느슨한 리듬이나 악센트를 약하게 만들거나 생략함으로써 드뷔시는 인상파 음악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꿈처럼 흐르는 유동성을 이룩한 것이다. 젊은 드뷔시는 질식할 것 같은 학구적인 전통의 인습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음악을 꿈꾸었으며, 결국 그는 이 ‘전주곡’을 통해 오랜 꿈을 실현할 수 있었다.
8. 드뷔시/펠레아스와 멜리장드(1902)
샤브리에나 쇼송·랄로와 같은 프랑스 오페라 작곡가 세대는 프랑스의 관능성과 독일의 서사성을 불안정하게 조화시킨 바그너의 그늘에 가려 빛을 잃었다. 1888∼89년에 바이로이트를 순례한 드뷔시 또한 처음에 바그너의 마력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곧 그는 바그너의 악극 표현과는 다른 형식을 탐구하면서 바그너에 강하게 대항했다. 드뷔시는 메테를링크의 인기있는 희곡의 몽환적인 분위기에서 그 출구를 발견했으며, 그 결과 드뷔시는 바그네리안이자 동시에 반(反)바그네리안이 되어 버렸다.
‘펠레아스’는 상징주의자들과 라파엘 전파(前派)의 화가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음악적으로는 인상주의자들의 수법과 비슷하다. 어두운 밤에 표류하는 듯한, 때와 장소가 분명하지 않은 곳을 헤매면서 남모르게 암시의 회화를 주고받는 인물들, 특수한 암시에 찬 미묘한 감각과 몽롱한 분위기 등. 이로써 이 곡은 위엄있는 바그너의 그늘을 인지하는 동시에 걷어낸, 20세기를 영접하기에 매우 합당한 작품이었다. 프랑스 오페라, 더 나아가서 모든 오페라가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었으며, 양식의 자유로움을 열어 보여주었다.
9. 바흐/평균율 클라비어곡집(1722/1738∼42)
과연 바흐는 혁명적일까? 현대인들은 그를 진부한 사람으로 여겼다. 어떤 점에서는 그들의 생각이 맞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미래는 그의 아들들 특히 C. P. E 바흐의 차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바흐는 아직 위력을 지닌다.
바흐가 1722년과 1742년에 두 권으로 완성한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착상에 관해서는 혁명적이다. 왜냐하면 이 작품에서 바흐는 체계적으로 온음계를 사용했으며, ‘평균율’의 의미가 무엇이든간에 건반악기의 장엄한 음향을 위해 음악의 모든 틀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용 면에서는 그렇게 혁명적인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1권으로부터 20년이나 지난 뒤 세상에 나온 2권은 이미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음악세계에도 큰 변화를 가져와 폴리포닉한 음악은 이미 낡았고, 평균율 자체도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닌 것으로서 일반에게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작곡가들은 바흐를 결코 잊은 적이 없었다. 베토벤은 피아노를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바흐의 이 48곡을 적극 추천했으며, 낭만주의자인 슈만은 그의 피아노 위에 바흐의 초상을 담았다. 또한 쇼팽은 자신의 24개의 프렐류드로 바흐에게 보답했다. 20세기로 건너오면 라흐마니노프의 24개의 프렐류드와 쇼스타코비치의 24개의 프렐류드와 푸가 속에서 바흐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있다.
10. 바레즈/이오니제이션(1929∼31)
1931년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이오니제이션의 초연이 이루어진 이래 학자들과 바레즈의 경쟁자들은 이 작품이 전적으로 타악기를 위해 악보화된 최초의 작품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된 것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60년이 지난 뒤 ‘이오니제이션’은 그 장르에서는 논의의 여지없이 최초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6분간의 단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쓸모없는 음은 하나없이 빈틈없고 간결하다. 구조는 전통적 소나타 형식에다 바레즈의 리듬은 마치 어제 씌어진 것처럼 참신하고 생생한 느낌이 난다.
바레즈가 사용한 타악기들의 그 오래 끄는 울부짖음과 긴박감은 우리들의 불안한 세대의 어두운 모습을 형성한다. 가장 솜씨있게 처리된 것은 곡의 끝에 피아노의 낮은 음역에서 나오는 톤 클러스터(합성음)와 차임의 등장에서 생기는 긴장감의 이온이다. 울려 퍼지는 이들 ‘이온’(ions)에서는 축적된 에너지와 리듬이 방출되고, 음악은 서서히 멈춘다. 바레즈는 이러한 순전한 음향과 리듬을 통해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묘사하는 동시에 대담하게 우리 세대의 가장 중요한 일면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11. 하이든/현악 4중주 Op.33(1781)
1781년 12월 3일 6곡으로 된 Op.33의 현악 사주중곡들의 선전을 위해 하이든은 세 통의 편지를 발송했다. 거기에는 그동안 10년간이나 단 한 곡의 현악 4중주곡도 작곡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6곡은 ‘아주 새롭고 특별한 수법으로 씌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컨대 그 당시 의식적으로 새로운 양식으로 향했던 하이든에 의해 고전주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잘 알려진 ‘새’나 ‘농담’과 같은 현악 4중주곡이 포함된 이 6곡의 현악 4중주곡들은 이 분야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곡들이다. 이 곡들은 재빠른 솜씨와 샘솟듯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음악적 상상력을 지닌 하이든이 실내악의 음향과 형식에도 완벽하게 통달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구성 면에서 형식과 테마의 취급 방법이 간명하고 네 개의 현에서 조성되는 명암의 미묘한 맛은 매우 독특하다. 이에 영향을 받은 모차르트는 이후 ‘내가 진정한 4중주의 작곡법을 처음으로 배운 것은 하이든에서였다’는 소견과 함께 그 보답으로 자신이 작곡한, 역시 6곡으로 이루어진 현악 4중주곡들을 하이든에게 헌정했다. 또한 하이든의 제자였던 베토벤의 4중주곡들의 정신적인 근원지도 하이든의 곡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2. 리스트/피아노 소나타 B단조(1853)
가장 뛰어난 피아노 비르투오소이자 초기 낭만주의를 발전시킨 작곡가인 리스트에게 있어서 이 소나타는 주체할 수 없는 개성으로 인해 고유의 모순을 가져온 작품이다. 리스트는 이 소나타를 발표했을 때 갖가지 구설수에 올랐는데, 특히 이 곡의 초연자 한스 폰 뷜로가 빈에서 연주를 가질 즈음 빈의 평론가 한슬릭은 ‘지금까지 이처럼 지리멸렬한 요소가 교활하고 대담무쌍하게 나열된 것을 들어본 일이 없다’고 혹평을 했다. 이 비평은 바그너가 리스트에게 보낸 서한에서 말한 ‘모든 개념을 초월하여 아름답고, 크고, 훌륭하고, 심각하고, 품위있다’는 평과 극단적으로 대립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이 물의를 일으킨 데는 그 독특한 형식적인 특징 때문이었다. 단일 악장으로 되어 있는 이 곡은 얼핏 소나타라기보다는 ‘판타지’나 교향적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주요 주제를 설정하는 방법으로 보아서는 큰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중간에 느린 악장적 요소도 포함한 ‘소나타’라고 보아도 무난할 것이다. 피아노의 모든 자원을 최상의 창의력으로 개발한 리스트에게 있어 피아노는 단순히 독주악기로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가장 다양한 색채와 음향을 낼 수 있는 관현악인 셈이다.
13. 슈톡하우젠/일렘(1972)
‘일렘’은 공연에서만이 존재하는 음악을 기록해놓은 악보를 발전, 완성한 것으로 현대음악의 대가다운 재능이 돋보이는 작품. 아무래도 작곡의 개념과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곡이다. 이러한 현상은 슈톡하우젠의 대다수 후기 작품에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서, 음을 표기한다는 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말로 표시된 지시에 따라 연주자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만 의존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슈톡하우젠이 1968년에 작곡한 ‘7개의 날로부터’도 그러한 경우이다. 그러므로 음악가들은 그들 자신의 개성과 경험을 통해서 슈톡하우젠의 말들을 해석해야만 하는데, 이를 우리는 흔히 ‘직관 음악’이라 부른다.
슈톡하우젠은 ‘일렘’에서 이러한 위험한 수법을 더욱 확대시켰다. 스코어는 악기들에서 나오는 음들을 연주하기 위해 건반악기 주위로 연주자들을 초대한다. 그런 다음 바깥쪽으로, 즉 연주 공간의 가장자리를 향해 퍼져가고, 이어 연주자들은 점점 출발점으로 귀환한다. 과연 우리는 이 곡을 음악 작품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현대에 있어서 가장 중심적인 작곡가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14. 메시앙/음의 길이와 강도의 모드(1949∼50)
가장 위대한 스승은 제자들이다. 1949년에 메시앙은 물리적 용어, 즉 진폭·주파수·음색 등으로 음악을 논하는 케이지의 영향을 받아 네 개의 리듬 에튀드를 작곡했는데, 이 ‘음의 길이와 강도의 모드’는 그중 2곡에 해당된다.
메시앙에 의하면 이 곡은 시리즈의 수법이 아니고 선법을 토대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선법은 독자적인 음역·강도·길이·어택(Attack)을 가진 피치 시리즈를 말한다. 쇤베르크의 시리즈의 이론에서는 어느 음과 그 다음 음의 2음 사이의 피치 관계가 규정되어 있어 음정의 순서가 지켜지기만 하면 음은 자유롭게 이조·회전·역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메시앙의 선법에서는 음은 음정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독자적인 특성에 의해 규정되며 서로의 순서는 자유롭게 되어 있다. 이 점이 쇤베르크나 베르크의 작품과 메시앙의 작품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며, ‘시리즈’가 아니라 ‘모드’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20세기의 가장 영향력있는 작곡가들인 불레즈와 슈톡하우젠은 이 곡을 완전한 시리얼리즘으로 간주하고 그들의 작품의 거울로 삼았음은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5. 불레즈/주인없는 망치(1952)
1952과 54년 사이에 작곡된 ‘주인없는 망치’는 감각적인 음향을 지닌 소우주적 구조를 추구하는 불레즈의 경향을 잘 보여준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 르네 샤르의 세 개의 짧은 시에 바탕을 둔 이 곡은 알토 독창·플루트·비올라·비브라폰·크실로림바·타악기들의 앙상블로 연주되는 9곡으로 되어 있다. 그 작풍은 ‘추상적 인상주의’라고도 할 수 있는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메시앙풍의 시리얼 음악과 드뷔시풍의 화성의 음색을 중시한 수법이 서로 겹치고 있다. 불레즈의 초기의 엄밀한 수적(數的) 규제는 여기서 후퇴하고 있으며, 불레즈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최초의 수확이라고 할 만한 걸작을 탄생시켰다.
16. 모차르트/돈 조반니(1787)
모차르트의 오페라들 가운데 ‘돈 조반니’야말로 의심할 여지없이 다음 세대의 오페라 작곡가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작품이다. 이것은 위엄있는 균형감을 지닌 18세기 후기 고전주의에서 빠져나와 거치른 낭만주의 세기로 가는 터널을 만들어 보여준, 파괴적이고 해로운 서곡인 것이다.
악마적이고 추진력있는 주인공의 성격은 모차르트를 혼란시키는 동시에 매혹시켰다. 그는 익살스럽고 쾌활하면서 동시에 파괴적이고 악마적인 돈 조반니의 성격을 묘사하기 위해 다 폰테가 ‘익살맞은’(jocose), 또는 즐거운 연극이라고 불리는 형식을 만들어냈다. 이로써 모차르트는 그 당시 유행하던 ‘오페라 부파’의 전통의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영역에 들어서고 있었다.
17. 쇤베르크/현악 4중주 제2번(1908)
1908년에 이루어진 쇤베르크의 현악 4중주 2번의 초연은 청중들의 온갖 야유와 조소, 그리고 싸움이 뒤따랐다. 왜 그랬을까? 이 20세기 음악의 위대한 형식의 발명가는 과감히 전통적인 조성과 형식을 포기하고 이전의 어떤 작곡가들도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낯선 소리의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3, 4악장은 신비적 이상론자 슈테판 게오르그의 시를 노래하는 성부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실내악과 가곡의 성공적인 결합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노래의 사용은 4중주곡의 표제를 분명히 제시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3악장부터 성악이 첨가되어 마음의 편안함이 노래 불려지고 마지막 악장에서는 이 세상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조성으로부터의 해방이기도 했다. 이 조성으로부터의 해방은 현세로부터의 해방, 개인의 내면으로의 여행의 출발을 표현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쇤베르크로 하여금 옛날 그대로 정박되어 있는 음악사에서 결정적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18. 페로틴/대주교들은 자리에 있어(1199)
12세기에서 13세기에 걸쳐서 활동한 파리 노트르담 악파의 대표적인 작곡가 페로틴의 공적은 무엇보다 성부를 다양하게 발전시킨 데 있다. 전임자인 레오닌이 2성부의 대위법을 썼던 것에 비해 페로틴은 2성부를 위한 것뿐만 아니라 3 내지 4성부를 위한 ‘오르가눔’(초기의 다성음악의 일종)을 쓰기도 했다. 그가 12월 26일의 성 스테판의 축일을 위해 작곡한 이 그라두알레 ‘대주교들은 자리에 있어’는 4성부를 사용한 다성음악의 대표적인 예이기도 하다.
페로틴의 음악은 또한 멜로디의 악구가 보다 짧고, 보다 뚜렷한 리듬과 때로는 어렴풋한 ‘장조’의 느낌까지 드는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 그의 작품은 고딕 양식의 대성당의 둥근 천장을 생각나게 하는 광대한 공명을 자아낸다.
19. 마쇼/노트르담 미사(?)
마쇼의 유명한 ‘노트르담 미사’는 14세기의 가장 혁명적인 작품은 아니다. 아르스 노바의 필립 드 비트리의 작품들이 오히려 더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중세 음악의 우수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곡은 네 개의 성부로 되어 있고, 테너 성부는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인용된 정선율을 노래한다. 최상 성부는 멜리즈마적이고 두 상성부는 대략 같은 음역 안에서 가끔 교차된다. 전곡을 통해 리듬형과 멜로디형을 반복해서 통일성이 강조되고 있다. 네 개의 선들은 특히 마침꼴에서 3화음을 이루도록 결합되고, 그 선법적 화성은 20세기의 귀에도 기분좋게 들리는 고풍스런 음향을 만들어낸다. 다성음악에 의한 미사곡으로서는, 한 작곡가에 의해 일관되게 작곡된 음악사상 최초의 예라고 할 수 있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20. 베버/자유의 사수(1821)
베버 이전에 독일 오페라는 이탈리아 오페라가 지배하고 있는 세계 무대를 차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물론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나 베토벤의 ‘피델리오’ 같은 예외는 있다. 하지만 두 작품 중 어느 쪽도 훌륭한 후계자를 만들지 못했다. 그러다 1821년 ‘자유의 사수’의 초연이 이루어졌을 때 이 모든 상황은 변해 버렸다.
이 작품의 멜로디는 모차르트의 흐름을 따랐다. 부드럽고 아름다운 선율에 풍부한 영감이 담겨 있는데, 그 속에는 독일 민속음악의 전통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고, 대담한 화성의 사용도 돋보인다. 악기의 사용에 있어서도 그때까지 볼 수 없었던 수법을 사용했다. 모든 악기의 음역을 최대한으로 구사했고, 각 악기의 음색의 특징을 이용하여 특징있는 동기를 삽입하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신기원을 이루었다. 이 곡에 매혹당한 바그너는 ‘반지’의 상당한 부분에 베버의 영향을 흔쾌히 받아들이기도 했다. 베버는 그야말로 독일의 낭만주의 오페라의 기초를 닦아놓았으며, 이내 이것을 유명하게 만든 위대한 작곡가였다.
21. 모차르트/피아노 협주곡 9번 K.271(1777)
모차르트는 피아노 협주곡을 중요한 음악적 형식으로 확립시켰다. 그는 어떤 다른 건반 악기 협주곡 작곡가들보다 고양된 많은 피아노 협주곡들을 창조했다.
모차르트는 결코 바흐의 건반악기 협주곡들을 알지 못했다. 어떤 작곡가의 작품을 통해서도 솔리스트와 오케스트라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에 관한 예를 본적이 없다. 그러나 다음 세대의 거의 모든 작곡가들은 모차르트에게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그의 대부분의 피아노 협주곡들은 자신의 재능을 과시하기 위해서 씌어진 것이다. 그가 20세 때 작곡한 이 작품을 통해 놀라운 도약을 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들 가운데 특히 비범하고 독창적인 곡이다. 왜냐하면 흔히 오케스트라의 투티로 시작되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들과는 다르게 독주 악기로 곡을 시작한다. 그리고 중간 악장은 눈에 띄게 심오한 반면 마지막 론도는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특히 모차르트는 자신의 카덴차와 도입부를 썼는데, 다른 작품의 그것과는 다르게 이것들은 아직까지 전해지고 있다.
22. 슈베르트/겨울나그네(1827)
슈베르트는 1823년에 뮐러의 시에 의한 연가곡집 가운데 첫번째 가곡집인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를 발표했다. 이것은 모두 20곡으로 되어있으며, 연주시간은 한 시간 가량이 걸린다. 이어 그는 1827년에 열정적인 사랑에 실패한 젊은이의 고통과 절망을 묘사한, 뮐러의 시에 의한 두번째 가곡집 ‘겨울 나그네’를 발표했다. 전체 74분의 길이로 24곡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얼음같이 차가운 자연과 불행한 방랑자의 고통 사이의 관계와 얼음도 녹여버리지 못한 자신의 눈물에 놀라는 젊은이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또한 위협하는 까마귀를 뒤쫓고, 환상 속에서 하늘에 세 개의 태양이 나란히 떠있는 것을 본 방랑자가 마지막으로 그의 영혼만큼이나 고독한 늙은 거리의 악사를 만나면서 가곡은 마무리를 짓는다. 어떤 위안도 없는, 이보다 더 황량한 음악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차갑고 어두운 분위기만이 아니라 지극히 원숙한 구성으로 보아서도 충분히 주목할 가치가 있기에 이 ‘겨울나그네’는 언제까지나 슈베르트의 걸출한 업적의 하나로 남아 있을 것이다.
23. 슈베르트/방랑 환상곡(1822)
19세기 작곡가들은 다양함 속에서의 통일을 추구했다. 즉 공통된 테마를 지닌 소나타나 교향곡들의 분리된 악장을 연결시키는 작업에 관심을 쏟았다. 4악장으로 된 슈베르트의 ‘방랑 환상곡’ 또한 그러한 경우이다. 이 곡은 슈베르트의 가곡 ‘방랑자’에서 악상을 빌려왔다.
슈베르트 자신에 의해서 ‘환상곡’이라고 이름붙여져 있으나 형식에 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4악장 소나타’라고 지적하고 있다. 전악장이 계속해서 작곡되어 있지만 조성 및 속도 표시의 변환으로 4개의 악장이 명확하게 구분되고 있다. 그러나 전곡이 하나의 소재에 의해 통일되어 있는 점은 다른 소나타와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즉흥적 성격도 대단히 강해 작곡자 자신이 붙인 ‘환상곡’으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무난할 것이다. 이렇듯 모든 점에서 다른 피아노 소나타와 다른 성격을 지닌 ‘방랑자 환상곡’은 뒤를 잇는 작곡가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특히 리스트의 두 곡의 피아노 협주곡들은 슈베르트에게서 영감을 받아 작곡된 것이기도 하다.
24. 베를리오즈/환상 교향곡(1830)
얼핏 베를리오즈의 다섯 개의 악장으로 된 이 표제적인 교향곡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인다. 베토벤은 이미 ‘전원’ 교향곡에서 똑같은 시도를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환상’ 교향곡은 철저하게 독창적인 접근법을 보여주고 있다.
특이하게 교향곡에 표제를 붙인 베를리오즈는 이 표제를 자신의 개인 생활에서 취했다. 예술에 대한 이와 같은 자서전적인 접근법을 보여준 베를리오즈는 진정한 낭만주의자였다. 이 교향곡의 기본 주제는 헤리에트 스미드슨을 향한 사랑의 번민으로, 스미드슨을 상징하는 멜로디와 ‘고정관념’(id럆 fixe)의 화성·리듬·박자·속도 그리고 강약, 음역과 악기의 음색 등이 계속해서 변하면서 하나의 거대한 건축물을 이룬다. ‘고정관념’의 변화는 문학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중요하며 기초 동기가 문학적인 표제에 의해 되풀이되면서, 각각 분위기와 성격이 다른 악장들을 통일시키는 음악적인 줄거리가 되는 것이다. 예컨대 이와 같은 표제음악이 베토벤이 죽은 지 3년밖에 안되어 27세의 한 젊은 음악가에 의해 착상되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5. 글루크/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1782)
글루크의 개혁 오페라의 이념은 ‘오르페오’의 대본을 쓴 칼차비지에서 비롯된 것이며, 대부분의 개혁 오페라의 대본은 그가 썼다. 칼차비지는 오페라 속에 생생한 감정의 표현을 불어넣고자 했는데, 그의 이러한 생각은 극적인 진실과 풍부한 표현이 가능한 새로운 오페라 양식을 추구하는 글루크의 이념과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글루크는 말의 뉘앙스를 중시하고, 음악을 언어와 어울리도록 하기 위해 가수의 지나친 기교, 그밖의 불필요한 음악상의 장식을 모질게 제거했다. 1762년에 작곡한 ‘오르페오’는 이러한 원리가 가장 잘 구현된 작품인데,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글루크의 극적 진실성과 표현의 풍부함은 오페라 역사의 방향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모차르트와 베를리오즈·바그너 등은 글루크를 숭배했으며, 그의 개혁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정리·윤진희 기자
첫댓글 제대로 다 못 읽고 마무리.낼 맑은 정신으로 다시...공부 엄청 됩니다.
아이구,근데 전 들어본 곡이 몇 안되네요.참 챙피한 일이죠.피아노에 관계된 곡 외엔 아직도 일생동안 한번도 안들어본 곡들로 꽉 찼네요.그러니 음악적 깊이가 없을 수 밖에요.다른 분들은 어떻게 이다지도 학구적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