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임계점으로 내모는 대통령의 위험한 폭주
자신은 다른 국가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대신 자신은 주변국에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를 강대국이라 한다. 강대국은 자신의 주변국 정보, 특히 주변국 경제와 안보의 치명적 약점을 파악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한반도와 한국은 이른바 경제와 군사에서 근육질을 자랑하는 이른바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다. 미・중・러・일은 한국의 급소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 특권층이 미국(이나 일본)에 대해 갖는 사대주의 세계관을 현실주의로 포장하는 이유도 그들이 우리의 급소를 공격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윤석열 정권이 러시아와 중국 관계를 파탄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한 짓이다. 파국 과정의 임계점을 넘나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와 안보를 미국 안보의 하위개념으로 편입시킬 때 예고되었던 ‘한국판 젤렌스키(윤석열 리스크)’ 현실화가 눈앞에 닥쳐온 것이다.
부산 신선대 부두 야적장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모습. 2023.3.13 연합뉴스
서서히, 그러다가 급격히 닥쳐올 위기
동서고금의 성현들이 보는 변화의 원리는 같다. 예를 들어, 헤밍웨이는 거장답게 작품 속의 대화에 사회와 자연이 돌아가는 원리를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에서 빌(Bill)이 마이크(Mike)에게 “어떻게 파산했어?(How did you go bankrupt?)” 묻자 마이크는 “서서히 그러다가 갑자기(Two Ways, Gradually, then suddenly)”라고 대답하는 구절이 있다. 물은 100°C 이전까지는 온도가 올라가도 물질의 액체 상태는 변하지 않는다. 89도에서 90도의 차이나 99도에서 100도의 차이는 같은 1도 차이지만 후자는 물질의 근본 상태를 변화시킨다. 물이 끓기 시작하는 임계점 이전의 1도인 것이다. 임계점에 도달하기 이전에 온도가 ‘서서히’ 상승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파국’을 예상하지 못한다. 자기 귀에 (물이 끓는) 소리가 들리면서, 눈앞에 수증기가 보이면서 ‘파국’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또 다른 문제는 인지하기 시작할 때면 대응하기에 너무 늦다는 사실이다. 변화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특권층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판단과 결정이 ‘파국의 임계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윤 대통령의 판단은 나름 계산된 결정이었을 것이다. 사실상 레임덕 상태에 빠진 지금 최대 목표는 방미에서 최소한의 구체적 성과를 만들어내어 그동안 외교 참사로 바닥까지 추락한 지지율 만회의 기회로 삼는 것이다. 구체적 성과가 조금만 나와도 국내 언론들은 크게 부풀려 찬양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윤 대통령의 발언들은 방미 과정에서 바이든과의 주요 회담 의제들과 관련된 것들이다. 3월 초 외신을 통해 공개된 회담 의제들은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과 중국 제재 동참 등이고, (미국 정부의 지출이 큰) 국빈 방문(state visit) 형식이 결정된 이유는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우리 기업들의 미국 투자에 대한 대가였다.
그리고 윤 대통령은, 기시다와 정상회담 이전에 그랬듯이, 미국이 원하는 혹은 그 이상의 대답을 미리 해준 것이다. 이른바 ‘선 선의, 후 반응’이라는 (교과서에도 없는) 윤석열식 외교관이다. (기껏해야 미국이 전기차 분야에서 일부 생색내기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지만) 초조감이 만들어낸 이같은 결정은 엄청난 후과를 지불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나 우리 사회 자칭 전문가들이 중국이나 러시아가 우리의 약점을 얼마나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그들이 가진 지렛대를 너무 과소평가하거나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안다면 아무리 궁지에 몰렸다고 해서 이러한 판단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중국 관련 주가의 폭락은 예고편을 보는 느낌이었다.
늪에 빠진 수출, 단순 수출 감소 문제가 아니다
우리 경제에서 수출은 일반 국민이 생각하는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한국 경제의 모든 문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높은 가계부채와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구조화된 내수 취약성으로 수출은 우리 경제의 생명줄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 수출이 2010년대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며 성장 둔화는 피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우리 상품의 세계시장 점유율 2.74%는 2.75%를 기록한 2004년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다.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2008년 금융위기 때를 제외하고는 무역흑자가 지속하였다. 그런데 133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던 2008년조차 수출액은 505억 달러가 증가했으나 윤 정권 1년간(22년 5월~23년 4월 20일) 무역적자는 금융위기 때의 5배가 넘는 676억 달러에 달할 뿐 아니라 수출액도 203억 달러나 줄어들었다. 게다가 올해 1분기(1월~3월) 수출액은 지난해 1분기에 비해 11% 이상이나 감소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점은 지금까지 무역적자는 수출액 감소가 수입액 감소보다 더 커서 발생했으나, 4월에는 수입액 감소가 수출액 감소보다 더 컸음에도 불구하고 무역수지 적자가 3월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수입액 감소가 수출액 감소보다 크면 무역수지는 흑자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2015년과 16년에 수출이 각각 8%와 6%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역대 두 번째와 세 번째로 큰 무역흑자를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가 수입액 감소가 더 컸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한국 수출은 늪에 빠졌다. 그 이유는 윤석열 정부 기간 중국 수출액 272억 달러 감소가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지난해 대 러시아 교역액은 23%나 감소했는데 이는 일본 11% 감소보다 두 배나 큰 감소였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한 유럽의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러시아 교역액은 오히려 각각 11%와 49%가 증가하였다. 인도(+237%), 그리스(+108%), 튀르키예(+103%), 브라질(+34%), 중국(+29%) 등의 실리 추구는 한국과 대조적 모습을 보인다. 문제는 지난 1년의 모습은 향후 한・중 및 한・러 관계의 파탄이 몰고 올 무역 리스크의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단 하나 희망 보이지 않는 경제 수치들
올해 들어 1~2월 연속 기록한 경상수지 적자는 무역수지 적자가 지속하는 가운데 최근 빠르게 악화하는 서비스수지 적자가 보태진 결과이다. 그런데 (한국 경제와 안보를 미국 안보의 하위개념으로 편입시킨) 윤석열 리스크가 무역 리스크 및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등) 산업경쟁력 리스크를 키우며 성장 전망을 불확실하게 하고 있다. IMF나 OECD 등이 한국 성장률만 계속 하향 조정하는 배경이다. 경기 전망의 후퇴는 부동산 경기 부양 효과를 꾀하거나 부동산 관련 부실 확산을 차단하려는 당국의 금융 지원 효과를 제한한다.
여기에 명목임금조차 하락하고 있고, 지난해 10월 4.8%까지 상승한 근원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개월째 변동이 없고, 기대 인플레율이 4개월째 4% 주변에서 머물고 있듯이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달성도 올해 안에 달성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 경제가 (경기침체와 인플레가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 진입 가능성이 가장 큰 나라가 된 이유이며 지난 한 달간 (한국은행과 국민연금 간 달러 스왑에도 불구하고) 환율 움직임이 궤도를 이탈한 배경이다. 지난 한 달간 달러 지수가 0.8%나 하락했음에도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기는커녕 3.4%나 상승하였다. 원화 가치는 한국 경제에 대한 시장의 시선을 보여준다. 이처럼 한국 경제는 임계점에 근접하고 있다. 이는 새로운 충격이 추가되면 임계점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중국이 새로운 충격의 트리거(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카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한국 국채의 최대 보유국이다. 이명박 정권이 노무현 정권에 비해 미국으로 기울어지자 한국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한국채 보유를 급격히 늘려 최대 보유국으로 부상하였다. 이는 중국이 한국의 통화정책 자율성을 훼손시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향후 경기침체나 부동산시장의 급격한 악화 등이 진행될 때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하더라도 중국이 한국채 대량 매각으로 시장금리 인하를 방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이 등 돌린 후 외톨이 될 한국
최근 미국 재무부 옐런 장관이나 미국 무역대표부 타이 대표 등이 미국 경제는 중국 경제와 디커플링(분리)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동시에 발산하고 있다. 최근까지 중국·러시아 등을 배제한 새로운 공급망 구축을 떠들던 미국을 기억하는 이들은 어지럽기만 하다. 한국 총선이 눈앞에 다가왔듯이 2024년 미국 대선이 다가오고 있다. 옐런이 연준에게 공개적으로 금리 인상 중단을 요청하는 배경이다. 문제는 인플레를 잡지 못하면 연준이 금리 인상을 멈추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데 연준이 가장 중요시하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 상승률이 지난해 2월 5.4% 최고치를 기록한 후 5월까지 5% 밑으로 내려왔지만, 그 이후 최근까지 4.6%에 머물 정도로 하락 속도가 너무 느리다. 게다가 은행 위기의 후유증으로 (옐런도 우려할 정도로) 은행 대출이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 내 여러 전문가들이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배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경제와의 디커플링은 인플레 압력을 증가시키고 성장을 둔화시키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이든은 2024년 다시 맞붙을 가능성이 큰 트럼프에게 약점을 갖고 있다. 제조업 일자리 500만 개를 공약했음에도 바이든이 지금까지 만든 제조업 일자리는 19만 3000개에 불과하다. 반면, 트럼프는 제조업 일자리를 4년간 42만 4000개 만들었다. 바이든이 한국 반도체와 전기차 관련 기업들을 미국에 불러들여 생산과 일자리 창출을 요구하는 배경이다. 이처럼 자기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미국은 중국에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중국 관계가 파탄이 난 한국만 고립이 되게 생겼다. “윤석열 정부에서 탈중국 선언한 적 없다”는 추경호의 최근 발언이 안쓰럽기만 한 이유이다. 중국의 마음을 돌리려면 최소한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절대 반대한다” 했던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부터 수습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 일부 논자들이 윤석열 정부에게 외교 참사 사태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정작 본인은 귓전으로 흘릴 것이다. 윤석열 정권은 외교 참사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일본에게 보여준 굴욕적인 모습이나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적대적 모습을 보면 모두 확신범 수준이기 때문이다. 김태효 해임을 요구하는 야당에게 “누구에게 도움이 되냐?”고 되묻는 대통령(실)이다. 이제는 결단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