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령관문을 품고있는 鳥嶺山 - 위 치 : 충북 괴산군 연풍면, 경북 문경시 문경읍
- 높 이 : 1,025m
1. 일 시 : 2012. 7. 12. 07:30 ~
2. 장 소 : 조령산
3. 참석인원 : 28명 (새내기 3명)
4. 탐방코스 : 이화령 - 정상 - 신선암봉 - 깃대봉 - 제3관문 - 고사리주차장
5. 다녀온길 : KBS앞 - 중앙고속 만종JC - 영동고속 여주JC, 연풍 IC 진출 - 배상교차로 - 적성교차로 - 연풍IC교차로 중부로 문격(상주) 방면 - 이화령(하차) - 연풍 면 원풍리 고사리주차장(승차)
6. 오늘활동 상황
○ 07:30 --- KBS앞 출발(문막휴게소 경유)
○ 10:00 --- 이화령 도착
○ 10:05 --- 일정안내 및 단체기념사진촬영
○ 10:10 --- 들머리진입
○ 11:00 --- 조령샘물
○ 11:30 --- 조령산 정상
○ 12:18 --- 마당바위갈림길
○ 12:40 --- 점심식사
○ 13:50 --- 신선암봉
○ 14:23 --- 꾸꾸리바위갈림길
○ 14:50 --- 928봉
○ 16:50 --- 제3관문
○ 17:30 --- 고사리주차장도착(선발팀)
○ 17:51 --- 조령산자연휴양림 경유
○ 18:00 --- 고사리주차장도착(중간팀)
○ 18:40 --- 하산행사 ○ 19:20 --- 후미팀 도착 ○ 19:44 --- 고사리주차장 출발
○ 22:30 --- KBS앞 도착(충주,원주휴게소 경유)
7. 조령산 살펴보기
□ 개관
- 조령산은 충북과 경북에 걸쳐 있는 이화령과 조령3관문 사이에 위치하며, 산림이 울창하며 대 암벽지대가 많고 기암괴봉이 노송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 같다. 이화령(큰세재)에는 휴게소와 대형 주차장이 있고, 북쪽 구새재는 조령 제3관문(조령관)이 있으며 관문 서편에는 조령산 자연 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다. 주능선 상에는 정상 북쪽으로 신선암봉과 치마바위봉을 비롯 대소 암봉과 암벽 지대가 많다. 능선 서편으로는 수옥 폭포와 용송골, 절골, 심기골등 아름다운 계곡이 있다. 등산 시기는 가을, 여름, 봄 순으로 좋은 산이다. 문경새재를 허리춤에 안고 있는 조령산은 산보다 재가 더 유명하다. 조령산은 아기자기한 코스와 설경이 겨울산행의 묘미를 듬뿍 안겨주는 산이다. 산세가 웅장하고 비교적 높지만 해발 530m의 이화령에서 산행을 시작하므로 큰 부담을 주지 않는다.
□ 문경새재도립공원
- 이지역 역사에 얽힌 갖가지 전설을 비롯하여 임진왜란과 신립(申砬) 장군, 동학(東學)과 의병(義兵)이 남긴 사담(史談)이 골골이 서리어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이 일대를 1974년 지방기념물(제18호), 198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어 전국에서 관람객이 많이 찾고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8. 등산기행
□ 산행안내준비
<백두대간 등산 안내도>
- 조령산은 2008. 2. 28 이화령 - 정상 - 절골 - 신풍리로 이어지는 4시간코스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 눈이 많이 내린 관계로 입산통제되는 바람에 현장에서 갑자기 일정을 조정하여 인근의 주흘산을 다녀온 산이기에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본인이 모두산악회 입문 이후 원주 감악산, 평창 발왕산, 태백 태백산, 완주 대둔산에 이어 다섯 번째 등정이 예정되었던 산이기도 하다. 그 이후 조령산 등정 기회를 잡지 못하고 차일피일 하던 산이었는데 겨울산행 대신 여름산행지로 선정하였다. 조령산은 등산시기를 계절별로 구분할 때 가을, 여름, 봄 산행 순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들머리인 이화령휴게소 해발고도가 548m에 이르고 코스 구간거리가 비교적 짧기 때문에 한여름이라고는 하지만 큰 부담 없이 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이화령휴게소에서 정상까지 육산에서 느끼는 푸근함과 아울러 정상에서 제3관문까지 암릉구간에 펼쳐진 풍취를 함께 느끼기에 결코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보았다.
- 백두대간의 이화령(梨花嶺,548m)과 조령(鳥嶺:새재,642m) 사이에 위치한 조령산(鳥嶺山,1,025m)은 경북 문경시(聞慶市) 문경읍(聞慶邑) 상초리(上草里)와 충북 괴산군(槐山郡) 연풍면(延豊面) 원풍리(院豊里)가 경계를 이루는 도계(道界)지역이기도 하다. 백두대간의 마루금이 지나는 조령산은 산세가 웅장하며 스케일이 큰 암릉미를 과시하고 있는 험준한 바위로 이뤄진 산이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고개인 문경새재를 품안에 품고 있으며, 산세가 우람한 주흘산과 마주하고 있어 예부터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점했다. 특히 조령산에서 조령3관문으로 이어진 능선은 용아릉의 축소판으로 뛰어난 경관미를 자랑한다. 마루금을 사이에 두고 문경 쪽으로 내린 물은 문경새재 조령천을 따라 영강으로 흘러들어 낙동강으로 길게 이어지고, 마루금 서쪽 괴산 쪽으로 흐른 물은 연풍, 칠성을 거쳐 남한강으로 흘러들고 있다. 영남지방의 첫 관문이기도 한 조령(새재)이 있는 이곳은 충북과 분수령을 이루는 곳으로 산세가 험준하고 요동치며 지나는 산릉은 마치 기세를 얻은 공룡의 등처럼 힘차다. 이 산은 특히 눈이 많아 겨울철 설산의 전경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산을 오르기는 가을철, 여름, 봄 순으로 좋은 산이나 경치는 사계절 어느 철에 찾아도 항상 수려하다
<조령산등산지도>
- 조령산을 대표하는 코스는 이화령에서부터 시작하여 제3관문으로 이어지는 종주코스이다. 고갯마루에서 시작하므로 오르기에 큰 부담을 주지 않고 정상까지 오르는데 크게 힘든 줄 모른다고 소개하고 있었다. 이화령에서 정상을 올라 되돌아 이화령으로 내려오거나 정상에 올라 문경새재 촬영장쪽 용사골이나 마당바위쪽 등의 방향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선택할 수도 있다. 산행이 시작되는 이화령부터 정상까지 이어지는 마루금은 육산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정상에서 백두대간 마루금을 따라 조령 제3관문까지 이어지는 코스는 고난도의 각양각색 암릉이 버티고 있는 정 반대의 산형을 이루고 있다.
-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조령산 산행의 진미는 아마도 백두대간구간인 조령산종주코스에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리품을 판 것만큼 얻는 것 또한 큰 코스로 정평이 나있다. 이화령에서 출발해 조령산 정상을 거쳐 스릴 넘치는 암릉 구간을 오르내리며 조령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가히 환상적이다. 암릉미는 물론이거니와 아래로 문경새재를 굽어보며 동쪽의 주흘산과 부봉 6봉까지 펼쳐지는 시원스러움은 그 무엇에 비길 바가 아니다. 또한 암릉으로 이어지는 비경코스를 지나면서 자연이 빚은 빼어난 자태에 탄성을 자아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코스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아니하고 종주코스를 선정하여 안내준비를 하였다. 지금까지 설악산 난코스로 알려진 모든 코스를 섭렵한바 있으므로 걱정은 접어두고 새로운 세계에 도전한다는 각오로 백두대간 구간이 종주코스를 선정하였다.
- 문경시에서 안내하고 있는 등산코스는 아래와 같이 10개 코스가 있다. 이중 일반적인 코스로 알려진 제2코스(조령종주/백두대간)를 선정하여 안내준비를 하였다.
[제1코스] 이화령~조령샘~1005.8봉(헬기장)~조령산 정상코스[이화령코스]
[제2코스] 이화령~조령샘~조령산 정상~신선암봉~깃대봉~조령~문경새재주차장코스 [조령종주/백두대간] : 구간거리 7.7㎞ / 5시간 55분정도 소요
이화령(梨花嶺,548m,3번국도) -<40분>- 757봉 지나 잘록이,헬기장 -<15분>- 조령샘쪽 갈림길 -<30분>- 조령샘 -<20분>- 1005.8봉 헬기장-<15분>- 조령산 정상(1,026m) -<45분>- 889봉 -<30분>- 신선암봉(937m) -<20분>- 790m 안부 -<25분>- 923m 치마바위봉-<20분>- 750m 안부 -<20분>- 790m 갈림길 -<20분>- 757봉-<20분>- 삼각점봉(812.5m,▲) -<15분>- 깃대봉갈림길 -<20분>- 조령,조령관(642m)
[제3코스] 새재주차장~주흘관~459.2봉~862.1봉(조망대)~헬기장~조령샘~조령산 정상코스 [1관문코스]
[제4코스] 새재주차장~마당바위~계곡따라 조령능선(이정표)~조령산 정상코[마당바위코스]
[제5코스] 새재주차장~조곡관 뒤편~조령능선~치마바위봉~신선암봉~조령산 정상코스[2관문코스]
[제6코스] 새재주차장~유스호스텔~862.1봉(조망대)~헬기장~조령샘~조령산 정상코스[유스호스텔코스]
[제7코스] 새재주차장~KBS촬영장~용화사지~용화사골~산지당골~조령산 정상코스[촬영장코스]
[제8코스] 하초리마을입구~기산~헬기장~862.1봉(조망대)~조령샘~조령산정상코스[하초리코스]
[제9코스] 새재주차장~꾸구리바위~화덕골~신선암봉잘록이~신선암봉~조령산 정상코스[교귀정코스]
[제10코스] KBS촬영장~569봉~615.6봉~846.3봉~조령산 정상코스[장군봉코스 : 위험, 등산로 없음]
□ 산행안내
<영남관문 梨花嶺>
- 오늘 들머리인 이화령을 살펴보고 넘어간다. 이화령은 충북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 산 3-1번지 일원이다. 이화령은 경상북도 문경시(聞慶市)와 충청북도 괴산군(槐山郡)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서 높이 548m이다. 소백산맥의 조령산과 갈미봉과의 사이에 있다. 동쪽 사면은 조령천(鳥嶺川), 서쪽 사면은 연풍천(延豊川)의 하곡으로 이어진다. 그 이전에는 국도가 새재[鳥嶺]로 통하는 험난한 산로(山路)뿐이었으나, 신국도 3호선이 이화령을 통과함으로써 주변지역에서 생산되는 특용작물 등의 수송도로로 이용되었다. 충청북도의 충주권(忠州圈)과 경상북도 북부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 탈바꿈하여 옛 조령에 이어 새로운 교통요충지가 되었다. 지금은 이 고개 밑으로 이화령터널이 시원하게 개통되어 이용차량이 제한적이다.
- 조령산은 이화령에 이르러 북서에서 남동방향의 산세를 이루며, 갈미봉은 북서-남동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어 기복이 적은 이들 사면을 이용해 도로가 놓여 있다. 과거에는 이화령의 북쪽에 있는 조령이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을 연결하는 교통로로 이용되었으나 이화령보다 산세가 험준하기 때문에 이화령을 따라 국도가 놓이게 되었다. 따라서 조령은 괴산군 연풍면의 고사마을과 문경시 문경읍의 상초리를 연결하는 통로로 이용될 뿐 차량은 물론 인적이 매우 드물게 되었다. 이화령의 북동쪽에는 문경새재도립공원과 월악산국립공원이 있으며, 남서쪽에는 속리산국립공원이 있다. 이화령고개에 얽힌 전설 하나를 소개한다.
<문경새재(명승 제32호)과거길>
- 조령관문이 위치한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는 경상북도 최북단 3번 국도변에 자리하고 있다. 문경읍은 임진왜란 당시 신립장군이 크게 공을 세운 전적지로 1,2,3 관문이 있는 전국 유일의 전통 도자기 생산지이다. 칼슘, 중탄산온천 및 유황천이 개발되어 국민 건강 증진에도 한몫하고 있다. 또한 활공장이 개발되어 세계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30여호 농가가 대부분 과수 농사를 짓고 있으며 인근에는 경치 좋은 조령산과 주흘산이 있다. 또한, 대형 주차시설, 왕건 세트장과 민속박물관이 있어 학생들의 역사 학습관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 이화령과 인접해 있는 문경새재를 살펴본다. 문경새재는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산42-8번지에 소재한다.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조령산(鳥嶺山) 마루를 넘는 이 재는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유역을 잇는 영남 대로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사회 문화 경제의 유통과 국방상의 요충지였다. 새재(鳥嶺)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옛 문헌에 초점(草岾)이라고도 하여「풀(억새)이 우거진 고개」또는 하늘재, 麻骨嶺)와 이우리재(伊火峴) 사이의「새(사이)재」, 새(新)로 된 고개의「새(新)재 등의 뜻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뒤에 이곳에 3개(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의 관문(사적 제 147호)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 이곳은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유서 깊은 유적과 설화·민요 등으로 이름 높은 곳이다. 이곳에는 나그네의 숙소인 원터, 신구 경상도관찰사가 관인을 주고받았다는 교귀정터만 남아있는 것을 1999년 중창하였고, 옛날에 산불을 막기 위하여 세워진 한글 표석 "산불됴심" 비(지방문화재자료 제226호)가 남아있다. 그리고 역사에 얽힌 갖가지 전설을 비롯하여 임진왜란과 신립(申砬) 장군, 동학(東學)과 의병(義兵)이 남긴 사담(史談)이 골골이 서리어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이 일대를 1974년 지방기념물(제18호), 198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어 전국에서 관람객이 많이 찾고 있는 곳이다.
<단체기념사진>
- 오늘 들머리인 이화령휴게소는 충북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周榛里) 산 3-1번지에 소재한다. 들머리가 소재한 주진리는 본래 연풍군 현내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주치동(周峙洞) 진촌(榛村) 매바우(鷹岩) 새봉(鳥峯) 중리(中里)를 병합(倂合). 주치동(周峙洞)과 진촌(榛村)의 이름을 따 주진리(周榛里)라고 하여 연풍면에 속하였으며 그 후 행정구역 세분화에 따라 진촌리, 중리, 은치리 등 3개 행정리로 분리 되었다.
- 금주 주간 날씨예보에 따라 목요일은 지난주에 이어 비를 비켜갈 수 있는 또 하루로 기억될 것으로 보았다. 수요일까지 비가 내리다가 목요일은 소강상태를 보인 후 금요일부터 또 다시 장마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 빠른 길 찾기 정보에 따르면 이화령휴게소까지 186,9km / 2시간13분으로 안내하고 있었기 때문에 10:00경이면 들머리 진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았었는데 예정시간대에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여 일정운영에 들어갔다. 이화령 정상은 절개지를 파헤치고 확장공사가 한창이었기 때문에 중방비가 진을 치고 있어 혼잡을 이뤘지만 단체산행 고객은 우리 일행 분들이 유일하였기 때문에 큰 불편 없이 입산준비에 들어갔다. 휴게소 이외의 정상 안부 일원에 화장실이 없어 입산 전 필수 사항인 이삿짐 줄이기에 실패하였다. 불편을 호소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았지만 그래도 나무꾼들은 이목을 가리지 아니하고 물총을 쏘아대며 꽉 찬 물통을 시원하게 비우는 바람에 선녀님들의 부러움을 샀다. 나무꾼 여러분! 이번기회에 물총 꽉 쥐고 뉘우치면서 반성 좀 합시다!. 아마도 이물은 며칠 후면 조령천과 영강을 거쳐 낙동강에 이를 것이다. 만약 이번 장마에 낙동강이 범람한다면 오늘 뿜어 댄 이 물이 한 몫 톡톡히 할 것이지만 4대강 사업이 그 기능을 다 할 것이기 때문에 기우에 불과할 것으로 보았다.
- “영남의 관문 이화령, 여기는 경상북도 문경시입니다.” 란 시원한 글귀가 새겨진 대형 표석을 배경으로 단체기념을 남겼다. 이 자리에서 백두대간 등산안내도를 보고 일정안내 보총설명을 마치고 입산하였다. 오늘 점심은 정상을 지나 신선암봉 능선에 진입하여 적정한 안부에서 먹고, 하산은 18:00까지 고사리주차장으로 예고하였다. 운영시간을 5시간으로 잡은 것은 위 조령산 제2코스 7,7km / 5시간50분 소요제원을 참고하기도 하였지만 산행안내준비를 하면서 미리 익혀둔 현장의 제원에 비중을 두었기 때문이다.
- 들머리에 들면서 어제내린 비 때문인지 습도가 상당히 높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금새 온 몸이 끈적거리면서 땀이 배어나오기 시작하였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씨가 한 몫 한 셈이다. 코로 들어오는 공기는 상큼하게 느껴지면서도 장마후의 끈적거림이 불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한 여름 날씨치고는 양호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소인배의 욕심에는 한이 없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제발 비나 비켜갔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었건만 비가 멈추고 나니 또 다른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마음을 비우고 현장의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 우선이다 싶어 후미에서 선두로 자리를 이동하였다.
- 땀방울이 온 몸에 배어나오면서 몸의 기능이 현장에 적응하기 시작하였다. 그럴 즈음 마음의 여유가 생긴 듯 본인 특유의 너스레가 나왔다. 충무님! 제 팔 토시 어때요? 원래 구입할 당시에는 검은색이었는데 잘 빨았더니 흰색으로 변하였답니다. 로 말문을 열었다. 총무님 왈! 우리 대장님 못 말려 ! 또 시작이시다! 누가 빨았는데요? 제가 빨았지요! 제 것도 좀 잘 빨아주시겠어요? 아무렴요, 내놓기만 허세요! 잘 빨아드리리다! 막간을 이용하여 분위기를 바꿔볼 요량이었는데 이 얘기를 들으신 주변 분들의 웃음보가 터졌다.
<조령샘물>
- 11:00 조령샘물 경유
- 들머리에 든지 50여분 만이다. 한여름이지만 산행거리가 짧은 것을 감안하여 오늘은 1ℓ 용량을 0,5ℓ용기 두 통으로 나눠 준비하였기 때문에 물을 추가로 보충할 필요는 없었다. 수질검사결과가 붙지는 않았지만 마시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고원지대에 자리한 수원 치고는 수량이 제법 많았다. 이곳을 지나는 산객들의 급수원으로 각광받을 만한 샘이다. 갈증은 없었지만 물 한 바가지로 목을 축이고 발길을 서둘렀다. 여기서부터 선두에 자리 잡고 정상까지 올라갈 요량이었다.
- 조령샘 바로 옆에 “조령산 조령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세운 안내판의 안내문이 눈길을 끌었다. 조령샘물에서 목을 추기는 길손이시여! 사랑 하나 풀어 던진 샘물에는 바람으로 일렁이는 그대 넋두리가 한 가닥 그리움으로 솟아나고 ... 우리는 한 모금의 샘물에서 우리를 구원함이 ?임을 인식합시다. 우리는 한 모금의 샘물에서 여유 있는 벗이 산임을 인식합시다. 라는 내용이었다.
<조령산 정상에서 ...>
- 11:30 조령산 정상
- 들머리에 든지 1시간20여분 만에 정상에 올랐다. 들머리에서 정상까지 오는 구간은 춘천근교 대룡산이나 금병산이 연상될 정도로 전형적인 육산의 느낌이었다. 숲의 우거진 정도도 그렇고 탐방로 주변의 식생 환경도 그러하였다.
- 정상에 도착해 보니 우리 일행 이외의 개별 산객 3분이 먼저 도착해있었다. 정상 안부 역시 특이함은 없었지만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 있었다. 2012. 4. 29 백두산악회에서 세운 여성산악인 (고) 지 현 옥 님의 추모비였다. 목재로 만들어진 비문 내용이 인상 깊었기에 원문을 소개한다. 세운지 얼마 되지 아니한 비문 일부가 훼손되어 그 뜻을 읽을 수 없는 부분이 있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무슨 원한이 있기에 비문을 훼손하였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산을 사랑하고 산을 즐기시는 산객이시여 반성할 지어다. 를 외치고 싶었다.
- 먼저 가신 산악인이시여! 고이 잠드소서! 오늘 조령산 정상에 오른 모두산악인들은 고인께서 이루신 과업을 되새겨 보면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로 묵상을 마쳤다.
- 정상에서 북으로는 톱날같이 날카로운 주능선 너머로 신선봉, 마패봉이 눈부시게 깔렸고 그리고 멀리 월악산이 운무 속에 희미하게 잡혔다. 북쪽 방향에서 시계바늘 방향으로는 만수산, 포암산 등이 그림같이 펼쳐져 보이고, 동으로는 주흘산이 길게 늘어섰다. 운무가 옅게 깔려 시원한 조망은 접어야했지만 지척의 풍광을 만끽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마당바위갈림길>
- 12:18 마당바위갈림길
- 이 지점에 이화령 3,7km, 조령산 0,8km, 제3관문 4,6km, 신선암봉 0,9km, 문경새재(마당바위) 2,4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이 지점까지 오면서 여러 종류의 이정표가 혼재해 있었는데 이곳 역시 이정표마다 주요지점별 이정이 서로 달리 표기되어 있어 혼란스러웠다. 이런 상황은 전 구간에 걸쳐 내내 이어졌다.
- 점심시간을 넘긴 시간대였기 때문에 이곳 안부에서 점심식사를 검토하였지만 신선암봉으로 접어들면서 첫 번째 맞이하는 깔닥 구간이 마음에 걸렸다. 점심식사 직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우선 첫 고비는 넘기고 보자는 심정으로 신선암봉 첫 무대를 넘었다.
- 마당바위갈림길에서 20여분 남짓 진행하면서 밥자리로 이용되는 능선안부가 나왔다.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배낭을 풀었다. 이 지점을 넘기고 나면 지난번 고성 신선봉에서와 같은 상항을 맞이할 것이 불을 보듯 뻔 하였기 때문이다. 밥자리가 다소 궁색하기는 하였지만 선후미간 교대로 먹어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큰 불편은 없었다.
- 여기서 선발대를 먼저 출발시키고 후미팀의 점심식사가 거의 끝나는 시점에 중간팀과 함께 출발하였다.
<신선암봉을 지나며 ...>
- 13:50 신선암봉 경유
- 조령산 종주코스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암봉구간으로 조망이 좋고 오르내리는 코스도 다양하여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구간이다. 신선암봉으로 오르는 코스는 조령산의 등, 하산로로 이용되는 절골에서 암벽훈련장 앞을 지나오르는 코스와 절골에서 중암절로 오르거나 용성골을 기점으로 오르는 코스등 다양하다. 이곳을 지나면서 신선암봉의 바위슬랩과 제3관문으로 뻗은 백두대간의 위용을 실감할 수 있다. 위험구간 요소요소 마다 로프가 설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어제 내린 비 때문에 물기 머금은 바위와 나무뿌리가 위험요소로 작용하였다. 로프타기에 미숙한 일부 일행 분들은 미끄러지기 일쑤였고 바위벼랑 이곳저곳에 몸을 부딪치며 힘겹게 통과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을 조여야만 하는 아슬아슬한 순간이 연속이어 졌다.
- 난이도 높은 구간을 통과하면서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아름다운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연출되었다. 설악산의 공룡능선이나 마등령 등, 고성 신선봉의 암릉구간 보다도 난이도 면에서 한 수 위로 느껴질 정도였다. 구간 마다 먼저 오르거나 내려가신 분들께서 일일이 착지를 짚어 주면서 이끌어 주시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아하! 바로 이것이구나? 하는 탄성이 절로 터졌다.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여 더불어, 함께, 모두가 일심동체가 되어 난관을 극복하는 모습이 그렇게도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너와 내가 따로 없는 오로지 하나 된 모두의 진면목을 찾아볼 수 있는 순간순간이 감동! 감격! 바로 그 자체였다.
- 높이가 5m 이상 되는 수직 암벽 외줄타기 유격훈련장에서의 일이다. 나무꾼 한 분이 먼저 올라가시고 두 변재로 오늘 신발창이 부실하여 미끄럼타기 선수였던 선녀님께서 로프를 잡고 오를 준비를 하고 계셨다. 앞뒤에서 감독과 코치의 주문이 쇄도하였다. 로프를 두 손으로 꽉 잡고 두 발을 어깨넓이로 벌리고 직각으로 버틴 다음 힘차게 로프를 당기면서 올라오라는 주문이 떨어졌다. 뒤에서 그 광경을 물끄러미 관망하던 대장이 그 순간을 놓질 리가 없다. 대장 왈! 그 선수! 내려가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올라타는 데는 선수랍니다! 라는 조크에 한바탕 웃음보가 터지고 나서 엔도르핀이 생성된 듯 단순에 올려 채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맞아! 이런 때 재미있는 말 한마디가 보약이구먼! 을 속으로 뇌까리면서 암벽을 넘었다.
<꾸꾸리바위 갈림길>
- 14:23 꾸꾸리바위갈림길 경유
- 이 지점에 제3관 3,4km(암릉구간 1,2km), 이화령 4,9km, 조령산 2km, 신선암봉 0,3km, 문경새재(꾸꾸리바위)2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신선암봉에서 0,3km 지점을 경과한 지점이지만 암릉은 끝없이 이어졌다. 아직도 1,2km 암릉구간을 포함하여 제3관까지 3,4km가 남았으니 길길이 태산 같았다, 차라리 높은 봉 하나를 넘고 긴 내리막으로 이어졌으면 좋았으련만 올망졸망한 암릉 길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일행들이 진이 다 빠졌다.
<928봉>
- 14:50 928봉 경유
- 이 지점에 928고지를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앞면에는 928봉, 뒷면에는 게림요업 백두대간원정대 자연과 사람을 생각하는 기업 KELIM 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신선암봉과의 연속이기 때문에 구분이 가지는 않았지만 암릉상에 우뚝한 봉우리로서 주변 조망에 기여한다. 이미 하산예정시간에 임박한 시간대였지만 갈길이 아득하였다. 표지판을 앞에두고 기념 몇 컷 남기고 발길을 서둘렀다.
<제2관문갈림길>
- 15:38 제2관문갈림길 경유
- 이 지점에 문경새재(제3관문) 2,2km, 문경새재(제2관문) 1,8km, 이화령 6,1km, 조령산 3,2km, 신선암봉 1,5km(암릉구간) 1,2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문경새재 제3관문까지 2,2km남았는데 이 구간 중 1,2km가 암릉구간으로 표기되어있었다. 깃대봉갈림길까지 암릉으로 이어졌다는 얘기였지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꾸꾸리바위갈림길을 지나면서 암릉구간이 1,2km였었는데 여기서도 1,2km구간이 암릉구간이라니 어처구니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일 뿐 거역할 수 없었다. 여기서부터 중간 팀을 벗어나 단독 산행 길에 올랐다. 앞서가신 몇몇 분들의 진로가 궁금하여 선두를 따라잡을 요량이었다.
<깃대봉갈림길>
- 16:17 깃대봉갈림길 경유
- 제2관문갈림길에서 잠시 내려가면서 선발팀 몇 분과 합류하였다. 깃대봉갈림길이 너무나 지루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혹시나 지나치지나 않았나 하는 염려스러움에 조바심이 났다. 지금까지의 진로 상황으로 봐서 절대 그럴 리는 없을 것이라고 장담은 하면서도 혹시나 모를 일이었다. 선발팀을 뒤로하고 단숨에 내달린 끝에 제2관문갈림길에서 1,2km 지점에 있는 깃대봉갈림길에 당도하였다. 그제야 그러면 그렇지! 하고 안도의 한숨을 삼킬 수 있었다. 도상연습을 통하여 산행안내준비를 하면서 중요지점으로 점지해 둔 갈림길이 바로 깃대봉갈림길이었던 것이다.
- 제2관문갈림길에는 조령산 ?km, 5시간정도 소요, 깃대봉 ?km 10분정도 소요, 제3관문 1km 20분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안내되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거리개념이 없었다. 예의 없고 불량스런 산객의 소행으로 거리에 관한 제원이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이 지점까지 오면서 이와 같은 상황은 수 없이 겪었다. 있을 수 없는, 있어서는 절대 안 되는 상황이 오늘 현장에는 분명히 존재해 있었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깃대봉(치마바위봉)>
- 16:22 깃대봉 정상 도착
- 깃대봉까지 단독 등정하였다. 깃대봉은 치마바위봉으로 표기된 등산지도도 있다. 오늘 일정안내 시간을 통하여 누누이 강조한 지점이 깃대봉갈림길에서 깃대봉정상 구간이었다. 이 갈림김에서 깃대봉정상까지 올라갔다가 갈림길까지 되돌아 내려와 제3관문까지 하산을 권고한바 있었지만 당시의 상황으로 봐서 깃대봉까지 안내하는 데에는 물리적으로 한계를 느꼈다. 이미 하산예정시간을 상당시간 지체한 상황에서 깃대봉 정상 경유가 무리수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 깃대봉 정상에 발도장을 찍기는 하였지만 인증 샷을 남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단독 등정이었으므로 정상 표주를 기념으로 담아 놓고 뒤에 따라 올라오는 일행 분들을 기다리면서 궁금했던 숙제를 풀기 시작하였다.
- 제2관문갈림길에서 깃대봉까지 오는 동안 눈에 띄지 않는 일행 한 분의 신상파악에 들어갔다. 손소리통을 때려본 즉 그분의 현 위치가 수옥폭포, 수옥정주유소 방면 도로상이라고 하시면서 대장님! 어쩜 좋아요? 울먹이면서 절망감에 빠진 다급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둔기에 뒤통수라도 한 방 얻어맞은 듯 한 기분이었지만 그런 기분에 사로잡혀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일단 수옥정주유소에 들러 제3관문가는 길을 알아보고 다시 전화해 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서둘러 하산길에 올랐다. 깃대봉 정상에서 2~3분정도 내려오다가 깃대봉을 오르시는 회장님과 계수나무님을 만났다. 평소 같았으면 따라 올라가 인증 삿을 남겼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진로를 이탈한 일행의 사안에 대해 회장님께 말씀드리고 발길을 서둘렀다.
- 깃대봉갈림길에 당도하면서 길 잃은 어린양으로부터 손소리통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조령관문 아래 고사리주차장까지 40분 정도 소요된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현재 선발팀에서 제3관문까지 약 20분 정도 소요되고 제3관문에서 주차장까지 약 30여분 소요되는 만큼 당황하지 말고 주차장까지 찾아올 것을 당부한 다음 갈림 길목에다 진행방향표식지를 깔고 제3관문으로 향했다. 깃대봉을 경유하지 말고 곧바로 하산을 권고했던 것이다.
- 그분의 행적이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를 않았다.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갈라졌는지 감이 잡히지를 않았다. 길목 요소요소에 진로를 안내하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진로를 이탈 할래야 이탈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엉뚱한 코스로 하산한 일행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건방진 똥덩어리 낙동강 700리 거슬러 올라간다고 낙동강 오리알 될 뻔 했던 사안이 흠으로 남는다. 소요시간면에 있어서는 할 말이 없지만 진로 안내에 대해서는 꼼꼼히 챙기느라고 심혈을 기울였건만 허사가 되고 말았다.
- 깃대봉은 해발835m이다. 백두대간을 따라 이화령에서 조령관(제3관문) 쪽으로 조령산을 종주하면 마지막에 오르는 봉우리로서 지도상에 이름은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등산지도상에 깃대봉이나 치마바위봉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 모습이 깃대처럼 뾰족하여 붙여진 이름이리고도 하고 옛날 깃대를 꽂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전한다. 삼각점이 있으며 바로 옆에 844m 고지와 붙어 있는데 보통 844m 고지는 거치지 않고 깃대봉갈림길까지 되돌아 내려와 제3관문으로 하산한다. 깃대봉 정상에서는 월악산의 주능선과 만수봉, 포암산, 부봉, 주흘, 조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한눈에 잡히지만 조망에 한눈팔 겨를이 없이 단순히 깃대봉 정상 표주 사진 찍으러 올라갔다가 내려온 꼴이 되고 말았다.
<조령관문>
- 16:50 제3관문(조령관)경유
- 조령제3관문에 당도해 보니 깃대봉을 올라간 사이에 깃대봉갈림길에서 곧바로 하산하신 일행 분들이 산장에서 지역 향토 막걸리를 받아 놓고 갈증을 풀고 계셨다. 막걸리 몇 사발을 단숨에 넘기고 숨고를 겨를도 없이 주인장을 찾았다. 주차장 찾기 작전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제3관문에 이르면서 방향감각을 잃었기 때문에 주차장 방향이 생각했던 것 보다 엉뚱한 방향으로 가늠이 되었기 때문이다. 권 희 성기사님과 전화통화를 통하여 진로를 잡아놓고 제3관문을 빠져 나왔지만 갈수로 태산이었다. 고사리주차장이 무려 2km밖에 있었던 것이다. 문경새재과거길을 따라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 옛날 선비처럼 문경새재 길을 체험할 수 있었지만 일정에 쫒기는 신세라 실감할 겨를이 없었다. 앞으로 기회가 닫는다면 계절을 잘 골라 문경새재 과거길을 여유 있게 걸으면서 막걸리도 한 사발 마시고 일일 선비가 되어보는 기회를 잡아볼 것을 염두에 두었다.
- 여기서 산장 주인장에게 들은 얘기 한 토막을 짚고 넘어간다. 그분 왈! 오늘 우리가 종주한 백두대간 구간은 아무나 넘나드는 코스가 아니라는 것이 일성이었다. 이어서 오늘 이 구간을 넘으면서 로프를 몇 개나 탔느냐는 질문 공세가 펼쳐졌다. 정답을 확인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산행안내준비를 하면서 인터넷 이곳저곳을 누비고 돌아다녔지만 로프가 몇 개라고 소개된 자료는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즉시 모르쇠 옵니다! 라고 고하였다. 그분 왈! 총 42개라고 귀띔해 주셨다. 아뿔싸! 우리가 오늘 그렇게 많은 로프를 잡았단 말인가?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 이어서 조령관문을 살펴보고 넘어간다.
▶ 주흘관(主屹關) - 영남제1관(嶺南第1關)
남쪽의 적을 막기 위하여 숙종 34년(1708)에 설관 하였으며 영남 제1관 또는 주흘관이라고 한다. 정면 3칸(間)과 측면 2칸 협문 2개가 있고 팔작(八作)지붕이며 홍예문은 높이가 3.6m, 폭 3.4m, 길이 5.4m이며 대문의 높이는 3.6m, 폭 3.56m, 두께 11㎝이다. 좌우의 석성은 높이 4.5m, 폭 3.4m, 길이 188m이고, 부속 성벽은 높이가 1~3m, 폭 2~4m이다. 길이는 동측이 500m, 서측이 400m로 개울물을 흘러 보내는 수구문이 있으며 3개의 관문 중 옛 모습을 가장 잘 지니고 있다.
- 주흘관을 지나면 좌측 옆 전나무 그루터기에 "경상북도 개도 100주년"을 기념하여 매설한 타임캡슐장소를 볼수 있으며 조금 더올라가 왼편으로는 요즘 방영하고 있는 KBS사극 드라마 촬영지인 "문경새재 오픈 세트장"도 볼 수 있다. 세트장 구경을 다 하고 올라가다가보면 오른편 돌담만 남아있는조령원터가 나타난다. 조령원터에는 날이 저물어 새재를 넘지 못한 나그네들이 늘어놓는 애잔한 인생담이 들리는 듯하다. 다시 오르는 길 왼편으로는 나그네들이 여독에 찌든 육신을 술타령으로 달래보던 주막이 인적없이 그 자리에서 오늘도 나그네들을 그리워 하고 있다. 2km 올라가다 보면 용추폭포의 절경에 자리잡은 교귀정은 경상감사가 경상도 땅에 첫발을 내딛고 관인을 인계인수하던 유서깊은 곳이 보이게 된다.
▶ 조곡관(鳥谷關) - 영남제2관(嶺南第2關)
선조 27년(1594)에 충주인 신충원이 축성한 곳으로 중성(中城) 이라고도 한다. 숙종조에 관방을 설치할 때 옛 성을 개축하였으나 관(關)은 영성(嶺城 : 3관문)과 초곡성(草谷城 : 1관문)에만 설치하고 이곳에는 조동문(鳥東門) 또는 주서문(主西門)을 설치하였다. 그후 1907년에 훼손되어 1975년에 복원하였다. 이렇게 복원한 문루를 옛 이름 조동문(鳥東門)이라 하지 않고 조곡관(鳥谷關)이라 개칭하였다. 누각은 정면이 3칸 측면 2칸이며 좌우에 협문이 2개 있고, 팔작(八作)지붕이다. 홍예문은 높이가 3.6m, 길이 5.8m이다. 대문의 높이는 3.6m, 폭 3.56m, 두께 11㎝이다. 좌우의 석성 높이는 4.5m, 폭 3.3m, 길이 73m이고, 좌우의 성벽의 높이는 2m, 폭 2~3m, 길이는 동측이 400m, 서측이 100m이다.
- 주흘관에서 3.0km를 지나면 좌우의 계곡이 좁아지면서 아름다운 경치속에 문경 제2관문인 조곡관(鳥谷關)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조곡관은 천험의 요새임을 느끼게 하는 곳으로 기암절벽이 조곡관을 굽어보며 우람하게 서 있고, 조곡관 뒤 우거진 송림은 신립장군의 한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가로이 산들바람에 춤을 춘다. 조곡관 송림뒤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계곡사이로 흐르는 용천수인 조곡약수(鳥谷藥水)는 물맛이 좋아 길손의 갈증과 피로를 풀어준다.
▶ 조령관(鳥嶺關) - 영남제3관(嶺南第3關)
새재 정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의 적을 막기 위하여 선조 초에 쌓고 숙종(숙종 34년 : 1708) 때 중창하였다. 1907년에 훼손되어 육축(陸築)만 남고 불탄 것을 1976년도에 홍예문및 석성 135m와 누각을 복원했다. 누각은 정면이 3칸, 측면 2칸이며, 좌우에 협문이 2개 있으며 팔작(八作)지붕이다. 홍예문은 높이 4.5m, 폭 3.2m, 길이 185m이고 성벽의 높이는2~3m, 폭 2~3m, 길이는 동측이 400m, 서측이 400m이며 대문의 높이는 3.9m, 폭 3.56m 두께 19㎝이다.
- 조곡약수터를 지나 2.3km를 지나면 고려말 공민왕시대의 유적지 동화원을 볼 수 있고 다시 2.2km를 더 가게 되면 문경 제3관문인 조령관(鳥嶺關)을 볼 수 있다. 조령관 좌측 길가에는 청운의 뜻을 품고 한양 길을 재촉하던 영남의 선비와 길손들의 갈증을 식혀주던 역사속의 명약수인 새재약수터가 있으며 "한국의 명수 100선"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조령관 문류에 올라보면 소백의 높고 낮은 봉우리가 충청북도와 도계(道界)를 이루며 조령관 용마루를 타고 서남쪽으로 달린다. 조령관 지붕위에 떨어진 빗물은 남쪽은 낙동강물이 되고 북쪽은 남한강으로 유입되어 용마루는 분수령이며 도계이기도 하다. 문경새재 1관문에서 3관문까지는 어린이나 여성, 노약자 분 까지도 쉽게 걸을 수 있는 평탄한 길로 천혜의 자연 경치와 많은 공기를 마실 수 있어 걷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청운의 꿈을 안고 걷던 그 옛날의 선비처럼 문경새재의 길을 체험할 수 있다.
- 여기서 박 종 남 시인의 문경새재 시 한 수를 소개한다.
문경새재 < 박 종 남 >
태백준령 누운 허리
삼남(三南)을 가름하고
조령관(鳥領關) 노송 위
언친 구름 햇빛을 드리우며
거슬러 삼관이라 하였든가
충청 영남 한 자욱 놓였으니
구비마다 감실감실 양떼 노니는 듯
골마다 태고의 모연(慕煙)
스러지는 듯, 하다마는
낙옆 위 떨친 방울 여울져 흐르니
조곡령 태동 할 제(際)
조령 나래아래 주흘관 펼쳐
오색바위 장림 속에
일관 이관 삼관이
꿈길에 아득하고
이화령(梨花領) 괴산 절벽
바람 끝에 소스라쳐
문경을 넘나들고
남북 천리 길에
길손의 눈길만
번거롭구려
<조령산성>
- 조령관문 일원의 조령산성을 소개한다.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충주 달천에서 배수진을 쳤으나 패하자 조령로를 막지 못한 것을 크게 후회하고 방비가 없음을 한탄하였다. 명나라 측에서도 선조가 안주에 파천하여 있을 때 백상루에서 유원외가 선조에게 조령관 설비의 필요성을 역설하게 하였다. 그렇지만 전란에 따른 물자의 결핍으로 인해 중국 산해관처럼 하자느니 조령만이 천험은 아닌데 다른 곳은 설관하지 않아 되겠느냐는 등 논의만 거듭하게 되었다. 결국 평안감사 이원익, 병사 신집, 우승지 유몽정, 주서 김상설, 검열 조유한 등의 논의로 죽령과 조령에 설관하기 위한 자료수집차 화공 12인을 중국에 파견토록 선조의 지시가 있었으나 파견이 중지되었다. 선조 26년 12월 영의정 류성룡이 성에 의지하여 승전한 경험을 들어 조령 설관을 다시 주장하여 선조도 조령 설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류성룡은 수문장(守門將) 신충원(辛忠元)의 조령지세와 설관 및 설관 후 파수 계책에 대한 것을 듣고 선조 27년(1594) 2월에 상주(上奏)하게 하였다. 조령은 나라의 문과 같아 충주를 지키자면 조령에서 막아야 되고 충주가 함락되면 한강수백리(漢江數百里)를 자연히 잃게 된다. 충주 사는 수문장 신충원이 조령지세를 잘 알고 있다.
- 조령의 영상(嶺上)에는 잡로(雜路)가 많아 막기가 힘들고, 영(嶺)에서 동쪽으로 10리쯤 내려가면 깍아지른 절벽이 양쪽으로 솟고 그 가운데로 물이 흘러 행인들이 나무를 걸치고 건너야 한다. 이와 같은 곳이 무려 24곳이나 된다. 또 응암(鷹巖)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 설관하여 적이 이곳에 이를 때 다리를 철거하고 물을 막았다 트면 감히 발붙이기가 어렵고 궁노(弓弩)와 능철화포 등을 쏘면 백여명이 지킬 수 있다. 문경 동쪽에는 구로(舊路)가 있어 조령의 서쪽에 이르게 되나 백년간 사용치 않아 산림이 울창하고 하늘이 보이지 않아 다니기 어렵고 문경 서편에도 소로가 연풍현의 동쪽에 닿으나 워낙 험준하여 여기도 수십인이면 지킬 수 있다. 연풍읍과 수회촌의 땅이 기름지니 승군(僧軍) 산척(山尺) 백여인을 얻어 둔전경종(屯田耕種)하여 군량에 충당하고 화약총포를 얻어 주야로 조련하면 정군(精軍)을 얻을 수 있으니 농자(農資)를 주어 파견하자고 건의하여 선조의 윤허를 받았다. 신충원은 곧 사람을 모아 축성을 하였으니 선조 27년 10월의 일이다. 용장에게 수백명을 주어 지킨다면 대병(大兵)이 쳐들어 온데도 전일 같이 유린당하지 않을 것이다. 신충원이 성을 쌓고 난 후 죽령에도 축성케 하면 좋은 성과를 얻을 것 같다는 상계(上啓)가 있었으나 물력이 부족하여 시작하지 못했다. 비변사(備邊司)에서는 징천인(徵賤人)이 축성의 거역(巨役)을 마쳤다고 포상하자고 건의하여 선조의 윤허를 받았다. 논의뿐이던 설관이 수문장에 의하여 완공되자 요새방어를 위하여 용장의 배치 건의가 있었고 비변사에서는 경상좌도에서 방어를 맡으라는 등의 논의가 계속되었다.
- 선조 30년(1597) 2월 신충원이 파수관(把守官)으로 임명되어 응암의 일자성(一字城)을 쌓고 가운데 문을 세워 고개 밑을 내려다보게 하는 축성이 끝났다.신충원은 훈련원 주부(主簿)로 승진하고 조령은 중요 관방(關防)으로 방어책임이 분담되었으나 임란이 끝나자 조령 수어(守禦)에도 관심이 없다가 인조(仁祖) 16년 왜구의 동란이 심상치 않아 비국당상(備局堂上)에서 조령 등 남관요충(南關要衝)의 수호계책이 논의된 적이 있다.
- 축성공사는 문경현감 이중창과 영비(營裨) 손명대에 의하여 수마석(水磨石)과 잡석소편(雜石小片)으로 쌓아 가자(加資)되었다. 그러나 숙종 38년 5월에 축성상태가 부실하여 무너졌다는 서종태의 보고에 의하여 현감과 영비는 삭탈 당하고 논죄(論罪)됐었다. 그 규모는 기록에 따라 다르나 남북 18리 18,509보인가하면, 남북 8리에 둘레 18,509보로도 기록되고 있다. 성이 3곳의 골짜기를 막고 있는데 하나는 고개 정상에 있어 충청, 경상 두 도의 경계를 이루며 조령관(鳥嶺關)이라고 하고, 하나는 응암에 있는데 신충원(辛忠元)이 쌓은 옛 성으로서 조동문(鳥東門)이라 하며, 하나는 초곡(草谷)에 있는데 주흘관(主屹關)이라 한다. 위의 세 곳은 모두 홍예문이 있으며 대로를 통하도록 되어 있다. 성내(城內)에서는 여러 갈래의 개천이 있고 항상 맑은 물이 흘러간다.제1, 2, 3관문은 양쪽 산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다. 관문 좌우의 성벽은 능선을 따라 우회하며 높이 솟은 봉우리 6부 능선쯤에서 끝났다가 다음 골짜기로 이어져 있다.
<조령산자연휴양림입구에서 ...>
- 17:51 조령산자연휴양림 경유
- 조령산자연휴양림은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 산 1-1번지에 위치해 있다. 1995년 1. 25 개관하였으며 충청북도가 관리주체이다. 구역면적은 766 ha에 이르고 수용인원은 일일 170명 정도이다.
- 조령산자연휴양림은 충북 괴산의 연풍면소재지와 온천관광지인 수안보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곳으로 울창한 소나무 숲과 기암괴석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백두대간 준령의 조령3관문 아래, 아늑한 계곡에 자리 잡고 있으며 주위로 조령산과 신선봉, 마역봉 등 명산이 휴양림을 감싸고 있다. 아름드리 소나무림속에 통나무로 만든 가족단위 숲속의 집과 단체용 임간수련장이 있으며 사계절썰매장, 어린이물놀이장, 놀이터 등 놀이시설과 산림욕장, 매점, 임산물판매장, 야영장, 취사장, 샤워장 등 야영 및 휴양시설을 갖추고 있다.
- 휴양림 인근에는 충주호, 수안보, 월악산, 쌍곡계곡, 화양동계곡 등 충북의 유명관광지가 있으며 연접한 경북에도 문경새재도립공원이 있는 등 휴양림을 중심으로 많은 관광지가 분포되어 있어 다양한 관광이나 등산이 가능하다. 또한, 조령산자연휴양림은 옛 선비들이 넘나들던 새재 과거길, 조령 제3관문(사적 제147호)에 얽힌 역사 등 조상의 얼과 문화가 살아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고사리주차장>
- 18:00 고사리주차장 도착
- 하산예정시간을 무려 3시간이나 지체하였다. 후미 팀과의 시차를 줄이기 위해 세월아 네월아 노닥거리며 내려왔음에도 불구하고 후미 팀의 상황은 요원하였다. 고사리주차장에 도착해 보니 이미 먼저 하산하신 일행 분들은 막걸리 파티가 한창이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연거푸 몇 잔 세례를 받고 나니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눈까풀이 풀렸다. 이 장 길(장글도)님께서 베풀어 주신 후의에 깊이 감사드린다.
- 오늘 날머리인 고사리주차장은 원풍리에 소재한다.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院豊里)는 본래 연풍군 현내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신풍동(新豊洞) 사동(寺洞)과 고사리(古沙里)면의 수옥리신혜원을 병합(倂合)하여 신풍리(新豊里)와 신혜원(新惠院)의 이름을 따 원풍리(院豊里)라 하였다. 고사리(古沙里)는 조령 삼관문으로 가는 도로변에 있다. 옛날 주막 마방집 등이 있던 곳이다. 지금은 펜션, 민박 등 위락시설이 들어서 있다.
<하산행사장 건배장면>
- 주차장에 도착하면서 제일 먼저 눈길에 잡힌 분이 길 잃은 양의 신세가 됐던 왕비님이었다. 대장님! 어쩌면 좋아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애걸복걸하시던 분이 중간 팀 보다 먼저 제 집을 찾아 내려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희희낙락 무용담을 털어놓고 계셨다. 지금도 현장에서 총무님을 만나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투정을 부리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지난번 찰과상 입은 그 자리에 또 다시 찰과상을 입는 수난을 겪으면서 낙동강 오리알 될 뻔했던 우발사안이 마음을 무겁게 하였다. 앞으로 그런 사안이 발생할 경우 무작정 내려가지 말고 간 길을 되돌아 올라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교훈을 주었다. 오늘 체험은 앞으로의 산행에서 좋은 경험으로 작용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오늘 하산행사는 후미 팀을 여유 있게 기다리면서 느긋하게 치렀다. 그러나 후미 팀을 기약 없이 무작정 기다리면서 여유 있게 술 잔을 기울일 상황이 아니었다. 하산행사 건배장면을 디카에 담고나서 슬며시 하산행사장을 빠져 나와 조령산자연유앙림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후미 팀을 마중 나갔던 것이다. 휴양림 갈림길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발길을 멈췄다. 차도와 지름길 중 어느 길로 내려올지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후미팀장이신 용 황 경(팬더곰)님 일행을 맞이하기는 하였지만 오늘 우리 모두와 처음 인연을 맺으신 선녀 두 분이 아직 남은 상황이었다. 무턱대고 차도로 진로를 잡아 민박촌까지 올라가면서 마지막 후미 일행과 합류하여 동행하였다.
- 하산행사가 거의 끝나갈 즈음 후미 팀 하산행사는 별도로 조촐하게 치러졌다. 모두님들의 열렬한 환호가 터져 나오면서 여러 분들에게 심려와 누를 끼친 죄책감에 몸 둘 바를 몰라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또 다른 격려와 위로가 터져 나와 장내 분위기가 환영의 물결로 넘쳐났다.
□ 산행을 마치고
- 오늘은 난코스답게 부상을 입으신 분들이 의외로 많았다. 바위에 부닥치고 쓸리면서 옷이 찢기면서 찰과상을 입는가 하면 신발 선택이 잘못되어 수시로 미끄러지면서 타박상을 입으신 분도 계셨다. 다행스러운 것은 가벼운 찰과상이나 타박상 정도로 일상이 마무리 되었다는 점이다. 위험구간이 요소요소에 도사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아름다운 하나 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또 하나의 새 역사를 쓴 날 중 하루로 기억되리라 본다. 현장에서 모두가 조연 아닌 주연으로 눈부시게 활약해 주신 모두님들께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린다. 특히, 후미 팀을 안전하게 이끌어 주시느라 수고해 주신 용 환 경(팬더곰)님과 함께 동행하시면서 도움 주신 최 정 규님, 박 기 성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 오늘은 종주코스 진로안내에는 별 탈 없었던 것으로 사료되지만 소요시간 면에서 시사 하는 바 컸다. 산행안내 준비를 하면서 현장에 설치된 안내시스템에 비중을 두고 소요시간을 판단하였었는데 현장의 상황과 맞아 떨어지지 아니하는 우여곡절을 겪는 바람에 많은 분들에게 몸과 마음으로 고통을 드리게 된 점에 대하여 심심한 유감의 뜻을 전한다.
- 후미 팀의 하산시간이 상당시간 지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무람 없이 기다려 주시고 격려해 주신 모두님들의 성숙된 면면을 보면서 우리 모두의 밝은 앞날을 내다볼 수 있었다. 고통을 나누고, 기쁨을 함께하면서 모두가 하나 되는 파노라마를 한 편의 드라마로 갈무리하고자 한다. 오늘 하산 직전행사에 막걸리를 협찬하여 일정 중 쌓인 피로를 확 날려 주시고, 귀로 휴게소에서 음료수를 협찬하여 갈증을 풀어주신 이 장 길(장글도)님에게 깊이 감사드리면서 조령산 일상정리를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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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앞에서 당겨주고!
뒤에서 밀어주고!
우리는 해냈습니다.
앞으로 이보다 더 큰 어려움은 없으리라 봅니다.
그래서 귀로 버스내에서 앞으로 이보다 더 힘든 산은 선정하지 않겠노라고 자신있게 선포하였습죠 ㅎㅎㅎㅎ
안내준비를 하면서 암릉구간 어려움은 예상을 했었읍니다만
의외의 현장 상황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지난해 제천 신선봉, 지난달 고성 신선봉, 어제 문경 신선봉을 넘으면서
앞으로 신선짜가 붙은 산은 절대로 안간다고 다짐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또 두고 불일이지유 ㅎㅎㅎㅎ
수고 많으셨습니다
존경하는 대장님!
조령산행은 참으로 값진 산행이었고
오랜 기억에 남는 좋은 산행이었습니다
멋진 승리가 무엇인지를 산행으로 알게된 2012년 7월 12일은
저에게 있어서 빛나는 하루였습니다
보잘것 없는 후기방을 방문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댓글 까정 남겨주시니 영광이옵니다.
부족한 점 많더라도 사랑해 주시고 헤량하여 주시기바랍니다.
대장님 너무 고생 많으셨구요
이런 기회로 우리 모두는 뭐든지 해 낼수 있다는 자부심을 얻었답니다
시간에 쫒겨 이따가 다시 들리러 오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조령산 10개 코스 중 백두대간 종주코스를 선택하여 여러븐들에게 어려움음 드려 송구스럽습니다.
조령산 정상에서 쉽게 쉽게 하산할 수 있는 코스가 여러개 있었습니다만
뭐니 뭐니 해두 이번 코스를 간과할 수 없었습니다.
이번 한 번 만으로 조령산을 얘기할 수 있을테니까요 ㅎㅎㅎㅎ
ㅋㅋㅋㅋ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들의 하나된 모습으로 진 일보와 서로간 우의와 배려
그리고 사랑을 체험해본 일정이였던것 갔아 더욱 감동적입니다 후기를 읽어 가노라니
이제는 웃음을 질수 있는 여유의 미소를 머금고 있습니다 재미나고 기뻐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멋진 산행이었습니다... 또 가고 싶네요 ㅋㅋ
좋으셨다니 천만다행입니다.
앞으로 기회가 온다면 어차피 코스를 바꿔 타야겠죠 ㅎㅎㅎㅎ
지난번 대청봉에서 백담사로 하산할때 울 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조령산 산행을 하면서 다시한번 울 님들이 자랑스럽고 우러러 보입니다.. 대장님 맘 고생 많으셨죠?
저는 후미에서 처음 나오신 분 들과 팬더님과 함께가다가 제몸은 제가 알기에 제가 도움받을 일이 생기면 안될거 같아
먼저 왔어요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그분들께 죄송하구 미인합니다.... 모두님들 모두 모두 고생많이 허셨습니다~~~
총무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래두 산은 괜찮았쥬 ㅎㅎㅎ
ㅎㅎ정말 멋진산행이었습니다....후기를 보니 그날의 기억이 새롭습니다...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생겼습니다...회장님,,대장님,,이하 모두님들 화이팅입니다....
참!!!! 대장님 월악산 신선봉 어떨까요?????????
글세올시다~~~
신선이란 얘기만 들어두 이젠 기절초풍할 지경이랍니당 ㅎㅎㅎㅎ
천길 아니 몇천길 깍아지른 암벽을 가도가도 끝이없는 험준한 산정상에서 내려오지도 올라가기도 힘든상황 살아서 집으로 가야한다는 생각 밖에는 다른건 염두에 없었지요.. 같이같던 동료가 걱정되 로프만 꼭잡으라고 용기를 주면서도 저자신도 내심 두려움에 떨고 있으면서 팔다리에 힘이빠져 떨어지면 죽겠구나 하면서 로프만 꼭잡고 올라갔다 내려왔다 를 반복했지요 .3관을 통과해서는 무전도 안터지고 먼저 내려가신 분들 스틱자리만 보고따라왔죠 ..속아 온거같은 기분이랄까 ...팬더곰..저의남편..넷이서 길 잃어버릴까 걱정하면서 기꺼이 안산했다고 볼수있나요 ``내려오는길에 대장님 마중까지 ..지름길도 못살피고..내려와서 여려분들
솔잎향님 글이 너무나도 감동적이기에 제방으로 옮겼습니다.
말미 부분은 300자 제한으로 자동 삭제되었아오니 양해를 구합니다
그냥 두서없이쓴글입니다 .이런등반을 하시는모두산악회회원분들정말존경합니다. 저도다음엔여러분들대열에끼고싶네요.골치덩이주제였던제가괜한심려를드리는거같아.산행후기를쓰지말걸후회하게되네요.그런데한번또가고싶은데요^^
짧으면서도 할 말씀 다 하신 좋은 글 올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혀유 ~~~
수고 많으셨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닫는대로 산에서 자주 뵙기를 소망합니다.
비 내리는 주말 잘 보내십시오.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이번산행은,
해도해도끝이없을거같아요..
그어느때보다도.
후기글도..긴장문인거같으네요..
오늘이.산행하고이틀이지낫는데도.
아직.
모산방에는.조회횟수가나날이늘어나네요.
어느때부다.,
더진한감정을느껴봅니다..
처음으로나오신.솔잎향님.글을읽으내려가면서.
끝까지챙겨드리지못한점,미안하게생각합니다..
마음속으로는.걱정을하면서.
넘수고많으셨습니다..
지나고나면.보람은.잇는거같으네요..
대장님,
수고많으셨습니다..
고생하셧습니다.
그래도,행복한하루보내고왔습니다..
대장님.
깃대봉.어떻게생겼낭ㅛ>>
부회장님!
넘 죄송합니다.
깃대봉 안내하지 못해서 ~~~
깃대봉 어떻게 생겼냐구요?
깃대봉 깃대처럼 생겼걸라유 ㅎㅎㅎ
담에 기회가 오겠쥬 ~~~
부회장님 성격에 그거 그냥 지나칠 수 없었는데
이해가 안갑니다요 ㅎㅎㅎ
수고많으셨습니다.
이제 조령산에 대해서는
한 말씀 하실 수 있으시쥬 ㅎㅎㅎ
부회장님!
미안하지만 메 ~~~ 롱 올시다.ㅋㅋㅋㅋ
아니예요 제가못해서일어난 해피앤딩입니다^^
이젠자신감도쑥쑥생기는거같네요 ...
다음엔부회장님따라잡으면어쩌시려고 ㅋㅋㅋ
지금은웃으면서 다음도자신있게 산행하렵니다 ^^
절대 그런거 아니구요 ~~~
당일 현장의 상황이 여의치 않았걸랑유 ㅎㅎㅎ
수고 많으셨습니다.
앞으로 우리 부회장님 제켜버리세유
기대하겠습니다.
그렇다구 부회장님 겁먹지 마유 ㅎㅎㅎ
솔잎향님.
웬지제마음에쏙들어오니어찌합니다.
그래서.
마지막하산주할때..꼭안아드렸잔아요..
그래요.
이제는.어디든도전하실수있을겁니다..
자주동참하시길바랍니다..
저따라잡아도괜찬아요..
항상웃으면서
우리함께하기로해요
정말이번에.
넘고생많으셨습니다
남은휴일잘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