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지 못한 자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어느 프로 스포츠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스타들의 화려한 플레이와 그들이 받는 스포트라이트일 뿐, 그들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음지에서 흘리는 땀과 눈물은 그들의 화려한 모습에 가려져 잊혀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 나라는 아직 2군 제도나 2부 리그 등이 제대로 갖추어 지지 않았으니 좀 다른 경우가 되겠지만, 프로 스포츠가 발달한 외국의 경우를 보면, 마이너 리그에서 뛰는 야구선수들이나, 2-3부 리그에서 뒤는 축구선수들의 생활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힘들고 고되다. 박찬호가 지금이야 연봉 2천만불이 어쩌고 사이영상이 어쩌고 얘기를 하지만, 그에게도 언론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눈물 젖은 빵을 먹던’ 마이너 리거 시절이 있었고, 우리 나라 프로야구 사상 최초이자 최후의 4할 타자이며 일본 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타격왕 출신인 백인천도,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해서 2년여 동안은 2군에서 땀과 눈물 속에서 살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독일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는 비어호프도 한 때는 3부 리그에서 무명의 설움을 겪다가 늦은 나이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화려하게 떴고, 이탈리아의 비에리 역시 그런 과정을 겪으며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그들의 화려한 골 세레머니일뿐, 속된 말로 눈물 콧물 질질 짜면서 고생했던 시절은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하는 ‘기억의 저편’에 있다는 얘기다.
얼마 전 ESPN에 기획특집 기사가 난 일이 있었다. 미국의 한 마이너 리그 팀 이야기였는데, 이 팀을 소유한 회사가 부도가 나서 이들은 시즌 내내 매일같이 원정 경기만을 다닌다는 얘기였다. 팀은 회사 소유가 아닌 리그 소속으로 넘어갔고, 팀의 선수들은 조금만 ‘뜬다’ 하면 다른 팀으로 팔아져 구단 운영비에 충당되고, 홈구장도 이동수단도 없는 실정에서 흰색 홈 경기 유니폼 한 번 입어 보지 못하고 각 도시를 전전하며 원정경기를 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연히 선수들의 팀에 대한 애정도, 미래에 대한 확신도 없는 상황에서 단지 빅리그에 대한 꿈과 야구에 대한 열정으로 불안하고 고된 생활을 지탱해 나가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게 웬 7-80년대 한국 스포츠에 유행하던 ‘헝그리 정신’에 대한 얘긴가 싶지만, 분명 1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프로 야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21세기 현재의 한 단면이었다.
이 경우는 사실 매우 극단적인 얘기이기는 하다. 그러나 마이너 리거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스타들의 생활과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현재 청운의 꿈을 품고 태평양을 건넌 우리 나라 야구 선수들의 숫자는 줄잡아 10여명. 그 중 빅리그에서 활약을 하고 있는 일부 선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마이너 리그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있다. 이제는 팬들도 이따금씩 보도되는 인터뷰를 봐서 어느 정도 알고는 있지만, 이들은 메이저 리거들의 화려함만을 알고 있는 일반 팬들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고된 생활을 하고 있다.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 본 일이 언제일지 모를 정도로 대부분의 식사는 햄버거나 인스턴트 식품으로 때운다. 빅리거들에게는 ‘품위를 손상시키는 음식’이라는 이유로 벌금까지 물리면서 금기시하는 음식인 바로 그 햄버거 말이다. 그것뿐인가? 경기를 마친 후 버스를 타고 피곤한 몸으로 장거리를 이동, 숙소 역시 ‘장급 여관’ 수준의 모텔을 이용한다. 연봉 문제는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최고급 식단에 전용기로 이동하고, 숙소 역시 최고급 호텔을 사용하는 빅리거들의 생활과는 천지차이인 것이다.
축구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나라 프로 구단 몇 년치 운영비에 해당하는 금액을 몸값으로 기록하는 선수들이 있는 반면에, 2-3부 리그의 대부분의 구단들은 적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유망주들을 팔아서 선수들의 연봉을 지급하는 일도 허다하다. 구단이 적자이니 선수들의 대우 역시 좋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오히려 한국에서 스타 대접을 받으며 축구를 하는 것이 당장은 훨씬 더 경제적으로 이익일 정도로 말이다.
꿈을 쫓는 선수들
한국 프로 스포츠의 경우는 어떠한가? 2군 리그가 있는 야구와 축구만을 보자. 그나마도 축구는 다른 나라에서 당연히 하고 있는 2부 리그가 아닌 ‘2군’ 리그를 운영하고 있다. 그것도 대전의 경우는 2군을 운영할 돈이 없어서 경찰청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을 정도이다. 그런 2군 리그에도 정규 시즌이 있고 챔피언 결정전도 있다. 경기 일정도 시즌 초에 준비가 돼 있고, 선수 및 심판들도 다 있다. 경기 역시 대부분의 경우는 1군 선수들이 경기를 치르는 구장에서 치러진다. 단, 그곳에는 팬들의 환호가 없다. 말 그대로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다. 2군 리그에 관심을 갖지 않는 팬들을 질타하고자 하는 목적은 아니다. 단지 우리 팬들이 2군 리그에 대해 너무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흥미로울(?) 뿐이다. 우리가 갈채를 보내는 스타들도 2군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는 것을 까마득히 잊고 있다는 사실이, 거기에 대해 관심조차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질 뿐이다. 물론 외국의 경우에도 2군 리그나 2부 리그가 팬들의 관심을 전폭적으로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와는 스포츠에 대한 개념 자체에 있어 많은 차이가 난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의 상황과 우리의 상황을 비교해서 백보 양보하더라도 우리는 너무 ‘무지’하다. ‘연습생 신화’라는 말이 나올 때에만 그냥 ‘아, 쟤는 2군에서 좀 하던 애였구나.’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한 때 날고 기던 아마추어 선수들이 프로에 와서 2군에서 어떤 생활을 하는지, 1군에서 내려간 선수들이 2군에 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서포터와 구단 관계자들만 알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서포터들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후추가 이번 취재를 기획한 의도는 그것이었다. 2군 선수들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알려 주는 것’. 24시간동안 그들의 생활 하나하나를 취재하고, 그들의 솔직한 생각을 들어 보는 것, 팬들의 환호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뒤에 감춰져 있는 2군 선수들의 땀과 눈물을 후추의 가족들에게 그대로 공개하고자 함이었다.
2군 선수들의 1군 경기 관전
9월 5일. 우리가 처음 포항에 도착해서 찾은 곳은 1군 경기가 열리는 포항 전용 구장이었다. 2군 취재를 간다면서 웬 1군 경기 관전? 우리가 도착한 날은 수요일, 포항의 2군 경기는 다음 날인 목요일에 잡혀 있었다. 우리는 비교를 하고 싶었다. 1군과 2군의 경기, 그리고 구장의 모습, 구단의 지원, 팬들의 성원, 선수들의 경기력 등을 하나하나 직접 비교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또 하나 정말 알고 싶은 것 하나, ‘2군 선수들은 1군 선수들의 경기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부럽다? 별 거 아니다?’ 사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이 부분이었다.
포항 서포터스
경기가 시작되기 전, 우리는 포항을 응원하기 위해 서포터스석에 모여 있는 몇몇 포항 서포터와의 인터뷰를 했다. 아무래도 서포터라면 일반 축구팬들에 비해 그 구단의 2군 선수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그들이 바라보는 2군 선수들에 대해서 몇 마디를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당연한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서포터 중에서도 2군 경기까지 찾아 다니며 경기를 보는 사람은 몇 안 되었고, 우리와 인터뷰를 한 서포터들은 그 중에서도 열혈 서포터에 속하는, 2군 선수 및 구단의 사정까지 훤하게 꿰고 있는 축에 속하는 친구들이었다. 물론, 인터뷰를 한다고 그쪽으로 좀 빠삭한 친구들을 인터뷰에 응하게 한 포항 서포터스 측의 배려(?)도 있었다. ^^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에 2군 선수들이 경기장에 도착했다. 그들은 경기장의 가장 높은 곳에 모여 자리를 잡고 앉아 경기를 관람했다. 2군 선수들은 1군의 홈 경기가 있을 때면 항상 경기장에 와서 관전을 한다. 구단 차원에서 단체로 이동을 해서 관전을 하는 것은 아니고, 오후 훈련이 끝나고 자유 시간에 개별적으로 구장에 도착해서 1군 경기를 직접 보고 배우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그리고 1군 선수들에 대한 구단의 대우와 팬들의 환호를 직접 피부로 느끼면서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한 각오를 한 번 더 다지게 하고자 하는 것도 구단이 의도한 목적 중에 하나일 것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의 어린 선수들이어서 그런지, 사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다만 짧은 옷 밖으로 드러난 근육과 검게 그을린 살갗만이 그들이 운동 선수임을 얘기해 주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공을 쫓고 있었다. 간간히 아쉬운 탄성과 농담이 들리기는 했지만, 자기 팀이 좋은 찬스를 무산시키거나 위기를 넘길 때도 표정의 변화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마음 같아서는 모든 선수들을 하나씩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경기를 보는데 방해가 될 거라는 생각 때문에 주장을 맡고 있는 하용우 선수와 2군에서 뛰고 있는 브라질 출신의 실바 선수와의 몇 마디 나눌 수 있을 뿐이었다.
하용우/실바
1군 경기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지’, ‘자기 포지션에 있는 선수만을 보게 되는지, 아니면 전체적으로 다 보는지’, ‘솔직히 내가 저기에 있으면 훨씬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드는지’, ‘내 포지션의 선수가 부상을 당해서 나에게 기회가 오기를 바라지는 않는지’ 등, 궁금한 질문들을 경기를 관전하며 간간히 던졌다…
내내 지루한 공방전을 벌이던 경기는 결국 홈팀 포항의 0-1 패배로 끝이 났다. 내심 포항이 이기기를 응원했던 우리로서는 적잖이 당황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경기에서 진 후 팀을 취재해야 한다니…’ 머리가 울려왔다. 걱정이 태산 같았다. 위로하는 취재진의 말에 ‘질 때도 있고, 이길 때도 있죠’라고 구단 관계자는 응답을 했지만, 경기가 끝난 후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침통함에 잠겨 있는 최순호 감독의 모습을 보며, 과연 ‘최순호 감독 인터뷰를 성사시킬 수 있을까?’하는 걱정마저 생겼다. ‘경기에 진 날은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전화 조차 걸지 않는다’는 어느 축구인의 말이 떠올랐다. 얼마나 참담했을까? 승점 1-2점 차이로 선두를 다투는 이 중요한 순간의 1패란 최소한 3, 4위의 순위 추락을 가져올 일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움직일 줄 모르던 최순호 감독의 모습을 보며 취재에 대한 걱정과 함께 ‘프로의 살벌한 승부의 세계’가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걱정은 기대감으로 바뀌고 있었다.
0:1 패배 직후의 최순호 감독
‘‘오늘 밤부터 우리는 보이지 않지만 살벌한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는, 어쩌면 2군이라는 멍에 때문에 더욱 날카로운 눈빛을 지니고 있을 ‘전사’들을 취재해야 한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경기가 끝난 뒤 우리는 선수단 버스를 따라 숙소로 향했다. 선수단 숙소는 포항 시내에서 영덕 방면으로 20여분 가량을 달려 흥해라는 곳을 지나야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있었다. 숙소로 이동할 때 구단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1군 선수들이고, 2군 선수들은 경기장에 올 때와 마찬가지로 개별적으로 숙소로 돌아갔다. 포항 스틸러스 클럽하우스는 국도변의 한적한 곳에 마련되어 있었다. 숙소 건물은 3층 짜리 유럽풍 건물이었는데,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깔끔한 느낌을 주는 3층짜리 건물이었다. 대부분의 1군 선수들은 결혼을 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생활하지 않고, 2군 선수들 대부분과 일부 총각 선수들만이 숙소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시간이 늦은 관계로 선수들 인터뷰는 다음 날로 미루고 묵을 곳을 찾으러 다시 바깥으로 나왔다. 평소에는 구단 숙소에 빈 방이 좀 있었는데, 우리가 취재를 갔을 때는 테스트를 받으러 온 고교 선수들이 좀 있어서 우리가 묵을 방이 없었다. 결국 우리는 구단 숙소에서 가까운 모텔에 짐을 풀었다.
엇갈리는 기획 의도
이른 아침, 포항 숙소를 다시 찾았다. 아침에 보는 스틸러스 숙소는 밤에 봤던 것보다 훨씬 더 깔끔하고 좋은 시설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총 4면의 연습 구장이 있었는데 그 중 3면은 천연잔디, 나머지 1면은 최신 인조잔디가 깔려 있었다. 그 인조잔디 구장은 어린 선수들 무릎을 나가게 하는 ‘한국 학원 축구의 문제아’ 효창의 시멘트 인조잔디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선수들은 느끼기에 천연 잔디와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얘기했지만, 실제로 잔디 구장에서 뛰어본 적이 없는 취재진의 느낌으로는 거의 천연잔디를 밟는 느낌이었다. 사실, 축구선수들도 프로에 들어오기 전에는 천연잔디를 밟는 일이 거의 없는데, 우리가 무슨 수로 잔디 구장에서 축구를 해 볼 것인가? 구단 관계자의 설명에 의하면 그 인조잔디 구장은 포항의 축구 단체, 즉 아마추어 축구팀이나 초중고팀 등에게 연습 장소로 대여를 해 줌으로써 구단과 시민들간의 유대를 쌓아가는데 기여를 하고 있다고 했고, 실제로 취재 기간 동안 포항의 한 아마추어 축구팀과 초중고 축구팀이 거기서 훈련을 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포항 스틸러스 클럽 연습 구장
선수들의 식사 시간은 7시 30분이었다. 우리는 그 전에 숙소의 시설을 대충 둘러볼 시간을 가졌다.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2군들도 1군 숙소를 같이 쓰고 있었기 때문에, 도대체 어느 정도의 시설을 갖추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그런데… 처음 숙소에 도착해 들었던 막연한 불안감이 숙소의 내부 시설을 보는 순간 현실로 다가왔다. 지저스… 눈물 젖은 빵을 생각하며 취재를 기획했던 우리의 의도가 단번에 박살이 나는 순간이었다.
스틸러스 숙소에는 감독실을 비롯, 코칭 스탭의 방과 대부분의 총각 선수들 숙소가 1인 1실로 마련되어 있었다. 탈의실, 사우나실, 마사지실, 웨이트실, 회의실 등 각종 운동에 필요한 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 졌음은 물론이고, 노래방, 당구장, 모든 컴퓨터에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는 컴퓨터실까지… 이런 시설에서 운동하는 선수들에게 ‘눈물 젖은 빵’을 기대했던 우리의 생각은 정말 터무니 없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내심 ‘같은 시설을 사용하지만 1군 우선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겠나’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어쩌면 그것이 당연할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취재를 진행하는 동안 이런 하드웨어적인 부분에서 포항 1군과 2군의 차이점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물론 1군 우선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포항 2군 선수들은 정말 좋은 환경에서 운동을 하고 있구나…’ 이렇게 우리의 편견은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포항 전용 경기장에서 처음 마주친 선수들의 눈빛이 내내 마음에 걸리고 있었다.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 말로 농담도 건넬 때 장난기 어린 말로 취재진에 응답을 해 주는 그들이었지만, 1군 경기를 바라보던 순간과 연습을 준비할 때 느꼈던 ‘다른 눈빛’의 의미. 우리는 선수들과의 밀착 인터뷰를 통해서 비로소 그 눈빛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아무리 좋은 숙소에서 잠을 자고, 좋은 환경에서 운동을 할 수 있어도 풀리지 않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갈증. 1군의 주전 선수로 자리매김하기 전에는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그런 아픈 상처와도 같은 갈증을 그들은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의 선입견 가득한 텍스트 컨셉은 ‘눈물 젖은 빵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최소한 포항 구단은 그랬다. 그러나 아직 애초에 의도했던 취재 방향은 유효했다. 있는 그대로 충실히 그들의 모습을 담는 것이 그것이었다. 어설프게 상상하고 의도했던 대로 취재를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우리의 인생을 반추하다는 느낌으로, 무관심하기만 했던 스스로를 반성하면서 애정어린 마음으로 그들을 모습을 바라보기로 했다. 짧은 시간의 취재로 20여명 2군 선수들의 모든 갈증과 좌절과 희망을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할 지라도 가능한 한 많은 모습을 담아와 독자들에게 1군 경기보다도 더 재미있는 경기를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하여…
2군 선수들의 24시간
7시 30분부터 아침 식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모든 선수들이 그 시간 이전에 내려 와서 식사를 했다. 운동 선수들에게 식사는 빼먹으면 안 되는 훈련의 연속, 아침 식사를 거르면 벌금을 매기는 방법으로 선수들을 통제했다. 우리도 선수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선수들의 아침 식사는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매우 단촐했다. 보통 운동 선수하면 앉은 자리에서 고기 5인분 정도는 거뜬히 먹어 치울 것이라고 상상했었는데, (실제로 그동안 이런 저런 기회로 만난 운동 선수들이 먹는 수준을 보면 거의 인간의 수준이 아니었다) 과일 한 조각으로 아침을 때우는 선수도 있었고, 계란 후라이 하나, 또는 빵 한 조각과 우유로 아침을 챙기는 선수들도 있었다. 아침이니까 부담 없이 먹으려는 이유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날은 특히 2군 경기가 있는 날이라 아침을 가볍게 먹는다고 했다.
선수들의 식단은 구단의 주방장에 의해 짜여지는데, 경기가 있기 전에는 힘을 쓰기 위해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하고, 경기를 한 다음에는 피로를 빨리 회복하기 위해 단백질 위주의 식단을 짠다고 했다. 1군 경기와 2군 경기의 스케줄이 다르기 때문에 1군의 스케줄에 주로 따르긴 하지만, 우리가 생각했던 만큼 2군이 ‘찬밥’ 취급을 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보통의 경우 식사를 하고 나면 11시 오전 훈련을 할 때까지 자유시간을 갖는다. 그런데 그날은 오후 3시에 경기가 잡혀 있었기 때문에 오전에는 간단히 러닝과 스트레칭만을 하게 돼 있었다. 식사를 마친 뒤 갖는 휴식 시간에 선수들은 정말 말 그대로 ‘쉬었다.’ 잠을 자는 선수도 있었고, 당구를 치는 선수, 컴퓨터실에서 메일을 보내고 게임을 즐기는 선수도 있었다. 정말 희한한 것은 그 수많은 게임을 하는 선수 중에 단 한 선수도 축구 게임을 하는 선수는 없더라는 것이었다. 동네 게임방 만큼 많은 CD 타이틀이 있었고 그 중에 1/3은 축구게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선수들은 스타크래프트, 포트리스 등 인기 있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정말 웃기는 것은 스포츠 게임을 하는 선수는 죄다 야구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맨날 축구하는 것도 지겨운 데 오락도 축구 오락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 그것보다는 실제 축구 경기를 하는 선수들이 보기에 너무나 현실성이 없는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세상에 어느 축구 경기가 15-13 이런 스코어가 나나? 그리고 어떤 선수든지 두 번 연속 크루이프 턴에 100% 성공률을 자랑하는 오버헤드킥까지… 사이드에서 띄운 공은 헤딩만 하면 골이 되고… 이러니 축구 선수들이 축구 게임을 안 할 수 밖에… 앞으로 게임 개발자들은 해당 스포츠 선수들에게 자문이라도 받아야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2군 훈련 스케쥴표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영어 공부를 하는 시간이 일주일에 두 차례씩 잡혀 있다는 것이었다. 화요일과 금요일 오전에 두 시간씩 계획되어 있는 영어 공부 시간은 외부에서 강사를 초빙해 선수들에게 기초적인 영어 회화를 교육하고 있었다. (당근, 여자 강사였다. ^^;) 우리 나라 운동 선수들의 영어 교육 수준이라는 것이, 개인이 따로 열의를 가지고 배우지 않는 한 중학교 저학년 수준에 그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선수들이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때 운동 선수의 길로 접어들기 때문에, 아무래도 운동 선수가 된 이후로는 정규 수업 시간에 소홀해 지게 되고, 일부, 아니 대부분의 학교에서 운동부 학생들의 수업 불참에 대해 묵인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대학을 나온 선수들도 부상이나 이런 저런 이유로 운동을 그만 두게 되면 딱히 할 일이 없게 되는 우울한 현실을 맞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군 선수들이 받는 영어 교육은 최순호 감독의 건의에 따라 구단이 지원을 하게 됐다고 한다. 이 교육을 통해서 선수들을 영어에 능통한 사람으로 만든다는 목적보다는, 외국인 선수와의 커뮤니케이션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장기적으로는 외국에 진출하는 선수들이 제일 먼저 벽에 부딪히는 언어 문제를 약간이나마 해결해 보자는 감독과 선수, 그리고 구단의 견해가 맞아 떨어져서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수업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사실 학교 다닐 때도 수업을 열심히 받는 학생이 있고 그렇지 않은 학생이 있는 것처럼, 선수들의 경우도 노트를 꺼내 놓고 열심히 필기를 하는 선수가 있었고, 그냥 책에 눈만 고정시켜 놓은 채로 시간만 보내고 있는 듯한 선수도 있었다. 물론, 생전 안 하던 공부를 이제서야 하려니 적응이 잘 안 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1시간 공부를 하고 휴식시간에 나온 선수들의 표정을 보면 ‘축구보다 더 힘들다’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
훈련은 오전과 오후 두 차례씩 하는 날이 있고, 화요일과 금요일처럼 오전에는 영어 공부를 하고 오후에만 훈련을 하는 날이 있었다. 그리고 경기가 있는 목요일에는 간단한 스트레칭만을, 경기 후 금요일에는 회복 훈련을 하는 등, 거의 고정 된 스케줄에 따라 훈련이 이루어 지고 있었다. 9월 6일 목요일 오전 11시.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이 간단한 오전 훈련을 하기 위해 운동장에 집결했다. 전날 경기를 가진 1군 선수들도 회복 훈련을 위해 운동장에 나왔다. 1군과 2군 선수들이 서로 같은 면에서 훈련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겨우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훈련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서로의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계속되는 연승 때문에 2군 선수들의 표정에서는 경기를 앞둔 긴장감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오늘 경기는 자신들이 매일같이 훈련하는 숙소 앞의 경기장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선수들의 표정은 너무나도 여유로웠다. 그런데, 스트레칭을 하는 2군 선수들은 대부분 몸을 풀면서 1군 선수들의 회복 훈련하는 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어제 1군 경기장에서 경기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바로 그 눈빛이었다. 사실 훈련하는 내용이야 1군이나 2군이나 별다를 것이 없는데도 그들의 눈빛은 예상 외로 진지했다. 마치 ‘내가 저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듯했다.
오전의 일정을 마친 후 점심 식사를 갖고, 그 뒤부터 3시 오후 훈련까지는 다시 자유시간을 갖는다. 꽉 짜여진 스케줄에 따라 고생스럽게 훈련할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프로 선수이기 때문에 훈련의 양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뺑뺑이’, 즉 피지컬 트레이닝은 월요일 오전에 두 시간 잡혀있는 것이 전부였다. 대부분의 경우 훈련은 미니 게임을 통해 볼에 대한 감각을 키우고 조직력을 극대화하는 데에 맞춰져 있었다. ‘즐기는 축구’, ‘재미있는 축구’, ‘생각하는 축구’… 적어도 훈련을 할 때의 선수들은 진지함을 잃지 않는 가운데서도 즐거운 표정이 가득했다.
오후 훈련을 마치고 자유 시간에는 외출이 허용된다. 분위기는 긴장감이 흐르기 보다는 자유로워 보였다. 물론, 팀의 성적이 꾸준히 상승세에 있기 때문에 그런 배려가 나오는 것이었을 것이다. 만약에 경기에 지거나 부진했으면 누가 나가라고 해도 숙소에 남아서 야간 훈련까지 알아서 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그런 자유로운 생활 속에서도 선수들은 갑갑함을 많이 느끼는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팔팔한 20대 초반의 나이에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산 밖에 없는 숙소에서 매일 짜여진 스케줄에 따라 생활을 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일부 선수들은 저녁 시간에 주어지는 외출 때 흥해 쪽으로 나가서 바람을 쐬고 오곤 한다고 했다. 포항 시내? 자동차를 타고도 20여분이 걸리는 거리라 거기까지 나가는 일은 드물다고 했다. 나가서 뭐 하냐는 질문에 선수들은 ‘당구도 치고 PC방도 가고 그러죠. 여자친구도 만나구요.’라는 대답을 했다. 아니, 당구장이나 PC방은 숙소 내에도 있는데 뭐하러 거기까지 나가냐는 물음에 ‘답답하잖아요 숙소에만 있으면… 그래서 나갔다가 오는거죠.’라고들 대답했다.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상당수의 선수들이 외박을 나가면 술을 한 잔씩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주중에는 절대 이런 일이 없고 주말 외박을 나갈 때나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간단히 한 잔씩 하는 것이겠지만, 외국 프로 선수들의 생활상을 잘 알고 있는 취재진으로서는 약간의 실망감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경기에 나가지 못하는 스트레스, 언제가 될 지 모르고 막연히 기다려야만 하는 기회, 외딴 곳에 떨어진 숙소 생활에서 오는 적막감. 이런 것들이 술보다 더 경기력을 저하시키는 요인들이기에 차라리 가벼운 술 한잔으로 이런 갖가지 스트레스를 끊어 낼 수 있다면 책망할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이들은 이런 부분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들 스스로도 술이 운동 선수에게 얼마나 안 좋은 것인지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만,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가볍게 한 잔 씩 한다고… 분명 절대적인 가치로 평가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실제 외국의 어떤 유명한 감독은 선수들이 휴일에 가벼운 맥주나 와인 한잔 씩 하는 일을 권하기도 한단다.
목요일 오후, 포항 2군은 정규리그의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조긍연 코치는 경기 전에 미팅을 통해서 간단한 지적 사항을 전달하는 시간이 가졌다. 물론 최순호 감독이 2군까지 총괄을 하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실질적인 권한은 조긍연 코치에게 부여되어 있었다. 포항에서 득점왕에 오른 경력도 있는 조코치는 은퇴 후 축구계를 떠나 있다가 최순호 감독의 부임과 함께 다시 포항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현역 시절의 눈매와 얼굴 생김이 그대로 남아 있는 조코치는 경기의 전반적인 사항과 세부적인 부분까지 꼼꼼히 체크를 했다. 누가 누구를 마크할 것인지, 프리킥 및 코너킥은 누가 전담할 것인지 등에 대해 간단한 미팅을 마친 뒤에 선수들은 다시 한 번 간단한 자체 미팅을 하고 경기장으로 나섰다.
2001 프로축구 2군 리그 최종전 (포항 vs 전북)
현재 국내 프로 축구는 2군 리그가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10개 팀이 지구를 가르지 않고 경쟁을 하는 1군 리그와는 달리, 2군 리그는 중부 리그와 남부 리그로 5개 팀씩 나뉘어서 치러지고 있다. 5개 팀이 2차레씩 홈앤어웨이로 4경기씩 총 16경기를 치러서 양 리그의 1, 2위팀이 크로스 토너먼트로 단판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거기서 승리하는 팀이 다시 홈앤어웨이로 그 해의 챔피언을 가리는 방식으로 일정이 짜여 있다. 포항은 울산 전남 전북 부산과 함께 남부 리그에, 나머지 구단들은 중부 리그에 소속돼 있고, 2군이 없는 대전을 대신해 경찰청이 중부 리그에 속해 있었다.
우리가 포항을 찾았을 때는 정규 리그의 마지막 경기를 남겨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포항은 7연승을 달리는 중이었고, 성적 역시 12승 1무 2패로 다른 팀들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5월 24일에 전남에 패한 후 석 달이 넘도록 패배라는 것을 모르고, 11경기 연속 무패, 1무를 제외하면 10연승을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2군 리그라고는 해도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었다. 1군 주전 골키퍼인 김병지 선수도 비록 2군 경기지만 거의 있을 수 없는 기록을 만들어 가고 있는 후배 선수들에 대해 무척 흐뭇해 하고 있다고 얘기할 정도였다. 포항이 가질 마지막 경기는 플레이오프 탈락이 확정된 전북과의 경기였다.
경기 전 포항과 전북 선수들
전북 선수들이 도착했을 때 우리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지난 시즌 신인왕 양현정, 수비수 조란, 추운기를 비롯해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선수들이 2군 시합을 위해 포항에 나타난 것이었다. 어라? 저 선수들이 여길 왜 왔지? 컨디션이 나빠서 2군으로 내려왔나? 나중에 알고 보니 전북의 감독이 교체되면서 여러 선수의 기용 방법이 바뀌었고, 그래서 2군에서 1군에 발탁된 선수가 있는 반면, 1군에서 2군으로 떨어진 선수들도 꽤 된다는 얘기였다.
어쨌든 전북의 전력은 분명히 2군은 아니었다. 최소한 1.5군, 좀더 후하게 쳐 준다면 1.3군 정도 되는 레벨이었다. 하지만 포항 선수들의 반응은 한결 같았다. “저희는 진다는 생각을 안 해요. 그리고 솔직히 경기도 어제 보신 1군 경기보다 훨씬 재밌을걸요. ^^”
솔직히 그랬다. 1군 경기보다 투박한 맛은 있지만 훨씬 더 빠르고 박진감 넘치는 플레이를 보였다. 시작하자 마자 골대를 두 번 맞추는 불운을 겪으면서 ‘뭔가 꼬이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쉴 새 없이 몰아치기는 했지만 소득 없이 0-0으로 득점 없는 가운데 전반전이 끝났다. 그러나 휴식 시간에 조긍연 코치도 선수들도 그리 불만 섞인 표정은 아니었다. 시종일관 자신감에 넘치는 표정을 지으면서 후반전을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하프타임
사실 전반이나 후반이나 경기의 양상은 거의 일방적인 게임이었다. 전북은 이따금씩 역습을 할 뿐 포항의 파상적인 공세에 쩔쩔 매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윤보영 선수의 첫 골, 그리고 교체 투입된 이현동과 실바의 콤비 플레이로 추가골이 터졌다. 경기는 2:0으로 끝났지만, 게임의 주도권은 7:3 정도로 포항의 일방적인 페이스였다.
이건 여담이지만, 첫 골을 넣은 윤보영 선수는 경기 전 점심 시간에 식사 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뒀었다. ‘이런 걸 왜 찍어요?’하고 쑥스러워 하길래, 오늘 골 넣을 선수 미리 찍어두는 거라고 했더니 멋적게 웃었는데, 그런 농담 섞인 말이 현실이 되는 걸 보니 무지하게 기뻤다.
경기 전 나희근 선수는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2군 경기가 더 재미있을 것’이라고 장담을 했다. 경기가 끝나고 그가 다시 물었다. ‘어땠어요? 1군 경기보다 더 재미있지 않았어요?’ 그랬다. 비록 2군 경기였지만, 빠른 속도감으로 인해 경기는 지루한 맛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시합 내내 횡 패스나 볼을 끄는 플레이가 나올 때마다 조긍연 코치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앞으로 패스해!’, ‘볼 끌지마!’…
선수들은 횡 패스 거의 없이 종 패스를 연결했다. 정말 공격적인 플레이가 이루어졌고, 이러한 요인 때문에 ‘단장님이 한 경기도 놓치지 않고 보러 오는 재미있는 2군 경기’가 펼쳐 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조 코치는 자신의 급한 성격 때문에 빠른 패스 타임과 공격적인 플레이를 선수들에게 주문한다고 말했지만, 마음 한편에선 ‘한국 축구가 발전을 하고, 팬들에게 더욱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이런 플레이가 기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 것이 사실이다. 이런 빠르고 공격적인 플레이와 잘 다져진 조직력이 ‘이름 값’에서는 훨씬 앞서는 타 구단의 2군, 아니 1.5군을 누르고 기록적인 연승 행진을 거둘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경기 관전 중인 선수들
2군 전담 코치 ‘털보’ 조긍연
경기가 끝난 후 조긍연 코치는 선수들의 잘못을 하나하나 지적해 주었다. 하프 타임 때 아껴 두었던 얘기들도 하나씩 지적을 했고, 선수들도 자신의 실수를 수긍하는 표정이었다. 신기한 것은 조코치의 얼굴을 봤을 때는 정말 상소리와 함께 고함을 치는 모습만을 상상했었는데 의외로 부드럽게 얘기를 하더라는 것이었다. 조코치의 ‘예상 외의 모습’은 취재 마지막 날 있었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빛을 발했다. 카메라를 들이 대지 않는 상황에서 조코치는 옆집 형 같은 말솜씨와 유머를 자랑하며 우리를 즐겁게 했다.
그 중 압권이었던 것은 “내 별명이 뭔지 알아? 귀염둥이야 귀염둥이. 아닌가? 다들 그러는데… 아, 그리고 내가 제일 듣기 싫은 소리, 송승헌 닮았다는 말… 진짜 그 소리는 너무 지겨워.” 조코치의 어울리지 않는 애교에 우리는 물론이고 같이 자리를 했던 서포터 김은선씨 역시 웃음을 터뜨렸다. 선수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조코치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이 ‘웃지 않는다’였는데, 사적인 자리에서 만난 조코치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선수들을 돌보느라 집에도 자주 들어가지 못하는 조코치를 만나러 일부러 숙소까지 찾아온 온 부인과 두 딸에게도, 조코치는 외모와는 전혀 다르게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그 특유의 무뚝뚝함이야 어디 가겠느냐만은, 얘기를 할 때의 표정만은 여느 아버지, 남편처럼 부드러웠다.
그런데… 도대체 ‘귀염둥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조코치가 왜 불심 검문에는 그렇게 자주 걸리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하루는 같은 경찰에게 3번이나 검문을 받았다며 어이 없어 하는 조긍연 코치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