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와 수필
김국현
(수필미학작가회 부회장)
1. 챗GPT의 현주소
바야흐로 인공지능 시대가 열렸다.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시작인 듯하지만 이미 변화의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 단지 일반인들이 피부로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과거 컴퓨터 도입이나 인터넷 보급 때보다 훨씬 속도감 있게 변화하고 있다. 앞으로 기술 수준이 어디까지 진화할 것인지는 전문가라 하더라도 예측만 할 뿐 상상이 되지 않는다. 자신도 감당하기 어려운 개발자들의 창의적인 두뇌와 미래의 인공지능(AI)만이 알 수 있는 영역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인공지능 개발이 시작된 1950년대부터 이미 예측된 결과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개발 속도가 예상보다 빨리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3월 미국의 인공지능 연구재단인 오픈AI가 챗GPT4를 출시하였다. 오픈AI는 2018년 GPT-1을 출시한 이후 해마다 한 번씩 버전을 올리다가 2022년 11월에 GPT-3.5에 해당하는 챗GPT를 개발한 바 있다. 챗GPT4는 그 수준을 한 단계 높인 것이다. 이는 ‘AI 기반 생성형 챗봇’으로, 인터넷 등 각종 매체로부터 확보한 정보와 데이터를 언어형식으로 학습한 뒤 인간과 대화하면서 질문에 답을 하는 방식을 취한다. 챗GPT4는 GPT-3.5와 비교해 볼 때 인간의 신경세포에 해당하는 시냅스 수와 비슷한 수준의 매개변수를 갖춤으로써, 언어 활용의 정확도와 지적 추론 능력이 대폭 향상되었다. 불과 4개월 만의 일이다.
여기서 ‘생성형’이란 챗봇이 스스로 학습한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글이나 이미지와 영상을 이용자가 원하는 형태로 생성해 내는 기술 형태이다. 이를 통해 챗GPT4는 단순한 지식정보 전달은 물론 창의적 아이디어에 대한 답변이 가능하다. 언어의 맥락을 이해하고 이전의 질문과 대화 내용을 기억하여 사용자 요구에 맞춤형 답을 내놓는 능력도 있다.
챗GPT는 첫 공개 이후 언어적 활용을 기반으로 하는 인문 사회과학계뿐 아니라 교육 분야에서 관심과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챗GPT를 이용하여 전문적 에세이나 논문을 순식간에 작성하거나 학교 과제물을 제출하는 사례도 나타난다. 이에 따라 교내 컴퓨터의 챗GPT 접촉을 차단하고 챗봇 식별 탐지 프로그램 개발을 시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인공지능 로봇이 언어를 기반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언어적 분석을 주로 하는 문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은 자명하다. AI는 진화를 거듭할수록 문학 분야에서 인간의 능력을 넘어설 가능성이 다분히 있는 것이다. 특히 챗GPT는 다른 챗봇들과 달리 주고받은 대화의 내용과 대화의 문맥을 기억하고, 인간 수준의 상세하고 논리적인 글을 작성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챗GPT의 출현만으로도 앞으로 문학이 설 땅은 과연 어디인가, 라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을 하루 만에 썼다.”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글쓰기 교실에서 인공로봇을 활용하는 방법도 가르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챗GPT를 활용한 표절의 심각성에도 문학이 무방비하게 노출되고 있는 셈이다.
AI의 사고 역량은 어디까지 진화할 것인가. 진화의 속도를 가늠하기는 어려울지라도 무한대로 열려있는 기술적 확장성을 바라만 볼 수는 없다. AI 시대에 과연 문학의 영역 지키기가 옳은 것인가, 아니면 챗봇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어느 정도의 개방적인 태도를 취할 것인가. 사회의 어떤 분야이든 숨어서 자기 영역만 고수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AI가 스스로 문학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경우, 자칫하면 문학은 있지만 작가가 없는 세상이 도래할 수도 있다.
2. 인간, 문학, 그리고 챗GPT
예술 장르 중 문학에만 노벨상이 있다. 문학은 인간이 언어를 매개로 창의적 사고 역량을 보여 주는 활동으로서, 물감이나 악기 등 도구에 영향을 받지 않고 인간 개인이 가진 언어의 창조적 활용으로만 이루어지는 예술 작품이기 때문이다.
챗GPT는 인간의 언어적 창조영역을 대신할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즉 AI가 아무리 진화하여도 인간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언어기반이 LLM(Large Language Model)으로서, 단어나 데이터에 통계적 방법을 적용한 확률론적 언어조합에 불과하여 타인과의 관계나 문화적 교류, 학습에서 얻은 지식은 인공지능이 활용할 수 없다는 사실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문학은 인간의 인간됨과 인간 본연의 가치를 보존해야 한다는 인류학적 당위성 차원에서 그 존재 가치가 있다. 챗GPT는 아무리 진화하여도 인간의 의식구조 속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 인간의 사고 역량은 무궁무진하여 직간접적인 경험과 무의식에 의한 초자아의 영역을 함부로 넘보지 못한다. 이는 인간성의 본질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것이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인터넷의 등장 때처럼 이제까지 모든 기술 발전이 인간 생활의 편의성과 삶의 질 향상이라는 명분에서 가치를 인정받은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인공지능도 인간 활동의 보조 역할에 한정해야 한다는 논리가 타당성을 갖는다. 챗봇은 이미 세상에 나온 정보와 데이터만을 활용하여 작동한다. 따라서 미래를 예측하거나, 사적인 체험이나 개인적 주관을 바탕으로 다양한 구성과 개성 있는 문체를 구사하는 데도 기술적인 한계가 있다. 특히 언어 사용에 있어 기표와 기의의 미끄러짐 현상과, 개념의 다의적 해석과 활용,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리 표현되는 등 문학적 언어의 속성을 챗GPT가 완벽히 학습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챗GPT의 활용 영역이 인간 생활 전반으로 확대될수록 자칫 인간의 사고력이 저하되고 지적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3. 챗GPT와 수필
필자는 챗GPT와 대화를 시도한 적이 있다. 그리움이나 어머니의 편지를 소재로 한 수필과, 은유와 환유에 대한 설명을 요청하였을 때 단편적인 지식에 머물거나 수필의 흉내만 내는 수준이었다. 개인의 이력에 대한 정보도 사실과 많이 달랐다. 글의 구성이나 문장 표현은 문법적이나 논리적으로 거의 완벽한 수준이었다. 그 내용 중에는 글쓰기에 중요한 힌트를 얻거나 마중물로 삼을 만한 아이디어나 문학적 표현이 발견되기도 했다.
수필 쓰기는 일상적 체험에서 얻은 주관적 감정을 객관화하는 과정이다. 수필은 지극히 개인적 차원에서 체득한 문학적 기풍과 소양, 자신만이 가진 가치관과 세계관에 바탕으로 두고 세상을 관조한 결과이다. 특히 문학과 예술에 대한 지식과 수필이론, 성장 과정을 통해 학습하고 걸러낸 감성적 차원은 어떤 외부적 지능 체계도 흉내 낼 수 없는 고유의 영역이다. 대화 중에 또는 글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엉뚱한 생각이나 상상 또한 수필 쓰기의 추동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문학 장르 중에 시나 소설보다 수필이 그나마 챗봇의 영향을 덜 받는 영역에 해당할 것 같다.
하지만 수필을 쓰는 과정에서 챗GPT에게서 문학적 표현을 빌리거나 서사를 인용하는 경우, 독자가 이를 응당 작가의 글로 오해하거나 심지어는 공모전 심사에서도 걸러내기 어려워진다. 챗GPT를 활용한 표절의 심각성에 문학이 무방비하게 노출되는 것이다. 이러한 표절 문제를 어떻게 대비하고 다룰 것인가에 대한 공론이 이루어져야 한다. 앞으로 인공지능 시대에 대비하여 표절 방지를 위한 프로그램 개발과 공용화 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챗GPT는 텍스트의 요약이나 수정, 장단점 분석 등 다양한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논리성을 추구하는 수필 비평의 경우 인공지능이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피드백하면 비평가로서의 몫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아직은 안심 단계에 있지만 앞으로 진화의 정도에 따라 웬만한 비평가보다 한층 다양한 관점에서 평론이 이루어질 것이 예상된다. 다만, 수필이나 비평에서나 자기가 쓴 글이 거짓인지 참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한계는 분명히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수필이나 수필 비평의 경우 글을 대하는 작가의 자세와 태도가 더욱 중요하다. 어떤 외부의 도움 없이 오직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글쓰기에 매진하고, 상업주의 배격 못지않게 도구적인 이용을 자제해야 한다. 이것이 문학의 순수성을 살려야 하는 명분이요 까닭이다. 작가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할 때 작품 그 자체보다 창작의 기쁨과 문화적 향유를 누리는 것에 가치를 두기 마련이다. 문학인은 자기만의 문학 세계를 형성하여 독특한 향기를 가진 글을 쓸 때 진정한 자기만족과 독자와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 기계가 작성한 글을 인용하는 것 자체가 자기모순이요, 심지어 저작권과 윤리적인 문제까지 감수해야 한다.
4. 앞으로의 전망과 과제
챗GPT4의 등장과 함께 MS사의 MS-Copilot와 카카오의 코GPT 등 인공지능을 응용한 프로그램이 출시될 예정이다. 이들은 텍스트와 이미지의 동시 대화나 언어의 문맥적 이해도 가능하고, 고도화된 검색 기능이나 문서 공유 서비스도 수행할 수 있다. ‘강한 AI’라 불리는 AGI(범용 인간 지능,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의 등장도 눈앞에 있다. 이는 인간처럼 창의적 사고력으로 인간의 명령 없이도 스스로 질문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갖춘다. 최근 구글의 AI 회사인 딥마인드가 출시한 ‘가토(Gato)’라는 AGI는 텍스트와 이미지, 영상 등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하여 사용자의 수요에 맞는 텍스트나 이미지를 생성해 낸다. 하나의 신경망 모델을 이용하여 다양한 일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뇌를 활용해 필요할 때마다 갖가지의 능력을 발휘하는 인간의 경우와 유사한 수준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라는 게 있다. 주인이 주인인 까닭은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채워주는 노예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다. 주인은 노예의 수고로 자꾸만 게을러지고 그러다 노예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결국은 노예가 주인 행세를 하게 되어 주인이 오히려 노예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는 곧 챗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전망과 일맥상통한다. 인간이 챗봇을 만들고 부리는 주인이 아니라 그들의 노예로 전락할까 우려하는 것이다. 이건 어쩌면 한낱 기우일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문자와 디지털 등 언어 매체의 수단이 바뀔 때마다 세상은 문화적 충격에 빠질 거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별 부작용 없이 오히려 인류의 지적 성장과 생활 편익에 유용한 도구로 쓰였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생성형 AI와 공존하면서 이를 양성화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수필에 있어 문학적 가치를 지킬 당위성은 자명하다. 세계적인 언어학자인 노엄 촘스키는 “챗GPT가 언어·인지·인간의 이해와 관련된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글쓰기에서 표절의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는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그렇지만 언어표현의 측면을 고려한다면 AI가 인간의 수준을 넘어설 여지는 충분히 있다. 문학에서 글쓰기란 체험하고 사유한 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이다.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인식하거나 느낀 감정을 언어로 나타내는 순간, 그 대상은 관념화 또는 보편화 될 수밖에 없다. 이는 언어로 표현하면 언어 자체가 가진 개념에 한정되는 현상과 결부시킬 때 더욱 심각해진다. 이러한 문제는 챗봇으로 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학습하는 지식과 경험의 양이 많아질수록, 기억력이 한정된 인간보다 AI가 오히려 더 풍부한 표현력을 갖추게 된다. 지적이고 감성적인 표현의 확장 기회도 AI에게 무한정 열려있다. 더욱이 생성형 AI의 경우 문장에 사용하는 어휘의 결합과 맥락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끊임없이 만들어낼 수 있다. 거기다 인간처럼 복잡한 상상력과 감정을 가진다면 AI도 작가로서의 창의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올해로 《수필미학》이 창간 10주년을 맞이하였다. 수필 창작과 비평·연구의 열린 만남으로 수필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사명을 감당하는 과정에서 챗GPT라는 괴물을 만났다. 이러한 도전적인 사회 환경을 슬기롭게 헤쳐나가기 위해 회원들이 독자와 함께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 적응하는 문제와 문학의 순수성을 지키는 두 가지의 가치 사이에서 무게 중심을 갖고 균형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앞으로 AI 챗봇이 얼마나 빠르게 진화하고 또 수필 문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관심을 두고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