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롯성악 새 장르 개척하며 당당히 1위
성장거듭 최종 무대 ‘상사화’서 가창 절정
부친의 포크송, 조모 심수봉 노래 들으며
장르간 벽 허무는 음악 세계 만들어와
“도전해줘서 고맙다”는 팬들 응원 뭉클
경연 기간 링거 5차례 투혼...책임감 여전
-“함께 한 동료 참가자들과 여행 가고파”
MBN ‘불타는 트롯맨’ 최종 우승자 손태진. <사진제공=MBN>
“많은 분께서 사랑해주신 만큼 엄청난 책임감이 주어졌어요. 트로트에도 발전과 변화가 필요한데, 그게 앞으로 제 가장 큰 임무가 되지 않을까요.”
MBN ‘불타는 트롯맨’의 최종 우승을 거머쥔 손태진(35)은 1위의 기쁨과 12주간의 경연을 끝냈다는 후련함을 넘어 책임감을 이야기했다. 서울대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팝페라 등 크로스오버 가수로 활동하다 트로트 경연에 도전장을 낸 이색 경력 탓에 경연 중엔 “정말 트로트를 할 거냐” “할 수 있겠냐”는 의심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가 가진 특유의 탄탄한 베이스 음색은 어떤 권위마저 느껴지게 했지만, 트로트와 어우러질 수 있을지 쉽게 확신할 순 없었다.
그러나 손태진은 자신을 한계로 몰아붙였다. 최종 무대에서 남진의 ‘상사화’를 완벽하게 소화한 그는 ‘성악 트로트’란 장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보이며 한 편의 성장 드라마를 완성했다. 9일 매일경제 인터뷰에 응한 손태진은 “그 시대, 세대와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표현해가다보면 새로운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그걸 찾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8일 자정을 넘겨 1위 최종 발표 결과를 받아들고 잠시 눈을 붙인 뒤, 같은 날 저녁엔 서울의 한 클래식 공연 무대에 올라 샹송을 불렀다. 그러곤 다시 인천의 촬영 세트장에서 ‘불타는 트롯맨’ 스페셜 방송 갈라쇼 공연을 준비하다 인터뷰를 위해 잠시 짬을 냈다. “어제도 2시간 반만 자고 공연했거든요. 아직도 모든 게 꿈만 같아요.”
언뜻 클래식과 트로트 사이를 오가는 게 서로 다른 두 자아를 바꿔 끼우는 듯한 모습으로 연상되기도 했지만 손태진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에겐 장르를 떠나 ‘음악’이란 공통점이 더 중요하게 다가오는 듯했다. “노래를 부르면서 장르를 넘나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어요. 샹송을 부르더라도 원래 부르던 제 방식에 트로트의 느낌을 가미하게 된 거죠. (듣는 사람과) 공감을 주고받고 제 진정성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과정인 것 같아요.”
MBN ‘불타는 트롯맨’ 최종 우승자 손태진. <사진제공=M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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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N ‘불타는 트롯맨’ 최종 우승자 손태진. <사진제공=MBN>
이미 2016년 JTBC의 크로스오버 남성 4중창 경연 프로그램 ‘팬텀싱어’ 초대 우승자로서 이름을 알렸는데, 새로운 경연에 도전하는 덴 부담감이 컸다. 트로트를 특별히 잘 아는 것도 아니었다. 고민 끝에 출연을 결정했지만 탈락 위기도 찾아왔다. 그러나 손태진은 모든 과정을 ‘배움의 연속’으로 받아들이며 성장했다.
“다른 출연자들이 노래하는 걸 들으면서 바로바로 배우려고 했어요. 박민수가 담백하게 내뱉는 소리, 민수현·공훈이 쓰는 기교, 신성이 목소리를 내는 법 등을요. ‘내가 이렇게 표현해도 괜찮을까’ 하나씩 저울질해가면서 ‘손태진화’하려고 했죠. 누군가를 그대로 따라 하는 건 비교적 쉬운 방법이지만 그랬다가는 제 색깔을 잃을까 봐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나만의 것을 만드는 데 중점을 뒀어요.”
다른 것을 받아들이고 쉽게 벽을 허무는 건 그가 해온 음악에선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초·중·고등학교를 싱가포르에서 나와 한국 가요를 쉽게 접하진 못했지만, 아버지가 집에서 통기타를 치며 즐겨 부르던 포크송이 그의 음악에 토대가 돼줬다. 특히 엘비스 프레슬리의 곡을 번안한 차중록의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 라트비아 원곡에 심수봉이 가사를 새로 붙인 ‘백만송이 장미’ 등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백만송이 장미는 손태진이 경연 중 직접 부르기도 한 곡. ‘타인’(원곡 이미자)과 함께 손태진 무대 중 가장 조회수가 높은 영상이다.
물론 이모할머니(할머니의 여동생)인 가수 심수봉의 존재만으로도 그에겐 ‘트로트 DNA’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심수봉과 손태진의 아버지는 이모와 조카 사이지만 연배가 비슷해 왕래가 잦았다고 한다. 심수봉은 경연 직후 통화에서 손태진에게 “노력한 게 잘 느껴졌고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는 덕담을 해줬다고 한다.
손태진은 앞으로 솔로 가수로도, 크로스오버 팀 ‘포르테 디 콰트로’로도, ‘불타는 트롯맨’의 우승자이자 톱7 멤버로도 활발히 활동해나갈 계획이다. 다음달 29~30일 예정된 ‘불타는 트롯맨’ 전국투어 서울 콘서트를 비롯해 두 달간 출연 확정된 공연만 3건이다. 손태진은 경연 기간 5번이나 링거를 맞았을 정도로 정신적·육체적인 압박감을 견뎌야 했는데 “압박감은 아직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 같다”며 덤덤히 웃었다.
쉽지 않은 도전, 거친 여정 속에서도 팬들의 응원은 큰 힘이 됐다. 그는 “‘이 프로그램에 도전해줘서 고맙다’ ‘손태진이란 가수를 알게 돼 행복하다’는 말씀을 해주실 때 참 뭉클하다”며 “때론 ‘도전하기로 한 결정이 틀렸던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 준비했기 때문에 그런 얘기들이 저에겐 보상이 됐다”고 했다. 방송 막판엔 유력 우승후보로 꼽혀온 황영웅이 과거 전과 논란 등으로 자진 하차하는 등 혼란한 상황도 있었다. 손태진은 말을 아끼면서도 “각자 주어진 무대에 최선을 다한다는 데엔 변함이 없었다”고 말했다.
MBN ‘불타는 트롯맨’ 최종 우승자 손태진. <사진제공=MBN>
역대 최대 규모인 6억원대 경연 상금도 독차지하게 됐지만 아직 실감이 나진 않는단다. 손태진은 “우선은 감사함에 보답해야 할 것 같다. 또 함께 고생한 톱7 참가자들과 함께 여행을 가는 등의 자리를 자리를 만들고 싶다”며 “갑자기 카메라가 붙으면 또 일이 되니까 제작진 몰래 가야 할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정주원 기자(jnw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