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고려와 후백제가 맞붙던 나팔고개와 왕산 일대는 과거를 잊은 듯 평온함으로 가득하다. 왕산 자락에는 고려 제1대 왕인 태조 왕건을 대신해 순절한 신숭겸 장군의 유적지가 덧없는 세월을 이야기하듯 오랜 시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구광역시 동구 신숭겸길, 왕산 아래에 신숭겸 장군 유적지가 있다. 표충재 전통체험관은 유적지 내 신숭겸 장군을 추모하여 건립한 강당인 ‘상절당’ 오른쪽에 위치한다. 표충재 아래로 표충단이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로는 동화천이 흐른다. 도심 속에 위치해 교통이 편리하고 유적지 안에 자리해 주변 소음이 적어 편안히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1호 ‘신숭겸장군유적’ 주차장 입구
신숭겸 장군의 유적지임을 알리는 홍살문
상절당으로 이어지는 충렬문
표충재로 향하는 외삼문
외삼문을 지나자 배롱나무 한 그루가 심어진 아담한 마당이 펼쳐진다. 배롱나무는 꽃이 오랫동안 피어 있어 일명 백일홍 나무라고도 하며, 나무껍질을 손으로 긁으면 잎이 움직인다고 하여 간지럼 나무라고도 불린다. 객실은 외삼문 정면에 놓인 표충재의 표충1·2실과 표충재 우측에 위치한 동재와 좌측에 위치한 서재, 외삼문에 위치한 내삼1·2실로 총 6실이 갖춰졌다. 배롱나무와 서재 사이에 위치한 간이 주방에는 냉장고와 정수기가 마련되어 있으나 취사는 불가능하다. 동재 뒤편으로는 공용 화장실을 포함한 욕실이 마련됐다.
표충1·2실 외관
표충재 우측에 위치한 동재 외관
표충재 좌측에 위치한 서재 외관
외삼문에 위치한 내삼1·2실 외관
배롱나무와 서재 사이에 위치한 간이 주방
동재 뒤편에 위치한 공용 화장실·욕실
1888년에 완공된 표충재는 본래 제사를 위한 제물을 준비하는 곳이지만 평소에는 일반에 개방해 고택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한다. 남향에 들어앉은 표충재는 오후가 되면 슬며시 찾아온 햇살로 툇마루가 가득 채워졌다. 마루 한가운데에 놓인 목재 탁자에서 차를 마시기도 하고 밀린 독서를 하다 보니 평온함이 밀려왔다. 객실 내부에는 온돌과 에어컨을 설치하여 한옥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숙박객을 배려한 흔적이 보였다. 우리의 멋과 편리함을 겸비한 표충재는 외국인 숙박객의 이용률 또한 높은 편이라고 한다.
남향으로 들어앉은 표충재
표충재 마루 중앙
다도를 즐기기에 적합한 표충재 마루
표충2실 내부 모습
또한 표충재 전통체험관에서는 전통문화체험을 즐길 수 있다. 고택 소개 및 둘러보기, 한복 입어보기, 전통예절교육, 전통다도체험, 떡메치기·활쏘기·서당체험(선택1), 전통놀이체험(윷놀이·제기차기·널뛰기·투호·고리던지기)이 진행된다. 최소 예약 인원은 20명 이상이며 전화상담이 필수다. 참가비는 1인당 2만 원이다.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1호로 고려의 개국공신인 신숭겸 장군을 기리는 유적지다. 신숭겸(?∼927)은 평산 신씨의 시조이자 궁예가 세운 나라인 태봉의 기병 장수였다. 후에 궁예의 폭정이 심해지자 동료 장수들과 함께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받들어 고려를 개국한 뒤 대장군이 되었다. 927년 신라를 침공한 후백제 견훤의 군사를 물리치기 위해 왕건과 함께 공산 동수 전투에 출전하였다. 전투 중 후백제군에 포위되어 위기에 빠지자 왕건의 옷으로 갈아입고 싸우다 전사하였다. 왕건은 그 틈을 타 탈출에 성공하였다. 장군의 죽음을 애통히 여긴 왕건은 그의 시신을 지금의 춘천인 광해주에 묻고 이곳에 순절단과 지묘사를 세워 그의 명복을 빌었다. 1607년 옛 지묘사 자리에 표충사를 세워 장군을 모셨으며, 1672년에 사액서원이 되었다. 그 후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표충사가 없어진 뒤에도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왔고, 1993년에 표충사가 복원되었다. 표충사는 표충재 뒤편에 위치한다.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신숭겸길 17
신숭겸 장군을 기리는 표충단과 400년 된 배롱나무
신숭겸 장군 순절지에 세워진 ‘고려장절신공 순절지지비’와 표충단
아름다운 공동묘지, 대구 불로동 고분군
불로동에는 왕건과 관련한 설화가 전해진다. 공산 동수 전투에서 진 왕건이 지나갈 때 어른들은 모두 피란을 가고 어린아이들만 남아 있었다고 해 불로동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곳에 그림 같은 공동묘지가 있다. 대구 불로동 고분군은 사적 제262호로 불로동과 입석동 구릉 서남면에 있는 200여 기의 크고 작은 무덤들이다. 1938년 18호·22호 고분 발굴을 시작으로 2007년 91·93호 고분까지 조사하였다. 고분의 크기는 지름 17m 이상의 대형분이 22기, 12∼16m의 중형분이 50기, 11m 이하의 소형분이 139기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 구조는 냇돌 또는 깬 돌로 4벽을 쌓고, 판판하고 넓적한 돌로 뚜껑을 덮은 직사각형의 돌방이 있으며, 그 위에 자갈을 얹고 흙을 덮었다. 껴묻거리로는 금제 혹은 금동제 장신구와 철제무기 무늬를 새긴 토기 등이 있다. 출토된 유물들로 보아 5세기 전후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되며, 이 일대를 지배하고 있던 토착 지배세력의 무덤으로 추측된다.
주소 : 대구 동구 불로동 335
대구 불로동 고분군
대구 불로동 고분군에서 바라본 불로동 일대
글/사진 : 여행Q레이터 최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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