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째 새벽에 눈을 뜬다. 저녁 8시가 넘으면 잠이 쏟아지고 새벽이면 눈이 말똥말똥해진다.
더 누워있기도 지루하고 일어나 앉았다. 여긴 호텔이니 집안일을 할 것도 없고(설거지 할 일이 있나
청소 할 일이 있나...) 그냥 책을 보며 오늘 찾아가볼 곳을 미리 봐두었다. 아침이 되자 여행사 사무실에
서 만난 김수정씨란 분이 우리가 묵고있는 이 호텔로 왔다며 연락이 왔다. 이렇게 반가울수가.
그녀는 지금 조카랑 여행중인데 우리보다 하루 늦게 런던에 온 것 이다.
함께 만나 서로의 런던 여행 소감을 나누었다. 어제는 딸과 둘이서 호텔 아침 부페를 조용히 먹었는데, 오늘은 맘껏 수다를 떨어가며 빵을 먹었다. 아침을 먹는 호텔 내 레스토랑은 2층이었는데 창가에 앉으니 바깥 거리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빵과 커피를 앞에두고 우선은 거리를 한동안 내려다보았다.
나는 여행자이지만 지금 바깥에는 출근을 위해 바삐 걸어가는 사람. 학교 데려다 주러 나온 아이 엄마..
그들을 바라보는 나는 참 한가하고 좋다. 이곳 사람들은 정말 자전거를 많이 탄다.하나같이 헬멧을 쓰고
프로 자전거 선수같은 옷차림이다. 나중에야 설명을 들었는데 여기는 자전거를 타기 정말 좋게 되어있단다.
모든 차들이 자전거을 우선 배려해주고 피해간다. 자전거를 탄 사람들도 자기가 가는 방향을 수신호 하고
안전램프를 필히 부착하고 다니단다.헬멧을 안쓰면 벌금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스쿠터나 오토바이만 그렇게 하지않나?
명품 웨지우드그릇이 여긴 이렇게 담겨 판매되고 있다
중국 그릇이 여기에선 인기였다
반가운 마음은 일단 접어두고 각자 일정대로 오늘 하루를 보내고 저녁에 숙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딸과 나는 우선 '노팅힐' 에 있는 포토벨로 마켓이란 시장에 가기로 했다.
런던에는 큰 시장이 여러개있는데 캄덴마켓 코벤트가든, 그리고 지금 가는 포토벨로 마켓이다.
휴 그랜트와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노팅힐'이란 영화에 보면 첫 부분 바로 이 시장이 나온다.
여행 떠나기 전 비디오를 빌려 한번 더 봐두기도 했다. 비록 거기가서 휴그랜트의 서점을 못 찾는다 하더라도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앤틱 시장인 이 곳을 빠트려서는 안될것 같아서였다.
우리 돈으로 약 만원 주고 하루종일 런던 중심가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무제한 으로 타는 티켓을 끊어 시내로 갔다. 2층 버스를 처음으로 탔는데 딸이 신기해 어쩔줄 모른다.
창문 밖으로 영국의 고풍스런 건물이 휙휙 지나간다. 런던에 가면 도움을 받으라고 여행사에서
가이드 한분을 소개시켜주었는데 바로 '차주열' 이라는 분이다.
피카딜리 광장 에로스 동상 아래서 그분을 먼저 만나기로했다.
런던 시내는 관광객이 대부분 이었다. 특히 오늘은 주말이다 보니 마치 올림픽 식전 행사장 처럼
각국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모여있다. 트라팔가 광장에서 버스를 내렸는데 약속장소인
피카딜리 광장까지는 좀 걸어가야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Excuse me? Where is 피카딜리서커스? 하니 친절하게도 잘 가르쳐 준다.
다 못 알아 들어도 오른쪽으로 가라 왼쪽으로 가라,곧장 가라만 알아들으면 만사형통이다.
차주열 씨를 만나 노팅힐로 함께 갔다. 그분은 박물관이나 갤러리 등을 전문으로 가이드 해주시는 분이지만 시장을 보고싶어하는 우리를 위해 기꺼이 안내해주었다.
시장 표지판 길따라 나오게 될 시장종류를 알려준다
내가 산 머플러
버스를 타고 가는데 몇 정거장이 자나도록 아직 하이드 파크 다. 얼마나 넓은지 모르겠다.
"런던은 대부분 평지에요. 산이 없거든요. 이보다 더 넓은 공원도 있는걸요." 하이드 파크의
규모에 놀라는 나에게 차주열 씨가 이렇게 설명해주었다. 노팅힐에 내리니 과연 유명한 시장답게 사람들이 엄청 몰려있었다.차주열 씨는 근처 맥도날드에서 기다리겠다며 맘껏 둘러보고 오라고 했다.
하기야 이것저것 시장 구경하는데 남자들은 별 흥미가 없을 거다. 쇼핑이나 시장구경은 아무래도 여자들이 더 즐긴다. 오죽하면 남편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 중에 하나가 마누라 따라 백화점이나 할인점 가는 거라고 할까? 요즘은 그런 곳 마다 지루해 할 남편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두고 있던데.
노팅힐 포토벨로 로드 마켓(Portobello Road Market)은 길이가 약 2km나 되는 길을 따라 양쪽에 쭉 늘어선 가게와 노점들로 이루어져있었다. 아기자기 하고 깔끔한 영국식 주택가를 접어드니 바로 시장통이 형성된다. 우리나라 백화점에서 아주 비싼 값에 팔리는 '웨지우드' 같은 도자기 그릇들이 그냥 바구니에 담겨 있다. 대부분 쓰던 그릇이니 가격도 저렴했다.
맘 같아서는 예쁜 장미꽃 무늬가 그려진 커피잔과 접시 몇개를 사고 싶은데 배낭 여행자의 무거운 어깨를 생각해 아쉬운 마음을 접을 수 밖에 없없다. 가게 주인들은 대부분 노인이다. 점원들은 가끔 젊은 사람들이 눈에 띄지만 그래도 머리가 허연 노인분들이다. 앤티크 상품을 파는 주인이 너무 젊어도 안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837년 부터 이곳에 앤티크 시장이 들어섰다고 하는데 약 20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장에는 2000여개 골동품 점포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무엇부터 어떻게 보아야 할지 너무 볼거리가 많은 것도 때로는 여행자를 힘들게 한다. 짐이 되니 예쁜 그릇이나 인형들은 맘에 있어도 사 갈수도 없어 그림의 떡이고, 악세사리 같은 것들은 혹시나 바가지 쓰는게 아닐까 싶어 그저 구경만 할 뿐이다.
어느 시장이나 마찬 가지로 길거리에 파는 음식들의 냄새가 발걸음을 잡는다. 바게트 빵에다 금방 튀겨낸 생선 커틀릿을 야채와 함께 넣고 겨자소스를 뿌려 먹는 것이다. 닭고기를 햄버거 처럼 잘게 다져 두텁게 스테이크처럼 만들어 튀긴 것을 넣기도 하고 닭고기 자체를 조각으로 튀겨 넣어 만들기도 했다.
치킨 슬라이스 버거란 것은 하나 사서 먹었는데 난 별맛을 모르겠던데 딸은 굉장히 맛나게 먹는다. 길거리 서서 입가에 겨자소스를 묻혀가며 바게트 빵을 우걱우걱 씹어먹는 다른 여행자들의 모습을 보니 우리 모습도 저러려니 싶어 웃음이 나왔다.
이것말고도 눈에 많이 띄는 음식이 피시앤드칩스이다.
현지에 사는 분들에게 들은 애기인데 영국의 대표적 길거리 음식 피시엔 칩스는 이제 별로 인기가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한창 웰빙바람이듯이 이곳도 마찬가지여서 기름에 튀긴 이런 음식은 꺼린다고 한다.
시장을 둘러보니 우리와 다른 게 몇가지 보였다. 먼저 고기를 노점에서도 판다는 점이다.
우리같으면 돼지고기, 소고기를 길가 노점에서 산다는 걸 상상할 수 도 없는데 여긴 각종 고기를 부위별로 잘라 랩으로 포장해 가격표를 정확히 붙여 판매한다. 가게 주인은 꼭 흰 가운을 입고 있는데 그리 깔끔해 보이지는 않아도 그렇다고 못 믿어 뵈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른 점 하나는 각 노점마다 번호가 길거리에 적혀 있다는 것이다. 바닥에 쓰여진 자기 번호에
리어카를 갖다 놓고 그 장소에서 판매 하는 것 같았다.
길거리트럭에다 이렇게 고기를 팔고있는게 특이했다
포토벨로 마켓 시장안. 앤틱가게 주위로 발디딜틈이 없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거리 노점들의 행렬에 약간은 질리기도 할 정도다.
앤티크 가게 단지를 지나면 바로 잡화상이 나오고 그 다음 과일, 야채, 고기 생선 등을 파는 시장이
아래로 이어지는데 시장 한번 다 구경하다가 사람이 지치겠다. 갔던 길을 다시 돌아 원 위치로
나오려면 약 4km인데 이러면 십리 길이다. 십리길을 시장 구경이라... 우리 여자들이야 해낼 일
이지만 남자들은 지레 겁 먹겠다.
런던 사람들은 과일을 많이 먹고 고기도 많이 먹는 것 처럼 보인다. 다른 물가에 비해 고기와
과일이 싼 것도 그 이유 중 의 하나인 것 같다. 사과는 우리나라의 부사 같은 종류와는 좀
다른 거 였는데 먹어보니 그리 단 맛은 많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여기는 유기농 재배가 많아
대부분 씻어서 껍질 째 먹는 다고 했다.
다시 돌아 나오는 길에 좀 전에 봐두었던 목도리 가게 앞으로 와 보았다. 25파운드 라고
적혀있었는데 100%캐시미어라고 주인 할아버지가 열심히 설명해주셨다. 처음 볼 때 색깔도 맘에
들고 촉감도 보들보들 한게 땀 맘에 들었던 거 였다. 무엇보다 갑자기 추워진 런던 날씨탓에
옷을 많이 입었는데도 한기가 느껴져 뭔가 따뜻한게 필요했었다.영국이 이렇게 춥지는 않은데
눈발이 날리는 것도 몇년만에 처음이라고 하니..
"지금 20파운드 밖에 없어요" 하며 깎아달라고 하니 잠시 생각해보더니 그러라고했다.
5파운드면 만원을 깎은 셈이었다.
내가 영어로 흥정을 하고 거기다 깎기도 해서 물건을 사다니......스스로가 대견해진다.
이것도 고급영어가 전혀 필요없다.그냥 I just have twenty.discount ok?"면 끝이다.
영어가 짧아서, 말이 안 통해서, 해외여행을 못하겠다는 사람에게는 내가 가서 말해줘야겠다.
걱정말라고 다 된다고. 보세요. 나도 되잖아요.
다음으로 찾아간 캄덴마켓은 원래 히피족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시장이라고 했다.
노팅힐이 앤틱 중심이라면 이곳은 주로 패션위주였다.도저히 따라할 수 없을 것 같은 패션이다.
우연히 이곳 길거리에서 카레랑 짜장을 파는 한국인을 만났다. 말투에 경상도 억양이 느껴져 고향을 물어봤더니
경주란다. 한국인 여행자들을 자주만난다며 덤으로 닭꼬지를 주기도 했다.따뜻한 인정이다.
물가비싼 런던생활이 고단하기도 한듯 했지만 먼 이국땅에서 밝게 웃으며 장사하는 모습을 보니
좋아보였다. 이런저런얘기를 나누고 아쉬운 인사를 나누었다. "한국도 요즘 경기가 어렵다면서요?"하며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시장안에서 만난 우리교포 권옥경씨,경주가 고향이란다.
히피풍이 물씬 나는 시장이다
돌아오는 길엔 바람이 엄청 불었다.하지만
백퍼센트 캐시미어이건 아니건 어쨌든 목도리 하나로 한결 포근해졌고 시장에서 만난 한국 교포로 부터 받은
따뜻한 마음으로 훨씬 기분이 나아졌다.
차주열 씨를 다시 만나 야경이 아름답다는 타워 브릿지로 갔다. 런던 강가의 찬 바람을 맞으면서도, 추워서 머리가
띵해져도 멋진 런던의 풍경이 가슴에 하나 가득 차곡차곡 담겨져서 체감온도는 그리 낮지않았다.
이렇게 멋진 여행을 하게 해준 매일신문사, 고나우여행사, 유럽산책의 차주열씨 그리고 우리
가족들 모두가 고마울 뿐이다.
다음 여행지는 브리셀을 거쳐 암스테르담 이다.
그 곳은 또 어떤 멋진 풍경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
런던에서 바닷속길 도버해협을 지나가는데 그곳이 터널이 아니라 그냥 수족관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고기들이랑 인어공주와 얘기하며서 갈텐데..
첫댓글 꼭 하고 싶은 유럽여행인데.우선은 마음속에 담아두고.다음 글도 기대할께요.너무 부러워요.
쪼기위 2번째 사진 china 라는 것은 중국제품이라는 것이 아니라 도자기를 뜻하는 영어표기로 알고 있습니다만...
즐거운 마음되어 잘읽고 봅니다.부러운마음 가득되어,,갖고싶은 도자기가 많네요.
좋아해님의 글과 함께 런던의 시장 잘 돌아다녔습니다. 꾸~벅.........
같은 곳을 가도 각자의 여행 취향에 따라 보는 곳이 다르니, 안 가 본 시장을 찬찬히 들여다 몬 이 여행기가 참 신기하게 느껴지고, 재미있네요~~~~~~~
편안하게 이야기를 듣는 듯 합니다 참 좋네요 ^^
잘보고 갑니다.